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우리의 결혼을 숨겼다

남편은 우리의 결혼을 숨겼다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10-30
Oleh:  해월Baru saja diperbarui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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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윤은 삼 년 동안 강시혁의 아내로 살았다. 그러나 첫사랑 백유리가 돌아온 날, 남편은 다른 여자와의 약혼을 발표한다. 혼인신고서마저 가짜였다. 그녀는 아내가 아니라 첫사랑을 닮은 대역이었다. 머리 모양도, 향수도, 사랑한다던 말까지 모두 유리의 것이었다. 시혁은 울고 있는 하윤에게 집을 비우라 명령하고, 유리는 그녀가 목숨처럼 아끼던 그림까지 빼앗는다. 하지만 누구도 몰랐다. 버려진 여자가 세계 미술계가 찾아 헤매던 천재 화가 ‘무명’이라는 사실을. 오직 칠 년간 그녀의 그림을 추적한 주태건만이 그 손끝을 알아본다. 그는 사랑한 적 없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남자가 다가오자 끝내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모든 것을 잃은 하윤이 다시 붓을 드는 순간, 그녀를 지운 남자의 지옥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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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1화

"세강그룹 강시혁 전무님과 백림그룹 백유리 씨의 약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서하윤은 남편을 위해 준비하던 와인잔을 놓쳤다.

투명한 잔이 식탁 모서리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고,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붉은 와인이 대리석 위로 번졌다. 그러나 하윤은 깨진 유리 조각을 내려다볼 겨를도 없이 거실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면 속에는 남편이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강시혁은 수많은 취재진 앞에 서 있었고, 그의 곁에는 흰색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편도 웃고 있었다.

하윤이 지난 몇 달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다.

"세강그룹 강시혁 전무와 백림그룹 백유리 씨의 약혼이 공식 발표됐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인연을 이어 온 사이로, 양가에서는 이번 약혼을 계기로 더욱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윤은 천천히 식탁 모서리를 붙잡았다. 손바닥 아래로 차가운 대리석의 감촉이 전해졌지만,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늘은 결혼 3주년이었다.

남편과 자신이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던 날이었고, 세상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던 그 결혼을 적어도 두 사람만큼은 기억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다른 여자와 약혼하고 있었다.

하윤은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카메라가 강시혁의 얼굴을 가까이 잡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매일 아침 같은 집에서 출근하던 남자였고,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던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가 지금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

세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하윤은 행복한 저녁을 기대하고 있었다.

오후 네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그녀는 식탁 위에 새하얀 식탁보를 펼치고 직접 손질한 흰 장미를 유리 꽃병에 꽂았다.

시혁은 화려한 장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식탁에 꽃을 놓더라도 색이 강한 것은 피하라고 했고, 집 안의 가구와 커튼 역시 밝고 단정한 색으로 맞추기를 원했다.

하윤은 남편의 취향을 알고 있었다.

삼 년 동안 그의 아내로 살면서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냄새, 피곤할 때 나타나는 표정까지 기억하게 되었으니, 결혼기념일 식탁을 준비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오븐에 넣어 둔 요리의 온도를 확인한 뒤 시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시혁 씨,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올 수 있어요?*

잠시 후 답장이 도착했다.

*오늘 중요한 일정 있어. 늦을 수도 있어.*

하윤은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력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죠?*

이번에는 답장이 늦었다.

그녀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식탁에 접시를 올리려던 순간, 짧은 진동이 울렸다.

*알아. 축하해.*

하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남편은 원래 다정한 말을 길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혼 전에는 꽃 한 송이를 건네면서도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고, 결혼한 뒤에도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필요한 것을 사 주거나 생활비를 넉넉하게 넣어 주는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하윤은 그런 사람이기에 더 작은 말에도 기뻐했다.

*고마워요. 기다릴게요.*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오늘만큼은 남편도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윤은 냉장고를 열어 작은 케이크 상자를 확인했다.

케이크 위에는 두 사람의 이름 대신 짧은 문구만 적혀 있었다.

*우리의 세 번째 봄.*

처음 케이크를 주문할 때에는 남편과 자신의 이름을 나란히 적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주문서를 작성하다가 결국 이름을 지웠다.

결혼 사실을 숨기고 살아온 습관이었다.

시혁은 결혼 직후부터 자신의 신분 때문에 당분간 외부에 알릴 수 없다고 했다. 세강그룹의 후계 구도와 복잡한 가족 문제를 정리한 뒤에는 반드시 아내로 소개하겠다고 약속했으므로, 하윤은 그 말을 믿었다.

첫해에는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해에는 남편이 바쁘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달랬다.

그리고 세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은 오늘, 하윤은 더 이상 기다리기만 하고 싶지 않았다.

식탁 옆에는 작은 선물 상자도 준비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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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강그룹 강시혁 전무님과 백림그룹 백유리 씨의 약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서하윤은 남편을 위해 준비하던 와인잔을 놓쳤다.투명한 잔이 식탁 모서리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고,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붉은 와인이 대리석 위로 번졌다. 그러나 하윤은 깨진 유리 조각을 내려다볼 겨를도 없이 거실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화면 속에는 남편이 있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강시혁은 수많은 취재진 앞에 서 있었고, 그의 곁에는 흰색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편도 웃고 있었다.하윤이 지난 몇 달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다."세강그룹 강시혁 전무와 백림그룹 백유리 씨의 약혼이 공식 발표됐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인연을 이어 온 사이로, 양가에서는 이번 약혼을 계기로 더욱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하윤은 천천히 식탁 모서리를 붙잡았다. 손바닥 아래로 차가운 대리석의 감촉이 전해졌지만,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늘은 결혼 3주년이었다.남편과 자신이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던 날이었고, 세상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던 그 결혼을 적어도 두 사람만큼은 기억해야 하는 날이었다.그런데 남편은 다른 여자와 약혼하고 있었다.하윤은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카메라가 강시혁의 얼굴을 가까이 잡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매일 아침 같은 집에서 출근하던 남자였고,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던 사람이었다.그런 남자가 지금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세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하윤은 행복한 저녁을 기대하고 있었다.오후 네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그녀는 식탁 위에 새하얀 식탁보를 펼치고 직접 손질한 흰 장미를 유리 꽃병에 꽂았다.시혁은 화려한 장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식탁에 꽃을 놓더라도 색이 강한 것은 피하라고 했고, 집 안의 가구와 커튼 역시 밝고 단정한 색으로 맞추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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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안에는 남편이 오래전부터 갖고 싶어 하던 만년필이 들어 있었고, 하윤은 그 펜을 사기 위해 자신의 그림 작업에 사용할 재료비 일부를 미뤄 두었다.시혁은 이미 비슷한 만년필을 여러 개 갖고 있었다.하지만 하윤은 그가 매장에서 그 제품을 오래 바라보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사랑하는 사람의 작은 바람을 기억하는 일이 그녀에게는 기쁨이었다.하윤은 만년필 상자에 얇은 리본을 묶은 뒤 식탁 한쪽에 내려놓았다. 포장지 안에는 직접 쓴 카드도 넣어 두었다.*삼 년 동안 고마웠어요. 앞으로는 우리도 다른 부부들처럼 함께 사진을 찍고, 함께 웃고, 서로의 이름을 마음껏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카드를 쓰면서 하윤은 잠시 망설였다.시혁은 결혼 이야기를 밖에서 꺼내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다. 집 안에서는 자신을 아내라고 부르면서도 회사 행사나 공식 모임에는 단 한 번도 동반하지 않았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동안에는 하윤이 말을 걸지 않기를 바랐다.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남편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오늘만큼은 조금 욕심을 내고 싶었다.결혼한 지 삼 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자신을 아내라고 소개해 달라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그의 곁에 설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하윤은 카드를 상자 안에 넣고 조심스럽게 뚜껑을 닫았다.그날 저녁, 남편에게 건네려던 선물은 그렇게 완성되었다.***오후 여섯 시가 지나자 하윤은 요리를 한 번 더 데웠다.일곱 시가 되자 촛불을 켤까 망설이다가 남편이 도착한 뒤 켜기로 했고, 여덟 시가 넘어서는 음식이 마르지 않도록 뚜껑을 덮었다.휴대전화에는 새로운 메시지가 없었다.하윤은 시혁의 회사 일정이 늦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남편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중요한 계약이나 이사회가 있는 날에는 자정이 넘어서야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날에는 지친 얼굴로 넥타이부터 풀어 던지곤 했다.하윤은 그때마다 따뜻한 물을 준비하고 식사를 다시 차려 주었다.오늘도 그러면 된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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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다른 여자와 약혼하기 위해 나간 것이었다.***거실 텔레비전에서 같은 뉴스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몇 분 뒤였다.하윤은 리모컨을 쥔 채 화면 앞에 서 있었다.카메라가 움직이자 시혁과 백유리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크게 잡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세강그룹과 백림그룹의 이름이 적힌 배경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기자들은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강 전무님, 이번 약혼은 양가의 사업적 협력과도 관계가 있습니까?"시혁은 마이크를 건네받았다."양가가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 온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개인적인 관계를 단순히 사업으로만 봐 주시지는 않았으면 합니다."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하윤이 매일 아침 듣던 목소리였고, 늦은 밤 침대 옆에서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였다.그런데 그 목소리가 지금은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었다."백유리 씨와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셨다고 들었습니다."시혁이 옆에 선 여자를 바라보았다."오래된 인연입니다."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소중한 사람이기도 하고요."하윤은 리모컨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소중한 사람.결혼한 뒤 남편에게서 좀처럼 듣지 못했던 표현이었다.기자가 다시 물었다."그동안 공개된 연애 사실이 없었는데, 이번 발표를 계기로 결혼 계획도 밝히실 예정입니까?"하윤은 숨을 멈췄다.시혁은 잠시 백유리를 바라보더니 그녀의 손을 잡았다."좋은 소식이 생기면 말씀드리겠습니다."주변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백유리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고, 시혁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놓지 않았다.하윤은 화면을 응시했다.삼 년 전 자신과 결혼하던 날, 남편은 사진을 많이 남기지 말자고 했다. 아직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관계이니 결혼식도 조용히 치르자고 했고, 하윤은 그의 사정을 이해하려 애썼다.그때 시혁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약속했다."조금만 기다려. 언젠가는 누구 앞에서도 내 아내라고 소개할게."하윤은 그 말을 믿었다.그런데 오늘 남편은 수많은 사람 앞에서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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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남편에게 설명을 들어야 했다.그가 자신의 입으로 결혼을 부정하는지, 아니면 세상에 공개하지 못한 사정이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 했다.하윤은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하윤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연결음이 길게 이어졌지만 받지 않았고, 두 번째 전화도 끊겼다. 세 번째에는 통화 중이라는 안내가 나오자 그녀는 휴대전화를 움켜쥔 채 거실을 서성였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입력했다.*시혁 씨, 지금 뉴스에 나오는 거 봤어요.*잠시 뒤 다시 보냈다.*백유리 씨랑 약혼했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답장은 없었다.하윤은 화면 속 시혁을 바라보았다.남편은 기자들과 악수하고 있었고, 백유리는 그의 곁에서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잠시 후 휴대전화가 울렸다.화면에 남편의 이름이 떠 있었다.하윤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시혁 씨."목소리가 떨렸다."지금 뉴스에…….""봤어?"남편의 목소리는 평온했다.하윤은 숨을 들이마셨다."봤어냐고?""뉴스.""봤어. 지금도 나오고 있어."전화기 너머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시혁에게 축하한다고 말했고, 그는 잠시 기다리라는 듯 짧게 대답했다.하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깨물었다."그거 사실 아니지?"시혁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 짧은 침묵 사이에 하윤은 수많은 가능성을 떠올렸다.회사에서 억지로 진행한 발표일 수도 있었다. 백림그룹과의 협력을 위해 형식적으로 마련한 자리였을 수도 있었고, 어쩌면 자신에게 설명하지 못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도 몰랐다.그러나 시혁의 다음 말은 그녀가 붙잡고 있던 가능성을 모두 무너뜨렸다."사실이야."하윤은 눈을 감았다."무슨 뜻이야?""들었잖아. 유리랑 약혼한다고.""당신은 나랑 결혼했어."하윤이 가까스로 말을 꺼내자 시혁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하윤아, 지금은 감정적으로 굴 때가 아니야."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내 남편이 다른 여자랑 약혼했는데, 내가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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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 짧은 문장을 받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남편이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얼마나 믿었는지 생각하자 가슴이 조여 왔다."그럼 그 말은 무슨 뜻이었어?"시혁은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잠시 전화를 가렸다.멀리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시혁 오빠, 다들 기다리는데?"하윤의 숨이 멎었다.백유리였다.화면 속에서 남편의 팔짱을 끼고 있던 여자가 이제는 전화기 너머에서 그를 부르고 있었다.시혁이 다시 전화를 받았다."하윤아, 나 지금 가 봐야 해.""잠깐만."하윤은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오늘 집에 올 거지?"시혁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하윤은 그 침묵이 무서웠다."당신이랑 이야기해야 해. 이대로는 안 돼.""오늘은 늦어.""얼마나 늦는데?""기다리지 마."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시혁 씨…….""그리고 식탁 차려 놨으면 치워."하윤은 움직이지 못했다.남편은 무심하게 덧붙였다."나 오늘 밖에서 먹어. 음식 상하게 두지 말고."하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식탁 위에는 남편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직접 고른 만년필과 결혼기념일 카드가 있었다. 시혁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집에 돌아와 보겠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당신, 내가 뭘 준비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시혁은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하윤아, 지금 그게 그렇게 중요해?""나한테는 중요해. 삼 년 동안 당신 아내로 살았고, 오늘도 당신을 기다렸으니까."하윤은 식탁 위에 놓인 선물 상자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당신이 결혼을 숨겨야 한다고 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회사 행사에 데려가지 않아도 기다렸고, 당신 가족들 앞에서 내 이름을 말하지 못해도 참았어. 그런데 이제는 다른 여자와 약혼하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으라는 거야?"전화기 너머에서 시혁이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주변의 소음이 줄어들자 그의 목소리가 더욱 차갑게 들려왔다."내가 왜 지금까지 너한테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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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하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그녀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생활이 남편에게는 자신이 베푼 편의였다는 사실을, 시혁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하윤은 입술을 깨물었다가 천천히 힘을 풀었다."당신은 내가 오늘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어?"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그녀는 남편이 미안하다고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단 한마디라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지금은 설명할 수 없지만 상처를 준 것은 미안하다고 말해 준다면 그 말을 붙잡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시혁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유리 기다려. 나중에 이야기해.""시혁 씨.""그리고 기자들이나 회사 사람들한테 연락할 생각하지 마."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괜한 소란 일으키면 그때는 나도 지금처럼 넘어가지 않아."그는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전화를 끊었다.하윤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앉아 있었다.남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미안하다는 사과도, 설명하겠다는 약속도 아니었다.식탁을 치우라는 명령과 자신의 결혼을 입 밖에 내지 말라는 경고였다.***하윤은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부터 치웠다.손이 떨려 작은 조각을 몇 번이나 놓쳤지만, 그녀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조심스럽게 모았다.깨진 잔은 결혼 첫해에 시혁과 함께 고른 것이었다.당시 남편은 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이런 건 한 번 사면 오래 쓰잖아."하윤은 그 말이 좋았다.오래 쓴다는 표현이 두 사람의 미래를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그런데 잔은 삼 년을 채우고 깨졌다.하윤은 마지막 조각을 쓰레기봉투에 넣은 뒤 식탁으로 돌아왔다.음식은 식어 있었고, 촛불은 한 번도 켜지지 않았으며, 남편의 자리에 놓아 둔 접시는 깨끗한 상태 그대로였다.그녀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맞은편 빈자리를 바라보자 아까 전화로 들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그런 날짜 하나에 무슨 의미를 그렇게 많이 둬?*하윤은 손을 뻗어 남편의 접시를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식탁보 위에는 흰 장미 그림자가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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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하윤은 통화 직후 기억나는 말을 한 문장씩 적어 내려갔다.*강시혁, 백유리와의 약혼 사실 인정.**결혼기념일의 의미를 부정.**우리 관계를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지시.**회사와 자신의 지위를 이유로 침묵 요구.*마지막 문장을 입력하던 손이 잠시 멈췄다.*괜한 소란을 일으키면 넘어가지 않겠다고 경고.*하윤은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그것은 사랑하는 남편에게서 처음 들은 협박에 가까운 말이었다.그녀는 메모를 저장한 뒤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그리고 남편을 위해 준비한 선물 상자를 집어 들었다.리본을 풀자 만년필과 카드가 나왔다.하윤은 카드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서로의 이름을 마음껏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그녀는 카드 끝을 손끝으로 눌렀다.삼 년 동안 남편의 이름을 사랑한다고 불렀지만,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그 이름 옆에 자신의 이름을 놓을 수 없었다.그런데 백유리는 단 하루 만에 수많은 사람 앞에서 강시혁의 약혼녀가 되었다.하윤은 카드를 찢지 않았다.만년필도 버리지 않았다.그녀는 선물 상자를 다시 닫아 식탁 한쪽에 놓았다.아직은 남편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왜 자신에게 그토록 잔인한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을 하면서도 삼 년의 결혼생활을 조금이라도 떠올렸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그 마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조차 비참했지만, 하윤은 자신이 아직 시혁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밤 열한 시가 지나자 집 안은 완전히 조용해졌다.하윤은 식탁의 음식을 하나씩 밀폐용기에 담았다.남편이 좋아하는 고기 요리는 이미 식어 기름이 굳어 있었고, 직접 준비한 수프에는 얇은 막이 생겼다.그녀는 용기를 냉장고에 넣다가 가운데 칸에 놓인 케이크 상자를 발견했다.*우리의 세 번째 봄.*하윤은 상자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작은 케이크 위에는 흰색 크림으로 장식한 꽃이 놓여 있었고, 그 아래에 두 사람이 함께 맞은 세 번째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하윤은 초 하나를 꺼냈다.처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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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하윤은 서류를 건드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삼 년 동안 남편이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익숙하게 반복하던 일이었다. 시혁이 들어오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잔을 준비하고, 침실 조명을 조금 어둡게 낮춘 뒤 기다렸다.오늘도 습관처럼 물잔을 꺼냈다가 손을 멈췄다.남편은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기다리지 말라고도 했다.하윤은 물잔을 제자리에 놓았다.침대 옆에는 두 사람이 결혼하던 날 찍은 작은 사진이 있었다.외부에 공개하지 못했던 사진이었다.사진 속 하윤은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시혁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른 채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하윤은 액자를 들어 올렸다.그날 남편은 자신에게 평생 곁에 있겠다고 약속했다.세상이 두 사람의 결혼을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남편만큼은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하윤은 사진 속 자신의 얼굴을 손끝으로 쓸었다.그때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시혁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고, 언젠가 세상 사람들에게도 떳떳하게 아내로 소개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삼 년이 지난 오늘, 남편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약혼했다.하윤은 액자를 내려놓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그녀의 시선이 화장대 거울로 향했다.긴 머리.희고 단정한 옷차림.남편이 좋아한다고 말했던 모습이었다.하윤은 문득 거실에서 보았던 백유리의 사진을 떠올렸다.두 여자의 얼굴은 완전히 같지 않았다.하지만 길게 내려오는 머리와 얼굴의 윤곽, 웃을 때 눈가에 생기는 부드러운 선이 묘하게 닮아 있었다.하윤은 휴대전화를 꺼내 백유리의 공식 사진을 다시 열었다.사진 속 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과 화면 속 백유리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사람이 닮을 수도 있었다.비슷한 머리 모양을 하고 비슷한 색의 옷을 입었다고 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시혁이 처음 자신에게 머리를 기르라고 했던 날, 흰색 옷이 잘 어울린다며 다른 색의 옷을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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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이분은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이야."서하윤은 남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을 듣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강시혁은 현관에 들어선 백유리의 코트를 받아 들고 있었고, 그녀의 어깨에 걸린 머리카락이 옷깃에 끼자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빼 주면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윤을 가리켰다.그 다정한 손길이 낯설지 않아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삼 년 전, 자신에게도 저렇게 해 주던 남자였다. 바람이 심한 날이면 목도리를 여며 주었고, 손이 차갑다며 투덜거리면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 넣어 주던 사람이었다.그때 하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했다.그 남자가 어젯밤 다른 여자와 약혼했다.그것도 자신들의 세 번째 결혼기념일에.하윤이 남편을 기다리며 식어 버린 음식을 몇 번이나 데우는 동안, 시혁은 수많은 기자 앞에서 백유리의 손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나자 그 여자를 자신과 삼 년 동안 살아온 집으로 데려와 아내를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하윤 씨라고 부르면 돼."시혁이 덧붙이자 백유리는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반가워요, 하윤 씨.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하윤은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에는 보석이 박힌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는데, 어젯밤 약혼 발표장에서 시혁이 잡고 있던 바로 그 손이었다.자신은 삼 년 동안 결혼반지를 밖에서 마음대로 드러내지도 못했다. 남편이 아직 공개할 때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그런데 백유리는 단 하루 만에 세상 모든 사람에게 강시혁의 약혼녀로 인정받았다."시혁 씨……."남편을 부르는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시혁은 하윤의 얼굴을 한번 살피더니 유리의 여행 가방을 현관 안쪽으로 옮겼다. 밤새 울어 부은 눈과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도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았다."왜?"그 짧은 물음에 하윤은 가슴이 내려앉았다.정말 모르는 걸까.자신이 왜 이런 얼굴로 서 있는지, 무엇 때문에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지."나를 왜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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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시혁이 누워야 할 자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하윤은 습관처럼 손을 뻗어 옆자리를 더듬다가 텅 빈 이불을 움켜쥐었다. 남편이 새벽에라도 돌아왔다면 자신을 깨우지 않고 잠들었을지 모른다는 어리석은 기대가 남아 있었지만, 베개에는 그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이지 않았다.어젯밤 남편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결혼기념일을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고, 회사 일에 지쳐 있는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했던 말이었다.하윤은 그 말을 들었을 때도 남편을 미워하지 못했다.그가 정말 힘든가 보다 생각했고, 자신이 조금 더 이해하면 된다고 믿었다. 언젠가 모든 것이 정리되면 둘이 함께 여행도 가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손을 잡고 거리를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그런데 남편은 다른 여자와 약혼했다.하윤은 이불을 밀어 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욕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낯설 만큼 초췌했다. 밤새 울어 눈꺼풀이 부어 있었고, 입술은 말라 갈라져 있었지만, 그런 모습으로 남편 앞에 서고 싶지 않아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시혁이 돌아오면 먼저 물어볼 생각이었다.어젯밤 발표는 무엇이었는지, 왜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백유리와는 어떤 관계인지.그리고 가장 두려운 질문도 해야 했다.아직 나를 사랑하느냐고.그 질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차올랐다.사랑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을까 봐 무서웠다.하윤은 세면대 가장자리를 붙잡고 한참 동안 고개를 숙였다가 부엌으로 향했다.냉장고 안에는 전날 준비한 케이크가 그대로 있었다.*우리의 세 번째 봄.*하윤은 그 문구를 바라보다가 상자를 꺼냈다.삼 년 전 결혼식에서 시혁은 앞으로 맞이할 모든 봄을 함께 보내자고 약속했다. 그 말을 잊지 못해 하윤은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봄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올해는 직접 주문한 케이크와 만년필이었다.시혁이 오래 사용하던 만년필이 고장 났다는 말을 듣고 몇 주 동안 같은 모델을 찾아다녔다. 손잡이에 남편의 이름을 새길까 고민하다가,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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