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봄 향기로 수놓다 / 1-07 짜여 드는 빛처럼

Share

1-07 짜여 드는 빛처럼

Author: 쭈의잔상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9-02 19:54:00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온 등잔불이 마루에 길게 번졌다. 금선은 문지방을 손으로 짚은 채 연서와 어진을 번갈아 보았다. 숨이 약간 가쁜 두 사람의 얼굴은 희미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왔으면 왔다 하지, 왜 이리 큰 소리로 사람을 놀라게 하느냐.”

“죄송해요, 제가 딴 생각을 하다가 그만 넘어져서...”

연서가 대답할 틈 없이, 어진이 끼어들며 말했다. 금선이 혀를 쯧쯧 차더니 말했다.

“내 너희들 때문에 굶어 죽게 생겼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이제야 와서 밥도 안 하고 그리 서 있는지 원...”

“어, 얼른 차릴게요.”

금선의 투덜거림에 연서가 얼른 부엌으로 향하며 말했다. 어진도 후다닥 그녀의 뒤를 따랐다. 금선은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방문을 닫았다. 방문이 닫힌 걸 본 어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연서에게 말했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지금 관아에서 몫이 내릴 때까지 먹을 쌀이 정해져 있는데...”

“그렇다고 견우님을 굶길 수는 없지 않니? 내 식사를 가져다드릴 것이니 걱정 말거라.”

연서는 기다렸다는 듯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어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솥에 물을 부었다.

---

정강이를 거하게 찧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우성은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손전등을 켰다. 그는 다친 부위를 비추어 자세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하아... 부러진 줄 알았네...”

아픔이 서서히 사그라들 때 즈음, 그의 눈에 연서의 방 안이 조금씩 들어왔다. 흙과 나무 냄새가 어우러진 그녀의 공간은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잘 개어진 이불과 안쪽에 가지런히 정리된 길쌈 도구와 장신구들은 우성이 상상하던 ‘춘향’의 방과 제법 잘 어울렸다.

“진짜 조선 시대 같은 느낌이긴 하네...”

그는 핸드폰 화면을 켰다.

11월 6일(월)

10:11

시간은 대체로 맞는 듯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핸드폰은 어떤 신호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성은 닳아가는 배터리를 보며 걱정스레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손전등을 끄고 비행기 모드와 저전력 모드를 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갑작스레 피곤이 몰려와, 우성은 그대로 바닥에 몸을 뉘었다. 창호지에 배어 나오는 푸른 달빛을 물끄러미 보던 우성은 차근차근 방금 전의 일들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우성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다친 척하던 흰 고양이를 따라가 이상한 기계를 발견하고, 그 고양이가 기계를 작동시킨 순간까지였다. 그 이후로 ‘춘향’과 만나게 되었고, 주위의 수많은 증거들이 여기가 실제로 조선이라 증언하고 있었다.

‘진짜 타임머신 같은 건가? ... 근데 그런 게 왜 우리 집 뒷마당에 있지...? 그 고양이는 또 뭐고...’

우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팔을 들어 이마에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진짜 뭐지...”

---

안방 문을 연 어진은 방 안으로 작은 상을 들였다. 등잔불 아래 놓인 소반 위에는 흰 밥과 맑은 국, 나물 몇 가지가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그 뒤로 연서가 소반 하나를 더 들고 들어와 내려놓았다. 금선은 평소보다 소반이 하나 모자란 것을 눈치채고 두 사람에게 물었다.

“왜 이것뿐이냐?”

어진과 연서의 눈이 마주쳤다. 연서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저는... 오늘 입맛이 없습니다.”

“입맛이 없다고?”

금선이 조금 화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오늘은 평소보다 고단해서 일찍 잠을 청하려고요.”

“너 하나 기다리겠다고 이 늦은 시간까지 시장함을 참았건만, 이제 와서 또 안 먹겠다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구나.”

연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의 귀가가 늦어짐은 간혹 있는 일인데, 어찌 이리 화를 내시는지...”

금선은 더욱 기가 막힌 듯 목소리를 높였다.

“밥 또한 간혹 먹으니까 그러는 게 아니냐? ...네가 이리 먹고 싶을 때만 먹으니, 가뜩이나 살도 한 점 안 붙는 네가... 기생질 관두고 관아 허드렛일이나 하려고 그러는 것이냐? 쯧쯧... 세상에, 못나게 태어났으면 노력이라도 해야지 저리 철이 없어서야...”

생각지 못한 인신공격에 연서는 어이없는 숨을 짧게 뱉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에도 끄떡없어 보였던 연서였지만, 어머니의 말은 달랐다.

등잔빛이 긴장한 듯 파르르 떨렸다. 어진은 갑작스러운 전개에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연서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그런 소리는 바깥에서 지겹도록 들어요.”

금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너는 덜 들었다. 굶겠다는 소리가 아직도 나오는 걸 보니.”

연서는 떨리는 숨을 가까스로 삼켰다. 그러나 목소리는 이미 젖어 있었다.

“다른 이들이야 그렇다 쳐도... 어떻게 어머니까지 그러실 수 있으세요...”

말끝이 무너졌다. 참고 있던 눈물이 한 줄기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진은 입을 벌린 채 연서를 바라보았다. 연서가 우는 모습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아는 금선도 그제야 잠깐 입을 다물었다.

“...아니, 울기는 왜 우냐? ...내 말이 틀리냐?”

그 말에 연서는 입술을 깨문 채 손등으로 눈가를 한 번 닦고는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어 낮게 말했다.

“...평안히 주무세요.”

그녀는 뒤돌아 방을 나갔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애처롭게 흔들리며 문밖으로 사라졌다.

방 안에 남은 정적은 어진에게 너무나 무거웠다. 그녀는 금선과 방문 쪽을 번갈아 보다가, 일부러 한숨을 크게 쉬며 중얼거렸다.

“하아... 설거지 혼자 하게 생겼네...”

"..."

방을 나온 연서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불씨가 빨갛게 남아 그녀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문턱을 넘자마자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흐윽...”

짧고 눌린 울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눈물이 자꾸만 떨어졌다. 무릎에 이마를 묻은 채 그녀는 한동안 울음을 삼켰다.

---

우성이 쓰러져 있던 자리엔 이리저리 꺾여 버린 풀과 흐트러진 흙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위쪽에는 나무 그림자에 가려진 기계가 비스듬히 누운 채로 버려져 있었다.

잠시 후, 풀숲에서 흰 고양이가 뛰쳐나오며 기계 앞에 섰다. 그리고 뒤이어 청바지에 흰 맨투맨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젊은 남자가 고양이의 뒤를 따라 걸어왔다. 사내는 기계 가까이 다가오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이야, 하하... 다 넘어졌네.”

그는 허리를 굽혀 기계 몸체를 붙잡고 힘주어 일으켰다. 사내는 손바닥으로 표면의 흙먼지를 대충 털고, 옆면 패널을 열어 자세히 훑어보았다. 흰 고양이가 그의 발치로 와서 함께 기계를 살폈다. 갑자기 사내의 워치에서 음성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외관만 경미하게 손상됐네. 작동 가능 상태인 듯.”

사내가 피식 웃었다.

“그 말투 좀 어떻게 안 돼? 아무리 고양이형 모델이라지만 너무 싹퉁바가지 없는데.”

“...주인 닮아서 그럼.”

고양이가 사내의 눈을 또렷하게 바라보자 사내의 손목에서 다시 음성이 나왔다.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잠깐만... 진짜로 바꿀 수는 없는 건가? 예쁜 여자 목소리라든지, 섹시한 목소리라든지 그런 걸로.”

“뭐... 가능은 하지.”

“오.”

사내가 짧게 탄성했다.

“하지만 그럴 거면 애초에 여성형 시계로 사지 왜 나를 삼?”

고양이의 말에 사내는 패널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거 사 갖고 다니면 소문나서 결혼도 못한다고.”

“그냥 돈 없어서 그런 거 아님?”

“...알면 좀 조용히 해.”

흰 고양이는 꼬리만 한 번 흔들었다. 사내는 기계의 버튼을 차례로 눌러 전원을 켰다. 기계의 디스플레이에 중국어로 된 회사명이 나오며 시동이 걸렸다.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사내는 기계 앞부분의 박스를 열었다.

“잘 되네!”

“중국산치곤 튼튼한 듯.”

사내는 고양이의 말을 들었는지 피식 웃더니 박스 안쪽을 뒤져 작은 종이 책자를 꺼냈다. 그는 그것을 흰 고양이 앞에 내려놓았다. 고양이는 즉시 앞발을 사용해 읽기 시작했다.

사내는 고양이의 독서가 끝나길 기다리며 기계에 기대 섰다. 조선 시대의 야산 풍경을 감상하던 그에게 고양이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시역공업(時域工業)이 설계, 제작한 TD-7 모델의 설명서야. 해석이나 분석이 필요한 거야?”

“한국어로 해석해서 내가 읽을 수 있게 해주고, 1600년대 조선 사람이 해독할 수 있는 한자어로 번역해서 나한테 보내주고.”

“문서 형태로 방금 네 디바이스에 전송됐어.”

사내는 고양이를 한 번 쓰다듬고는 설명서를 다시 들어 잘 보이는 곳에 끼워 놓았다.

“어때, 이 정도면 보겠지? ... 이제 집에 가자.”

사내의 말에 고양이의 눈이 푸른색으로 빛나며 순식간에 그를 데리고 사라졌다.

---

방문이 아주 조금 열리고, 작은 불빛과 함께 연서가 들어왔다. 밥과 국, 반찬, 그리고 작은 그릇에 담은 불씨를 소반에 받쳐 든 채 조심스레 문턱을 넘었다. 먼저 불씨를 등잔에 옮겨 불을 붙이고, 잠든 우성을 피해 걸어가 문을 닫았다.

“...볼 때마다 누워 계시네...”

또다시 대자로 누워 있는 우성을 보며 연서가 중얼거렸다. 작은 불꽃이 심지 끝에 살아나며 방 안에 노란빛이 번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음식 냄새에 우성이 부스스 눈을 떴다. 그는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가, 연서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자세를 고쳤다.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연서는 짧게 대답했다.

“식사부터 드시지요.”

우성이 상 위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나무 상 위에 못생긴 사기 그릇에 밥과 국, 자잘한 반찬이 담겨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은 놋수저를 보고 우성이 말했다.

“춘향 씨는 안 드세요?”

연서는 아주 옅게 웃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시장하실 텐데 어서 드시지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어제부로 국휼이 선포되어, 고기는 대접하기가 어렵습니다.”

“...구큐리요?”

연서가 차분히 설명했다.

“음... 대왕께서 승하하셨습니다. 온 나라가 상중이니, 먹는 것 역시 조심하는 중입니다.”

우성은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조금은 흥분한 목소리로 연서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왕 이름이 뭐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연서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 그런 불충한 질문은 함부로 하시면 큰일 납니다.”

“예...?”

“이 나라의 아버지를 모욕하는 질문입니다. 절대, 절대 그런 것은 물으시면 안 됩니다.”

태정태세문단세부터 속으로 생각하던 우성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이 외운 것은 묘호일 뿐 왕의 이름이 아니었으므로, 괜한 질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우성을 본 연서는 그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고는 소반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서 드시지요, 음식이 식습니다.”

“아, 네...”

그가 밥을 뜨려 숟가락을 들었다. 등잔불에 눈이 서서히 익어가자, 흐릿하던 사물들의 윤곽도 조금씩 또렷해졌다. 그는 한 숟갈을 푹 떠 놓고, 젓가락을 들어 나물을 그 위에 올렸다.

혼자만 먹는 것이 아무래도 무안한지 연서의 눈치를 한 번 더 보던 우성은 그녀의 눈가에 희미하게 남은 눈물 자국을 발견했다. 놀란 그는 먹으려던 것도 잊고 연서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 왜 같이 식사를 안 하세요?”

“아... 아무 일도 아닙니다. 별일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하지만 우성이 여전히 자신의 눈가를 빤히 살피자, 무안해진 연서는 슬쩍 화제를 돌렸다.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네, 그럼요.”

연서는 망설였다. 그러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직녀님하고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우성의 얼굴이 멍해졌다.

“네? ... 아니, 저는 견우가 아니라 견 우성이라니까요. 견우직녀 이야기의 견우가 아니에요.”

하지만 연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혹시 발설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하늘에서 온 사람들은 신분을 밝히기를 꺼린다고 익히 들었습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하...”

우성은 이 상황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보아하니 이 여자는 진심으로 자기를 견우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설명하면 할수록 더 꼬일 것 같고, 안 하자니 더 답답했다.

결국 우성은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큰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연서를 보자, 막상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망설이던 우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하늘이 아니라... 미래에서 왔어요.”

“미...래...?”

연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우성은 그녀의 반응을 가늠할 수 없어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등잔불이 치직거리며 가느다란 연기를 피워 올렸다.

“그러니까, 음... ‘춘향’ 씨가 만약 저라면, 여기 조선 시대에서 우연히 고려 시대로 가게 되는 거죠.”

연서는 더더욱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적이 한동안 이어졌다. 생각을 거듭하던 연서가 조금은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시간은 어제에서 내일로 흐르는 법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견우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다면 그리 말씀하시고, 더는 저를 놀리지 마십시오.”

“아니, 진짜예요. 놀리는 게 아니라, 저는 조선 시대 이후의 사람이라고요.”

우성은 여전히 믿지 못하는 연서의 표정에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한층 다급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까 그... 승하하신 대왕이 누구신지 물었던 것도 그 때문이에요. 어느 시대로 왔는지 알아보려고요.”

연서는 우성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가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던 이유도 어렴풋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믿을 수는 없었다. 연서는 그를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한 번 대답해 보시지요. 승하하신 대행대왕께서는 하성군이셨고, 명종대왕의 뒤를 이으신 분이십니다. 현재 어좌는 비어 있으니, 어느 분께서 대통을 이으시겠습니까?”

연서의 질문은 우성에게 그 어떤 역사 시험보다 어려웠다. 긴장한 우성은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왕은 명종 다음 왕이고, 그 왕은 죽었다. 그렇다면 그다음 왕은 누구인가? 역대 왕의 순서를 속으로 몇 차례 되짚던 우성이 말했다.

“...광해군?”

“...”

연서는 대답 대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조선의 법도조차 모르는 이의 입에서 광해세자의 옛 군호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자가 용상에 오를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기에, 이것만으로는 그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한편 우성은 자신이 외운 왕의 순서가 맞아떨어진 듯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연서의 눈치를 살피며 합격 여부를 조용히 기다렸다. 그런 우성을 보던 연서는 답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아... 그래도 믿기 힘듭니다.”

“예? ... 아니 왜요?”

우성이 억울하다는 듯 되물었다. 연서는 다시 우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곧 광해세자가 즉위할 것이라는 사실은 장터에 가서 반 시진만 앉아 있어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쩔 수가 없다.”

"...?"

우성은 찝찝한 마음으로 손을 품속에서 넣으며 중얼거렸다. 핸드폰을 보여주는 일이 이 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달리 자신을 증명할 방법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핸드폰의 환한 불빛에 연서가 눈을 찌푸렸다.

“그것은 대체...”

우성은 마치 어사가 마패를 내보이듯 핸드폰 화면을 연서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 미래의 빛이 들었다.

Patuloy na basahin ang aklat na ito nang libre
I-scan ang code upang i-download ang App

Pinakabagong kabanata

  • 봄 향기로 수놓다   1-15 치부인가, 환부인가?

    연서의 엉덩이 상처는 말라붙은 피와 진물로 엉겨 딱지처럼 굳어 있었다. 멍 자국은 더욱 크게 퍼져 있었고, 터진 자국마다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금선이 미지근하게 식힌 물에 깨끗한 무명천을 적셔 환부의 가장자리부터 아주 살살 닦아냈다.“읏...”연서가 이를 악물며 신음했다. 금선은 한동안 상처를 닦다가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거냐.”연서는 말이 없었다. 언젠가는 답해야 한다는 걸 그녀도 알고는 있었지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 일과 함께 떠오르는 감정들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금선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무거운 침묵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그녀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별일은 아닙니다.”금선이 손을 멈추고 연서를 째려보았다. 연서는 그런 금선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별일이 아닌데 태형을 30대씩이나 때리냐? ... 누굴 두들겨 패기라도 한 거냐?”금선의 격노에 연서가 마지못해 대답하기 시작했다.“어머니, 혹시 칠복 아재 딸 기억나세요? ... 홍이라고.”금선이 다시 그녀의 상처를 닦으며 대답했다.“...홍이를 때렸어?”“때리다뇨... 걔가 요새 그리 저를 괴롭혀요. 특히 제가 사기가 된 후로 더 심해졌어요.”연서의 말에 금선이 말했다.“걔가 엄마 없이 자라서 이상한 열등감이 있나 보다.”“얼굴도 예쁜데 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무튼, 걔가 저한테 어저께 공개적으로 시를 쓰더라고요. 아름다운 수를 삼베에 놓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저를 모욕하며 비웃었어요.”금선이 한숨을 쉬었다.“그래서... 때렸니?”“아이 참, 안 때렸다니까요! ... 아무튼 그래서 저도 화답을 해 주었지요. 꽃 주제에 누에인 나를 비웃느냐고 해 주었어요.”금선이 피식 웃었다.“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스스로 비단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다니... 너는 부끄럼도 없냐?”“......어머니는 누구 편이신 거예요? ...자꾸 말이나 끊고...”금선의 말에 연서가 열받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말에 금선은

  • 봄 향기로 수놓다   1-14 고장 난 나룻배

    아침 일과를 마친 마당에는 볕이 들어 밝고 따뜻했다.“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마루에 앉아 여느 때처럼 약초를 다듬는 금선과 어진을 향해 우성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사내의 깍듯한 인사에 여전히 어색한 듯, 두 사람은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금선은 우성의 발치께를 눈으로 슬쩍 보며 대답했다.“조심히 가세요. 급하게 가시다 그르치실라.”“...네, 알겠습니다.”괜히 잔소리 한마디 더 얹는 금선에게 우성이 착하게 대답했다. 옆에서 어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조금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꼭 가셔야 돼요? ... 아직 언니도 아프고, 나리가 어제 물도 다 써서 물도 없는데...”“...”우성이 그녀의 시선을 살짝 회피했다. 그 모습을 보던 금선이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가는 발걸음에 우는 소리 말어라... 사내들 떠날 때마다 울어대니 나라가 이렇게 된 거 아니냐.”“치...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이리 쉽게 가 버립니까, 그래.”어진이 미련을 잔뜩 쏟아냈다. 우성은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워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연서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천근같은 몸을 일으킨 연서는 겨우 문틀을 잡고 서서 우성을 보았다. 모두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 움직이면 안 되는 몸이었다. 우성이 급하게 그녀 쪽으로 돌아섰고, 어진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언니...!”연서는 걱정스러운 그녀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성을 바라보았다. 잠깐 우성과 눈을 맞추던 연서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부디 건강하세요.”짧고 단정했다.우성은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어느새 그의 눈가도 촉촉해져 있었다. 우성이 주먹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파이팅.”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집 밖으로 향했다. 어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렁한 눈으로 금선에게 물었다.“방금 뭐라신 거예요? 파잇딩?”“...”하지만 금선이 그 말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연서와 그만의

  • 봄 향기로 수놓다   1-13 하늘과 땅의 차이 (1)

    파루를 알리는 종소리가 새벽을 깨우며 울려왔다. 관아에서 시작되는 둔중한 울림은 차가운 거리를 지나 연서의 방에까지 닿았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우성은 선뜻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지만 연서의 상태가 걱정되어 벌떡 일어났다.계속 엎드려 있는 게 힘들었는지, 연서는 몸을 조금 옆으로 돌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는 연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 다행히 어제의 열은 떨어져 있었다.그녀의 얼굴도 약간의 눈물자국을 빼고는 꽤 평온해 보였다. 밤새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던 우성은 안도감에 하품이 나왔다. 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문을 열자 곧바로 찬 기운이 그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우성은 앉아서 짚신을 신다가 발이 욱신거리자 버선을 벗어 보았다. 발은 붓고 물집까지 잡혀 있었다. 처음 신어 본 짚신으로 연서를 업고 달리기까지 했으니, 버티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우성은 고통을 참으며 다시 짚신을 신었다.우성이 부엌 쪽으로 다가가자, 안쪽에서는 이미 작은 불빛과 함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진이 평소처럼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나리? 뭐가 필요하시면 부르시지, 왜 직접 나오셨어요?”“... 춘향 씨 먹을 걸 좀 만들려고요.”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우성은 그대로 부엌 안으로 들어섰다. 어진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앞을 막았다.“아니, 아니요. 부엌은 사내가 들어오는 곳이 아니래두요! 어제도 말씀드렸잖아요. 언니 밥은 제가 차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가세요.”우성은 자신을 막아선 어진의 손을 슬쩍 피해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따라붙은 어진이 그의 옷자락을 붙들며 소리쳤다.“아니 이렇게 막무가내로...!”“춘향 씨가 지금 제대로 먹어야 해서 그래요... 어제 저녁 차려 온 거 보니까 풀데기밖에 없더만, 그래서 낫겠어요?”우성은 그녀와 실랑이할 생각이 없다는 듯 부엌 안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흐음... 피를 많이 흘려서 철분이랑 단백질이 필요한데... 계란이나 고기 같은 건 없어요?”“예? ...고

  • 봄 향기로 수놓다   1-12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은

    우성은 몸을 낮췄고, 금선과 어진이 등에 업힌 연서를 조심스럽게 받아 내렸다. 두 사람이 그녀의 몸을 받치는 사이 우성은 돌아서서 다시 연서를 안았다. 그녀를 요 위에 조심스레 엎어 눕히는 동안, 축 늘어진 팔다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연서의 방이 서늘한 것을 느낀 우성이 방바닥을 이리저리 만지며 말했다.“어진 씨는 이 방을 얼른 따뜻하게 해 주세요.”“네!”우성에게 업혀 오면서 체온이 다시 오르긴 했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평소보다 차가웠다. 우성의 말에 어진이 다급히 달려 나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금선은 우성이 어떻게 하려나 싶어 곁에 서 있었다. 우성은 연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금선이 그의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시키시면 제가 할 테니, 말씀으로 하시지요.”금선의 제지에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우성은 황급히 손을 뗐다. 금선은 조심스레 연서의 치마를 풀었다. 치마가 연서의 엉덩이 부근을 스치자, 연서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읏…”치마가 벗겨지고, 피로 엉겨붙은 속곳이 드러났다. 참혹한 광경에 우성과 금선은 아연실색했다. 검붉게 말라가는 것을 보니, 그냥 떼어냈다가는 살점까지 함께 뜯길 것이 뻔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우성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어진이 들어와 외쳤다.“아궁이에 불 지폈어요... 으아, 세상에...”그녀가 연서의 상처를 보며 탄식했다. 깊이 생각하던 우성이 금선에게 말했다.“물을 끓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 끓으면 미지근하게 식혀 주시고, 가장 깨끗한 무명천도 몇 장 준비해 주세요.”“상처를 씻으시려는 겁니까?”금선이 되물었다.“예. 붙은 옷부터 충분히 적셔서 떼어내야 합니다. 억지로 당기면 살이 함께 뜯길 수 있어요.”금선은 곧장 어진에게 말했다.“어진이 너는 얼른 물을 올리고, 깨끗한 무명천을 가져오너라.”“네!”어진이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우성은 연서의 방 안을 둘러보다가 침선용 가위를 발견하고 어진의 뒤를 향해 내밀었다.“이것도 끓는 물에

  • 봄 향기로 수놓다   1-11 공공연한 사사로움

    부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방 아전의 큰 외침이 들렸다.“기생 춘향에게 태 10도요!”뒤쪽에서 사령들과 나장들이 분주하게 형벌 기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서가 고개를 들어 부사에게 말했다.“나리, 소녀의 말을 들어주소서. 태형 10도는 부당한 처사이옵니다.”그녀의 목소리가 당당하게 울리자, 형방 아전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한낱 관기가 뱉은 무엄한 말에 분노하며 외쳤다.“어허! 어디 그런 망발을 하느냐!”하지만 성 부사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성 부사는 역시 연서에게 묘수가 있었던 것이라 여기며, 기대에 찬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어째서 그러하냐?”연서의 뒤에 서 있던 기생들이 다시 한 번 긴장하며 떨기 시작했다. 홍란도 식은땀을 흘리며 연서의 반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연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실로 뜻밖이었다.“국휼에 풍류를 즐기고, 사기로서 기생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며 오히려 교방의 질서를 흐트린 죄는 그리 작지 않습니다.”연서의 말에 대청의 모든 사람이 기막힌 표정으로 숨죽였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계속 말했다.“더욱이, 저의 죄가 인정되었음은 제가 거짓 증언을 했다는 뜻이 되오니, 태 50도는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그녀의 말은 지난겨울의 추위를 다시 불러온 듯 매섭게 사람들을 얼렸다. 태형 50대라니, 사람에 따라 죽을 수도 있는 형벌이었다.홍란과 그녀의 무리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하여 어안이 벙벙했다. 구경꾼들 역시 놀라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부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한 번만 봐 달라는 사람, 살려 달라는 사람, 억울하다는 사람만 평생을 봐 온 형방 아전 역시 할 말을 잃은 건 매한가지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성 부사의 마음은 조여 들었다.부사는 품었던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서의 강렬한 눈빛은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듯, 사사로운 마음에 흔들리는 안의를 정면으로 꾸짖고 있었다. 연서에 대한

  • 봄 향기로 수놓다   1-10 증거는 반드시 진실로 가는가? (1)

    조선에서의 두 번째 밥을 먹던 우성은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자박자박 다가오는 발소리와 마루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나리,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어진의 목소리에 우성이 음식을 빠르게 삼켰다.“네, 들어오세요.”어진이 방문을 열고 따스한 햇살과 함께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흰 무명 옷 한 벌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앉아서 우성에게 그 상복을 내밀었다. 우성은 젓가락을 상 위에 올려놓고 그 옷을 받아 들었다.“이건...”“이것은 언니의 부친께서 생전에 입으셨던 상복입니다. 일단은 이것을 입으시고, 차차 맞는 옷을 구해 보자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우성은 옷을 펼치지 못했다. 자신을 이곳에 붙잡아 두겠다는 금선의 의도가 선명했다. 망설이는 우성을 보고 어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러십니까?”우성이 어진을 바라보았다.“저는 조선 사람이 아니라 쉽게 섞이지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아까 어진 씨도 봤겠지만, 저는 조선의 예법이나... 규율, 생활 방식 이런 걸 전혀 알지 못해요. 모두가 수상하게 여길 거예요.”“그건 그렇죠. 솔직히 지금도 엄청 수상해 보이시는 건 사실이니까요.”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성은 애꿎은 옷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진은 그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다가 다시 말했다.“어쨌든, 어머니의 계획은 이래요. 나리께서... 이 집의 고공(雇工)으로 일해 주시는 거예요.”“...고공?”우성은 처음 듣는 말이라 어진에게 되물었다.“예... 그러니까... 이 집에 함께 기식하시면서 저희의 일손을 도와주시는 거지요.”“머슴 같은 걸 말하는 거예요?”어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머슴...이 뭐예요?”“아... 머슴은 지금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럼 노비?”“예에-? 노비라뇨, 큰 오해이십니다.”어진이 놀라 손사래까지 쳐 가며 부정했다. 우성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재차 물었다.“그러니까, 어머님이 저한테 일을 시키면 저는 그 일을 하고, 그

Higit pang Kabanata
Galugarin at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Libreng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sa GoodNovel app. I-download ang mga librong gusto mo at basahin kahit saan at anumang oras.
Libreng basahin ang mga aklat sa app
I-scan ang code para mabasa s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