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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수산월
누군가 말했다.

“이상합니다. 7품 짜리 집안에 이렇게 돈이 많을 줄이야. 우리에 못지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재물이 어디서 났는지 궁금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픽하고 웃었다.

“옛말에 현감이 현장에 있는 관리만 못 하다지요? 우리처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몸가짐을 깨끗이 해야 하지만, 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중요한 자리를 맡아 남모르는 수입이 많을 겁니다.”

사람들은 한마디씩 비웃듯이 말을 던졌고, 화살의 방향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갔다. 사미정은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것은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명예가 달린 문제였다.

사미정은 황급히 손을 저으며 해명했다.

“여러분 오해하셨어요. 이 목걸이는 제 것이 아니고, 빌린 것입니다.”

육완아는 이 상황을 보더니, 다시 미소를 지었다.

사미정의 오라버니인 사준영이 손해 입는 것을 원치 않았던 육완아는 넌지시 물었다.

“그 목걸이는 어디서 빌린 겁니까?”

사미정은 어머니의 당부를 떠올릴 겨를도 없이, 급히 하진을 언급했다.

“이 목걸이는 사촌 언니에게 빌린 겁니다.”

사미정은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육완아의 미소가 옅어졌다.

“언니요? 집에 언니가 있군요, 지금 어디에 계세요? 오늘 같이 왔나요?”

이 질문은 사미정을 더욱 당황하게 하였고, 사미정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같, 같이 오지 않았습니다.”

사미정이 숨기려고 할수록 육완아는 더욱 의아해하며 사미정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더니, 이내 더 맑은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우리가 친한 것처럼, 그분도 내겐 사촌 언니와 마찬가지이니, 한번 데려와서 만나는 것이 어떤가요?”

사미정은 비로소 사고 친 것을 알게 되었다. 육완아가 방금 자신을 보던 눈빛은 그녀의 심장을 오싹하게 하였다. 사미정이 답하기도 전에, 육완아가 다시 말했다.

“며칠 후에 가족들과 함께 성 밖 절에 기도하러 가려던 참인데, 그때 그분과 같이 오는 것은 어떠합니까?”

사미정은 응할 수밖에 없었다.

육완아는 사미정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정원을 거닐며, 하진에 관해 자세히 물었다.

노을이 지고, 하늘은 짙은 파란색과 옅은 파란색이 뒤섞여 약간의 먹빛을 띠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하진은 몸종을 데리고 둥근 부채를 들고 여유롭게 후원 산책을 나섰다.

그때, 앞쪽 모퉁이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훤칠한 키가 돋보였고, 밤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휘감았다. 사내는 소리 없이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 풍채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가 나타난 순간, 하진은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

앞으로 다가오자, 맑고 깨끗한 얼굴이 선명해졌다.

“나를 피하는 것이냐?”

하진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오라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젠 나이가 적지 않아, 아무리 오라버니라고 해도, 남녀로 구별이 있어야 합니다.”

그녀의 말이 끝으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준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남자와 여자로서 구별이라? 네가 이 집안에 들어온 것은 나와 혼인해, 부부의 연을 맺기 위함이다. 어찌 거리를 둬야 한단 말이냐?”

‘부부라니?’

가라앉았던 마음에 조롱 섞인 아픔이 솟아났다. 첩인 그녀는 이혼을 요구할 자격조차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사준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지만, 여전히 복잡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였다.

그녀는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전생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그가, 십 년간 차가운 방에 버려두고 담장 너머로 한 번도 만나주지 않으며,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사준영은 말없이 자기를 바라보는 하진의 눈빛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눈앞에 그녀가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기를 바랐다.

“하진아.”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을 때, 눈 속의 감정은 모두 사라지고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했다.

“밤이 늦었습니다,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하진이 떠난 후, 하인이 앞으로 나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준영은 곧장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좁은 골목길에는 불빛이 없었다. 담장 그림자 아래에 화려한 마차가 멈춰 있었고, 몇 명의 하인이 골목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마차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어찌 안 오셨습니까?”

육완아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한참 후에야, 사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인 사정으로 못 갔습니다.”

“대체 어떤 일이기에, 제 생일잔치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까?”

그녀는 사미정의 입을 통해 사씨 가문에 대하진이라는 상인 집안 외숙모의 여식이 묵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밖에 있는 남자와 사적으로 만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그의 답이 듣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사준영은 차가운 목소리로 가볍게 대꾸했다.

“사적인 일이니, 말할 수 없습니다.”

그가 불쾌해 보이자, 그녀는 더는 묻지 않았다.

육완아의 가문이 사준영보다 훨씬 높은 지위였지만, 그녀는 그의 앞에서 한없이 조심스러웠고 그의 기분을 살폈다.

“며칠 전 아버님께 도련님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버님께서 몇 마디 하셨습니다.”

사준영은 그 말을 듣고 약간 정신을 차렸다.

육완아의 아버지에게 언급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무엇보다 신경 쓰는 부분이다.

“육 재상께서 무어라 하시던가요?”

육완아는 황급히 말했다.

“아버님께서 도련님을 알고 계시며, 젊고 유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사준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 그의 행동을 볼 때, 절대 젊고 유능하다고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대연 왕조에서 진정으로 젊고 유능한 사람을 논하자면, 그분을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두각을 나타냈고, 지금은 재상의 반열에 올라, 그야말로 천 년에 한 번 나올 인물로 추앙되었다.

사준영은 그런 추밀사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고, 우러러보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는 육완아에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오늘은 정말 시간이 없어 못 간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말았으면 합니다.”

연모하는 이의 부드러운 말에 육완아의 마음은 뛸 듯이 기뻤다.

“제가 드린 주머니는 차고 계시나요?”

“네.”

“이리 주십시오.”

육완아의 말에 사준영은 허리에서 주머니를 풀고, 창호지를 살짝 걷어 안으로 내밀었다.

육완아는 그것을 받아 접힌 종이를 주머니에 넣은 후, 다시 창호지 밖으로 내밀었다.

“도련님께서 원하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사준영은 주머니를 흘끗 보고는, 건네받으면서 의도적으로 그녀의 손끝을 스쳤다.

닿을락 말락한 접촉에 육완아는 수줍어서 얼굴을 붉혔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준영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계산적인 자기 행동을 절대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벼락출세를 원했고, 최고위 관료가 되고 싶었다. 야심을 펼치기 위해선 권력이 필요했고, 육완아는 그의 신분 상승을 위한 발판이었다.

그에게 있어, 남녀 간의 애정은 결국 권세 아래 굴복해야 했다. 하지만 권세를 얻었다고 정을 끊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둘 다 원했다!

그는 육씨 가문의 여식과 혼례를 할 것이며, 하진도 자신의 곁에 묶어 둘 작정이었다.

한편, 막 방으로 들어가려던 하진의 뒤로, 사미정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쳐들어왔다.

“참 대단합니다, 육부에 가지도 않았는데, 그 댁 아가씨가 언니를 찾게 하다니요. 오히려 좋은 일을 해준 꼴이 되었네요.”

“무슨 말이냐? 이해를 못 하겠구나?”

하진이 물었다.

사미정은 초여드레에 육씨 가문이 절에 기도하러 갈 때, 육완아가 함께 오라고 한 일을 털어놓았다. 사미정은 손에 든 나무 상자를 바닥에 던졌다.

‘모두 이 목걸이 때문이야!’

사미정은 이어서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께서 부르십니다.”

‘겨우 이 정도 움직임에 고모님께서 경계심을 품었구나.’

대만여는 하진을 보자마자 사미정과 다른 사람들을 물러나게 했다.

방 안에 둘만 남자,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네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가식적인 면모를 벗어던진 대만여는 이전의 친근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대만여가 다시 말했다.

“너는 우리 오라버니와 똑같구나. 겉으로는 세상사에 관심 없는 척하면서 뒤로는 얕은 수작을 부리지. 사준영이 육씨 가문의 규수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그 사이에 끼어들어 혼사를 망치려는 것이 아니더냐? 주제를 알아야지, 감히 누구와 비교하는 것이냐.”

하진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해명했다.

“고모님, 어찌 저를 그리 천하게 보십니까? 제 비록 신분이 높지 않아도,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압니다.”

하진은 말을 하면서 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내 뺨의 눈물을 닦았다.

“방금 고모님의 말씀을 듣고 대략 짐작했습니다. 오라버니께서 육씨 가문 규수의 마음에 드셨으니, 그 댁 사위가 되면, 저도 필시 기쁠 것입니다. 어찌 감히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초여드레 날, 그 댁 규수를 만나거든, 입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대만여는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이 기회에 하진에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알려줄 참이다.

하진은 모르는 척했다.

“제가 어리석어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만여는 참을성을 가지고 말했다.

“비록 너와 우리 집안이 예전에 혼담이 오가긴 했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 눈치가 있다면, 네 신분을 물을 때, 그저 잠시 머물고 있는 친척이고, 곧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네가 분수를 지킨다면, 내 너를 박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댁 규수를 며느리로 맞이한 후 준영에게 너를 내치지 말라고 할 것이다.”

하진은 마음속으로 대만여를 수천 번 욕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참아야 했다.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었다.

대만여는 순종적인 하진을 바라보며 나른하게 손을 흔들었다.

“가 보아라.”

하진은 시선을 내리깔고 조용히 물러났다.

한편, 육완아는 밤새 우울했던 마음이 사준영을 만나자마자 풀렸다.

몸종 희자는 육완아가 돌아가는 내내 바보처럼 웃다가, 때때로 손가락 끝을 입술에 대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아가씨께서 사 도련님을 연모하여 신분이 낮은 집안임에도 그 댁과 혼례를 맺길 원하시지만, 어르신께서는 절대 이 혼사를 허락하지 않으실 텐데.’

어두운 밤, 멀리서 철갑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왔고, 발소리가 뒤따랐다.

육완아는 마차 휘장을 걷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보지 말았어야 했다.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놀란 육완아는 황급히 마부에게 명령했다.

“빨리, 마차를 어두운 곳으로 몰아 피하도록 하라!”

마부가 서둘러 마차를 구석으로 몰았다.

육완아는 침을 삼키고, 휘장을 살짝 걷어 밖을 보았다.

병기를 든 금위병들이 두 줄로 서서 엄숙하게 행진했고, 발소리가 땅을 울렸다. 이 거대한 행렬 한가운데에 어떤 사내가 말 안장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말발굽 소리는 느릿한 듯했지만, 금위병들의 일정한 행진 소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사내의 뒷모습은 곧았고, 어둠 속에서 약간 흐릿했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세였다. 무관의 우락부락함과는 달랐고, 문약한 선비의 여윈 모습과도 달랐다.

고요한 그림자는 한 치의 부족함도, 넘침도 없이 적절했다.

육완아는 불안함에 휘장을 내렸다. 불행하게도, 마침 궁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마주친 것이었다.

육부의 손님들은 대부분 돌아갔고, 가끔 관료 집안의 부인들이 대문에서 나와 눈앞의 상황을 보고는 황급히 한쪽으로 피했다.

남자가 집으로 들어간 후에야, 그들은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왔다.

그중 어떤 시랑(侍郎:집사부(執事部), 병부(兵部), 창부(倉部)의 차관직) 집안의 여인이 곁의 자주색 옷을 입은 부인에게 물었다.

“육씨 가문 아가씨가 열여섯 살 정도로 보이던데, 그 댁 나리께서 서른 초반 정도로 보여 놀랐어요.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자주색 옷의 부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성으로 오신 지 얼마 안 되어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 댁 아가씨는 육 추밀사의 친자가 아닙니다.”

“친자가 아니라고요?”

“네. 지금까지 독신이십니다.”

자주색 옷의 부인이 말하다가 잠시 멈추고는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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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끈한 열기 속에 호수의 시원함이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정자 주위는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가지들은 자유롭게 흩어져 정자 안에 푸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뒤집히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정자 안에는 두 남자가 있었는데, 한 명은 서 있고 한 명은 앉아 있었다.서 있는 남자는 뒷짐을 지고 있었는데, 스무 살이 훌쩍 넘어 보였다.초록색 둥근 깃 도포를 입었는데, 깃 가장자리로 손가락 반 마디 너비의 새하얀 속옷이 보였고, 허리에는 검은 가죽띠를 묶고 있었다. 양지옥으로 만든 속이 빈 향낭을 차고 작은 은장도를 매달았으며, 검은 가죽 장화를 신고 있었다. 신발 코는 살짝 들려 있었고, 여의 무늬가 은은하게 수놓여 있었다.남자는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집에 언제 저렇게 재미있는 사람이 들어온 것입니까? 싸움을 말린 것이 아니라, 분명히 불을 지핀 것인데, 미안해합니다. 꽤 흥미롭군요.”젊은 남자가 몸을 돌려 탁자 옆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을 보며 말했다. “큰형님께서는 어찌 말씀이 없으십니까?”탁자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육씨 가문의 첫째, 육명장이고, 말을 건넨 사람은 그보다 몇 살 어려 보이는 육씨 가문의 셋째, 육명천이었다.육명장은 두 눈을 감고, 손가락 끝으로 맑은 물빛의 넓은 입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 찻잔은 선이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었으며, 전체적으로 윤기 나는 푸른빛을 띠고 있어, 광택이 은은하게 속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탁자 옆의 두 겹으로 조각된 배꽃 무늬 나무 상자 안에는 똑같은 모양의 입 넓은 찻잔 세 개가 있었다.육명장은 푸른 찻잔에서 시선을 떼고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보았다.“집안의 관계를 따지면 너를 삼촌이라고 불러야 한다.”육명천은 말문이 막혀 물었다. “친척입니까?” 그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사씨 가문의 외척이다.” 육명장이 말했다.육명천은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사씨 가문을 떠올렸고, 무심하게 웃었다.“이번에 가져온 다기가 마음에 드시는

  • 봄 옷을 벗다   제26화

    마지막에는 한마디 덧붙였다. “상인의 집안 출신이니, 셈이 빠르기는 하나, 수포로 될까 봐 두렵습니다.”육완아가 사미정의 말을 이어받았다. “할머니께서는 예의와 규범을 가장 중시하시는 분입니다. 아무리 그분의 마음을 얻는다 해도, 문벌에 맞지 않는 집안에 시집보내지는 않으실 겁니다. 일찌감치 그 마음을 접고,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바로 얼마 전에 사씨 가문과 파혼하고, 곧이어 육부로 들어와 할머니의 명성을 빌려 자신의 배경을 바꾸려 하다니. 야망이 크기도 하지.’이때,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염치도 없나 보군.”하진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 말을 한 당사자는 다름 아닌 육희아였다.육완아의 얼굴을 붉히고 육희아에게 따졌다. “무슨 뜻이냐?”더 이상 나서지 않을 줄 알았던 육희하가 계속 말했다. “낯짝이 두껍기도 하지. 네 출신 배경을 잊은 것이냐? 감히 남의 흉을 보다니. 하진 아가씨는 적어도 이름있는 가문 출신이다. 그런데 근본도 없이 의기양양해서 지껄여? 어느 진흙 구멍에서 굴러 나왔는지 알지도 못하면서.”흥분한 육희아의 양 볼이 붉어졌다.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져 말이 잘 통할 줄 알았던 그녀는 의외로 입담이 매서운 사람이었다. 육완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곧장 되받아쳤다. “너는 뭐라도 되는 줄 알았느냐? 적자도 서자도 아닌 주제에, 이 집안에서 널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긴 하느냐? 네 할머니조차 우리 할머니 덕을 보는데.”육완아가 다시 말했다. “만약 그해 할아버지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았다면, 지금 첫째 댁에 너희가 발 디딜 곳이나 있었겠느냐.”육 대감은 젊은 시절, 세상 구경을 나갔던 중 조 노부인과 먼저 인연을 맺었다. 가족들에게 숨기고 남몰래 조 노부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다. 훗날 집안에서는 반대하며 조 노부인을 집에 들이지 못하게 했으며, 육 대감에게 다른 명문가의 여식을 혼처로 정해주었다. 육 대감은 어쩔 수 없이 가족의 주선에 따라 명문가의 여식과 혼례를

  • 봄 옷을 벗다   제25화

    다만 하진은 조금 이상했다. 그날 육희아의 말처럼 상황이 그토록 급박하여 마차가 뒤집힐 지경이었다면, 함께 있던 호위 무사들이 육완아를 에워싸고 먼저 보내야 했다. 마차는 지키지 못하더라도, 사람은 지킬 수 있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일이었다.‘어찌하여 마차 안에 꼼짝하지 않고 있었을까? 만약 그 마차 안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작년의 화등절이라?’ 하진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래전부터 몰래 정을 통하고 있었던 모양이구나.’육희아는 하진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화등절이 얼마나 시끌벅적하고 재미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이야기하며 내원으로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그곳을 거닐던 육완아와 사미정과 정면으로 마주쳤다.육완아는 앞섶이 맞닿는 덧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감이 가볍고 얇았으며, 안에는 노란색 저고리를 입었다. 길이는 발목까지 닿았고, 치마 끝에 찬 장식에서 쟁강거리는 소리가 났다.사미정은 수행원처럼 육완아의 곁에 반 걸음 뒤처져 따랐고, 비위를 맞추려는 듯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네 사람은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쳤다.육완아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 하진을 바라보았다. 비록 하진이 유씨와의 혼약을 먼저 파기했고, 그 제안도 하진 쪽에서 먼저 나온 것이었지만, 육완아에게 하진은 여전히 눈엣가시였다. 그녀는 하진이 사준영과 혼약을 물리기를 바랐지만, 하진이 먼저 제안한 것이 싫었다. 대하진 같은 미천한 상인의 여식이 감히 사대부 자제와의 혼약을 먼저 물리고자 한 것에 화가 났다. 마치 하진이 버린 것을 주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물론 사준영을 향한 육완아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그 간절함이 더해졌다. 사준영이 그녀에게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일수록, 그녀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기에 좋았다. 육완아는 사씨 가문의 문제라 생각지 않고, 마음속의 모든 불만을 하진의 탓으로 돌렸다.‘혼약은 마땅히 물려야 하지만, 너 같은 상인의 여식이 먼저 제안해서는 안 되었다.’하진은 마땅히 버림받아야지만, 육완아는 마음 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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