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어린이 수영 강사 홍하늬, 스물아홉. 엄마가 잡아 준 맞선을 일곱 번 펑크 냈다. 여덟 번째 맞선 자리, 한정식집 난초방 문을 열자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고개를 든다. 길 건너 부동산 집 아들, 20년 소꿉친구 도범준. “야.” “야.” 둘은 작전을 짠다. 잘되는 척하면 엄마들이 맞선을 그만 잡겠지. 그런데 엄마들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view more난초방 문을 여는 순간,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고개를 든다.
“야.”
“야.”
동시에 나온다.
문고리를 잡은 내 손은 그대로다. 남자는 물잔을 든 채 멈춘다.
짧은 머리. 왼쪽 눈썹 위 작은 흉. 의자 옆에 내려놓은 검은 백팩.
도범준이다.
어제저녁에도 길 건너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던 도범준.
내가 봉투 묶어 달라고 하자 끝을 두 번 돌려 묶어 주던 도범준.
오늘은 그 손으로 물잔을 들고 맞선 자리에 앉아 있다.
‘하나, 둘, 셋.’
셋까지 세어도 안 바뀐다.
“너 여기서 뭐 해?”
범준이 물잔을 내려놓는다.
“맞선.”
“나도.”
“앉아.”
“왜 이렇게 침착해?”
“너 계속 문 잡고 있어.”
손을 내려다본다.
맞다. 나 아직 문 잡고 있다.
문을 놓고 복도 쪽을 한 번 본다. 다른 방 문에는 다른 꽃 이름이 붙어 있다. 내가 찾으라고 들은 건 분명 난초방이다.
휴대폰을 꺼낸다.
『청류원 난초방. 4월 11일 토요일 낮 12시. 늦지 말고.』
엄마가 보낸 글이다.
바로 밑에는 한 줄이 더 있다.
『들어가기 전에 어깨 펴.』
나는 휴대폰을 뒤집는다.
범준의 눈이 잠깐 내 오른쪽 어깨에 닿는다.
“어깨 펴.”
“너 우리 엄마랑 통화했냐?”
“아니.”
“그럼 그 말 하지 마. 오늘 두 번째야.”
의자를 빼고 앉는다. 범준이 내 쪽 물잔에 물을 따른다. 식탁 위에는 젓가락 두 벌이 가지런하고, 접은 냅킨도 두 장이다.
나는 잔을 들었다가 다시 놓는다.
“잠깐. 너 진짜 맞선 나온 거야?”
“응.”
“상대가 나라는 건?”
“몰랐어.”
대답이 빠르다.
도범준은 거짓말을 하려면 말부터 느려진다. 내가 빌려 간 충전기를 못 찾았을 때도 그랬다. 한참 뜸을 들이고는 자기가 밟아서 망가뜨렸다고 했다.
지금은 뜸이 없다.
“너는 누구라고 들었는데?”
“부동산 손님이 소개해 준 여자.”
“어떤 여자.”
“스포츠센터 다닌대.”
나는 입을 다문다.
미나리골 스포츠센터 어린이 수영 강사 홍하늬.
그 여자, 나다.
“나는 사진관 손님 세림 언니 조카라고 들었어.”
“세림 언니?”
“응. 병원 다니는 남자.”
범준이 자기 앞 수저를 내려다본다.
“병원 다니긴 하지.”
“튼튼재활의학과도 병원이니까.”
“네가 생각한 병원 다니는 남자는 뭔데.”
“몰라. 엄마가 직업을 끝까지 안 말해 줬어. 병원 다녀, 성실해, 밥 잘 먹어. 이 세 개만 말하더라.”
범준이 나를 본다.
“너도 밥 잘 먹는다고 들었어.”
“소개가 아니라 급식 명단 아니야?”
범준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다.
나는 웃을 일이 아닌데 웃는다. 지하철을 40분이나 타고 강을 건넜다. 그동안 오늘 만날 남자와 무슨 말을 할지 고민했다.
집 앞에서 30걸음만 걸으면 만나는 남자와.
“됐고. 이름도 안 물어봤어?”
“엄마가 직접 보래.”
“너도?”
“너도?”
우리 둘은 잠깐 서로를 본다.
아침에 엄마가 사진관 문 앞까지 따라 나와 내 옷깃을 펴 주던 손이 떠오른다.
성도 안 알려 주냐고 했더니, 엄마는 돋보기 안경 끈을 턱 밑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내가 다 알아봤어. 너는 가서 밥만 먹으면 돼.”
정말 밥만 먹게 생겼다.
상대에 대해 새로 알아볼 게 없다.
양말을 신다가 한쪽부터 발끝을 당기는 것까지 아는 사이다.
“우리 엄마 세림 언니 알아?”
“처음 들어.”
“나도 얼굴을 몰라.”
“사진관 손님 많잖아.”
“그렇긴 한데.”
나는 휴대폰을 다시 든다.
범준이 묻는다.
“전화하게?”
“물어봐야지. 세림 언니 조카가 왜 명숙 아줌마 아들인지.”
엄마 번호를 누르려는데 문이 열린다.
“두 분 다 오셨네요.”
한복 앞치마를 입은 아주머니가 작은 접시들을 내려놓는다.
내 휴대폰 위로 시선이 한 번 지나간다.
“하늬 씨, 어머님이 아주 신신당부하셨어요. 천천히 드시라고.”
누르던 손가락이 멈춘다.
“저를 아세요?”
“알죠. 사진관에서 가족사진 찍을 때 봤는데. 어머님 닮으셨어요.”
“아, 네.”
“여기 앉은 분이 따님이라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나는 휴대폰을 식탁 밑으로 내린다.
지금 엄마에게 전화하면 이 아주머니가 옆에서 식사 시작했다고 알려 줄 것 같다.
아주머니는 범준 앞에도 접시를 놓는다.
“물 더 필요하시면 말씀하시고요.”
문이 닫힌다.
나는 천천히 범준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저분 우리 사진관 손님이래.”
“들었어.”
“그냥 손님도 아닌 것 같아.”
“가족사진 찍으셨다며.”
“엄마가 가족사진 손님 얼굴을 얼마나 오래 기억하는지 알아?”
“나도 20년째 걸려 있잖아.”
맞다.
사진관 벽에는 내 사진만 있는 게 아니다. 길 건너 부동산 집 아들도 나와 함께 자랐다. 나는 매일 봐서 안 보고, 손님들은 매일 새로 보고 묻는다.
옆집 아들이냐고.
엄마는 꼭 길 건너라고 고쳐 준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일단 나가자.”
“안 먹고?”
“내가 너 밥 먹는 걸 보러 여기까지 올 이유는 없잖아.”
“없지.”
범준이 바로 대답한다.
맞는 말인데 너무 바로 맞다고 하니까 조금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의자를 뒤로 민다.
바로 그때 문이 다시 열린다.
“참, 식사비는 어머님이 미리 내셨어요.”
의자 다리가 멈춘다.
“얼마요?”
“두 분 코스 12만 원이요.”
나는 다시 앉는다.
범준이 아무 말 없이 내 물잔을 가까이 밀어 준다.
‘지금 나는 12만 원에 다시 앉는다.’
아주머니가 덧붙인다.
“어머님이 두 분 잘 드시는지 꼭 봐 달라고 하셔서요.”
“네. 잘 먹겠습니다.”
대답이 아주 공손하게 나온다.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젓가락을 든다.
“먹자.”
“나가자며.”
“12만 원이면 얘기가 다르지.”
“그렇지.”
“그리고 우리 둘이 안 먹고 나갔다고 사진관까지 바로 전해지면?”
범준도 젓가락을 든다.
“다음 자리가 생기겠지.”
“정확해.”
나는 앞접시를 당긴다.
오늘 맞선에서 확인한 첫 번째 장점.
대화가 잘 통한다.
문제는 원래 잘 통했다는 거다.
· · ·
처음 나온 음식은 작은 샐러드와 따뜻한 전이다.
나는 전 한 장을 집어 입에 넣는다. 바삭한 가장자리부터 씹는다.
범준이 앞접시를 한 번 본다.
“아침 안 먹었어?”
“먹었어.”
“뭐.”
“물.”
범준은 젓가락을 놓고 백팩을 연다.
작은 젤리 봉지가 나온다.
내 손 옆에 놓는다.
“먹어.”
“음식 나왔는데?”
“갖고 있다가.”
“너는 무슨 맞선에 젤리를 가져와.”
“원래 있었어.”
나는 봉지를 뒤집어 본다. 내가 자주 먹는 맛이다.
“소개받은 여자가 젤리 안 좋아하면 어쩌려고?”
“그럼 내가 먹지.”
“너 이 맛 안 먹잖아.”
범준이 물을 마신다.
“네가 먹으면 되네.”
그렇게 정리할 일이 아닌데 그렇게 정리된다.
나는 젤리를 가방 옆주머니에 넣는다. 큰 방수 가방 옆으로 작은 봉지가 쏙 들어간다.
엄마는 이 가방도 두고 가라고 했다.
맞선에 수영하러 가냐고.
나는 지갑도 여기 있고, 물병도 여기 있고, 다른 가방을 찾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엄마가 옷은 안 골라 줬어?”
내가 묻자 범준이 고개를 젓는다.
“단정하게 입으래.”
“우리 엄마는 이 옷 입으래. 저 옷은 어깨가 더 넓어 보인대.”
범준이 내 옷을 한 번 본다.
나는 바로 덧붙인다.
“넓다는 말 하지 마. 수영 강사한테 어깨 넓다는 건 칭찬인데 오늘은 엄마가 싫대.”
“그냥 네 옷 입지.”
“엄마가 사진관 문을 막고 있었어.”
“뚫고 나오지.”
“내 엄마가 길을 막는데 어떻게 뚫어. 손님들도 있었어.”
“그럼 힘들었겠네.”
그 말을 하는 범준의 젓가락이 내 앞접시 쪽으로 온다.
나는 내려다본다.
가지다.
샐러드 옆에 있던 구운 가지가 내 접시에서 범준 접시로 옮겨 간다. 한 조각. 또 한 조각.
“그거 너도 별로 안 좋아하잖아.”
“네가 더 안 좋아해.”
“나 먹을 수는 있어.”
범준이 마지막 조각까지 옮긴다.
“알아.”
나는 빈자리에 전을 놓는다.
뭐라고 한마디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입에는 전이 들어 있다.
범준은 가지를 먼저 먹는다.
나는 괜히 물잔을 돌려 놓는다.
“너 맞선 몇 번째야?”
“처음.”
전이 목에 걸릴 뻔한다.
“처음?”
“응.”
“명숙 아줌마가 한 번도 안 시켰어?”
“응.”
나는 물을 마신다.
우리 엄마는 작년에만 일곱 번을 시켰다.
일곱 번.
상대 사진을 보기도 전에 일정이 정해진 적도 있다. 나는 수업이 있다고 했다. 쉬는 날에는 연습이 있다고 했다. 정말 갈 수 없는 날도 있었고, 가기 싫어서 안 간 날도 있었다.
“너희 집은 평화로웠네.”
“왜.”
“나는 일곱 번.”
범준의 눈썹이 올라간다.
“일곱 번 나갔어?”
“일곱 번 안 나갔어.”
“아.”
“만날 사람을 구하기 전에 내 시간을 먼저 물어보라고 했는데, 엄마가 내가 시간 있는 날을 이미 다 알아.”
“사진관에서 근무표 봤겠지.”
“내가 냉장고에 붙여 놨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범준은 전을 반으로 잘라 자기 접시에 놓는다.
“엄마가 물어보기는 했어.”
“뭘?”
“만나는 사람 있냐고.”
“그래서?”
“없다고.”
“그러면 바로 사진부터 보여 줘야 정상 아니야?”
“때를 봐야지, 그러시던데.”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명숙 아줌마는 참을성이 있네.”
“너희 어머니는?”
“아침에 물어보고 저녁에 답을 받아야 해.”
아침에 다림질할 옷을 들고 내려갔더니 엄마가 휴대폰을 귀에 붙이고 있었다.
누구랑 통화하냐고 묻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렸다.
“명숙아, 오늘은 진짜 보낸다니까? 지금 옷 입혔어.”
엄마는 나를 보고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잠깐 기다리라는 뜻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명숙 아줌마의 느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늦지만 않으면 되지. 그렇지?”
나는 그때도 말했다.
나 스물아홉이라고.
엄마는 통화를 끊고 내 옷깃부터 잡았다.
“알아. 그래서 보내는 거야.”
“우리 엄마한테 오늘 간다고 말했어?”
범준의 말에 고개를 든다.
“너희 엄마한테도 중계했어. 옷 입혔다고.”
“입었잖아.”
“도범준. 거기서 맞는 말 하지 마.”
범준이 웃는다.
나는 전의 마지막 조각을 집는다.
오늘 처음 만난 남자였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옷 입었다고 엄마 편 들지 말라는 말.
내가 안 먹는 가지를 치워 주지 말라는 말은 결국 못 한 채, 전을 한 장 더 먹는다.
문이 열린다.
아주머니가 빈 접시를 보더니 웃는다.
“잘 드시네요. 전 조금 더 가져왔어요.”
“감사합니다.”
“두 분 오래 만나신 것 같아요.”
젓가락 끝이 접시에 닿는다.
딱.
작은 소리인데 아주 잘 들린다.
‘하나, 둘, 셋.’
하나. 아홉 살부터 알았다.
둘. 올해 스물아홉이다.
셋. 그러니까 오래 만난 건 맞다.
단어 하나만 바꾸면 아주 정확한 말이다.
“오래 알았어요.”
범준이 먼저 대답한다.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네. 오래요. 아주 오래.”
“그래서 편해 보이시나 봐요.”
아주머니가 전 접시를 우리 사이에 놓는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음식이 그대로 남을 때도 있거든요.”
“저희는 안 남겨요.”
내 입이 먼저 대답한다.
범준이 나를 본다.
나는 빈 앞접시를 아주머니 쪽으로 조금 보여 준다.
이게 증거다.
아주머니가 웃으며 나간다.
나는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 범준에게 말한다.
“오해하신 것 같은데.”
“오래 알았다고 했잖아.”
“그거랑 오래 만난다는 건 다르지.”
“그럼 다시 말할까?”
나는 문을 본다.
아주머니는 이미 다음 음식을 가지러 갔다.
“아니. 됐고. 음식이나 먹자.”
범준이 새로 나온 전 접시를 내 쪽으로 밀어 준다.
나는 이번에는 반 장만 집는다.
나머지 반 장은 범준이 집는다.
· · ·
생선구이가 나오고 불고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다 먹을 수 있을까 싶던 접시들이 하나씩 빈다. 중간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나는 화면을 보고 뒤집는다.
“안 받아?”
“지금 받으면 음식마다 설명해야 해.”
휴대폰이 한 번 더 울린다.
이번에는 글이다.
『잘 먹고 있어? 말도 좀 하고.』
나는 식탁을 내려다본다.
말도 했다. 많이 했다.
다만 엄마가 원하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먹는 중이야.』
짧게 보내고 내려놓는다.
범준의 휴대폰도 울린다.
화면을 본 범준이 손가락을 움직인다.
“아줌마?”
“응.”
“뭐래?”
“천천히 먹으래.”
나는 내 휴대폰과 범준의 휴대폰을 번갈아 본다.
“둘이 어디 같이 계신 거 아니야?”
“가게에 계시겠지.”
맞는 말이다.
사진관과 부동산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본다. 엄마 둘은 각자 가게에서 고개만 들어도 상대가 보인다.
나는 생선 살을 조금 떼어 먹는다.
“오늘 밥 먹었다고 끝이 아닐 것 같아.”
“응.”
“응이 너무 빠르다.”
“어머니가 다음에도 만나라고 하실 것 같아서.”
“우리 엄마도.”
나는 불고기 접시 가장자리에 붙은 양파를 젓가락으로 떼어 낸다.
지금 집에 가서 도범준이 나왔다고 말하면 엄마가 어떻게 할까.
아는 애니까 잘됐네.
그 말부터 할 것 같다.
그러고는 두 번째 밥을 잡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친구랑은 못 만난다고 말해서, 새로운 사람을 찾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내 토요일이 없어진다.
범준이 내 젓가락을 본다.
“왜.”
“생각 중이야.”
“양파 다 떼겠다.”
나는 양파를 먹는다.
범준은 기다린다. 재촉하지 않고 자기 밥을 먹는다.
그 모습을 보는데 방법이 하나 떠오른다.
다른 사람이면 말을 꺼내지도 못할 방법.
도범준이라서 말할 수 있는 방법.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앉은 자세를 고친다.
“야.”
범준이 고개를 든다.
“우리 이거, 잘되는 척하자. 그럼 둘 다 조용해져.”
범준의 젓가락이 멈춘다.
나는 바로 이어 말한다.
“생각해 봐. 잘 안됐다고 하면 우리 엄마는 또 사람 찾아. 너희 엄마도 이번에 한 번 보냈으니까 다음은 더 쉬울 거고.”
“그래서.”
“우리끼리 몇 번 만나면 되지. 어차피 얼굴은 맨날 보잖아. 거기에 밥만 가끔 같이 먹는 거야.”
말로 하니 꽤 괜찮다.
아주 괜찮다.
나는 물잔을 당긴다.
“엄마들은 우리가 알아서 만나는 줄 알고 잠잠해질 거고. 우리는 모르는 사람 앞에서 직업이 뭐냐, 취미가 뭐냐, 그거 안 해도 되고.”
“내 취미는 알아?”
“너 바둑 둘 줄도 모르면서 아빠들 옆에 앉아서 훈수하다 쫓겨나잖아.”
“그건 취미 아니야.”
“됐고. 대충 안다는 얘기야.”
범준이 다시 젓가락을 움직인다.
그냥 먹기만 한다.
나는 조금 더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싫어?”
“네 얘기 듣고 있어.”
“그럼 듣고 대답해. 잘되는 척만 하는 거야. 엄마들 떼어 내기 작전.”
범준은 남은 전을 집는다.
나는 접시를 보고, 범준을 본다.
“왜 아무 말 안 해.”
범준이 전을 삼킨다.
수저를 나란히 놓는다.
그러고는 나를 똑바로 본다.
“난 척 안 할 건데.”
나는 웃는다.
친구를 상대로 맞선에 나와서, 끝까지 제대로 해 보겠다는 얼굴이다. 역시 도범준이다. 대충하자고 하면 꼭 이런다.
나는 물잔을 내려놓는다.
“그게 더 자연스럽겠네. 됐고, 작전 회의는 내일.”
『엄마 단톡: 경애 — 들어갔어? / 명숙 — 둘 다 전 한 장 안 남겼대.』
(1화 끝)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는다.“누가 누굴 데려가.”아영이 내 옆을 본다.범준은 내 방수 가방이 넘어지지 않게 의자 다리 안쪽으로 밀고 있다.“지금도 챙기잖아.”“가방이 넘어지니까.”“홍 쌤. 나 가방은 안 넘어져?”아영 가방도 반쯤 기울어 있다.나는 일어나서 바로 세워 준다.“됐다.”“왜 홍 쌤이 해?”“내가 가까워.”범준이 나를 올려다본다.입가가 조금 올라간다.나는 앉으면서 범준의 팔꿈치를 식탁 안쪽으로 밀어 준다. 옆을 지나가는 손님이 부딪힐 뻔한다.아영이 그걸 본다.나도 내가 한 걸 본다.젓가락을 다시 든다.“물회 먹어. 국물 남기면 아까워.”아영은 대답 대신 국물을 뜬다.범준도 그릇 쪽으로 몸을 당긴다.나는 식탁 아래에서 내 가방을 발로 한 번 더 건드린다.안 넘어진다.잘 세워 놨다.괜히 확인했다.· · ·6월 13일 토요일 오후.엄마가 내 손에 안경집을 얹는다.“아빠 갖다줘.”“아빠 어딨어?”엄마가 마우스를 누른다.사진 속 손님의 턱이 조금 줄어든다.“길 건너.”“길 건너에서 안경 없이 바둑 둬?”“안 보인다고 갖다 달래.”나는 안경집을 연다.
“그럼 지금 다시 물어보면?”범준이 의자를 고쳐 든다.“들어 줄게.”“대답을 해야지.”“의자부터 놓고.”나는 사진관 앞까지 걸어간다. 의자를 내려놓자 엄마가 화분을 가져온다.범준도 의자를 놓는다.엄마가 그 앞에 서서 물을 달라고 한다.질문 하나 하는 사이에 일이 또 생긴다.나는 범준을 보고 입을 연다.“너 다음에도 이렇게 말 돌리면—”“하늬야, 물.”엄마가 빈 물조리개를 내민다.범준이 대신 받는다.“제가 할게요.”나는 빈손으로 서 있다.대답을 받아야 하는데 도움을 받는다.이러면 따지기도 애매하다.· · ·6월 6일 토요일.수영장 바닥에 물이 튄다.나는 파란 줄을 목 뒤로 넘기고 새 호루라기를 입에 댄다.짧게 한 번.민들레반 아이들이 내 쪽을 본다.정확히는 절반쯤 본다.나머지는 관람석의 엄마를 찾고, 수영모를 당기고, 옆 아이 물안경을 구경한다.“민들레반. 발은?”“천천히!”대답은 빠르다.발은 더 빠르다.나는 출발대 쪽으로 뛰려는 아이 앞에 손을 편다.“입으로만 천천히 하지 말고.”아이가 걸음을 줄인다.옆에서 금아영이 물안경을 들고 웃는다.“홍 쌤, 얘들 목소리만 들으면 다 준비 끝났어.”“목소리로 헤엄치면 우리 반이 이겨.”“그건 수영이 아니야.”“알아. 그래서 지금 급해.”아영은 나와 같은 어린이반 수영 강사다. 긴 머리를 단단히 묶었는데, 아이들 수영모부터 바로잡느라 자기 머리 끝은 어깨에 붙어 있다.내 반 아이 하나가 아영 앞에 선다.“선생님, 자꾸 물 들어가요.”아영이 물안경 줄을 살핀다.“거꾸로 썼네.”“아빠가 해 줬는데.”“아빠도 긴장했나 보다.”아영은 아이를 탓하지 않고 물안경을 뒤집는다. 눈 주위에 잘 붙는지 손끝으로 살핀 뒤 줄을 맞춘다.나는 관람석을 올려다본다.보호자들이 유리 너머에서 손을 흔든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는 옆 사람 휴대폰을 내리게 한다.그 사이에 검은 백팩이 보인다.그 위에 도범준이 있다.정확히는 도범준이 백팩을 앞에 놓고 서
“다음에는 네가 창가에 앉아.”범준이 손가락을 폈다 굽힌다.“그러면 안 기대?”“내가 또 넘어가면 창문이 받아 주겠지.”“아플 텐데.”“그러니까 깨우라고.”버스가 멈춘다.범준은 먼저 일어나서 내 가방을 꺼내 준다. 나는 가방끈을 왼쪽 어깨에 걸고, 아직 덜 풀린 범준 손을 본다.“너 물리치료사잖아.”“응.”“자기 팔부터 잘 돌봐.”범준이 손을 내린다.“다음에는.”나는 대꾸하려다가 앞사람을 따라 내린다.다음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나도 방금 했다.· · ·5월 23일 토요일.사진관 앞에 플라스틱 의자가 쌓여 있다.나는 맨 위 의자를 든다.엄마가 바로 손잡이를 잡는다.“그거 말고 옆에.”“의자도 자리가 정해져 있어?”“그건 다리 흔들려. 내가 앉을 거야.”“엄마는 흔들려도 돼?”“나는 일어나면 되지. 어르신들은 허리 아프시다니까?”엄마는 의자를 바닥에 놓고 눌러 본다. 한쪽 다리가 조금 뜬다.나는 멀쩡한 의자 두 개를 포갠다.경로당 봄 잔치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예상은 했다.놀러 간다.의자를 나른다.아마 접시도 나른다.놀러 가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의 차이는 도착해서 알게 된다.“하늬야, 그거 내려놔.”길 건너에서 범준이 온다.검은 백팩을 한쪽 어깨에 걸었다. 내 손에 든 의자부터 받는다.“두 개야.”“알아.”“나도 들 수 있어.”“그럼 저거.”범준이 접힌 식탁을 턱으로 가리킨다.나는 의자를 다시 잡는다.“됐고. 이쪽이 가벼워.”범준이 웃으며 식탁으로 간다.명숙 아줌마가 부동산 문을 잠그고 천천히 건너온다. 팔 아래에는 두꺼운 스프링 노트가 있다.엄마가 묻는다.“명숙아. 몇 개 모자란대?”“의자 넷.”“넷? 아까는 셋이라며.”“네가 앉을 것도 있어야지. 그렇지?”엄마가 흔들리는 의자를 가리킨다.“내 거 여기 있어.”아줌마는 의자 다리를 보고, 엄마를 본다.“그건 화분 올려.”범준이 식탁을 펼치려다 잠깐 멈춘다.나는 고개를 돌린다.웃으면 엄마가 나도 일 시킨다.
“내가 열네 살 때 어디 가고 싶다고 했는데?”범준이 골목 모퉁이에서 멈춘다.내 소매 끝을 본다.돈가스 소스가 묻은 자리다.“집에 가서 먼저 씻어.”“내 질문이랑 소매가 무슨 상관인데.”“굳으면 안 지워져.”“어디냐고.”“수족관.”나는 접어 올린 소매를 놓는다.수족관.그 말을 입 안에서 한 번 굴려 본다.“내가 그랬어?”“응.”“언제.”“수영부 들어갔을 때.”“너 그걸 아직 기억해?”범준은 다시 걷는다.“가고 싶다며.”나는 잠깐 뒤처졌다가 따라간다.‘도범준은 15년 전 목적지를 갖고 있다. 나는 오늘 휴대폰도 놓고 나왔다.’“그걸 이제 가?”“다음 주에 시간 되잖아.”맞는 말이다.이번에는 맞는 말인데도 곧바로 대꾸가 안 나온다.나는 소매를 더 높이 접는다.“됐고. 거기 매점 있어?”범준이 나를 본다.“있겠지.”“없으면 곤란해.”“물고기 보러 가는 거잖아.”“물고기도 밥 먹어.”범준 입가가 올라간다.나는 앞을 보고 걷는다.· · ·5월 16일 토요일.사진관 문을 열자 엄마가 내 가방을 먼저 본다.“수족관 간다며.”“응.”“수영하러 가는 거 아니지?”나는 방수 가방을 내려다본다.“거기서 내가 들어가면 직원이 꺼내 주겠지.”“가방이 너무 크다니까?”“작은 걸 들면 물병이 안 들어가.”엄마는 내 가방 안에 든 물병을 확인하고서야 비켜선다.곧바로 다시 앞을 막는다.“사진은 물고기만 찍지 말고.”“아직 출발도 안 했어.”“큰 물고기 옆에서 찍어. 둘이.”길 건너 명숙부동산 문이 열린다.범준이 나오고, 명숙 아줌마가 느리게 뒤따른다.엄마는 내 옆을 지나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다.“명숙아. 거기 멀다며?”“지하철로 50분.”“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찾아봤지. 그렇지?”아줌마가 범준을 본다.범준은 고개를 끄덕인다.엄마도 나를 본다.나는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다.“넌 뭐 알아봤어?”“매점 있는지.”“있대?”나는 범준을 본다.범준이 대답한다.“있어.”엄마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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