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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옷을 벗다
봄 옷을 벗다
Author: 수산월

제1화

Author: 수산월
“하진아, 내 아이를 낳아다오.”

비단 이불 아래, 수 놓인 베개 사이에 사랑의 흔적이 가득했다.

손가락 아래로 뜨겁게 오르내리는 그의 등이 느껴졌다.

사준영은 하진의 아랫배를 연신 쓸어내렸다. 심하게 갈라진 목소리는 정욕이 극에 달하기 직전의 인내심이 서려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 그녀의 나른한 신음은 입술 사이에서 잘게 부서졌다. 그녀는 목을 젖혀 그의 입맞춤을 받아냈고, 하얀 팔로 자신도 모르게 땀에 젖은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검푸른 머리칼은 베개 위에서 뒤엉켰고, 묘한 감정은 몸의 구석구석을 조금씩 타올랐다. 가만히 여운이 온몸에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사랑의 물결이 가장 짙어질 때쯤 따뜻한 기운이 조용히 뿌리를 내렸다.

그의 핏줄이 섞인 아이를 맺어주려는 듯이.

바로 그때,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아버지께 드리려고 만든 필통입니다!”

맑고 또렷한 아이의 목소리는 하진을 기억에서 끌어냈다.

이어서 담장 밖에서 부드럽고 온화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재주가 참 좋구나, 네 아버지도 틀림없이 좋아하실 거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하진은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시퍼런 핏줄이 가득한 손가락은 앙상하고 거칠었다.

멍하니 있는 사이, 익숙하고 온화했던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의 심장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정성이 갸륵하구나, 이 아비는 아주 마음에 든단다.”

하진은 떨리는 손을 거두었다.

탕약을 들고 들어온 규안의 눈시울이 붉었다.

“약이 다 되었습니다.”

“저 아이는, 이 도령이냐?”

하진은 탕약을 보지 않고 담장에 시선을 고정했다.

“네, 주인님과 큰마님의 막내 아드님입니다.”

규안은 답답한 듯 탕약을 상에 내려놓았다.

사내의 마음은 차가운 쇠와 같다지만, 전에는 하진밖에 없었던 그는 지금 하진을 쇠보다 더 딱딱하게 대하고 있었다.

하진은 약사발을 움켜쥐고 무표정한 얼굴로 단숨에 들이켰다. 쓴맛이 목구멍 가득 퍼졌다.

“나가 보아라.”

규안은 그녀의 앙상한 뒷모습을 보며, 감히 더 말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방문이 닫히자, 하진은 팔을 창틀에 걸쳤다. 햇빛 아래, 그녀의 피부가 투명하게 빛났다.

그녀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이 엉망진창인 삶에 더는 미련을 두지도 않았다. 죽음이 임박하자, 지난날의 일들이 눈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평곡, 대만창의 맏딸이었다. 대씨 가문은 비록 상인 집안이었으나, 한 지역을 부유하게 할 정도의 재력이 있었다.

그녀와 사준영의 혼약 또한 고모인 대만여 때문이었다.

오래전, 대만여는 고집스럽게 가난한 선비, 사백산에게 시집갔고, 사백산의 과거시험과 벼슬길은 모두 대만창의 돈으로 치러졌다. 훗날 대씨 가문의 지위를 높이는 데 도움을 받으려는 속셈이었다.

이후 사백산이 7품 도사(都事:중앙 각 관서의 사무를 주관하거나 지방의 관찰사를 보좌하던 관직) 벼슬을 하자, 대하진과 사준영은 어린 나이에 혼약을 맺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하진과 사준영의 혼례를 논하려던 때, 하진의 어머니가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녀는 삼년상을 치렀고, 두 사람의 혼례는 열아홉 살로 미루어졌다.

그녀가 상복을 벗자마자 사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맞이하러 사람을 보냈다.

처음 사씨 집안에 들어갔을 때, 고모 대만여는 그녀를 친근하게 대했고, 외사촌이었던 사미정은 그녀를 언니라 부르며 잘 따랐다. 누구보다 온화하고 자상했던 사준영은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어린 시절처럼 그녀에게 장난을 쳤다.

허나, 언제부터인가 모든 것이 변했다.

“오라버니, 혹 추밀사(樞密使:군사(軍事)에 관한 일을 관장한 정부기관의 장관) 댁 육 아가씨와 아는 사이세요?”

하진도 언젠가 사준영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 아랫것들이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사준영은 단호하게 답했다. 만약 그때 사준영이 사실대로 말했다면, 하진은 그의 곁을 떠났을 것이고, 시집가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사준영은 험난한 벼슬길에는 육씨 가문의 권세로 길을 닦아야 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육완아를 성대히 정실 부인으로 맞이했고, 하진에게 달콤하면서도 강압적인 태도로 그녀를 첩으로 들였다.

“하진아, 나 말고는 너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리고 난 너에게 다른 선택지를 주지도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그녀가 이 집안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이미 계획된 것이었다.

대하진은 결국 사준영의 첩이 되었다.

하진의 방은 항상 그를 위해 등불을 켜졌고, 붉은 휘장은 따뜻했으며, 그의 사랑을 받아 아이까지 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육완아가 사람들을 이끌고 들이닥치더니, 두 명의 아낙이 그녀를 붙잡았다. 검고 걸쭉한 낙태약을 그녀에게 억지로 들이부어, 마시게 했다. 형체를 갖춘 남아는 그 일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고, 그녀의 몸도 망가졌다.

그날 이후로, 사준영은 다시는 그녀의 방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를 잡아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외면뿐이었다.

얼마후, 육완아는 연이어 아이들을 낳았고, 하진은 차가운 방에 꼬박 십 년을 버려졌다.

“하진아, 대하진.”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사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떨림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두 눈이 새빨개진 사준영의 품에 안긴 뒤였다.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없는 모습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오라버니, 왜 이러세요!’

그녀는 영문을 묻고 싶었으나, 이미 말할 힘조차 없었다.

햇살이 먼지 사이로 스며들었고, 그녀의 몸도 서서히 차가워져 갔다.

……

“평곡에서는 본 적없는 물건들이 여기 저잣거리에 많습니다!”

규안이 차를 들고 들어오며 재잘거렸다.

하진은 찻잔을 받아 들었다. 따뜻한 잔의 표면에 손끝이 닿자, 그녀는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틀 전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열아홉 살, 사씨 가문에 들어온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때로 돌아와 있었다.

고개를 숙여 손을 보니, 손가락 마디부터 끝까지 선이 매끄러웠고, 손톱은 봉긋하게 솟아 분홍빛 광택이 돌았다. 화장대 앞으로 가니, 구리거울 속에 고운 얼굴에 맑은 두 눈, 붉은 기가 도는 뺨을 가진 여인이 있었다. 병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인 후, 그녀는 이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사준영과의 혼약을 파기하고 사씨 가문을 벗어날 궁리만 했다. 다시는 사준영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준영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고, 고모인 대만여도 그럴 것이었다. 대만여는 그녀의 상인 신분을 깔보면서도, 그녀의 풍족한 혼수를 탐내고 있었다.

대하진의 아버지인 대만창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오직 그녀의 혼사가 대씨 가문에 가져다줄 많은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다. 전생에 그녀가 곤경에 처했을 때도, 대만창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늘 산 비녀와 귀걸이를 챙겨서, 고모님과 미정에게 주거라.”

하진은 몸종에게 분부했다.

“여기에 머물고 있으니, 체면을 차려야 한다.”

규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장신구 상자와 향분을 챙겼다. 규안의 시선은 하진의 목에 머물렀다.

“왜 그것을 착용하셨습니까?”

금실로 엮은 청옥 목걸이는 하진이 평소에 아까워서 잘 착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건 미끼다.”

하진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녀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내일은 바로 육완아의 생일이었다.

육씨 가문의 육부는 벽돌 한 장, 기와 한 조각까지 권세의 차가움이 스며 있었다. 그곳에 우뚝 서서, 숨만 내쉬어도, 하진처럼 아무런 기반 없는 여인을 산산조각낼 수 있는 곳이었다.

안채에서 대만여는 차를 마시며 앉아 있었고, 외사촌 미정은 옆에서 손수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진이 들어오자, 대만여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에 아프다더니, 오늘은 안색이 그나마 좋구나.”

“고모님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별다른 탈은 없습니다.”

하진이 무릎을 굽혀 예를 갖추자, 규안은 장신구 상자를 내밀었다. 눈치 빠른 사미정은 상자를 획 열어젖히더니, 보석을 확인하고 눈을 번쩍였다.

“언니, 이 비녀 정말 예쁘네요!”

대만여는 상자를 힐끗 쳐다보더니,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거늘, 어찌 이리 낭비하느냐.”

말은 그리하였으나, 거절하는 기색은 없었다.

“두 분이 좋아하는 걸로 되었습니다.”

하진은 눈을 내리깔아 싸늘한 감정을 감추었다. 사미정은 상자 속 보석들에 눈이 팔려, 저도 모르게 말했다.

“내일 육부에 가서 체면을 잃을까 봐 걱정했는데, 마침 잘되었네요.”

사미정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황급히 입을 가렸다.

내일은 육씨 가문 규수의 생일잔치였다.

사미정이 이 일을 계속 숨겼던 것은, 하진이 따라가려고 할까 봐서였다. 사미정은 하진의 상인 신분을 깔보았고, 그녀 때문에 다른 귀족 규수들이 자신까지 가볍게 여길까 봐 걱정해서였다.

그러나 하진이 사미정의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

사미정이 말을 돌리려고 애쓰는 사이, 상석의 대만여가 입을 열었다.

“네가 오기 전에 이 아이가 계속 고민하더구나. 초대장이 한 장뿐이라 두 사람은 가지 못하는데, 선뜻 언니인 네게 양보하겠다고 하더구나. 이 마음이 얼마나 가상하느냐.”

대만여의 여식은 영리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장신구 상자 하나에 이성을 잃고 입을 놀릴 정도였다. 관료 집안의 규수라고 할 수 없었다.

이 점을 생각하자 대만여도 어쩔 수 없었다. 사백산이 벼슬길에 오른 지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직급은 낮고 권력은 미미하여 매달 봉급이 그리 많지 않았다.

대만여는 집안의 안주인으로서 집 안팎의 모든 일에 돈을 써야 했고, 수년간 오직 친정에서 가져온 혼수품에 의지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나 늘 살림이 빠듯했다.

“그 댁 규수께서는 틀림없이 미정이와 친분이 깊어 청첩장을 내린 것이겠지요. 호의로 양보한다 해도, 염치없이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진은 웃으며 말했다.

육완아의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모두 최고의 권세와 부귀를 가진 이들이었다. 일정한 관직이 없으면 그 댁의 대문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한낱 벼슬아치의 여식인 사미정에게 초대장을 보낸 것은 필시 사준영 때문이었다.

“그런 고귀한 집안에 언니가 가면 오히려 푸대접받을 수도...”

사미정은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하진의 목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것은 아주 희귀한 장신구였다. 굳이 만져보지 않고 보기만 해도 그 특별함을 알 수 있었다.

“그 목걸이를 착용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하진은 고개를 숙여 가슴에 걸린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너무 무거워서, 평소에 잘 착용하지 않아.”

사미정은 눈을 반짝이며, 상자 속 보석들을 제쳐놓고 물었다.

“하루만 빌려주면 안 될까요?”

하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마음에 든다는데 하루 빌려주는 게 대수겠니? 다만, 이것을 절대로 집 밖으로 가져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사미정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듣지 않았다. 마냥 좋다고 답하며, 하진 눈가의 차가운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실 혼약을 물릴 수 있는지는 이 목걸이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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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나 친족이나 남편과 똑같이 더럽고 역겨운 것들이다. 하필 회귀한 때가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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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자영은 천천히 평상에서 몸을 일으켜 손씨 부인을 바라보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무슨 방법이 있어요? 아버지께서 저를 그 집에 보내기로 마음먹으셨는데, 제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아버지께서는 모르는 척하실 겁니다. 어머니께서도 전에 부탁하셨다가 면박만 당하지 않으셨습니까?”손씨 부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어떻게 다릅니까?”“네 큰 언니가 돌아왔다.”대자영은 잠시 멍해 있다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큰 언니가 돌아왔다고요?”“그래, 방금 돌아왔다. 나도 막 알았다. 네 아버지 서재에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구나.”대자영이 말했다. “큰 언니는 사촌 오라버니와 정혼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지금 돌아왔답니까?”“얼마 전에 네 아버지를 모시는 하인에게 들었는데, 고모님 댁에서 보낸 서신 때문에 크게 노하셨다고 하더구나.”손씨 부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짐작건대 잘되지 않은 것 같다.”“잘 안됐다니요? 어머니 말씀은 큰 언니와 사촌 오라버니의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까? 하지만 두 집안 사이에 혼약이 있지 않았나요?”자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는 대만여라는 사람을 잘 모른다. 네 고모는 어린 시절부터 교만하고 오만했고, 기세가 하늘보다 높았지. 이 집안의 것을 먹고 입으면서도 이 집안의 모든 것을 무시했단다. 관아 부인의 초대에 한 번 갔다 온 것으로, 늘 그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지. 남의 똥까지 향기롭다고 여길 지경이었단다. 그 후로는 더욱 이 집안의 물건들을 깔봤다.”“그리고...”대자영은 어머니가 말을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숨기는 것이 있다고 여겨 다그쳤다. “빨리 말씀해 주세요, 또 뭔가요?”“이 일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내가 하는 말을 마음에만 담아 두어라.”“네, 어서 말씀해 주세요.”부인은 눈을 굴려 문밖을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고모부께서는 그분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단다.”손씨 부인은 예

  • 봄 옷을 벗다   제95화

    대만창은 분명 서신을 받았다. 하지만 반문하는 어조로 볼 때, 그녀가 제안했던 내용을 전혀 개의치 않으며, 애초에 답장을 해 줄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아버지 생각은 어떠세요?”하진의 질문에, 대만창은 질문으로 답했다. “혼인 단자를 파기했느냐?.”“알고 계셨군요?”아무래도 평곡으로 보내진 서신은 그녀가 보낸 것 외에, 대만여의 서신도 있는 것 같았다.“왜 파기했느냐?” 대만창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이미 고모님의 서신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대만창이 탁자를 내리치며 호통쳤다. “내가 너에게 묻고 있는데, 도리어 나에게 묻느냐?”“사씨 가문은 저희와 혼인을 맺을 생각이 없습니다.”하진이 성질을 누르고 말했다.“어찌 사씨 가문이 우리 가문과의 혼인을 원치 않는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먼저 다른 사람 앞에서 혼약을 물리자고 해서, 네 고모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한 것이다.”사실 대만창은 그녀가 보낸 서신을 처음 받았을 때, 화가 나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하진도 화가 난 듯, 대만창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께서는 어찌 일의 전말을 알아보지도 않고 저를 탓하십니까? 사촌 오라버니는 제가 경성에 가기 전부터 이미 육부의 아가씨와 교제하며 다른 마음을 품었습니다.”“그것은 모두 너의 추측일 수 있다. 누군가 헛소문을 퍼뜨려 오해하게 한 것이다.” 대만창이 말을 이었다. “이렇게 돌아왔으니 며칠 집에 머물다가 다시 경성으로 돌아가거라. 서신을 써줄 테니 그것을 가져가거라. 네 고모는 네가 어려서 따지지 않을 것이다.”하진이 대만창의 말을 끊었다. “사촌 오라버니와 육부 아가씨가 이미 정혼했다는 것을 아십니까?”대만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조용히 생각하는 동안, 하진은 마음속에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대만창이 신의를 지키지 않는 사씨 가문에게 분노하며, 욕설을 퍼붓고 위로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대만창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본래 예상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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