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아침 일과를 마친 마당에는 볕이 들어 밝고 따뜻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마루에 앉아 여느 때처럼 약초를 다듬는 금선과 어진을 향해 우성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사내의 깍듯한 인사에 여전히 어색한 듯, 두 사람은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금선은 우성의 발치께를 눈으로 슬쩍 보며 대답했다.
“조심히 가세요. 급하게 가시다 그르치실라.”
“...네, 알겠습니다.”괜히 잔소리 한마디 더 얹는 금선에게 우성이 착하게 대답했다. 옆에서 어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조금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
“꼭 가셔야 돼요? ... 아직 언니도 아프고, 나리가 어제 물도 다 써서 물도 없는데...”
“...”우성이 그녀의 시선을 살짝 회피했다. 그 모습을 보던 금선이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가는 발걸음에 우는 소리 말어라... 사내들 떠날 때마다 울어대니 나라가 이렇게 된 거 아니냐.”
“치...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이리 쉽게 가 버립니까, 그래.”어진이 미련을 잔뜩 쏟아냈다. 우성은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워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연서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천근같은 몸을 일으킨 연서는 겨우 문틀을 잡고 서서 우성을 보았다. 모두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 움직이면 안 되는 몸이었다. 우성이 급하게 그녀 쪽으로 돌아섰고, 어진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언니...!”
연서는 걱정스러운 그녀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성을 바라보았다. 잠깐 우성과 눈을 맞추던 연서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부디 건강하세요.”
짧고 단정했다.
우성은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어느새 그의 눈가도 촉촉해져 있었다. 우성이 주먹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파이팅.”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집 밖으로 향했다. 어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렁한 눈으로 금선에게 물었다.
“방금 뭐라신 거예요? 파잇딩?”
“...”하지만 금선이 그 말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연서와 그만의 무언가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었다. 연서 역시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표정이 그녀에게 잘 있으라며 다정하게 인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계가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은 처음보다 더디고 낯설게 느껴졌다. 부어오른 발이 짚신에 쓸릴 때마다 욱신거렸고, 반대 방향으로 되짚는 길은 깜깜했던 밤의 풍경과도 사뭇 달랐다. 길가에 말라 있는 풀도, 바람에 스치는 대숲 소리도, 멀리서 들려오는 새 울음도 그의 걸음을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가장 다른 점은 역시 연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안내해 주던 밤이 기억나서 생각에 잠겼다.
우성은 자꾸만 불편해지는 마음을 달래려 그냥 좋은 체험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기이했고, 황당했고, 여전히 꿈만 같았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어쩌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지 모르는 기억이 생겼다.
마침내 그는 기억을 더듬어 연서를 처음 만났던 자리에 도착했다.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멈춰 서서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냈다. 비행기 모드로 해 놓았음에도 배터리는 이미 7퍼센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카메라를 켜 자신이 있던 자리를 찍었다.
이제,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기계를 찾아야 했다. 혹시 기계 없이 자신만 온 것은 아닐까. 누군가 그사이 발견하고 건드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의 불안과 걱정이 무색하게, 기계는 바로 몇 걸음 위쪽에 멀쩡하게 서 있었다.
기계는 너무나 정갈한 모습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놓여 있었다. 도착했을 때 우성의 상태를 생각해 보면 꽤나 인위적인 모습이었지만,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처음 봤던 그대로의 기계를 찾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었다.
우성은 기계 앞으로 다가갔다. 흰 고양이가 밟고 지나갔던 빨간 버튼도 그대로였다. 우성은 긴장이 되는지 손바닥을 한 번 바지에 슥슥 문지른 뒤,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기억하기 싫은 기분 나쁜 느낌이 떠올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그대로 버튼을 눌렀다.
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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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cal Divergence detected]
사무실 내부의 알람이 울리며 파란빛이 깜빡였다.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방문을 나섰다. 기다렸다는 듯, 여자 팀원 하나가 달려와 말했다.
“팀장님, 역사 변동 가능성 경고가 떴습니다.”
그토록 기다려 왔던 경고였다. 하지만 고작 ‘가능성’이라니, 상태는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A(확실)가 아니라... 단순 W(가능성)라는 거야?”
“네...”팀원이 당혹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심지어 코드 색깔도 블루라는 점이 상태의 의문을 증폭시켰다. 40시간을 기다린 결과가 영장조차 나오지 않는 수준의 미미한 변동이라는 사실이 그를 실망시켰다.
“뭔가 잘못됐어... 이래서야 잡기는 고사하고 제발 자수해 달라고 빌어야 할 판이네...”
“혹시... 더 미래에서 작업 중인 게 아닐까요?”그도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다. 자신의 시대에서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은 대부분 미래에서 일어나고 미래에서 처리한다는 것을. 하지만 자신들이 관리하는 시간대에 벌어진 일을 구태여 미래에서 처리할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우리 쪽에 경고가 떴으니까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게 맞아. 위치 확인해 봐.”
팀원이 다른 팀원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상황을 확인했다. 상태는 기다리기가 어려운지 그녀의 뒤를 따라가 진행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팀장님, 아무래도 다른 사건인 거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견우성이 아니야?”상태가 손으로 팀원 하나를 옆으로 살짝 밀어 치웠다.
“예... 시계가 움직인 흔적은 아예 없고, 오히려 같은 시간대인 데다가... 장소는 남원경찰서예요.”
의문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알 수 없는 상황이 자꾸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닥쳐왔다.
“...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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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삼켰던 기묘한 감각을 예상하며 기다렸지만, 기계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계속 들려올 뿐이었다. 우성은 놀란 마음에 급히 눈을 떴다. 무엇 하나 달라진 점 없이 무거운 적막만이 우성을 짓눌렀다. 당황한 그는 다시 빨간 버튼을 딸깍 눌렀다.
“…어?”
그가 연이어 버튼을 눌러 댔지만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성은 미간을 찌푸린 채 버튼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기계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뭘 더 눌러야 하나 싶어 이리저리 손으로 더듬던 그는 기계의 처음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숫자.
분명 뭔가 떴었다.
4였나, 6이었나. 아니, 4는 정확히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 외의 숫자들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우성은 짧게 욕설 비슷한 숨을 내쉬었다.“아, 미치겠네... 진짜 못 가는 건가?”
그는 다시 기계를 살폈다. 그러다 한쪽 구석에 끼워져 있는 납작한 책자를 발견했다. 우성이 꺼내 보니, 표지에는 기계의 사진과 時域工業 TD-7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성은 그것이 기계의 설명서임을 금방 알아채고 펼쳐 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중국어로 되어 있는 것을 본 그는 좌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읽을 수 있는 것이라곤 맨 마지막 페이지의 단 한 문장뿐이었다.
MADE IN CHINA
“하하...”
우성은 허망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무거운 마음이 그의 몸을 오랫동안 붙잡았다. 멈춰 있던 그의 발이 조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주위의 나뭇가지와 잎을 모으기 시작했다. 꺾을 수 있는 풀이라면 꺾기도 했다. 그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 기계를 덮기 시작했다. 마치 전장에 떨어진 비행기를 숨기는 파일럿처럼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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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는 물 긷는 소리가 잔잔하게 났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매화 향이 비릿한 물 내음에 잔잔히 떠내려왔다. 어진이 아직 차가운 물속에 발을 담그고 두레박질을 하고 있었다.
“아휴, 또 혼자 하려니 힘들어 죽겠네…”
원래부터 혼자 하던 일이었는데도 어진은 괜히 허전했다. 단 하루밖에 우성을 체험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지 투덜거리던 그녀는 물동이를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 마침내 언니와 꼭 어울리는 사내를 찾았다고 생각했기에 그 마음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같이 해요.”
뒤쪽에서 들리는 남자 목소리에 어진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우성이 착잡한 표정으로 웃옷을 벗고 있었다.
“견우님?”
자신이 헛것을 보나 싶어 가만히 서 있던 어진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물었다.
“...왜 안 가셨어요? 안 가시는 거예요?”
우성은 대답 없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안 가시는 거예요? ...왜요?”
그녀의 되물음에 우성이 대답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어진은 잠깐 눈을 깜빡였다. 우성의 답답함을 알기는 하는지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그럼 우리 그냥 같이 살아요!”
놀란 우성이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렸다. 그의 기분 탓일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소리를 왜 이렇게 크게... 다 커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에요?”
“언니가 진짜 좋아하겠다! 그렇죠?”순간 그녀의 맑은 웃음이 그의 마음속을 스쳤다. 가슴이 가볍게 뛰었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현실은 여전히 무거웠다. 우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씻을 테니까 좀만 기다려요.”
우성이 말을 끊듯 말했다. 어진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또 씻어요? 뭐, 맨날 씻기만 해요?”
우성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옷을 벗으며 대답했다.
“...난 매일 씻어야 해요.”
“아 진짜, 여기서 벗지 말고 저기로 가라니까...”어진이 우성의 팔을 치며 소리쳤다.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녀의 성화를 무시하며 강가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차가운 물이 그의 다리에 감겨 왔다. 우성은 바가지를 든 채,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돌아가지 않기로 하는 것과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착잡한 표정으로 우성이 조심스레 몸을 물에 담갔다. 잔잔히 흐르는 물이 그의 근심을 씻겨 가길 바라면서.
연서의 엉덩이 상처는 말라붙은 피와 진물로 엉겨 딱지처럼 굳어 있었다. 멍 자국은 더욱 크게 퍼져 있었고, 터진 자국마다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금선이 미지근하게 식힌 물에 깨끗한 무명천을 적셔 환부의 가장자리부터 아주 살살 닦아냈다.“읏...”연서가 이를 악물며 신음했다. 금선은 한동안 상처를 닦다가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거냐.”연서는 말이 없었다. 언젠가는 답해야 한다는 걸 그녀도 알고는 있었지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 일과 함께 떠오르는 감정들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금선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무거운 침묵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그녀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별일은 아닙니다.”금선이 손을 멈추고 연서를 째려보았다. 연서는 그런 금선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별일이 아닌데 태형을 30대씩이나 때리냐? ... 누굴 두들겨 패기라도 한 거냐?”금선의 격노에 연서가 마지못해 대답하기 시작했다.“어머니, 혹시 칠복 아재 딸 기억나세요? ... 홍이라고.”금선이 다시 그녀의 상처를 닦으며 대답했다.“...홍이를 때렸어?”“때리다뇨... 걔가 요새 그리 저를 괴롭혀요. 특히 제가 사기가 된 후로 더 심해졌어요.”연서의 말에 금선이 말했다.“걔가 엄마 없이 자라서 이상한 열등감이 있나 보다.”“얼굴도 예쁜데 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무튼, 걔가 저한테 어저께 공개적으로 시를 쓰더라고요. 아름다운 수를 삼베에 놓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저를 모욕하며 비웃었어요.”금선이 한숨을 쉬었다.“그래서... 때렸니?”“아이 참, 안 때렸다니까요! ... 아무튼 그래서 저도 화답을 해 주었지요. 꽃 주제에 누에인 나를 비웃느냐고 해 주었어요.”금선이 피식 웃었다.“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스스로 비단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다니... 너는 부끄럼도 없냐?”“......어머니는 누구 편이신 거예요? ...자꾸 말이나 끊고...”금선의 말에 연서가 열받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말에 금선은
아침 일과를 마친 마당에는 볕이 들어 밝고 따뜻했다.“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마루에 앉아 여느 때처럼 약초를 다듬는 금선과 어진을 향해 우성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사내의 깍듯한 인사에 여전히 어색한 듯, 두 사람은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금선은 우성의 발치께를 눈으로 슬쩍 보며 대답했다.“조심히 가세요. 급하게 가시다 그르치실라.”“...네, 알겠습니다.”괜히 잔소리 한마디 더 얹는 금선에게 우성이 착하게 대답했다. 옆에서 어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조금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꼭 가셔야 돼요? ... 아직 언니도 아프고, 나리가 어제 물도 다 써서 물도 없는데...”“...”우성이 그녀의 시선을 살짝 회피했다. 그 모습을 보던 금선이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가는 발걸음에 우는 소리 말어라... 사내들 떠날 때마다 울어대니 나라가 이렇게 된 거 아니냐.”“치...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이리 쉽게 가 버립니까, 그래.”어진이 미련을 잔뜩 쏟아냈다. 우성은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워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연서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천근같은 몸을 일으킨 연서는 겨우 문틀을 잡고 서서 우성을 보았다. 모두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 움직이면 안 되는 몸이었다. 우성이 급하게 그녀 쪽으로 돌아섰고, 어진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언니...!”연서는 걱정스러운 그녀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성을 바라보았다. 잠깐 우성과 눈을 맞추던 연서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부디 건강하세요.”짧고 단정했다.우성은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어느새 그의 눈가도 촉촉해져 있었다. 우성이 주먹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파이팅.”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집 밖으로 향했다. 어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렁한 눈으로 금선에게 물었다.“방금 뭐라신 거예요? 파잇딩?”“...”하지만 금선이 그 말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연서와 그만의
파루를 알리는 종소리가 새벽을 깨우며 울려왔다. 관아에서 시작되는 둔중한 울림은 차가운 거리를 지나 연서의 방에까지 닿았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우성은 선뜻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지만 연서의 상태가 걱정되어 벌떡 일어났다.계속 엎드려 있는 게 힘들었는지, 연서는 몸을 조금 옆으로 돌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는 연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 다행히 어제의 열은 떨어져 있었다.그녀의 얼굴도 약간의 눈물자국을 빼고는 꽤 평온해 보였다. 밤새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던 우성은 안도감에 하품이 나왔다. 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문을 열자 곧바로 찬 기운이 그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우성은 앉아서 짚신을 신다가 발이 욱신거리자 버선을 벗어 보았다. 발은 붓고 물집까지 잡혀 있었다. 처음 신어 본 짚신으로 연서를 업고 달리기까지 했으니, 버티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우성은 고통을 참으며 다시 짚신을 신었다.우성이 부엌 쪽으로 다가가자, 안쪽에서는 이미 작은 불빛과 함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진이 평소처럼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나리? 뭐가 필요하시면 부르시지, 왜 직접 나오셨어요?”“... 춘향 씨 먹을 걸 좀 만들려고요.”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우성은 그대로 부엌 안으로 들어섰다. 어진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앞을 막았다.“아니, 아니요. 부엌은 사내가 들어오는 곳이 아니래두요! 어제도 말씀드렸잖아요. 언니 밥은 제가 차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가세요.”우성은 자신을 막아선 어진의 손을 슬쩍 피해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따라붙은 어진이 그의 옷자락을 붙들며 소리쳤다.“아니 이렇게 막무가내로...!”“춘향 씨가 지금 제대로 먹어야 해서 그래요... 어제 저녁 차려 온 거 보니까 풀데기밖에 없더만, 그래서 낫겠어요?”우성은 그녀와 실랑이할 생각이 없다는 듯 부엌 안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흐음... 피를 많이 흘려서 철분이랑 단백질이 필요한데... 계란이나 고기 같은 건 없어요?”“예? ...고
우성은 몸을 낮췄고, 금선과 어진이 등에 업힌 연서를 조심스럽게 받아 내렸다. 두 사람이 그녀의 몸을 받치는 사이 우성은 돌아서서 다시 연서를 안았다. 그녀를 요 위에 조심스레 엎어 눕히는 동안, 축 늘어진 팔다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연서의 방이 서늘한 것을 느낀 우성이 방바닥을 이리저리 만지며 말했다.“어진 씨는 이 방을 얼른 따뜻하게 해 주세요.”“네!”우성에게 업혀 오면서 체온이 다시 오르긴 했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평소보다 차가웠다. 우성의 말에 어진이 다급히 달려 나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금선은 우성이 어떻게 하려나 싶어 곁에 서 있었다. 우성은 연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금선이 그의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시키시면 제가 할 테니, 말씀으로 하시지요.”금선의 제지에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우성은 황급히 손을 뗐다. 금선은 조심스레 연서의 치마를 풀었다. 치마가 연서의 엉덩이 부근을 스치자, 연서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읏…”치마가 벗겨지고, 피로 엉겨붙은 속곳이 드러났다. 참혹한 광경에 우성과 금선은 아연실색했다. 검붉게 말라가는 것을 보니, 그냥 떼어냈다가는 살점까지 함께 뜯길 것이 뻔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우성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어진이 들어와 외쳤다.“아궁이에 불 지폈어요... 으아, 세상에...”그녀가 연서의 상처를 보며 탄식했다. 깊이 생각하던 우성이 금선에게 말했다.“물을 끓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 끓으면 미지근하게 식혀 주시고, 가장 깨끗한 무명천도 몇 장 준비해 주세요.”“상처를 씻으시려는 겁니까?”금선이 되물었다.“예. 붙은 옷부터 충분히 적셔서 떼어내야 합니다. 억지로 당기면 살이 함께 뜯길 수 있어요.”금선은 곧장 어진에게 말했다.“어진이 너는 얼른 물을 올리고, 깨끗한 무명천을 가져오너라.”“네!”어진이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우성은 연서의 방 안을 둘러보다가 침선용 가위를 발견하고 어진의 뒤를 향해 내밀었다.“이것도 끓는 물에
부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방 아전의 큰 외침이 들렸다.“기생 춘향에게 태 10도요!”뒤쪽에서 사령들과 나장들이 분주하게 형벌 기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서가 고개를 들어 부사에게 말했다.“나리, 소녀의 말을 들어주소서. 태형 10도는 부당한 처사이옵니다.”그녀의 목소리가 당당하게 울리자, 형방 아전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한낱 관기가 뱉은 무엄한 말에 분노하며 외쳤다.“어허! 어디 그런 망발을 하느냐!”하지만 성 부사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성 부사는 역시 연서에게 묘수가 있었던 것이라 여기며, 기대에 찬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어째서 그러하냐?”연서의 뒤에 서 있던 기생들이 다시 한 번 긴장하며 떨기 시작했다. 홍란도 식은땀을 흘리며 연서의 반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연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실로 뜻밖이었다.“국휼에 풍류를 즐기고, 사기로서 기생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며 오히려 교방의 질서를 흐트린 죄는 그리 작지 않습니다.”연서의 말에 대청의 모든 사람이 기막힌 표정으로 숨죽였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계속 말했다.“더욱이, 저의 죄가 인정되었음은 제가 거짓 증언을 했다는 뜻이 되오니, 태 50도는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그녀의 말은 지난겨울의 추위를 다시 불러온 듯 매섭게 사람들을 얼렸다. 태형 50대라니, 사람에 따라 죽을 수도 있는 형벌이었다.홍란과 그녀의 무리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하여 어안이 벙벙했다. 구경꾼들 역시 놀라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부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한 번만 봐 달라는 사람, 살려 달라는 사람, 억울하다는 사람만 평생을 봐 온 형방 아전 역시 할 말을 잃은 건 매한가지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성 부사의 마음은 조여 들었다.부사는 품었던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서의 강렬한 눈빛은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듯, 사사로운 마음에 흔들리는 안의를 정면으로 꾸짖고 있었다. 연서에 대한
조선에서의 두 번째 밥을 먹던 우성은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자박자박 다가오는 발소리와 마루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나리,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어진의 목소리에 우성이 음식을 빠르게 삼켰다.“네, 들어오세요.”어진이 방문을 열고 따스한 햇살과 함께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흰 무명 옷 한 벌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앉아서 우성에게 그 상복을 내밀었다. 우성은 젓가락을 상 위에 올려놓고 그 옷을 받아 들었다.“이건...”“이것은 언니의 부친께서 생전에 입으셨던 상복입니다. 일단은 이것을 입으시고, 차차 맞는 옷을 구해 보자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우성은 옷을 펼치지 못했다. 자신을 이곳에 붙잡아 두겠다는 금선의 의도가 선명했다. 망설이는 우성을 보고 어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러십니까?”우성이 어진을 바라보았다.“저는 조선 사람이 아니라 쉽게 섞이지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아까 어진 씨도 봤겠지만, 저는 조선의 예법이나... 규율, 생활 방식 이런 걸 전혀 알지 못해요. 모두가 수상하게 여길 거예요.”“그건 그렇죠. 솔직히 지금도 엄청 수상해 보이시는 건 사실이니까요.”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성은 애꿎은 옷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진은 그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다가 다시 말했다.“어쨌든, 어머니의 계획은 이래요. 나리께서... 이 집의 고공(雇工)으로 일해 주시는 거예요.”“...고공?”우성은 처음 듣는 말이라 어진에게 되물었다.“예... 그러니까... 이 집에 함께 기식하시면서 저희의 일손을 도와주시는 거지요.”“머슴 같은 걸 말하는 거예요?”어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머슴...이 뭐예요?”“아... 머슴은 지금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럼 노비?”“예에-? 노비라뇨, 큰 오해이십니다.”어진이 놀라 손사래까지 쳐 가며 부정했다. 우성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재차 물었다.“그러니까, 어머님이 저한테 일을 시키면 저는 그 일을 하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