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아민도 무언가 떠올랐는지, 얼굴이 굳어졌다.이내 그녀가 위로하듯 말했다.“아씨, 세자는 군자시잖아요. 아씨를 건져 올리시자마자 옷으로 감싸 안으셔서 정말이지 눈길 한번 허투루 주지 않으셨어요. 지금 입고 계신 옷도 세자께서 제게 갈아입히라 명하신 거고요.”“세자께서 위급함을 틈타 허튼짓을 하실 분은 아니니,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그제야 유소영은 고개를 숙여 제 몸을 살폈다. 남자의 침의였다.설마 세자의 옷인가?머릿속이 순식간에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졌다.……방 밖.고준형은 잠시 찬 바람을 쐬고 있었다.그의 눈은 깊고 칠흑같이 어두웠다.죽을 다 먹인 아민이 밖으로 나와 공손히 예를 갖췄다.“세자.”“부인은 좀 괜찮아졌느냐.” 그는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예.”고준형은 잠시 망설이다 방 안으로 들어섰다.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침상 휘장 안의 유소영은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려 얼굴을 반쯤 가렸다.마치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듯한 기색이었다.고준형은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고 사정을 대강 짐작했다.“사람을 구하는 게 급해 아무것도 보지 못했소.”빈말이 아니었다.그 당시엔 곁눈질할 겨를조차 없었으니까.그러나 그녀를 안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옷으로 감싸긴 했으나 어쩔 수 없이 살결이 얼핏 비치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물론 고준형은 그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설령 조금 보았다 한들 고의로 희롱하려던 것은 아니었으니.굳이 말해서 서로 어색해질 필요는 없었다.유소영이 슬그머니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그를 바라보며 애써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제 불찰로 그리된 것이지, 결코…… 아무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자.”고준형은 그녀를 깊은 눈으로 응시하며 당부했다.“다음부턴 탕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마시오. 또다시 위험한 일이 생길까 염려되니.”유소영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아민에게 물어보니, 부인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욕실에서 나오질 않았다고 하더군.”유소영이 눈을 들자 남자의 탐색하
목욕통 안.유소영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그녀가 아민에게 물었다. "너도 이상하다 생각지 않니?"아민이 목욕통에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부으며 되물었다."아씨, 어디가 이상하다는 말씀이세요?""내 옷가지들이 언제 옮겨져 왔는지, 그리고 이 꽃잎들도 그렇고……."유소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 욕실 말이야. 저번에 왔을 때는 없었지 않아?"아민이 목을 긁적였다."저는 처음 와봐서 잘 모르겠어요.""하지만 아씨,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욕실이 새로 생겼다 해도, 아씨를 위해 지은 걸 수도 있잖아요.""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거야." 유소영이 중얼거렸다.세자는 어째서 굳이 욕실을 새로 지었을까?그녀는 입술을 달싹였다. 왠지 모르게 입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반 시진 후.아민이 시간이 얼추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열었다. "아씨, 그만 나오셔요."하지만 아씨의 표정은 불안해 보였고,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했다."아씨?"유소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눈을 들어 아민을 바라보았다."가서 세자께서 주무시는지 보고 와."아민은 의아해했다.아씨가 왜 저러시지?잠시 후, 아민이 돌아왔다."아씨, 세자께선 아직 주무시지 않아요.""음…… 그럼 조금 더 있다 나갈게. 급할 것 없으니." 유소영이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어쩌면 제가 지나치게 예민한 탓인지도 몰랐다.그러나 자신을 위해 준비된 이 모든 것들이 생각할수록 불안하게 만들었다.선향 한 대가 꺼질 때까지의 시간이 흐른 후.아민이 슬슬 걱정스러운 기색을 비쳤다."아씨, 너무 오래 계시면 안 돼요."유소영의 얼굴색이 유난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그녀는 목욕통 가장자리를 붙잡고 일어서려 했다.그러나 일어서려는 찰나, 심장이 겉잡을 수 없이 뛰고 온몸에 힘이 빠지더니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다.첨벙!다리에 힘이 풀린 유소영이 그대로 미끄러져 내렸다……."아씨!"아민은 막 몸을 닦을 깨끗한 면포를 가지러 몸을 돌렸던 참이었다
"일석이조라니요?" 왕씨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영 노부인은 찻잔을 내려놓았다."선화 뱃속의 아이를 정당하게 없애면서, 민씨 뱃속의 것까지 처리할 수 있지 않겠느냐."왕씨는 미간을 좁혔다."어머님께서 말씀하시는 민씨가 후작부의 그 첩실입니까?"영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후작부.고장훈이 돌아오자, 임유정은 비로소 잠잠해졌다.그녀는 고장훈을 꽉 끌어안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부군, 제가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저…… 저도 제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제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오직 부군뿐이에요.""어찌하여 부군마저 저를 도와주지 않으시는 건가요…… 제게 진수더러 그 아이의 어미가 되게 하라시다니, 저를 경계하시는 겁니까?""전 그저 아들을 원했을 뿐인데...... 어찌 이리도 힘든 걸까요.""영씨 가문 사람들이 먼저 약조해 놓고 말을 바꾼 겁니다. 부군, 제발 저를 외면하지 마세요. 저를 버리지 마세요……"임유정이 비통하게 흐느끼자, 고장훈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그는 임유정을 가볍게 밀어내며 정색하고 말했다."부인, 부인도 내 처지를 이해해 주시오.""많은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소.""내가 영선화를 맞이하고 싶어서 그랬겠소? 나도 그 여자를 보면 온몸이 불편하오.""그 여자는 부인의 손가락 하나만도 못한 사람이오.""그러나 어쩌겠소, 외숙 쪽에서 억지로 혼인을 강요하시는데……"그는 말할수록 비통했다.임유정은 마음속으로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저리도 억울하다 말하지만, 그가 비참할 게 뭐란 말인가?임유정은 겉으로 지극히 현숙한 체했다."부군, 이해합니다. 부군도 쉽지 않으시다는 걸 알아요.""영선화의 그 아이, 저도 더는 원치 않아요.""부군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고장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부인, 정말 고맙소."임유정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오늘 밤은 진수가 부군을 모시게 하는 게 어떨까요?"고장훈은 잠시 멍해졌다.결국 유정은 아들을 원하는 것이었
고장훈이 걸음을 멈칫했고, 임유정이 유령처럼 스산하게 고개를 돌렸다."영선화가 부군의 아이를 가졌어요."고장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알겠소."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마치 자신이 그 아이의 아비가 아닌 제삼자인 것처럼, 그저 막막하고 어쩔 줄 모를 뿐이었다.자신이 이토록 빨리 아비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더욱이 자신의 첫 아이가 영선화의 배에서 나오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임유정은 가위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이할 정도로 침착하게 그에게 다가갔다.그녀는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부군, 제게 약조하셨지요. 제게 아들을 하나 주겠다고, 설령 다른 여인의 배를 빌려 낳은 아이라도 제게 주겠다고 말입니다…… 그 약조, 여전히 유효한가요?"그녀의 말투는 유난히 부드러웠고, 눈빛 또한 가련하고 연약해 보였다.고장훈은 그녀의 실망과 슬픔을 감지했다."부인, 내 말을 들어보시오. 부인과 한 약조는 잊지 않았소. 허나 지금은…… 나 또한 영선화가 회임할 줄은 몰랐소. 내게 시간을 좀 주시오. 어머니께 가서 어떻게 하실 작정인지 여쭈어보고 오겠소.""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시오. 그때 다시 자세히 이야기하지. 괜찮소?"임유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 그녀에게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강하게 나갈 처지가 아니었다.그래서 그녀는 가련한 눈빛으로 고장훈을 바라보았다."예, 부군. 기다리겠습니다."……영향원. 고장훈이 고 부인을 찾아가 묻자, 고 부인은 그저 자신의 계획을 말해줄 뿐이었다."그 아이에게 어미를 만들어 주실 생각이시라면, 차라리 유정에게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네가 정신이 나갔느냐? 임유정에게 맡기면 그 아이를 다시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으냐? 진수에게 맡겨야지. 애초에 기회를 봐서 선화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고장훈은 이것이 옳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영선화보다는 임유정이 억울함을 감내해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제가 유정에게 잘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나 왕씨는 일말의 행운을 바라고 있었다.“아니야, 그렇게 운이 없을 리가 없어요! 어쩌면…… 어쩌면 그날 장훈이가 제때 구해주어서 선화가 그 마부에게 당하지 않았을 수도…….”영 노부인의 눈에 원망과 분노가 서렸다.“나도 그러길 바란다만, 사실이 어떤지는 내가 다 알고 있다.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어.”왕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그녀는 시어머니가 사무치게 미웠다!시어머니가 쓸데없는 꾀를 내지만 않았어도 선화가 그런 일을 당하지는……영 대인은 그나마 조금 침착함을 되찾고 아내 왕씨를 부축했다.“그만! 일단 싸우지들 마십시오! 만약 그렇다면, 그 아이는 당장 지워야 합니다!”왕씨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맞아요, 맞아요, 남겨둘 수 없어요…… 그 아이는 안 돼요! 당장 약을 지어 오라 하겠습니다!”다행히 아직 큰 사단은 나지 않았으니!영 노부인은 답답하다는 듯 화를 냈다.“이제 와서 약을 지어봤자 무슨 소용이냐!”“이 미련한 것아, 진작 내게 알렸어야지! 이미 후작부까지 다 알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아이를 지우겠다 하면 그들에게 뭐라 설명할 텐가?”영 노부인은 꽤나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선화와 마부의 일은 친딸인 고 부인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어차피 출가한 딸은 남이나 다름없으니.왕씨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후작부에서는 이미 선화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다. 방금 두 집안이 상의한 것도 아이를 지키기 위해 혼례를 미루자는 것이었는데, 돌아서서 아이를 지워버린다면 의심을 살 것이 분명했다.선화가 그 마부와도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후작부가 알게 해서는 안 됐다.왕씨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어머님, 제발 선화를 도와주세요!”빌어먹을 노망난 늙은이! 저 늙은이만 아니었어도 선화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영 노부인은 기가 막혀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었다.그녀는 왕씨를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네 이년! 도움은커녕 일만 망치는 쓸모없는
고준형의 어조는 침착했다.“항렬로 따지면 저는 아랫사람이고, 신분으로 보면 뱃속의 아이의 큰아버지입니다. 어찌 처리할지는 제가 나설 일이 아닙니다.”그 냉담한 말에 고 부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왕씨는 그 즉시 안색이 변하며 조급해하기 시작했다.“동서, 뾰족한 수가 없다면 이 아이는 지우는 게 낫겠네!”그 말을 들은 고 부인은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안 됩니다! 형님, 절대 그런 생각 마십시오!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압니다. 안심하세요, 이 일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영 대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말은 쉽지,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거냐? 네가 결정을 내릴 수나 있어?”고 부인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이렇게 하죠. 혼례를 미루고 선화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다른 어미를 찾아주는 겁니다. 어떻습니까?”왕씨는 고 부인의 의중을 눈치채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누구를 찾는다는 게야?”“장훈이에게 통방이 하나 있는데, 억지로 들인 아이라 정을 주지 않습니다. 선화의 아이를 그 통방의 소생으로 꾸며 명분을 만들어 주는 거죠. 훗날 적당한 기회를 봐서 다시 선화 품으로 돌려보내면 됩니다. 그러면 양쪽 다 문제없을 테니, 어떻습니까?”왕씨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원래 계획대로라면 선화의 명예가 걸린 일이니 아이를 지우는 게 최선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후작부의 두 아들에게 자식이 없으니, 선화의 뱃속 아이가 장손이 될 가능성이 컸다.아이를 지킬 방법이 있다면 시도해 볼 만했다.하지만 왕씨는 여전히 우려스러웠다.그녀는 고의로 물었다. “동서, 다시 묻겠는데, 정말 동서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고 부인은 고개를 돌려 고준형을 바라보았다.“준형아, 네 생각은 어떠냐?”후작 나으리가 저택에 안 계시긴 하지만, 설령 계신다 해도 준형이가 된다고 하면 반대하지 않으실 터였다.고준형은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저희는 모두 어머니의 뜻에 따르겠습니다.”영 대인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저 여인들은 살려주십시오.”그녀가 말했다.고준형의 시선은 무심한 듯,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그녀는 늘 이렇게 그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했다.그는 그녀가 평강방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여 죄를 사하여 달라 사정하러 올 줄 알았다.그러나 그녀는 사정은 하지도 않고 오히려 가장 나쁜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고준형은 시선을 옮겨 아래에서 손님들을 받고 있는 기녀들을 바라보았다.잠시 후, 그가 말했다.“난 이 일을 모른 척 넘어가줄 수 있소. 그러나 10일 안에 판매한 모든 장치들을 회수해야 할 것이오.”유소영은 미간을 확
그의 시신은 이미 강주 고향 땅에 묻혔기에 유소영은 제사조차 지낼 수 없었다.그녀는 왕불지의 서첩을 챙겨 추엽 산장을 떠났다.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그녀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 “아씨.” 아민은 혹여 그녀가 나쁜 생각을 할까 봐 화제를 돌렸다. “여태 아무것도 못 드셨잖아요. 마을에서 좀 쉬다가 다시 갈까요?” 유소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입맛도 없었고 머릿속엔 오라버니와 언니의 모습만이 가득했다. 황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성문에는 도적을 잡기 위해 검문이 한창이었다. 그녀가 탄 마
유씨 저택.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유소영은 그림 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다.유 대감은 그녀의 주변을 서성이며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마침내 복구를 끝낸 그녀가 고개를 들자, 그는 성큼 다가가서 조심스레 물었다.“오늘 화등절인데 외출은 안 할 생각이니?”그는 딸의 괴팍한 성격을 알고 있었다.장사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외출하는 것이 아니면 나머지 시간에는 집에서 약초를 정리하거나 그림이나 서예를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그녀가 어렸을 적에는 여가생활이 풍부했으면 해서 거금을 들여 스승을 모시고 그림과 악기, 서예 등을 가르쳤고 기마
유소영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눈앞에 우뚝 선 사내를 바라보았다.고장훈도 멈칫하며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듯, 사내를 응시했다.“혀… 형님?”고준형은 온화하지만 맏형으로서의 위엄이 담긴 눈빛으로 고장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고장훈은 분노에 사로잡힌 눈으로 고준형의 뒤에 있는 유소영을 가리켰다.“제가 듣기로 능연각의 물건에 문제가 있어 제 부인을 해쳤다고 합니다!”그는 유소영이 질투에 사로잡혀 그와 그녀의 아이를 해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처음부터 유소영은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동침도 거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