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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두 가닥의 실, 하나의 베틀

Autor: 쭈의잔상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8-29 17:55:45

조선 남원골.

우성은 충격에 젖은 눈으로 연서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선’이라는 두 글자가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조... 선...?”

우성이 겨우 입을 열었다. 연서가 그런 우성을 바라보았다. 그가 쓰러져 있던 자리, 그의 반응, 기묘한 차림새, 말투. 모든 것이 그녀에게 어색하게 다가왔다.

심지어 지금의 이 질문마저도 매우 수상하고 이상했다. 본인이 어느 지역에 있는지 모른다는 건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어떤 나라에 있는지도 모를 수가 있을까?

“...예.”

연서가 의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우성이 묶인 손으로 눈을 비볐다. 손등이 얼굴에 닿는 감각이 너무 생생했다. 꿈이라고 하기엔 밤공기는 너무 차가웠고, 온몸은 많이 욱신거렸다.

연서는 더 이상 지체하기 곤란하다는 듯 주위를 한 번 더 두리번거리더니 우성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내려가시지요. 밤이 깊어질수록 위험합니다. 적어도 길가로 가셔서 말씀 나누시지요.”

그리고 그녀는 몸을 휙 돌려 치맛자락을 두 손으로 잡아 들었다.

“자, 잠깐만요.”

우성이 다급히 불렀다. 연서가 또 뭐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우성은 자신의 묶인 손을 들어 보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저 좀 한 번만 일으켜 주세요.”

연서는 다시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그의 묶인 손목을 붙잡았다. 우성은 무릎을 구부려 두 발로 땅을 딛고 힘차게 일어났다. 그는 엉덩이와 등에 잔뜩 묻은 흙을 털고 싶었지만 차마 그것까지는 부탁하지 못하고 연서의 눈치를 보았다.

그녀는 우성이 몸을 일으키자마자 다시 뒤돌아 한 발짝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성이 그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산길은 생각보다 훨씬 좁고 어두웠다. 달빛이 닿는 곳만 희끄무레할 뿐, 몇 걸음만 비켜서도 금세 어두운 그늘에 가려졌다. 흙길엔 크고 작은 돌이 박혀 있었고, 발밑에서는 마른 가지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났다.

우성은 본능적으로 연서 쪽으로 붙어 걷기 시작했다. 길도 잘 모르거니와, 지금 이 상황에서 믿을 사람은 이 여자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연서가 갑자기 멈추어 서서 그를 돌아보았다. 우성도 덩달아 멈춰 서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어찌 이리 가까이 붙으십니까?”

“...네?”

연서의 말에 우성이 되물었다. 연서가 우성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또다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묻는 우성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제 옆에서 나란히 걸으시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나리께서는 어찌 여인과 함께 걸으십니까?”

그 말에 우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엇 때문에 이리 까탈스럽게 구는지 알 수가 없던 그는 다시 한 번 그 표정으로 대답했다.

“난 길도 모르고... 묶여 있잖아요. 누가 오해할까 봐 그런 거면, 여기 아무도 없는데 뭐가 걱정이신지...?”

“사람이 없어도 법도는 남아 있습니다. 남녀가 유별하다는 건 일곱 살짜리 아이들도 깨치는 것인데, 어느 나라의 법도가 이리 무례하답니까?”

연서가 기가 막히다는 듯 물었다. 

남녀가 서로 조심하여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예의이거니와, 아무리 혼인 적령기가 지난 연서라도 그녀를 가볍게 대하는 것은 큰 무례였다. 심지어 밤중에 두 사람이 함께 걷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관기인 연서가 매우 곤란해질 참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안 됐지만 일단 화가 나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우성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뒷걸음질치는 우성을 보며 연서는 그가 확실히 이상하다는 것을 계속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더는 별말 없이 뒤돌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걸어 내려오자 눈앞에 길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한 번 혼이 난 우성은 그녀와의 간격을 유지하려 애쓰며 뒤를 따라갔다.

그러다가 손목을 묶고 있는 매듭이 눈에 들어왔다. 우성은 앞서 걷는 연서의 눈치를 살피며 군 생활 때 익힌 대로 매듭이 겹친 부분부터 손가락으로 조금씩 밀어냈다. 

잡아당기지 않고 안쪽에 틈을 만들자 손목을 조이던 넥타이가 서서히 느슨해졌다. 그는 빠져나온 넥타이를 대충 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내려가는 연서를 어떻게 불러야 하나 싶어 조심스레 그녀를 불렀다.

“저기...!”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표정은 단정했으나, 눈빛에는 참을성이 옅어지고 있었다.

“네, 말씀하시지요.”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무렇지 않게 선을 넘는 우성의 질문에 연서는 화조차 나지 않았다. 오히려 우성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녀가 아무런 말 없이 또다시 그를 빤히 쳐다보자 우성도 움찔한 표정으로 멈추어 섰다.

“이, 이런 것도 물으면 안 되는 거예요?”

연서는 움츠러든 듯한 우성이 불쌍하게 느껴져, 숨을 한 번 크게 쉬고는 대답했다.

“여인들의 본명은 사적인 것이니, 다음부터는 여인들의 이름을 묻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 또한 제 본명은 밝힐 수 없으나, 제 기명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설명이라고 들은 말조차 제대로 이해되지 않자, 우성은 자신이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연서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러자 연서가 망설임 끝에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저는 춘향이라 합니다.”

서늘한 봄바람이 연서의 기명을 싣고 우성에게 불어왔다. 그는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에 조금 놀랐다. 남원의 춘향이라니. 남원 사람들 중에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의 본가 근처만 해도 온통 춘향, 몽룡, 월매 같은 이름들로 가득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어머니 이름은 월매세요?”

그녀가 화들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꿈뻑거렸다. 우성은 그녀의 반응을 보더니 확신하며 말했다.

“맞나 보네... 그럼 내가 성춘향과 이몽룡의 시대로 온 건가? ...근데 그게 언제지? 하...”

그는 놀라 굳어 있는 연서를 아랑곳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그가 알기로는 춘향전은 각색되어 구전된 이야기일 뿐,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 버젓이 월매의 딸 춘향이 서 있으니, 우성은 더욱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는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았다. 지극히 현실적인 고통에 우성은 황급히 볼에서 손을 뗐다.

반면 연서는 자신의 기명을 듣자마자 어머니의 기명까지 맞힌 우성 때문에 한참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우성을 보며 진지하게 그가 산신이나 도깨비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볼을 꼬집는 우성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샌가 묶여 있던 손마저 스스로 풀었다는 걸 알아차린 연서는 그제야 두려운 마음과 함께 그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나리의 존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우성은 하던 생각을 멈추고 그녀에게 대답했다.

“아, 저는 견우성이에요.”

“...!!!...”

우성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칠석 무렵에나 찾는 견우별과 직녀별이 그녀의 눈에 보일 리 만무했다.

우성은 갑자기 하늘을 이리저리 보는 연서 때문에 자신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마터면 못 보고 지나갈 뻔한 그 아름다운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서울의 밤하늘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별들을 보며 우성은 감탄을 내뱉었다.

“와...”

당연하게도 견우별을 찾을 수 없던 연서는 우성에게로 눈을 돌려 그가 견우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점점 굳혀 가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왔다는 곳이 눈처럼 상서로운 풀이 돋는 나라(설서초)라는 사실을 상기한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밤하늘을 한참 동안 눈에 담는 우성의 모습이 마치 고향을 그리워하는 견우의 모습 같았다.

연서는 우성이 왜 조선의 법도와 예절을 잘 몰랐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행동과 말들이 신기함으로 다가왔다.

그때 타종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연서의 눈이 커지며 종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았다. 우성도 함께 그 낯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연서는 그런 우성에게 다급해진 말투로 말했다.

“이제 인정이니, 서둘러 가시지요. 이후에 돌아다니면 추포를 당합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뭔지는 몰라도 얼른 가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종소리가 계속되는 동안 두 사람은 말없이 길가를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마침내 익숙한 집들의 윤곽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낮은 담장과 초가지붕이 우성의 눈에 들어왔다.

연서는 집이 가까워질수록 걸음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옮겼다. 어머니나 어진에게 이 사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 담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집 안을 기웃거리며 누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종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집 안을 살펴보는 두 사람을 향해 어진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낯익은 목소리에 연서는 소름이 돋았다. 작은 초롱을 들고 서서 그녀를 노려보는 어진을 연서는 돌아보았다. 우성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조금 흥미로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 어진아...”

어진은 연서와 우성을 번갈아 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

“이러려고 오늘 오지 말라고 하신 거예요?”

연서는 바로 대답했다.

“그...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뭐예요?”

어진이 성큼 다가왔다. 그녀는 다시 우성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짧은 머리, 몸에 딱 붙는 야시시한 옷, 번들거리는 구두. 아무리 봐도 사람이 입을 법한 차림새가 아니었다.

노골적인 시선에 우성이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돌렸다. 연서는 어진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찾아오신 손님한테 이 무슨 무례한 행동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지자 어진은 더 큰 소리로 되물었다.

“손님이요? 어떤 손님이 이런 차림으로 이 시간에 아녀자들만 사는 집에 오시나요? 제 눈에는 이분이 무례하신 거 같은데요.”

“습! 목소리 낮춰.”

연서의 목소리가 단호해지자 어진도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막상 설명하려니 막막했는지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녀는 식은땀을 흘렸다. 대체 무슨 변명을 할 수 있냐는 듯 어진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연서는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취합해 가장 현실적이고 분석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분은 푸른빛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진 ‘견우’님이셔. 내가 직접 뒷산에서 목도했으니, 확실해.”

춘향전에 이어 이번엔 견우, 직녀인가. 우성이 미간을 찌푸린 채 끼어들었다.

“그... 견우가 아니라 견우성...”

하지만 어진은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며 연서에게 되물었다.

“네에...? 견우님이요?! 푸른빛...?”

우성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어진이 소리쳤다. 하지만 연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성을 다시 이리저리 훑은 어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더 수상하잖아요! 그리고 나의 견우님이 이렇게 생겼을 리 없어요.”

“저기... 저는 견우성...”

“너 자꾸 무례하게 굴래? 어찌 자꾸 이리 버릇없이 굴어.”

연서의 말에 어진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얼굴이었다.

이미 인정이 울린 뒤라 우성을 다시 길로 내보내면 추포당할 터였다. 그렇다고 그의 정체와 기이한 차림을 설명하지도 못한 채 관아로 데려갈 수도 없었다. 당장 금선의 눈을 피해 숨길 만한 곳은 자신의 방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 밤만이야.”

연서가 말했다. 어진이 입을 벌렸다.

“예...? 아니, 어쩌시려고... 어머니께서 아시면 기함하실 텐데요.”

“그러니 오늘 밤만 내 방에 숨겨 두고, 날 밝으면 보내드리자. 오늘 같은 날에 이분을 외면하면 천벌을 받을 거 같구나.”

어진의 입이 딱 벌어지며 되물었다.

“언니 방에요? 이분은 사내잖아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우성은 도저히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없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일단은 정식으로 허락을 맡고...”

연서와 어진이 동시에 그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소리를 낮추세요.”

“가만히 계세요.”

거의 동시에 나온 두 사람의 말에 우성은 다시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어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딱 하룻밤이에요.”

“알겠어.”

“...그리고 어머니께 들키면 언니가 다 책임지세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그래.”

연서의 대답은 짧고 확고했다. 우성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눈치를 보느라 두리번거렸다.

합의를 마친 세 사람은 발소리를 죽이며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처마 밑의 약재들이 밤바람에 흔들리며 바스락거렸다. 연서와 어진은 안방 창호지를 비집고 나오는 불빛을 향해 걸었다.

우성은 두 여자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갔지만, 집의 구조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낮은 처마, 툇마루의 높낮이, 문턱. 어디가 어디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주춧돌에 발이 걸려 우당탕 소리와 함께 넘어졌다.

“윽-!”

툇마루에 정강이를 거하게 부딪힌 우성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연서가 번개같이 돌아서서 손으로 우성의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급했던 탓에 남녀유별이고 뭐고 우성에게 몸을 포개며 그의 귀에 속삭였다.

“반드시 참으셔야 합니다...!”

우성의 몸이 고통으로 파르르 떨렸다. 곧 안방 쪽에서 금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서, 어진이 왔느냐?”

세 사람의 몸이 동시에 얼어붙었다. 연서와 어진은 우성을 굴리다시피하며 연서의 방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꽤 높은 문지방에 다시 부딪친 우성은 찍소리도 못 하고 방에 욱여넣어졌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옆의 안방 문이 열리며 금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서와 어진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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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성은 몸을 낮췄고, 금선과 어진이 등에 업힌 연서를 조심스럽게 받아 내렸다. 두 사람이 그녀의 몸을 받치는 사이 우성은 돌아서서 다시 연서를 안았다. 그녀를 요 위에 조심스레 엎어 눕히는 동안, 축 늘어진 팔다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연서의 방이 서늘한 것을 느낀 우성이 방바닥을 이리저리 만지며 말했다.“어진 씨는 이 방을 얼른 따뜻하게 해 주세요.”“네!”우성에게 업혀 오면서 체온이 다시 오르긴 했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평소보다 차가웠다. 우성의 말에 어진이 다급히 달려 나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금선은 우성이 어떻게 하려나 싶어 곁에 서 있었다. 우성은 연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금선이 그의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시키시면 제가 할 테니, 말씀으로 하시지요.”금선의 제지에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우성은 황급히 손을 뗐다. 금선은 조심스레 연서의 치마를 풀었다. 치마가 연서의 엉덩이 부근을 스치자, 연서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읏…”치마가 벗겨지고, 피로 엉겨붙은 속곳이 드러났다. 참혹한 광경에 우성과 금선은 아연실색했다. 검붉게 말라가는 것을 보니, 그냥 떼어냈다가는 살점까지 함께 뜯길 것이 뻔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우성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어진이 들어와 외쳤다.“아궁이에 불 지폈어요... 으아, 세상에...”그녀가 연서의 상처를 보며 탄식했다. 깊이 생각하던 우성이 금선에게 말했다.“물을 끓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 끓으면 미지근하게 식혀 주시고, 가장 깨끗한 무명천도 몇 장 준비해 주세요.”“상처를 씻으시려는 겁니까?”금선이 되물었다.“예. 붙은 옷부터 충분히 적셔서 떼어내야 합니다. 억지로 당기면 살이 함께 뜯길 수 있어요.”금선은 곧장 어진에게 말했다.“어진이 너는 얼른 물을 올리고, 깨끗한 무명천을 가져오너라.”“네!”어진이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우성은 연서의 방 안을 둘러보다가 침선용 가위를 발견하고 어진의 뒤를 향해 내밀었다.“이것도 끓는 물에

  • 봄 향기로 수놓다   1-11 공공연한 사사로움

    부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방 아전의 큰 외침이 들렸다.“기생 춘향에게 태 10도요!”뒤쪽에서 사령들과 나장들이 분주하게 형벌 기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서가 고개를 들어 부사에게 말했다.“나리, 소녀의 말을 들어주소서. 태형 10도는 부당한 처사이옵니다.”그녀의 목소리가 당당하게 울리자, 형방 아전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한낱 관기가 뱉은 무엄한 말에 분노하며 외쳤다.“어허! 어디 그런 망발을 하느냐!”하지만 성 부사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성 부사는 역시 연서에게 묘수가 있었던 것이라 여기며, 기대에 찬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어째서 그러하냐?”연서의 뒤에 서 있던 기생들이 다시 한 번 긴장하며 떨기 시작했다. 홍란도 식은땀을 흘리며 연서의 반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연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실로 뜻밖이었다.“국휼에 풍류를 즐기고, 사기로서 기생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며 오히려 교방의 질서를 흐트린 죄는 그리 작지 않습니다.”연서의 말에 대청의 모든 사람이 기막힌 표정으로 숨죽였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계속 말했다.“더욱이, 저의 죄가 인정되었음은 제가 거짓 증언을 했다는 뜻이 되오니, 태 50도는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그녀의 말은 지난겨울의 추위를 다시 불러온 듯 매섭게 사람들을 얼렸다. 태형 50대라니, 사람에 따라 죽을 수도 있는 형벌이었다.홍란과 그녀의 무리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하여 어안이 벙벙했다. 구경꾼들 역시 놀라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부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한 번만 봐 달라는 사람, 살려 달라는 사람, 억울하다는 사람만 평생을 봐 온 형방 아전 역시 할 말을 잃은 건 매한가지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성 부사의 마음은 조여 들었다.부사는 품었던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서의 강렬한 눈빛은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듯, 사사로운 마음에 흔들리는 안의를 정면으로 꾸짖고 있었다. 연서에 대한

  • 봄 향기로 수놓다   1-10 증거는 반드시 진실로 가는가? (1)

    조선에서의 두 번째 밥을 먹던 우성은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자박자박 다가오는 발소리와 마루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나리,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어진의 목소리에 우성이 음식을 빠르게 삼켰다.“네, 들어오세요.”어진이 방문을 열고 따스한 햇살과 함께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흰 무명 옷 한 벌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앉아서 우성에게 그 상복을 내밀었다. 우성은 젓가락을 상 위에 올려놓고 그 옷을 받아 들었다.“이건...”“이것은 언니의 부친께서 생전에 입으셨던 상복입니다. 일단은 이것을 입으시고, 차차 맞는 옷을 구해 보자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우성은 옷을 펼치지 못했다. 자신을 이곳에 붙잡아 두겠다는 금선의 의도가 선명했다. 망설이는 우성을 보고 어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러십니까?”우성이 어진을 바라보았다.“저는 조선 사람이 아니라 쉽게 섞이지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아까 어진 씨도 봤겠지만, 저는 조선의 예법이나... 규율, 생활 방식 이런 걸 전혀 알지 못해요. 모두가 수상하게 여길 거예요.”“그건 그렇죠. 솔직히 지금도 엄청 수상해 보이시는 건 사실이니까요.”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성은 애꿎은 옷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진은 그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다가 다시 말했다.“어쨌든, 어머니의 계획은 이래요. 나리께서... 이 집의 고공(雇工)으로 일해 주시는 거예요.”“...고공?”우성은 처음 듣는 말이라 어진에게 되물었다.“예... 그러니까... 이 집에 함께 기식하시면서 저희의 일손을 도와주시는 거지요.”“머슴 같은 걸 말하는 거예요?”어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머슴...이 뭐예요?”“아... 머슴은 지금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럼 노비?”“예에-? 노비라뇨, 큰 오해이십니다.”어진이 놀라 손사래까지 쳐 가며 부정했다. 우성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재차 물었다.“그러니까, 어머님이 저한테 일을 시키면 저는 그 일을 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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