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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깃나래
그날 밤 심건하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심건하는 집에 들어왔다. 몸에서는 옅은 향수 남새가 났다.

진한나가 늘 쓰던 향수였다.

심건하는 차 키를 현관에 던져 놓고 차가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어젯밤에 성질 다 부린 거야? 이제 다 풀렸어?”

나는 종이상자에 테이프를 붙이는 중이었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못 들은 척해?”

심건하가 다가와 상자를 발로 툭 찼다.

“이 잡동사니는 다 뭐 하러 이렇게 싸?”

“안 쓰는 것들 좀 정리하는 거야.”

심건하가 비웃었다.

“네가 이렇게 나랑 밀당하는 거 참 유치해. 며칠 차갑게 굴면 내가 너한테 와서 사과하고 널 달래러 올 줄 알았어?”

나는 허리를 펴고 손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달래 달라고 한 적 없어.”

“그럼 지금 이 태도는 뭔데? 한나는 어젯밤 네 말 한마디 때문에 30분 넘게 울었어. 너 한나한테 사과해.”

“사과 안 해.”

“진짜 말이 안 통하네!”

심건하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기고 소파에 앉았다.

“너랑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다음 주 수요일에 오로라 항로로 레이캬비크에 가야 해.”

“네가 순순히 잘못한 거 인정하면, 원래 한나한테 주려고 했던 가족석 무료 항공권을 너한테 줄게. 약속했던 오로라 보여 준다고.”

나는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오로라...’

6년 전, 나는 갑상샘 결절이 발견됐다. 양성이었지만 당시엔 너무 무서웠다.

심건하는 병상 옆에서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나으면 오로라 보러 가자. 내가 모는 비행기 타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밤하늘을 같이 보자.”

이 약속을... 그는 자그마치 6년을 미뤘다.

이제 와서 그 6년 전의 약속을, 나를 달래기 위한 선심처럼 내밀었다.

심지어 그 무료 항공권은 원래 진한나에게 주려던 것이었다.

“싫어?”

내가 말이 없자 심건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노선 무료 항공권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 노선 무료 좌석이 얼마나 구하기 어려운지 몰라? 한나가 오래 부탁해서 겨우 들어준 거야. 그래도 너랑 결혼 8주년이니까 마음 바꿔서 너한테 주겠다는 거잖아.”

“진한나 씨한테 줘.”

내 목소리는 나 자신도 겨우 들을 만큼 낮았다.

“뭐라고?”

“진한나 씨한테 주라고. 나는 필요 없어.”

심건하가 벌떡 일어났다. 표정이 무섭게 어두워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양보하는데도 계속 고집부릴래? 좋게 말할 때 받아. 기회 줬는데 네가 걷어차는 거야. 나중에 울면서 매달리지나 마.”

“걱정 마. 매달릴 일 없어.”

심건하는 테이블 위 유리컵 하나를 거칠게 집어 내던졌다.

깨진 조각이 내 종아리에 튀어 얇은 상처를 냈다.

심건하는 쳐다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문을 세게 닫고 나가 버렸다.

나는 고개를 숙여 종아리에 맺힌 핏방울을 봤다. 휴지를 한 장 뽑아 닦아 냈다.

아프지 않았다. 정말로, 이제는 아프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다음 주 수요일이 되었다.

8 주년 기념일.

내 사직서가 수리되어 효력을 발휘하고, 내가 이 도시를 떠나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나는 유일한 캐리어를 끌고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내 항공편은 오후 3시 달운시행이었다.

탑승권을 받고 대기 구역에 앉아 창밖으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바라봤다.

오로라 항로는 오후 2시 출발이었다.

심건하는 지금쯤 왼쪽 좌석에 앉아 엔진 시동 절차를 준비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핸드폰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심건하의 비행 정보를 확인해, 이 8년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항공 일정 앱에 승무 정보가 떴다.

기장란에는 심건하가 없었다.

낯선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멍해졌다.

‘설마 아파서 급하게 다른 조종사랑 일정을 바꿨나?’

그때 내 시야 끝에 멀지 않은 일등석 라운지 입구가 들어왔다.

캐주얼한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핑크색 캐리어를 밀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옆에는 같은 톤의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자가 따라붙어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팔을 다정하게 끼고, 머리를 남자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심건하와 진한나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이 라운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귓가에 가까이 있던 지상직 직원 둘의 대화가 들렸다.

“방금 들어간 사람 심건하 기장 맞죠? 오늘 레이캬비크행 운항 아니었어?”

“연차 냈대. 진한나 승무장하고 오로라 보러 간다더라.”

“진한나 승무장이 어제 단톡방에서 한참 자랑했잖아요. 심건하 기장이 자기 때문에 오로라 항로도 안 타고, 일부러 객석 끊어서 장기 휴가 간다고.”

“진짜 낭만적이네. 심건하 기장은 진한나 승무장한테는 못 해 주는 게 없네.”

나는 문득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심건하는 진한나에게 주려던 무료 항공권을 내게 넘긴 게 아니었다.

심건하는 진한나를 위해 비행 일정도 바꾸고, 두 사람만을 위한 오로라 여행을 직접 준비한 것이었다.

그런 주제에 그 위선적인 거짓말로 나를 속이며, 나에게 감지덕지 고마워하라고 생색낸 것이다.

안내 방송에서 내가 탈 항공편의 탑승 안내가 흘러나왔다.

나는 일등석 라운지 쪽을 한 번 보았다.

그런 다음 몸을 돌려, 손에 든 탑승권을 검표 직원에게 건넸다.

기내 도어가 닫혔다.

활주, 가속, 이륙.

심건하가 소속된 항공사의 여객기는 나를 태우고 고도를 높이더니, 이내 구름층을 뚫고 올라갔다.

심건하는 ‘곰돌이’를 위해 연차를 내고, 다른 비행기의 일등석에 앉아 있을 것이다.

나는 창밖의 구름바다를 바라보았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나는 드디어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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