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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7화

Penulis: 초향
노엘의 괴이한 웃음이 순간 뚝 끊겼다.

수화기 너머는 숨 막히도록 조용했다. 들리는 건 점점 거칠어지는 노엘의 숨소리뿐이었다.

노엘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뒤쪽을 몇 번이나 훑었다.

주용화가 허세를 부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노엘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순간, 노엘의 등골에는 서늘한 공포가 번졌다.

‘왜... 저 인간이 이걸 알지?’

노엘은 이내 정신을 다잡고 차갑게 웃었다.

“네가 그 애를 구할 생각이 없었으면 이 전화를 할 리가 없겠지. 도망치면 그만 아닌가?”

주용화의 목소리는 여전히 느긋했다.

“도망치면 되죠. 근데 저도 이 편한 고연봉 생활이 조금 아쉬워서요.”

주용화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연봉은 챙기고 안전하게 살 수 있으면 제일 좋고... 그게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죠. 다시 칼끝을 핥으며 살면 됩니다. 그래서 전화한 건 맞아요. 그 애를 구하고 싶어서요.”

주용화가 낮게 웃었다.

“어른들의 원한이야 어른끼리 풀어야죠. 애한테까지 뒤집어씌우는 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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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연정미는 그 모든 걸 하지율에게 중간에서 빼앗긴 셈이었다.어젯밤에 있었던 레이싱도 어쩌면 하지율이 일부러 짜 놓은 판일지도 몰랐다.그 트랙 역시 몰래 수없이 연습해 봤을 가능성이 있었다.일부러 다른 선수들에게 포위당하게 만든 뒤 자신이 약자인 것처럼 보이게 해서 주용화가 보다 못해 나서도록 유도한 것일 수도 있었다.‘진작 알았더라면 나도 적당히 약한 모습을 보여 줄 걸 그랬어...’연정미도 바보가 아니었다.주용화가 하지율에게 흥미를 보인다는 걸 어떻게 눈치채지 못했겠는가.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다급하게 주용화를 따로 불러내 상황을 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얼마 전에 누군가 카페에서 하지율과 손형원이 함께 있는 사진을 찍었다.사실 이런 사진은 지난 3년 동안 수없이 봐 왔다.손형원이 운영하는 고양이 카페의 존재도 진작 알고 있었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연정미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주용화에게 하지율의 ‘진짜 모습’을 보여 줘서 흥미를 잃게 만들고 나아가 완전히 싫어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그래서 연정미는 단서현과 짜고 방금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심지어 하지율과 손형원의 일을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올렸다.어젯밤 하지율의 레이싱 관련 화제도 아직 식지 않은 상태라 지금 이 뉴스가 올라와도 전혀 뜬금없어 보이지 않았다.주용화가 역시나 관심을 보이자 연정미는 눈빛을 가라앉히고 휴대전화를 건넸다.“딱히 대단한 뉴스는 아니에요. 언론에서 괜히 억측하는 걸 수도 있고요.”주용화는 휴대전화를 받아 단서현이 보낸 사진을 한 장씩 넘겨봤다.연정미는 줄곧 주용화의 표정을 살폈다.하지만 주용화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눈썹조차 찌푸리지 않은 채, 마치 모르는 사람의 뉴스를 보는 것처럼 담담했다.잠시 후 주용화는 휴대전화를 다시 연정미에게 돌려줬다.연정미는 주용화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의견조차 한마디도 하지 않자 막 질문하려 했다.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화야 씨, 연정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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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용화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연정미 씨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요.”연정미는 속으로 생각했다.예전의 주용화는 자신에게 이러지 않았다.‘이게 정말 첫사랑의 힘이라는 건가?’연정미는 주용화의 맞은편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용화 씨, 뭐 먹고 싶어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그러자 주용화가 대답했다.“일 얘기부터 하죠. 식사는 그다음에 하고요.”너무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연정미는 순간 주용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뻔했다.연정미는 몇 초간 조용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좋아요. 그러면 일 얘기부터 해요.”연정미는 고개를 들어 주용화를 바라봤다.무언가 묻고 싶으면서도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용화 씨, 어제 지율이가 뭐라고 했어요?”주용화는 낮고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별말은 없었어요. 제가 찾던 사람이 임채아라고 하더군요.”연정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지만 속으로는 차갑게 웃었다.하지율은 결국 자신이라고 인정하지 못했다.역시 연정미의 예상이 맞았다.연정미의 계획이 제대로 성공한 셈이었다.만약 하지율이 주용화를 찾아간 첫날부터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인정했다면 연정미에게도 어느 정도 위협이 됐을 것이다.그런데 하지율은 오히려 그 사람이 임채아라고 말했다.그렇다면 나중에 와서 하지율이 사실은 자신이었다고 말을 바꿔도 주용화가 믿어 줄 리가 없었다.연정미는 오늘 이곳에 오기 전부터 마음을 정해 둔 상태였다.만약 주용화가 자신을 의심한다면 최악의 경우 같이 망하면 그만이었다.주용화가 최면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부 폭로해 다시 병이 도지도록 만들 생각도 있었다.어차피 주용화를 이용해 자신을 돕게 만드는 것도 아예 망가뜨리는 것도 연정미에게는 둘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였다.주용화를 속여서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었다.그게 안 된다면 복수라도 하면 됐다.연정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임채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요.”그러다가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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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용화가 떠난 뒤, 고지후는 하지율에게 재결합을 부탁한 적이 있었고 정기석도 한동안 하지율을 진지하게 따라다녔다.하지만 하지율은 모두 거절했다.너무도 단호하게 선을 그었고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결국 고지후와 정기석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손형원은 하지율에게 따로 마음을 표현하거나 적극적으로 다가간 적이 없었다.하지율에게 상처를 준 그날부터 손형원은 자신이 이미 하지율과 함께할 자격을 잃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율은 자신을 상처 입힌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않았다.손형원은 하지율이 싫어할 만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가끔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예전에 하지율과 대화가 잘 통했던 것도 단순히 취향이 비슷해서만은 아니었다.두 사람은 생각하는 방식에도 닮은 부분이 있었다.그래서 손형원은 잘 알고 있었다.하지율은 차라리 계속 혼자일지언정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맞춰 살 사람은 아니었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 부러움과 질투라는 감정이 독처럼 손형원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그건 손형원이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것이었다.그래서 더 간절하게 갖고 싶었다.하지만 동시에 손형원은 평생 가도 다시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손형원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그러면 전부 기억해 낸 건 아니고 일부만 떠올랐거나 하지율 씨를 의심하고 있는 거라면요?”그 순간, 하지율의 미간이 살짝 움직였다.그럴 가능성도 분명 있었다.손형원은 차분하고 깊은 눈빛으로 말했다.“사실 주용화 씨가 기억을 되찾았는지 확인할 방법은 간단해요.”하지율이 손형원을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방법인데요?”“어제 만났을 때 보니 저한테 적의가 상당히 강했어요. 정말 뭔가 기억해 냈다면 그냥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하지율은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듣고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둘이서 일부러 연기라도 하자는 거예요?”손형원이 고개를 저었다.“굳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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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경기에서 진 것도 모자라 너무 처참하게 패해 버린 탓에 연정미의 열성팬들조차 차마 편을 들어 줄 수가 없었다.하지율은 기사 몇 개만 훑어본 뒤 뉴스를 꺼 버렸다.유소린에게 답장을 보내고 나서야 하지율은 잠자리에 들었다.다음 날, 하지율은 손형원의 전화를 받았다.딱히 의외는 아니었다.어제 손형원이 주용화를 만났으니 분명 자신에게 연락할 거라고 예상했다.“하지율 씨.”손형원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차분했다.“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오늘 시간 괜찮아요?”요즘 하지율은 크게 바쁘지 않아 개인 시간이 꽤 많았다.하지율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네. 시간 괜찮아요.”두 사람은 한 고양이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손형원이 운영하는 곳으로 카페 안에는 귀한 품종의 고양이들이 여러 마리 있었다.위치도 외지고 조용해서 하루 방문객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애초에 손형원이 이 카페를 연 것도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었다.카페 직원도 두 명뿐이었다.손형원은 시간이 날 때면 자주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다.가끔 손님이 몰려 직원들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면 직접 서빙을 하기도 했다.아마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자신들에게 커피를 가져다준 남자가 손씨 가문의 가주라는 사실을 말이다.하지율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젊고 예쁜 여자가 얼굴을 붉힌 채 손형원에게 분홍색 봉투 하나를 내밀고 있었다.손형원은 봉투를 한번 바라봤을 뿐 손을 뻗어 받지는 않았다.대신 담담하게 무언가를 말했다.그러자 여자의 얼굴에는 금세 실망한 기색이 떠올랐다.그래도 손형원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여전히 좋아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결국 여자는 몇 걸음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며 떠났다. 문 앞까지 가서도 아쉬운 듯 다시 한번 손형원을 돌아봤다.손형원의 품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손형원이 고개를 숙여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면 차갑던 눈매에도 어렴풋이 부드러운 기색이 감돌았다.카페에는 값비싼 품종의 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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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하지율이 물었다.“제가 안 된다고 하면 포기할 거예요?”하지율도 자신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주용화는 기억을 잃은 상태였고 연정미가 알고 있는 정보는 주용화보다 훨씬 많았다.서로 끝까지 몰아붙이는 상황이 되면 변수가 너무 많았고 하지율은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주용화는 말없이 하지율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납득시킬 만한 이유를 하나만 대면 포기하겠습니다.”하지율의 심장이 순간 덜컥 내려앉았다.주용화를 설득할 수 있는 이유는 전부 입 밖에 낼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하지율은 주용화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냥 두 사람이 계속 만나는 게 싫어요.”그러자 주용화의 잘생긴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그럼 이렇게 이해해도 되는 건 가요? 지율 씨가 질투해서 제가 다른 여자와 가까이 지내는 걸 보기 싫은 거라고요.”주용화가 내미는 선택지에는 언제나 정답이 없었다.하지만 하지율이 대답하기도 전에 주용화가 적당한 해결책이라도 떠올린 듯 말했다.“그러면 이렇게 하죠. 다음에 연정미 씨가 저를 만나자고 하면 지율 씨도 같이 부르겠습니다. 재미도 보고 지율 씨의 요구도 들어주고요. 둘 다 만족하면 좋잖아요?”주용화는 하지율을 바라봤다.표정에는 거절하기 어려울 만큼 묘하게 억울한 기색까지 어려 있었다.“지율 씨, 오늘 부탁한 건 제가 거의 다 들어드렸잖아요. 이제 저에게 남은 거라고는 이런 작은 재미 하나뿐인데... 설마 이것까지 뺏으실 겁니까?”하지율은 더 이상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용화는 온갖 핑계를 대며 자신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하지율은 주용화를 설득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거라고 생각했다.어쩌면 주용화가 일부러 곤란하게 만들거나 가지고 놀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그런데 오늘의 주용화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말을 잘 들어줬다.오히려 그런 점이 하지율을 불안하게 만들었다.하지율은 속으로 혹시 주용화가 뭔가 더 큰 걸 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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