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출근한 뒤에도 사라의 잠은 완전히 깨지 않았다. 아침 식탁에서는 뜬금이를 보러 병원에 간다는 말에 잠깐 눈을 반짝였지만 차에 타자마자 다시 꾸벅거리기 시작했고, 회사에 도착해서는 커피도 못 마시는 게 억울하다며 한참 투덜거렸다. 그런 상태로 오전 회의에 들어왔다. 회장실 옆 대회의실에는 강수를 중심으로 정민과 덕배, 주요 실무진 몇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라는 보조 비서 자격으로 강수의 바로 옆에 앉아 회의 자료를 펼쳐놓았다. 처음 십 분은 멀쩡했다. 자료에 밑줄도 그었고, 담당자가 보고하는 숫자를 들으며 페이지도 넘겼다. 그다음 십 분부터 이상해졌다. 사라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왔다. 한 번 감겼다가 뜨였다. 다시 감겼다가 조금 늦게 뜨였다. 정민은 보고를 들으면서도 그 변화를 정확히 보고 있었다. 맞은편 덕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라의 고개가 앞으로 툭 떨어졌다. 화들짝 들렸다. 다시 떨어졌다. 또 들렸다. 덕배가 입술을 꽉 물었다. 정민은 아무것도 못 본 척 자료로 시선을 내렸다. 강수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음.” 낮은 목소리에 담당자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사라는 그 소리에 잠깐 정신을 차렸다. 눈을 비비려다 회의 중이라는 걸 깨닫고 손을 내렸다. 자세를 바로잡고 펜까지 다시 들었다. 그 상태로 삼 분을 버텼다. 고개가 다시 기울었다. 이번에는 앞으로가 아니었다. 천천히 옆으로 기울던 머리가 강수의 어깨에 닿았다. 툭. 정민의 눈이 커졌다. 덕배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강수는 자료를 보던 시선만 잠시 옆으로 내렸다. 헝클어진 아침 머리는 겨우 정돈해놨지만 사라는 완전히 잠들어 있었다. 볼 한쪽을 강수의 어깨에 붙이고 눈을 꼭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강수는 그대로 뒀다. “계속해.” 담당자가 잠시 굳었다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예, 회장님. 다음 분기 착공 예정 현장은 현재 인허가 절차가—” 회의는 계속됐다. 강수는 사라를 깨우지 않은 채 한 손으로 자료를 넘겼고, 사라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의 일상은 놀라울 만큼 똑같이 평범했다.어젯밤 이 집에 서희가 찾아왔고, 세 사람이 한 거실에 앉아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눴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커튼 사이로 아침 햇빛이 들어왔고, 알람은 평소와 같은 시간에 울렸으며, 강수는 먼저 일어나 샤워를 마친 뒤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욕실 세면대 앞에 선 강수가 턱에 면도기를 천천히 밀었다.그 옆에는 사라가 있었다.잠에서 깨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운 얼굴이었다. 긴 머리는 사방으로 헝클어져 있었고, 눈은 절반도 뜨이지 않았다. 잠옷 차림으로 세면대에 기대선 채 칫솔만 입에 물고 멍하니 거울을 보고 있었다.칫솔이 느릿느릿 움직였다.그러다 멈췄다.“오빠.”강수는 거울을 보며 면도기를 움직였다.“왜.”“출근을 왜 하는 거지…….”강수의 손이 잠깐 멈췄다.거울 너머로 사라를 봤다.“돈 벌려고.”사라는 눈을 감은 채 다시 칫솔질을 했다.“나 돈 있는데…….”“그래도 해.”“오빠도 돈 많잖아.”“어.”“근데 왜 해?”“일이니까.”사라의 미간이 느릿하게 찌푸려졌다.“이상해…….”“뭐가.”“돈 벌려고 출근하는 건데 돈 있는데 출근해.”강수는 대꾸하지 않고 다시 면도했다.사라는 잠에 취한 얼굴로 한참 고민하다가 중얼거렸다.“그럼 우리 오늘부터 백수 하면 안 돼?”“안 돼.”“왜.”“회사 가.”“회장님 너무해…….”“비서가 더해.”사라가 그제야 눈을 조금 떴다.“나 비서 아닌데.”“보조 비서.”“그게 그거잖아.”강수가 물로 얼굴을 씻었다.그사이 사라는 다시 눈을 감고 있었다.칫솔을 입에 문 채로.강수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다가 사라의 칫솔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자지 마.”“안 자.”“눈 떠.”“눈 뜨고 있어.”“감았어.”사라가 억지로 한쪽 눈만 떴다.“떴어.”강수는 말없이 바라보다 사라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줬다.사라는 양치를 끝내고 입을 헹군 뒤 그대로 강수의 팔에 이마를 기댔다.“나 오늘 연차.”
강수는 사라가 잡고 있는 손을 내려다봤다. 서희가 나간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았다. 현관 너머로 발소리가 사라지고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소리까지 들렸는데, 사라는 벌써 다음 문제를 꺼냈다. 뜬금이. 오늘 밤 끝까지 나오지 않은 이야기였다. 강수가 사라 앞에 앉았다. “내가 말해.” 사라는 눈을 깜빡였다. “언제?” “정리되면.” “뭐가?” “서희.” “서희가 뭐.” 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라는 잡고 있던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만지작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희와 몇 시간을 마주 앉아 있었고, 같은 질문이 반복되는 게 답답해 결국 대화를 끝냈다. 그렇다고 임신 사실을 영원히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근데 이제 우리 만나는 거 알잖아.” “어.” “집도 알고.” “어.” “오빠 여기 사는 것도 알고.” “어.” 사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뜬금이도 결국 알게 될 거 아니야?” “알게 돼.” “근데 왜 오늘 말 안 했어?” 강수의 시선이 사라의 얼굴에 머물렀다. “오늘 알 필요 없었어.” “왜?” “감당 못 해.” 사라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았다. 오늘 서희는 강수와 자신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무너지고 있었다. 집을 봤고, 둘이 함께 생활한다는 걸 알았고, 자신의 친구들이 강수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도 들었다. 거기에 뜬금이까지 얹었다면. 사라도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강수가 손을 빼더니 사라의 종아리를 다시 잡았다. “어디.” “뭐가?” “아까 아프다며.” “지금은 괜찮아.” “봐.” “진짜 괜찮다니까.” 강수는 듣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종아리를 천천히 눌러보자 사라가 움찔했다. “아.” 강수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아프잖아.” “세게 누르니까 그렇지.” “병원 갈래?” 사라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종아
강수는 현관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췄다.사라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서희가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말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던 여자였다. 두 사람의 결혼은 두 사람이 정할 일이라며 선을 그었고, 자신이 강수를 만나는 것과도 별개라고 했다.그런 사라가 처음으로 물었다.강수는 몸을 돌렸다.“있어.”사라가 눈을 깜빡였다.“이혼할 거야?”“어.”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서희의 얼굴이 굳었다.사라는 잠시 강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아.”그게 끝이었다.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끝이야?”“응.”“왜 물었어.”“궁금해서.”사라는 너무 당연하게 대답했다.“아까 서희는 이혼 안 한다고 하고, 오빠는 그거랑 별개라고 하니까. 오빠 생각은 뭔가 싶었지.”“그래서.”“들었잖아.”사라는 고개를 갸웃했다.“이혼할 거라며.”강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사라가 그 대답을 듣고 좋아하지도, 안도하지도 않는 게 마음에 걸리는 얼굴이었다.“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뭘?”“내가.”사라는 잠시 생각했다.“오빠가 하고 싶은 대로.”강수의 턱이 굳었다.“또 그 소리네.”“그럼 뭐라고 해?”“네 생각.”“내 생각이 그건데.”사라는 몸을 돌려 소파 등받이에 팔을 걸쳤다.“내가 이혼하라고 하면 할 거야?”“어.”대답이 너무 빨랐다.이번에는 사라가 멈췄다.서희의 얼굴에서도 핏기가 빠졌다.사라는 강수를 몇 초 바라보다 눈썹을 찌푸렸다.“그건 좀 이상한데.”“뭐가.”“왜 내가 하라면 해.”“네가 원하니까.”“오빠 결혼인데?”“민사라.”낮아진 목소리에 사라가 입을 다물었다.강수는 사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너 때문에 하는 거 아니야.”사라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내가 정한 거야.”짧은 말이었다.“너 만나기 전으로 돌아갈 생각 없어.”사라는 조용히 들었다.강수는 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서희와 보낸 시간을 부정할 생각도 없었고,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꿀
사라는 강수의 옆얼굴을 잠시 바라봤다.조금 전 강수가 잘라 말한 대답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 현관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천천히 되짚어보니 이제야 하나가 이해됐다.강수는 처음부터 서희를 들이지 않으려고 했다.내려가라고 했고, 자신에게는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복도에서 목소리가 커지지만 않았다면 아마 끝까지 이 집 안으로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그때는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다.사라는 직접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서희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으면 되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은 인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몇 시간을 같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알 것 같았다.“아.”사라가 작게 소리를 냈다.강수가 내려다봤다.“왜.”“이제 이해했어.”“뭘.”사라는 강수가 아니라 서희를 바라봤다.“오빠가 이야기하자고 하는 너를 왜 보내려고 했는지.”서희의 얼굴이 굳었다.“무슨 뜻이야?”“그냥 이제 알겠다고.”사라는 다리를 조금 고쳐 앉았다. 강수의 시선이 그 움직임을 따라 내려갔지만 이번에는 손을 뻗지 않았다.“나 처음에는 이야기하면 되는 줄 알았어. 너도 궁금한 거 있을 거고, 나한테 화나는 것도 당연하니까.”그래서 들어오라고 하는 걸 막지 않았다.오히려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한 것도 자신이었다.“근데 서희야.”사라의 목소리는 차분했다.“같은 질문이면 이제 대답 안 할게.”“같은 질문?”“응.”“나는 계속 다른 걸 물었어.”“말만 다르지.”사라는 고개를 저었다.“결국 계속 똑같았어.”이혼하지 않아도 만날 거냐.자신이 강수를 아직 사랑해도 괜찮으냐.강수가 법적으로 계속 자신의 남편이어도 사라는 상관없느냐.이 집에서 계속 살 거냐.질문의 모양은 달랐지만 사라가 듣기에는 결국 하나였다.자신이 강수를 그만 만날 가능성이 있느냐는 것.“내가 오빠 만나는 걸 그만둘 거냐고 계속 묻는 거잖아.”서희의 입술이 굳었다.“그건…….”“아니야?”서희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사라는 그 침묵을
사라는 한동안 서희를 바라봤다.대답을 망설이는 게 아니었다.이미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한 것 같은데 질문이 자꾸 다른 모양으로 돌아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끝낼 수 없다고 했고, 강수를 만나는 건 자신이 선택한 일이라고도 했다. 서희가 강수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이 강수를 좋아하는 마음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까지 설명했다.그런데 다시 이혼이었다.사라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서희야.”“응.”“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 못 하는 것 같아.”서희의 표정이 굳었다.사라는 공격하려는 기색 없이 그대로 말을 이었다.“내가 오빠를 좋아하고 만나는 건 너랑 오빠의 이혼 문제랑 별개야.”“어떻게 그게 별개야?”“나한테는 별개니까.”서희가 입을 열려 하자 사라가 먼저 말했다.“봐. 또 같은 질문 하잖아.”“사라야.”“왜 같은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어.”사라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네가 이혼 안 한다고 했잖아. 알았어. 그건 네 선택이야.”그러고는 옆에 앉은 강수를 한번 봤다.“오빠가 어떻게 할지는 오빠가 정하는 거고.”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내려왔다.“나는 내가 오빠 만날지 말지 정하면 되는 거고.”서희가 헛웃음을 흘렸다.“셋이 얽혀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따로 생각해?”“같이 얽혀 있다고 선택까지 하나가 되는 건 아니잖아.”사라는 다리를 소파 위로 조금 당겨 편하게 앉았다.“네가 이혼 안 하면 내가 오빠 안 만나야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오빠 만난다고 네가 이혼해야 되는 것도 아니잖아.”“그럼 이 상태로 계속 살 수도 있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서희의 눈이 커졌다.“넌 그게 괜찮아?”“지금은.”사라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나중에는 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 근데 지금은 그래.”강수가 낮게 불렀다.“사라야.”“왜?”“나중 얘기 하지 마.”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왜 또.”“안 변해.”“내 마음을 오빠가 어떻게 알아.”“알아.”“뭘 알아.”강수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사라가 어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