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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Author: 복덩이
“쓸모없는 건 어딜 가나 똑같지.”

“강나현의 실력은 아마추어 수준에도 못 미쳐요. 우리가 최고급 레이스카를 개조해 줬는데 액셀을 끝까지 밟지도 못하네요.”

“난 먼저 짐 싸서 돌아갈 거예요. 강나현과 같이 망신당하고 싶지 않네요.”

트랙에서 강나현과 다른 차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고 강나현의 기대와 다르게 앞쪽에서 실수가 일어나진 않았다.

왜 그들이 전부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을까.

어느 레이서도 속도를 줄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강나현은 조금 당황했다. 다른 차들이 실수하지 않으면 꼴찌는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의 두 눈에 점점 더 사나운 기운이 퍼져갔다. 절대 이대로 꼴찌를 할 수는 없다.

아직 남아있는 비장의 카드가 있으니까.

“루나 파이팅! 루나 파이팅!”

VIP 룸에서 민이는 드림의 레이싱카 모형을 손에 들고 유리창 앞에 서서 신나게 방방 뛰었다.

자리에 앉은 연진숙은 레이싱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귀한 손자가 입이 닳도록 말하던 루나를 보려고 왔다.

하지만 연진숙은 루나가 반씨 가문 저택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알기로 루나는 5년 전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 은퇴했다.

루나가 5년 만에 복귀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집안에서 그녀가 다시 일을 시작하고 경력을 쌓는 것에 동의했거나, 남편과 문제가 생겨서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건 아닌지 추측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연진숙의 눈에 여자가 밖에서 돈을 번다는 건 남편이 쓰레기라는 의미였다.

연진숙은 어떻게 하면 귀한 손자가 루나를 새엄마로 삼는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을지 고민하며 민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루나 같은 여자가 부신 그룹 도련님의 눈에 들어 민이의 새엄마가 될 기회가 있다는 걸 알면 어떻게든 반하준을 꼬드길 거라고 생각했다.

경기가 끝나면 루나를 찾아가 제대로 얘기해 볼 생각이다.

“민아, 물 좀 마셔.”

“민아, 포도 먹을래? 이리 와, 내가 먹여줄게.”

“민아, 딸기 좀 먹어. 딸기 맛있네.”

세 명의 재벌가 아가씨들은 물컵과 과일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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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a 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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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반하준 강나현 쓰레기커플 어울린다 다음편이 시급한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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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35화

    강나현은 드림의 보닛이 올라간 것을 알아차리고는 의기양양하게 입술을 말아 올렸다.이제 드림은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사고가 벌어져 차나 사람이나 무사하지 못할 거다.기술자가 깃발을 흔들며 강민아에게 피트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레이싱 경기에서는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는데 드림의 보닛을 조정해도 루나는 경기에서 최고 기록을 낼 수 있었다.하지만 드림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피트 앞을 지나쳐 속도를 높였다.“정비하러 가지 않았어!”“저렇게 됐는데 루나는 경기를 이어간다고?”기술자조차 입을 크게 벌리고 여전히 보닛이 들린 채 전속력으로 달리는 드림을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세상에!”서경의 도련님들이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몇몇은 망원경을 들고 대형 스크린을 조준했다.강기성은 그들 사이에 앉아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드림이 속도를 늦출 생각이 없음을 확인한 강기성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그의 옆에 앉은 김예나는 레이싱 경기를 처음 보는데도 보닛이 올라가고 운전자의 시야가 가려진 상황에서 차가 언제든 트랙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김예나는 입을 가리고 중얼거렸다.“왜 레이서가 차를 멈추지 않는 거죠?”강기성은 2초 동안 대형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스릴 넘치는 장면에 피가 끓어오르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국내 최고 여성 레이서에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까.”윤세현은 손을 뻗어 눈앞의 난간을 잡았다.과거 서경의 레이스를 준비하는 동안 강민아는 이 트랙에서 한 바퀴, 또 한 바퀴를 달리며 하루에 8, 9시간씩 연습하고 타이어를 수없이 마모시켰다.이 트랙의 모든 코너와 직선 구간은 강민아의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어 있었기에 5년이 지난 지금도 강민아는 눈을 감고도 이 트랙을 달릴 수 있었다.“말도 안 돼.”연진숙은 콧방귀를 뀌었다. 보닛이 열렸는데도 멈춰서 정비할 생각이 없는 무모한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을 거다.민이는 두 손을 통유리창에 댄 채 반석현과 놀랍도록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아이는 숨 쉬는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36화

    객석에서 강기성은 강성진에게 연락했다.“네, 아버지. 나현이가 졌어요. 네, 꼴찌 했어요. 그것도 앞사람과 격차가 아주 크게.”말하며 강기성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고 전화기 너머로 강성진의 욕설이 들렸다.“걔는 머리에 물만 들어찬 거 아니냐? 망신당할 짓을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이제 서경 전체가 쓸모없는 놈이라는 걸 알겠네.”전화기 반대편에 있던 강성진이 이마를 부여잡고 말했다.“걔가 강씨 가문 망신은 혼자 다 시키는구나!”강기성은 다른 재벌 2세들이 흥분하며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대박, 루나가 얼굴을 공개하기로 한 거야?”“세상에, 신비한 여신 루나가 직접 베일을 벗다니.”그들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몇몇은 망원경을 들고 트랙에 있는 루나를 보거나 휴대폰을 들고 카메라를 확대했다. 일부는 쌍안경으로 트랙에 있는 루나를 가리켰고, 다른 친구들은 휴대폰을 꺼내 휴대폰 렌즈를 가까이 가져갔다.무심코 대형 스크린을 올려다본 강기성은 그대로 굳어버리며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졌다.툭.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강민아는 한 손에 헬멧을 들고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며 돌아설 때마다 큰 환호를 불러일으켰다.“루나가 이렇게 어렸어?”“엇, 낯이 익은데? 왜 어디서 본 것 같지?”“강민아다! 얼마 전 ALI 수학 경시대회 금상 수상했던 천재 주부. 세상에, 그 여자가 루나였어!”“수학 천재 강민아? 그 사람이 루나라고? 세상에, 강민아는 신이야.”루나가 강민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많은 관중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우와, 엄마다!”육성민, 윤세현과 함께 첫 번째 줄에 앉아 있던 정이는 대형 스크린에 나타난 강민아를 보자마자 흥분한 나머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난간에 기대어 발끝을 세우더니 잔뜩 들떠서 육성민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엄마가 레이싱도 해요! 너무 대단해요!”“너희 엄마가 국내 최고의 여성 카레이서야!”...“우와!”반석현은 유리 벽에 두 손을 갖다 댄 채 두 눈에는 수천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37화

    “왜... 왜 그 가식적인 여자가 루나야. 으아앙!”민이의 작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을 크게 벌리며 울부짖었다!...털썩.또 다른 VIP 룸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기술자는 결승선에 무사히 도착한 드림을 보자 마치 척추가 몸에서 빠져나간 듯 상반신이 푹 삶은 면처럼 무너졌다.그제야 용기를 내어 고개를 돌리며 뒤에 서서 자신의 생사를 좌우할 심은호를 바라볼 수 있었다.그는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한 채 두 눈에 오로지 강민아만 담았다.심은호의 손은 장인이 정성스럽게 조각한 공예품 같았고 손등에는 흰 피부를 뚫고 나올 듯한 핏줄이 부풀어져 있었다.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유리에 닿아 반복해서 문질렀다.심은호의 각도에서 보면 저기 멀리 스크린에 있는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입꼬리가 올라가고 살짝 올라간 날카로운 눈매에는 미소가 번졌다.스크린 속 강민아가 무심코 고개를 들자 그녀의 밝고도 당찬 눈빛이 시공간을 가로질러 심은호와 마주하는 듯했다.유리 위에 올려놓은 그의 손이 흠칫 떨리며 꼭 무모한 장난을 치다가 상대에게 들킨 기분이었다.심은호의 심장이 조용히 요동치기 시작했다.입꼬리가 올라가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겁쟁이라 그저 이런 식으로만 마음속 밝은 달을 어루만지는 걸 상상할 뿐이다....강나현은 헬멧을 들고 차에서 내려 무덤덤한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비록 꼴찌를 했지만 어쨌든 아마추어 선수라는 생각에 당당했다.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화제성과 인기를 끌 것이고, 설령 졌다고 해도 당당한 모습으로 마주해야 했다.취재진이 현장에 들어오자 그녀가 앞장서서 다가가는데 그들이 전부 드림 쪽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강나현은 입을 삐죽거렸다. 반하준이 거금을 들여 루나를 그녀의 코치로 데려와 레이싱 라이선스 취득을 도와주려 한다는 생각에 다가가 인사를 건넬 작정이었다.백미러를 슬쩍 보니 메이크업을 완벽하게 해 아이를 낳은 여자와 함께 서 있으면 분위기나 미모로 절대 루나에게 뒤처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38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오늘 저는 드림과 함께 트랙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당당하게 트랙을 누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액셀을 밟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언제 출발해도 늦지 않으니까요.”강나현은 한 손으로 허리를 짚은 채 입을 벙긋하며 눈을 깜빡였다.“네가 어떻게 루나야!”참 웃긴다.강민아는 지금 루나를 사칭하는 걸까?“루나 맞아.”갑자기 무거운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강나현은 소리를 따라 돌아보고 나서야 말한 사람이 반하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는 충격에 휩싸여 혼란스럽기만 했다.“하준 씨도 혹시 이 여자한테 속아서...”반하준의 움켜쥔 두 주먹 손등에서는 핏줄이 튀어나와 있었다. 경기가 끝난 지 몇 분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허탈함에 빠져 있었다.충격의 파도가 그를 덮쳐서 그의 얼굴을 마구 할퀴며 볼품없는 상태로 만들었다.그리고 이젠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강민아가 루나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내가 직접 저 여자가 드림에 올라타 트랙에서 질주하는 걸 봤어. 루나 맞아.”말하는 반하준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주변의 시끄러운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반하준의 말은 청천벽력처럼 강나현의 멍한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그녀는 충격에 휩싸여 무의식적으로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말도 안 돼...”강나현은 여전히 믿지 않으려 했다.“엄마!”정이가 폴짝폴짝 뛰며 강민아에게 달려갔다.“엇!”반석현도 강민아를 향해 달렸다.강민아가 쭈그리고 앉자 반석현과 정이가 딱풀처럼 강민아 품에 쏙 들어갔다.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민이는 온몸이 굳어버린 채 발이 땅에 붙은 듯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웠다.아이는 레이싱 슈트를 입고 있는 강민아를 바라보는 지금도 루나와 강민아를 연관 짓지 못했다.민이는 삐죽거리며 빽 소리를 질렀다.“왜 나한테 거짓말했어요?”강민아가 아이를 돌아보았고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39화

    “애가 대단한 걸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지. 뭐 문제 있어?” 강나현이 민이의 편을 들었다.“더 대단한 엄마를 원하는 게 뭐가 문제야?”강민아는 역겹다는 듯 눈을 흘겼다.“머리에 든 것도 없는 게 어디서 나한테 말을 걸어?”“너!”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강나현은 이미지 때문에 차마 욕설을 내뱉을 수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반하준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반하준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고 속은 차마 드러낼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들끓고 있었다.햇볕은 따가웠지만 코로 들이마시는 공기는 얼음 칼날처럼 반하준의 폐부를 조각내고 있었다.그의 목소리는 차가운 얼음장 같았다.“결국엔 우리한테 잘 보이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정체 공개한 것 아니야?”강민아가 차갑게 웃었다.“난 이제 당신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착각 좀 그만할래?”반하준의 얇은 입술이 굳게 다물어지면서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강민아가 말을 이어갔다.“내가 레이서 신분을 공개한 건 당신들 부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야. 당신들 인정이나 받으려고 ALI 수학 경시대회에 출전한 것도 아니야. 난 이제 반씨 가문 사모님이 아니라 강민아로 살 거야.”기자가 강민아에게 마이크를 내밀며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강민아 씨, 전남편과 아들에게 원한이 깊어 보이는데 왜 반씨 가문에서 7년이나 지내고 지금에서야 나온 겁니까?”강민아의 눈빛이 공허해지며 그녀는 심호흡하고 말했다.“제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아이들이 태어난 후 그녀는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수없이 지켜보고, 활짝 웃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닦아주고, 작은 몸을 껴안아 주었다.목욕을 시키고, 음식을 만들어주고, 이 닦는 법도 끊임없이 가르쳤다.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꼈다.그녀와 아이들이 서로를 사랑한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했다.그녀는 검은 눈동자로 민이를 바라보았다.“전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40화

    민이가 수없이 넘어졌지만 그때마다 강민아가 가장 먼저 달려와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뒤돌아 뒤에 있는 사람이 강나현이라는 것을 확인한 아이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흐느낌이 순식간에 멎어버렸다.강나현은 민이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민아, 슬퍼하지 마. 나랑 같이 오토바이 타고 바람 쐬러 가자. 저 사람들은 무시해.”민이는 코를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나한테 잘해주는 건 현이 형밖에 없어요.”강나현은 미소를 지었다.“내가 네 작은 아빠잖아! 내가 너한테 잘해주지 않으면 누가 잘해주겠어? 가자!”강나현은 민이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가서 민이에게 헬멧을 씌워주고 오토바이를 탔다.강철 짐승 같은 오토바이가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쯤 경찰 몇 명이 강나현을 찾고 있었다.레이싱 슈트로 강나현을 알아본 경찰들은 곧바로 경찰증을 꺼내 들었다.“강나현 씨, 차 세우세요!”강나현이 액셀을 끝까지 밟았고 검은색 대형 오토바이가 주차장 밖으로 돌진했다.“강나현 씨, 어디 가세요!”“강나현 씨!”강나현이 떠나는 것을 본 경찰들은 곧바로 무전기를 눌러 다른 동료들에게 알렸다.“긴급 지원 바랍니다. 안전사고 관련 용의자 여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 중입니다!”“다들 주의하세요. 강변 대로 모든 길목을 막고 가 9898 오토바이를 막으세요.”민이가 가고 기자들은 다시 강민아를 에워쌌다.강민아는 여러 명의 경찰이 경기장에 들어와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반하준이 고개를 돌리니 심은호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소나무처럼 곧게 뻗은 체격에 입고 있던 코트 자락이 거센 바람에 흩날리고, 머리카락이 살짝 휘날리며 얇은 입술에는 거침없고 당당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심은호의 뒤에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재킷으로 손을 가린 기술자 한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기술자 뒤에는 경찰관 두 명이 더 있었다.누가 봐도 재킷에 가려진 것은 수갑이 채워진 기술자의 손이었다.한 형사가 반하준 앞에 다가와 경찰증을 보여주었고, 그의 등장에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41화

    반하준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거만한 눈빛으로 강민아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드림의 수리비는 내가 낼게.”반하준에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일도 아니었다.이내 강민아가 물었다.“다섯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무거운 오토바이를 계속 타는데 걱정도 안 돼?”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넌 무슨 자격으로 내 아들을 걱정해?”강민아가 비웃자 반하준이 덧붙였다.“네가 뭐라고 해서 민이가 도망친 거잖아. 나현이는 위로해 주러 간 거고. 난 나현이 운전 실력 믿어.”이내 그는 말투를 바꿔 한층 싸늘한 어투로 강민아에게 말했다.“그러는 넌 매번 나현이가 사고만 치면 경찰을 부르더라. 꼭 온 세상이 다 알도록 소란을 피워야 속이 시원해?”강민아가 대꾸하려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며 보이지 않는 충격이 온몸을 강타했다.그녀는 순식간에 팔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며 머릿속이 하얘지더니, 귀에서 날카로운 이명이 들려오자 주위 사람들의 걱정 어린 외침도 들리지 않았다.윤세현이 달려와 강민아의 팔을 부축해 자기 품에 기대게 했다.심은호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며 윤세현을 힐끗 쳐다보던 그의 눈가에 다소 서늘한 기색이 담겼다.고개를 돌린 그는 반하준의 표정도 다소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했다.육성민도 강민아 곁으로 다가와 대놓고 걱정하는 모습을 드러냈다.“민아야, 괜찮아?”강민아는 윤세현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는 윤세현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 아까 차 안에 있을 때 과부하가 왔나 봐.”이 순간, 날씨는 화창하고 햇빛은 밝았지만 그녀는 막연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오토바이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민이는 강나현의 허리를 껴안고 입으로 흘러내리는 콧물을 훌쩍거렸다.강나현은 먼저 민이와 함께 반씨 가문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반하준에게 민이가 자신에게 의지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아들을 위해서라도 반하준이 경찰을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그런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42화

    강기성은 다시 전화기를 집어 들고 입꼬리를 올리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아버지, 우리 강씨 가문 체면은 지킬 수 있겠네요. 아버지 딸이 경기에서 1등 해서 사람들 모두가 걔 이름만 외치고 있거든요.”그러자 강성진이 물었다.“방금 나현이가 꼴찌 했다며?”강기성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다른 딸은 1등 했네요.”“뭐라고? 나한테 다른 딸이 어디 있어?”강성진이 불쑥 말을 뱉자 강기성은 긴 속눈썹을 깜박였다.“강민아요.”강성진은 믿지 않았다.“민아 걔가 무슨 레이싱을 해? 네가 잘못 봤겠지.”강기성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정말이에요. 국내 최고 여성 레이서 루나가 강민아예요.”“뭐? 레이서 루나가 내 딸이라고?”강성진이 루나를 모를 리가 없었다.루나는 국제 레이스 상위 10위에 진입하며 국내 기록을 돌파했다. 국내에서 레이싱이 뒤늦은 붐을 일으켰는데 당시만 해도 여성 레이서는 더더욱 드물었기 때문이다.루나는 그해에 경기할 때마다 국내 신기록을 세웠다.강성진이 특별히 레이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신문의 헤드라인과 뉴스 웹사이트의 알림을 피할 수는 없었다.“... 5년 전 루나의 레이싱카,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수백억에 팔렸어. 그해 최고 경매가를 기록했다고.”이어 강성진이 또다시 욕을 퍼부었다.“걔는 정말 머리 검은 짐승이네. 차를 팔아서 돈을 벌어놓고 그동안 나한테 숨기다니!”강기성은 강성진의 말을 무시한 채 경기장에 모인 수많은 경찰을 포착했다.그때 강나현의 과거 절친인 남궁윤수가 다가와 말하는 게 들렸다.“방금 알아봤는데 강나현 미친 것 같아. 여러 선수 헬멧에 벌레를 넣고 사람을 시켜서 드림의 보닛에 손대게 했어. 증거도 확실해서 경찰이 체포한다고 난리야.”재벌 2세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수군거렸다.“미친 거 아니야?”“그런 멍청한 짓은 걔밖에 못 할 거야.”강기성이 전화기 너머 상대에게 말했다.“아버지, 들었어요? 아버지 딸이 경찰에게 잡혀간대요.”...형사의 휴대폰이 울리자 전화를 받은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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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378화

    심은호가 말했다. “셋 셀 테니까 알아서 결정해. 안 그러면 아무도 해독제를 못 받아.”그는 웃으며 반하준에게 말했다.“삼.”반하준의 이마엔 푸른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심은호는 순전히 그들을 놀리려고 해독제를 꺼낸 것이었다.“강나현한테 줘!”반하준은 강나현이 또다시 약기운을 빌미로 무모하게 자기 몸에 손대지 않도록 차갑게 말했다.이내 강나현이 소리를 질렀다.“하준 씨한테 줘!”반하준은 신경이 예민하게 지끈거리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왜 나한테 먹여? 멀쩡한 정신으로 너한테 당하는 꼴을 보고만 있으라고?”반하준이 거칠게 쏘아붙이자 강나현은 어깨가 살짝 떨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반하준은 욕설을 퍼붓고 난 뒤 서둘러 심은호를 다그쳤다.“나와 강나현을 여기 가둔 주범이 바로 너지? 민아 비서를 통해 민아 이름을 대고 날 여기로 끌어들인 것도 너야.”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그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반하준의 뺨에는 굵직한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그는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심하게 헐떡이며 심은호를 향해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심은호는 해독제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강나현은 곧바로 달려와 해독제를 집어 들고 다시 반하준에게 돌진했다.“하준 씨, 해독제 먹어!”어쨌든 반하준의 두 손은 이미 수갑이 채워진 상태였고, 그만 멀쩡한 상태로 둘이 일을 치르면 나중에 이성을 잃었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을 거다.강나현이 반하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심은호가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반하준이 강나현을 뿌리치고 가려는데 그녀가 앞을 가로막았다.“하준 씨, 빨리 약 먹어!”“꺼져, 나 나갈 거야!”소리를 지르며 강나현은 반하준의 입에 약을 밀어 넣었다.강나현은 곧바로 반하준의 입을 막았고 반하준은 작은 알약이 입에서 녹는 것을 느꼈다.눈을 크게 뜬 반하준의 목구멍에서 억눌린 분노의 소리가 흘러나왔다.그렇게 그는 심은호가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 걸 보고만 있었다.강나현은 두 손으로 그의 목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377화

    강나현이 일어나 그에게 다가오자 반하준은 무언가를 감지하고 급히 돌아서서 강나현을 경계하며 마주 봤다.“그럴 필요 없어.”반하준은 강나현에 대한 경계심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딱딱하고 차갑게 말했다.하지만 강나현은 반하준이 왜 자신을 거절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화 꺼내서 구해줄 사람 부르면 되잖아!”반하준은 강나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강나현의 눈빛 속 욕망을 진작 꿰뚫어 보고 있었다.강나현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그녀는 지금 약기운을 빌미로 그를 산 채로 잡아먹으려는 속셈이다.휴대폰이 바지 주머니에 있는데 강나현이 주머니에 손을 대는 순간 또 어떤 선 넘는 행동을 할지 몰랐다.반하준은 등을 문에 딱 부이고 말했다.“멈춰! 움직이지 마!”그는 강나현을 위협했다.“나한테서 떨어져!”“하준 씨, 못 참을까 봐 걱정돼?”강나현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차마 감추지 못하며 반하준을 달랬다.“내가 하준 씨 다치게 할까 봐 걱정 안 해도 돼. 계속 이러면 몸이 망가질 거야.”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몸 안에서 비명을 지르던 세포들이 강나현을 통제했고, 그녀는 조바심을 내며 반하준을 향해 돌진했다.“내가 휴대폰 꺼내주겠다는데 왜 이렇게 날 무서워해?”그때 반하준의 등 뒤에서 달칵 소리가 들리더니 고개를 돌리자 방 문이 열렸다.반하준은 눈을 크게 뜨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밖에서 들어오는 밝은 빛이 그의 눈에는 희망처럼 보였다.누군가 그를 구하러 온 건가?방 문이 열리고 옷을 갈아입은 심은호가 밖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심은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하준을 훑어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셔츠부터 바지까지 모두 엉망이 된 채 흐트러진 반하준의 모습은 처음 본다.반하준은 숨을 헐떡이며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심은호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그는 지금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심은호에게 보여도 전혀 상관이 없었고 그저 그를 제압한 뒤 도망치고 싶었다.심은호는 그의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376화

    강민아의 이름을 듣자마자 반하준은 눈을 크게 떴다.그 이름이 무수히 많은 작은 바늘로 뒤바뀌어 심장을 쿡쿡 쑤시며 온몸에 통증을 느끼게 했다.강나현은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쌌다.“하준 씨, 난 당신을 구하고 싶어. 당신도 날 구해줘!”반하준은 발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강나현이 그의 몸을 덮치고 있어 그녀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꺼져!”그는 강나현의 얼굴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걸 보며 고함을 질렀다.그가 홱 몸을 돌리자 강나현과 함께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아악!”강나현은 고통의 비명을 질렀고, 반하준은 도망치듯 몸을 웅크리고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났다.강나현은 바닥에 쓰러져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반하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너무 아파!”반하준은 몸에 천 조각만 남은 강나현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문득 심장이 세차게 쿵쾅거리며 가슴을 뚫고 피부 밖으로 튀어나올 듯 심하게 요동쳤다.반하준의 눈앞에 헛것이 보였다. 강나현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향해 울부짖을 때 그녀의 얼굴이 강민아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순식간에 반하준의 몸속에서 난폭한 세포가 꿈틀거리고 피가 들끓으며 몸이 주체할 수 없이 심하게 떨렸다.“하준 씨!”강나현은 손과 발을 동원해 반하준을 향해 기어갔다.반하준은 제자리에 굳어진 채 눈가가 선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콧구멍에서는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입술 위로 미세한 땀방울이 맺혔다.강나현은 그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바닥에 엎드린 채 손을 뻗어 그의 발목을 잡았다.이윽고 반하준의 동공이 훅 움츠러들며 단번에 시야에서 강민아의 흐릿한 얼굴이 사라졌다.강나현의 얼굴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설레던 마음이 사라지고 피가 차갑게 식으며 발로 강나현의 손을 뿌리쳤다.“하준 씨?”강나현의 의아한 눈빛에는 속상함이 내비쳤다.“난 너한테 관심 없으니까 역겹게 굴지 마!”그는 차갑게 이 말을 뱉어내고는 다시 방 문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섰다.강나현은 반하준이 문을 발로 차는 모습을 그저 바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375화

    반하준은 크게 헐떡이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굵직한 땀방울이 아치형 눈썹을 따라 떨어지며 눈가에 고여 있었다.땀으로 인해 시야가 흐려졌고 창문 유리는 흔들리면서도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 순간 강나현이 뒤에서 다가와 그를 껴안더니 두 손으로 그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댔다.“하준 씨... 더는 못 참겠어...”그녀가 손을 뻗어 반하준의 옷을 벗기려 하자 반하준은 몸을 비틀며 강나현을 떨쳐내려고 했다.“놔!”그가 소리를 질렀지만 손이 등 뒤로 묶여 있어 강나현은 쉽게 그의 재킷을 벗겨냈다.양복 재킷은 반하준의 손목에 걸렸고, 여자는 그의 앞에서 뱀처럼 몸을 배배 꼬며 두 팔을 그의 목에 걸었다.강나현의 몸엔 남아있는 옷이 별로 없었고 그녀는 발끝으로 서서 남자의 턱에 닿으려 했다.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반하준의 속이 뒤집히며 말할 수 없는 메스꺼움이 밀려왔다.그는 급히 뒤로 물러서며 여자에게서 떨어지려 했고 강나현은 미꾸라지처럼 그에게 매달린 채 진득하게 붙어있었다.“강나현, 정신 차려!”반하준이 소리쳤지만 강나현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흐릿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하준 씨... 나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온몸이 너무 이상해... 내 몸을 주체할 수가 없어...”그녀는 말하며 반하준의 얼굴로 다가가 키스하려 했다.눈을 크게 뜬 반하준은 공포에 질린 채 머리카락 한 올마저 강나현에 대한 거부감을 내비쳤다.그 순간 종아리가 소파에 부딪히며 반하준은 균형을 잃고 온몸이 뒤로 넘어졌다.강나현은 얼굴을 찡그린 채 그의 몸을 짓누르며 말했다.“하준 씨, 나 힘들어! 하준 씨도 힘들지? 나 좀 살려줘. 이러다간 우리 둘 다 미쳐버릴 거야!”“나한테 손대지 마!”반하준은 몸을 비틀었다.“강나현, 참아! 빌어먹을, 나한테서 떨어져!”강나현은 반하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하준 씨, 우린 약에 취했고 해결하지 않으면 괴롭고 고통스럽기만 해. 약효가 절정에 달하면 우리 둘은 미친개가 될 거야. 그때 가서 이성을 잃고 서로를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374화

    “나 건드리지 마!”반하준이 소리를 질렀지만 강나현은 더욱 거세게 그의 위로 뛰어올라 그를 제압하려 했다.“난 하준 씨 도와주려는 거야. 나도 벗었는데 왜 안 벗어?”“하지 마, 놓으라고!”그가 저항하면 할수록 강나현은 더욱 흥분했다.“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내가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강나현은 반하준의 정장 단추를 풀려고 했지만 풀리지 않아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아이참, 움직이지 마. 자꾸 몸을 비틀면 나도 정말 무슨 짓할지 몰라?”반하준은 소름이 끼치고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그는 두 다리를 쭉 뻗어 강나현을 소파에서 차버렸다.“아악!”강나현은 바닥에 쓰러지며 비참한 비명을 질렀다.반하준은 소파에 누운 채 바닥에 굴러떨어진 강나현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미쳤어?”자신을 방에 가둔 게 강나현의 짓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하지만 생각해 보면 강나현은 그 정도로 똑똑하지 않았다.“하준 씨, 왜 날 발로 차? 날 친구로 생각하긴 해?”강나현이 씩씩거렸지만 반하준은 무시한 채 소파에서 버둥거리며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등을 돌리고 문에 손을 뻗었지만 방 문은 이미 잠겨 있었다.“젠장!”반하준이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자신과 강나현을 함께 가두는 데 앞장선 사람이 강민아라는 생각에 더욱 화가 났다.창가로 걸어갔지만 창문도 잠겨 있었다.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도마 위의 물고기가 되어 도살당할 수는 없었기에 어떻게든 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반하준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디퓨저 기계에 시선이 멈췄다.그는 숨을 참으며 기계로 걸어가 다시 한번 등을 돌려 이어진 전선을 뽑고는 기계를 집어 들어 창문 유리에 던졌다.창문만 깨지면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테니 그도, 강나현도 이성을 잃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의 손은 수갑에 의해 등 뒤로 꽉 묶여 있었고, 기계를 잡고 있어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비를 맞은 듯 반하준의 얼굴이 뜨거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디퓨저 기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373화

    눈을 크게 뜬 강나현은 반하준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 물었다.“하준 씨가 왜 여기 있어?”반하준은 굳어진 얼굴로 침착하려고 애쓰며 조목조목 분석했다.“강민아 비서는 강민아가 따로 만나고 싶어 한다며 나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강나현이 등 뒤로 향한 그의 손을 보았다.“하준 씨 손은... 왜 수갑이 채워져 있어? 강민아가 그러라고 시켰어?”반하준의 얼굴이 검게 탄 냄비처럼 어둡게 변했다. 짜증이 난 그는 멍청한 자신을 욕할 수밖에 없었다.대체 어쩌다 강민아가 그런 걸 즐긴다고 생각했는지 더 분석하고 싶지도 않았다.강민아에게 한 방 먹은 거다.그 생각에 반하준은 마음이 복잡하고 오장육부에 불길이 타올랐다.주위를 둘러보며 열쇠를 찾던 그가 강나현을 재촉했다.“열쇠 좀 찾아봐!”“그래.”강나현도 수갑을 풀 열쇠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머릿속으론 지금 반하준과 단둘이 방에 갇혀 있고, 반하준의 손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약기운을 빌미로 그에게 마음대로 들이댈 생각을 하고 있었다.생각만 해도 강나현은 온몸에 힘이 풀려 허리를 움직이면서 반하준을 향해 등을 돌렸다.반하준도 약에 취해 충동을 느끼기 쉬운 상태라면 충분히 남자를 유혹할 수 있을 것 같았다.강나현은 열쇠를 찾는 척하면서 말했다.“강민아가 우리 둘을 함정에 빠뜨렸어.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리 둘이 무슨 일이라도 생기길 바라는 거야? 난 친동생인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모든 책임을 강민아에게 돌리고 그녀와 반하준이 밤을 보내면 반하준이 원하지 않아도 그녀가 아닌 강민아를 탓할 거다.애초에 심은호에게 하려던 짓이었는데 강민아가 미리 그들의 계획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강민아는 이참에 반하준과 강나현을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밀어뜨릴 계획이었다.그녀에게 조롱당했다는 수치심에 강나현은 순식간에 분노가 치솟았다.하지만 곧 반하준과 벌어질 일을 생각하지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애써 드러나는 표정을 감추었다.줄곧 반하준과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372화

    반하준은 고개를 들어 방 문 쪽을 바라보았다.시야의 가장자리가 뿌옇게 뒤덮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눈을 크게 깜빡이자 들어온 여자가 이미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하준 씨.”강나현의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온몸이 그의 위로 쓰러졌다.반하준은 그녀를 밀어내려 했지만 손이 뒤로 묶여 움직일 수 없어 몸을 뒤로 빼기만 했다.강나현은 온몸에 뼈가 사라진 듯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반하준의 몸을 따라 아래로 떨어졌다.“강나현, 뭐 하는 거야!”반하준이 고함을 지르자 강나현이 흐릿한 눈동자로 가슴을 움켜쥐더니 고개를 들어 뜨거운 숨을 뱉으며 반하준을 바라보았다.“나 너무 더워. 온몸이 간지러워.”반하준의 눈가엔 싸늘한 감정만 담겨 있었다.“쓸데없는 걸 먹은 건 아니지?”강나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그냥 술을 조금 마셨을 뿐인데...”반하준이 불쑥 물었다.“술을 누가 줬는데?”“파티에 있던 웨이터가.”강나현이 고개를 들고 코를 훌쩍거렸다.“이 방 냄새 좋다. 향기로워.”강나현의 말을 듣는 순간 반하준은 온몸에 얼음이 섞인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느낌이었다.그는 숨을 꾹 참다가 다시 들이쉬는 순간 강나현이 말한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반하준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젠장!’그는 줄곧 방 안에 있었고 향기가 서서히 퍼졌기에 방금 들어온 강나현처럼 공기 중에 느껴지는 향기를 감지할 수가 없었다.반하준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잔에 향했다.그도 조금 전 술을 마셨지만 나중에 두 손이 묶이면서 더 이상 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만약 수갑이 채워지지 않았고 이 방에서 갈증을 느꼈다면 그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저 술을 찾았을 거다.반하준은 어렴풋이 직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말도 안 된다며 부정했다.그는 강나현에게 물었다.“누가 널 들여보냈어?”강나현은 볼이 붉게 물든 채 손을 들어 화끈거리는 이마를 만지작거렸다.“응? 기억이 안 나. 하준 씨, 나 취한 것 같아.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강나현이 말하며 다시 반하준에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371화

    누군가 다가와 반하준의 귀에 속삭였다. “반 대표님, 부사장님이 단둘이 얘기하고 싶다고 하십니다.”그에게 말을 전하러 온 사람은 강민아 비서였다.멈칫하던 반하준이 잠시 주위를 둘러봤지만 강민아는 보이지 않았다.“민아 어디 있어요?”비서가 말했다.“부사장께서는 바깥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세요.”반하준은 비서를 따라나섰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에게 말도 안 하고 눈길도 안 줬는데 이제 와서 단둘이 만난다고?그 생각에 반하준은 숨이 가빠졌다.참으로 방탕한 여자다.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려 한다니! 심은호 앞에서는 그를 무시하고 또 심은호의 눈을 피해 그와 만나려 하고 있다.남녀관계에서 강민아가 하는 행동은 반하준의 예상을 완전히 넘어섰다.‘방탕하게 살고 싶어서 이혼하자고 한 건가?’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심은호와 윤세현을 양옆에 둔 것도 모자라는가.결혼 생활 도중 그녀가 바람을 피운 적은 없는지 궁금할 정도다.그렇게 생각하며 반하준은 점점 더 짜증이 밀려왔다. 가슴이 무거운 돌덩이에 짓눌린 듯 심장이 아파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직원이 방 문을 열며 안으로 안내했다.방 문 앞에 서 있던 반하준은 지금 강민아가 자존심을 버리고 용서를 빈다면 심은호, 윤세현과 깨끗하게 헤어지게 할 거라 다짐했다.물론 강민아가 기꺼이 그의 곁으로 돌아와 속죄해야만 용서할 거다.“반 대표님, 안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사람이 정신이 팔렸을 때 누군가 옆에서 뭐라고 시키면 생각 없이 따르게 된다.방으로 들어간 반하준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방에 아무도 없었다.‘조금 전 강민아 비서가 뭐라고 했지? 기다리라고?’그를 여기로 불러놓고 기다리게 한다니.강민아가 일부러 못되게 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걸까?하지만 오늘은 강승이 정식으로 인수된 날이라 강민아는 분명 할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을 거다.먼저 따로 만나자고 했으니 잠시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반하준은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370화

    “아니야!”반하준은 분노에 미칠 지경이다. 심은호가 어떻게 감히 이런 식으로 그를 모욕할 수 있나.‘이런 악랄한 놈!’“민아야, 날 믿어줘.”반하준은 살면서 이렇듯 비굴하게 누군가에게 애원해 본 적이 없었다.처음으로 막다른 궁지에 내몰리자 그는 고립된 채 가만히 서 있었다.강민아 뒤에 서 있던 재벌가 거물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반하준이 다쳤나? 멀쩡해 보이는데. 오히려 심은호가 엉망진창이네.”“누가 봐도 심은호가 괴롭힘을 당했잖아.”“반하준이 심은호 저격한 게 하루 이틀이야? 전에 심은호를 주먹으로 때린 것도 내가 봤어.”“전에 화장실에서 핸드워시를 심은호에게 뿌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도 눈에 거슬려서 와인을 쏟았네.”“강민아를 빼앗아 가려고? 방에 가서 단둘이 상처를 보여주기는 무슨, 누가 봐도 꼬드기는 거지!”“난 심은호 편이야. 심은호는 당당한 남자 친구인데 반하준은 전남편이잖아. 내연남이라도 되고 싶은 건가?”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반하준의 얼굴이 먹물처럼 어두워졌다.“내연남?” 반하준은 억울한 듯 소리를 질렀다.“당신들 미쳤어? 내가 어떻게 내연남이야!”심은호는 웃으며 말했다.“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내연남이긴 하지.”반하준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그는 강민아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 그녀를 돌아보았다.하지만 강민아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심은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살펴보았다.“어디 다쳤어요?”“여기요.”심은호가 얼굴을 가리키자 반하준의 동공이 커지면서 소리를 질렀다.“안 때렸어!”강민아는 손을 뻗어 부드럽고 섬세한 손끝으로 심은호의 뺨을 어루만졌다.심은호는 사람 좋아하는 사모예드처럼 고개를 갸웃한 채 강민아의 손길을 느끼듯 천사 같은 미소를 지었다.강민아는 그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반하준은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강민아, 나 진짜 안 때렸어!”강민아는 심은호에게 말했다.“가서 옷 갈아입어요. 복도로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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