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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귀함을 버리고 천함을 취하니

Author: 쭈의잔상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0 12:05:36

우성이 젖은 머리를 털어내며 방 안으로 들어오자, 책을 보던 연서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이며 목덜미가 물기로 번들거리는 걸 보니 막 씻고 온 모양이었다. 그녀가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이제는 하루에 두 번씩 씻기로 하신 거예요?”

우성이 방문을 닫으며 대답했다.

“아... 근데 오늘은 진짜 어쩔 수 없었어요.”

“...?”

연서는 읽던 책을 뒤집으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 그녀의 눈빛을 읽은 우성이 계속 말했다.

“오늘 밭에다 거름 뿌렸거든요. 냄새가 와... 안 씻을 수가 없어요 진짜.”

“아~ 그럼 꼭 씻어야죠. 아예 그 옷도 벗고 들어오시지... 흠흠, 냄새가 좀 나는 거 같은데...”

연서의 장난스러운 말에 그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속옷만 입고 들어오려고 했으면 춘향 씨가 그 책 집어던졌을 거 같은데...”

“...”

이에 연서는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분명 그랬을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을 점점 알아 가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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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 향기로 수놓다   1-21 귀함을 버리고 천함을 취하니

    우성이 젖은 머리를 털어내며 방 안으로 들어오자, 책을 보던 연서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이며 목덜미가 물기로 번들거리는 걸 보니 막 씻고 온 모양이었다. 그녀가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이제는 하루에 두 번씩 씻기로 하신 거예요?”우성이 방문을 닫으며 대답했다.“아... 근데 오늘은 진짜 어쩔 수 없었어요.”“...?”연서는 읽던 책을 뒤집으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 그녀의 눈빛을 읽은 우성이 계속 말했다.“오늘 밭에다 거름 뿌렸거든요. 냄새가 와... 안 씻을 수가 없어요 진짜.”“아~ 그럼 꼭 씻어야죠. 아예 그 옷도 벗고 들어오시지... 흠흠, 냄새가 좀 나는 거 같은데...”연서의 장난스러운 말에 그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했다.“...속옷만 입고 들어오려고 했으면 춘향 씨가 그 책 집어던졌을 거 같은데...”“...”이에 연서는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분명 그랬을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을 점점 알아 가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웃옷을 벗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연서는 그의 옷이 생각보다 많이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니 얼마나 불편할까 싶어 안쓰럽기도 했다. 여러 생각을 하던 연서가 웃옷을 벗어 놓는 우성에게 말했다.“처음 하는 일들이라 많이 힘드셨죠?”우성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음... 힘들기보다도 좀... 더러워서... 그리고 잘못하기도 했고요. 분이할멈이 어찌나 잔소리를 많이 하시던지...”그의 말을 듣자 연서는 웃음이 났다. 분이할멈의 평소 말투를 잘 아는 그녀였다. 연서가 혼자 웃는 걸 보며 우성이 계속 말했다.“제가 그 긴 바가지를... 뒷간에서 사용하고 나서 손에 들고 밭까지 걸어갔더니, 그걸 왜 들고 다니냐면서 역정을 막 내시더라고요. ‘그건 왜 흔들고 댕겨-!’”연서는 우성의 말에 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 더러운 걸 들고 다녔으니, 난리가 날 법도 했다.“하하하-”“아니, 미리 말을 해 주던가... 그리고 밭에 뿌리래서 막

  • 봄 향기로 수놓다   1-20 잔잔한 물결 아래

    우성은 난감한 표정으로 한참을 뒷간에서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국화밭에 뿌릴 거름을 퍼 오라는 금선의 말이 다시 생각난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이런 일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그는 문을 열기도 전부터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냄새에 어지러웠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기보다 어린 어진이도 하던 일이었다. 사내로서의 자존심과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이 그의 몸을 조금씩 밀기 시작했다. 그는 지게와 분뇨통을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더 이상 가까이 가기도 싫은지, 우성은 긴 자루바가지를 들어 나무판자를 툭툭 쳐서 옆으로 벌리고는 조금씩 분뇨를 뜨기 시작했다. 메스꺼워 헛구역질이 날 판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현대의 생활이 그리웠다.조심스레 바가지로 거름을 푸던 우성은 분뇨통이 어느 정도 차자, 자루바가지를 든 채로 생각에 잠겼다. 바가지에 묻은 오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얼빠져 있던 우성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바가지를 문밖으로 빼냈다. 인근에 있는 풀밭에 응급처치를 하고는 눈을 감고 숨을 참으며 통을 들어 지게에 실었다.“하아... 하아...”그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폐활량을 탓하며 다시 지게를 졌다. 자신의 집에 있던 편리하고 깨끗했던 화장실 생각이 많이 났다. 사실 다른 불편함들은 어느 정도 예상했고 감수할 만했지만, 화장실 문제만큼은 그를 몹시 힘들게 했다. 첫날이야 아무 데나 소변을 보면 됐지만, 둘째 날 뒷간을 처음 이용했을 때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어? 그래서 자꾸 변명할 때 뒷간이 생각나는 건가...”중얼거리던 우성은 분이할멈의 국화밭을 향해 걸어갔다.---차분히 책을 읽던 연서는 허리가 아픈지 무릎을 대고 엎드렸다. 찌뿌둥함을 풀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늘였다. 그러다 통증이 꽤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자신의 엉덩이를 더듬어 보았다. 여전히 아프기는 했지만, 처음 맞았을 때나 다음 날 약주를 부었을 때의 아픔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 봄 향기로 수놓다   1-19 은비녀에 새긴 거문고

    집 밖으로 볶은 결명자의 구수한 냄새가 넘쳐 흘렀다. 어진은 금선이 볶아 놓은 결명자를 약연으로 갈아내고 있었다. 잠시 후, 금선이 부엌에서 또 다른 바구니를 가지고 나와 어진의 옆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어진이 갈아 놓은 고운 가루를 종이에 담아 약첩으로 만들었다. 꽤 오랫동안 함께해 온 일이어서 그런지 두 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손발이 척척 맞았다. 하지만 그 평화는 아래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끝이 났다.“누구 있소?”사령 하나가 집 앞에 서서 외쳤다. 어진이 약연을 옆으로 살짝 밀어 놓고 달려 나왔다. 그녀의 얼굴에 긴장이 역력했다. 연서가 근신 명령을 어기고 우성과 함께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무슨 일이십니까?”“아전께서 명을 보내셨다.”어진이 곤란한 표정으로 금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묵묵히 약첩을 묶을 뿐,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어진은 지레 겁을 먹고 대답했다.“춘향은 지금 뒷간에 잠깐 갔는데...”그녀는 자신도 우성과 똑같은 변명을 해 버렸다는 사실에 자책했다. 하지만 사령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춘향이 아니라 어진이라는 아이에게 전하라 했다. 여기 있느냐?”어진은 깜짝 놀랐다. 일만 하던 금선마저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제, 제가 어진입니다. 말씀하십시오.”어진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사령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아전의 말을 전했다.“‘올해로 14세가 되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으니, 이달 20일에 있을 동기 지원에 응하라. 시험은 20일 오후에 관아의 예방에서 실시하니 교방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만일 올해에 지원하지 않는다면 16세가 되는 해부터 관노비로 일하게 될 것이니 그리 알라.’라고 하셨다.”“예, 알겠습니다.”최후 통첩이었다. 연서가 임진년에 열 살이 되자마자 동기에 지원했던 걸 생각해 보면 꽤 늦은 나이였다. 일반적으로는 이른 나이에 동기가 될수록 더 뛰어난 기생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동안 시험을 미루었던 것은 어진이 아니라 관아 쪽이었기에, 조금

  • 봄 향기로 수놓다   1-18 그 열쇠는 누구에게 있나

    마지막 인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무섭게, 연서를 업은 우성이 집 앞에 도착했다. 그는 무심코 마당으로 발길을 옮기다 대청에 앉아 있는 어진을 보고 기겁하며 뒤로 돌아섰다. 업혀 있던 연서는 우성이 재빨리 방향을 바꾸자, 금방 상황을 눈치채고 숨을 죽였다.하지만 너무 급하게 몸을 튼 나머지, 몸이 흙벽에 스치며 중심이 흔들렸다. 흙벽이 부스러지며 퍼석 소리가 났다. 담장이 낮았기 때문에 연서를 업은 채로 몸을 완벽히 숨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우성과 연서는 눈을 마주친 채 긴장감을 나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간절함을 배신하며 어진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 앞에 다다른 어진은 팔짱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아예 숨길 생각도 없네...”우성이 머쓱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연서는 그에게 매달린 채 어진을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했다. 우성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그... 잠깐... 뒷간을 좀 다녀오고 싶다고 해서...”“...!?”그의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연서가 입을 벌린 채 그를 쳐다보았다. 열받은 그녀가 우성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게 산책보다 더 큰 문제예요...”“흠... 분명히 말씀드린 것 같은데... 여전히 아녀자와 뒷간 얘기하시는 걸 좋아하시네요.”어진이 비아냥거리듯 그에게 말했다. 두 여자의 협공에 우성은 억울한 기분이 들어 대답했다.“아니 왜 나한테만...”“저야 늘 언니 편이니까 견우님한테만 말씀드린 거고요, 어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시니까 언니도 곧 혼날 거예요.”그녀가 얄밉게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연서도 곤란한 표정을 하며 우성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금선이 문을 벌컥 열며 방에서 나왔다.“그냥 아예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북이라도 치고 오지 그러냐? 그럼 이리 숨어 다닐 필요도 없을 텐데.”연서가 수치심에 고개를 숙였다. 우성이 그녀를 다시 고쳐 업으며 금선에게 대답했다.“계속 누워만 있으면 회복이 더뎌지고 욕창이 생겨 다른

  • 봄 향기로 수놓다   1-17 아픔은 달빛에 흩어지고

    하루도 쉬지 않던 연서의 몸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점점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몸을 조금 일으키자니 팔꿈치와 어깨가 아팠고, 그렇다고 엎드리자니 허리와 목이 불편했다. 조금씩 옆으로 눕는 게 가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동 범위가 극히 좁아 답답했다.삼십 대를 굳이 맞아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지만, 이내 그녀의 자존심이 그 생각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한계를 느끼고 독서를 포기했다. 연서는 책을 바닥에 던지듯 툭 내려놓으며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책이 바닥에 툭 쓰러지며 [詩經]이라고 쓰인 표지가 보였다.“흐아아-”연서가 책 읽는 것을 즐기는 편이기는 했지만 바르지 않은 자세로 이미 수없이 읽은 책을 또 읽기란 쉽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이 점차 고요해지는 듯싶었다.“아하하! 아이참, 다시 해 보세요. 왜 이렇게 못 하세요?”바깥에서 어진의 목소리가 창호지를 뚫고 들어왔다. 우성과 무엇을 하는지 마당에서는 자박자박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곧 우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이게 지금 무게 중심이 하나도 안 맞는 거 같아요.”“와 진짜 안 해 보셨나 보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사내가 되어서 이런 것도 안 해 보고 뭐 하셨어요?”연서는 너무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호기심을 이겨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팔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조금 들어 올리고, 조심조심 팔꿈치를 짚어 기듯이 문 쪽으로 다가갔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방문 앞에 도착한 연서는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끼익-연서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우성과 어진은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에엥? 언니! 왜 일어났어요?”“...뒷간 가시게요?”우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걱정스레 말했다. 무례한 우성의 말에 연서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하... 아녀자한테 그런 거 묻지 마세요... 나 참, 숨 쉬듯 무례하네.”“...”우성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어진도 그런 우성을 타박하며 덧

  • 봄 향기로 수놓다   1-16 부재의 파장

    경찰서 안쪽은 민원실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프린터가 돌아가는 소리, 간헐적으로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여성청소년과로 예성을 안내한 경찰은 인계를 마치고 돌아갔다. 사십 전후로 보이는 경위가 그녀를 맞이했다. 예성은 남자가 가리킨 의자에 앉아서 긴장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아까 기본 내용은 들었습니다. 견우성 씨 동생분이라고 하셨죠?”“네.”그는 모니터를 보며 능숙하게 타이핑을 시작했다.“마지막으로 직접 본 시간하고 장소 말씀해 주시겠어요?”“음... 마지막으로 본 건 저희 본가 OO로 24-1이고요, 시간은... 이틀 전 저녁 7~8시쯤인 것 같아요.”“이틀 전이면... 11월 6일인가요?”경위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성은 그 말에 핸드폰을 꺼내 달력을 확인했다.“잠시만요... 네, 맞아요.”“11월 6일... 7시경... 그날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까?”예성은 그날 우성과 차 안에서 다투듯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저랑 말다툼 비슷하게 좀 하긴 했는데... 그 정도는 평소에도 하던 거라 특별히 다르다고 하기엔 좀 그래요... 제일 이상한 건 차가 그대로 있고 사람만 없어졌다는 거예요.”“... 차는 있는데 사람이 없다... 실종자가 평소에 우울증이나 병을 앓고 있었나요?”그의 말에 예성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정확히 우울증 진단을 받거나 병이 있지는 않았어요.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우울 증세가 좀 심하게 오긴 했었는데...”“...우울 증세... 또 있을까요?”그제야 예성은 상태의 방문이 떠올랐다.“아...! 잠시만요.”그녀가 갑자기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상태의 명함을 꺼내 들었다.“오빠가 없어진 직후에 자칭 형사 한 분이 와서 이걸 주고 갔어요.”“형사요...?”경위가 예성이 내민 명함을 받아들었다.“시간관리국? 이런 부서는 없는데... 직접 받으신 거예요?”그가 명함을 뒤집어 이리저리 보며 물었다. 예성이 그의 말에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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