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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어제가 필요해

Penulis: 6jay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1-01 22:35:17

“방송 끄세요.” 채린은 지우에게서 휴대폰을 받아 엎어 놓았다. 화면을 가렸는데도 자기 이름을 모자이크한 자막은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체포한 사람은 없다는 경찰관의 설명에 행사 담당자가 복도로 나가 정정을 요청했다. 그 말을 전하는 동안에도 방송을 캡처한 사진은 다른 기사로, 또 다른 기사로 옮겨 갔다.

김수정에게 온 메시지 역시 그 뒤를 따라왔다.

채원 광고주, 오늘 생중계 제외 요청.

답장을 쓰려던 채린은 가운 위로 잔뜩 굳은 채원의 어깨를 보고 휴대폰을 내렸다.

“수정 팀장님이 정정 대응하고 있어요. 지금 보이는 자막은 사실이 아니에요.”

“알아요.” 너무 빠른 대답이라, 오히려 그 뒤에 붙을 말이 두려웠다.

“아는데, 사람들이…….” 떨리는 입술을 다문 채원이 가운 끈을 고쳐 묶었다. 이미 단단히 묶인 매듭 위로 또 매듭을 만들려다가, 제 손이 뭘 하는지 그제야 알아챈 듯 멈췄다.

“오늘 시상하러 나온 거예요. 상 받는 것도 아니고. 작품 얘기 조금 하고, 후배 축하해 주고.” 웃어 보이려는 얼굴이 채린에게 향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어요?” 가운 끈을 놓을 듯하던 손이 도로 움켜쥐어졌다. 채린이 예비 드레스를 가져오라고 하는 동안, 채원은 무대에서 건넬 짧은 인사까지 잃고 있었던 거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면 될까. 늘 그랬듯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목까지 올라온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자기 입에서 숱하게 나왔던 위로가 오늘은 유난히 낯설어서.

그때 문이 벌어지며 행사 홍보 책임자가 지우를 불렀다.

“잠깐만 나와 봐요. 반입할 때 확인을 못 했다는 정도로 말하면 돼. 배우하고 회사는 관계없는 거잖아요.” 채린은 문 쪽으로 밀려가는 지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친구 진술은 확인하고 합시다.”

“다 본부장님 이름으로 들어왔어요. 그럼 본부장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지우가 또 한 걸음 물러서는 게 보였다. 무엇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따지기도 전에, 늘 하던 대답이 입에서 먼저 나갔다.

“제가 처리할게요.”

잠깐 입을 다물었던 상대가 지우 대신 채린을 가리켰다. 기다리던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는 듯.

“그럼 우선 채원 씨는 본부장님하고 분리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문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옆 대기 공간으로 옮기던 채원이 취재진과 맞닥뜨린 모양이었다. 누가 가져온 물건이냐는 고함 사이로, 스태프의 팔을 넘어 휴대폰 하나가 솟아올랐다.

채원이 뒤로 물러서다 의자에 가운 끝이 걸렸다. 몸이 주저앉는 순간을 놓칠세라 플래시가 한꺼번에 터져, 채린은 달려가 그녀 앞을 가렸다.

“그만 찍으세요!”

목소리가 복도에 부딪혀 돌아왔다. 눈앞의 렌즈가 내려가기에 손을 뻗었지만, 그 뒤에서 다른 휴대폰이 다시 올라왔다. 하나를 가리면 또 하나. 채린이 막을 수 있는 건 고작 눈앞의 카메라뿐이었다.

저쪽에서는 지우가 연신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손에 든 화면에 떠 있는 건 시키는 대로 적으라는 문장. 지금 저 아이에게도 가 봐야 하는데.

일어나려던 채린은 벽부터 짚었다. 손목에서 짧게 울린 시계를 보니 심박수 숫자가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켜도 가슴 안쪽은 자꾸 좁아졌다.

오후 5시 49분.

드레스가 찢어졌을 때는 다른 옷을 가져오면 될 줄 알았고, 기자들이 왔을 때는 문을 막으면 그만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한쪽 문을 지키는 동안 다른 쪽에서 채원의 이름이 불리고 있었다니.

무엇부터 잘못된 걸까.

“은채린.” 다급할수록 낮아지는 이헌의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렸다.

“나 봐요. 숨부터.” 그 얼굴에 시선을 맞추려는데, 이상하게도 어제의 사무실이 먼저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서류를 넘기던 자기 손까지.

어제는 아직 그 물건이 들어오지 않았고, 출입 요청에 자기 이름이 쓰인 줄도 몰랐다. 지우는 새 출입증을 자랑하느라 바빴고 채원은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었는데.

그때 알았다면.

전화 한 통만 먼저 받았다면.

벽을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 아래로 거친 표면이 긁혔지만 채린은 손을 떼지 못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어제라도 거기에 붙들어 둘 수 있을 것처럼.

“하루만.” 숨에 섞인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딱 하루만 먼저…….” 이헌이 내민 손을 향해 팔을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터뷰 시간을 더 써 달라며 그를 떠밀었는데, 이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5시 50분.

플래시가 멎었다.

아니, 소리가 먼저 멎었다.

닿을 줄 알았던 온기 대신 차가운 모서리가 손끝에 걸렸다. 채린은 몸을 일으키다가 책상 아래에 무릎을 부딪쳤다. 언제 의자에 앉아 있었지.

고개를 들자 에이펙스의 본부장실이었다. 창밖 교차로에는 퇴근 차량이 늘어서고, 책상에는 마시다 남긴 커피가 그대로였다. 모니터 오른쪽의 일정표까지, 어제 보던 자리 그대로.

휴대폰이 책상 위에서 울렸다.

발신자 이헌.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채린은 무슨 말이 들려올지 알았다.

“은 본부장. 나 검정 안 맨다고 했죠.”

숨부터 쉬라던 다급함은 온데간데없이, 어제 30분 동안 들었던 넥타이 불평이 귀에 닿았다. 채린은 전화기를 들지 않은 쪽 손을 천천히 펴 봤다. 조금 전 벽을 붙들고 있던 손이었다.

모니터 구석의 시계는 오후 5시 50분.

날짜만, 하루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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