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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사월
산하는 은별과 준서의 관계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고, 준서는 그를 매우 신뢰했다.

산하의 넥타이에 꽂힌 사파이어핀조차, 얼마 전 은별이 직접 정성스럽게 골라서 준서에게 생일 선물로 준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클립 위에, 은별의 뒤편에 있는 대형 스크린 뉴스가 비치고 있었다.

<신예 보석 디자이너 강리연, LX그룹 대표와 함께 다음 달 주얼리 전시회 참가할 예정. 두 사람 결혼설에 관심 집중.>

“심은별!”

은별이 멍하니 있는 사이, 따라잡은 남주가 그녀의 손에 든 서류 봉투를 낚아챘다.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네 유치원 수준 낙서를 오빠한테 가져가서 네가 디자인했다고 속이려는 거지? 오빠가 그걸 믿을 것 같아?”

남주의 당황한 모습을 보면서 은별은 감정을 정리했다.

“그럼 넌 왜 불안해하는 건데?”

“누가 불안해해? 너 이러는 거 그냥 오빠 관심 끌기 위해서잖아. 오빠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

“믿든 말든, 열어보면 알지 않겠어?”

은별이 여전히 태연한 모습을 보이자, 남주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서류 봉투를 열고 안을 들여다보더니 멈춰 섰다.

‘이혼 서류?’

‘내가 잘못 본 걸까?’

‘심은별이 어떻게 오빠에게 먼저 이혼을 요구할 수 있지?’

어쨌든 디자인 도안만 아니면 됐다.

남주는 서류 봉투를 아무렇게나 산하의 품에 던져 넣으며 은별을 비웃듯 바라보았다.

“이게 네 새로운 수작이야? 말해두는데, 헛수고하지 마. 오빠 화나게 만들면 집에 안 돌아갈 수도 있어. 그럼 너 울고 싶어도 울 곳도 없을 걸.”

“네 맘대로 생각해.”

은별은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산하를 바라보았다.

“빨리 서명해서 보내 달라고 전해 줘요. 기다리고 있을 게요.”

그렇게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남주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야, 네가 수작 부리는 건 알겠는데, 임 비서까지 끌어들이려는 거야? 만약 오빠가 정말 화내면 임 비서만 욕먹어. 너 왜 이렇게 독한 거야?”

그러나 아무리 소리쳐도 은별은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남주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뒤쫓아갔다.

산하는 손에 든 서류 봉투를 보며 방금 남주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동안 은별은 준서의 관심을 끌기 위해 꽤 많은 수단을 써 왔다. 게다가 지금 준서는 강리연의 문제로 바쁜 터였다.

이런 시기에 은별의 유치한 수작 때문에 준서를 찾는다면, 차라리 퇴사 통보를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산하는 비웃으며 서류 봉투를 아예 자신의 책상 서랍 속에 던져 넣었다.

‘강리연 씨 일이 끝나고, 대표님 기분이 좋은 날을 골라서 전해 드리는 게 낫겠어.’

어차피 자신이 전달하지 않아도 은별은 소식이 없으면 또 다른 수작을 부릴 테니, 이 서류 하나 없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LX그룹 빌딩을 나와 택시를 잡으려는 은별을 보자, 남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팔을 세게 붙잡았다.

“디자인 원고 내놔. 이번엔 정말 오빠한테 좋게 말해줄게.”

다이아몬드가 박힌 손톱이 은별의 팔에 남아 있는 옛 상처를 파고들었다.

은별은 어렴풋이, 신혼 다음 날 남주가 자신의 졸업 작품을 고쳐 달라며 이렇게 끌어당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올케’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이제 필요 없어.”

은별은 남주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냈다. 약지에는 연분홍색 반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네 오빠가 서명만 하면, 나는 너희 이씨 가문과 더 이상 아무 관계도 아니야.”

남주는 은별이 이런 말을 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공모전의 촉박한 일정을 생각하자 그녀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심은별, 장난도 정도껏 해야지. 정말 내 공모전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오빠한테 당장 이혼하라고 할 거야!”

남주는 은별이 그렇게 당당하게 먼저 이혼하겠다고 나설 거라곤 믿지 않았다.

공모전까지 아직 시간은 좀 남아 있었다. 남주는 오늘 저녁이 되기도 전에, 은별이 디자인 도안을 자신에게 갖다 줄 거라고 확신했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준서가 조금만 무시해도 은별은 꼬리를 내렸다.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애쓰며, 자기를 시켜서 오빠한테 자기 좋은 말 좀 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사실 남주는 아무 말도 안 해 줬고, 준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은별이 내민 이혼 서류를 보자, 남주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머지않아 오빠가 정말 심은별과 이혼하고 강리연과 결혼할지도 몰라. 그럼 지금 미리 디자인 도안을 많이 확보해 둬야 하는 거 아니야?’

은별이 쉽게 이혼에 응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다.

설령 정말 이혼한다고 해도, 자신이 필요하면 도안을 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은별이 감정적으로 나올 때를 대비해 미리 좀 저장해 두는 게 좋을 것이다.

많이는 필요 없었다. 한 장만, 이혼하고 나서 사흘 정도 버틸 수 있는 분량이면 충분했다.

어쩌면 하루도 안 돼서 다시 찾아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몰랐다.

그때는 자신이 아무리 많은 디자인 도안을 요구해도, 은별은 웃으면서 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남주의 기분은 조금 풀렸다. 그녀는 몸을 돌려 돌아가며 은별이 자신을 찾아와 빌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LX그룹을 떠난 은별은 생필품과 디자인 관련 물품들을 좀 샀다.

집에 돌아와 물건들을 정리하고, 그동안 작업해 온 디자인 작품들을 모두 꺼내 훑어보았다.

차츰 영감을 잃어가는 작품들을 보자, 은별은 그게 정말 자신이 그린 것인지 믿기 어려웠다.

남주에게 회사 제출용으로 넘겨야 했던 작품들이었고, 집안일까지 챙겨야 했기 때문에, 작품들에 그다지 신경을 쏟지 못했다.

큰 실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뛰어나지도 않았다.

그때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자신의 창의성이 거의 고갈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디자인 원고를 내려놓은 은별은 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다음 달 주얼리 전시회 초대장 하나 부탁할게.”

전화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어서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해? 예전에 내가 몇 번이나 권유할 땐 듣지 않더니,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어?]

해안시에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주얼리 전시회가 열렸다.

특히 최근 20년간 국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주얼리 전시도 점점 많아졌다.

처음에는 수백 개에 불과했던 부스가 지금은 수천 개로 늘어났고,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유명한 보석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대표작을 전시하기 위해 출품하고, 신예 디자이너들은 비록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지 못하더라도 영감을 얻기 위해 어떻게든 전시회를 찾아보곤 했다.

그런데 유독 은별만은 달랐다. 몇 년째 딸을 돌본다거나 남편 식사를 차려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초대장을 집으로 보내 줘도 한 번도 나와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은별이 지금 전시회에 스스로 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땐 정신이 좀 나가서 그랬어. 지금은 제정신으로 돌아왔으니까, 가볼 때도 됐지.”

핸드폰 너머에서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전화가 끊겼다.

하지만 은별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동의하는 의미라는 것을.

은별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사실 아직 말하지 못한 결정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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