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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잡는 규방 훈계록

나를 잡는 규방 훈계록

By:  삼칠이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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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는 규방 훈계록 한 권이 있었다. 내가 일곱 살이던 해, 변방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허리를 굽혀 나를 안으려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그사이를 가로막고 차갑게 말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했으니, 아무리 부녀지간이라 해도 남녀의 분별은 지켜야 합니다." 그날 이후 나는 외부의 사내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금해졌고, 아버지와 오라버니와 독대하는 일 역시 허락되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금기를 어기면 반드시 벌받아야 했다. 어머니는 내가 범한 모든 규수의 도리에 어긋난 일을 빠짐없이 기록해 두었다. "영안 십이 년 삼 월 초엿새, 심소영은 회랑에서 큰오라버니와 단둘이 있었다. 분수를 지키지 못했으니 『여계(女誡)』를 스무 번 베껴 쓰도록 한다." "오월 열아흐레, 심소영이 돌계단에서 넘어졌을 때 사촌 오라버니가 손을 내밀어 부축했다. 규수의 예법을 지키지 못했으니 두 시진 동안 꿇어앉아 반성하도록 한다." "팔월 초이레, 심소영은 발 너머로 세자 저하를 몰래 엿보았다. 마음가짐이 흐트러졌으니 손바닥을 열 대 친다." 나는 줄곧 어머니가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이토록 엄격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외실이 낳은 심다정이 일곱 살이 되어서야, 나는 어머니가 모든 딸에게 그토록 엄격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아이는 여전히 아버지 품에 안겨 응석을 부렸고, 오라버니의 소매를 붙잡은 채 등불 축제를 구경하러 다녔으며, 사촌 오라버니의 어깨에 올라 계화를 따기도 했다. 누군가 심다정도 이제 나이가 찼으니 마땅히 남녀의 분별을 지켜야 한다고 일렀으나 어머니는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다정이는 마음이 순수하니, 그런 죽은 규율로 아이를 옭아매면 안 됩니다." 나는 여덟 해나 남녀의 분별을 지켜 왔다. 그리고 내가 계례를 올리던 해, 심다정이 발을 헛디뎌 물에 빠졌다. 혼담을 위해 찾아온 죽마고우가 그녀를 구해냈을 때, 두 사람은 흠뻑 젖은 옷차림으로 서로 맞닿아 있었다. 그날 밤, 어머니는 규방 훈계록을 펼쳐 내가 지난 세월 동안 저지른 잘못을 하나씩 세기 시작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세고 난 뒤, 어머니는 내 사주단자를 심다정 앞에 밀어 놓았다. "남녀 사이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 허나 그 아이는 이미 다정이를 안았으니, 마땅히 다정이를 부인으로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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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앞마당에는 붉은 비단이 가득 걸려 있었다.

서씨 가문은 돌아서자마자 혼약을 맺으러 혼수를 들고 찾아왔고,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은 정당에 앉아 경성 지도를 펼쳐 놓고 심다정의 혼수로 보낼 점포를 고르고 있었다.

큰오라버니가 성 동쪽 지역을 가리켰다.

"이곳 연지 점포가 가장 수익이 좋습니다. 다정이는 평소 분단장을 좋아하니 이곳을 주면 되겠습니다."

사촌 오라버니가 반대했다.

"성 남쪽의 옥기점이 더 낫습니다. 다정이에게 주기에도 그쪽이 어울립니다."

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통 크게 손을 내저어 가장 수익이 좋은 두 곳의 점포를 모두 심다정의 이름으로 돌렸다.

나는 대청 문턱 밖에 서서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막 별당을 지나려던 순간, 뒤에서 어머니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라."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린 뒤, 눈을 내리깔았다.

어머니는 별당 태사 의자에 꼿꼿이 앉아 계셨고, 무릎 위에는 두꺼운 규방 훈계록이 놓여 있었다.

"꿇어라."

나는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푸른 벽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차갑고 단단한 벽돌 바닥이 무릎을 짓눌러 아파왔다.

어머니는 규방 훈계록을 펼치며 조금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씨 가문에서 혼약을 깨뜨렸거늘, 네 잘못을 알겠느냐?"

나는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딸은 알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여인으로 태어나 재능도 덕행도 없이 혼약이 깨지는 수치를 불러왔고, 후작부의 가문 명예까지 욕되게 했다."

"그런데도 네가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냐?"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세자 저하가 남녀 간의 예법을 무시하고 사람들 앞에서 물에 뛰어들어 심다정을 끌어안은 것은 서씨 가문의 잘못입니다."

"심다정이 스스로 선을 넘어 외간 사내의 손길을 허락한 것입니다. 그 잘못이 어찌 제게 있겠습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입 다물거라!"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혐오 가득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다정이가 물에 빠진 것은 뜻밖의 사고였고, 세자 저하는 사람을 구했을 뿐이다!"

"네 마음속에 대체 얼마나 사악한 생각이 가득하기에 감히 제 동생까지 헐뜯는 것이냐?"

어머니는 재빨리 규방 훈계록에 적었다.

"구월 십이일. 심소영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심다정을 도리어 모함했으며, 투기가 지나치다."

글을 다 쓴 뒤 먹물을 말리고 책자를 덮었다.

"회초리를 가져오너라."

이 어멈은 즉시 자단목으로 만든 회초리를 내밀었다.

소란을 들은 아버지가 달려와 회초리가 내려오기 직전 어머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소영이가 당신에게 대든 것은 잘못이오. 하지만 이 벌은 너무 무겁소."

어머니는 고개를 숙여 내 앞을 가로막은 아버지의 손을 바라보며 얼굴빛을 더욱 차갑게 굳혔다.

"후작께서는 이렇게 많은 하인이 보는 앞에서 이미 계례를 올린 딸을 감싸고 계십니다. 그 아이에게 붙은 헛소문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의 손이 순간 굳었다.

어머니가 이어 말했다.

"후작께서 오늘 그 아이 때문에 제가 세운 규율을 깨뜨리신다면, 앞으로 제가 어찌 후택을 다스리겠습니까?"

아버지는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천천히 손을 놓더니, 더는 나를 바라보지 않은 채 천천히 문밖으로 물러나 등을 돌렸다.

어머니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손을 내밀거라."

나는 저항하지 않고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내밀었다.

회초리가 사정없이 손바닥 위로 내리쳐졌다.

곧 손바닥은 부어오르고, 가느다란 핏줄기가 살갗 위로 번졌다.

아버지의 어깨는 분명히 떨렸지만,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규방 훈계록을 펼쳤다.

"구월 십이일. 심소영은 연약한 체하여 아버지를 유혹하고 인륜을 저버렸으니, 회초리 스무 대를 당한다."

어머니는 책자를 이 어멈에게 넘긴 뒤, 더욱 힘을 주어 회초리를 내리쳤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입가로 피가 흘렀지만, 감히 신음조차 흘리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아프다며 소리내기만 하면 규방 훈계록에는 또 하나의 죄명이 더해졌다.

그때가 되면 벌은 더욱 무거워질 뿐이었다.

스무 대가 끝났을 때, 내 두 손은 이미 살이 터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어머니는 회초리를 다시 이 어멈에게 건네고, 손수건으로 천천히 손을 닦았다.

"사당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경서를 백 번 베껴 쓰도록 해라. 다 쓰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못한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고, 몸도 따라 휘청거렸다.

곁을 지키던 몸종 해당이가 울면서 나를 부축하러 다가왔다.

나는 그 틈을 타 서신 한 통을 그녀의 손에 몰래 쥐여 주었다.

"성 서쪽 보화당, 김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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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앞마당에는 붉은 비단이 가득 걸려 있었다.서씨 가문은 돌아서자마자 혼약을 맺으러 혼수를 들고 찾아왔고,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은 정당에 앉아 경성 지도를 펼쳐 놓고 심다정의 혼수로 보낼 점포를 고르고 있었다.큰오라버니가 성 동쪽 지역을 가리켰다."이곳 연지 점포가 가장 수익이 좋습니다. 다정이는 평소 분단장을 좋아하니 이곳을 주면 되겠습니다."사촌 오라버니가 반대했다."성 남쪽의 옥기점이 더 낫습니다. 다정이에게 주기에도 그쪽이 어울립니다."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통 크게 손을 내저어 가장 수익이 좋은 두 곳의 점포를 모두 심다정의 이름으로 돌렸다.나는 대청 문턱 밖에 서서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막 별당을 지나려던 순간, 뒤에서 어머니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멈춰라."나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린 뒤, 눈을 내리깔았다.어머니는 별당 태사 의자에 꼿꼿이 앉아 계셨고, 무릎 위에는 두꺼운 규방 훈계록이 놓여 있었다."꿇어라."나는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푸른 벽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갑고 단단한 벽돌 바닥이 무릎을 짓눌러 아파왔다.어머니는 규방 훈계록을 펼치며 조금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서씨 가문에서 혼약을 깨뜨렸거늘, 네 잘못을 알겠느냐?"나는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딸은 알지 못합니다."어머니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여인으로 태어나 재능도 덕행도 없이 혼약이 깨지는 수치를 불러왔고, 후작부의 가문 명예까지 욕되게 했다.""그런데도 네가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냐?"나는 물러서지 않았다."세자 저하가 남녀 간의 예법을 무시하고 사람들 앞에서 물에 뛰어들어 심다정을 끌어안은 것은 서씨 가문의 잘못입니다.""심다정이 스스로 선을 넘어 외간 사내의 손길을 허락한 것입니다. 그 잘못이 어찌 제게 있겠습니까."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입 다물거라!"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혐오 가득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다정이가 물에 빠진 것은 뜻밖의 사고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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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해당은 피투성이가 된 내 두 손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구면서, 그저 쉴 새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초겨울 바람이 사당 문틈으로 스며들어 뼛속까지 시리게 했다.나는 방석 위에 무릎을 꿇은 채, 글자 하나를 쓸 때마다 손바닥의 갈라진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얼마 지나지 않아 붓대와 선지가 붉게 물들었지만 나는 감히 멈출 수 없었다.한밤중이 되자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몸은 놀라울 만큼 뜨거웠고,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나는 차가운 제상에 이마를 기댄 채 눈앞이 서서히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꿈속에서 나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그때의 어머니는 아직 나에게 웃어 주었고, 손수 작은 저고리를 지어 주기도 했으며, 내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픈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품에 안아 주었다.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곁을 지키던 몸종이 아이를 가졌다.그녀는 불러온 배를 감싸안고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울며 자신의 존재를 허락해 달라고 했고, 결국 아버지는 그녀를 집 밖에 두고 외실로 삼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난산 끝에 침상 위에서 세상을 떠났고, 갓난 여자아이 하나만 남겼다.그 아이가 바로 심다정이었다.경성의 귀부인들은 모두 어머니를 비웃었고, 노부인과 종족 어른들은 어머니에게 현숙하고 덕이 있는 안주인으로서, 어미 없는 아이에게 원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다.어머니는 울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다.그날 이후 어머니는 심다정을 친딸보다 더 아꼈다.무엇이든 내어주었고 무엇이든 감싸 주었다.하지만 내 차례가 되면 남은 것은 규율과 벌, 그리고 끝내 다 채울 수 없을 것 같은 규방 훈계록뿐이었다.어머니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너그럽고 공정하며, 투기란 모르는 집안의 안주인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나는 어떻게든 눈을 뜨려 했지만, 손끝 하나 움직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이 어멈,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아씨께서 열이 너무 높아 헛소리까지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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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사흘 뒤, 후작부에서는 연회가 열렸다. 장공주께서 친히 왕림해 주신 덕에 경성의 권세가들도 절반 이상 자리를 함께했다.상석 곁에서는 심다정이 여러 부인들에게 둘러싸여 칭찬을 받고 있었다. 오늘 심다정은 곱고 사랑스럽게 단장한 모습이었다. 머리에는 서씨 가문에서 보내온 붉은 보석이 박힌 금비녀를 꽂고 있었는데, 웃을 때면 마치 재잘거리는 작은 새처럼 발랄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상석에 앉은 장공주는 진귀한 백옥 여의를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그것을 본 심다정은 갑자기 달려가 예도 올리지 않고 손을 뻗어 여의를 만지려 했다."이 하얀 돌 참 곱습니다. 아버지가 주신 것보다 더 광택이 도네요."순간 장공주는 미간을 찌푸렸다.이때, 그녀 곁의 어멈이 즉시 목소리를 높여 꾸짖었다."무엄하십니다! 장공주마마 앞에서 어찌 이토록 예를 잃을 수 있습니까!"심다정은 화들짝 놀라 손을 떨었다.찰나의 순간, 짤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백옥 여의가 푸른 석판 위로 떨어졌다.희고 고운 옥으로 만든 여의는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그러자 장공주는 얼굴을 가라앉히며 차갑게 비웃었다."후작부의 규율은 참으로 놀랍구나."어머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상석 앞으로 다가갔다.하지만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심다정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어머니의 발걸음은 그대로 나를 향했다.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내 팔을 움켜쥐고, 나를 장공주 앞으로 거칠게 끌고 갔다."장공주마마,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모두 제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입니다.""심소영이 혼약이 깨진 일로 질투심을 품고, 뒤에서 동생을 부추겨 귀인을 거스르게 했습니다.""지금 당장 이 아이를 엄히 벌하여 장공주마마의 분을 풀어드리겠습니다."순간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전 아닙니다."어머니는 내 뒷목을 누르던 손에 힘을 주었다."백옥 여의는 다정이가 깨뜨린 것입니다. 저와는 아무 상관이..."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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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그날 밤, 해당은 작은 보따리를 등에 메고 창문 밖에서 몰래 기어들어 왔다."아씨, 떠나야 합니다."해당은 울면서 내 어깨에 두건을 걸쳐 주었다."서쪽 모퉁이 문밖에 오물을 나르는 수레가 있습니다. 수레꾼은 제가 이미 매수해 두었습니다.""성 밖으로만 나가면 강남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맙시다."나는 해당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처음으로 진심으로 후작부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호적패가 없다면 우리는 경성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나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해당에게 서재로 가서 아버지를 찾아보라고 했으나, 아버지는 사람을 시켜 그녀를 다시 내원으로 끌고 돌아가게 했다.내 뒤로 문이 다시 굳게 닫혔다.나는 품 안에서 검은 약환을 꺼내 삼켰다.한 식경이 지나자, 마당에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힘센 노파 몇 명을 데리고 들이닥쳤다.어머니는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규방 훈계록을 펼쳤다."시월 열닷샛날. 심소영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밤중에 몰래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찾아가려 했다."어머니는 책자를 덮고 차갑게 명했다."저 아이를 묶어라."나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결국 바닥에 눌리고 말았다.밧줄은 숨이 막힐 정도로 몸을 조여 왔다.어머니는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얌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평남군왕과의 혼사는 이미 정해졌다. 내일이면 가마가 도착한다.""네가 따르지 않는다면 다리를 부러뜨리고 꽁꽁 묶어서라도 군왕부로 보내겠다."바로 그때, 심다정이 눈물을 머금은 채 들어왔다."어머니, 언니와 몇 마디 속마음을 나누게 해 주십시오.""내일 언니가 저보다 먼저 시집을 가니, 저도 배웅해 주고 싶습니다."어머니 얼굴에 서린 차가움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목소리도 한층 부드러워졌다."그러거라."심다정은 내 앞으로 다가와 몸을 숙이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언니, 내가 그날 왜 물에 빠졌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내가 고개를 번쩍 들자, 다정이는 눈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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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검붉은 피가 턱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고인 해당의 피와 뒤섞이는 사이, 약기운은 오장육부 깊숙이 파고들어 수많은 칼날처럼 속을 헤집었다. 고통에 몸을 웅크리고 싶었으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그 와중에도 정신만은 또렷했다.“어서 의원을 불러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머니는 내 곁에 쪼그려 앉아 코밑에 손을 댄 뒤 목 옆의 맥을 짚어 보더니, 잠시 후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숨이 끊어졌습니다.” 방 안에 죽음 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큰오라버니는 두어 걸음 뒷걸음질 치다 침상 곁의 낮은 걸상을 걷어찼다.“저... 저는 그저 한 번 걷어찼을 뿐입니다.” “피를 토하기 전에 무언가 먹었으니 네 탓이 아니다.” 어머니는 큰오라버니가 다른 말을 꺼내기라도 할까 두려운 듯 다급히 말했다. 심다정은 침상 구석에 웅크린 채 나를 보다가 어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언니가 죽으면 내일 혼례는 어찌합니까?” 어머니가 심다정을 흘겨보았다. “넌 먼저 돌아가거라.” “그럼 언니의 혼수는...” “입 다물거라!” 심다정은 화들짝 놀라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가 몸을 숙여 나를 안아 들려 했으나 어머니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 일을 알려서는 안 됩니다.” “내일이면 평남군왕부에서 혼례를 치르러 올 텐데, 독을 먹어서라도 혼인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심씨 가문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허공에 뻗었던 아버지의 손이 멈췄다. “그럼 시신은 어쩔 생각이오? 그래도 소영이는 심씨 가문의 적녀요.” 어머니는 바닥에 떨어진 잘린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을 잘라 부모를 거역하고, 혼인을 피해 자결한 아이가 무슨 자격으로 심씨 가문의 딸을 자처한단 말입니까?” “밖에는 해당이와 함께 혼수를 훔쳐 밤중에 달아났다고만 알리십시오.” “군왕부에서 아이를 내놓으라 하면 직접 찾아보라고 하면 그만입니다.”아버지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어머니는 바닥에 떨어진 규방 훈계록을 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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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나는 보화당에서 마흔이레 동안 누워 있었다.처음 보름 동안은 몸을 일으켜 앉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큰오라버니가 갈비뼈 두 대를 부러뜨렸고, 손바닥과 무릎의 상처는 곪기를 거듭했다. 김 의원은 매일 썩은 살을 긁어내고 다시 싸매 주었다.나는 아파서 입술을 깨물어 터뜨리면서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고, 김 의원은 그런 내가 못마땅했다.“아프거든 소리를 지르거라.”“보화당은 후작부가 아니다. 아프다고 소리 질렀다 하여 매를 열 대 더 맞는 일은 없다.”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가볍게 대답했다.“예.”하지만 다음번에 약을 갈 때도 끝내 소리를 내지 못했다. 뼛속 깊이 밴 규율은 문 하나를 벗어났다고 해서 곧바로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섣달 초, 약방 아이가 거리에서 고시 한 장을 뜯어 왔는데, 그 위에는 내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후작부에서 관에 신고하기를, 내가 몸종과 짜고 외조모가 남긴 혼수를 훔쳐 달아났으며, 죄가 두려워 혼인을 피해 도망쳤다고 했다.평남군왕부에서는 현상금 오백 냥을 걸고 나를 잡아들이려 했다.그림 속 여인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눈매와 눈썹이 온순했다.나는 귀밑까지 짧아진 머리를 만져 보았다.“닮지 않았구나.”약방 아이는 눈두덩이가 붉어졌다.“후작부에서는 해당 누님이 주모자라고 했습니다.”“해당 누님이 아씨를 부추겨 도둑질하게 하고, 또 아씨를 숨겨 주었다고 합니다.”나는 고시를 반듯하게 접어 베개 곁에 두었다.“그 애는 도둑이 아니다. 나도 아니고.”김 의원이 나를 한 번 바라보았다.“말로는 소용없다.”그는 약장 맨 아래 칸에서 핏물이 밴 보따리를 꺼냈다.“해당이 옷 안감 속에서 뜯어낸 것이다.”보따리 안에는 외조모가 친필로 적으신 혼수 장부가 들어 있었다. 그 밖에도 어머니가 팔아넘긴 점포 문서 세 장, 후작부 회계처의 지출 장부 한 권, 그리고 이 어멈이 손도장을 찍은 은자 수령증이 있었다.“구월 초열흘, 연못가 정자를 지키는 어멈에게 은자 스무 냥을 주어 반 시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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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납팔절 날, 경성에는 눈이 내렸다. 공주부 문 앞에는 커다란 구리 솥 여섯 개가 걸려 있었고, 죽을 받으려는 백성들의 행렬은 길게 이어졌다.후작부의 마차가 계단 앞에 멈춰 섰을 때, 나는 청설각안에 앉아 있었다. 창밖 매화나무 가지에는 눈이 수북이 쌓였고 화로의 숯은 벌겋게 타올랐지만, 손은 여전히 저릴 만큼 차가웠다.신시가 되자마자 문이 열리더니, 새하얀 여우털 갖옷을 걸친 심다정이 홀로 들어왔다. 그녀의 머리에는 외조모가 내게 남긴 붉은 보석이 박힌 비녀가 꽂혀 있었고, 손목에는 내가 열두 살 탄일에 받은 백옥 팔찌가 걸려 있었다.내 얼굴을 알아본 심다정이 흠칫 멈춰 섰다.“언니…… 죽지 않으셨습니까?”나는 심다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실망시켜 미안하구나.”심다정은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지만, 문밖에 있던 어멈이 이미 자물쇠를 채운 뒤였다. 심다정은 탁자 곁으로 물러나며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렸다.“어머니께서 하신 일입니다.”“어머니께서는 언니가 이미 숨이 끊어졌으니, 저택에 두면 모두에게 화가 미친다고 하셨지요.”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심다정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그건 내 팔찌구나.”심다정은 황급히 손을 소매 속으로 감췄다.“어머니께서 언니의 혼수를 이미 제게 주셨습니다.”“언니는 죽었으니 그 물건들은 당연히 후작부 사람에게 남겨야 합니다.”“아쉽게도 내가 다시 살아났구나.”심다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나는 품에서 은자 수령증 두 장을 꺼냈다.“네가 물에 빠진 날, 어머니께서 연못가 정자를 지키던 사람들을 일부러 물리셨지.”“내가 이것들을 서씨 가문에 넘기면 세자 저하가 그래도 너와 혼인하려 할까?”심다정이 달려들어 수령증을 빼앗으려 하자, 나는 얼른 소매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말해라.”심다정이 입술을 깨물자, 금세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언니는 어찌하여 늘 저와 다투려 하십니까?”“저는 그저 은호 오라버니를 연모했을 뿐입니다.”“어머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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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어머니는 들어올 때도 여전히 규방 훈계록을 들고 있었다. 아마 장공주 앞에서 불효한 딸 때문에 애간장을 태우는 어머니 행세를 계속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그러나 나를 발견한 순간 어머니의 발걸음이 우뚝 멎었고, 아버지와 큰오라버니도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역시 어머니였다.“무릎 꿇어라!”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감히 죽은 척 혼인을 피해 달아나더니 공주부에 숨어들었구나!”어머니는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손이 내 뺨에 닿기도 전에 장공주의 곁을 지키던 어멈이 어머니의 손목을 낚아챘다.“심 부인, 공주마마가 계신 자리에서 함부로 형벌을 가할 수는 없습니다.”어머니는 힘껏 팔을 빼려 했지만 어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소영아, 정말 죽지 않았던 것이냐?”아버지의 눈에는 잠시 반가움이 어렸으나, 이내 나무라는 기색으로 바뀌었다.“살아 있었으면 어찌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느냐?”“평남군왕부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소란을 벌였는지 아느냐? 너 때문에 후작부는 온 경성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돌아가서 무엇을 하란 말씀입니까?”“제 다리를 부러뜨린 뒤 혼례 가마에 묶어 태우실 때까지 기다리란 말씀입니까?”아버지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그 틈을 타 어멈의 손을 뿌리친 어머니는 곧바로 규방 훈계록을 펼쳤다.“섣달 초여드레, 심소영은 죽음을 가장해 혼인을 피해 도망가고 외인과 결탁했으며 부모를 거역...”어머니가 미처 다 적기도 전에 장공주가 손을 내밀었다.“이리 내거라.”어멈은 어머니에게서 규방 훈계록을 빼앗아 장공주에게 올렸다. 장공주는 마지막 장을 펼쳐 어머니가 내가 죽은 뒤 적은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시월 십오일 밤. 심소영은 머리카락을 자르고 독을 먹어 혼인을 피해 자결했다. 몸종 해당은 죄가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평: 두 사람 모두 자업자득이다.”장공주가 눈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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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조사는 스무사흘 동안 이어졌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경조윤(京兆尹)이 어째서 나를 깨진 옥 조각 위에 눌러 앉혔느냐고 묻자, 어머니는 책임지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고 답했다. 내 혼수를 가로챈 연유를 물었을 때는, 심씨 가문 딸의 모든 것은 후작부에 속한다고 했다.또한 해당에게 인두로 지지는 형벌을 가하라고 명한 까닭을 물었을 때도 대답은 한결같았다.“한낱 몸종이 주인을 꾀어 혼인을 피해 도망가게 했으니, 마땅히 벌받아야 하지 않습니까?”그러나 이 어멈이 관아에 끌려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죽는 것이 두려웠던 이 어멈은 그동안 어머니의 명을 받아 저지른 일을 모조리 털어놓았다.어머니는 이 어멈에게 사당의 화로를 치우게 했으며, 내 음식에 소금을 잔뜩 넣고도 물은 마시지 못하게 했다. 또한 저택의 의원을 매수해 내 몸에 난 상처를 모두 감기로 꾸며 기록하게 했다.해당은 혀를 깨문 뒤에도 곧바로 숨이 끊어지지 않았으나 어머니가 의원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끝내 피를 다 흘리고 죽었다.형이 내려진 날, 경성에는 다시 눈이 내렸다.아버지는 부인이 딸을 학대하고 시신을 유기한 일을 묵인하고 은폐한 데다, 평남군왕과의 혼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사실을 속인 죄로 관직을 빼앗기고 곤장 마흔 대를 맞았다. 또한 후작부의 재산은 모두 관아에 몰수되었다. 큰오라버니는 사사로운 형벌에 가담한 죄로 음서(蔭敘) 자격을 박탈당하고 곤장 서른 대를 맞았다. 사촌 오라버니는 본적지로 쫓겨나 평생 경성에 들어올 수 없게 되었으며, 이 어멈은 삼천 리 밖으로 유배되었다.심다정은 황실에서 하사한 옥여의를 훼손하고 여러 차례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운 죄로 곤장 스무 대를 맞은 뒤, 관영 사찰에서 삼 년 동안 노역하게 되었다.어머니는 딸의 혼수를 가로채고, 사사로이 형벌을 가하도록 지시해 사람을 죽게 했으며, 허위 고발과 시신 유기를 저지른 죄로 곤장 여든 대를 맞고 영남으로 유배되었다.서씨 가문에서는 그날 밤 모든 사주단자를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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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어머니가 압송된 뒤, 나는 해당의 무덤을 찾아갔다.해당에게는 본래 성이 없었다. 나는 장공주께 청해 해당을 양인 호적에 올리고, 비석에는 ‘심해당’이라는 석 자를 새겼다.해당은 생전에 자신이 여섯 살 때부터 내 곁을 지켰으니 진작 내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늘 말하곤 했다. 이제 해당은 마침내 그 누구의 몸종도 아닌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나는 규방 훈계록을 화로에 넣었다. 종잇장은 불길이 닿자 빠르게 오그라들며 검게 타들어 갔다. 십수 년 동안 나를 옭아맸던 글자들은 불길 속에서 부서져 재가 되었고, 바람이 불자 그 재가 비석 앞에 흩날렸다.나는 쪼그려 앉아 비석에 쌓인 눈을 닦아 냈다.“해당아.”“나는 잘못하지 않았고, 너도 잘못하지 않았다.”“고맙구나...”묘역을 떠나려는데 세자가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오래전 서씨 가문에서 정혼의 징표로 보내온 옥비녀가 들려 있었다.“심소영.”“이제 진상이 모두 밝혀졌으니, 너와 나의 혼약은...”나는 그가 내민 옥비녀를 받지 않았다.“제가 사당에 무릎 꿇고 있을 때, 저하는 제게 다정이에게 정실 자리를 내주고 첩이 되라고 하셨습니다.”“그런데 제가 혼수를 되찾고 독립된 호적까지 세우자 이제야 다시 혼약이 생각나셨습니까?”세자의 얼굴이 굳어졌다.“여인의 몸으로 언제까지고 혼인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 않느냐.”“저는 이미 한 번 죽었다 살아났습니다. 이제 밥 한술 얻어먹기 위해 서씨 가문에 기대지는 않을 것입니다.”나는 세자를 지나쳐 마차에 올랐다.그러다 봄이 되자 외조모가 경성에 남긴 점포 두 곳을 처분하고 강남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곳에 있던 외조모의 약재상을 다시 열고 현판도 새로운 이름 석 자로 바꾸었다.해당원.김 의원은 앞채에서 환자들을 진료했고, 나는 뒤채를 비워 갈 곳 없는 여인들을 받아들였다.부군에게 매를 맞고 쫓겨난 여인도 있었고, 부모에게 팔려 기루에 들어갔다가 달아난 여인도 있었다. 그중에 소담이라는 아이는 고작 여덟 살에 불과했다.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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