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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야근하다 죽었더니 조선의 항우가 되었다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9-08 14:12:19

이놈의 뱃속에서 우러나온 소리는 전혀 점잖지 못했다.

형수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뱃속에서 나오는 우렁찬 소리는 평소와 같았지만, "밥 줘!"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도련님이 갑자기 존댓말을 쓰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어... 그래. 상을 차려주마."

밥상은 소박했다. 보리 섞인 밥 한 공기에 시래기 된장국, 그리고 나물 몇 가지. 솔직히 말하면 에피타이저 수준이었다. 이 거대한 근육 덩어리가 요구하는 칼로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불평할 처지가 아니었다. 숟가락을 들었다.

와구작.

​숟가락이 입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밥을 퍼 올리는 순간, 놋숟가락 목이 엿가락처럼 휘어버렸다.

​"......"

​힘 조절 실패다. 나는 뻘쭘하게 휜 숟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끝에 아주 살짝 힘을 줬을 뿐인데. 이놈의 악력은 섬세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형수님이 기겁하며 새 숟가락을 가져다주었다. 이번엔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신생아 다루듯 숟가락을 쥐고 밥을 입에 넣었다.

​맛있다.

​MSG 하나 없는 천연의 맛인데, 혀끝에 감기는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아니, 그냥 내 몸이 영양분을 미친 듯이 갈구하고 있었다. 국그릇을 들고 마시려는데, 꿀꺽꿀꺽 넘어가는 목 넘김이 폭포수 같았다.

​순식간에 밥 두 그릇을 비웠다. 여전히 배가 고팠지만, 눈치가 보여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마당에는 여전히 아까 내가 박살 낸 다듬이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본격적으로 스펙 분석에 들어갔다.

​첫째, 금강불괴(金剛不壞).

아까 돌을 쳤을 때 확인했다. 통증 차단 및 내구도 무한. 이건 확실하다. 역사 속 김덕령이 옥사할 때 "정강이뼈가 부러지지 않아 고문하던 자들이 지쳤다"는 기록이 팩트였던 모양이다.

​둘째,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이다. 마당 구석에 있는 굵직한 통나무를 쳐다보았다. 땔감으로 쓰려고 가져다 놓은 것 같은데, 지름이 내 허벅지만 했다. 나는 다가가서 통나무를 한 손으로 잡았다.

​흡.

​가볍다. 마치 스티로폼 막대기를 드는 기분이었다. 손목을 까딱거리며 통나무를 휘둘러 보았다.

​붕- 부웅-!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전장에서 칼 따위는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냥 몽둥이 하나 들고 휘두르면 갑옷 입은 왜군이고 뭐고 다짐육이 될 게 뻔했다.

​셋째, 민첩성. 덩치가 커서 둔할 것 같다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나는 제자리에서 껑충 뛰어보았다.

​텅.

​지면을 박차는 순간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담장 너머가 훤히 보일 정도의 높이. 착지할 때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도 거의 없었다. 근육 자체가 고탄력 스프링이다.

​"이 스펙으로 왜 죽었지?"

​의문이 들었다. 이 정도 무력이면 역모 누명을 썼을 때 관군들을 뚫고 도망치거나, 아니면 아예 왕궁으로 쳐들어가서 선조 멱살을 잡고 흔들 수도 있었을 텐데.

​기억 속의 김덕령은 너무 순진했다. 충효 사상에 찌들어 있어서, 왕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던 답답한 양반. 억울하다고 울기만 하다가 결국 맞아 죽은 비운의 아이콘.

​하지만 나는 다르지.

​나는 강철민이다.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고, 부당한 대우에는 속으로만 욕했지만 참지 않는 현대인이다.

​내 목표는 명확했다. 생존. 그리고 가족의 안위.

​그러려면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 지금은 1591년. 고작 1년 남았다. 빈손으로 전쟁을 막을 순 없다. 이순신 장군도 거북선을 만들고 판옥선을 정비하는 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나에게도 자본금이 필요했다.

​"돈을 벌어야 해."

​이 피지컬로 할 수 있는 돈벌이가 뭐가 있을까. 차력 쇼? 용병? 아니면 호랑이 사냥?

​물론 호랑이는 위험하다. 하지만 이 몸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가죽을 팔면 큰돈이 될 테고, 그걸 종잣돈 삼아 무언가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 있는 건 '힘'뿐만이 아니었다. '지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징비록, 난중일기...

내가 밤새워 읽었던 그 수많은 기록들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앞으로 일어날 주요 사건들, 인물들의 행보, 그리고 숨겨진 보물이나 자원의 위치까지.

​이건 치트키다.

단순히 힘만 센 장수가 아니라, 미래를 아는 예언자가 될 수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몸부터 만들자.

1년 뒤에 실전 투입 가능한 최상의 몸 상태로. 그리고 자본금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거다.

​나는 마당 한구석에 있는 장작더미로 다가갔다. 도끼를 집어 들었다.

​퍽! 쩍!

​도끼질 한 번에 아름드리나무가 쪼개졌다.

​쾅, 콰직!

​도끼질은 단순 반복 노동이다. 전생의 회사 생활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 노동은 하면 할수록 몸이 강해지는 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도끼가 나무를 파고들 때마다 손끝에 전해지는 쾌감.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내지르는 환호성. 나는 1시간 만에 마당에 쌓여있던 통나무를 모조리 장작으로 만들어버렸다.

​"후우..."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땀으로 젖은 등 뒤로 차가운 밤바람이 스쳤다. 개운했다. 사우나에서 땀을 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상쾌함이었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2025년의 서울 하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맑은 별빛. 나는 잠시 도끼를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고 싶다.

전생의 아내, 그리고 딸아이.

그렇게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족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은 없었다. 내가 여기서 살아남아 역사를 바꾸면, 어쩌면 먼 미래의 그들도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으며, 나는 다시 도끼를 잡았다.

​"어이, 덕령이! 안에 있느냐!"

​그때, 대문 밖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건들거리는 목소리. 대문을 발로 뻥 차고 들어오려는 기세. 이 밤중에 남의 집 대문을 걷어찰 놈들이라면 뻔했다.

​기억을 뒤져보니 '최가' 놈 패거리였다.

​담양 바닥에서 객기 좀 부린다는 양아치들. 평소 김덕령의 힘을 질투해서 틈만 나면 시비를 걸던 놈들. 툭하면 형님에게 몰려와 자릿세 명목으로 곡식을 뜯어가던 놈들이다.

​아마 오늘도 형님을 괴롭히러 온 거겠지.

​나는 도끼를 내려놓고 천천히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놈들이 제 발로 찾아오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는데.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샌드백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내일 장터에 나가기 전에, 가볍게 몸풀기나 해볼까.

​나는 굳게 닫힌 대문 빗장에 손을 올렸다.

​쾅! 쾅!

​"야! 문 안 열어? 우리가 온 거 뻔히 알면서!"

​밖에서 최가의 고함이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빗장을 풀었다.

​끼이익.

​오래된 나무 대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달빛이 쏟아지는 마당 앞. 횃불을 든 사내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개중에는 몽둥이를 어깨에 걸친 놈, 낫을 허리춤에 찬 놈, 그리고 이빨을 쑤시며 거만하게 서 있는 우두머리 최가가 보였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우리 덕령이 도련님 아니신가."

​최가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비아냥거렸다.

​"형님은 어디 가시고 네가 나오냐? 우리랑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건가?"

​뒤에 있던 졸개들이 킬킬거렸다. 술 냄새가 진동했다. 한밤중에 남의 집에 쳐들어와 행패를 부리는 꼴이라니. 1591년의 치안 부재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내 키는 190cm에 육박한다. 최가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어야만 내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자 놈의 눈빛이 순간 움찔했다.

​"밤이 늦었다. 돌아가라."

​낮게 깔린 목소리.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공명음이 섞여 나왔다.

​최가는 짐짓 태연한 척 헛기침을 했다.

​"어허, 이 새끼가 눈에 힘주는 것 좀 보소. 우리가 빈손으로 갈 것 같아? 네 형이 서당 훈장질하면서 챙긴 수업료, 세금 낸다는 셈 치고 좀 내놓으라 이 말이야."

​"세금은 관아에 내는 거지, 동네 똥개한테 주는 게 아니다."

​"뭐, 뭐? 똥개?"

​최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자존심이 상한 놈이 몽둥이를 고쳐 쥐었다.

​"이게 오냐오냐했더니... 야! 손 좀 봐줘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졸개 둘이 튀어 나왔다.

​"죽고 싶냐!"

​오른쪽에 있던 놈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붕 소리가 날 정도로 제법 매서운 기세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려 보였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이제, 조선의 항우가 포효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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