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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9화

Author: 송진
성유리의 기억 속, 에릭은 늘 자존심 강하고 냉철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모든 이성을 잃은 듯했다.

말을 쏟아내면서도 눈은 계속 성유리의 몸을 훑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무언가 비상한 수단을 썼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것처럼.

성유리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입을 열었다.

“에릭 씨 눈에 박한빈 씨는 어떤 사람으로 보여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에릭은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성유리는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

“저와 같은 똑똑한 사람이죠.”

에릭이 대답했다.

간단한 말이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건 높은 평가였다.

에릭이 보기엔 다른 이들은 아예 그와 비교조차 할 자격이 없었다.

물론 지금은 그 생각에 약간 흔들림이 있었다.

박한빈이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꼈으니까.

아니,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로얀이 미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겠어?’

“그러니까 에릭 씨는 한빈 씨를 믿어야 해요.”

성유리가 에릭에게 말했다.

에릭은 그녀가 아까 던진 질문이 결국 이런 결론을 전하기 위함이었음을 깨닫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한빈 씨가 이런 일을 갑자기 벌인 것도 아니에요.”

성유리는 말을 이었다.

“한빈 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을 세웠고 지난 2년 동안 서서히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에릭 씨가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되고요.”

“에릭 씨는 오히려 매우 이성적이죠. 지금 자신이 뭘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요.”

“그냥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거죠? 하지만 두 사람은 친구잖아요. 한빈 씨가 원하는 게 뭔지 에릭 씨가 이해해 주길 바랐어요.”

성유리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천천히 흘러나왔고 에릭의 감정을 어느 정도 가라앉히는 데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에릭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로얀이 원하는 게 뭐냐고요? 전에 저한테 말했습니다, 지금처럼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유리 씨와 아이들과 함께. 그런데 전 그게 농담 같아요.”

“제가 아는 로얀은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떻게 자기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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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01화

    하지만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다.지금 그는 마치 성유리를 숨도 못 쉬게 만들겠다는 만큼 강하게 끌어안았다.그 안에 갇힌 그녀는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아파요.”결국 성유리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내뱉었지만 박한빈은 여전히 힘을 풀지 않았다.성유리가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콕 찌르고 꼬집었을 때야 박한빈은 마침내 그녀를 놓아주었다.곧 그는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봤다.진지한 눈빛으로 성유리의 몸 어딘가에 자신이 놓친 상처는 없는지 살폈다.“저 정말 괜찮아요.”성유리가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미간을 찌푸렸다.“진짜예요.”성유리는 말하며 그의 손을 꽉 잡았다.“그래도 일단 나가요. 여긴 좀...”“그래.”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한빈의 표정에 살기가 스쳤다.이내 그는 성유리의 손을 꼭 쥐고 밖으로 향했다.아래층엔 여전히 에릭이 있었다.박한빈이 성유리의 손을 잡고 내려오는 걸 본 에릭은 별다른 표정 없이 그들을 바라봤다.그는 와인잔을 하나 더 따르며 말했다.“한잔하지.”박한빈은 잠시 에릭과 눈을 마주보다가 성유리의 손을 놓았다.“문 앞에 경호원 있어. 너 먼저 데려다 달라고 해.”말과 동시에 그는 에릭 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그 순간, 성유리가 조용히 그의 손을 다시 붙잡았다.박한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지만 성유리는 시선을 그에게 두지 않고 에릭을 정면으로 바라봤다.그러고는 조용히 말했다.“저도 껴도 될까요?”에릭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물론이죠.”그는 직접 와인잔을 하나 더 집어 성유리 앞에 내밀었고 그녀 또한 자연스럽게 잔을 받아들었다.박한빈이 성유리를 애써 막으려 했지만 그녀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요.”그리고 박한빈이 대답하기도 전에 성유리는 에릭과 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 들이켰다.와인은 독특한 향이었다.처음엔 알싸하고 쓴맛이 느껴졌고 목 넘김 뒤에는 과일 향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00화

    에릭의 별장 대문이 누군가에 의해 부서지듯 열려버렸다.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경호원들은 원래 박한빈을 막으려 했지만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그는 경호원의 허벅지에 총을 쐈다.그의 사격 실력은 매우 정확했다.하지만 그 한 발에 현장엔 더 많은 총구가 박한빈을 겨눴다.박한빈이 다음 목표를 조준하려는 순간, 에릭이 안에서 나와 경호원들의 행동을 막았다.그리고 박한빈을 바라보며 말했다.“왔구나?”“유리는 어디 있어?”박한빈이 바로 물었다.에릭은 대답하지 않고 눈만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박한빈은 더 이상 수수께끼 같은 말에 신경 쓸 기분이 아니었다.그가 입을 다물자 박한빈은 다시 총구를 들었다.이번엔 겨냥한 상대가 바로 에릭이었다.그들은 전에 함께 아프리카에 간 적이 있다.사냥팀을 고용해 초원에서 맹수를 사냥하고 그들의 머리를 공훈 휘장으로 벽에 걸어두는 그런 일이었다.그래서 박한빈의 사격 실력은 에릭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에릭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두 손을 들었고 박한빈은 차분한 말투로 다시 물었다.“성유리는 어디 있지?”“로얀, 지금 네 모습 좀 봐.”그러자 에릭이 대답했다.“넌 원래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잖아. 어떻게 이렇게 충동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할 수가 있어?”박한빈은 무표정하게 에릭을 응시했다.“전부 다 그 여자 때문이지? 성유리 씨가 네 마음을 뒤흔들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히려 네가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해. 결국 내가 너 대신 처리했으니까.”에릭의 말에 박한빈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처리했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사실 에릭 성격상 그 말이 뜻하는 바는 분명했지만 박한빈은 믿지 않았다.성유리가 이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얼마 전 그녀가 침대에 누워 의식을 잃었을 때도 박한빈은 끝까지 믿지 않았다.그때 그는 결심했었다.설령 기계와 약으로 연명해야 해도 성유리를 끝까지 붙잡겠다고.박한빈은 성유리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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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398화

    이곳에는 에릭이 데려온 경호원들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박한빈 역시 따로 준비해 둔 경호 인력이 있었다.다만, 다가온 사람이 에릭이었기에 그들 역시 함부로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하지만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한 순간, 그들도 바로 움직이려 했다.에릭의 경호원들은 이를 눈치채고 즉각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성유리는 재빨리 자신의 경호원들에게 손을 들어 제지했다.그러고는 에릭을 바라보며 물었다.“저한테 무슨 할 말이 있으신 거죠?”에릭은 말없이 웃었다.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눈빛 속엔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오히려 그 안에는 칼날 같은 냉정함과 살의가 담겨 있었다.성유리는 옆에 있는 성노을을 내려다보았다.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에릭을 바라보며 말했다.“어디서 이야기하실 건가요?”에릭은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그의 경호원들은 여전히 성유리를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었다.마치 그녀가 따라오지 않으면 바로 총이라도 뽑을 듯한 자세로 말이다.성유리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고 곧장 성노을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노을아, 넌 먼저 들어가. 아빠랑 누나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밖에 나가면 안 돼. 알겠지?”“나도 엄마랑 같이 갈래.”성노을은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그러면서 손을 뻗어 성유리를 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조심스럽게 아이의 손을 밀어냈다.“착하지. 엄마 말 들어.”성유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다정했다.그러자 성노을의 움직임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곧 성유리는 옆에 있던 경호원들을 바라보았다.그들은 곧 상황을 이해하고 몇 걸음 다가가 성노을을 조심스레 안아갔다.그렇게 성유리는 에릭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에릭의 별장은 박한빈의 것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하지만 인테리어 스타일은 완전히 달랐다.박한빈의 공간이 따뜻하고 안정적이었다면 에릭의 공간은 차갑고 딱딱한 직선들, 그리고 냉기 가득한 공기만이 감돌았다.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에릭은 성유리를 전혀 환영하지 않는 듯 그저 혼자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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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이 떨어지자 박한빈은 곧장 그녀를 바라보았다.성유리는 조용히 그 시선을 마주하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내 서류들 봤어?”이내 박한빈이 물었다.“봤어요.”두 사람의 시선이 몇 초간 맞닿아 있다가 박한빈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뭐 어차피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야.”“음... 그래서요?”“그래서 뭐?”“후회하지 않으실까 해서요.”“뭘?”박한빈은 웃으며 되물었다.“그냥 회사 일 하나 정리하는 것뿐인데? 게다가 난 어차피 요즘 여기 일에 신경도 거의 못 써. 차라리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낫지.”그러고는 그녀 손을 잡으며 덧붙였다.“이 일 다 정리되면 너랑 여행 한 번 갈까 해. 좀 멀리.”“하늘이랑 노을이는 학교도 다녀야 하는데요?”“애들은 가정부랑 선생님한테 맡기면 되지.”박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우리 둘만 다녀오자.”“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아니.”박한빈은 단호했다.그 눈빛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생각해 볼게요.”성유리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박한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이 조용한 평화를 함께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그러나 곧 뒤에서 하늘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 빨리 나가자. 우리 배 타기로 했잖아.”하늘이의 재촉이 계속되었지만 박한빈은 당장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고개를 숙여 성유리를 바라보았다.성유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가보세요.”...박한빈은 하늘이를 데리고 바다로 나갔다.노을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출항에는 관심이 없었다.그래서 성유리는 아이를 데리고 해변에서 모래놀이를 하기로 했다.그리고 결과적으로 노을이에게는 여기가 하와이든, 동네 개울가든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모래만 있으면 그걸 파고 노는 것만으로도 세상 제일 행복한 얼굴이었다.성유리는 가벼운 비치 드레스를 입고 성노을의 옆에서 함께 모래를 만졌다.그리도 도우미는 두 사람 햇볕에 탈까 봐 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396화

    에릭은 원래 한껏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박한빈의 말을 듣고 나자 그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진심이야?”“당연하지.”“난 그냥 술김에 한 소리인 줄 알았는데.”“나 술 안 취했었어.”박한빈의 목소리는 차분하기만 했고 에릭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너 작년 회사 수익이 얼마였는지 알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안에 발 하나만 들이려고 발버둥 치는지 아냐고! 근데 네가 거기서 빠지겠다고?”“딱 좋잖아. 어차피 요즘 나 거의 관여도 안 해. 네가 더 적합한 사람한테 자리를 넘기면 되지.”박한빈의 말이 끝나자 에릭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내 회사는 뭐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동네 구멍가게야? 지나가는 개도 막 들어오게?”박한빈은 짧게 웃었다.그러자 에릭은 다시 물었다.“진심이야?”“응.”“왜?”“딱히 이유는 없어. 나이 먹으니까 이제 좀 덜 바쁘게 살고 싶어서.”그 말에 에릭은 억울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박한빈보다 한 살 많은 자신은 도대체 뭐가 되는 건가 싶었던 거다.“나 원래 너랑 같이 시작할 때 그냥 재밌어서 했던 거야.”에릭의 불만을 읽은 박한빈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근데 이제는 굳이 그런 걸로 세상에 대한 흥미를 유지할 필요는 없어.”“그리고 국내에 있는 자산들도 거의 정리 끝났어. 이쪽도 마찬가지고.”사실 박한빈의 마음은 단순했다.성유리가 아팠던 일이 있고 난 후, 그는 그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전에는 시간이 넘치는 줄 알았다.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성유리의 갑작스러운 병환은 박한빈의 그런 착각을 산산조각 내버렸다.그는 무서워졌다.그리고 혹시라도 늦을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다.그래서 이번에는 정말로 결심한 거였다.“넌 안 아쉬워?”에릭은 여전히 찝찝한 듯 물었다.“전혀.”에릭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지만 그 눈빛에는 분명히 분노가 서려 있었다.그는 지금 박한빈을 마치 ‘배신자’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박한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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