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비원이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아가씨, 초대장을 보여주세요.”1년에 한 번밖에 안 열리는 이 경매회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이 경매회에는 부자거나 권력이 있는 명망이 높은 분만 참가할 수 있었다. 물론 경매품은 모두 값비싼 보물이다.만약 불순한 목적을 가진 사람이 경매장에 침입하여 상류 사회의 사람들을 해치거나 보물을 훔친다면 그 누구도 책임을 질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의심스러운 인물은 반드시 엄격하게 대처해야 했다.장하준이 하지율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서 심문해보세요! 인정하지 않으면 강제 수단을 써도 괜찮아요.”주변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무슨 상황이지? 이혼당한 여자라고? 돈 많은 남자를 꼬시려는 여자라고? 정기석 대표님의 아내가 아니었나?’하지율은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과 자신을 둘러싼 경비원들의 불친절한 눈빛을 직면했지만 여전히 차분했다.그녀는 침착하게 가방에서 초대장을 꺼냈다.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제 초대장이에요.”장하준은 잠시 멍해졌다가 곧 다시 소리쳤다.“위조품이에요! 이 초대장은 분명 위조된 거예요.”경비원이 하지율의 초대장을 받아 기계에 검증하자 검증이 통과되었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경비원의 얼굴이 누그러졌다.장하준은 이 광경을 보고 숨을 들이마셨다.“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절대 불가능해요!”그는 곧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하지율을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분명 다른 분의 초대장을 훔친 거예요.”이번에는 하지율이 입을 열기 전에 남자의 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장하준 씨, 너무한 거 아니에요?”장하준이 고개를 돌리자 정기석의 비웃는 듯한 눈빛과 마주쳤다.“내 친구가 여기에 올 자격이 없다고요? 초대장을 훔치다니... 지금 저를 깔보는 거예요?”정기석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명확히 들을 수 있었다.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친구라고? 그러니까 정기석 대표님의 아내가 아니었네.’정기석이 공개적으로
현성의 인정까지 받게 된다면 그녀는 하이현 여사를 뛰어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것이다.임채아가 차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되어 또 다른 차가 경매장 문 앞에 도착했다.사람들은 번호판에 여러 개의 8이 박힌 차 번호를 보고는 숨을 들이마셨다.“어머, 이거 정기석 대표님의 차 아니야?”“정기석 대표라고? 누군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분이야.”“정씨 가문은 줄곧 해외에서 사업을 벌여왔어. 그러니 네가 못 들어본 것은 당연한 거야. 올해 정 대표님이 국내로 진출했는데 고성 그룹에 밀리지 않는 실력이야. 아쉽게도 비밀 결혼에 아이까지 있다더라. 안 그랬으면 내 딸을 시집보내고 싶어.”“비밀 결혼? 고지후 대표님도 비밀 결혼했던데... 뭐야? 요즘 비밀 결혼이 유행이야?”“유행은 개뿔. 비밀 결혼은 보여줄 수 없거나 보면 안 되는 경우잖아. 정상적인 집안에서 왜 숨기겠어?”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정기석의 손 위로 하얀 손이 살포시 놓였다.그와 동시에 하이힐을 신은 길고 가녀린 다리가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이 장면을 지켜봤다.그 다리만으로도 이미 상상에 잠기게 만드는데, 이 다리의 주인은 얼마나 아름다워야 이렇게 예쁜 다리와 어울릴까?조금 전까지 임채아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은 순식간에 새로 도착한 여인에게로 쏠렸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차에서 내릴 여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때, 차 안의 여인이 마침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이 여자는 키가 컸고 단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눈썹과 눈매는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풍겼고 이목구비는 수묵화처럼 담백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자고로 미인은 뼛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아름다움에 있다고 했다. 이 여자는 얼굴은 물론 각선미까지 완벽해 아름다운 기품이 흘러넘쳤다. 보면 볼수록 점점 빠져드는 분위기를 타고난 것이다.“세상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답네. 어느 가문의 아가씨야? 왜 본 적 없는 거야?”“정기석 대표님이랑 같이 왔으니까... 혹
검은색 고급 차가 경매장 문 앞에 도착했다.문이 열리며 우아하고 고귀한 분위기를 가진 남자가 천천히 내렸다.이어 그는 손을 내밀어 차 안에 있던 여인을 부드럽게 끌어냈다.곧 달빛처럼 은은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아름다운 몸매가 드러났다. 그녀는 단정하게 머리를 올려 고운 이마를 드러냈는데 청초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도드라졌다.“고 대표님과 임채아 씨야!”누군가 그들을 알아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아이고, 정말 선남선녀네... 최혜은 씨가 반대해서 어쩔 수 없이 헤어졌다잖아. 고 대표님이 적어도 적당한 상대와 결혼할 줄 알았는데... 결국 중학교 학력을 가진, 임채아 씨보다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 여자와 결혼했대. 그때 아들을 임신하지 않았으면 고 대표님은 그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누군가 놀라며 물었다.“중학교 학력이라고? 정말이야? 고 대표님은 탑 클래스 금융대학교 출신에 박사 학위를 두 개씩이나 취득한 진정한 비즈니스 천재라며? 그런 분의 아내라 중학교 학력이라니... 어떻게 어울릴 수가 있어? 평소에 대화가 통할까?”“헐, 이거 진짜야? 고 대표님 부인에 관한 얘기는 처음 들어보네.”“최혜은 씨가 직접 말한 거야. 그러니 거짓말일 수 있겠어? 고 대표님이 부인 대신 첫사랑을 데리고 나온 건 무슨 뜻이겠어? 그 여자가 집안, 학력은 물론 얼굴도 내세울 게 없다는 얘기야.”“고 대표님은 정말 사랑꾼이야.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다니.”“그것도 임채아 씨가 너무 뛰어나서 그런 거야.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라며? A대 음악학원 출신에 국제 대회에서 상도 많이 탔다고 해. 그 촌뜨기 아내와 비교가 되겠어?”“그래, 맞아. 고 대표님 절친인 장하준 씨 말로는 고 대표님의 아내는 촌스럽고 못생겨서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없다고 했어.”“지난주 임채아 씨가 외국인들을 제치고 우승한 영상이 실검에 뜨는 걸 봤어... 와, 정말 대단하더라. 우리 Z국 사람들의 체면을 세워줬다니까.”“얼굴이 예쁘고 재능까지 갖췄어... 집안
“지후가 오늘 경매회에서 더 좋은 거로 보상해준다고 했어. 어때? 가보고 싶어?”경매회라는 말에 임채아는 살짝 흥미를 느꼈다.“어떤 경매회야?”장하준이 설명했다.“우리 S시에서 매년 열리는 경매야.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그런 흔한 거랑은 완전히 다르지. 생각해봐, 일 년에 한 번뿐인 경매인데 얼마나 많은 보물이 나올까?”장하준은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듣자 하니 평소에 볼 수 없는 진귀한 물건들도 많이 나온다더라. 나조차도... 본 적 없는 것들이야. 이번 경매에는 Z국의 절반 이상의 권력자들이 참석할 거야.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그냥 보기 위해 온다고 하더라.”여기까지 말한 장하준은 잠시 목소리를 낮추었다.“채아야, 너의 그 바이올린 오션 말이야. 지후가 이 경매회에서 낙찰받아 준 거야.”오션은 고지후가 임채아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별 선물인 셈이다.지난 몇 년 동안 임채아는 바이올린 오션으로 수많은 국제 대회에 참가해 큰 상을 휩쓸었다.물론 그녀의 실력이 뛰어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좋은 바이올린은 그녀의 재능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었다.이 이야기를 듣자 임채아는 뭔가 생각났는지 장하준에게 물었다.“하준아, 하지율 씨의 결혼 전 경력에 대해 알아봤어? 대회에 참가했거나 음악 협회에 가입한 적이 있어?”장하준은 비웃듯 입술을 삐죽거렸다.“지후랑 내가 다 알아봤는데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중퇴해서 졸업장도 없어. 지후 어머님이 말한 대로 진짜 중학교만 졸업했더라.”임채아가 생각에 잠기자 장하준이 웃으며 말했다.“채아야, 너 혹시 유소린이라는 여자의 말에 속은 거 아니야? A대 출신이라고 했지? 내가 사람을 A대에 보내어 학생들에게 직접 확인해봤는데 하지율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 하나도 없었어. 하지율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기 싫어서 거짓말을 지어낸 것이 틀림없어.”임채아가 말했다.“하지만... 확실히 실력은 있더라.”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임채아 같은 고수는 하지율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느낄
하지율이 전화를 받았다.“정기석 씨.”정기석의 낮은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흘러나왔다.“지율 씨, 정말 이번 경매에 참석하겠어요?”하지율이 대답했다.“물론이죠.”정기석이 말했다.“알았어요. 내일 밤에 데리러 갈게요.”“정기석 씨, 고마워요.”정기석은 부드럽게 말했다.“천만에요.”오늘 정시온이 집에 돌아오는 날이라 두 사람은 짧게 인사한 후 전화를 끊었다.유소린이 궁금해서 물었다.“지율아, 경매회에 가려고?”“응. 참가해본 적 없어서 이참에 구경 좀 해보려고.”유소린이 급히 말했다.“나도! 나도 갈래. 지율아, 나도 데려가 주면 안 돼? 나도 경매회에 한 번도 못 가봤단 말이야.”하지율이 빙그레 웃었다.“이미 네 초대장도 준비했어.”유소린이 감동하며 하지율을 꽉 안았다.“지율아! 역시 네가 최고야!”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간신히 호텔에 체크인했다.그러나 한밤중이 되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호텔 매니저가 죄송한 표정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죄송합니다. 두 분께서 묵고 있는 이 방은 이미 예약이 완료된 상태였습니다. 프런트 직원이 신입이라 실수를 저지른 모양입니다. 다른 분께서 예약하신 방을 잘못 배정해 드렸군요. 이미 두 분의 체크아웃 절차를 마쳤습니다. 두 분께서는 서둘러 짐을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졸려서 겨우 눈을 반쯤 떴던 유소린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뭐라고요? 한밤중에 이제 와서 방을 잘못 줬다면서 우리를 내쫓는 거예요?”매니저가 머뭇거렸다.“저기... 방값을 두 배로 환급해 드리겠습니다.”유소린이 분노를 터뜨렸다.“저희가 두 배 따위 보상을 바랄 것 같아요? 한밤중에 우리를 내쫓으면 어떡하라는 거예요? 실수로 저희에게 이 방을 내주었으면 그 사람들에게 다른 방을 안배해주면 될 거 아니에요?”매니저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호텔은 오늘 만실 상태입니다. 두 분께 양해 부탁드립니다.”“양해라뇨!”유소린이 화를 내며 매니저에게
유소린이 멍하니 말했다.“이건 어떻게 된 거지?”하지율은 눈살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들어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우리 집에 왜 압류딱지가 붙어 있는 거죠?”관리사무소의 직원이 대답했다.“하지율 씨, 현재 거주하시는 집은 소유권 분쟁이 발생하여 잠시 압류딱지를 붙였어요. 소유권 문제가 해결된 후에야 딱지를 뗄 수 있어요.”하지율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이 집은 나의 명의로 되어있고 이미 소유권 양도 절차를 완성했어요. 그러니 소유권 분쟁이 없어요.”“그게... 이 집의 이전 소유자와 그 가족들 사이에 소유권 분쟁이 있어 지금 소송하고 있어요. 하지율 씨께서 잠시 다른 곳에 머무르는 게 좋을 것 같네요.”유소린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지금 와서 소유권 분쟁이 있다고? 그동안 무엇을 한 거야?”이 집은 하지율이 Z국에 갓 돌아왔을 때 구매한 것이다.그때 그녀는 가끔 귀국했을 때 머물 곳이 필요했을 뿐, 오래 살 생각은 없어 기존 주택을 선택했다.판매자의 소유권도 명확했고 분쟁이 없어 그녀는 집주인과 세부 사항을 확인한 후 빠르게 소유권 이전 절차를 완료했다.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소유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하지율은 원래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유소린이 제안했다.“지율아, 오늘은 일단 내 집에서 하루 자는 게 어때?”하지율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택시에 막 올라탔을 때 유소린의 전화도 울렸다.“뭐라고요? 저의 집에도 문제가 생겼어요?”유소린이 휴대폰을 꽉 쥐었다.“무슨 소리예요? 우리 집은 고급 인테리어까지 마친 신축 건물이잖아요?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유소린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전화를 끊은 유소린은 하지율을 향해 울상이 되어 말했다.“지율아, 우리 집도 당분간 못 들어가게 됐어.”유소린의 집은 최근 임채아 사건으로 고지후가 배상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