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
사라는 창밖을 바라보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아까 스팸이라고 둘러댄 전화. 받지 않았지만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짧은 진동과 함께 문자가 도착했다. [장재희] ― 오늘은 오지 마. 서후도 네가 오는 거 원하지 않을 테니까. 화면을 바라보던 사라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아주 잠깐이었다. 곧 휴대전화를 뒤집어 무릎 위에 내려놓자 옆에 앉은 강수가 낮게 물었다. “왜.” “뭐가요?” “표정.” 사라는 금세 입꼬리를 올렸다. “배고파서 그래요.” 앞에 앉은 정민이 돌아봤다. “민사라 씨, 조금 전에 밥 두 공기 먹었습니다.” “실장님은 눈치가 없어.” “거짓말을 좀 그럴듯하게 하십시오.” “한창 클 때잖아요.” “스물넷입니다.” 사라가 정민의 뒤통수를 향해 혀를 내밀었다. 평소의 민사라였다. 강수도 더는 묻지 않았다. 다만 휴대전화를 쥔 작은 손에 유난히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만 눈에 담았다. 다음 날 아침. 휴일인데도 사라는 일찍 눈을 떴다. 화려한 옷들로 가득한 옷장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 단정한 검은색 원피스를 꺼냈다. 옅게 화장을 마친 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잘 웃는 민사라. 아무렇지 않은 민사라. “됐어.” 집을 나선 사라는 꽃집에서 흰 국화를 사고 작은 케이크 하나를 샀다. 매년 똑같았다. 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는 것도. 그래도 가는 것도. 추모공원에 도착한 사라는 익숙한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한 자리 앞에 멈춰 섰다. 민서후. 사진 속 젊은 남자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라는 흰 국화와 케이크를 내려놓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오빠.” 손끝으로 사진을 살며시 쓸었다. “나 왔어.”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데도 사라는 익숙하게 말을 이어갔다. “엄마는 또 오지 말래. 나 진짜 미움 많이 받지?” 피식 웃은 사라가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래도 나 약속 지키고 있어.” 스무 살이 되면 함께 떠나기로 했었다. 둘이서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자고. 서후는 떠나지 못했지만 사라는 떠났다. 혼자서. “오빠가 가고 싶다고 했던 곳들은 다 갔다 왔어.” 둘이 사진을 찾아보며 가보고 싶다고 했던 도시와 바다, 지도 위에 함께 표시했던 낯선 곳까지. 3년 동안 하나씩 찾아다녔다. 사라가 사진을 향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이제 내가 오빠랑 함께 가고 싶었다고 한 곳들을 다닐 차례야.” 엄지와 검지를 살짝 붙였다. “근데 돈이 조금 부족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래서 취직했어. 월급도 꽤 많이 줘.” 한국으로 돌아온 건 여행을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다시 떠나기 위해 잠시 멈춘 것뿐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모을게.” 손끝으로 사진 속 서후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었다. “기다려, 오빠.” 짝―! 갑작스러운 충격에 사라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얼얼한 뺨을 감싸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여사님.” 장재희가 서 있었다. 충혈된 눈과 떨리는 입술. 분노와 슬픔이 뒤엉킨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민상철. 사라의 시선이 그에게 멈췄다. 일곱 살의 사라가 처음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상철은 잔뜩 눈치를 보던 아이를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우리 예쁜 딸, 아빠가 한입 줄까?’ 직접 밥을 떠먹여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쁘다고 웃어주던 사람. 밖에 나가면 작은 손을 꼭 잡고 자신의 딸이라 소개했던 사람. 사라는 그때 처음으로 오래 머물러도 되는 집이 생겼다고 믿었다. 아버지라고 불러도 되는 사람이 생겼다고 믿었다. “……아버지.” 상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뺨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라의 옆을 그대로 지나쳐 아들의 사진 앞으로 걸어갔다. 화를 내지도, 나가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민사라라는 사람이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가져온 꽃을 내려놓았다. 사라의 손이 천천히 뺨에서 떨어졌다. 재희에게 맞은 곳보다 다른 곳이 더 아픈 것 같았다. “내가 오지 말라고 했지.” 재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그런데 왜 와. 네가 무슨 자격으로 여길 와!” “오빠 기일이니까요.” “오빠?” 재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 입으로 아직도 서후를 그렇게 불러?” 사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에도 상철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저 그냥 오빠 보고 갈게요.” 사라는 다시 웃었다. 뺨이 붉게 달아오른 채 평소보다 더 환하게. “금방 갈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 웃는 얼굴을 본 재희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어떻게 네가…….” 떨리는 입술 사이로 억눌러온 말이 터졌다. “어떻게 여기서 웃어?” 사라의 미소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서후가 누구 때문에 죽었는데.” 사라의 눈동자가 멈췄다. 그리고 끝까지 돌아보지 않던 상철의 어깨가 처음으로 굳었다. 재희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내 아들이 누구 때문에 죽었는데!” 그 순간, 사라의 얼굴에서 웃음이 완전히 사라졌다.식사는 거의 끝나 있었다. 테이블 위 음식은 대부분 식었고, 처음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세 사람 사이에 놓인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사라는 여전히 서희를 용서하지 않았다. 서희 역시 사라를 용서하지 못했다. 강수와 서희 사이에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누구도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없는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세 사람은 한 테이블에 끝까지 앉아 있었다. 5년 전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서희는 맞은편을 바라봤다. 진이는 강수의 품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커다란 팔 안에 작은 몸이 완전히 묻혀 있었고, 강수는 대화하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아이의 자세를 고쳐 안았다. 그 옆에서 사라는 남은 밥을 먹고 있었다. 강수의 손이 움직였다. 사라 앞에 반찬 하나를 당겨놓았다. 사라는 쳐다보지도 않고 집어먹었다. “이거 맛있다.” “더 시켜?” “아니. 배불러.” “그만 먹어.” “방금 더 시키냐며.” “배부르다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사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서희
사라는 눈을 깜빡였다. 질문이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내가 널 이해를 왜 해?” 서희의 표정이 멈췄다. 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품에 잠든 진이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릴 뿐이었다. “……왜라니?” “왜 이해해야 되는데?” 사라는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너는 나 이해하려고 1년이나 돌아다녔다며.” “응.” “나는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너무 단순한 대답이었다. 서희가 헛웃음을 흘렸다. “너답다.” “응. 나 원래 이래.” 사라는 태연하게 국을 한 숟갈 먹었다. 조금 식어 있었다. 강수가 그걸 보고 호출 버튼을 누르려 하자 사라가 손등을 잡았다. “됐어. 그냥 먹어.” 강수는 버튼에서 손을 떼었다. 사라는 다시 서희를 봤다. “네가 왜 그랬는지 생각은 해봤지.” “그게 이해하려고 한 거 아니야?” “아니.” 사라가 고개를 저었다. “궁금한 거랑 이해하는 건 다르잖아.” 서희가 말이 없어졌다. “네가 왜 나를 밀었는지.” 사라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왜 그렇게까지 망가졌는지.” 그날의 기억은 아직 남아 있었다.
사라는 멈췄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맞은편에 앉은 서희를 한동안 바라봤다. “말했잖아.”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때 미안하다고.” 거기까지였다. 변명도 하지 않았다. 다시 사과하지도 않았다. 강수의 품에서는 진이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작은 등을 받친 커다란 손만 일정하게 움직였다. 서희가 물었다. “그게 끝이야?” “응.” 사라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컵을 내려놓으며 되물었다. “너는?” “뭐가.” “너도 있잖아.” 사라의 눈이 서희에게 똑바로 향했다. “나한테 미안할 일.” 서희의 손가락이 물컵에 멈췄다. 둘 사이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강수는 끼어들지 않았다. 이건 사라와 서희가 해야 할 이야기였다. 진이가 품에서 조금 움직이자 작은 뒤통수를 받쳐 자세만 고쳐줬다. 서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지.” 사라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많이.” “그래.” 그 한마디였다. 서희가 허탈하게 웃었다. “넌 안 물어봐?” “뭘.” “뭐가 미안한지.” 사
로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희가 돌아오고 싶었다는 말을 꺼낸 뒤 누구도 쉽게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먼저 움직인 건 사라였다. “밥 먹었어?” 서희가 눈을 깜빡였다. “뭐?” “점심.” “……아니.” 사라가 강수를 올려다봤다. “오빠.” “왜.” “같이 먹자.” 강수의 눈이 서희에게 한번 갔다가 다시 사라에게 돌아왔다. 마음에 든다는 얼굴은 아니었다. “왜.” “나 배고파.” “너만 먹으면 되잖아.” “차강수.” 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강수는 몇 초 바라보다 진이를 한쪽 팔에 고쳐 안았다. “가자.” 그걸로 끝이었다. 회사 근처 한식당의 조용한 룸으로 들어갔다. 강수 옆에는 사라가 앉았고 서희는 맞은편에 자리했다. 진이는 강수의 품에서 아직 자고 있었다. 음식이 하나씩 들어왔다. 사라는 젓가락을 들자마자 갈비찜부터 집었다. “맛있겠다.” 강수는 말없이 사라 앞에 있던 작은 접시를 당겼다. 갈비의 뼈를 발라 살만 올려놓고 다시 밀어줬다. 사라는 익숙하게 집어먹었다. “맛있어.” 강수는 대답 대신 다른 반찬
사라는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다시 멈췄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사라야.”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붙잡으려는 목소리도, 강수를 만나게 해달라는 말도 아니었다. 사라가 돌아봤다. 서희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강수도 걸음을 멈췄다. “왜.” 사라가 물었다. 서희는 잠시 강수를 바라봤다가 다시 사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 사실.”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이혼하고 5년 동안 외국에 있었어.” 사라의 눈이 조금 커졌다. 강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시선이 서희에게 머물렀다. 둘 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여행했어.” 서희가 작게 웃었다. “여기저기.” 사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희가 이혼 뒤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찾아보지도 않았다.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이었다. “왜?” 사라가 물었다. 서희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너처럼 가면 알 수 있을 것 같았어.” 사라의 표정이 굳었다. “뭘.” “네가 했던 말들.” 서희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
강수는 망설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사라에게 걸어갔다. 서희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시선이 오래 머물지도 않았다. “왜 안 올라와.” “가려고 했지.” 강수의 눈이 사라의 얼굴을 한번 훑었다. 화가 난 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시선이었다. 그러다 아기띠 안에서 잠든 진이에게 내려갔다. “줘.”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진이?” “어.” “잘 자는데.” “알아.” 강수는 이미 손을 뻗고 있었다. 사라가 아기띠를 풀어주자 커다란 손이 진이의 목과 뒤통수를 먼저 받쳤다. 작은 몸을 조심스럽게 빼내 제 품에 붙인 뒤 자세를 고쳐 안았다. 진이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강수의 손이 등을 천천히 쓸었다. “쉬.” 작은 몸이 다시 힘을 풀었다. 사라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내가 잘 안고 있었거든?” “알아.” “근데 왜 뺏어.” “무겁잖아.” “안 무거워.” 강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비어버린 아기띠를 사라 몸에서 풀어냈다. 끈이 어깨에서 내려오자 사라가 그제야 목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