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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조선에 떨어진 별

Author: 쭈의잔상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8-26 07:23:13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린 우성의 눈앞에는 낯선 여인의 얼굴이 있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도 큼직한 눈과 곧은 콧날이 유난히 선명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흰 한복을 입은 여인은 몸을 조금 뒤로 물렸다.

“정신이 드십니까?”

그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우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머리가 깨질 듯 욱신거렸다. 그는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낯선 산기슭, 바닥에서 희미하게 이는 흙냄새와 마른 풀 냄새, 검은 밤하늘.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보이는 낮은 초가지붕의 윤곽. 우성의 미간이 좁혀졌다.

우성은 팔꿈치로 땅을 짚고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고개가 조금 들리자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그는 곧바로 다시 몸을 눕히고 숨을 골랐다.

“어... 어떻게 된 거죠?”

그가 낮게 중얼거리며 묻자 여인이 조금 더 몸을 기울였다. 어색한 그의 말투와 행동 때문에 그녀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깃들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 먼저 말씀해 주시지요.”

우성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정신을 잃기 직전의 기억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흰 고양이, 낯선 기계, 사방으로 번지던 푸른빛. 우성은 다급히 주위를 훑었지만 기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계...! 혹시 여기 있던 기계는 어떻게 됐어요?”

여인은 그가 쓰러져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흙이 동그랗게 눌리고, 마른 풀은 한 방향으로 드러누워 있었다.

“기계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왔을 때는 나리 한 분뿐이었습니다.”

“파란빛은요? 여기서 빛이 났을 텐데.”

연서의 눈매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보았습니다. 산기슭이 한순간 대낮처럼 밝아졌습니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나리께서 쓰러져 계셨고요.”

그 말에 우성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만 본 환각이라고 넘길 수도 없게 되었다. 누군가 꾸민 일이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이 산속까지 끌고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보다 제 질문에 먼저 답해 주시지요.”

말뜻은 알아들었지만 말의 결이 묘했다. 사투리인가. 머리를 다친 탓인가. 그제야 우성은 손끝의 감각이 둔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두 손목이 묶여 있었다.

우성은 손목을 비틀어 보았다. 검은 천으로 묶인 매듭은 허술해 보이면서도 움직일수록 더 조여드는 것 같았다. 여인은 그의 손이 닿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둔 채 앉아 있었다. 쓰러진 사람을 도우러 왔다는 말과 조금도 방심하지 않는 자세가 묘하게 어긋났다.

“...제 손을 묶어 놓으신 거예요?”

연서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또렷이 대답했다.

“수상한 차림으로 쓰러져 계셨으니, 여인의 몸으로 돕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성은 입술을 다물었다. 한복 차림으로 사람의 손을 묶어 놓은 쪽이 오히려 더 수상하지 않은가. 사극 영상이라도 찍는 유튜버인가 싶었지만, 주변 어디에도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주변을 다시, 조금 더 느리게 훑어보았다.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집들은 하나같이 낮은 지붕을 이고 있었고, 그 사이에는 가로등도, 전깃줄도 없었다. 집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마저 전등이라기보다는 흔들리는 불꽃에 가까웠다.

촬영 세트라고 하기엔 너무 넓었고, 그렇다고 실제 마을이라 보기엔 익숙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바람을 타고 희미한 연기 냄새가 밀려왔다.

그가 말없이 연서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자, 연서가 다시금 그를 재촉하며 말했다.

“어서 말씀해 주시지요. 나리께서는 어디서 오신 누구십니까?”

“...저는 서울 서초에서 왔어요. 음... 그리고... 저는 수의사예요.”

“수의사...요?”

“네, 수의사. 강아지 고양이 고치는...”

연서는 잠깐 그 말을 곱씹었다. 사람을 고치는 의원은 보았어도 짐승을 따로 고친다는 말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설... 서초라는 곳은 그럼 어디입니까?”

그녀가 그 말을 입안에서 굴리듯 되짚으며 물었다. 처음 듣는 나라 이름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사람의 대화가 다시 끊기자, 그 사이로 더욱 차가워진 바람이 휭 지나갔다. 연서는 우성의 눈을 계속 살피며 다시 물었다.

“설서초라 함은, 명국입니까? ...나리는 명국인이십니까?”

“네...? 영국이요...?”

전혀 알아듣지 못한 우성은 대답할 수가 없어 다시 되물었다. 연서가 답답한 듯 발음을 더욱 또박또박하며 그에게 말했다.

“대국(大國)에서 오셨느냐, 이 말씀입니다. 설서초라는 곳은 처음 들으니 말입니다.”

‘대국’이라는 말이 낯설어, 우성은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혹시 장난이 아닐까도 의심했지만, 연서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그녀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다시 물었다.

“...얼른 대답해 주시지요. 이보다 밤이 더 깊어지면 범이 나옵니다.”

우성이 벌떡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범...? 범이요? ...호랑이요?”

“어휴, 드디어 통하는 말이 나왔습니다... 네, 여기에 계속 머물다가는 호랑이 밥이 되기 십상이니, 우선은 내려가시지요.”

연서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우성은 ‘호랑이’라는 말에 굳은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한복, 사극에서나 들을 법한 말투, 호랑이. 꿈인가 싶어 고개를 흔들자 두통만 더 선명해졌다.

“일단 대답은 했으니 제 질문에도 답해 주셔야죠. 여기가 도대체 어디예요?”

그의 질문에 연서는 물끄러미 우성을 바라보았다. 그 질문이야말로 수상하다는 듯, 또는 당연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곳은 조선 남원골입니다.”

---

한참이 지나도 우성이 집으로 들어오지 않자, 예성은 현관문을 열었다. 바람이나 쐬고 들어오겠거니 했지만, 차 안에서 나눈 대화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차도 아까 주차한 그대로였다. 예성은 운전석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안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오빠? ...오빠!”

마당과 집 뒤편을 돌아보아도 대답은 없었다. 지친 우성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본가 가까이 강이 있다는 사실까지 떠오르자, 예성은 장독대 뒤와 창고, 대문 바깥의 어두운 길을 다급히 뒤졌다.

대문을 나선 예성은 강 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향해 몇 걸음이나 내달렸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어느 쪽으로 갔는지 짐작할 만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름을 몇 번 더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차에 함께 있던 사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그제야 밀려왔다.

설마.

예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정신과에 가 보라고 했던 말, 소연 때문에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던 말, 자기를 노려보며 “그렇게까지 말하지 마”라고 하던 우성의 목소리. 그 뒤의 무거운 침묵까지 떠올랐다.

“미쳤나 봐... 어떡하지...”

예성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녀의 손끝이 급하게 움직였다. 통화 목록에서 우성의 이름을 찾아 눌렀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하아... 왜 안 받아...”

예성은 입술을 깨물며 휴대전화를 귀에 더 바짝 붙였다.

그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누구 찾아요?”

목소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예성은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황급히 몸을 돌렸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도, 차가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야상 재킷을 입은 낯선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그녀가 뒷걸음질하자 남자는 두 손을 들어 보인 뒤,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처럼 보이는 것을 꺼내 펼쳤다.

“형사입니다.”

“형사...요?”

“네. 제가 찾는 사람하고 그쪽이 찾는 사람이 같은 것 같은데요.”

예성은 펼쳐진 신분증과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견우성 씨 찾는 거 아니에요?”

갑자기 튀어나온 오빠의 이름에 예성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잠깐의 고민 끝에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아... 제 오빠가 없어져서요...”

‘없어졌다’는 말을 입 밖에 내고 나니 예성의 입술이 떨렸다. 상태는 얼떨떨해 보이는 그녀를 달래지도, 더 캐묻지도 않았다. 그저 집 뒤편과 그녀가 서 있는 곳 주위를 번갈아 살폈다. 마치 답을 듣기 전부터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알고 있던 사람 같았다.

바로 그때 집 뒤편에서 또 다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팀장님! 잠깐 여기 와서 좀 봐 주세요.”

상태는 그를 따라 걸어가 동그랗게 눌린 풀과 흐트러진 흙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바닥으로 땅을 꾹 눌러 본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네.”

“네. 중국 모델에서 발생하는 인헤일(Inhale) 현상이 확실합니다.”

남자의 설명에 상태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나도 알아, 임마.”

“아, 넵...”

예성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상태가 다시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뭐... 견우성 씨는 제가 찾겠습니다.”

“...찾겠다고요? 그럼 저희 오빠가 없어진 게 맞아요?”

“오빠가 없어졌다고 하신 건 예성 씨 아닌가요? 찾아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예성이 더욱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형사님은 어떻게 저희 이름을 벌써 다 알고 계신 거예요? 아니, 애초에 어떻게 알고 오신 거죠?”

상태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실종 가능성 신고가 들어올 만한 상황으로 판단돼 먼저 확인하러 왔습니다. 단서가 생기거나 견우성 씨가 직접 나타나면 여기로 연락해 주세요.”

그가 안주머니에서 명함 크기의 얇은 금속 같은 판을 꺼내 내밀었다. 예성이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런데 나타나면 왜 연락해요? 나타나면 찾은 거잖아요.”

“...알려 줘야 그만 찾죠.”

상태는 반드시 찾아낼 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팀원에게 돌아섰다. 예성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에 쥔 명함으로 시선을 내렸다.

종이도 플라스틱도 아닌 얇고 투명한 판 위로 희미한 빛이 번졌다.

[시간관리국 황상태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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