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마지막 서류에 도장이 찍혔다.탁.사라는 당연하다는 듯 강수에게 몸을 기울였다.쪽.입술을 찍고 떨어지려던 순간이었다.강수의 손이 허리를 잡았다.“어?”몸이 그대로 들렸다.사라가 눈을 크게 뜨기도 전에 책상 위에 엉덩이가 닿았다.뒤에 놓여 있던 서류가 밀려났다.“야.”강수가 사라의 무릎 사이로 들어왔다.사라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아니, 도장 찍으라고 했지. 누가 책상에서 하자고 했어?”대답은 없었다.강수는 사라의 턱을 들어 그대로 입술을 막았다.“읍…….”장난처럼 반복하던 뽀뽀와는 달랐다.사라가 뒤로 밀리자 강수의 팔이 허리를 받쳤다.책상 위 서류가 바스락거리며 구겨졌다.사라가 입술을 떼며 숨을 삼켰다.“오빠.”“왜.”“회사야.”“알아.”짧은 대답과 함께 다시 입술이 내려왔다.사라의 손이 강수의 목 뒤를 감쌌다.밀어내기는커녕 가까이 끌어당겼다.짧았던 입맞춤이 길어졌다.숨이 뒤섞였다.고요했던 회장실에는 간간이 책상 위 서류가 밀리는 소리와 거칠어진 호흡만 흘렀다.사라가 겨우 고개를 돌렸다.“잠깐…… 문.”강수가 리모컨을 집었다.찰칵.잠금장치가 걸렸다.사라가 그 소리를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진짜 하려고?”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사라를 다시 끌어당겼다.“차강수, 잠깐…….”이번에도 말보다 행동이 빨랐다.책상 끝에 걸터앉은 사라의 다리가 그의 허리를 감쌌다.사라가 강수의 어깨를 붙잡고 작게 웃었다.“도장 몇 번 찍었다고 이렇게 넘어와?”“네가 시작했어.”“뽀뽀만 했거든?”“알아.”“근데?”강수의 시선이 내려왔다.“계속했잖아.”사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그러더니 금세 눈꼬리가 휘었다.“좋았으면서.”강수의 손이 뒤통수를 감쌌다.“조용히 해.”“싫은데.”다시 입술이 겹쳤다.책상 위에 놓였던 인감이 툭 쓰러졌다.사라는 웃음을 삼킨 채 강수의 목을 끌어안았다.잠시 후.회장실 밖을 지나가던 직원 하나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결재받을 서류를 들고 있
점심시간.회장실 테이블 위에는 회사 근처에서 포장해 온 떡볶이가 펼쳐져 있었다.떡볶이, 순대, 튀김.사라가 먹고 싶다고 해서 메뉴는 고민할 것도 없이 정해졌다.“오빠, 이거 먹어봐.”강수 앞으로 떡볶이 하나가 들이밀어졌다.강수가 입을 벌렸다.사라는 냉큼 넣어주고 자기 것도 집어 먹었다.“맛있지?”“어.”“근데 좀 맵다.”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수가 옆에 있던 물컵을 밀어줬다.사라는 익숙하게 받아 마셨다.일 년이 지나면서 이런 것들은 너무 자연스러워졌다.사라가 맵다고 하면 물이 먼저 왔고.튀김을 집으면 강수가 종지를 가까이 밀었다.입가에 양념이 묻으면 휴지가 날아왔다.말은 없었다.손이 먼저 움직였다.사라는 그런 강수 옆에 딱 붙어 앉아 마지막 튀김까지 먹었다.“배불러.”강수가 빈 용기를 정리했다.“일해.”“싫은데.”“그럼 가.”“그것도 싫어.”결국 그대로 남았다.오후 결재를 앞둔 서류가 회장실 책상 한쪽에 쌓여 있었다.강수가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하자 사라도 의자를 끌고 왔다.바짝 옆에 붙어 앉았다.“내가 도장 찍어줄게.”강수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해.”사라가 기다렸다는 듯 법인 인감을 집었다.물론 아무 데나 찍는 건 아니었다.강수가 확인을 끝낸 뒤 손가락으로 짚어주는 곳만 찍었다.탁.첫 번째.서류를 옆으로 밀었다.강수가 다음 장을 읽었다.사라는 얌전히 기다렸다.“여기.”탁.두 번째 도장이 찍혔다.그 순간 사라가 몸을 기울였다.쪽.강수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강수의 눈이 서류에서 멈췄다.사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장을 들고 있었다.“다음.”강수가 쳐다봤다.“왜.”“뭐가.”천연덕스러웠다.강수는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한 장을 더 확인했다.손가락이 결재란을 짚었다.탁.사라가 도장을 찍었다.그리고 또 몸을 기울였다.쪽.이번에도 입술이었다.강수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사라는 다시 제자리.“다음.”“민사라.”“응?”강수가 한동안
주말이 끝났다.월요일 아침.청담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검은 세단이 빠져나왔다.뒷좌석에는 강수와 사라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사라는 출근하는 내내 졸았다.처음에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더니 어느 순간 강수 쪽으로 기울었다.강수의 어깨에 이마가 툭 닿았다.눈도 뜨지 않은 채 편한 자리를 찾듯 한 번 비비적거렸다.강수는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대신 사라의 머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한 손으로 받쳤다.앞자리의 정민은 룸미러를 한번 보고는 모른 척했다.일 년이면 익숙해질 만도 했다.CH건설에 도착하자 상황은 달라졌다.차에서 먼저 내린 사라가 눈을 비볐다.“회장님, 먼저 올라가세요.”존댓말이었다.강수가 쳐다봤다.“왜.”“커피 사게요.”“올라와.”“네.”회사에 들어오는 순간 둘은 회장과 비서실 직원이었다.물론.이제 그걸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처음에는 소문이었다.회장의 차에서 함께 내리는 민사라.유독 사라에게만 달라지는 차강수의 행동.사라가 휴가인 날이면 괜히 더 무거워지는 회장실 분위기.결정적으로 퇴근할 때면 너무 자연스럽게 같은 차를 타는 두 사람.일 년이 지나자 CH건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회장은 유부남이었다.사라는 회장 부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잘못 입에 올렸다가는 회사 생활이 아니라 인생이 피곤해질 이야기였다.그래서 모두 알면서 쉬쉬했다.엘리베이터에서 사라와 마주치면 평소처럼 인사했고.강수가 사라를 찾으면 평소처럼 전달했다.뒤에서는 눈빛만 주고받았다.그게 CH건설의 암묵적인 규칙이 되어 있었다.오전 회의가 끝날 무렵.회장실 문이 열렸다.덕배가 들어왔다.“형님.”소파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던 사라가 고개를 들었다.“덕배 오빠.”덕배의 시선이 사라에게 갔다.입이 열렸다.“이ㅃ…….”뚝.사라의 눈이 반짝였다.강수도 서류에서 눈만 들었다.덕배가 헛기침했다.“……사라야.”사라의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왜? 계속해봐.”“뭘
결국 티셔츠는 사라가 입었다.강수가 침대 옆에 벗어둔 검은 티셔츠였다.처음에는 자기 옷을 입으라고 했다.사라는 싫다고 했다.옷장에 잠옷도 있고 티셔츠도 수두룩했지만 굳이 강수 것을 집어 들었다.“이거 입을래.”“커.”“알아.”“네 거 입어.”“싫어.”그리고 끝이었다.기어코 머리까지 집어넣었다.189센티미터, 89킬로그램인 강수에게 맞는 티셔츠는 160센티미터의 사라에게 거의 원피스였다.소매는 팔꿈치 아래까지 내려오고 품은 헐렁했다.사라는 만족스럽게 옷자락을 펄럭였다.“편한데?”강수가 내려다봤다.“내놔.”“싫어.”“민사라.”“나 입었어. 끝.”강수는 더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벗길 것도 아니었다.결국 트레이닝 바지만 걸쳐 입고 침실을 나갔다.사라는 히죽 웃으며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넓은 등.단단한 어깨.온몸에 남은 오래된 흉터들이 아침 햇빛 아래 그대로 드러났다.사라는 그 뒤에 바짝 붙었다.강수가 걸으면 걷고.멈추면 같이 멈췄다.주방에 도착한 강수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뒤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오빠.”“왜.”“갈비찜 말고 김치볶음밥!”강수가 냉장고 안을 보다가 멈췄다.분명 조금 전까지 갈비찜이 먹고 싶다고 했다.“바뀌었어?”“응.”“…….”“치즈 넣어서.”강수가 김치통을 꺼냈다.사라의 입꼬리가 바로 올라갔다.“해주는 거야?”“먹는다며.”“많이 넣어줘.”“뭘.”“치즈.”“알아.”사라는 식탁으로 가지 않았다.강수 뒤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김치를 꺼내는 것도 보고.밥을 꺼내는 것도 보고.강수가 프라이팬을 올리자 슬쩍 옆으로 움직였다.“나도 할까?”“됐어.”“왜.”“손목.”사라가 제 손목을 내려다봤다.붕대는 풀렸지만 아직 붉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이제 괜찮은데.”“가만있어.”짧았다.사라는 순순히 조리대에 엉덩이를 기대고 섰다.대신 입은 쉬지 않았다.“김치 작게 잘라줘.”“어.”“나 큰 거 싫어.”“알아.”“햄도 넣을까?”강수가 냉장고에서
그날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사라의 손목에서 붕대가 사라지고 상처가 옅어질 무렵.강수가 느닷없이 말했다.“집 옮겨.”소파에 누워 과자를 먹던 사라가 눈만 들었다.“왜?”“좁아.”사라가 제 오피스텔을 둘러봤다.혼자 살기에는 충분했다.“안 좁은데?”“내가 좁아.”“오빠가 큰 거잖아.”정답이었다.강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며칠 뒤 사라는 강수의 차에 실려 청담동으로 갔다.최상층.문이 열리자 넓은 거실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사라가 현관에서 멈췄다.“……여기 몇 평이야?”“팔십.”“미쳤네.”강수는 안으로 들어갔다.사라는 뒤늦게 따라붙었다.“잠깐만. 여기서 나보고 살라고?”“어.”“혼자?”강수가 돌아봤다.사라도 그를 봤다.잠시 뒤 입꼬리가 올라갔다.“아니네.”강수는 대꾸하지 않았다.그날부터 집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소파도 같이 골랐다.침대도.식탁도.냉장고와 세탁기, TV까지 전부 둘이 돌아다니며 골랐다.사라는 디자인을 먼저 봤고 강수는 크기와 성능부터 봤다.“이게 예쁘잖아.”“작아.”“뭐든 큰 것만 좋아해.”“작으면 네가 불편해.”“나는 작은데?”강수가 사라를 내려다봤다.“알아.”결국 냉장고는 강수가 고르고 소파는 사라가 골랐다.침대는 강수가 가장 큰 것으로 주문했다.사라는 웃었다.“역시 오빠 때문에 집이 좁았던 거 맞네.”방도 많았다.강수가 방문 하나를 열었다.“여긴 네가 써.”“내가?”“하고 싶은 대로.”사라는 눈을 반짝였다.“진짜?”“어.”“그럼 옷방 할까? 작업실? 아니면 노래방?”그날은 분명 사라의 방이었다.그런데 몇 주 뒤.문을 연 사라가 멈춰 섰다.커다란 책상.책장.강수의 노트북과 서류.벽 한쪽에는 그의 재킷까지 걸려 있었다.사라가 문틀에 기대섰다.“차강수.”“왜.”“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라며.”“어.”“근데 이게 왜 오빠 서재야?”강수는 서류에서 눈도 들지 않았다.“필요해서.”“내 방을?”“방 많잖아.”기가 막힌 사
현관문이 열렸다.소파에 엎드려 있던 사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오빠!”맨발로 쪼르르 달려왔다.발목에서는 새로 채워진 발찌가 반짝였다.강수의 손에는 아이스크림 봉투가 들려 있었다.그걸 발견한 사라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어디 갔다 와~~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강수는 말없이 봉투를 내밀었다.사라가 냉큼 받아 안을 들여다봤다.“초코 맞지?”“어.”“역시.”만족스럽게 웃더니 강수의 팔을 잡아끌었다.“갈비찜 왔어. 오빠 기다리느라 나 아직 안 먹었어.”강수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평소 같으면 혼자 먼저 먹고도 남았을 여자였다.“왜.”“같이 먹으려고.”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한 사라가 식탁으로 갔다.강수는 그 작은 뒷모습을 바라봤다.열여덟의 사라.불타는 집.자신을 죽이려고 만든 불이라는 것도 모르고 살아남은 아이.서후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믿었을지도 모르는 여자.그 모든 걸 알게 된 뒤에도 눈앞의 사라는 똑같았다.“오빠 빨리.”“가.”“내가 갈비 많은 쪽 줄게.”“네가 먹어.”“왜? 나 원래 고기 양보 잘 안 하는데?”사라는 의자를 빼며 히죽 웃었다.“오늘 특별히 주는 거야.”강수가 맞은편에 앉았다.사라는 정말 큼지막한 갈비 하나를 그의 그릇에 올려줬다.그리고 제 몫을 먹기 시작했다.잘 먹었다.볼이 빵빵해질 만큼 밥을 넣고, 고기를 뜯고, 국물까지 떠먹었다.강수는 평소보다 조용했다.사라가 젓가락을 멈췄다.“왜 자꾸 봐.”“그냥.”“오늘 이상한데.”“먹어.”“응.”정말 다시 먹었다.강수는 피식 웃지도 못했다.민상철에게 들은 말보다 정민이 찾아낸 기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육 년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을 사라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알린다면 누가 말해야 하는지.자신이 먼저 꺼낼 이야기는 아니었다.그건 사라의 과거였다.사라가 묻지 않은 문을 자신이 마음대로 열 수는 없었다.식사를 끝낸 사라는 기다렸다는 듯 냉동실을 열었다.“아이스크림!”초코 아이스크림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