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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연꽃 여인의 환생

겹연꽃 여인의 환생

Oleh:  치즈Tamat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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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는 승상부에서 반드시 미래를 예지하는 딸이 태어날 것이라 예언했다. 나는 이마에 타고난 겹연꽃 문양를 감췄으나 동생은 날마다 이마에 꽃 문양을 그려 넣었다. 폐하의 어명 하나로 동생은 태자비가 되었고 나는 원하던 대로 서왕과 혼인을 했다. 그 후 5년 동안, 나는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으로 강경헌이 황위에 오르도록 도왔다. 그가 즉위하던 밤, 나는 이마를 덮고 있던 두꺼운 분을 지우고 강경헌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가 화를 버럭 낼 줄이야. 그는 내 이마의 살점을 도려내고 나를 거열형에 처해 처참히 죽였다. “서정연, 네가 감히 지운이 이마에 있는 꽃 문양을 흉내 냈단 말이냐?” “네가 먼저 짐을 택하는 바람에 지운이가 강림연과 혼인을 할 수밖에 없다. 지운이야말로 진정 내 황후가 될 사람이었다!” “지난 5년 동안 너와 몸을 맞댈 때마다 난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젠 네 목숨으로 지운이에게 속죄하거라.” ... 다시 눈을 떴을 때, 강경헌은 대전 안으로 들어와 도사의 말을 끊었다. “이마의 꽃 문양 하나만으로 어찌 하늘의 뜻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할 수...” “소자는 부황께서 전에 내려 주신 백지 조서를 바쳐 승상부의 둘째 딸, 서지운을 아내로 맞이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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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제1화

그 말이 나와 대전에 있던 모두가 마주 보며 눈치를 살폈다.

도사가 다시 입을 열려 하자 나는 눈짓으로 막았다.

그 조서는 오래전 강경헌의 어머니가 폐하를 구하다 목숨을 잃은 대가로 내려진 것이었다.

그런데 강경헌이 그 조서를 이런 데 써먹을 줄은 몰랐다.

비록 지난 생에 내가 그를 도왔었지만 그가 명분을 갖추고 황위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결국 그 조서 덕분이었다.

강경헌이 서지운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황후는 훗날 또 다른 변수가 생길까 봐 겁이나 강경헌이 그 조서를 일찌감치 써 버리길 내심 바라고 있었다.

“서정연,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서왕 전하께서 제 동생을 마음에 두셨다니... 서씨 가문의 영광입니다.”

내가 공손히 예를 올리자 강경헌은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소자가 서지운을 왕비로 맞고자 하는 것은 그 동안 지운이와 나누던 정 때문이었지 절대 형님의 태자 자리를 넘보기 위함이 아닙니다. 지운이는 그저 서녀일 뿐 결코 하늘의 뜻을 감당할 사람은 아니니 부디 모후께서 허락해 주십시오.”

황후는 한참을 생각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허나 이 경성 사람들 모두 너와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지낸 이가 서정연이라는 걸 알고 있지 않으냐. 그런데 이제 와서...”

그는 황급히 말을 끊었다.

“소자는 그 아이를 누이처럼 여겼을 뿐인데 뜻하지 않게 사람들이 오해한 듯합니다.”

나는 차갑게 웃었다. 누이라니... 참으로 그럴싸한 말이었다.

태자의 몸에는 용의 기운이 서려 있다. 내 기운까지 보태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태자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을 걸고 서출인 서지운을 택하겠다는데 내가 막을 리가 없지.’

...

대전을 나서자마자 강경헌의 하인이 내 앞을 막아섰다.

“정연 아씨, 잠시 멈춰 주십시오. 서왕 전하께서 찾으십니다.”

나는 후미진 누각으로 끌려가다시피 안내되었다. 차가 한 잔, 또 한 잔 끝도 없이 올라왔고 나는 거절할 틈도 없이 마셔야 했다. 그러나 정작 아무리 기다려도 강경헌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랫배가 터질 듯 참기 힘들어졌을 때, 강경헌은 마침내 차가운 얼굴로 나타났다.

“그때 지운이가 네게 도움을 청했을 때 넌 이렇게 지운이를 대했지. 직접 당해 보니 어떠냐?”

전생에는 군무를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지운이를 막았었다. 그 덕에 대승을 거두었으면서 이제와서 나를 원망하다니...

“너도 다시 태어났다는 걸 알고 있다. 서정연.”

“네가 악독하고 질투가 많긴 해도 한때 부부였으니 끝까지 너를 몰아붙이진 않겠다. 정 나를 놓지 못하겠다면, 지운이와 혼례를 올린 뒤 너를 첩으로 들여 줄 수도 있다.”

나는 탁 소리가 나게 찻잔을 상 위에 내려놓았다.

“우리가 이번 생에 다시 태어난 이상 서로 제 길을 가는 게 좋겠지.”

“굳이 지난 생의 원한을 따진다면 따져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 서정연이야! 이미 지운이와의 혼인이 정해졌다면 우리는 멀어질수록 좋겠어.”

“자은사(慈恩寺)에 들어가 일 년 동안 기도를 올리겠다고 청하겠으니 너와 더 이상 엮일 일은 없을 거야.”

내가 이렇게 물러서겠다는데 강경헌은 기뻐하기는커녕 얼굴만 점점 어두워졌다.

할 말을 끝내고 나는 강경헌 곁으로 빠져 나가려 했다. 그런데 강경헌이 내 손을 붙잡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네 죽음에 대해서는 내가 지나쳤다. 하지만 네가 지운이를 흉내 내, 이마에 꽃 문양을 그리지만 않아도 내가 화날 일은 없었겠지!”

“이번 생에도 얌전히 분수를 지키기만 하면 서왕부에 널 위한 자리가 있을 것이다. 우리도 한때는 정을 나누지 않았느냐. 네가 황후 자리만 넘보지 않는다면 사랑 받는 후궁으로도…”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그의 말을 끊었다.

“이젠 서로 제 갈 길을 가자. 첩 따위는 생각 조차 하기 싫어!”

막 집에 돌아오자마자 조서가 도착했다.

아버지는 흐뭇한 얼굴로 나를 앞으로 밀어냈다.

“어서 조서를 받지 않고 뭣하느냐?”

미처 설명하기도 전에 조서를 읽던 내관이 말했다.

“승상께서 잘못 아셨습니다. 이 조서는 승상부의 둘째 아씨께 내려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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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그 말이 나와 대전에 있던 모두가 마주 보며 눈치를 살폈다. 도사가 다시 입을 열려 하자 나는 눈짓으로 막았다.그 조서는 오래전 강경헌의 어머니가 폐하를 구하다 목숨을 잃은 대가로 내려진 것이었다.그런데 강경헌이 그 조서를 이런 데 써먹을 줄은 몰랐다.비록 지난 생에 내가 그를 도왔었지만 그가 명분을 갖추고 황위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결국 그 조서 덕분이었다.강경헌이 서지운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황후는 훗날 또 다른 변수가 생길까 봐 겁이나 강경헌이 그 조서를 일찌감치 써 버리길 내심 바라고 있었다. “서정연,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서왕 전하께서 제 동생을 마음에 두셨다니... 서씨 가문의 영광입니다.”내가 공손히 예를 올리자 강경헌은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그러나 그의 태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소자가 서지운을 왕비로 맞고자 하는 것은 그 동안 지운이와 나누던 정 때문이었지 절대 형님의 태자 자리를 넘보기 위함이 아닙니다. 지운이는 그저 서녀일 뿐 결코 하늘의 뜻을 감당할 사람은 아니니 부디 모후께서 허락해 주십시오.”황후는 한참을 생각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허나 이 경성 사람들 모두 너와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지낸 이가 서정연이라는 걸 알고 있지 않으냐. 그런데 이제 와서...”그는 황급히 말을 끊었다.“소자는 그 아이를 누이처럼 여겼을 뿐인데 뜻하지 않게 사람들이 오해한 듯합니다.”나는 차갑게 웃었다. 누이라니... 참으로 그럴싸한 말이었다.태자의 몸에는 용의 기운이 서려 있다. 내 기운까지 보태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태자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모든 것을 걸고 서출인 서지운을 택하겠다는데 내가 막을 리가 없지.’...대전을 나서자마자 강경헌의 하인이 내 앞을 막아섰다.“정연 아씨, 잠시 멈춰 주십시오. 서왕 전하께서 찾으십니다.”나는 후미진 누각으로 끌려가다시피 안내되었다. 차가 한 잔, 또 한 잔 끝도 없이 올라왔고 나는 거절할 틈도 없이 마셔야 했다. 그러나 정작 아무리 기다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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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조서가 궁문을 나서 승상부까지 전해진 일만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강경헌이 일부러 소문까지 부추겼으니.승상부는 하룻밤 사이 저잣거리의 입방아에 올랐다.“여태껏 서왕 전하와 나란히 드나들던 이는 분명 적출 아씨 서정연이었던 것 같은데 정작 혼인은 서출인 서지운과 하다니... 쯧쯧.”나는 백성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설마 그동안 서정연이 혼자 전하께 매달렸던 건가?”“승상은 그리 청렴하고 반듯한 분인데 따님은 어쩌다 저 모양이 됐대? 적출 아씨라는 이가 몸가짐이 가볍다 보니... 서왕 전하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도 당연하지.”이튿날 이른 아침, 강경헌은 열 대의 마차에 귀한 예물을 가득 실어 승상부로 보냈다.그 일은 그가 서지운을 얼마나 아끼는지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아버지는 글씨를 쓰고 있던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정연아, 아비는 너와 전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허나 지금 세상에 떠도는 말이 너에게 좋지 않구나. 잠시 경성을 떠나 바람이라도 쐬고 오겠느냐?”나는 손에 들고 있던 붓을 내려놓았다.“저도 처음에는 자은사에 들어가 피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아버지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참으로 업보로구나. 그때 지운이를 집으로 들이지 말았어야 했는데...”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지운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저를 변방의 숙부 내외에게 맡겨 두셨지요. 그런데 서왕 전하께서 절 마음에 두시니 제가 이제는 서왕 전하마저 언니에게 양보해 줘야 합니까?”아버지는 그녀를 바라본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나 서지운은 갈수록 더 기세가 올랐다.“비록 언니만큼 귀하게 자라진 못해도 아버지의 가장 자랑스러운 딸은 바로 저라는 걸 반드시 보여 드리겠습니다!”그녀는 홧김에 몸을 돌려 나갔다. 아버지는 혹시라도 일이 생길까 사람을 붙였으나 그들은 그녀가 서왕부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나는 아버지를 달랬다.“지금은 그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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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나는 그가 서지운을 다정하게 달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나를 볼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서정연, 네가 대체 어디가 경성에서 으뜸가는 아가씨 답다는 거냐? 넌 그저 질투에 눈이 멀어 방 안에서 썩어 가는 못난 여인일 뿐이야!”하지만 고작 지난달까지만 해도 강경헌은 나와 함께 뱃놀이를 하며 내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이토록 아름다운 너를 남들에게 보여 주기 아까워.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 두고 싶네.”내 눈가가 붉어진 것을 본 걸까. 혹시 서지운이 놀랄까 싶었는지 강경헌은 곧 사람을 불러 그녀를 데려가게 했다.“전생에 우리가 갈라지게 된 건 네가 지운이를 받아들이지 못해서야. 그런데 이번 생에서도 똑같은 잘못을 하려는 거니?”나는 눈물을 꾹 참고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왜 지운이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너도 지운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잖아. 지운이의 존재 자체가 우리 서씨 집안한테는 상처야. 아버지가 차마 내치지 못해서 거두고 있을 뿐이라고!”당시 서지운의 아버지는 그저 시정잡배에 불과했다. 그가 어머니를 겁탈했기에 서지운이 생기게 된 것이다.어머니는 그 일로 마음이 아파 시름시름 앓고 계시다가 세상을 떠났다.아버지는 그래도 그 아이가 어머니의 피줄이라는 이유로 차마 내쫓지 못했고 그 아이를 죽이는 건 더더욱 하지 못했다.강경헌은 갑자기 분노에 휩싸여 내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당시 지운이는 그저 어린아이였을 뿐이야. 무슨 죄가 있다고! 이 일을 마음 속 깊이 묻어 두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소문 내면... 그땐 두고 봐. 네 입을 영영 다물게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숨이 점점 막혀 올 때쯤, 강경헌이 겨우 손을 놓았다.“여봐라. 정연 아씨는 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마음에 자은사로 가 한 달 동안 기도를 올리려 한다. 당장 모셔 가거라.”길가의 백성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다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그 뒤로 나는 절에 갇힌 채 바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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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 들려왔다.서왕비가 머지않아 역병이 돌 것이라 예언했다는 것이다.그 예언이 퍼지자마자 백성들 사이에는 순식간에 두려움이 번졌다. 곡식과 약재 값도 미친 듯이 뛰었다.폐하께서도 소문을 누르려 하셨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대전에서 서왕이 많은 사람을 동원해 미리 대비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태자뿐이었다.장을 보러 다녀온 하녀가 말했다.“요즘 많은 백성들이 가진 돈을 전부 털어 약재와 곡식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 비가 잦아 제대로 보관할 곳이 없다 보니 그 물건들이 곧 다 곰팡이가 슬 듯합니다.”나는 한숨을 내쉬었다.“우선 태자 전하께 이 일을 알려 사람을 보내 백성들의 곡식 창고를 지키라고 전하거라.”그 뒤로 열흘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고 서왕비가 예언한 날은 이미 훌쩍 지나 있었는데 역병은 오지 않았다.그제야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백성들은 원망을 터뜨리며 서왕부로 몰려갔고 보내 두었던 하인들이 돌아와 보고했다. 백성들이 집에 쌓아 둔 곡식들이 장마철 습기를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 곰팡이가 슬었다고...나는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에야 느긋하게 그곳으로 향했다.“우리가 서왕비 말을 믿다가 이렇게 큰 손해를 봤는데 이대로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않소?”“맞소! 뭐라도 해명은 해야 할 것 아니오? 설마 지난번 수재가 일어날 것을 맞힌 것도 어쩌다 얻어걸린 거였나?”“그걸 누가 알겠소. 서왕 전하께서 저 서출 왕비를 위해 그 난리를 쳤는데 혹시 그들이 일부러 제방을 무너뜨려 수재를 일으킨 건 아닌지 누가 알겠냐는 말이오!”말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험해지자 강경헌과 서지운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그때, 뒤로 큰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여러분, 지난 일은 어찌 되었든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저와 승상부의 아씨는 여러분께 따로 보상을 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비가 잦은 때라 곡식을 오래 보관하기는 어려우니 각자 집으로 돌아가 확인한 뒤 먹을 수 없게 된 곡식을 승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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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강경헌이 승상부를 찾아왔다.다만 꼴은 꽤나 엉망이었다.“저 호위들은 네가 배치한 것이냐?”“그래. 너를 위해 특별히 배치했지.”강경헌은 한숨을 내쉬더니 제멋대로 내 방에 들어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네가 내게 화가 난 것은 안다. 하지만 난 네게 정이 없는 것은 아니야. 내가 지운이를 왕비로 맞은 일로 이미 부황과 모후의 노여움을 샀으니 당장 너까지 서왕부로 들이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네가 알아서 방법을 찾아보거라. 내가 한 약속은 변치 않으니.”나는 싸늘하게 웃었다.“나더러 서씨 집안을 걸고 어명을 거슬러라고?”“내 목숨이 하찮아 보이니? 강경헌.”그가 헛기침을 했다.“넌 모두를 무사히 지킬 방법을 알고 있지 않느냐. 네가 형님께 무엇을 바라는지도 이미 알고 있다. 나 역시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어.”이제 그의 말은 단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전생에 그는 고작 서지운의 편지 한 통으로 나에게 죽을 죄를 씌웠다.내가 끝까지 말을 바꾸지 않자 그는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마침 그의 호위가 들어와 보고했다.“왕비께서 몸이 불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십니다.”강경헌은 떠나면서도 나를 협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연아, 결국 황위에 오를 사람은 나야. 머리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 지 판단이 가겠지. 네 아버지와 서씨 집안을 걸고 고집 부리지 마라.”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강경헌이 다시 돌아왔다.그는 나를 억지로 품에 가두고 밖으로 나갔다.“지운이에게 네가 직접 약속해야 할 일이 있다.”서왕부에 도착했을 때 서지운은 마침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옷차림도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서러운 얼굴로 강경헌의 품에 파고들었다.“전하, 어찌 저 여인을 데려오신 겁니까? 아직도 저 여인에게 마음이 남아 있으신 겁니까?”강경헌은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나와 저 여인이 부부로 지낸 세월이 있지 않느냐. 게다가 훗날 내가 황위에 오르려면 가문이 받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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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서지운은 울먹이며 강경헌의 다리를 끌어안았고 그러면서도 내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언니예요! 전부 언니가 한 짓이에요. 언니가 일부러 저 사람을 상자 안에 숨겨 놓고 저를 모함한 거라고요. 제가 전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찌 다른 사내를 들이겠어요?”그 사내는 서지운의 눈짓을 받자 곧장 나를 물고 늘어지려 했다.나는 그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한 짓이라면 인정해야지. 나는 왕비를 모함했으니 옥에 갇히면 될 일이고 저 사내는 왕비의 몸을 더럽혔으니 끌고 나가 때려죽이면 되겠네.”그 사내는 내가 나 자신마저 몰아붙이는 것을 보고 순식간에 겁을 먹고 곧장 서지운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살려 주십시오. 마마! 흑흑, 소인이 마마를 얼마나 즐겁게 해 드렸습니까. 마마도 좋아하셨잖습니까! 제발 소인을 지켜 주셔야 합니다!”강경헌은 얼굴을 시커멓게 굳힌 채 일을 수습하기 시작했고 나는 문득 전생의 일이 떠올랐다.지난 생, 서지운이 죽은 뒤 그녀가 다른 사내와 정을 통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다만 강경헌은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소문을 낸 자들을 처벌했다.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여인를 바라보았다.“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전생에 네가 죽은 것도 이런 일 때문이었니?”더는 변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서지운은 차라리 인정해 버렸다.“맞아. 강림연은 남자로서 구실도 못 하는 사람 같았어. 아무리 유혹해도 꿈쩍도 안 하더라. 나도 사람인데 내 즐거움은 스스로 찾아 봐야지 않겠어?”나는 혀를 끌끌 차며 강경헌을 바라보았다.강경헌 역시 더는 참지 못한 듯 얼굴을 시커멓게 굳힌 채 서지운을 노려보았다.“천한 것! 내가 어쩌다 눈이 멀어 모든 것을 걸고 너를 왕비로 맞았단 말이냐?”그런데 서지운은 오히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래요. 전하는 정말 눈이 멀었지요.”“눈만 먼 게 아니라 어리석기까지 했고요! 전하는 그때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의 이마에 붉은 자국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했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언니야말로 이마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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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그런데 그가 공을 세워 경성으로 돌아오기 위해 먼저 야만족을 공격할 줄이야.야만족의 수령과 폐하는 이미 십 년 전 전쟁을 멈추기로 약조를 맺었었는데 이는 폐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짓이나 다름없었다.전황 보고가 올라오자 폐하께서는 곧장 사람을 보내 병사들을 막으려 했다.하지만 군심이 하나로 모이지 못한 탓에 강경헌은 그 전투에서 참패했고 결국 태자가 직접 사신으로 나서서 사과한 뒤에야 그들도 겨우 분을 풀었다.다만 그들에게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혼인을 맺자는 것이었다.게다가 그들은 승상부에 하늘의 뜻을 지니고 태어난 서녀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상태였다.그리하여 서지운은 그들이 직접 지목한 혼인 상대가 되었다.소식이 전해졌을 때 폐하께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자신의 며느리였으니.하지만 강경헌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그는 울부짖는 서지운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마차에 태워 보냈다.폐하께서는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께 큰 상을 내리려 하셨지만 아버지는 감히 받지 못하고 결국 서지운의 출생 비밀을 모두 털어놓았다.폐하께서는 아버지가 슬픔에 정신을 놓은 것이라 여기셨고 도사를 불러온 뒤에야 그 말을 믿으셨다.“승상의 말은 사실입니다. 천명을 타고난 여인도 둘째 아씨가 아니라 큰아씨입니다.”“둘째 아씨의 생부는 본래 마음이 바르지 못한 자였습니다. 미래를 보는 힘이 그런 피를 따라 이어질 리 없습니다.”폐하께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어찌 그런 은밀한 사정까지 알고 있단 말이냐?”도사는 한숨을 내쉬었다.“승상의 부인은 저와 같은 스승 밑에서 배웠었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군사들은 경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강경헌은 이미 완전히 이성을 잃은 뒤였다.그가 폐하를 뵙자마자 꺼낸 첫마디는 뜻밖에도 나를 왕비로 맞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지난날 소자가 어리석어 그 천한 여인의 말에 속았지만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연이야말로 제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것을... 부디 부황께서 허락해 주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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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순간 여러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나는 막 떠나려던 강림연을 붙잡았다.“강경헌에게 사람을 붙여 두셨습니까? 그가 역모를 일으킬 겁니다!”강림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바로 부하를 불러 일을 지시했다.그런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경헌 곁에 숨겨둔 비밀 호위가 급히 들어와 보고했다.“전하, 서왕 전하가 밤새 경성을 빠져나가 진씨 집안의 옛 세력들을 찾아갔습니다.”진씨 가문의 군대는 숙비(淑妃)의 친정 쪽 세력이었다.다만 지금은 세력이 예전 같지 않을 뿐.하지만 지금 군대를 이끄는 장군은 전생에 강림연의 사람이었다.“내가 사람을 남겨 승상부를 지키게 하마. 너는 몸조심하고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전하께서는 이번에 그를 한 번에 잡아들이실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신다면 후환을 없앨 수도 있고요.”강림연은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곧 자리를 떠났다....그러다 사흘째 되던 밤.강경헌은 군사를 이끌고 궁으로 쳐들어갔고 그중 일부는 승상부를 에워쌌다.‘이상하다고는 느끼지 않았을까? 궁으로 들어가는 길이 너무나도 순조로웠는데...’그가 칼을 들고 폐하를 위협하던 바로 그때, 강림연이 그의 뒤에 나타나 그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이러면 너희가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느냐? 밖은 전부 내 사람들이다!”폐하께서도 입을 열었다.“내가 너를 홀대한 적이 없거늘. 이 불효한 놈! 정말 이 아비이자 이 나라의 황제를 죽일 생각이냐?”강경헌은 두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군대 병사들을 부르려 했다.그러나 병사들은 대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모두 곧장 무릎을 꿇었다.“폐하, 태자 전하를 뵈옵니다!”강경헌은 그제야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곧장 몸을 돌려 달아났고 폐하는 그를 쫓으려는 사람들을 막았다.그래도 제 아들이었기에 차마 끝까지 모질게 굴지 못하신 것이다.하지만 강경헌은 도망가지 않고 곧장 승상부로 향했다.그는 호위들과 피투성이로 싸우면서도 나를 향해 소리쳤다.“정연아! 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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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그날 밤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강림연의 말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서지운은 정말 죽어야 마땅했다.서지운 이야기가 나오니 나는 또다시 그녀에게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늙은 수령이 죽은 뒤 그녀는 새 수령을 따르게 되었다.그녀가 아무리 기다려도 강경헌은 오지 않고 그가 갇혔다는 소식만 들려오자 그녀는 아예 야만족의 새 수령에게 이마에 겹연꽃 문양이 있고 진정으로 하늘의 뜻을 지니고 태어난 여인은 나라고 일러바쳤다.바로 그 말 덕분에 그녀는 눈에 띄었고 새 수령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 되었다.그녀는 야만족을 부추겨 변경을 넘게 했고 나아가 경성까지 치려 했다.강림연이 출정하기 전, 나는 그를 위해 점을 쳐 보았다.대길이었다.“전하, 제 선물로 서지운을 데려와 주실 수 있습니까?”강림연은 고개를 들어 물었다.“죽은 것이 좋으냐, 산 것이 좋으냐?”나는 잠시 생각했다.“산 것이 좋겠습니다.”...반년 뒤, 나는 성문 앞에서 돌아오는 군사들을 보았다.강림연은 그을리고 말라 있었는데도 더 멋있어졌다.뒤따르던 병사의 말 뒤에는 서지운이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그녀는 이미 사람 꼴이 아니었다.“괜히 보지 마라. 눈만 더러워진다.”그는 나를 말 위로 안아 올리고 곧장 궁문 쪽으로 향했다.“너무 보고 싶었다. 정연아. 이렇게 안고 싶어서 견딜 수 없을 만큼.”나는 코를 막았다.“그런데 전하, 정말 냄새가 심합니다.”강림연은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도 기분은 좋아 보였다.“냄새가 나도 참아라.”그날 밤, 나는 옥에 갇힌 서지운을 만나러 갔다.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곧장 달려들었다.“서정연, 대체 왜야? 너와 나는 분명 같은 아버지의 딸이잖아. 어머니만 다를 뿐인데 왜 나는 끝까지 너를 이길 수 없는 거야!”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그러자 궁인은 향로를 가져와 나와 그녀 사이에 내려놓았다.그녀는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틀렸어.”“우리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달라.”서지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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