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준은 육성민이 자루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정이와 강민아를 들어 올렸다.강민아는 정이를 꼭 안고 육성민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그들 두 사람이 흔들려 육성민의 착지 중심에 영향을 줄까 노심초사했다.곧 그들 일가가 크게 앞섰고 오늘 넘어지지 않은 유일한 가족이었다.“오빠. 뭐하는 거야? 시합이 시작되었어!”강나현이 민이를 데리고 걸어왔다.반하준은 지금 팔뚝까지 핏줄이 불끈 솟았다.만약 예년에 그가 이런 활동에 참여했다면 강민아와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은 그였을 것이다.만약 눈빛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는 벌써 육성민의 등에 구멍을 냈을 것이다.그가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육성민이 강민아에 대한 감정은 이미 남매의 정을 초월했다는 것을.다만 강민아가 그를 오빠로 여겼기 때문에 그는 조심스럽게 숨기고 있었다. 강민아가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면 다시는 강민아에게 이런 완전한 신뢰를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오빠? 내 말 못 들었어?”강나현이 목소리를 높였다.반하준은 그제야 냉담하게 대답했다.“난 이 게임 기권할 거야.”“왜?!”강나현과 민이가 동시에 소리 질렀다.남자는 차가운 얼굴로 예전과 다름없이 강한 기세로 말했다.“재미없어.”민이는 울기 시작했다.“하지만 이 게임에 참가하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야 해요!”반하준이 대답했다.“이 게임이 끝나면 또 다른 게임이 있어.”세 번째 게임에서 1등을 하면 그들은 7점이 되는데, 그가 어떻게 자기 아들을 굶길 수 있겠는가.강나현은 장기명이 반진경 위로 넘어지는 것을 보았다. 반진경은 애교 섞인 비명을 지르며 화를 내는 척하지만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강나현은 입술을 꽉 물었다.만약 그녀와 반하준이 캥거루 점프 게임에 참가할 수 있다면 그녀도 부주의로 넘어지고, 반하준은 그녀의 몸에 넘어졌을 것이다.이런 생각을 한 강나현은 마음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괘씸해!’반하준이 아마 이 게임에 참가하면 항상 넘어지니 이미지에 영향이 간다고 생각해서 참가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추
말하면서 그는 방석을 들여 육성민에게 건졌다.그가 육성민을 보는 눈빛은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그러자 옆에 서 있던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반 대표님, 방석을 추가하면 등에 있는 사람이 잘 앉지 못하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방석을 추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방석을 추가하는 것은 난도를 높이기 위한 거예요. 방석을 하나 더 추가하면 1점을 더 얻을 수 있는 거죠.”반하준은 이미 게임 룰의 제정자가 되었다.선생님들은 속으로 도대체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가장인지도 모른다고 투덜댔다.그때 강나현이 입을 열었다.“방석을 추가하지 않아도 되죠?”그녀는 직접 반하준의 몸에 앉고 싶었다.그러나 남자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난 점수가 필요해.”선생님들은 반하준이 점수가 뒤떨어졌기 때문에 자신에게 난도를 높이고 싶은 것으로 생각했다.그때 한 선생님이 말했다.“그럼 반현민 아버님의 말씀대로 방석을 추가하면 1점을 더 얻을 수 있는 거로 해요.”그러자 정이가 바로 물었다.“방석 두 개를 올리면 2점을 추가할 수 있어요?”강민아는 안전성을 고려하여 정이에게 말했다.“우리는 방석을 추가할 필요가 없어. 우리는 이 1, 2점이 부족하지 않잖아.”반하준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났다.“왜 이렇게 오빠 허리에 직접 앉는 것을 좋아하는 거야?”강민아는 웃으며 말했다.“반 대표님 최근에 입주민 단체에 가입했어? 이렇게 오지랖이 넓어? 당신 허리에 앉은 것도 아닌데 입 좀 다물어!”그녀는 오늘 반하준과 민이가 자주 그녀에게 시선을 보내는 것을 발견했는데 무시하고 싶어도 어려웠다.남자는 도도한 표정으로 비웃더니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실눈을 떴다.“나를 욕한 거야?”사랑이 깊으면 미움도 깊다는 말이 있는데 욕은 그녀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생각하며 반하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육성민은 요가 매트에 엎드려 두 팔로 자신의 몸을 받치고 강민아에게 말했다.“방석을 올려. 세 개정도 올려도 돼. 내가 균형 잘 잡을게.”
그는 절대 육성민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토할 것 같아!”민이는 강나현에게 안겨 있었다. 하지만 강나현이 민이를 안고 있는 모습은 강민아가 정이을 안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았다.민이는 오르락내리락하는 흔들림 속에서 현기증을 느꼈다.그는 강나현의 품에 안겨 고개를 기웃하더니 곧 ‘웩’하며 토했다.“아!”아이는 고개를 숙여 강나현의 허벅지에 뱉었다.강나현은 비명을 지르며 직접 반하준의 등에서 뛰어내리고 급히 민이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자신의 바지에 민이의 구토물이 묻은 것을 보았다.그녀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너 왜 내 몸에 토했어!”반하준은 요가 매트에 두 손을 받치고 있었는데 동작이 뻣뻣해지더니 표정이 한껏 어두워졌다.그도 강나현을 향해 소리치고 너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소리치고 싶었다.심판 선생님은 손을 들어 선포했다.“강윤정 어린이 가족이 1등 했습니다!”반하준은 매트 위에 앉았다. 그는 조금 창백해 보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그는 가쁜 호흡을 억지로 눌렀지만 여전히 가슴의 기복을 억제할 수 없었다.육성민이 천천히 동작을 멈추자 강민아는 정이를 안고 육성민의 등에서 내려왔다.“큰 삼촌! 정말 대단해요!”육성민은 몸을 똑바로 일으키고 손바닥의 먼지를 가볍게 몇 번 털었다.강민아가 물었다.“힘들지 않아?”육성민은 고개를 저었다.“안 힘들어.”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강민아에게 말했다.“나는 너와 정이를 업고 한 손으로 할 수도 있어.”다만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이 너무 나대 보인다고 생각했다.육성민은 점잖은 모습을 유지하는 데 습관이 된 사람이었다.선생님은 민이와 정이에게 번호표를 수여했고 정이는 13점을 받았다.반하준은 팔굽혀펴기 경기 2위로 5점을 받았지만 민이는 통을 잃어 3점을 감점당했다. 방석 한 장을 보태도 민이는 결국 3점에 그쳤다.민이는 자신이 여전히 꼴찌인 것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는 작은 손을 흔들며 불쾌하게 소리 질렀다.“예전에는 엄
민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그럼 어떡해요? 우리 굶어 죽을 거 아니에요?”강나현은 얼른 말했다.“민이야,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야. 우리는 간식을 가져왔으니 간식을 먹자.”그들은 아예 포인트로 점심의 식자재를 바꾸지 않았다. 강나현은 민이를 데리고 간식을 먹었다.민이는 치즈 감자 볼 포장 봉투를 열었는데 이런 간식은 평소 강민아가 대여섯 알만 먹을 수 있도록 했다.그러나 지금 그는 각종 과자를 야금야금 먹을 수 있는데 강민아는 전혀 그를 간섭할 수 없었다.그리고 강나현도 이런 걸 좋아해서 두 사람은 소리까지 내며 간식을 먹었다.그들이 간식으로 허기를 채울 때 맛있는 향기가 풍겨왔다.다른 학부모들은 밥을 하기 시작했다.일부 부모들은 반하준과 친하게 지내려는 의도로 반하준을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밥을 먹으려 했지만 반하준이 전부 거절당하였다.그는 당연히 그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갚아야 하므로 그는 다른 속셈이 있는 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와!”“와!”민이는 다른 어린이들이 연신 뱉는 탄성에 매료되었다.그는 즉시 일어나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는데 적지 않은 어린이들이 정이과 함께 서서 육성민의 솥을 보고 있었다.불길이 1m 남짓 치솟자 어린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흥분했다.그들은 포인트가 가장 많았기에 교환한 식자재도 가장 많았다.육성민은 해야 할 요리가 비교적 많았다. 그는 먼저 시럽을 좀 끓여 딸기를 장미꽃 모양으로 자른 다음 시럽을 뿌려 얼음 사탕 딸기를 만들었다.딸기는 새빨간 장미처럼 설탕물 속에서 응고되었다.육성민은 정이에게 딸기 빙탕후루를 주며 구경하는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다.강민아는 육성민이 밥을 지을 기회를 빌려 솜씨를 크게 발휘하련다는 것을 알아챘다.이렇게 떠벌리는 것은 그가 유지해 혼 점잖은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요리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강민아는 육성민이 준비한 분량이 매우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많은 요리면
“엄마, 저도 정이 삼촌이 해 주신 밥을 먹고 싶어요!”반연주는 작은 소리로 애원했다.“안돼!”반진경은 삶은 야채와 냉채 한 접시를 반연주 앞에 놓았다.반연주는 원래 그녀가 특별히 키운 채식주의 어린이였다. 딸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게 하려고 반연주의 식사량을 엄격히 통제하였다.정이는 야채 볶음과 향긋한 두부조림을 한 그릇을 들고 걸어왔다.“연주야, 이거 너에게 줄게.”그러고 나서 정이는 반진경에게 말했다. “이것은 채식이에요. 고기가 조금도 없어요.”반진경은 마음이 놓이지 않자 젓가락을 들고 연화백과 두부를 헤집으며 관찰했다.“야채는 기름에 볶아 건강하지 않아. 두부조림에 넣은 장도 너를 살찌게 할 거야!”이 말을 들은 장기명이 한마디 했다.“연주가 조금만 먹게 하자.”그는 반진경이 매일 반연주에게 물에 브로콜리를 삶아주는 것을 보았는데 이제 더 보면 토할 것 같았다.반진경은 물 한 그릇을 가지고 야채 볶음과 두부 졸임을 몇 번 씻은 후에야 반연주에게 먹였다.몇몇 부잣집 부인들은 자기 아이가 정이와 함께 앉아 그렇게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주동적으로 와서 강민아와 친해졌다.“민아 씨, 이건 내가 최근에 연 가게 명함이에요. 정이를 데리고 자주 구경하러 와요. 공짜로 드릴게요.”또 다른 명문가 사모님도 비집고 다가왔다.“정이 엄마, 정이 엄마는 이제 유명 인사예요. 평소에 행사에 참석하려면 보석 장신구를 많이 사용할 건데 우리 집은 최근에 초청정 보석이 새로 도착했어요. 시간이 있으면 보러 와요. 디자인, 가공비는 모두 면제해 줄게요.”강민아는 명함을 여러 장 받았다. 사모님들은 그러고 나서 그녀를 둘러싸고 어떻게 자기 집 아이를 정이처럼 잘 먹게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민이는 정이의 친구들이 일렬로 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았는데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매운 막대 과자가 맛없다고 느껴졌다.하지만 이것은 그의 궁상맞은 큰외삼촌이 만든 음식이라는 생각에 민이는 별거 아니라고 여겼다.그의 억지스러운 양부모는 모두 가난한 사람
강민아가 감격의 눈빛을 짓자 장기명의 마음은 깃털처럼 설렜다.“부신 그룹 CTO 자리를 거절하고 옴 테크에 가서 일반직으로 일하겠다고? 강민아, 너 바보 아니야?”강민아는 고개를 돌려 갑자기 그녀의 뒤에 나타난 남자를 보았다.그녀는 노골적으로 반하준에가 차가운 눈을 던졌다.“반 대표님, 당신 죽은 사람이야?”강민아가 그에게 물었다.“왜 유령처럼 늘 내 뒤를 따라 다녀?”순식간에 들켜버린 그의 태도는 오히려 더 강경해졌다.“그냥 우연히 지나가던 길이었으니 착각하지 마. 내가 미리 말하지만 설령 네가 강승 테크를 가지고 옴에게 기밀 유지 계약을 체결한다고 하더라도 옴은 너를 핵심층에 포함하지 않을 거야. 외자회사는 결코 우리나라 사람을 믿지 않거든. 그 사람들은 우리끼리 서로 싸우는 것을 더 좋아해. 서로 물고 뜯는 모습 말이야.”강민아가 장기명에게 물었다.“옴 테크가 그래요?”장기명은 반하준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지만 또 강민아가 옴 테크에 입사하기를 바랐다.“옴 테크의 임원은 모두 깊은 문화 바탕을 가진 자질 높은 인재예요. 그분들은 다가가기 어렵지 않은데 우리에게 매우 우호적이에요. 저는 옴 테크의 임원과 스스럼없이 지내곤 해요.”보아하니 장기명은 옴 테크의 임원을 한두 명 알 고 있는 게 아닌 듯했다. 강민아는 장기명을 주시하며 그가 어딘지 이상하다고 느꼈다.장기명은 반하준을 위로했다.“반 대표님, 어쨌거나 두 사람은 이혼했잖아요. 민아 씨는 부신 그룹에 가서 당신과 함께 일하지 않을 거예요. 좀 멀리 보세요.”반하준의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 같았다. 그가 장기명의 위로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그는 장기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깔보기까지 했다. 자신의 성씨조차도 포기할 수 있는 남자라니, 반진경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따귀를 때릴 수 있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반진경에게 밟힐 수 있는 그런 남자이니 말이다.장기명 같은 사람은 반하준의 눈에 남자라고 할 자격이 전혀 없다.그러나 강민아는 장기명 같은 사람과 한편이
반석현을 데리고 온 선생님이 강민아를 향해 말했다.“반석현 어린이의 학적은 줄곧 우리 승덕에 있었어요. 그동안 심리치료 수업에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오늘 야외활동에 참여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동의하더라고요. 뜻밖에도 반석현 어린이는 강민아 씨를 참 좋아하네요.”정이도 다가와 반석현에 인사를 건넸다.반석현을 만나기만 하면 정이는 마치 말문이 열린 것처럼 자신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했다.반석현은 정이로부터 그녀와 강민아가 또 일 년에 한번 열리는 가족 활동에 참가하러 가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이번 가족 활동은 이전과 달랐다. 정이의 부모님은 이혼하고 정이의 어머니만이 그녀와 함께 친자 활동에 참가했다.정이는 반석현에게 요리를 잘하는 삼촌을 이번 활동에 초대했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삼촌이 경기 규칙을 읽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반석현은 주동적으로 정이의 손을 잡고 그가 늦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있으니 그가 많은 걸 해결해 줄 수 있다.선생님은 반석현이 정이와 손을 잡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반석현은 줄곧 사람과 접촉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매일 그와 가장 많이 접촉하는 사람은 정신과 의사였다. 반석현을 만지려 할 때마다 그는 즉시 피했다.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민아 씨, 반석현 어린이를 부탁드릴게요. 석현이도 밖에서 즐거운 오후를 보낼 수 있기를 바라요.”같은 시각, 다른 곳에서는 민이가 고개를 저으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전 쟤 엄마가 누군지 몰라요.”민이는 반석현이 정이와 손을 잡고 강민아의 곁을 따라다니는 것을 보며 마치 그들이야말로 한 가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민이는 마음이 불편했다. 마치 자신에게 속해 있던 뭔가가 반석현에 빼앗긴 것 같았다.강나현은 다리를 꼬고 감자 칩을 먹으면서 말했다.“반석현 어머니의 신분이 껄끄러워서 수석 연구원께서 모든 사람에게 아이의 어머니의 신분을 숨긴 거지.”여기까지 말하던 강나현은 민이를 바라보았다.“다행히 애가 벙어리야. 정상적인 아이였다면 틀림없이
여기까지 말하고 난 강나현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애석하게도 반용화가 반석현을 반씨 가문에서 키웠어. 반석현이 반씨 가문에 하루라도 머무는 날이면 너는 반씨 가문의 유일한 막내 도련님이 아니야.”강나현이 이렇게 말하자 민이도 그의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가 반석현에 관한 관심이 확실히 좀 더 많았음을 떠올렸다.그의 많은 개인 레슨에 관해 할머니는 정이가 함께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그러나 할머니는 반석현이 그와 함께 그의 수업을 받는 것에 동의하셨다.벙어리와 함께 수업을 받는 것은 그야말로 그에 대한 모욕이다.민이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조그마한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저는 반석현이 싫어요!”...점심이 끝난 후에 선생님은 새로운 임무를 배정하셨다.아빠들은 남아서 텐트를 치고, 엄마는 어린이를 데리고 작은 숲에 가서 각양각색의 버섯과 보물 금화를 찾아야 한다.물론 그 이른바 버섯은 모두 이곳 직원이 사전에 잔디밭과 수풀에 넣은 것이다.어린이들은 출발점에서 먼저 각양각색의 버섯 양식을 적어야 한다. 그들은 카드의 도안에 따라 작은 숲에서 버섯 종류를 많이 찾을수록 점수도 높아진다.그동안 선생님들이 미리 숨겨둔 금화도 찾을 수 있다.그 금화들은 포인트를 바꿀 수 있고 많은 상품도 바꿀 수 있다.정이와 다른 어린이들은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버섯의 이름과 양식을 외우고 있었다.“노루궁뎅이버섯, 건 버섯, 우산 버섯...”정이는 눈을 감고 다시 한번 기억했다.“노루 뭐지? 노루 고기 맛있는데.”그녀는 노루 고기볶음의 맛만 떠올라 자신이 방금 어떤 버섯의 이름을 외웠는지 완전히 잊어버렸다.“석현아, 버섯 이름 몇 개 적었어?”정이는 반석현이 두 손으로 숫자를 보여주는 것을 보고 순식간에 숨을 몰아쉬었다.“64개? 다 외웠어?!”반석현은 정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정이가 강민아에게 말했다.“엄마, 석현이랑 함께 버섯을 찾아요. 저와 큰삼촌은 캠프에 남아서 텐트를 칠게요.”정이는 버섯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몸을 쓰는 노동
심은호가 말했다. “셋 셀 테니까 알아서 결정해. 안 그러면 아무도 해독제를 못 받아.”그는 웃으며 반하준에게 말했다.“삼.”반하준의 이마엔 푸른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심은호는 순전히 그들을 놀리려고 해독제를 꺼낸 것이었다.“강나현한테 줘!”반하준은 강나현이 또다시 약기운을 빌미로 무모하게 자기 몸에 손대지 않도록 차갑게 말했다.이내 강나현이 소리를 질렀다.“하준 씨한테 줘!”반하준은 신경이 예민하게 지끈거리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왜 나한테 먹여? 멀쩡한 정신으로 너한테 당하는 꼴을 보고만 있으라고?”반하준이 거칠게 쏘아붙이자 강나현은 어깨가 살짝 떨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반하준은 욕설을 퍼붓고 난 뒤 서둘러 심은호를 다그쳤다.“나와 강나현을 여기 가둔 주범이 바로 너지? 민아 비서를 통해 민아 이름을 대고 날 여기로 끌어들인 것도 너야.”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그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반하준의 뺨에는 굵직한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그는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심하게 헐떡이며 심은호를 향해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심은호는 해독제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강나현은 곧바로 달려와 해독제를 집어 들고 다시 반하준에게 돌진했다.“하준 씨, 해독제 먹어!”어쨌든 반하준의 두 손은 이미 수갑이 채워진 상태였고, 그만 멀쩡한 상태로 둘이 일을 치르면 나중에 이성을 잃었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을 거다.강나현이 반하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심은호가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반하준이 강나현을 뿌리치고 가려는데 그녀가 앞을 가로막았다.“하준 씨, 빨리 약 먹어!”“꺼져, 나 나갈 거야!”소리를 지르며 강나현은 반하준의 입에 약을 밀어 넣었다.강나현은 곧바로 반하준의 입을 막았고 반하준은 작은 알약이 입에서 녹는 것을 느꼈다.눈을 크게 뜬 반하준의 목구멍에서 억눌린 분노의 소리가 흘러나왔다.그렇게 그는 심은호가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 걸 보고만 있었다.강나현은 두 손으로 그의 목
강나현이 일어나 그에게 다가오자 반하준은 무언가를 감지하고 급히 돌아서서 강나현을 경계하며 마주 봤다.“그럴 필요 없어.”반하준은 강나현에 대한 경계심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딱딱하고 차갑게 말했다.하지만 강나현은 반하준이 왜 자신을 거절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화 꺼내서 구해줄 사람 부르면 되잖아!”반하준은 강나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강나현의 눈빛 속 욕망을 진작 꿰뚫어 보고 있었다.강나현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그녀는 지금 약기운을 빌미로 그를 산 채로 잡아먹으려는 속셈이다.휴대폰이 바지 주머니에 있는데 강나현이 주머니에 손을 대는 순간 또 어떤 선 넘는 행동을 할지 몰랐다.반하준은 등을 문에 딱 부이고 말했다.“멈춰! 움직이지 마!”그는 강나현을 위협했다.“나한테서 떨어져!”“하준 씨, 못 참을까 봐 걱정돼?”강나현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차마 감추지 못하며 반하준을 달랬다.“내가 하준 씨 다치게 할까 봐 걱정 안 해도 돼. 계속 이러면 몸이 망가질 거야.”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몸 안에서 비명을 지르던 세포들이 강나현을 통제했고, 그녀는 조바심을 내며 반하준을 향해 돌진했다.“내가 휴대폰 꺼내주겠다는데 왜 이렇게 날 무서워해?”그때 반하준의 등 뒤에서 달칵 소리가 들리더니 고개를 돌리자 방 문이 열렸다.반하준은 눈을 크게 뜨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밖에서 들어오는 밝은 빛이 그의 눈에는 희망처럼 보였다.누군가 그를 구하러 온 건가?방 문이 열리고 옷을 갈아입은 심은호가 밖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심은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하준을 훑어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셔츠부터 바지까지 모두 엉망이 된 채 흐트러진 반하준의 모습은 처음 본다.반하준은 숨을 헐떡이며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심은호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그는 지금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심은호에게 보여도 전혀 상관이 없었고 그저 그를 제압한 뒤 도망치고 싶었다.심은호는 그의
강민아의 이름을 듣자마자 반하준은 눈을 크게 떴다.그 이름이 무수히 많은 작은 바늘로 뒤바뀌어 심장을 쿡쿡 쑤시며 온몸에 통증을 느끼게 했다.강나현은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쌌다.“하준 씨, 난 당신을 구하고 싶어. 당신도 날 구해줘!”반하준은 발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강나현이 그의 몸을 덮치고 있어 그녀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꺼져!”그는 강나현의 얼굴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걸 보며 고함을 질렀다.그가 홱 몸을 돌리자 강나현과 함께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아악!”강나현은 고통의 비명을 질렀고, 반하준은 도망치듯 몸을 웅크리고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났다.강나현은 바닥에 쓰러져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반하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너무 아파!”반하준은 몸에 천 조각만 남은 강나현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문득 심장이 세차게 쿵쾅거리며 가슴을 뚫고 피부 밖으로 튀어나올 듯 심하게 요동쳤다.반하준의 눈앞에 헛것이 보였다. 강나현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향해 울부짖을 때 그녀의 얼굴이 강민아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순식간에 반하준의 몸속에서 난폭한 세포가 꿈틀거리고 피가 들끓으며 몸이 주체할 수 없이 심하게 떨렸다.“하준 씨!”강나현은 손과 발을 동원해 반하준을 향해 기어갔다.반하준은 제자리에 굳어진 채 눈가가 선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콧구멍에서는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입술 위로 미세한 땀방울이 맺혔다.강나현은 그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바닥에 엎드린 채 손을 뻗어 그의 발목을 잡았다.이윽고 반하준의 동공이 훅 움츠러들며 단번에 시야에서 강민아의 흐릿한 얼굴이 사라졌다.강나현의 얼굴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설레던 마음이 사라지고 피가 차갑게 식으며 발로 강나현의 손을 뿌리쳤다.“하준 씨?”강나현의 의아한 눈빛에는 속상함이 내비쳤다.“난 너한테 관심 없으니까 역겹게 굴지 마!”그는 차갑게 이 말을 뱉어내고는 다시 방 문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섰다.강나현은 반하준이 문을 발로 차는 모습을 그저 바
반하준은 크게 헐떡이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굵직한 땀방울이 아치형 눈썹을 따라 떨어지며 눈가에 고여 있었다.땀으로 인해 시야가 흐려졌고 창문 유리는 흔들리면서도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 순간 강나현이 뒤에서 다가와 그를 껴안더니 두 손으로 그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댔다.“하준 씨... 더는 못 참겠어...”그녀가 손을 뻗어 반하준의 옷을 벗기려 하자 반하준은 몸을 비틀며 강나현을 떨쳐내려고 했다.“놔!”그가 소리를 질렀지만 손이 등 뒤로 묶여 있어 강나현은 쉽게 그의 재킷을 벗겨냈다.양복 재킷은 반하준의 손목에 걸렸고, 여자는 그의 앞에서 뱀처럼 몸을 배배 꼬며 두 팔을 그의 목에 걸었다.강나현의 몸엔 남아있는 옷이 별로 없었고 그녀는 발끝으로 서서 남자의 턱에 닿으려 했다.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반하준의 속이 뒤집히며 말할 수 없는 메스꺼움이 밀려왔다.그는 급히 뒤로 물러서며 여자에게서 떨어지려 했고 강나현은 미꾸라지처럼 그에게 매달린 채 진득하게 붙어있었다.“강나현, 정신 차려!”반하준이 소리쳤지만 강나현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흐릿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하준 씨... 나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온몸이 너무 이상해... 내 몸을 주체할 수가 없어...”그녀는 말하며 반하준의 얼굴로 다가가 키스하려 했다.눈을 크게 뜬 반하준은 공포에 질린 채 머리카락 한 올마저 강나현에 대한 거부감을 내비쳤다.그 순간 종아리가 소파에 부딪히며 반하준은 균형을 잃고 온몸이 뒤로 넘어졌다.강나현은 얼굴을 찡그린 채 그의 몸을 짓누르며 말했다.“하준 씨, 나 힘들어! 하준 씨도 힘들지? 나 좀 살려줘. 이러다간 우리 둘 다 미쳐버릴 거야!”“나한테 손대지 마!”반하준은 몸을 비틀었다.“강나현, 참아! 빌어먹을, 나한테서 떨어져!”강나현은 반하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하준 씨, 우린 약에 취했고 해결하지 않으면 괴롭고 고통스럽기만 해. 약효가 절정에 달하면 우리 둘은 미친개가 될 거야. 그때 가서 이성을 잃고 서로를
“나 건드리지 마!”반하준이 소리를 질렀지만 강나현은 더욱 거세게 그의 위로 뛰어올라 그를 제압하려 했다.“난 하준 씨 도와주려는 거야. 나도 벗었는데 왜 안 벗어?”“하지 마, 놓으라고!”그가 저항하면 할수록 강나현은 더욱 흥분했다.“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내가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강나현은 반하준의 정장 단추를 풀려고 했지만 풀리지 않아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아이참, 움직이지 마. 자꾸 몸을 비틀면 나도 정말 무슨 짓할지 몰라?”반하준은 소름이 끼치고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그는 두 다리를 쭉 뻗어 강나현을 소파에서 차버렸다.“아악!”강나현은 바닥에 쓰러지며 비참한 비명을 질렀다.반하준은 소파에 누운 채 바닥에 굴러떨어진 강나현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미쳤어?”자신을 방에 가둔 게 강나현의 짓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하지만 생각해 보면 강나현은 그 정도로 똑똑하지 않았다.“하준 씨, 왜 날 발로 차? 날 친구로 생각하긴 해?”강나현이 씩씩거렸지만 반하준은 무시한 채 소파에서 버둥거리며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등을 돌리고 문에 손을 뻗었지만 방 문은 이미 잠겨 있었다.“젠장!”반하준이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자신과 강나현을 함께 가두는 데 앞장선 사람이 강민아라는 생각에 더욱 화가 났다.창가로 걸어갔지만 창문도 잠겨 있었다.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도마 위의 물고기가 되어 도살당할 수는 없었기에 어떻게든 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반하준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디퓨저 기계에 시선이 멈췄다.그는 숨을 참으며 기계로 걸어가 다시 한번 등을 돌려 이어진 전선을 뽑고는 기계를 집어 들어 창문 유리에 던졌다.창문만 깨지면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테니 그도, 강나현도 이성을 잃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의 손은 수갑에 의해 등 뒤로 꽉 묶여 있었고, 기계를 잡고 있어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비를 맞은 듯 반하준의 얼굴이 뜨거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디퓨저 기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눈을 크게 뜬 강나현은 반하준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 물었다.“하준 씨가 왜 여기 있어?”반하준은 굳어진 얼굴로 침착하려고 애쓰며 조목조목 분석했다.“강민아 비서는 강민아가 따로 만나고 싶어 한다며 나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강나현이 등 뒤로 향한 그의 손을 보았다.“하준 씨 손은... 왜 수갑이 채워져 있어? 강민아가 그러라고 시켰어?”반하준의 얼굴이 검게 탄 냄비처럼 어둡게 변했다. 짜증이 난 그는 멍청한 자신을 욕할 수밖에 없었다.대체 어쩌다 강민아가 그런 걸 즐긴다고 생각했는지 더 분석하고 싶지도 않았다.강민아에게 한 방 먹은 거다.그 생각에 반하준은 마음이 복잡하고 오장육부에 불길이 타올랐다.주위를 둘러보며 열쇠를 찾던 그가 강나현을 재촉했다.“열쇠 좀 찾아봐!”“그래.”강나현도 수갑을 풀 열쇠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머릿속으론 지금 반하준과 단둘이 방에 갇혀 있고, 반하준의 손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약기운을 빌미로 그에게 마음대로 들이댈 생각을 하고 있었다.생각만 해도 강나현은 온몸에 힘이 풀려 허리를 움직이면서 반하준을 향해 등을 돌렸다.반하준도 약에 취해 충동을 느끼기 쉬운 상태라면 충분히 남자를 유혹할 수 있을 것 같았다.강나현은 열쇠를 찾는 척하면서 말했다.“강민아가 우리 둘을 함정에 빠뜨렸어.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리 둘이 무슨 일이라도 생기길 바라는 거야? 난 친동생인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모든 책임을 강민아에게 돌리고 그녀와 반하준이 밤을 보내면 반하준이 원하지 않아도 그녀가 아닌 강민아를 탓할 거다.애초에 심은호에게 하려던 짓이었는데 강민아가 미리 그들의 계획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강민아는 이참에 반하준과 강나현을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밀어뜨릴 계획이었다.그녀에게 조롱당했다는 수치심에 강나현은 순식간에 분노가 치솟았다.하지만 곧 반하준과 벌어질 일을 생각하지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애써 드러나는 표정을 감추었다.줄곧 반하준과
반하준은 고개를 들어 방 문 쪽을 바라보았다.시야의 가장자리가 뿌옇게 뒤덮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눈을 크게 깜빡이자 들어온 여자가 이미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하준 씨.”강나현의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온몸이 그의 위로 쓰러졌다.반하준은 그녀를 밀어내려 했지만 손이 뒤로 묶여 움직일 수 없어 몸을 뒤로 빼기만 했다.강나현은 온몸에 뼈가 사라진 듯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반하준의 몸을 따라 아래로 떨어졌다.“강나현, 뭐 하는 거야!”반하준이 고함을 지르자 강나현이 흐릿한 눈동자로 가슴을 움켜쥐더니 고개를 들어 뜨거운 숨을 뱉으며 반하준을 바라보았다.“나 너무 더워. 온몸이 간지러워.”반하준의 눈가엔 싸늘한 감정만 담겨 있었다.“쓸데없는 걸 먹은 건 아니지?”강나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그냥 술을 조금 마셨을 뿐인데...”반하준이 불쑥 물었다.“술을 누가 줬는데?”“파티에 있던 웨이터가.”강나현이 고개를 들고 코를 훌쩍거렸다.“이 방 냄새 좋다. 향기로워.”강나현의 말을 듣는 순간 반하준은 온몸에 얼음이 섞인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느낌이었다.그는 숨을 꾹 참다가 다시 들이쉬는 순간 강나현이 말한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반하준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젠장!’그는 줄곧 방 안에 있었고 향기가 서서히 퍼졌기에 방금 들어온 강나현처럼 공기 중에 느껴지는 향기를 감지할 수가 없었다.반하준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잔에 향했다.그도 조금 전 술을 마셨지만 나중에 두 손이 묶이면서 더 이상 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만약 수갑이 채워지지 않았고 이 방에서 갈증을 느꼈다면 그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저 술을 찾았을 거다.반하준은 어렴풋이 직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말도 안 된다며 부정했다.그는 강나현에게 물었다.“누가 널 들여보냈어?”강나현은 볼이 붉게 물든 채 손을 들어 화끈거리는 이마를 만지작거렸다.“응? 기억이 안 나. 하준 씨, 나 취한 것 같아.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강나현이 말하며 다시 반하준에
누군가 다가와 반하준의 귀에 속삭였다. “반 대표님, 부사장님이 단둘이 얘기하고 싶다고 하십니다.”그에게 말을 전하러 온 사람은 강민아 비서였다.멈칫하던 반하준이 잠시 주위를 둘러봤지만 강민아는 보이지 않았다.“민아 어디 있어요?”비서가 말했다.“부사장께서는 바깥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세요.”반하준은 비서를 따라나섰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에게 말도 안 하고 눈길도 안 줬는데 이제 와서 단둘이 만난다고?그 생각에 반하준은 숨이 가빠졌다.참으로 방탕한 여자다.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려 한다니! 심은호 앞에서는 그를 무시하고 또 심은호의 눈을 피해 그와 만나려 하고 있다.남녀관계에서 강민아가 하는 행동은 반하준의 예상을 완전히 넘어섰다.‘방탕하게 살고 싶어서 이혼하자고 한 건가?’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심은호와 윤세현을 양옆에 둔 것도 모자라는가.결혼 생활 도중 그녀가 바람을 피운 적은 없는지 궁금할 정도다.그렇게 생각하며 반하준은 점점 더 짜증이 밀려왔다. 가슴이 무거운 돌덩이에 짓눌린 듯 심장이 아파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직원이 방 문을 열며 안으로 안내했다.방 문 앞에 서 있던 반하준은 지금 강민아가 자존심을 버리고 용서를 빈다면 심은호, 윤세현과 깨끗하게 헤어지게 할 거라 다짐했다.물론 강민아가 기꺼이 그의 곁으로 돌아와 속죄해야만 용서할 거다.“반 대표님, 안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사람이 정신이 팔렸을 때 누군가 옆에서 뭐라고 시키면 생각 없이 따르게 된다.방으로 들어간 반하준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방에 아무도 없었다.‘조금 전 강민아 비서가 뭐라고 했지? 기다리라고?’그를 여기로 불러놓고 기다리게 한다니.강민아가 일부러 못되게 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걸까?하지만 오늘은 강승이 정식으로 인수된 날이라 강민아는 분명 할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을 거다.먼저 따로 만나자고 했으니 잠시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반하준은
“아니야!”반하준은 분노에 미칠 지경이다. 심은호가 어떻게 감히 이런 식으로 그를 모욕할 수 있나.‘이런 악랄한 놈!’“민아야, 날 믿어줘.”반하준은 살면서 이렇듯 비굴하게 누군가에게 애원해 본 적이 없었다.처음으로 막다른 궁지에 내몰리자 그는 고립된 채 가만히 서 있었다.강민아 뒤에 서 있던 재벌가 거물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반하준이 다쳤나? 멀쩡해 보이는데. 오히려 심은호가 엉망진창이네.”“누가 봐도 심은호가 괴롭힘을 당했잖아.”“반하준이 심은호 저격한 게 하루 이틀이야? 전에 심은호를 주먹으로 때린 것도 내가 봤어.”“전에 화장실에서 핸드워시를 심은호에게 뿌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도 눈에 거슬려서 와인을 쏟았네.”“강민아를 빼앗아 가려고? 방에 가서 단둘이 상처를 보여주기는 무슨, 누가 봐도 꼬드기는 거지!”“난 심은호 편이야. 심은호는 당당한 남자 친구인데 반하준은 전남편이잖아. 내연남이라도 되고 싶은 건가?”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반하준의 얼굴이 먹물처럼 어두워졌다.“내연남?” 반하준은 억울한 듯 소리를 질렀다.“당신들 미쳤어? 내가 어떻게 내연남이야!”심은호는 웃으며 말했다.“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내연남이긴 하지.”반하준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그는 강민아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 그녀를 돌아보았다.하지만 강민아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심은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살펴보았다.“어디 다쳤어요?”“여기요.”심은호가 얼굴을 가리키자 반하준의 동공이 커지면서 소리를 질렀다.“안 때렸어!”강민아는 손을 뻗어 부드럽고 섬세한 손끝으로 심은호의 뺨을 어루만졌다.심은호는 사람 좋아하는 사모예드처럼 고개를 갸웃한 채 강민아의 손길을 느끼듯 천사 같은 미소를 지었다.강민아는 그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반하준은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강민아, 나 진짜 안 때렸어!”강민아는 심은호에게 말했다.“가서 옷 갈아입어요. 복도로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