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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스며든 아픔
뼛속까지 스며든 아픔
Autor: 달콤한 곰돌이

제1화

Autor: 달콤한 곰돌이
지민마저 내 품에서 빼앗겨 황후의 손에서 자랐다.

강도현은 내게 온갖 호사를 베풀었지만, 아들만큼은 끝내 내게 보여 주지 않았다.

나는 날마다 봉의궁(鳳儀宮)에 문안드리러 갔다. 내 친아들이 백유리의 곁에서 "어마마마"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궁에 들어온 지 다섯 해째 되던 해, 나는 백유리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황후마마, 부디 은혜를 베푸시어 제가 궁을 나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영남(嶺南)으로 돌아가 설을 보내고 싶었다.

아버지의 묘 곁에 묻히고 싶었다.

...

백유리는 높은 자리에 앉아 손톱에 끼운 장식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라야, 대체 왜 이러느냐?"

"이 넓은 후궁에는 우리 둘뿐이잖니?"

"폐하께서도 내 뜻대로 너를 외면하시지 않고 매달 한 번씩 네 처소에 드시지 않느냐?"

"대체 무엇이 그리 불만이냐?"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총애는 그저 의례적인 일에 불과하며 시골 아낙인 나에게 베푸는 은혜였다.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피비린 맛을 삼키며 머리를 더욱 깊이 조아렸다.

"저는 천한 팔자라 궁에서 누리는 복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부디 마마께서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아무런 이유도 말하지 않고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

백유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고집을 더는 어찌할 수 없다는 듯했다.

"됐다. 네가 이미 마음을 정했다면 나도 더는 붙잡지 않겠다."

"내일 밤, 내 곁의 최 상궁에게 너를 경성 밖까지 데려다주라 이르겠다."

"마마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출궁패를 받아 나는 별전으로 돌아왔다.

밤이 되자 등불을 밝혀 놓고 마지막 한 땀까지 꿰매 마무리했다.

지민에게 주려고 만든 새 신발 한 켤레였다. 전에 밤을 새워 지어 둔 노란 비단 두루마기까지 갖추니 꼭 한 벌이었다.

다음 날, 궁을 나가기 전 나는 몰래 상서방(尙書房) 밖에서 지민을 기다렸다.

지민이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키가 이미 내 허리까지 자라 있었다.

"지민..."

나는 지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다.

지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나는 황급히 옷과 신발을 내밀며 조심스레 웃어 보였다.

"이 옷감은 반년 동안 받은 월봉을 아껴 마련한 것이다. 내가 직접 지었으니 한번 입어 보고 잘 맞는지 보거라."

지민은 옷을 한 번 바라보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바닥에 세게 내던졌다.

옷은 진흙탕에 떨어져 엉망이 되었다.

"천한 주제에 내 옷 만들어 줄 자격도 없다."

고작 여덟 살인 지민이 차갑게 얼굴을 굳힌 모습은 강도현을 쏙 빼닮아 있었다.

"나는 네..."

"네가 내 친어머니라고 뭐 어때서?”

지민은 목소리를 높였고, 어린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내 어마마마는 지금 황후마마다!"

"상서방의 모든 벗이 내가 시골 아낙을 친어미로 두었다고 비웃게 만들 셈이야?"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칼에 찔린 듯 아파 온몸이 떨렸다.

나는 변명하고 싶었다. 죽기 전에 지민이 내게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라고 불러 주는 걸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민은 질색한 듯 소매를 뿌리치고 돌아서 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 버린 채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들었다.

"한서라, 또 지민에게 무슨 짓을 하라고 부추긴 것이냐?"

그때 머리 위에 차갑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렸다.

등줄기가 굳어지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강도현이 밝은 황금빛 곤룡포를 입고 봉황 무늬 예복을 차려입은 백유리와 나란히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이 칼날처럼 서늘하게 번뜩이며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아직도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지 않는 것이냐?"

나는 멍하니 차가운 청석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강도현은 몇 걸음 다가와 내가 손수 지은 옷을 그대로 발로 짓밟았다.

"한서라, 내가 지민의 출생을 함부로 밝히지 말라고 몇 번이나 경고했느냐?"

"정녕 네가 친어미라는 이유로 지민이 열등감을 느끼게 만들 셈이냐?"

"황후가 지민을 예의도 바르고 사리도 분명하게 가르쳤잖니?”

"그런데 너는 오히려 모자 사이를 이간질하는구나!"

"한서라, 설마 지민을 이용해 총애와 권력을 차지하려는 것이냐? 똑똑히 일러두마. 지민에게는 절대로 태자의 자리를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차오른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그에게는 아들을 한 번 더 바라보는 것도 총애를 탐하는 일이었고, 친자식을 그리워하는 것조차 권력을 탐하는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가 황위에 오른 순간부터 나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지워 버리고 싶은 오점이 되어 버렸다.

백유리가 때맞춰 강도현의 팔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폐하,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서라도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니 방법을 잘못 택했을 뿐입니다.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강도현은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고, 눈빛이 순식간에 다정해졌다.

다시 나를 바라볼 때는 뼛속까지 시린 냉정함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정말 그런 마음이 있다면 분수나 지키고 조용히 살 것이지!"

"짐의 명을 전하거라. 오늘부터 한 답응을 별전에 가두고, 내 허락 없이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거라!"

"앞으로는 황후에게 문안드릴 필요도 없다. 눈에 거슬리니!"

나는 궁인들에게 거칠게 끌려 일어났다.

백유리가 내 곁을 지나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걱정 마. 네가 궁을 나가는 일은 내가 알아서 마련해 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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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뼛속까지 스며든 아픔   제12화

    나는 그의 앞에 떠 있었다.탁해진 그의 눈동자에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았다."서라... 나를 데리러 온 것이냐..."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눈에서 생기가 서서히 빠져나가고, 힘없이 늘어진 손이 눈밭에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강도현이 죽었다.그는 끝없는 후회와 절망 속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죽는 순간까지 눈을 감지 못했다.나는 비로소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십 년 동안 내 영혼을 붙들고 있던 힘이 갑자기 사라졌다.드디어 나는 떠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강도현의 장례식은 소박하게 치러졌다.지민은 그의 유언을 따르지 않았다.그는 직접 내 유골함을 강도현의 관에서 꺼냈다.출상하는 날에도 지민은 황릉으로 향하지 않았다.그는 수수한 흰옷으로 갈아입고 내 유골함을 품에 안은 채 영남으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다.십 년이나 되었다.경성에 내리던 눈이 마침내 그쳤다.수레바퀴가 덜컹이며 굴러갔고, 사람을 집어삼키던 경성은 점점 멀어졌다.마차 안의 지민은 유골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어머니, 우리 집으로 갑니다."그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고, 안도한 듯한 울먹임이 묻어 있었다."그 옷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작아졌지만 그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이제는 아무도 우리를 괴롭히지 못합니다."나는 마차 밖을 떠돌았다.점점 뒤로 물러나는 풍경을 바라보며, 가까워지는 남쪽을 바라보았다.‘영남의 겨울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온 산을 뒤덮은 푸른 나무들만 있을 뿐이다.’‘그곳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낡았지만 따뜻했던 내 집이 있다.’‘잘 가, 지민아.’‘좋은 황제가 되어라. 네 아버지처럼 되지는 말고.’따스한 바람이 불어오자, 내 영혼은 마침내 수많은 빛으로 변해 흩어졌다.영남으로 향하는 바람 속으로 사라져 갔다.경성의 눈은 지난 그리움을 덮어 주고, 영남의 바람은 옛사람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이렇게 내 삶도 마침내 끝났다.[끝]

  • 뼛속까지 스며든 아픔   제11화

    대세는 이미 정해졌다.백씨 가문은 멸문당했고, 백유리는 폐위되어 팔다리가 잘린 채 인형처럼 만들어져 내가 살았던 별전에 갇혔다.강빈욱은 서민으로 강등당해 영남으로 유배되었다.지민이 즉위하여 새 황제가 되었다.강도현은 태상황이 되었다.그의 몸은 완전히 망가졌다.태의는 이제 기력이 다해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눈이 내리던 날, 강도현은 사람을 시켜 자신을 매화 정원으로 옮기게 했다.그는 내 조각상에 기대어 말라붙은 핏자국을 손끝으로 어루만졌다.지민은 곤룡포를 입고 그의 앞에 차갑게 서 있었다."짐의 수명이 다했구나."강도현의 목소리는 바람만 불어도 흩어질 듯 허약했다.그는 애원하듯 지민을 바라보았다."지민아, 짐에게 마지막 소원이 하나 있다.""짐이 죽거든 네 어미와 나를 황릉에 함께 묻어 다오.""살아서는 한 이불을 덮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히겠다는 게... 내가 그때 보살님 앞에서 맹세했던 약속이다."지민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크게 웃었다.웃다가 눈물까지 흘렸다."살아서는 한 이불을 덮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히겠다고?""네가 그럴 자격이 있느냐?"지민은 웃음을 거두고 매섭게 소리쳤다."그때 한겨울 밤에 네가 직접 명을 내려 어머니의 손가락 열 개를 짓눌러 부러뜨렸잖니?""천하다고, 염치도 없는 여자라고 욕했잖니?""눈밭에서 얼어 죽어 가는 걸 보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잖니?""이제 와서 함께 묻히겠다고? 꿈도 꾸지 마!"강도현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리더니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지민아... 제발 부탁하마..."그는 힘겹게 침상에서 굴러 내려와 지민의 곤룡포를 붙잡으려 했다."내가 잘못했다... 정말 잘못했다...""저승은 너무 춥잖니? 네 어미는 어둠을 무서워하니 내가 가서 곁을 지켜 줘야 한다...""어머니가 어둠을 무서워하게 된 것도 다 네 탓이다!"지민은 조금도 가차 없이 한 걸음 물러나 절망에 빠진 채 눈밭에서 기어가는 강도현을 바라보았다."나는 이미 영남에

  • 뼛속까지 스며든 아픔   제10화

    변고가 일어난 것은 선제의 기일이었다.백 재상은 군권을 틀어쥐고 세력을 키우며 금군 통솔자와 손잡고 강도현에게 퇴위를 강요하여 태자 강빈욱을 서둘러 즉위시키려 했다.대군이 황궁을 에워쌌다.태화전 안에는 백유리는 화려한 황후 예복을 차려입고 오만하게 웃고 있었다."폐하, 병환으로 고생하신 지도 오래되었으니 이제 그만 쉬셔야 합니다.""양위 조서는 제가 이미 써 두었습니다. 옥새만 찍으시면 됩니다."강도현은 용상에 앉아 심하게 기침했다.피를 한 움큼 토해내고 백유리를 차갑게 바라보았을 뿐이었다."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느냐?""그러면 아니겠습니까?"백유리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밖의 금군은 모두 제 아버지의 사람입니다. 폐하께서는 이제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그때 전각 밖에서 하늘을 뒤흔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대문이 굉음과 함께 활짝 열렸다.은색 갑옷을 걸친 지민이 피 묻은 장검을 들고 전각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그 뒤에는 폐하를 구하러 온 군사들이 물밀듯이 따라 들어왔다."역적을 잡아라!"지민이 명을 내렸다.백유리가 경악했다."강지민! 지금 무슨 짓이냐? 내가 네 어마마마다!""어마마마?"지민이 차갑게 비웃더니 손에 든 검을 재빠르게 휘돌리더니 백유리의 어깨를 꿰뚫었다."악!"백유리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지민은 그녀의 상처를 발로 짓밟고 힘껏 짓눌렀다."이 독한 년아, 네가 감히 그 말을 입에 올리다니!""그때 네가 계략을 꾸며 내 친어머니를 죽게 만들고, 억지로 원수를 어머니라 부르게 했지.""지난 십 년 동안 날 날마다 짓밟아 놓고도, 정말 내가 물지 않는 개라고 생각했느냐?"강빈욱은 겁에 질려 오줌까지 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연신 빌었다."형님,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지민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손을 뒤집어 검을 휘둘렀다.강빈욱의 손발 힘줄을 단숨에 끊어 버렸다."그 손으로 나를 때리고 그 발로 나를 걷어찼지.""오늘 그대로 돌려주마."강빈욱은 돼지

  • 뼛속까지 스며든 아픔   제9화

    십 년, 나는 궁에서 꼬박 십 년이나 떠돌았다.그 십 년 동안 나는 백유리의 적자 강빈욱이 막무가내인 망나니로 자라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는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며 남을 짓밟고 제멋대로 굴었다.상서방에서 동반 학동들을 말처럼 타고 괴롭히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채찍질했다.그중에서도 지민은 그가 가장 괴롭히기 좋아하는 상대였다."강지민, 너는 고작 사생아일 뿐이니 어서 엎드려 내 말이 되어라!"열두 살인 강빈욱은 거들먹거리며 지민의 무릎을 걷어찼다.지민은 아무 표정도 없이 바닥에 엎드려 무릎을 꿇었다.강빈욱이 등에 올라타 말채찍을 휘두르게 내버려두었다."이랴! 사생아, 빨리 달려라!"지민의 두 손은 거친 바닥에 닳아 피가 배어 나왔다.하지만 그는 신음조차 하지 않았다.다만 내리깔린 눈동자에는 짙은 살기가 들끓고 있었다.강도현도 이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마치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그는 매일 조회에 나가는 것 말고는 매화 정원에서 내 조각상만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백유리는 몹시 의기양양했다.자신이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했다.지민의 기개는 이미 꺾였고,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여겼다.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몰랐다.한밤중이면 지민은 온몸의 진흙을 씻어 내고 야행복으로 갈아입었다.그는 모든 암중 호위들의 눈을 피해 소리 없이 전조 중신들의 저택에 잠입했다.지난 십 년 동안 그는 끝까지 참고 견디며 백씨 외척의 전횡에 불만을 품은 충신들의 지지를 얻어 냈다.그는 직접 군영으로 찾아가 백씨 가문에 억눌려 지내던 한미한 집안 출신의 장수들과 의형제를 맺었다.그는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독사와 같았다.평소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지만, 한번 나서면 반드시 적을 단숨에 쓰러뜨렸다.열여덟 살이 된 지민은 훤칠한 키에 서늘한 인상을 지닌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눈매와 이목구비는 강도현을 닮았지만, 눈빛만큼은 그보다 훨씬 매섭고 차가웠다."어머니."내 생일날

  • 뼛속까지 스며든 아픔   제8화

    그는 백유리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가장 충직한 개와 같았다.하지만 허공에 떠 있던 나는 그 소매 안의 피가 배어 나올 만큼 꽉 움켜쥔 두 주먹을 똑똑히 보았다.내 아들 지민의 마음에는 증오가 가득했다.백유리에 대한 증오, 강도현에 대한 증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증오까지 있다.열 달 뒤, 백유리가 사내아기를 낳았다.강도현은 아이에게 강빈욱이라는 이름을 내렸다.황자가 태어나자, 전국에 대사면이 베풀어졌다.재상 일파는 더욱 기세등등해져 앞다투어 강빈욱을 태자로 책봉하라는 상소를 올렸다.강도현은 그것을 허락했다.책봉 대례가 열린 날, 지민은 사람들 맨 뒤에 서 있었다.사람들의 환호 속에 주인공처럼 둘러싸인 강빈욱을 바라보았다.그는 몸을 돌려 쓸쓸한 별전으로 향했다.그곳에는 내 위패가 놓여 있었다."어머니."지민은 방석 위에서 무릎을 꿇고, 너무나 빨아서 바래 버린 데다 길이도 한 뼘이나 짧아진 두루마기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다들 축하하러 갔습니다. 아무도 어머니를 기억하지 않습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어머니의 것을 전부 되찾아 드리겠습니다."그는 차갑고 딱딱한 벽돌 바닥에 머리를 힘껏 조아렸다.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내 위패 앞에 떨어졌다.강도현은 갈수록 이성을 잃었다.그는 어화원에 있는 모란을 모조리 뽑아 버리고 매화를 가득 심으라고 명을 내렸다.내가 매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 때문이었다.그는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을 불러 나와 꼭 닮은 크기의 나무 조각상을 만들게 했다.심지어 자기 피로 조각상에 불경을 한 글자 한 글자씩 베껴 쓰기까지 했다."서라, 태부께서 예전에 내게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응한다고 하셨다.""내 피를 전부 네게 줄 테니, 한 번만이라도 돌아와 나를 봐주면 안 되겠느냐?"그는 뼈만 앙상하게 남을 정도로 야위었고, 곤룡포는 몸에 헐렁하게 걸려 있었다.밤이면 그는 자주 피를 토했다.그 피의 빛깔은 내가 죽기 전 토했던 피와 똑같았다.나는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정성이

  • 뼛속까지 스며든 아픔   제7화

    강도현은 백유리를 죽이지 않았다.백유리의 아버지는 조정의 재상이었고, 조정 곳곳에 그의 문하와 옛 부하들이 포진해 있었다.조정에서는 압박이 거셌고, 후궁에는 회임한 백유리가 있었다.강도현은 어쩔 수 없이 백유리를 봉의궁에 가두어 두었다.하지만 그는 미친 사람처럼 그날 밤의 일에 연루된 궁인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전각 밖에 쌓인 눈이 피로 물들어 검붉은색으로 되었다.그는 내 시신을 안아서 침상으로 옮겼다.가장 귀한 잠사로 내 상처를 꿰매고, 천금으로도 구하기 힘든 불로약을 내 입에 넣어 시신이 썩지 않게 했다.그는 밤낮으로 내 곁을 지켰다.조정에도 나가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서라, 보거라. 짐이 네게 새 옷을 마련했다. 네가 입던 것보다 훨씬 예쁘지 않으냐?""네가 깨어나면 짐이 너를 영남으로 데려가마. 어떠냐?"그는 시신을 앞에 두고 혼잣말을 늘어놓았다.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가 가엾고 딱하다는 생각만 들었다.지민의 처지도 달라졌다.백유리는 봉의궁에 갇힌 뒤 모든 원망을 지민에게 퍼부었다."네 그 천한 어미가 죽었는데 너는 어째서 아직도 여기에 남아 있느냐?"백유리가 지민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너는 내가 거둬 기른 개 한 마리에 불과하다. 이제 내 친자식까지 생겼으니, 네가 뭔데?"지민은 울지 않았다.그는 백유리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음침한 기색이 눈빛에 서려 있었다.내가 죽은 뒤로 그는 다시는 웃지 않았다.그는 한밤중이면 홀로 신무문 밖의 그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가곤 했다.그곳에서 그는 그날 최 상궁이 돌 틈에 떨어뜨린 반쪽짜리 출궁패를 찾아냈다.그제야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자기 손으로 친어머니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원수를 부모님으로 여겼던 것이었다.여덟 살 아이는 하룻밤 사이에 철이 들었다.그는 감정을 숨기고 참는 법을 배웠다.그는 더 이상 백유리의 매질과 욕설에 맞서지 않고 오히려 더욱 공손하게 굴었다."제가 잘못했습니다. 아우가 태어날 때까지 어마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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