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파루를 알리는 종소리가 새벽을 깨우며 울려왔다. 관아에서 시작되는 둔중한 울림은 차가운 거리를 지나 연서의 방에까지 닿았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우성은 선뜻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지만 연서의 상태가 걱정되어 벌떡 일어났다.
계속 엎드려 있는 게 힘들었는지, 연서는 몸을 조금 옆으로 돌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는 연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 다행히 어제의 열은 떨어져 있었다.
그녀의 얼굴도 약간의 눈물자국을 빼고는 꽤 평온해 보였다. 밤새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던 우성은 안도감에 하품이 나왔다. 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곧바로 찬 기운이 그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우성은 앉아서 짚신을 신다가 발이 욱신거리자 버선을 벗어 보았다. 발은 붓고 물집까지 잡혀 있었다. 처음 신어 본 짚신으로 연서를 업고 달리기까지 했으니, 버티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우성은 고통을 참으며 다시 짚신을 신었다.
우성이 부엌 쪽으로 다가가자, 안쪽에서는 이미 작은 불빛과 함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진이 평소처럼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리? 뭐가 필요하시면 부르시지, 왜 직접 나오셨어요?”
“... 춘향 씨 먹을 걸 좀 만들려고요.”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우성은 그대로 부엌 안으로 들어섰다. 어진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앞을 막았다.
“아니, 아니요. 부엌은 사내가 들어오는 곳이 아니래두요! 어제도 말씀드렸잖아요. 언니 밥은 제가 차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가세요.”
우성은 자신을 막아선 어진의 손을 슬쩍 피해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따라붙은 어진이 그의 옷자락을 붙들며 소리쳤다.
“아니 이렇게 막무가내로...!”
“춘향 씨가 지금 제대로 먹어야 해서 그래요... 어제 저녁 차려 온 거 보니까 풀데기밖에 없더만, 그래서 낫겠어요?”우성은 그녀와 실랑이할 생각이 없다는 듯 부엌 안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흐음... 피를 많이 흘려서 철분이랑 단백질이 필요한데... 계란이나 고기 같은 건 없어요?”
“예? ...고기요? 요새 고기가 어딨어요.”어진이 그의 시선을 회피하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수상함을 읽은 우성이 말했다.
“지금 고기를 먹지 않으면 언니분은 꽤 오래 아플 것 같은데... 진짜 없어요?”
그가 진심으로 연서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어진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어진은 입술만 꾹 다물고 있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일전에 연서와 함께 말리기로 합의했던 고기를 조심스레 꺼내어 우성의 눈앞에 내놓았다. 우성의 얼굴에 졸음이 가시며 화색이 돌았다.
“이 정도면 다 나을 때까지 먹일 수 있겠는데요?”
“이... 이걸 다요?”어진이 당황하며 물었다. 우성은 당연하다는 듯 편 몇 조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매일 이 정도씩만 주면 충분할 거예요.”
어진은 하는 수 없이 칼과 도마를 꺼내어 고기를 잘게 다지기 시작했다. 칼 끝이 도마 위를 빠르게 튀었다. 우성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작은 쟁개비를 집어 들며 물었다.
“이거 써도 돼요? 이 냄비 같은 거.”
“네? 아, 쓰셔도 돼요. ...진짜 직접 하시려고요?”우성은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듯 쟁개비에 물을 담고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솥 저 솥을 열어보다가 밥을 발견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그런 우성을 어진이 놀란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진지한 얼굴로 연서에게 줄 음식을 손수 만드는 그의 모습을 그녀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될 줄을 알고, 연서를 구하러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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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이 금선의 방문을 열고 소반을 들고 들어왔다. 구수한 냄새가 금세 방 안을 채웠다. 어진은 아직 잠이 덜 깬 듯한 금선에게 한껏 들뜬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글쎄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보세요.”
“또 무슨 일이냐... 매일매일이 아주 고단하구나.”그녀가 무표정으로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어진이 계속 흥분하며 말했다.
“견우님이 부엌에 들어와서, 직접 언니의 죽을 쑤어 갔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금선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드린 말씀 그대로예요. 부엌에 들어와서, 직접 죽을 만들었다고요. 지금은 아마 언니에게 죽을 먹이기까지 하고 있을걸요?”
“...”한평생 그런 일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아녀자들이 있는 집에서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다니. 게다가 여자를 위해서 상을 차렸다? 미치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진은 그녀 역시 충격을 받은 것을 알고 뿌듯한 표정으로 금선을 바라보았다.
“...하늘나라는 여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인가 보구나.”
“...네, 그런가 봐요.”어진이 몽상에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다 금선에게 말했다.
“아참, 편으로 썬 고기 전부 연서 언니 주라던데요?”
“푸흡-”금선이 들이키던 물을 살짝 뿜었다. 어진이 표정을 구기며 자신의 옷에 튄 물을 툭툭 털었다. 금선은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물 사발을 내려놓고 되물었다.
“그, 그걸 다?”
“네, 그거 다 드셔야 낫는다고 하던데요?”금선이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제 것도 아니면서... 남의 걸로 생색도 참 잘 내는구나... 혹시 연서 이 년이 고기 혼자 다 먹으려고 수 쓰는 거 아니냐?”
“예에? 에이 설마요...”둘은 매우 의심스러운 얼굴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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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이 연서의 방문을 열자, 새벽빛이 방 안의 어둠을 살짝 흩어냈다. 문 여는 소리에 눈을 뜬 연서는 옆으로 누운 채 고개를 들어 우성을 바라보았다. 그가 소반을 들여놓는 모습을 보자 팔로 바닥을 짚으며 상체를 일으키려 했지만, 곧 상처가 당기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어찌 이런...”
“그대로 계세요.”
우성은 소반을 연서의 앞에 내려놓고 문을 닫았다. 그는 연서가 상처를 누르지 않고 몸을 기댈 수 있도록 접은 이불을 등 뒤에 받쳐 주었다. 그의 팔이 가까이 다가오자 연서는 어깨를 움츠리며 몸을 굳혔다.
별다른 말 없이 그녀의 옆에 앉아 물그릇을 집어 들었다. 연서는 그가 또 물을 떠먹이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재빨리 물그릇을 빼앗았다.
“이, 이제 제가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우성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우성이 걱정스레 말했다.
“무리하지 마시고 힘들면 말씀하세요... 여기 죽도 좀 드시고요.”
우성이 죽그릇을 들어 연서의 앞으로 옮겨 놓자, 그녀가 말했다.
“...사내가 이리 하시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
우성이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여긴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아까 어진 씨도 제가 죽 좀 끓였다고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하던데.”
“... 이 죽을 직접 쑤셨다고요?”그녀의 큰 눈이 더욱 커졌다.
“...네.”
“...”연서는 더 놀란 듯 곧장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당황한 얼굴로 우성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우성이 머쓱하게 말했다.
“얼른 드세요, 식기 전에.”
연서는 이 죽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 사내가 자신을 위해 직접 해 준 음식을 또 먹을 일이 있을까? 아마 조선 팔도를 다 뒤져도 사내가 여인에게 끓여주는 죽은 찾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녀는 그 어떤 음식보다도 귀하다는 생각이 들어 먹기를 망설였다. 우성이 답답한 듯 물었다.
“...제가 먹여 줘요?”
연서가 황급히 죽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그녀는 왠지 모를 울컥함 때문에 쉽게 삼킬 수가 없었다. 요 며칠 갑자기 눈물이 많아진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우물거리며 먹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좀 짜요.”
우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짜요? ... 이상하네 간을 안 했는데...”
“고기를 이렇게 많이 넣으니까 짜죠... 이 고기, 나중에 먹으려고 소금에 절인 건데.”우성이 숟가락을 들어 그녀의 죽을 휙 떠갔다. 그의 스스럼없는 행동에 놀라 그녀의 눈이 또 커졌다.
“아니, 이게 무슨...”
“...진짜 짜네... 죄송해요.”연서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죄송하다니요, 그런 말씀을... 제가 죄송하죠. 이렇게까지 해 주실 이유가 없으신데요.”
우성은 조용히 물그릇을 들어 연서에게 물었다.
“...물을 좀 넣어서 섞으면 어때요?”
“아니, 됐어요! ... 저는 지금이 좋아요.”그가 만든 짠 고기죽을 그녀는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우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다가, 더 묻지 않고 자기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숟가락을 드는 소리와 먹는 소리만이 작게 이어졌다. 한동안 말없이 밥을 먹던 우성이 잠깐 연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거 다 먹고... 저는 이제 돌아갈게요.”
연서의 눈이 제자리에서 커졌다. 그녀의 손에 쥔 숟가락이 멈췄다. 우성이 그녀의 얼굴을 일부러 보지 않은 채로 계속 말했다.
“...어머님께는 어젯밤에 허락을 맡았어요.”
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가야 한다는 것이야 당연했다. 원래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고. 하지만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마음이 드는지 자신에게 원망도 들었다. 그녀가 입안의 죽을 삼키지도 못하고 대답했다.
“...다행입니다, 나리.”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다행이라 말했지만,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연서가 고개를 들자 우성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속의 아쉬움을 들킬까 다급히 시선을 내리고, 억지로 입꼬리를 조금 올려 보았다.
“...네. 다행이죠.”
정적이 다시 방 안에 내려앉았다. 만난 지 겨우 이틀뿐인 두 사람은 한동안 그 침묵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연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제대로 작별도 못하겠다는 생각에 겨우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나지막한 말에 우성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맑은 연서의 눈동자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살면서 타인에게 이런 돌봄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참으로 낯설지만 따뜻했습니다. 심신의 상처가 모두 나은 듯합니다... 소중한 인연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연서의 깊은 진심이 그의 마음을 울렸다. 심신의 상처라는 말이 의료인으로서 우성이 가진 죄책감도 건드렸다. 그녀의 세상이 그녀를 너무나 가혹하게 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자신이 꼭 떠나야만 하는가 하는 자문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우성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애써 찾지 않으려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더 감사하죠... 호랑이 밥이 될 뻔했는걸요.”
“하하...”연서가 짧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이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을 흘려보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우성은 더 이상은 못 버티겠는지 다 비운 지 오래인 소반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그의 세상이 있었다. 우성의 가족과 친구가 있었다.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인연도 있었다. 그렇게 자문에 대한 정해진 답을 읊으며,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듯 식기들을 가지런히 놓았다.
“그냥 두세요, 나리. 어진이가 치워줄 거예요.”
그 말을 듣기는 한 건지, 우성은 괜히 달그락거리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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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이야?”
정희가 발끈하며 물었다. 예성이 차 키로 우성의 차를 잠그며 대답했다.
“말한 그대로예요. 오빠는 못 올 거 같다고.”
“...그러니까 왜 못 오냐고.”답답한 듯 그녀가 예성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발인 날까지 겨우 우성에 대한 정보를 숨겼던 예성이었다. 할머니 장례로도 이미 혼란스러운데, 거기에 오빠의 실종까지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엊그제 밤에, 오빠랑 나랑 둘이 집에 간 날, 그날 오빠가... 사라졌어요.”
“...사라져?”예성이 머리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네... 그리고 바로 황상태라는 형사가 집에 와서 명함을 주고 갔어요.”
“...!”충격적인 그녀의 말에 정희는 매우 놀랐다.
“그런데... 제가 경찰서에 조회를 해 보니까... 일단 시간관리국이라는 거는 있지도 않고요, 황상태라는 사람도 그 사람이 아니라고, 사칭인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정희는 갑자기 핑 하고 어지러워 주춤거렸다. 예성은 그런 그녀의 팔을 살짝 잡아 주었다.
“차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거라, 아무래도 실종 신고를 해 봐야 할 거 같아요. 오늘 발인 끝나는 대로 제가 한 번 가 볼게요.”
장례 때문에 체력이 많이 소진된 두 사람은 매우 지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희는 초겨울의 찬 바람이 계속 찔러대는 것도 모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엄마에 이어서 아들까지 사라진 것 같아 쉽게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그런 정희를 예성이 걱정스레 팔로 감싸며 말했다.
“일단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오빠도 성인인데 멍청한 짓은 안 하겠지, 우리 집에서 제일 똑똑한데.”
“...네가 몰라서 그래. 걔 헛똑똑이야...”정희가 결국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예성이 정희를 안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연서의 엉덩이 상처는 말라붙은 피와 진물로 엉겨 딱지처럼 굳어 있었다. 멍 자국은 더욱 크게 퍼져 있었고, 터진 자국마다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금선이 미지근하게 식힌 물에 깨끗한 무명천을 적셔 환부의 가장자리부터 아주 살살 닦아냈다.“읏...”연서가 이를 악물며 신음했다. 금선은 한동안 상처를 닦다가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거냐.”연서는 말이 없었다. 언젠가는 답해야 한다는 걸 그녀도 알고는 있었지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 일과 함께 떠오르는 감정들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금선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무거운 침묵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그녀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별일은 아닙니다.”금선이 손을 멈추고 연서를 째려보았다. 연서는 그런 금선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별일이 아닌데 태형을 30대씩이나 때리냐? ... 누굴 두들겨 패기라도 한 거냐?”금선의 격노에 연서가 마지못해 대답하기 시작했다.“어머니, 혹시 칠복 아재 딸 기억나세요? ... 홍이라고.”금선이 다시 그녀의 상처를 닦으며 대답했다.“...홍이를 때렸어?”“때리다뇨... 걔가 요새 그리 저를 괴롭혀요. 특히 제가 사기가 된 후로 더 심해졌어요.”연서의 말에 금선이 말했다.“걔가 엄마 없이 자라서 이상한 열등감이 있나 보다.”“얼굴도 예쁜데 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무튼, 걔가 저한테 어저께 공개적으로 시를 쓰더라고요. 아름다운 수를 삼베에 놓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저를 모욕하며 비웃었어요.”금선이 한숨을 쉬었다.“그래서... 때렸니?”“아이 참, 안 때렸다니까요! ... 아무튼 그래서 저도 화답을 해 주었지요. 꽃 주제에 누에인 나를 비웃느냐고 해 주었어요.”금선이 피식 웃었다.“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스스로 비단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다니... 너는 부끄럼도 없냐?”“......어머니는 누구 편이신 거예요? ...자꾸 말이나 끊고...”금선의 말에 연서가 열받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말에 금선은
아침 일과를 마친 마당에는 볕이 들어 밝고 따뜻했다.“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마루에 앉아 여느 때처럼 약초를 다듬는 금선과 어진을 향해 우성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사내의 깍듯한 인사에 여전히 어색한 듯, 두 사람은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금선은 우성의 발치께를 눈으로 슬쩍 보며 대답했다.“조심히 가세요. 급하게 가시다 그르치실라.”“...네, 알겠습니다.”괜히 잔소리 한마디 더 얹는 금선에게 우성이 착하게 대답했다. 옆에서 어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조금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꼭 가셔야 돼요? ... 아직 언니도 아프고, 나리가 어제 물도 다 써서 물도 없는데...”“...”우성이 그녀의 시선을 살짝 회피했다. 그 모습을 보던 금선이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가는 발걸음에 우는 소리 말어라... 사내들 떠날 때마다 울어대니 나라가 이렇게 된 거 아니냐.”“치...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이리 쉽게 가 버립니까, 그래.”어진이 미련을 잔뜩 쏟아냈다. 우성은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워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연서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천근같은 몸을 일으킨 연서는 겨우 문틀을 잡고 서서 우성을 보았다. 모두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 움직이면 안 되는 몸이었다. 우성이 급하게 그녀 쪽으로 돌아섰고, 어진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언니...!”연서는 걱정스러운 그녀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성을 바라보았다. 잠깐 우성과 눈을 맞추던 연서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부디 건강하세요.”짧고 단정했다.우성은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어느새 그의 눈가도 촉촉해져 있었다. 우성이 주먹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파이팅.”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집 밖으로 향했다. 어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렁한 눈으로 금선에게 물었다.“방금 뭐라신 거예요? 파잇딩?”“...”하지만 금선이 그 말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연서와 그만의
파루를 알리는 종소리가 새벽을 깨우며 울려왔다. 관아에서 시작되는 둔중한 울림은 차가운 거리를 지나 연서의 방에까지 닿았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우성은 선뜻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지만 연서의 상태가 걱정되어 벌떡 일어났다.계속 엎드려 있는 게 힘들었는지, 연서는 몸을 조금 옆으로 돌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는 연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 다행히 어제의 열은 떨어져 있었다.그녀의 얼굴도 약간의 눈물자국을 빼고는 꽤 평온해 보였다. 밤새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던 우성은 안도감에 하품이 나왔다. 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문을 열자 곧바로 찬 기운이 그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우성은 앉아서 짚신을 신다가 발이 욱신거리자 버선을 벗어 보았다. 발은 붓고 물집까지 잡혀 있었다. 처음 신어 본 짚신으로 연서를 업고 달리기까지 했으니, 버티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우성은 고통을 참으며 다시 짚신을 신었다.우성이 부엌 쪽으로 다가가자, 안쪽에서는 이미 작은 불빛과 함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진이 평소처럼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나리? 뭐가 필요하시면 부르시지, 왜 직접 나오셨어요?”“... 춘향 씨 먹을 걸 좀 만들려고요.”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우성은 그대로 부엌 안으로 들어섰다. 어진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앞을 막았다.“아니, 아니요. 부엌은 사내가 들어오는 곳이 아니래두요! 어제도 말씀드렸잖아요. 언니 밥은 제가 차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가세요.”우성은 자신을 막아선 어진의 손을 슬쩍 피해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따라붙은 어진이 그의 옷자락을 붙들며 소리쳤다.“아니 이렇게 막무가내로...!”“춘향 씨가 지금 제대로 먹어야 해서 그래요... 어제 저녁 차려 온 거 보니까 풀데기밖에 없더만, 그래서 낫겠어요?”우성은 그녀와 실랑이할 생각이 없다는 듯 부엌 안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흐음... 피를 많이 흘려서 철분이랑 단백질이 필요한데... 계란이나 고기 같은 건 없어요?”“예? ...고
우성은 몸을 낮췄고, 금선과 어진이 등에 업힌 연서를 조심스럽게 받아 내렸다. 두 사람이 그녀의 몸을 받치는 사이 우성은 돌아서서 다시 연서를 안았다. 그녀를 요 위에 조심스레 엎어 눕히는 동안, 축 늘어진 팔다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연서의 방이 서늘한 것을 느낀 우성이 방바닥을 이리저리 만지며 말했다.“어진 씨는 이 방을 얼른 따뜻하게 해 주세요.”“네!”우성에게 업혀 오면서 체온이 다시 오르긴 했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평소보다 차가웠다. 우성의 말에 어진이 다급히 달려 나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금선은 우성이 어떻게 하려나 싶어 곁에 서 있었다. 우성은 연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금선이 그의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시키시면 제가 할 테니, 말씀으로 하시지요.”금선의 제지에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우성은 황급히 손을 뗐다. 금선은 조심스레 연서의 치마를 풀었다. 치마가 연서의 엉덩이 부근을 스치자, 연서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읏…”치마가 벗겨지고, 피로 엉겨붙은 속곳이 드러났다. 참혹한 광경에 우성과 금선은 아연실색했다. 검붉게 말라가는 것을 보니, 그냥 떼어냈다가는 살점까지 함께 뜯길 것이 뻔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우성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어진이 들어와 외쳤다.“아궁이에 불 지폈어요... 으아, 세상에...”그녀가 연서의 상처를 보며 탄식했다. 깊이 생각하던 우성이 금선에게 말했다.“물을 끓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 끓으면 미지근하게 식혀 주시고, 가장 깨끗한 무명천도 몇 장 준비해 주세요.”“상처를 씻으시려는 겁니까?”금선이 되물었다.“예. 붙은 옷부터 충분히 적셔서 떼어내야 합니다. 억지로 당기면 살이 함께 뜯길 수 있어요.”금선은 곧장 어진에게 말했다.“어진이 너는 얼른 물을 올리고, 깨끗한 무명천을 가져오너라.”“네!”어진이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우성은 연서의 방 안을 둘러보다가 침선용 가위를 발견하고 어진의 뒤를 향해 내밀었다.“이것도 끓는 물에
부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방 아전의 큰 외침이 들렸다.“기생 춘향에게 태 10도요!”뒤쪽에서 사령들과 나장들이 분주하게 형벌 기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서가 고개를 들어 부사에게 말했다.“나리, 소녀의 말을 들어주소서. 태형 10도는 부당한 처사이옵니다.”그녀의 목소리가 당당하게 울리자, 형방 아전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한낱 관기가 뱉은 무엄한 말에 분노하며 외쳤다.“어허! 어디 그런 망발을 하느냐!”하지만 성 부사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성 부사는 역시 연서에게 묘수가 있었던 것이라 여기며, 기대에 찬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어째서 그러하냐?”연서의 뒤에 서 있던 기생들이 다시 한 번 긴장하며 떨기 시작했다. 홍란도 식은땀을 흘리며 연서의 반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연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실로 뜻밖이었다.“국휼에 풍류를 즐기고, 사기로서 기생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며 오히려 교방의 질서를 흐트린 죄는 그리 작지 않습니다.”연서의 말에 대청의 모든 사람이 기막힌 표정으로 숨죽였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계속 말했다.“더욱이, 저의 죄가 인정되었음은 제가 거짓 증언을 했다는 뜻이 되오니, 태 50도는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그녀의 말은 지난겨울의 추위를 다시 불러온 듯 매섭게 사람들을 얼렸다. 태형 50대라니, 사람에 따라 죽을 수도 있는 형벌이었다.홍란과 그녀의 무리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하여 어안이 벙벙했다. 구경꾼들 역시 놀라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부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한 번만 봐 달라는 사람, 살려 달라는 사람, 억울하다는 사람만 평생을 봐 온 형방 아전 역시 할 말을 잃은 건 매한가지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성 부사의 마음은 조여 들었다.부사는 품었던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서의 강렬한 눈빛은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듯, 사사로운 마음에 흔들리는 안의를 정면으로 꾸짖고 있었다. 연서에 대한
조선에서의 두 번째 밥을 먹던 우성은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자박자박 다가오는 발소리와 마루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나리,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어진의 목소리에 우성이 음식을 빠르게 삼켰다.“네, 들어오세요.”어진이 방문을 열고 따스한 햇살과 함께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흰 무명 옷 한 벌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앉아서 우성에게 그 상복을 내밀었다. 우성은 젓가락을 상 위에 올려놓고 그 옷을 받아 들었다.“이건...”“이것은 언니의 부친께서 생전에 입으셨던 상복입니다. 일단은 이것을 입으시고, 차차 맞는 옷을 구해 보자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우성은 옷을 펼치지 못했다. 자신을 이곳에 붙잡아 두겠다는 금선의 의도가 선명했다. 망설이는 우성을 보고 어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러십니까?”우성이 어진을 바라보았다.“저는 조선 사람이 아니라 쉽게 섞이지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아까 어진 씨도 봤겠지만, 저는 조선의 예법이나... 규율, 생활 방식 이런 걸 전혀 알지 못해요. 모두가 수상하게 여길 거예요.”“그건 그렇죠. 솔직히 지금도 엄청 수상해 보이시는 건 사실이니까요.”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성은 애꿎은 옷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진은 그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다가 다시 말했다.“어쨌든, 어머니의 계획은 이래요. 나리께서... 이 집의 고공(雇工)으로 일해 주시는 거예요.”“...고공?”우성은 처음 듣는 말이라 어진에게 되물었다.“예... 그러니까... 이 집에 함께 기식하시면서 저희의 일손을 도와주시는 거지요.”“머슴 같은 걸 말하는 거예요?”어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머슴...이 뭐예요?”“아... 머슴은 지금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럼 노비?”“예에-? 노비라뇨, 큰 오해이십니다.”어진이 놀라 손사래까지 쳐 가며 부정했다. 우성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재차 물었다.“그러니까, 어머님이 저한테 일을 시키면 저는 그 일을 하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