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씨 성을 가진 사람을 말하자니, 정말 왕가에서 혼인에 관한 얘기를 하러 왔었다는 것이 기억났다.평서백 왕표의 사촌 동생이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이미 지난 일이니 더 언급할 필요 없었다. 그녀와 사여묵은 두 달 후면 곧 혼인을 올릴 것이다. 지난날의 일들은 떠나보내고 앞으로의 일들을 맞이해야 했다.과거와 작별하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날이 점점 추워지자, 마당의 매화가 봉오리를 맺어 며칠 지나면 곧 필 것 같았다.올해의 매화는 일찍 피었고, 진복은 이것을 길조라 말했다.서우도 바닥에 내려갈 수 있지만, 몇 걸음만 걷고 침대에 누워 쉬어야 했다.댁에서도 긴박하게 혼사를 준비하고 있다. 혼례복은 혼사가 정해진 날 봉연각에 바느질을 맡겼다. 성안의 권세가들이 혼사를 치를 때 대부분 봉연각을 찾는다. 첫째는 그들의 바느질이 좋고 빠르기 때문이고, 둘째는 봉연각에서 바느질하는 여인들의 실력이 좋아 명성이 자자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외지의 부유한 상인과 귀인들이 천금을 들여서라도 봉연각의 혼례복을 얻으려 했다.양 마마는 봉연각에 진도를 보러 갔다가 돌아온 후 안색이 이상했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또 그 말을 하기에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송석석은 상황을 보고 물었다."혼수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가?"송석석은 망토를 입고 서우를 부축하여 매화를 감상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서우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비록 서우는 걷고 싶었지만, 송석석은 단신의의 분부에 따라 당분간 많이 걷게 하지 않았다. 하루에 그저 두세 번 걸어 다리의 기혈이 뭉치지 않도록 활동시킬 뿐이었다.양 마마는 서우가 약을 먹은 후 그릇을 치우고 말했다."아가씨, 별일은 아니옵니다. 그저 왕가네 사람을 만났습니다.""왕가?"송석석은 순간 양 마마가 전에 하려다 그만둔 말을 떠올리며 답했다."그래. 왕가에서 혼약을 얘기하러 왔다고 알고 있네. 그러나 이젠 그 일도 얘기할 필요가 없지."그녀는 서우를 눕히고 양 마마와 밖으로 나갔다.날이 어둡고 바람이 세게
그런데 이틀 만에 평서백부 노부인이 내일 셋째 아가씨를 데리고 찾아온다는 청을 올렸다.양 마마가 아뢰며 말했다."아니면 만나지 마십시오. 그들이 무슨 꿍꿍이로 오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장군부의 상황을 알아보러 왔다면 진작 왔어야 했습니다. 혼사도 정해졌고 혼례복도 준비하고 있는데 이제야 찾아오다니요."송석석도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물었다."만나려 청한 글에는 뭐라 쓰여져 있느냐?"양 마마가 답했다."꼬마 도련님이 돌아온 것을 축하하려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핑계일 뿐이지요. 도련님께서 돌아온 지 그렇게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찾아오다니. 전에는 무엇을 했답니까?"송석석은 생각하다 답했다."가서 말을 전하 거라. 서우가 치료를 하고 있으니, 손님을 만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부상이 나으면 내가 직접 데리고 찾아갈 것이라 전하거라."양 마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나갔다.송석석은 그들 모녀를 만날 상황이 아니다. 그 모녀는 틀림없이 장군부의 일로 찾아왔을 텐데 장군부에 대해 어떠한 말을 해도 상황에 맞지 않으니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적합했다.말을 전한 뒤 이틀이 지나고, 하늘에는 올겨울 첫눈이 내렸다.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마당에 얇게 눈꽃을 피울 뿐이었다.송석석은 서우를 데리고 매화원으로 향했다. 매화는 갓 피어났고, 연홍색의 꽃잎에 서리가 내려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서우의 얼굴이 빨갛게 얼었지만 기분이 좋은지 그래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는 손을 목구멍에 얹고 송석석을 향해 힘겹게 말하려 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소리를 내지 못해 작은 볼이 더욱 빨개졌다.송석석은 쪼그리고 앉아 부드럽게 말했다."괜찮다. 천천히 하거라, 급하지 않아."서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에 실망이 담겨 있었다. 이전에 그는 ‘윽윽’ 거리는 소리라도 낼 수 있었지만 요 며칠 그 소리마저 내지 못하니 초조해 보였다.그러나 실망에 가득 찬 표정은 곧 미소로 바뀌었다. 서우는 차가운 작은 손으로 고모의 뺨을 어루만지며 힘껏 웃었고, 힘
사여묵도 저녁에 서우를 보러 왔다. 그의 위로는 홍작과 작은고모의 위로보다 더 유용했다.게다가 그의 위로는 짧디짧은 한마디뿐이었다."사나이는 참는 법을 알아야 한다."그의 말을 듣고 서우는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았고 착실히 말을 들으며 치료를 받았다.사여묵은 그와 함께 반시진 동안 서예를 연습을 했다. 서우의 서예는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고 손가락의 움직임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져 보는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서우는 아주 수다쟁이였다. 사여묵이 그의 곁에 있을 때, 그는 종이에 많은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모두 중요하지 않은 말로 순 잡담이었다.그럼에도 사여묵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우가 묻는 대로 대답했다.송석석은 그들과 잠시 같이 있다가 하인에게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오늘 저녁에는 사여묵더러 집에서 식사하도록 남으라 했다.사여묵은 가끔 국공부에서 식사를 하고있다. 양 마마는 이제 그의 음식 취향도 모두 꿰뚫고 있다.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먹을 수는 있고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지만, 매번 완강하게 아가씨와 함께 매운 것을 먹었다.식성도 좋아서 한 끼에 여섯 그릇을 먹을 수 있고 무슨 요리든 꺼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사여묵은 편식하지 않았다.그의 식사량이 많은 것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처음 국공부에서 식사할 때 밥 한 그릇을 드시라고 해도 사양한 그였다.두 번째로 남아 식사를 할때, 그는 반 그릇을 더 먹었다.세 번째에는 갈비찜의 양념이 맛있다며 세 그릇을 먹었다.그렇게 지금 밥 여섯 그릇을 먹을 정도가 되었는데, 국공부 전체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대체 밥 여섯 그릇이 그의 한계가 맞는지, 아니면 밥 여섯 그릇에 배가 겨우 반만 부른 것이 아닌지? 언제쯤 밥 일곱 그릇이나 여덟 그릇을 먹을 것인지 말이다.장대성이 그와 함께 왔을 때 사여묵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시진 동안 무예를 연마하고 게다가 낮에 공무를 돌보느라 바빠 한가할 새가 없다고 했다.모두 그제야 그의 식사량이 왜 이렇게 많은
황제는 그녀를 위해 복수를 하려 전북망더러 혼인한 지 일 년 만에 화리한 여인과 혼사를 치르라 했다.마침 그녀도 전북망과 혼인한 지 일 년 만에 화리했다.다만 셋째 아가씨는 이 혼사를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황제가 지정한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그녀가 그날 찾아오려 한 것도 아마 전북망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황제의 행동에 송석석은 자신이 셋째 아가씨에게 누를 끼쳤다고 생각했다.이것은 그녀를 위해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적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보아하니, 셋째 아가씨를 만나야 했다. 서로 마음속의 응어리를 없애고, 국공부에 적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 했다.자신을 위해서라면 상관없지만, 앞으로 국공부는 서우가 장악해야 한다. 이 일로 왕가의 원망을 사서는 안 되었다.사여묵은 그녀가 눈살을 찌푸린 것을 보고 말했다."평서백 노부인이 만나려 청을 전한 것은 전북망과의 화리에 관해 묻고 싶었을 것이오. 외부에서 떠들썩하게 소문이 자자하지만, 다들 사리에 밝은 사람들이니 소문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소. 당사자인 자네한테 물어봐야 사실을 알 수 있소."국공부에 무슨 일이 있는지 그는 모두 알고 있다. 매번 올 때마다 그는 먼저 진복을 찾아 안부를 묻고, 진복도 그에게 상황을 전했다.엄연히 그를 상전으로 대하고 있다.진복은 아가씨께서 영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집안에 사람이 적고 일을 도맡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나 지금 너무 많은 사람을 국공부로 들일 필요가 없다. 게다가 사 온 하인들을 마음 놓고 쓸 수도 없으니, 많은 일들은 사여묵에게 알려야 한다. 사여묵이 사람을 보내 알아보고, 처리해야 한다.이것이 바로 사여묵이 자주 오려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그는 송석석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곧 돌아가려 했다. 많은 사건들이 그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갓 대리사에 일을 하고 있어, 매일 번거로운 문서를 보느라 눈이 아플 지경이다.게다가 그는 율법을 마음속에 기억해 둬야 한다.
노부인은 청색 구름무늬 솜저고리를 입고 손에 찻잔을 들고 있었다. 나이는 오십 남짓한 모습으로 머리가 좀 희끗희끗하고 머리를 단정히 올려 위엄있어 보였다.셋째 아가씨는 옷차림이 매우 수수했다. 흰색 여우 가죽옷 아래에는 살구색 저고리 치마를 입었고 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예쁘게 생겼다. 그러나 안색은 다소 생기가 없어, 살구색 치마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어머니보다도 더 성숙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겼을 것이다.송석석은 이들을 자리에 앉게 한 뒤 설명했다."지난날 노부인께서 만나려 청했지만 서우가 치료를 받고 있어, 제가 손님을 맞이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실례가 될까 봐 거절했고 지금은 서우도 아주 좋아져서 이렇게 두 분을 댁으로 모시고 싶었습니다. 서우를 신경 써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그날 그들은 어린 도련님 서우를 보려 방문하겠다고 했으니, 송석석도 물론 그 말에 맞춰 답해야 한다.노부인이 물었다."도련님은 지금 괜찮으십니까?""예. 아주 좋아졌습니다. 노부인께서 신경을 써주시니, 서우의 복입니다."송석석이 답했다.노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국공부에 없는 것이 없다고 알고 있지만, 최근 백 년 인삼 한 뿌리를 얻어 도련님께 보신용으로 드리려 갖고 왔습니다."그녀가 말을 하자, 시녀는 정교한 상자를 들고 와 송석석에게 예를 올렸다."아가씨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송석석이 말했다."어찌 이런 것을 받는단 말입니까? 서우를 보러오신 것만으로도 소녀는 이미 감격해 마지않는데, 어떻게 이렇게 진귀한 약재까지 받겠습니까?""아가씨, 평서백부의 작은 성의라고 생각하고 받으시지요."노부인은 한숨을 쉬었지만,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있었다."평소 서로 왕래가 드물었지만, 우리도 국공 어르신을 존경했습니다. 지금 도련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받지 않으면 우리 평서백부를 얕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송석석도 인사치레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마움을 전한 뒤 양 마마에게 인삼을 받으라고 했다.노부인은 몇 마디 인사
말을 마친 그녀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화리를 한 것도 잘한 일입니다. 지금 북명왕 전하에게 시집갈 수 있으니, 장군부 부인보다는 왕비가 낫지 않겠습니까?"송석석은 그녀의 얄궂은 말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담담히 답했다."인연이 어찌 사람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저도 화리할 때 북명왕에게 시집갈 줄은 몰랐습니다.""청아, 어찌 이렇게 말하는 것이냐?"노부인은 굳은 표정으로 꾸짖었다."결례를 범했습니다. 늘 직설적으로 얘기를 하는 성격이라, 개의치 않기를 바랍니다."왕청여는 웃음을 멈추고 다시 물었다."전북망의 인품에 대해 아가씨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화리를 한 사이니, 분명 그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송석석은 그녀의 말이 우스웠다."아가씨께서 이미 그렇게 얘기하셨으니, 더 물어서 무엇합니까?"노부인은 매섭게 왕청여를 노려본 후 죄책감이 담겨 있는 말투로 송석석에게 말했다."몇 년 동안 혼자 있는 것이 습관이 되어, 이렇게 분수를 모릅니다. 저희도 도련님을 보러 온 것 외에 전북망이 어떤 사람인지 들으려 했습니다. 적어도 아가씨께서 그를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정녕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저를 찾아오지 말아야 했습니다. 아가씨 말처럼 분명 그를 인내할 수 없어서 화리했으니, 어찌 그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겠습니까?"모녀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송석석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 말했다."하지만, 그것은 모두 개인적인 원한입니다. 그리고 화리한 순간부터 낯선 이와도 같으니, 모든 원한도 사라졌습니다. 저도 전북망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혼인을 올린 날 밤 바로 출정했고, 그가 돌아온 후 바로 평처를 들이려 해 화리했습니다. 화리를 하기 전까지 저희는 낯선 사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보니 확실히 낯설다고 할 수 있네요."송석석이 말했다."진정으로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남강의 전장입니다."왕청여는 존경의 마음이 솟아나 방금의 태도를
평서백 노부인과 아가씨를 보내고 송석석은 본청에 한참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잠깐 넋을 놓았다.‘이 혼사에 대해 전북망은 어떤 태도일까? 이방뿐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방이 그렇게 도도하게 그녀 앞에서 센 척을 하더니, 이렇게 빨리 새로운 본처가 생길 줄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과연 이방은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이 그날 거만하게 사람을 깔본 것이 가소롭다고 생각할까?’왕청여는 비록 성격이 어느 정도 호락호락하진 않지만, 평서백부의 아가씨로 집안 안주인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그리고 전 노부인도 이 며느리를 아주 좋아할 것이다. 비록 두 번째 혼사지만 혼수가 적지 않을 것이고 친정도 유능하다. 이 이유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 노부인은 친정의 실력이 좋은 며느리를 좋아한다.이방은 여인과 싸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번에 다툴지 말지 모를 일이다.그녀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고 무시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 것인가?송석석은 궁금했지만 정말 사람을 보내 알아보지 않을 것이다.다만 송석석이 알아보지 않아도 전가에서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전가의 둘째 노부인이다.둘째 노부인은 서우가 돌아왔을 때 한 번 왔었다. 그때는 전가의 일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도 그렇게 즐거운 날에 나쁜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둘째 노부인은 송석석의 혼수를 보태주려고 왔다. 보낸 것들은 많지도 귀하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성의였다.그녀는 서우에게 신발과 양말까지 맞추어 옷을 만들어 주었다.그리고 송석석에게 이불을 만들어 주었다. 이불 위의 자수는 그녀가 스스로 수놓은 것이다. 활짝 핀 꽃들을 수놓아 백년해로를 뜻했다.송석석에게 평상복 한 벌과 침복 한 벌에 꽃을 수놓은 꽃신을 만들어 주었다.선물한 금기는 한 쌍의 용과 봉황이 새겨진 금팔찌이다. 이것은 밖에서 파는 일반적인 무늬이다. 그러나 묵직한 무게로 보아 많은 돈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둘째 노부인은 노부인의 억압으로 줄곧 잘 지내지 못했기에 내놓을 수 있는 물건이 많지 않았다. 이 한 쌍의 용과 봉황이 새
양 마마는 둘째 노부인이 좋아하는 제비집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와 웃으며 말했다."둘째 노부인 먹을 복 있으십니다. 제비집을 한참 달이지 않다 오늘 마침 달였는데, 이렇게 오셨잖습니까."양 마마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지금은 매일 끓여서 서우에게 약과 함께 먹이며 목을 치료하고 있다.제비집은 공가에서 조금 보내왔고 북명왕부의 노 집사도 보내왔다. 게다가 진복도 사와 집에 많았다.둘째 노부인은 양 마마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난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니, 맛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왔다. 요즘 기침을 하고 있는데, 제비집 한 그릇을 얻어 마셔서 오늘 저녁에는 기침하지 않을 것 같구나."송석석이 관심 어리게 물었다."아직도 기침하고 계십니까? 지난번에 서우를 보러 오셨을 때도 기침하는 것을 들었습니다.""종일 집안이 우중충하고 시끄러우니, 나을 리가 있겠느냐?"둘째 노부인은 숟가락으로 도자기 그릇 속의 제비집을 가볍게 휘저으며 수심에 찬 얼굴에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북망이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온다 해도 이방과 말다툼을 하며 손찌검하니… 북망이도 참 참을성이 좋더구나. 때려도 참고 욕을 해도 참고, 이방이 종일 난리를 피워도 참고 있다. 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이방을 따를 수밖에 더 있겠냐?""그리고."둘째 노부인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송석석을 바라보았다."만약 이방이 찾아온다면, 절대 만나지 말거라.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송석석이 고개를 저었다."저를 찾아올 리가 있겠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왜 그럴 리가 없겠느냐? 두 사람이 말다툼할 때 이방이 너를 찾으러 가겠다고 했었다.""저를 왜 찾는 것입니까?"송석석은 충격에 휩싸였다."저는 이미 그들과 관계가 없습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느냐? 도저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더구나."둘째 부인은 기침을 두 번 하더니 이내 제비집부터 마시고 내려놓았다."두 사람이 저리 싸우니 온 집안이 편히 지내지 못하고 있다. 전북망을 끌고 너를 찾아 분명
소씨 가문의 반응을 보니, 진성의 다른 가문들이 평소에 그들과 친밀하지 않아 이 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만자는 소 부인이 놀란 틈을 타 말을 이었다.“우리 부군이 가장 아끼는 조카가 바로 지아인데, 큰 억울함을 당해서 태후마마께 아뢰려던 걸 내가 간신히 말렸소. 지아를 때린 자가 스스로 나서서 벌을 받으면 그만인 것을!”왕이장은 진성에서 여러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시만자의 부군, 만종문의 제자, 병부 효고사, 그리고 진성 내 만종문 산업의 주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와 왕씨 가문의 관계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지만, 이럴 때 활용해도 괜찮을 만큼 중요했다. 태후마마가 만종문의 임 사부를 존경하는 점을 생각하면, 이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없을 터였다.시만자는 말을 마치고 혼자 의자에 앉았는데, 그 표정은 송석석과 다를 바 없었다. 이때 소씨 가문은 비로소 섭정왕비가 직접 소 세자를 데려온 것도 왕지아를 위한 조치임을 깨달았다. 소 부인은 왕지아에게 이토록 강력한 배경이 있는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아이고, 제가 소인의 말만 믿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네요…”소 부인이 급히 사죄했다.“반드시 뒤에서 함부로 지껄이던 자들을 찾아내 왕씨 아가씨에게 사과하겠습니다. 당장 사람을 데리고 가서…”그러자 시만자가 차분히 말을 끊었다.“처벌할 마음이 있는데, 왕지아의 눈을 더럽힐 필요까지 있겠소? 백작부에서 처벌하지 못한다면, 마침 섭정왕비께서 사람을 데리고 오셨으니 소 세자를 처벌할 때 함께 처리하면 되겠소.”소 백작은 급히 수긍하며 하녀와 종들을 불러내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넘겼다. 송석석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소 세자가 덕행에 흠이 있는 탓에 작위 수여는 불가능할 것이오. 그리고 오늘 누군가 경위부에 고소한 이상 내가 방관할 수도 없소. 대충 몇 대 맞고 넘어가려 한다면 법이 왜 있겠소?”시만자는 속으로 생각했다.‘화풀이하러 온 게 아니었나? 소씨 가문 때문에 지아와 소민이를 갈라놓을 순 없는데…’소 부인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만자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소씨 가문이라는 작은 백작부가 감히 이렇게 날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동안 막돼먹은 여자를 많이 보았지만, 귀족 가문의 막돼먹은 여자는 처음이었다.왕지아가 끌려 나가 뺨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시만자는 소씨 가문의 대문을 박차고 사람들을 끌어내고는 한바탕 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왕지아와 왕청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르니 그들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그렇게 시만자가 급히 왕씨 가문으로 달려갔을 때, 왕지아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또 왕청여가 하녀들을 모두 내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곧장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왕청여가 목을 매려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 또한 화가 나서 그의 뺨을 때렸다.최근 몇 년간 자신의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왕청여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자 공방에서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 없었다.왕청여를 때린 후, 시만자는 즉시 소씨 저택으로 향했다. 소씨 저택에 도착하자 석석이 현갑군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의심이 앞섰다.‘석석이는 관직이라 복수 같은 걸 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송석석은 관복을 입고 정좌에 단정히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필명이 그의 곁을 따르고 있었고, 몇 명의 현갑군이 소민의 형인 소 세자를 붙잡고 있었다.백작부의 모든 어르신과 도련님들이 모여 있었고,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주모인 소 부인도 나와 있었다. 상황을 보니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시만자는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미리 말이라도 해줄 것이지. 이러니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백작과 소 부인이 송석석에게 굽실거리며 사정하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보니 소 세자가 부유한 상인의 양첩과 결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걸렸고, 자신의
왕청여에게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게 한 것은 방시원이 돌아올 때도, 전북망과 이혼했을 때도, 왕씨 가문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후회한 것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였다.왕씨 가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왕청여는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니 자신에게 잘못이 많음을 깨닫고 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고, 고생한 자신을 비난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형수님이 자신의 오만한 성격 때문에 고생했음을 알면서도, 과거를 들추며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다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왕지아는 안백작부의 도련님 소민과 정이 들었다. 비록 평서백 작위는 없어졌지만, 형수가 선제의 찬사를 받아 고명을 얻었고 가업 경영에도 능숙했으며, 셋째 동생이 시씨 가문의 딸 시만자와 결혼해 왕씨 가문은 여전히 병부에서 중용되고 있었다. 두 가문의 위상은 비슷했다.그러나 소민이 어머니에게 왕지아와의 혼인을 청하자, 소 부인은 강하게 반대했고, 심지어 만나는 것조차 금지했다. 비록 소민은 세상에 없는 효자이지만 왕지아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녀 외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하겠다고까지 하며 반항했다. 이에 소 부인은 그를 감금해버린 것이다.왕청여는 아마 소 부인이 방문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소 부인은 하인들을 대동하고 왕씨 저택에 난입해 최씨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감히 우리 아들을 넘보다니! 윗사람이 바르지 못하니 아랫사람도 바르지 못한 건가? 당신 시누이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하게 굴더니, 이제는 딸까지 그 꼴이로군! 어린 나이에 남자를 유혹하고, 우리 아들에게 부모를 협박하는 법까지 가르치다니! 이 가문에는 악랄한 자들밖에 없는 것이냐?!”말을 마치자 하인들에게 저택을 부수게 했고, 왕지아를 끌어내 사람들 앞에서 뺨을 때리며 머리와 얼굴에 침을 뱉었다. 왕청여와 최씨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