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데 전화기 너머로 의사가 물었다.“경찰에 신고할까?”“내가 비뇨기과에서 수술받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려고?”의사는 전화기 너머로 능글맞은 웃음을 터뜨렸다.“이미 해커가 네 기록 가져갔으니 머지않아 우리 도련님께서 남자구실 못한다는 소문이 서경 전체에 퍼질 거야.”남자는 길고 깨끗한 손가락으로 핸들을 부드럽게 두드리면서 백미러에 비친 마이바흐 차량을 바라보았다.“오늘 치료는 예정대로 진행해.”전화기 너머 상대가 걱정스럽게 말했다.“걱정도 안 돼?”심은호는 액셀을 밟고 차를 돌렸다.“이걸 우리는 유인이라고 하지.”심은호가 차를 몰고 떠나는 걸 지켜보던 반하준이 차에서 내렸다.값비싼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의 얼굴은 차가웠고, 깊은 동공은 어두운 밤에 고인 웅덩이처럼 속내를 알 수 없었다.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그는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섰다.동시에 주차장에서 강민아의 신변 안전을 책임지고 있던 사복 경호원 여러 명이 밖으로 나왔다.그들의 눈에는 반하준이 가장 위험한 존재였기에 경호원 중 한 명이 육성민에게 연락했다.“대표님, 반하준이 우강 그룹에 왔습니다.”...화창한 햇살이 비추는 대표 사무실에서 강민아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질끈 묶은 머리카락을 어깨 위에 올려놓으니 몇 가닥 잔머리가 그녀의 얼굴에 붙어있었다.툭 떨어지는 흰색 셔츠의 옷깃이 살짝 벌어져 가느다란 목 아래로 예쁜 쇄골이 드러나 있었다.똑똑.새로 뽑은 대표 비서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더니 들어와서 그녀에게 보고했다.“부사장님, 강나현 씨가 만나고 싶답니다.”강민아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바쁘다고 해요. 소란 피우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경찰에 신고하세요.”강민아의 취임식에서 강승 테크 직원들은 강나현이 강성진에게 얻어맞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강성진이 더 이상 강나현을 딸로 대하지 않으니 그들도 강씨 가문 아가씨로 대접할 이유가 없었다.강씨 가문 아가씨라고 강나현을 떠받들면 오히려 강민아에
강나현은 거들먹거리며 비웃었다.“난 강씨 가문 둘째 딸이야!”비서는 주름진 옷을 털었다. 대표 비서 자리를 얻기 위해 무려 수백만 원 주고 맞춤 제작한 정장이었다.“부사장님께서 비서면 비서답게 행동하라고 하셨어요. 지금은 출근 시간이니까 예전처럼 회사에서 멋대로 돌아다니지 마요.”강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감히 그녀와 맞서는 비서를 노려보았다.그러더니 홱 뒤돌아 복도에 놓인 의자를 걷어차자 꽃병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강나현은 살벌한 표정으로 여비서를 노려보았다.“너도 이 꽃병처럼 되고 싶어?”강나현이 말하며 벽으로 차버리자 꽃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져버렸다.그녀는 더더욱 오만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비서는 강나현의 기세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듯 침착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꺼내며 그녀에게 말했다.“부사장님께서 난동을 부리고 기물 파손하면 3배로 배상해야 한다고 했어요. 물건 3개 이상 망가뜨리면 신고할 거예요. 이제 막 구치소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번에 또 들어가면 처벌이 가볍지 않을 거예요. 부사장님께서 또 이런 말을 전하라고 하셨어요. 과연 이번에 또 들어가도 반하준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줄지 모르겠다고요.”강나현은 심장에 총을 맞은 기분이었다. 강민아는 진작 그녀의 행동을 예측하였다.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격하게 들썩거렸다. 강민아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이런 조롱을 당했다.“나한테 배상하라고? 허, 경고하는데 이 회사 우리 집안 거야! 내가 우리 집 꽃병 좀 깨뜨린 게 뭐 어때서?”비서는 차분한 어조로 그녀에게 말했다.“부사장님께서 3배로 배상하는 것을 거부하면 대표님 계좌에서 돈을 꺼낼 거라고 하셨어요. 회사 전체가 그쪽 집안 거니까 강나현 씨가 4천만원짜리 꽃병을 깨뜨렸으면 대표님이 1억 2천만원 배상하시면 되겠네요.”강나현은 지금 누군가 강성진을 언급하는 게 제일 두려웠다. 며칠 전 클럽에서 놀다가 우연히 이런 말을 들었다.“강 대표님 본 것 같은데.”그 한마디에 강나현은 겁에 질려 바로
강민아가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짓는데 강성진이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하준이가 6천억을 제시했어!”강성진은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강승이 부신 그룹에 인수되면 나도 너와 함께 부신 그룹 이사회에 들어갈 수 있어!”이는 심은호가 인수 문제와 관련해 강씨 가문 측에 약속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이건 하준이가 직접 작성한 인수 계획서인데 한번 봐.”강성진은 강민아에게 두툼한 계획서 한 권을 건넸다.반하준이 제시한 가격과 거래 조건은 그를 매우 흥분하게 만들었다.강민아는 계획서를 건네받고도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첫 페이지를 찢어 자동 파쇄기에 넣었다.곧바로 두 번째, 세 번째 페이지도 찢어버리며 강민아는 느긋하게 종이를 파쇄기에 넣었다.반하준이 밤새워 작성한 계획서였지만 그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강성진이 고함을 질렀다.“강민아, 뭐 하는 거야!”서늘한 얼음이 반하준의 얼굴을 뒤덮었다.“나한테 원한이 있는 건 알겠지만 6천억짜리 인수 계획서를 들여다보지도 않는 건 너무 감정적인 행동 같은데?”반하준은 강민아의 행동을 지켜보며 말했다.“6천억이 부족해서 그래? 1조로 강승 인수할게.”강성진은 가슴이 떨려 진정할 수가 없었다.반하준이 제시한 가격은 심은호보다 두 배, 아니, 두 배 이상 높은 금액이었다.“하준아, 정말 그 가격에 살 의향이 있다면 내가 강승 테크 대표로...”“아빠, 이제 아빠는 결정권이 없어요.”강민아는 한 마디로 강성진을 의자에 다시 앉게 만들었다.강승에 대한 의사 결정권을 잃은 것을 생각하니 강성진은 강나현을 더욱 원망하며 이렇게 충고할 수밖에 없었다.“민아야, 우리 우강 그룹의 미래를 생각해야지! 하준이랑 일하는 게 뭐가 문제야? 하준이랑 7년 동안 부부로 지냈으니 섭섭지 않게 널 챙겨줄 거야.”강민아는 반쯤 찢어진 계획서를 책상 위에 던졌고 반하준은 의자에 앉아 강민아를 올려다봤다.그는 강민아의 얼굴에서 또다시 자신을 가두었을 때 강민아가 몸을 짓밟으면서 드러냈
이보다 더 사람을 괴롭게 하는 건 없었다.분명 한때는 그의 소유였는데 소중히 여기지 않다가 다 잃은 뒤에야 그리워하며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그는 진지하게 강민아를 향해 물었다.“정말 심은호를 선택할 거야?”강민아는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이미 태산 그룹과 인수에 관련된 모든 프로젝트 계약을 마무리했고, 다음 주에 공식적인 인수 계약식을 진행할 거야.”강민아는 남자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 무심하고 덤덤하게 말했다.“반 대표님은 너무 늦게 오셨네요. 반년 전에 우강 그룹 인수를 제안했으면 경쟁자가 없었을 텐데. 지금은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받아줄 수가 없네요. 진짜 말 안 바꾸고 변덕 부리지 않아도 당신이 내미는 돈은 1조가 됐든 2조가 됐든 안 받아요.”그가 아무리 많은 돈을 들고 와서 손을 내밀어도 소용없었다.감정이란 게 원래 한번 무너지면 다시 쌓아 올리기 어려운 거니까.마치 수백만 개의 차가운 바늘이 반하준의 몸을 찌르는 듯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남자가 미간을 팍 찌푸리며 고함을 질렀다.“심은호를 선택한 걸 후회하게 될 거야!”강민아는 그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아빠, 손님 배웅하세요. 반 대표님이 알아서 떠나지 않으면 사람 부를 거예요.”반하준은 의자에 앉아서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그는 강민아를 위해 한발짝 물러섰다.“우강 그룹 입찰에선 손을 떼겠지만 조건이 있어. 지금 당장 심은호와 헤어져!”강민아는 우습기만 했다.“당신이 뭔데? 이 지구의 주인이라 온 세상이 당신 말을 들어야 하나?”반하준이 서류봉투를 내밀었다.“이것 좀 봐.”강민아는 볼 생각이 없었고, 결국 반하준이 서류봉투의 포장을 풀고 안에 든 서류를 꺼내 강민아 앞에 내놓았다.심은호의 이름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심은호 씨 진료 기록?’강성진과 다른 임원들도 모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심은호의 기록을 들여다보자 강민아는 곧장 서류를 집어 들었다.대충 내용을 확인한 그녀가 화가 난 듯 반하준을 노려보았다.“미쳤
반하준은 마치 전쟁터에 발을 들여 보이지 않는 연기가 사방에서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육성민의 깊은 동공은 맹수처럼 사나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찰나의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흐르더니 육성민이 매섭게 소리쳤다.“민아 내려놔!”육성민이 엘리베이터 문을 막고 있으니 반하준은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강민아를 내려놓았다.강민아는 가슴을 움켜쥔 채 반하준의 몸에 토하려 했지만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메스꺼움이 다시 내려갔다.육성민은 손을 뻗어 강민아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반하준, 꺼지라는 말 몰라?”육성민은 속으로 살인은 범죄라는 걸 무수히 되뇌고 나서야 반하준의 머리를 뭉개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있었다.하지만 반하준은 떠날 생각이 없었고, 서류봉투를 꺼내 육성민에게 건넸다.“한번 보시죠.”육성민은 반하준이 건네는 것을 받고 싶지 않은 듯 얼굴을 찡그렸다.그러자 강민아가 말했다.“고작 비뇨기과 진료 기록 하나가 나와 심은호 씨 협업 관계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해?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반하준은 예리하게 무언가를 감지하고 곧바로 되물었다.“너 진짜 심은호랑 만나는 거 아니지? 연애하는 게 아니야, 그렇지?”강민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반하준은 계속 물었다.“정말 좋아한다면 어떻게 그 사람이 비뇨기과에 다니는 데 전혀 신경 안 쓸 수 있겠어?”강민아의 표정은 싸늘했다. 이혼까지 한 상황에서 반하준과 굳이 좋게 얘기할 생각도, 그럴 인내심도 남아있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와 심은호가 계약 연인이라는 사실을 반하준이 퍼뜨린다면 또다시 인수에 악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남의 사생활이나 캐고 다니는 게 참 비열하다. 하지만 당신은 원래 역겨운 사람이었지. 이미 그 사람이 비뇨기과에 간 걸 봤다니까 그냥 얘기할게. 우리가 하도 격정적으로 놀다가 다쳐서 간 거야.”반하준의 귓가에 스피커를 가져다 놓은 것처럼 머릿속이 윙윙 울렸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강민아를 바라보았다.
심은호는 반하준의 등장에도 놀라지 않은 채 그를 무시했다.그의 시선이 반하준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강민아에게 향했다.순간 심은호의 눈빛이 허공에서 멈칫했다.달빛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강민아는 심은호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손목을 잡았다.남자는 시선을 내린 채 강민아에게 잡힌 손을 바라보며 풍성한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강민아가 고개를 돌려 심은호에게 말했다.“비뇨기과에 간 거 알아요.”그녀를 바라보는 심은호의 검은 눈동자가 파문을 일으키며 말을 꺼내려는데 강민아가 새끼를 지키는 어미 암탉처럼 그를 자기 뒤로 보냈다.“반하준, 우리 일에 참견하지 마!”동시에 두 남자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심은호는 입꼬리를 피식 올렸고 반하준의 얼굴은 극도로 어두워졌다.태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강민아가 심은호와 ‘우리’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전남편인 그는 완전히 모르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반하준은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그는 무기력하게 두 손을 늘어뜨린 채 무언가를 참는 듯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한때 그를 깊이 사랑했던 강민아는 그의 의식주와 관련된 사소한 것 하나까지 메모해 두었다.앞으로 심은호한테도 그렇게 해줄까?반하준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지금 이 순간 그는 자신이 우리에 갇힌 맹수가 된 기분이었다.눈앞에 있는 여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그래도 애써 내면의 감정을 무시한 채 이 불편한 고통을 날카로운 말로 바꾸어 입밖에 내뱉었다.“나랑 만났던 네가 그쪽으로 하자 있는 놈을 만날 리가 없잖아!”차갑게 웃는 반하준의 두 눈은 어느새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둘은 진짜로 사귀는 게 아니야.”분노에 찬 그가 낮게 으르렁거렸다.“단지 계약 관계일 뿐이겠지.”강민아는 입술을 다물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반하준을 바라보았다.반하준은 심은호가 비뇨기과에 다닌다는 사실을 물고 늘어져 그가 강승 테크를 인수하는 걸 방해할 생각인 것 같다.하지만 절대 그의
지금 심은호가 하는 말이 우리말이 맞나?그들이 생각하는 의미가 맞나?“그게 무슨 뜻이죠?”육성민은 정말 몰라서 의아해하며 물었다.심은호는 육성민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는 손에 들고 있던 기록을 건네주었다.“형님, 그쪽 매제는 몸이 아주 튼튼해요.”육성민은 곧바로 심은호의 진료 기록에 적힌 상세한 수술 과정을 살펴보았다.일부 난해한 의학 용어를 알아볼 수 없었던 그가 심은호를 올려보다가 다시 손에 든 기록을 내려다보았다.“대체 왜 그 구슬을 몸에 집어넣은 겁니까?”반하준이 거센 힘으로 심은호의 진료 기록을 낚아챘고 육성민은 그대로 넘겨주었다.기록을 확인한 반하준의 얼굴은 먹물보다 더 어둡게 변했다.지나치게 힘을 준 탓에 손가락은 떨리고 손등엔 핏줄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몇 장이나 되는 진료 기록이 반하준의 손에서 구겨졌다.그는 악귀에 사로잡힌 듯 시뻘건 눈으로 심은호를 노려보았다.“구슬 넣어서 뭐 하려고? 미쳤어?”반하준은 고함과 다름없는 소리를 뱉었다.모를 리가 있나. 심은호가 구슬을 꽂아 뭘 하려는 건지 잘 알았기에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당연히 민아 씨에게 더 좋은 경험을 선사해 주려고 그러지.”심은호가 당연하다는 듯 진지하고 당당하게 말하자 그런 그의 모습에 놀란 건 육성민이었다.‘민아에게 좋은 거였구나.’육성민의 마음속에 쌓여 있던 심은호에 대한 분노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강민아에게 좋은 일이라면 그도 뭐든 다 좋았다.강민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며 그녀가 나지막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어느... 어떤 구슬이요?”심은호는 잠겨 죽어도 좋을 만큼 그윽하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지난번에 우리 집에 왔을 때 민아 씨가 골라서 팔찌로 만들고 남은 구슬 하나요.”강민아는 그와 시선을 맞추며 저도 모르게 한쪽 손을 등 뒤로 보냈다.심한기를 만나러 갔을 때 우연히 서재에 놓여 있는 구슬 상자를 보게 되었다.구슬이 별 가치도 없는 거라 강민아가 먼저 구슬로 팔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두 사람은
강민아는 얼굴이 빨개진 채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심은호는 예쁜 눈을 가늘게 뜬 채 핏줄마저 튀어나온 반하준의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반하준, 왜 안 웃어? 원래 잘 안 웃나?”강민아는 자신의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 눈앞에 반하준의 몸이 떨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닌지 의아했다.전남편은 적잖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육성민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라 오히려 침착하게 한 손에는 심은호의 진료기록을, 다른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검색하고 있었다.[구슬 넣는 좋은 점]‘아, 거기에 구슬을 넣는 거구나! 이게 가능해?’이미 모든 면에서 태생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심은호도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니!검색을 마친 육성민은 심은호를 감탄하는 눈빛으로 돌아보았다.저런 근면 성실함은 따라 배워야 한다.그때 육성민의 귀에 반하준의 욕설이 들렸다.“천박하긴!”반하준은 심은호를 경멸했다.“태산 그룹의 후계자가 업소 제비처럼 고작 여자의 마음이나 얻으려고 구슬을 넣을 줄이야.”반하준의 욕설에도 심은호는 더더욱 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질투 나서 욕하는 거야? 넌 민아 씨한테 잘 보일 자격도 없잖아.”반하준의 심장이 철렁하며 거대한 충격에 폭탄이 몸속에서 터진 듯 영혼까지 송두리째 파괴당한 것 같았다.그의 눈에 심은호의 미소는 그토록 비열해 보여 목구멍에서부터 차가운 경멸의 비웃음이 흘러나왔다.“내가 이혼만 안 했어도 네가 나설 자리는 없었어.”심은호는 그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더욱 얄밉게 웃었다.“이제 내 차례가 됐네. 반하준, 고마워.”반하준의 얼음장 속에 갇힌 것 같았다.전부 그가 자초한 일이다.그가 강민아에게 소홀히 하고 그녀의 감정까지 전부 차갑게 식게 만들었다.반하준은 자신이 강민아를 밀어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명확히 알았다.육성민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구슬 넣으려고 비뇨기과에 온 겁
심은호가 옆에 앉아 강민아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강민아의 눈은 평소처럼 투명하지 않고 옅은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문득 무언가 생각난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반용화의 시원한 목소리가 귓가에 맑은 샘물처럼 울려 퍼지며 술로 인해 달아오른 열기를 말끔히 씻어주었다.“선생님, 제가 강승을 손에 넣었어요.”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강민아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반용화에게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강민아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자 심은호의 속눈썹이 살짝 펄럭였다.강민아는 반용화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심은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강민아를 바라봤다.전화기 너머로 계곡물처럼 서늘한 반용화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늘 반하준이 강승에서 한 짓 다 알아.”강민아는 입꼬리를 올렸다.“그래도 덕분에 강나현을 제거했어요. 하지만 절대 용서는 안 해요. 반하준의 타깃은 심은호 씨였거든요.”강민아가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자 심은호는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이내 반용화가 말했다.“귀찮으면 내가 걔를 판주 지사로 보낼 수 있어.”강민아의 목구멍에서 나지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아직은 괜찮아요. 조금 더 놀려먹을 수 있거든요. 우경아 손에 있는 프로젝트를 넘겨받아서 양자 테크가 내 손에 들어왔어요. 부신 그룹은 우영 그룹의 파트너니까 사업에서도 패배의 쓴맛을 보게 할 거예요.”말하며 강민아의 눈동자가 한층 맑아졌다.“언젠가 반하준이 판주로 가게 되어도 본인이 원해서 가야 할 거예요.”반용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강민아는 수화기 너머로 그의 숨소리만 들었다.“선생님?”반용화의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7년 전의 너로 돌아온 것 같네.”어깨를 움츠리던 강민아의 귓가에 열기가 느껴졌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그녀가 말했다.“다음 주 승덕 학교에서 축제를 여는데 정이가 공연해요. 석현이가 보겠다고 하면 초대하고 싶은데.”“그래, 말해볼게.”그 순간 심은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민아 씨, 벌써 3분 넘게 날
의아한 건 강민아였다. 반하준은 일부러 이렇게 멍청한 질문만 골라서 하는 걸까.“당신은 부신 그룹 대표니까 빠져나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잖아. 당신과 강나현 중에 누굴 제거하는 게 더 쉬운지는 나도 분간할 수 있어.”반하준이 모든 책임을 강나현에게 돌리는 동안 강민아도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지금 나서서 반하준과 강나현이 꾸민 짓이라고 하면 그 둘을 같은 편으로 만드는 게 된다.반하준이 강나현을 망가뜨릴 생각이라면 그의 손을 빌려 강나현을 제거한 뒤 그녀가 쥐 죽은 듯 살기를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반하준, 또다시 심은호 씨 건드리기만 해.”반하준은 씁쓸하고도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그의 소매가 이미 피로 붉게 물들었는데 강민아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심은호를 감싸고 있지만 네 마음은 나에게 향해 있다는 걸 알아.”반하준은 본인을 설득하듯 말했고 강민아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라 무시해 버렸다.더 이상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를 걱정하지 않는 거고 이 모든 건 반하준이 자초한 거다.그가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긴 사이 강민아는 우아하게 눈을 흘기며 쓸데없는 설명으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민아 씨.”심은호가 강민아 옆으로 다가오자 그를 본 반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심은호를 무시한 채 강민아에게 물었다.“우강 그룹을 손에 넣었는데 언제 심은호랑 헤어질 거야?”반하준이 이미 그녀와 심은호가 계약 커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아 강민아는 잠시 당황했다.심은호는 능글맞게 웃었다.“그쪽 주제 파악이나 하지? 전남편 주제에.”반하준의 한쪽 눈꺼풀이 부자연스럽게 떨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심은호, 잘난 척 그만해!”심은호는 강민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아 씨만 잘 나가면 난 계속 잘난 척할 건데?”강민아가 심은호의 팔짱을 끼자 두 사람은 함께 뒤돌아 파티가 열리고 있는 홀 안으로 들어갔다....고급스러운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은은하고 영롱한 빛을 발하며 파티장 전체를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비췄다.
친한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으며 귓속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경 모두가 강나현이 반 대표 좋아하는 걸 다 알고 있는데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제대로 손을 쓰려고 했네. 반 대표가 체면 때문에 떠들지 않고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했겠지. 반 대표가 이렇게 고집스러운 사람인 것도 모르고.”누군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경멸하듯 말했다.“강나현도 참 멍청해. 반 대표가 마음이 있었으면 강나현 언니가 반씨 가문 사모님이 됐겠냐고.”강민아는 우강 그룹 직원 몇 명에게 지시했다.“나현이 아래층으로 데려가요. 지금쯤 구급차가 왔을 테니까.”직원들이 들어와 의식을 잃은 강나현을 들어 올렸다.강나현은 바지와 옷으로 몸을 가린 채 고개를 갸웃하며 여전히 달콤한 꿈속에 있는 듯했다.손님들은 역겨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반 대표님.”강민아가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자 반하준은 곧바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단지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그의 두 눈이 금세 반짝이기 시작했다.“그쪽도 같이 구급차 타고 병원으로 가세요.”쫓아내는 거다.애초에 그녀는 반하준을 강승의 인수식에 초대한 적이 없었다.반하준은 거절했다.“난 강나현과 같은 구급차 안 타!”손님들은 그런 그를 이해했다. 이런 일을 당했으니 트라우마가 생기는 게 당연했다.이어 반하준은 강민아에게 말했다.“부사장님은 이 수갑 풀 열쇠나 좀 찾아주지?”강민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그럼 반 대표님께선 일단 다른 휴게실로 가 계세요.”...반하준이 다른 휴게실 소파에 앉아있는데 강민아의 비서가 들어왔다.“반 대표님, 열쇠를 찾았습니다.”비서는 열쇠로 수갑을 풀었고, 반하준의 손목 상처에 닿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조심스럽게 수갑을 빼냈다.이어 반하준이 비서에게 말했다.“강민아와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비서는 놀란 듯 그의 손목을 바라보았다.“반 대표님, 손을 그렇게 다쳤는데 안 아프세요?”반하준의 얼굴은 땀에 흠뻑 젖어 끈적끈적했고 안색은 창백했다.“강민아를 만나야 한다고!”비
심은호의 날카로운 칼날 같은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반하준 저 자식이 강민아 앞에서 약한 척을 하고 있다.조금 전까지 약에 취했어도 오만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심은호를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더니, 강민아 앞에서는 불쌍한 척을 하고 있었다.심은호는 경멸하듯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반 대표가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봐. 강나현이 왜 기절했지? 옷은 네가 벗긴 거야?”반하준과 강나현 둘이 짠 계략을 반하준의 입으로 직접 말하길 원했다.그들이 먼저 반하준이 한 짓을 밝히면 오히려 반하준에게 반격할 기회를 주는 것과 다름없었다.심은호와 강민아는 반하준이 본인이 만든 난장판을 어떻게 처리할지 보고 싶었다.“아니야!”반하준은 곧바로 부인했다.“강나현이 약에 취해 직접 옷을 벗고 여러 번 나를 덮치려고 했어. 난 그저 때려서 기절시킨 것뿐이야!”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강민아의 눈치를 살폈다.자기 몸이 더럽혀졌다는 오해를 받기 싫었다.반하준은 수갑에 묶인 두 손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등을 돌렸다.“강나현이 나를 묶어두려고 수갑까지 채웠어!”금속 수갑은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반하준이 수갑을 풀려고 안간힘을 쓰던 중 살갗이 베인 것이다.일부는 살을 파고들어 피와 살이 드러나 끔찍하기까지 했다.손목의 잘린 살점들이 수갑에 뭉쳐있어 하얀 손목뼈가 보일 정도였다.“어이쿠!”다친 반하준의 손을 본 손님들은 모두 일제히 충격과 슬픔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이 정도로 처참한 광경에 차마 반하준을 탓할 수가 없었다.강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도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반하준은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도 강나현을 기절시켰는데 강나현의 능력으로 어떻게 반하준의 손에 수갑을 채우겠나.반하준이 직접 손에 수갑을 찬 게 분명했다.심은호도 그녀와 똑같은 의심을 하고 있었다.단지 모든 책임을 강나현에게 돌리려고 그렇게 둘러댔을 뿐이었다.서경에서 강나현을 제일 싸고돌았던 그조차 그녀를 버렸다.아마 오늘 밤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강나현이 반하
강민아는 휴게실로 향했다. 반하준의 계획을 파악하자마자 심은호에게 알리고, 그걸 이용해 반하준과 강나현을 함정에 빠뜨리는 방법을 선택했다.그녀는 내내 어떻게 두 사람의 계획을 폭로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직접 사람들 앞에서 폭로하면 반하준은 오히려 그녀가 이 모든 것을 꾸몄다며 적반하장으로 굴게 분명하다.이제 심은호가 칼을 건넸으니 그녀는 반하준과 강나현을 폭로하기 위해 휘두르면 그만이다.강민아가 사람을 시켜 열쇠를 가져와 방 문을 열자 향긋한 냄새에 피비린내가 뒤섞여 코끝으로 스며들었다.“콜록!”강민아는 목구멍에서 솟구치는 역겨움에 미간을 찌푸렸다.그녀의 뒤로 여러 개의 머리와 크게 뜬 눈이 호기심 가득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강민아가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심은호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조심해요!”심은호가 선두로 앞장서자 강민아는 그 뒤를 따랐다.그때 강나현이 얼굴에 잔뜩 멍이 든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봐도 이미 기절한 듯했다.심은호는 역겨운 듯 고개를 돌렸고, 강민아는 옷을 얇게 입은 강나현의 모습을 보며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그녀에게 덮어주었다.그 순간, 어두운 구석에서 반하준이 거칠게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세상에!”강민아를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구석에 기대어 앉은 반하준의 두 손이 등 뒤로 묶여있는 것을 보았다.그가 입고 있던 셔츠는 단추가 여러 개 풀려 있었고 옷깃이 활짝 열린 채 가슴에는 새빨갛게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흐트러진 머리카락 몇 가닥이 젖은 이마에 붙어 있었고, 가슴을 들썩이는 그의 두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그가 홱 고개를 들어 어둠 속에서 강민아를 주시했다. 이젠 이 방을 떠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지금 여기서 나가도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아니까.강민아 뒤에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가운데 낯익은 얼굴 몇 명이 고개를 내밀었다.그들은 반하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충격에 휩싸여 외쳤다.“반... 반 대표 맞아?”“하준아, 너 어떻게 강나현이랑... 세상에! 남들이
강민아는 태산 그룹 임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쯤 반하준과 강나현은 정신이 거의 나간 상태일 거다.반하준은 강나현과 짜고 파티에서 심은호의 스캔들을 폭로할 계획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하필 멍청한 상대와 손을 잡았고 강승 테크 내부를 장악한 강민아의 능력을 간과했다. 반하준은 강승 테크 직원을 매수하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가 직원과 접선할 때 그들이 강민아에게 반하준이 돈으로 매수하려 했다는 걸 알릴 줄은 몰랐을 거다.강민아는 그들이 계획대로 흘러가게 놔두었다.반하준은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매수했다. 그들은 자기가 할 일을 제외하고 남들이 뭘 하는지 몰랐다.누구는 휴게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누구는 파티에서 심은호에게 술을 건네며, 또 다른 사람은 담당자가 보지 않는 틈을 타 주방에서 술에 약을 타는 역할을 했다.그 모든 정보가 강민아의 귀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반하준이 심은호에게 무슨 짓을 할지 전부 파악했다.그리고 강나현은 그중 한 직원에게 약물을 건네는 역할이었다.일부러 디퓨저까지 사서 휴게실에 놓는 걸 강민아는 전부 다 알고 있었다.강민아는 강나현과 반하준이 모든 일을 끝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디퓨저와 카메라가 있는 방을 바꾸었다.반하준이 심은호의 몸에 와인을 뿌렸을 때 그가 곧 움직일 거라는 걸 예상했다.강민아는 오늘 초대된 재벌가 거물급 인사들에게 반하준의 비열한 물밑 작전을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다.“민아 씨!!”갑자기 장내에서 심은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고,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심은호가 황급히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심은호의 얼굴은 다소 하얗게 질렸고 눈빛에는 의미심장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심 대표, 왜 그래?”누군가 묻자 다른 사람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돌아보며 몰려들었다.심은호는 강민아 곁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건네는 척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방금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옆방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서 들어갔더니 반하준과 강나현이...”심은호는 머
심은호가 말했다. “셋 셀 테니까 알아서 결정해. 안 그러면 아무도 해독제를 못 받아.”그는 웃으며 반하준에게 말했다.“삼.”반하준의 이마엔 푸른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심은호는 순전히 그들을 놀리려고 해독제를 꺼낸 것이었다.“강나현한테 줘!”반하준은 강나현이 또다시 약기운을 빌미로 무모하게 자기 몸에 손대지 않도록 차갑게 말했다.이내 강나현이 소리를 질렀다.“하준 씨한테 줘!”반하준은 신경이 예민하게 지끈거리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왜 나한테 먹여? 멀쩡한 정신으로 너한테 당하는 꼴을 보고만 있으라고?”반하준이 거칠게 쏘아붙이자 강나현은 어깨가 살짝 떨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반하준은 욕설을 퍼붓고 난 뒤 서둘러 심은호를 다그쳤다.“나와 강나현을 여기 가둔 주범이 바로 너지? 민아 비서를 통해 민아 이름을 대고 날 여기로 끌어들인 것도 너야.”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그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반하준의 뺨에는 굵직한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그는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심하게 헐떡이며 심은호를 향해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심은호는 해독제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강나현은 곧바로 달려와 해독제를 집어 들고 다시 반하준에게 돌진했다.“하준 씨, 해독제 먹어!”어쨌든 반하준의 두 손은 이미 수갑이 채워진 상태였고, 그만 멀쩡한 상태로 둘이 일을 치르면 나중에 이성을 잃었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을 거다.강나현이 반하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심은호가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반하준이 강나현을 뿌리치고 가려는데 그녀가 앞을 가로막았다.“하준 씨, 빨리 약 먹어!”“꺼져, 나 나갈 거야!”소리를 지르며 강나현은 반하준의 입에 약을 밀어 넣었다.강나현은 곧바로 반하준의 입을 막았고 반하준은 작은 알약이 입에서 녹는 것을 느꼈다.눈을 크게 뜬 반하준의 목구멍에서 억눌린 분노의 소리가 흘러나왔다.그렇게 그는 심은호가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 걸 보고만 있었다.강나현은 두 손으로 그의 목
강나현이 일어나 그에게 다가오자 반하준은 무언가를 감지하고 급히 돌아서서 강나현을 경계하며 마주 봤다.“그럴 필요 없어.”반하준은 강나현에 대한 경계심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딱딱하고 차갑게 말했다.하지만 강나현은 반하준이 왜 자신을 거절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화 꺼내서 구해줄 사람 부르면 되잖아!”반하준은 강나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강나현의 눈빛 속 욕망을 진작 꿰뚫어 보고 있었다.강나현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그녀는 지금 약기운을 빌미로 그를 산 채로 잡아먹으려는 속셈이다.휴대폰이 바지 주머니에 있는데 강나현이 주머니에 손을 대는 순간 또 어떤 선 넘는 행동을 할지 몰랐다.반하준은 등을 문에 딱 부이고 말했다.“멈춰! 움직이지 마!”그는 강나현을 위협했다.“나한테서 떨어져!”“하준 씨, 못 참을까 봐 걱정돼?”강나현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차마 감추지 못하며 반하준을 달랬다.“내가 하준 씨 다치게 할까 봐 걱정 안 해도 돼. 계속 이러면 몸이 망가질 거야.”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몸 안에서 비명을 지르던 세포들이 강나현을 통제했고, 그녀는 조바심을 내며 반하준을 향해 돌진했다.“내가 휴대폰 꺼내주겠다는데 왜 이렇게 날 무서워해?”그때 반하준의 등 뒤에서 달칵 소리가 들리더니 고개를 돌리자 방 문이 열렸다.반하준은 눈을 크게 뜨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밖에서 들어오는 밝은 빛이 그의 눈에는 희망처럼 보였다.누군가 그를 구하러 온 건가?방 문이 열리고 옷을 갈아입은 심은호가 밖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심은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하준을 훑어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셔츠부터 바지까지 모두 엉망이 된 채 흐트러진 반하준의 모습은 처음 본다.반하준은 숨을 헐떡이며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심은호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그는 지금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심은호에게 보여도 전혀 상관이 없었고 그저 그를 제압한 뒤 도망치고 싶었다.심은호는 그의
강민아의 이름을 듣자마자 반하준은 눈을 크게 떴다.그 이름이 무수히 많은 작은 바늘로 뒤바뀌어 심장을 쿡쿡 쑤시며 온몸에 통증을 느끼게 했다.강나현은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쌌다.“하준 씨, 난 당신을 구하고 싶어. 당신도 날 구해줘!”반하준은 발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강나현이 그의 몸을 덮치고 있어 그녀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꺼져!”그는 강나현의 얼굴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걸 보며 고함을 질렀다.그가 홱 몸을 돌리자 강나현과 함께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아악!”강나현은 고통의 비명을 질렀고, 반하준은 도망치듯 몸을 웅크리고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났다.강나현은 바닥에 쓰러져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반하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너무 아파!”반하준은 몸에 천 조각만 남은 강나현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문득 심장이 세차게 쿵쾅거리며 가슴을 뚫고 피부 밖으로 튀어나올 듯 심하게 요동쳤다.반하준의 눈앞에 헛것이 보였다. 강나현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향해 울부짖을 때 그녀의 얼굴이 강민아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순식간에 반하준의 몸속에서 난폭한 세포가 꿈틀거리고 피가 들끓으며 몸이 주체할 수 없이 심하게 떨렸다.“하준 씨!”강나현은 손과 발을 동원해 반하준을 향해 기어갔다.반하준은 제자리에 굳어진 채 눈가가 선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콧구멍에서는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입술 위로 미세한 땀방울이 맺혔다.강나현은 그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바닥에 엎드린 채 손을 뻗어 그의 발목을 잡았다.이윽고 반하준의 동공이 훅 움츠러들며 단번에 시야에서 강민아의 흐릿한 얼굴이 사라졌다.강나현의 얼굴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설레던 마음이 사라지고 피가 차갑게 식으며 발로 강나현의 손을 뿌리쳤다.“하준 씨?”강나현의 의아한 눈빛에는 속상함이 내비쳤다.“난 너한테 관심 없으니까 역겹게 굴지 마!”그는 차갑게 이 말을 뱉어내고는 다시 방 문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섰다.강나현은 반하준이 문을 발로 차는 모습을 그저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