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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밀크 라떼
소월이는 무릎을 꿇은 채 대답했다.

“폐하께 아뢰옵니다. 조금 전 참새 한 마리가 담장에 부딪혀 죽는 바람에 피가 묻었사옵니다. 며칠 뒤면 장군께서 돌아오신다고 들었는데, 장군께서는 피 보는 것을 싫어하시기에 미리 깨끗이 치워 두려 했사옵니다.”

‘은하가 피를 싫어한다고?’

이건은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은하는 무장이다. 전장을 수도 없이 누빈 사람이 어찌 피를 무서워한단 말이냐?”

소월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까지는 소인도 모르옵니다. 허나 장군께서 피를 무서워하시는 것은 사실이옵니다. 피를 보신 날이면 어김없이 악몽을 꾸셨고, 악몽을 꾸고 나면 꼭 열이 올라 며칠씩 앓으셨사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소월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한 번은 장군께서 잠결에 우시는 소리도 들었사옵니다. 자신이 너무 많은 사람을 해쳤다며... 주승원, 강태오, 최민석을 부르시면서 무섭다고 하셨사옵니다.”

그 이름들을 듣는 순간, 이건의 표정이 굳어졌다.

남들은 몰라도 이건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모두 지난 세월 자신이 황위를 차지하기 위해 소은하의 손을 빌려 제거했던 자들이었다.

소은하는 무예가 출중했다.

황위를 둘러싼 다툼이 한창이던 시절, 이건의 즉위를 반대하는 대신들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소은하는 이건의 칼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들을 하나씩 베어 냈다.

이건은 소은하에게 사람을 베는 일쯤은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칼을 휘두를 때마다 그녀가가 피로 물든 악몽에 시달리며 홀로 밤을 지새웠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북방 변경에서 죽음을 맞던 순간, 소은하는 오히려 홀가분했다. 이대로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왔으니, 자신에게 이런 끝이 닥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여겼다.

소월이는 이건의 굳어진 얼굴을 살피고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허면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곧바로 몸을 일으켜 뒤로 물러나서려 했다.

툭.

순간 품에서 옥패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월이는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그보다 먼저 이건이 옥패를 집어 들었다.

옥패를 확인한 순간, 이건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돌연 얼굴을 굳히더니, 소월이의 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방자한 것!”

싸늘한 목소리가 경옥궁 안을 울렸다.

“어디서 이 옥폐를 훔쳤느냐!”

소월이는 숨조차 쉬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폐, 폐하... 이것은... 장군께서 주신 것이옵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이건의 눈빛이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그는 소월이를 거칠게 바닥에 내던졌다.

“거짓말하지 마라! 은하가 어찌 이것을 네게 준단 말이냐!”

간신히 숨통이 트인 소월이는 몇 번이나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소인이 어찌 감히 거짓을 아뢰겠사옵니까. 정녕 장군께서 출정하시기 전에 내려 주신 것이옵니다. 장군께서... 이제 필요 없다 하셨사옵니다.”

그 순간 이건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소은하는 그저 멍하니 옥패를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이 소월이에게 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이 어째서 저토록 분노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 옥패는 오래전 이건이 소은하에게 건넨 정표였다.

두 사람 사이에 이어져 온 정과 의리를 상징하던 물건이기도 했다.

칠 년 전, 그녀의 탄생일.

이건은 직접 옥패를 그녀의 허리에 달아 주며 말했다.

“은하야, 이 옥패는 내가 특별히 너를 위해 구한 것이다. 평생 너를 지켜 줄 게다.”

그날 이후 소은하는 그 옥패를 두 사람의 정표라 여기며 무엇보다 소중히 간직했다.

한 번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옥패를 몸에 지니고 있는 한, 어디에 있든 자가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반드시 그의 곁으로 달려가겠다고.

그 뒤로 소은하는 단 한 번도 옥패를 몸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이건과 한 약조도 어긴 적이 없었다.

황위를 두고 싸우던 시절, 소은하는 이건을 도와 앞을 막는 자들을 모조리 베고 그를 궁문 밖까지 지켜 냈다.

온몸에 칼자국을 새긴 끝에 그의 태자 자리를 지켜 냈다.

이건이 황위에 오르던 날에는 빗발치는 화살을 몸으로 막아 내며 반군 수장의 목을 베어 그의 황좌를 지켰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를 위해 다시 갑옷을 입고 변방으로 나가, 그가 연모하는 여인까지 되찾아 주었다.

이건은 이번에도 지난날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소은하는 언제나 그랬듯 그의 명을 따르고, 모든 일을 끝낸 뒤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소은하가 그 옥패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렸다.

그 뜻을 이건이 어찌 모르겠는가.

소은하는 옥패를 버렸다.

더는 필요 없다 했다.

그 말은 곧... 이제부터는 자신도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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