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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1 23:08:48

서희가 예약한 곳은 두 사람이 연애할 때 몇 번 왔던 레스토랑이었다.

창가 자리도 그대로였다.

“기억나?”

자리에 앉자마자 서희가 물었다.

강수가 메뉴판을 펼쳤다.

“어.”

“여기서 나 와인 마시고 취했었잖아.”

“알아.”

“그때 오빠가 업고 갔는데.”

강수가 눈을 들었다.

“네가 못 걸었어.”

“그러니까 업어줬지.”

서희가 웃었다.

“그때 진짜 좋았는데.”

강수는 말없이 와인을 따라줬다.

오랜만에 둘만의 저녁이었다.

서희는 즐거워 보였다.

회사에서 있었던 별것 아닌 이야기를 했고, 강수는 대부분 듣기만 했다. 가끔 짧게 대답하고, 서희가 웃으면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거리를 걸었다.

서희가 자연스럽게 강수의 팔짱을 꼈다.

쇼윈도 앞에서 멈춰 구경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작은 디저트도 하나 사서 나눠 먹었다.

평범한 데이트였다.

한때 두 사람에게 너무나 당연했던 시간.

늦은 밤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이 닫히자 서희가 먼저 강수의 넥타이를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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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온한 정착   207화

    사라는 휴대전화 화면을 잠갔다. 준호가 자신보다 먼저 알았느냐는 질문까지는 이해했다. 서희 입장에서는 자신만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충격일 수 있었다. 하지만 준호가 언제 알았는지,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왜 말하지 않았는지까지 이야기가 번지는 건 달랐다. 준호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라가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서희야.” 서희가 바라봤다. “더 궁금한 거 있으면 앉아서 우리들 이야기해.” “……뭐?” “자꾸 다른 사람 끼지 말고.” 사라는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 서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너 지금 나한테 앉으라고 하는 거야?” “응.” “여기서?” 사라는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계속 서 있을 거야?” 너무 사라다운 대답이라 서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까 복도에서도 계속 서 있었고 여기 와서도 계속 서 있잖아. 나도 다리 아프고.” 강수가 사라를 내려다봤다. 사라가 바로 덧붙였다. “이제 괜찮아.” 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라는 다시 서희를 봤다. “너 궁금한 거 많잖아.” “당연하지.” “그럼 물어봐.” 서희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사라는 피하지 않았다. 아까도 그랬다. 알고 만났다고 했고, 강수를 좋아하는 것까지 미안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제는 아예 앉아서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하고 있었다. “다 대답할 거야?” “내가 대답하고 싶은 건.” 서희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싫은 건 또 안 하고?” “응.” “민사라.” “왜.” “너 진짜 그대로구나.” 그 말에 사라가 잠시 멈췄다. 서희가 기억하는 민사라는 원래 이랬다. 어디서든 자기 마음대로였고, 하기 싫은 건 싫다고 했고,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좋았던 적도 많았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걸 너무 쉽게 하는 친구라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성격이 견딜 수 없이 미웠다. 사라는 한동안 서희를 바라보다 말했다. “응

  • 불온한 정착   206화

    “응. 오래 알았어.”사라는 숨기지 않았다.서희의 눈이 흔들렸다.“얼마나 오래?”사라는 잠깐 생각했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날짜까지 헤아릴 필요는 없었다. 준호는 강수와 자신의 관계를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꽤 됐어.”“그런데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어?”사라가 눈을 깜빡였다.질문의 방향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준호가 왜 너한테 말해?”“뭐?”“준호는 내 친구지, 네 친구는 아니잖아.”서희의 표정이 그대로 멈췄다.사라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준호가 내 연애를 알고 있었으니까 알고 있었던 거지. 걔가 너한테 그걸 왜 말해.”“내 연애?”서희가 헛웃음을 흘렸다.“너 지금 이걸 그냥 네 연애라고 하는 거야?”사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서희에게는 그렇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강수와의 관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른 말을 찾을 수도 없었다.“나한테는 연애 맞아.”“사라야.”“그게 잘했다는 뜻 아니야.”사라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너한테 잘못한 거랑 오빠랑 내가 만나는 건 같은 말이 아니잖아.”서희는 기가 막힌 듯 사라를 바라봤다.“어떻게 그게 다른 말이야?”“다르지.”“내 남편을 만나면서?”“응.”사라가 짧게 대답했다.강수는 소파 옆에 선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사라가 직접 대답하는 동안에는 끼어들지 않았다.사라는 말을 조금 고르다가 덧붙였다.“내가 너한테 미안한 건 너 몰래 오빠 만난 거고, 네가 상처받은 거야. 그건 미안해.”서희의 입술이 굳었다.“근데 내가 오빠 좋아하는 것까지 미안하다고는 못 하겠어.”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멈췄다.“준호가 그걸 안다고 해서 걔가 너한테 가서 말해야 된다고도 생각 안 하고.”“왜?”“내 친구니까.”사라는 너무 단순하게 대답했다.“내가 말한 걸 걔가 다른 사람한테 왜 말해.”서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논리만 놓고 보면 사라다운 말이었다.준호는 사라의 친구였고, 사라가 자신에게

  • 불온한 정착   205화

    사라는 잠시 서희를 바라봤다.술을 마시느냐는 질문 하나에 대답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안 마신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이유를 물으면 요즘 그냥 안 당긴다고 둘러댈 수도 있었다.그런데 굳이 그래야 하나 싶었다.서희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했다. 강수를 알면서 만났다는 것도 인정했다.그렇다고 자신의 생활 전부를 하나씩 꺼내놓고 대답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사라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걸 내가 왜 말해야 되는데.”서희의 표정이 멎었다.“뭐?”“내가 요즘 술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사라는 소파에 기대 있던 등을 조금 바로 세웠다.“그걸 왜 말해야 돼?”“사라야.”“우리 얘기랑 상관없잖아.”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다. 싸우자는 투도 아니었고, 일부러 숨기려고 날을 세우는 것도 아니었다. 사라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얼굴이었다.서희는 잠시 말을 잃었다.“난 그냥 물어본 거야.”“그러니까. 난 대답하기 싫어.”사라는 거기서 말을 끝냈다.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머물렀다가 천천히 서희에게 돌아갔다. 더 묻지 말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사라가 스스로 선을 그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서희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또 저랬다.강수는 사라가 직접 말할 때는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사라가 싫다고 하면 그다음부터 누구도 그 선을 넘지 못하게 할 사람처럼 옆에 있었다.그때 테이블 위에 놓인 사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사라가 화면을 확인했다.“준호네.”서희도 아는 이름이었다.사라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사라는 별다른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어, 왜.”- 야, 민사라. 너 언제 시간 돼?준호의 목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그대로 흘러나왔다.“갑자기?”- 갑자기가 아니라 나 청첩장 줘야 되잖아. 날짜 잡자고.사라의 얼굴이 금세 풀렸다.“아, 맞다. 너 진짜 결혼하지.”- 진짜 결혼하지는 뭐냐. 청첩장 나온 지가 언젠데.“신기해서 그래.”- 뭐가 신기해.“네가 한 여자랑 평생 살

  • 불온한 정착   204화

    “아니, 없어.”사라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서희가 자신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다리를 한번 내려다봤다. 정말 종아리가 조금 뻐근했던 것뿐이었다.“그냥 오래 서 있어서 그런가 봐.”“그래?”“응.”사라는 소파에 앉은 채 발목을 몇 번 까딱였다.“이제 괜찮아.”강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라의 다리로 내려갔다.“아프면 말해.”“알았어.”짧은 대화였다.그런데 서희에게는 또 그게 걸렸다.조금 전에도 그랬다.사라가 다리 아프다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강수는 바로 알아차렸고, 앉혔고, 종아리까지 살폈다. 지금도 괜찮다는 사라의 말보다 직접 상태를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보고 있었다.“근데 당신 왜 그렇게 예민해?”강수의 시선이 서희에게 향했다.“뭐가.”“사라한테.”사라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서희는 강수를 똑바로 바라봤다.“다리 좀 아프다는데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그러잖아.”“큰일이라고 안 했어.”“그럼 왜 그래?”강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아프다잖아.”“그게 다야?”“어.”서희는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사라가 끼어들었다.“서희야, 나 진짜 어디 아픈 거 없어.”“알았어.”서희의 대답은 사라에게 향했지만 시선은 여전히 강수에게 있었다.이상했다.오늘 처음 관계를 알게 돼서 모든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는 건지도 몰랐다. 자신이 몰랐던 일 년을 한꺼번에 보고 있어서 사소한 것 하나까지 의미를 찾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그래도 강수는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원래도 이렇게 챙겼어?”이번 질문은 사라에게 향했다.사라가 눈을 깜빡였다.“뭘?”“너.”“오빠가?”“응.”사라는 강수를 한번 올려다봤다.“그런가?”정작 본인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사라는 피식 웃었다.“왜. 나 잘 챙겨?”“몰라?”“그냥 원래 그런 줄 알았지.”그 말에 서희의 표정이 굳었다.원래 그런 줄 알았다.사라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서희가 모르는 사이 쌓인 수많은

  • 불온한 정착   203화

    한동안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서희는 눈물을 닦은 채 강수를 바라봤고, 강수 역시 더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이혼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 협박인지, 정말 끝까지 붙잡겠다는 뜻인지 지금 당장 따질 생각도 없어 보였다.사라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 속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처음에는 괜찮았다.그런데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었다가 반대쪽으로 옮기는 일이 반복됐다. 현관에서부터 계속 서 있었고, 긴장까지 겹치니 종아리가 뻐근했다.사라는 발목을 한번 돌렸다.그리고 다시 섰다.잠깐 뒤 또 자세를 바꿨다.강수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사라가 한쪽 발을 살짝 들고 있었다.“왜.”사라는 강수를 올려다봤다.“나 다리 아파.”서희의 눈이 순간 커졌다.이 상황에?강수는 아무 말 없이 사라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뻗었다.“앉아.”“응.”너무 자연스러웠다.사라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려 했다.서희가 기가 막힌 얼굴로 두 사람을 봤다.“지금 나랑 얘기하는 중이잖아.”사라의 걸음이 멈췄다.“알아.”“근데 다리 아프다고?”사라는 잠깐 서희를 바라봤다.“아픈데 어떡해.”정말 그뿐이라는 얼굴이었다.서희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다.강수는 사라의 팔을 잡아 소파 쪽으로 데려갔다. 몇 걸음 되지도 않는 거리였지만 사라가 소파에 앉는 것까지 보고서야 손을 놓았다.“어디.”“종아리.”강수가 사라 앞에 섰다.“쥐 났어?”“그건 아니고 그냥 뻐근해.”“계속 서 있어서 그래.”“그런가 봐.”사라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다리를 쭉 뻗었다.강수는 잠깐 그 다리를 내려다봤다.“가만있어.”“응.”그리고 몸을 숙였다.사라의 종아리를 손으로 감싸 천천히 눌러보는 순간, 서희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은 어이없는 웃음마저 사라졌다.사라는 그제야 서희를 의식하고 강수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됐어.”“아프다며.”“지금은 좀 그래.”강수가 고개를 들었다.사라가 눈으로 서희 쪽을 가리켰다.그제야 강수도 손을 뗐다.

  • 불온한 정착   202화

    강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서희가 무엇을 묻는지는 정확히 알았다.아내와 불륜 상대.결혼과 연애.과거와 현재.그렇게 단순하게 나누어 묻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서희는 자신에게 사라가 무엇인지 묻고 있었다.강수는 잠깐 사라를 봤다.조금 전까지 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한참 말을 고르던 여자는 이제 입을 다문 채 서 있었다. 강수와 눈이 마주쳐도 대신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그게 사라였다.강수에게 무엇을 증명하라고 한 적이 없었다.“달라.”짧은 대답이었다.서희의 눈이 흔들렸다.“뭐가.”“다 달라.”“어떻게 다른데?”강수는 시선을 돌려 서희를 봤다.“너 사랑했어.”서희의 입술이 굳었다.이미 들었던 말이었다.그런데 이 집에서 다시 듣자 전혀 다른 말처럼 느껴졌다.“네가 좋았고, 결혼하고 싶었어.”강수는 그 시간을 부정하지 않았다.서희와 함께했던 사 년도, 결혼했던 이유도 거짓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때의 자신은 정말 서희를 사랑했다.“그럼 지금은?”강수의 침묵이 짧게 내려앉았다.서희가 물었다.“나는 과거고 사라는 지금이야?”강수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그렇게 자를 일 아니야.”“그럼 어떻게 잘라?”“안 잘라.”“오빠.”“있었던 건 있었던 거야.”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너랑 있던 시간 없어지는 거 아니야.”서희의 눈가가 붉어졌다.그게 더 잔인했다.차라리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면 미워하기라도 쉬울 것 같았다. 결혼생활이 전부 거짓이었다고 하면 속았다고 욕할 수도 있었다.그런데 강수는 사랑했다고 했다.사랑해서 결혼했고, 그 시간도 진짜였다고 했다.그러면서 지금은 다른 여자와 이 집에 살고 있었다.“그럼 사라는.”서희가 물었다.강수의 시선이 움직였다.사라에게 닿았다.“뭔데?”이번에는 대답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내가 있고 싶은 데.”사라의 눈이 커졌다.서희의 얼굴도 그대로 멎었다.강수는 더 꾸미지 않았다.“그래서 여기 있는 거고.”사라는 아무 말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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