Share

제2화

Author: 수산월
대하진은 두 모녀와 몇 마디 잡담을 나누고 물러났다. 안채를 나섰지만 떠나지 않고, 오히려 돌아 안채 옆으로 갔다.

방 안 모녀의 대화가 창문 너머로 들려왔다.

“언니를 우리 집에 얼마나 더 둘 거예요? 왜 빨리 돌려보내지 않아요? 다른 규수들 앞에서 내가 얼굴을 들 수가 없잖아요.”

이어서 대만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아이를 너무 싫어하지 마라. 어차피 네 오라비의 첩이 될 몸이니.”

“진짜로 오라버니께 시집보낼 생각이세요?”

사미정이 놀라 소리쳤다.

그녀의 오라버니는 젊은 나이에 벼슬길에 올라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직 관직이 높지는 않았지만, 미래가 전망했기에, 하진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대만여는 사미정을 흘겨보았다.

“그 아이의 신분으로 어찌 네 오라비의 정실부인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오라비에게는 고귀한 사대부 집안의 여식이 어울린다.”

“어머니의 말씀은...”

“대씨 가문은 대대로 장사를 해왔고, 특히 내 오라버니, 하진의 아버지 손에서 더욱 번성하여, 돈이 산처럼 쌓여 있다. 게다가 그 집안에는 아들이 없어, 하진이 시집올 때 혼수가 엄청날 것이다. 그때 네 오라비에게 그 아이를 첩으로 들이게 하여, 그 혼수를 모두 우리 가문의 것으로 만들게 할 참이다.”

대하진은 대만여의 조카이기에, 첩이 되면 대씨 가문의 체면이 깎이지만, 대만여는 탐욕이 앞서, 자기 아들은 고귀한 집안의 여식을 부인으로 맞이하게 하면서, 하진을 첩으로 들여 하진의 풍족한 혼수까지 노릴 생각이었다.

대만여는 사미정의 곁으로 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를 쿡 찔렀다.

“어미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겠느냐? 너도 나이가 적지 않다. 저 아이가 우리 집안에 있으면 네가 시집갈 때도 풍족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사미정은 대만여의 소맷자락을 잡고 웃었다.

“저를 아끼시는 것은 어머니뿐입니다. 오라버니의 첩이 될 수 있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느껴야 할 것입니다.”

사미정은 멈칫하더니 말했다.

“언니가 자존심이 강한데, 싫다고 하면 어쩌죠?”

“하늘에 오를 사다리가 없는데 무슨 수로 별을 따겠느냐? 자존심이 강하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 아이가 우리 집안에 들어온 이상, 그 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여기까지 말한 대만여는 덧붙였다.

“육씨 가문에 가서는 입조심을 해야 한다.”

“염려 마십시오.”

육씨 가문의 문턱은 하도 높아, 사준영과 육완아의 혼사가 확실해지기 전까지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규안은 참지 못하고 분노했다.

“부인께서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도련님의 첩으로 삼으려 하다니요. 차라리 나리께 서신을 보내 편이 되어 달라고 하십시오. 이렇게 천대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고모님 말씀이 맞다. 이 집안에 들어온 이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씨 가문은 관직이 낮지만, 그녀를 억압하기에는 차고 넘쳤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기댈 수 없었다. 대만창은 상인의 영리함을 극도로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더 높은 이용 가치가 있지 않은 한, 그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사준영과의 혼약을 파기하는 것은, 단순히 증표를 돌려주거나 혼서지를 없애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설령 증표를 되찾고 혼서지를 찢는다 해도, 사씨 가문이 입을 열면 그녀의 아버지는 다시 그녀를 흥정거리로 팔아넘길 것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이익을 취하려는 것이다. 사씨 가문은 이익을 원하고, 대씨 가문은 명예를 원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날카로운 칼이 필요했다. 사씨 가문이 그녀의 목에 씌운 족쇄를 잘라내고, 칼날이 떨어질 때 사씨 가문과 대씨 가문이 헛소리를 못하게 만들 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칼은 육씨 가문이었다.

그녀의 목적은 사씨 집안을 벗어나는 것이다. 사씨 가문 사람들과 육완아는…

그녀가 몇 번이나 더 환생한다고 해도 그들을 상대할 능력은 없었다. 특히 육완아와 하진의 출신 계급의 차이는 벗어날 수 없다.

하진은 누구보다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이 큰 인물들과 힘겨루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평온하게 남은 생을 보내고 싶을 뿐이었다.

저녁이 되고, 밤이 깊어지자, 하진은 목욕을 마치고 창가에 기대앉아 매듭을 엮었다.

그때 익숙한 발소리가 그녀의 방 아래 층계 아래에서 멈췄다.

“너희 아가씨는 어디 계시느냐?”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단단한 힘이 실려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층을 뚫고 바닥에 닿는 순간, 그 속의 단단함은 사람을 아프게 했다.

지난 삶, 아이를 잃은 후 사준영의 태도 변화는 너무나도 괴이했다.

혹시 모를 오해에 관해 진상을 묻고 싶었다. 육완아 때문에 아이를 잃었으나, 그는 육완아에게 한 마디 꾸짖음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진을 냉대했다.

이것이 하진의 마음속 응어리였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면서도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고, 죽을 때까지도 해소하지 못했다. 다시 살게 된 지금, 그녀는 알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 해답은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도련님, 아가씨께서는 이미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규안이 공손하게 말하자, 사준영은 창호지를 한 번 쳐다보았다. 희미한 촛불 속에 얇은 그림자가 비쳤다.

그는 창가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창틀을 가볍게 두드렸다.

“전에 성 밖 청산사에 가서 외숙모를 위해 복을 빌고 싶다고 했지 않느냐? 내일 시간이 되는데,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

“오라버니께서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몸이 피곤하여 가지 않겠습니다.”

“어디가 안 좋으냐? 내 의원을 불러보마.”

“별다른 병은 아닙니다.”

사준영은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창틀에 올려놓았다.

“성 밖을 며칠 다녀왔는데, 심심풀이로 만들어 보았다. 마음에 들지 모르겠구나.”

말이 끝났지만, 창 안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일찍 쉬어라. 몸이 좀 나아지면 데리고 나가서 놀아주마.”

“네.”

창 아래에 있던 사람이 떠나고,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사준영이 떠난 후, 하진은 창문을 열고 창틀 위의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나무로 조각된 작은 인형이었다. 둥근 얼굴에 눈은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져 있고, 두 갈래의 댕기 머리에는 갓끈 장식이 달려 있었다. 어린 시절 그녀의 모습이었다.

“하진아, 내 커서 너와 혼인하면, 우리 영원히 행복하게 살자.”

어릴 적에 했던 천진했던 말은 변질하였고, 영원이라는 두 글자도 빛을 잃었다.

그녀를 더는 찾지 않는 그에게, 화리서까지 보냈었다. 만일 그때 그녀를 놓아주었다면, 그녀는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몸종이 가지고 온 말은 이러했다.

“첩 주제에 무슨 화리입니까? 양도하거나 팔아넘길 수는 있어도 첩을 놓아준다는 말은 없습니다. 주인어른께서 말씀하시길, 마님께선 편히 집에 머무르며, 상관없는 일은 생각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를 가둔 그는, 홀로 외로이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육씨 가문의 선조는 개국 황제를 도운 신하였기에, 권세가 보통 관료들과는 달랐다. 하지만 후손들은 그에 비해 잘나지 못했고, 부귀만 누릴 줄 알았다.

조정의 관료 대부분이 실권이 없어, 거대한 명문가가 점차 쇠락하는 기미를 보였다.

이번 육씨 가문의 가주, 즉 육완아의 아버지에 이르러서야 가문은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대연 왕조의 추밀사 직책을 맡아 군사 결정, 통군 배치 등을 담당하는, 황제 외의 최고 군사 지휘관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육 재상(宰相:군주를 보필하던 최고위 정치담당자를 부르던 칭호) 혹은 육 추밀사라 불렀는데, 권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육 재상의 슬하에는 오직 육완아 단 한 명의 딸만 있었기에, 그녀가 하늘의 별을 원한다 해도, 사람을 시켜 따게 할 것이다.

한편, 육부의 문 앞에는 수레와 말이 가득했고, 오가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사미정은 몸종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려, 길을 안내하는 하인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 굽이굽이 돌아 푸른 그늘이 드리운 작은 길을 지나 몇 개의 꽃문을 통과해 안채 정원에 다다랐다. 정원 안에는 누각이 즐비하고, 전각들이 겹겹이 서 있었으며, 돌산과 나무들이 가득했다.

이 순간 사미정은 육씨 가문이 얼마나 높고 대단한 명문가인지 실감했다.

사미정은 마음속으로 부러워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남들에게 얕보일까 두려워 자기 몸종을 데리고 정원에서 애써 태연한 척 걸어 다녔다.

해가 질 무렵, 하인들이 저녁 만찬을 준비하자, 육완아가 아름다운 몸종들에게 둘러싸여 우아하게 걸어왔다.

하얗고 고운 피부, 짙고 풍성한 댕기머리, 연분홍색의 화려한 옷을 입고, 소매는 무릎까지 늘어져 있었다. 허리에는 푸른 옥띠를 띠고, 치맛단에 달린 금부가 딸랑거렸다. 여인의 이목구비는 특출나지 않았으나, 그녀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육완아가 나타나자, 정원의 귀족 규수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몸이 움츠러든 사미정이 망설이고 있을 때,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미정 아가씨시지요?”

사미정은 황급히 몸을 굽혀 절을 올리자, 육완아는 그녀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안 왔으면 아가씨 집에 가서 끌고 왔을 겁니다.”

육완아 곁에 있던 귀족 규수들은 사미정을 알지 못했다.

육완아가 열정적으로 대하는 사미정이 진주와 비취로 온몸을 치장한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녀의 가문을 궁금해했다.

사미정은 뜻밖의 환영에 감격하면서도, 육완아가 자신에게 친근한 구는 것은 틀림없이 오라버니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에 은근히 우쭐해져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육완아는 사미정을 다른 이들에게 소개했고, 사람들은 사미정이 고작 7품 도사 집안의 여식이라는 것을 알고는 경시하는 마음을 품었다.

이때 누군가 놀라 소리쳤다.

“어쩜, 목걸이가 참으로 정교합니다. 이렇게 투명한 옥은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모두가 사미정의 목에 걸린 장신구를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걸이가 우리 모두를 무색하게 만드네요. 우리 것은 이류품이 되어 버렸었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 목걸이에 견줄 만한 것은 완아 아가씨의 금 상감 보석 목걸이뿐입니다.”

육완아의 잔치에 온 여인들은 모두 배경이 고귀했다. 사미정의 신분으로는 평소에는 말도 제대로 섞을 수 없는 명문가 규수들이다. 처음 받는 관심에 사미정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이들이 다음에 내뱉은 말은 사미정을 새파랗게 질리게 했다.

Patuloy na basahin ang aklat na ito nang libre
I-scan ang code upang i-download ang App

Pinakabagong kabanata

  • 봄 옷을 벗다   제30화

    조씨의 말에, 옆방의 휘장에 한 줄기 틈이 생겼고, 곧이어 작은 그림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어린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으며, 두 손은 앞으로 모으고 있었다. 아이는 육명천 앞으로 걸어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발을 모아 섰는데, 잔뜩 겁을 먹고 위축된 모습이었다.육명천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어찌 이렇게 큰 것인가?’아이의 이름은 육승호로, 육명천과 죽은 부인 사이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그가 지방으로 좌천되었을 때만 해도 아이는 아직 어렸다.2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대여섯 살 정도로 컸다.육명천은 모친 앞에서 차마 속의 말을 다 꺼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육희아도 그 나이 때는 이렇지 않았다.그해 둘째 형님과 형수님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혼자 남겨진 육희아는 늘 안채에서 뛰어다녔고, 육 노부인께서는 어린 손주들이 곁에 있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녀를 곁에 두고 키웠다.그때 그의 어머니는 뒤에서 몇 마디 험담을 했을 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육명천이 경성을 떠나기 전까지, 아이는 줄곧 그의 곁에 있었다. 지방으로 간 후에는 쭉 어머니인 조씨의 손에서 자랐다.노부인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경을 외고, 그 후에는 비스듬히 누워 몸종에게 어깨를 주무르게 하거나, 눈을 감고 선잠을 잤다. 그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아이는 본래 천성이 활발하고 한창 놀기 좋아할 나이였으나, 억지로 방 안에 갇혀 조 노부인과 함께 앉아 있어야 했다. 노부인이 경을 외면, 아이는 옆방에서 경서를 베껴 썼고, 노부인이 눈을 감고 선잠을 자도, 여전히 경서를 베껴 썼다. 오직 노부인이 내원을 거닐 때만, 같이 밖에 나가 잠시 걸을 수 있었다.별채의 몸종들과 아낙네들은 명령을 받아 아이를 매우 엄하게 감시했고, 심지어 마당 문밖으로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이처럼 억압적인 생활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오래도록 갇힌 생활을 한 아이는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맑은 눈빛도 사라

  • 봄 옷을 벗다   제29화

    “됐다, 가서 준비하거라.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어머님도 자주 뵙거라.”육명장은 한마디 덧붙였다. “저 계집에게는 마음 두지 마라. 친척으로 연결된 사이다.”그의 아우는 성정이 자유분방하고 통제하기 어려웠으며, 타고난 다정한 눈빛으로 풍류를 즐기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전에 집안에서 그에게 부인을 얻어주었으나, 그 여인이 아이를 낳다가 산후 출혈로 아이만 남기고 세상을 떴다. 지금은 조씨 부인 손에서 크고 있었다.육명천은 살짝 당황했다. 말을 아끼는 형님께서 오늘따라 어찌 된 일인지, 같은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기 때문이다.“형님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아무리 제멋대로 굴어도, 친척에게까지 손을 대지 않습니다.”육명장은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육명천은 몸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육명천은 곧장 별채로 돌아왔다. 정원 안의 배치가 정교하였고 산과 물이 있고,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그럼에도 별채라 불린 것은 안채와 다르게 불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여 육 노부인이 거처하는 곳은 안채, 조 노부인이 거처하는 마당은 별채라 불리게 되었다.육명천을 마주한 몸종들은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굽혀 절했다. 별채 안으로 들어선 육명천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몸종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문의 휘장을 걷어 올렸고, 육명천은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 코를 찌르는 듯한 무겁고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밀려왔다. 마치 문발 하나가 바깥공기를 차단하여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바깥의 빛도 잘 들지 않아, 오직 창문 앞에 가늘게 비치는 빛줄기만이 눈부시게 밝을 뿐이었다. 방 안에는 몇 명의 여종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고, 다른 두 명은 평상 앞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평상에는 부인 한 명이 기대어 누워 있었는데, 나이가 좀 들어 보였지만, 관리를 잘해서 피부는 아직 윤기가 있었다. 다만 눈가에 몇 줄의 불규칙한 주름이 세월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었다. 바로 조씨였다.“어머니.” 육명천이 조씨에게 인사했다.조씨는 금방이라도 탁

  • 봄 옷을 벗다   제28화

    남자는 육명천에게 권력을 가진 형님이 있기에 지금 같은 권세를 누리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에 비해 자신은 온갖 고생을 하며 기어 올라왔음에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나를 왜 끌어당기느냐? 내 말이 틀렸느냐? 친형제끼리도 틈이 생기거늘, 하물며 한 어머니에게서 나오지도 않았으니. 그저 육재상이 마음이 넓어, 너를 용납해 준 것뿐이다. 만약 나라면….”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네 어미와 같이 쫓아낼 것이다. 네가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거운 주먹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고, 그 남자는 즉사했다.손이 빨랐던 탓에, 옆에 있던 사람들도 말릴 틈이 없었다.육명천은 일부러 살인을 저지르려 한 것은 아니었다. 주먹 한 방에 사람을 죽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후 술이 깨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관아로 가서 자수했다.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육명장의 정적들은 이 기회를, 구실을 삼았고, 저잣거리에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대개 육명천이 그 형님의 명성을 빌려, 법도 없이 날뛰고 있다는 것이었다.백성들은 분노했고, 심지어 대연의 군정을 장악하는 육명장의 덕이 지위에 미치지 못한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외부에서 아무리 육명장에게 불리한 소문이 돌아도, 그는 평소처럼 궁에 들어 정무를 봤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조정의 목소리는 민간보다 더욱 흥미진진했다. 세 가지 목소리로 나뉘었는데, 육명장이 정의로운 척하니, 추밀사 직위를 파면하고, 결백이 증명된 후에 다시 관직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관직에서 한 번 파면되면, 복직은 고사하고, 목숨조차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지 모른다.그들은 육명장이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다른 무리는 육명장을 지지하는 무리로, 문관과 무장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육명장의 휘하 사람들이었다.마지막 한

  • 봄 옷을 벗다   제27화

    후끈한 열기 속에 호수의 시원함이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정자 주위는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가지들은 자유롭게 흩어져 정자 안에 푸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뒤집히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정자 안에는 두 남자가 있었는데, 한 명은 서 있고 한 명은 앉아 있었다.서 있는 남자는 뒷짐을 지고 있었는데, 스무 살이 훌쩍 넘어 보였다.초록색 둥근 깃 도포를 입었는데, 깃 가장자리로 손가락 반 마디 너비의 새하얀 속옷이 보였고, 허리에는 검은 가죽띠를 묶고 있었다. 양지옥으로 만든 속이 빈 향낭을 차고 작은 은장도를 매달았으며, 검은 가죽 장화를 신고 있었다. 신발 코는 살짝 들려 있었고, 여의 무늬가 은은하게 수놓여 있었다.남자는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집에 언제 저렇게 재미있는 사람이 들어온 것입니까? 싸움을 말린 것이 아니라, 분명히 불을 지핀 것인데, 미안해합니다. 꽤 흥미롭군요.”젊은 남자가 몸을 돌려 탁자 옆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을 보며 말했다. “큰형님께서는 어찌 말씀이 없으십니까?”탁자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육씨 가문의 첫째, 육명장이고, 말을 건넨 사람은 그보다 몇 살 어려 보이는 육씨 가문의 셋째, 육명천이었다.육명장은 두 눈을 감고, 손가락 끝으로 맑은 물빛의 넓은 입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 찻잔은 선이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었으며, 전체적으로 윤기 나는 푸른빛을 띠고 있어, 광택이 은은하게 속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탁자 옆의 두 겹으로 조각된 배꽃 무늬 나무 상자 안에는 똑같은 모양의 입 넓은 찻잔 세 개가 있었다.육명장은 푸른 찻잔에서 시선을 떼고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보았다.“집안의 관계를 따지면 너를 삼촌이라고 불러야 한다.”육명천은 말문이 막혀 물었다. “친척입니까?” 그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사씨 가문의 외척이다.” 육명장이 말했다.육명천은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사씨 가문을 떠올렸고, 무심하게 웃었다.“이번에 가져온 다기가 마음에 드시는

  • 봄 옷을 벗다   제26화

    마지막에는 한마디 덧붙였다. “상인의 집안 출신이니, 셈이 빠르기는 하나, 수포로 될까 봐 두렵습니다.”육완아가 사미정의 말을 이어받았다. “할머니께서는 예의와 규범을 가장 중시하시는 분입니다. 아무리 그분의 마음을 얻는다 해도, 문벌에 맞지 않는 집안에 시집보내지는 않으실 겁니다. 일찌감치 그 마음을 접고,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바로 얼마 전에 사씨 가문과 파혼하고, 곧이어 육부로 들어와 할머니의 명성을 빌려 자신의 배경을 바꾸려 하다니. 야망이 크기도 하지.’이때,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염치도 없나 보군.”하진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 말을 한 당사자는 다름 아닌 육희아였다.육완아의 얼굴을 붉히고 육희아에게 따졌다. “무슨 뜻이냐?”더 이상 나서지 않을 줄 알았던 육희하가 계속 말했다. “낯짝이 두껍기도 하지. 네 출신 배경을 잊은 것이냐? 감히 남의 흉을 보다니. 하진 아가씨는 적어도 이름있는 가문 출신이다. 그런데 근본도 없이 의기양양해서 지껄여? 어느 진흙 구멍에서 굴러 나왔는지 알지도 못하면서.”흥분한 육희아의 양 볼이 붉어졌다.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져 말이 잘 통할 줄 알았던 그녀는 의외로 입담이 매서운 사람이었다. 육완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곧장 되받아쳤다. “너는 뭐라도 되는 줄 알았느냐? 적자도 서자도 아닌 주제에, 이 집안에서 널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긴 하느냐? 네 할머니조차 우리 할머니 덕을 보는데.”육완아가 다시 말했다. “만약 그해 할아버지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았다면, 지금 첫째 댁에 너희가 발 디딜 곳이나 있었겠느냐.”육 대감은 젊은 시절, 세상 구경을 나갔던 중 조 노부인과 먼저 인연을 맺었다. 가족들에게 숨기고 남몰래 조 노부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다. 훗날 집안에서는 반대하며 조 노부인을 집에 들이지 못하게 했으며, 육 대감에게 다른 명문가의 여식을 혼처로 정해주었다. 육 대감은 어쩔 수 없이 가족의 주선에 따라 명문가의 여식과 혼례를

  • 봄 옷을 벗다   제25화

    다만 하진은 조금 이상했다. 그날 육희아의 말처럼 상황이 그토록 급박하여 마차가 뒤집힐 지경이었다면, 함께 있던 호위 무사들이 육완아를 에워싸고 먼저 보내야 했다. 마차는 지키지 못하더라도, 사람은 지킬 수 있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일이었다.‘어찌하여 마차 안에 꼼짝하지 않고 있었을까? 만약 그 마차 안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작년의 화등절이라?’ 하진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래전부터 몰래 정을 통하고 있었던 모양이구나.’육희아는 하진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화등절이 얼마나 시끌벅적하고 재미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이야기하며 내원으로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그곳을 거닐던 육완아와 사미정과 정면으로 마주쳤다.육완아는 앞섶이 맞닿는 덧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감이 가볍고 얇았으며, 안에는 노란색 저고리를 입었다. 길이는 발목까지 닿았고, 치마 끝에 찬 장식에서 쟁강거리는 소리가 났다.사미정은 수행원처럼 육완아의 곁에 반 걸음 뒤처져 따랐고, 비위를 맞추려는 듯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네 사람은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쳤다.육완아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 하진을 바라보았다. 비록 하진이 유씨와의 혼약을 먼저 파기했고, 그 제안도 하진 쪽에서 먼저 나온 것이었지만, 육완아에게 하진은 여전히 눈엣가시였다. 그녀는 하진이 사준영과 혼약을 물리기를 바랐지만, 하진이 먼저 제안한 것이 싫었다. 대하진 같은 미천한 상인의 여식이 감히 사대부 자제와의 혼약을 먼저 물리고자 한 것에 화가 났다. 마치 하진이 버린 것을 주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물론 사준영을 향한 육완아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그 간절함이 더해졌다. 사준영이 그녀에게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일수록, 그녀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기에 좋았다. 육완아는 사씨 가문의 문제라 생각지 않고, 마음속의 모든 불만을 하진의 탓으로 돌렸다.‘혼약은 마땅히 물려야 하지만, 너 같은 상인의 여식이 먼저 제안해서는 안 되었다.’하진은 마땅히 버림받아야지만, 육완아는 마음 편히

Higit pang Kabanata
Galugarin at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Libreng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sa GoodNovel app. I-download ang mga librong gusto mo at basahin kahit saan at anumang oras.
Libreng basahin ang mga aklat sa app
I-scan ang code para mabasa s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