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태자의 마음을 얻으려 애쓴 지도 어느덧 일곱 해가 흘렀다. 그런데 혼례를 하루 앞둔 날, 그에게 공략 시스템의 존재를 들키고 말았다. 사랑이 깊었던 만큼 증오 또한 컸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고, 결국 승상의 딸 조예진을 태자비로 맞아들인 뒤 그녀를 옥사에 가두었다. 모진 고문으로 그녀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을 무렵, 진북장군 김동건이 변방에서 서둘러 귀환했다. 황실의 경계와 의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그녀를 구할 수만 있다면 두 다리를 잃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다.
View More그날 일은 박지영에게도 적지 않은 불안을 남겼다. 김동건이 집 주소까지 알아낸 이상, 한 번 피했다고 계속 피할 수는 없었기에 박지영은 새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그 고민을 알아챈 임제윤은 수줍게 동거를 제안했고, 두 사람의 관계도 차츰 안정되어 가고 있었기에 박지영은 오래 망설이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였다.하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에, 박지영에게는 반드시 정리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그녀는 우연히 김동건이 가게 맞은편 집을 임대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그가 매일 그곳 창가에 서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하나하나 지켜봤을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힐 만큼 역겨웠다.박지영은 더는 참지 않고, 김동건이 완전히 단념하게 만들기로 했다.그날 밤 박지영은 임제윤을 가게로 불렀다.임제윤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남은 꽃들을 정리했고, 박지영은 곁에 붙어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맞은편 창가에서 김동건이 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박지영은 일부러 임제윤과 더 다정하게 굴었다.김동건은 맞은편 집 창가에서 커튼 뒤에 몸을 숨긴 채 꽃집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만 창백한 얼굴로 주먹만 꽉 움켜쥘 뿐, 한 걸음도 다가서지 못했다.박지영은 임제윤에게 한층 더 살갑게 기댔다. 그러다 발돋움해 임제윤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자, 김동건은 더는 참지 못했다.휙!김동건은 커튼을 확 잡아당겨 닫고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온몸이 가늘게 떨렸다.눈을 돌려도 한때 박지영이 자신에게 잘해 주던 모습과 눈을 휘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더는 견디지 못한 김동건은 문을 열어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가 빗속에 서서 차가운 비를 온몸으로 맞았다.맞은편 꽃집 유리창 너머로 박지영과 임제윤이 함께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박지영의 얼굴에는 김동건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밝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딩!그때 머릿속에서 시스템의 알림음이 울렸다.“경고: 숙주의 남은 시간은 24시간입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경우, 숙주는 완전히 소멸
다음 날 아침, 임제윤은 차를 몰고 박지영을 데리러 왔다.연한 하늘색 셔츠 차림의 임제윤은 소매를 팔꿈치까지 자연스럽게 걷어 올려, 탄탄한 팔을 드러내고 있었다.“우리 어디 가요?”박지영이 궁금한 듯 묻자 임제윤은 웃었다.“가 보면 알아.”차가 한 갤러리 앞에 멈춰서자 박지영은 놀란 얼굴로 임제윤을 바라보았다.“여기예요?”“응.”임제윤이 웃으며 말했다.“오늘 인상파 특별전이 열리거든. 지영이가 좋아할 것 같아서.”갤러리에 들어선 박지영은 눈앞에 펼쳐진 그림들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미술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림마다 담긴 아름다움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임제윤은 박지영의 손을 잡고 그림을 한 점씩 설명해 주었다.“이건 모네의 ‘수련’이야.”임제윤은 빛깔이 화려한 그림을 가리켰다.“색이 이렇게 달라지는 거 봐. 예쁘지?”박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그림은 처음이었다. 그림 속 빛과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모네는 말년에 거의 앞을 보지 못했대.”임제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런데도 계속 그림을 그렸지. 이 수련들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본 세상이었을 거야.”박지영은 임제윤의 말에 깊이 빠져들었다. 임제윤이 미술을 이토록 잘 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요?”임제윤은 가볍게 웃었다.“대학 다닐 때 미술사를 부전공했어. 의사가 되긴 했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야.”임제윤은 박지영의 손을 잡고 갤러리를 돌며 그림마다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박지영이 이야기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관람 시간이 끝나 있었다.갤러리 밖으로 나오자,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임제윤은 박지영의 손을 잡은 채 말했다.“예술이랑 의학은 사실 비슷한 것 같아. 방식만 다를 뿐, 둘 다 삶 속의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잖아.”박지영은 임제윤을 올려다보았다.저녁 노을이 임제윤의 옆얼굴을 비추자, 온몸이 옅은 금빛으로 물들었다. 박지영은 눈앞의 임제윤이 아름다운 그림처럼 느껴져 한참 시선을 떼지 못했
김동건이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동안, 박지영과 임제윤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어느 날 박지영은 이른 아침부터 임제윤을 위해 닭고기탕을 끓여 보온 도시락통에 담아 병원으로 갔다. 임제윤이 끓인 것만큼 맛있지는 않겠지만, 나름대로 정성을 담은 것이었다.병원에 들어서자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곳처럼 느껴져, 박지영은 병원 특유의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다.임제윤이 알려 준 곳으로 찾아가자 사무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박지영이 노크하려던 순간, 안에서 임제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 성공률이 높은 편이에요. 제가 직접 수술할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박지영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임제윤은 한 할머니 앞에 쪼그려 앉아 수술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었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흰 가운과 금테 안경 너머의 눈빛은 다정하면서도 진지했다.할머니는 몹시 불안한 듯 손을 연신 비볐다.“임 선생님, 저는... 무서워요.”임제윤은 할머니의 손을 가볍게 잡아 주었다.“저를 아들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있잖아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문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지영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환자를 제 가족처럼 대하는 의사는 임제윤이 처음이었다.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본래 좋은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는 말이 맞았다.박지영이 김동건에게 마음을 준 것도, 처음에는 그가 다정하게 자신을 아껴 주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동건이 자신을 구해 곁에 둔 것은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서였고, 다정함 역시 그녀를 붙들어 두기 위한 거짓이었다.박지영이 마음을 온전히 내준 뒤에야, 김동건은 숨겨 왔던 본모습을 드러냈다.하지만 임제윤은 달랐다.처음 우연히 마주쳤을 때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 되었다. 임제윤의 다정함은 자신에게만 향한 특별한 모습이 아니라, 원래부터 따뜻하고 선한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박지영은 임무의 세계에서 겪었던
김동건은 식은 커피를 손에 든 채 아파트 창가에 서 있었다.창밖으로는 맞은편에 자리한 ‘아침이슬’ 꽃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꽃을 포장해 손님에게 건네는 박지영의 모습도, 임제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김동건은 보름째 이곳에 머물며 매일같이 멀리서 박지영을 바라보았다. 저녁이면 지친 기색 속에서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꽃집 문을 닫는 모습까지.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박지영에게 다가가고 싶을 때마다, 꽃집에서 자신을 향해 보냈던 차가운 눈빛과 단호한 말이 떠올랐다.창밖이 서서히 어두워졌다.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한 박지영의 곁에는 오늘 임제윤이 없었다. 혼자 가게 문을 닫는 뒷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이자, 김동건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이 시간쯤이면 맞은편 편의점에 들르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거리에서 박지영을 마주칠 수 있었다.박지영은 한 번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지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김동건에게는 충분했다.건물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박지영이 꽃집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연한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박지영은 해 질 무렵의 빛 아래 유난히 맑고 고와 보였다.김동건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멀어지는 박지영의 뒷모습을 한참 눈에 담았다.박지영은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김동건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뒤를 따랐다.이러는 자신이 얼마나 추한지 알지만 멈출 수 없었다.그때였다.교차로에서 승용차 한 대가 갑자기 튀어나와 박지영을 향해 곧장 돌진했다.김동건의 머릿속은 새하얘졌지만, 몸은 먼저 움직였다.김동건은 박지영을 힘껏 밀쳐 냈고, 그 대신 차에 부딪혀 멀리 내던져졌다.시간이 한순간 멈춘 듯했다.바닥에 넘어진 박지영은 무릎이 화끈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고개를 들자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김동건이 쓰러져 있었는데 몸 아래로 선명한 피가 번져 나갔다.“김동건!”박지영은 저도 모르게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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