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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2화

Author: 임공
“고마워요.”

웨이터가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좀 볼게.”

지동성이 메뉴를 받아 들고, 시연의 취향을 떠올리며 이것저것 많이도 골랐다.

“이 정도면 될까?”

“충분해요.”

“그래, 부족하면 더 시키자.”

딸이 먼저 식사를 제안한 건 너무 뜻밖이라, 지동성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눌렀다.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졌다.

“요즘 어때? 아이는 괜찮고?”

“그럭저럭이요...”

시연은 대충 답했다.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또 시작이야...’

지동성의 끊임없는 질문에 시연은 은근히 짜증이 밀려왔다.

그러다 갑자기 입을 열었다.

“간 이식 문제는, 우주한테 말해볼게요.”

지동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온몸이 얼어붙었다.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방금 뭐라고 했어?”

시연은 다시 말하지 않았다.

‘알아들었을 거야. 그것도 충분히.’

그리고 이어갔다.

“하지만, 저한테 약속 하나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시연아...”

지동성은 다급히 불렀지만, 시연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무너질 것 같으니까.’

그녀는 단단히 마음을 먹은 눈으로 지동성을 바라봤다.

“저는 우주한테,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절대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아버지의 가족들도, 입 다물었으면 좋겠어요.”

“우주는 자기 아빠도, 엄마처럼 이미 세상에 없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말하는 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울면 안 돼, 울지 마...’

하지만, 그녀의 긴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저는 우주한테, 아버지가 그냥 자주 찾아오는 아저씨라고만 말할 거예요.”

“시연아, 난...”

지동성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시연이 단호히 끊었다.

“제발... 제 말을 잘 들어주세요. 앞으로 절대, 우주를 아버지로서 대하려 하지 마세요.”

“우주는 14년 동안 단 한 번도 ‘아빠’를 불러본 적 없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우리 우주... 이제 와서 무너뜨릴 수 없어. 절대.’

시연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약속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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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건은 미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그 눈빛에는 잠깐의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너, 꽃... 안 좋아해?”“참...” 시연은 두어 번 짧게 웃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그러다 불쑥 말했다. “오늘, 아버지를 만났어요.”유건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는 묵직한 눈빛으로 시연을 바라봤다.“그리고 그분한테 약속했어요. 우주한테 간 이식 얘기를 전하겠다고.”시연은 문득 웃었다. 쓸쓸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그날 당신이 했던 말들, 솔직히 듣기 끔찍했지만... 맞는 부분도 있었어요.”“시연아, 나...” 유건은 갑자기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을 보였다.“끝까지 들어줘요.” 시연은 가볍게 입술을 다물었다가, 다시 웃었다.“하지만 그분, 나랑 약속했어요. 우주한테 자기가 아버지라는 걸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요.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당신도 입조심해요.”그 말을 끝으로, 시연은 몸을 옆으로 틀었다. 마치 ‘이제 나가라’는 듯한 자세였다.“자, 이제 내가 할 말은 끝났어요. 그동안 고생 많았겠네요. 이제 당신의 목적도 이뤘으니 이만 가봐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밖에서 내리는 눈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시연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유건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제 끝이야. 나도, 당신도.’그때, 유건이 시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얇은 입술에, 가볍고도 서늘한 웃음이 번졌다.“내 목적이 뭔데?”“됐어요, 그만해요.” 시연은 피곤한 듯 웃음을 거두었다.“더는 당신이랑 엮이고 싶지 않아요. 빨리 가서 장소미한테 좋은 소식 전해요. 기뻐하겠죠.”그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유건은 시연에게 성큼 다가섰다.“내 목적이 뭐냐고 묻잖아. 대답해.”‘뭐야, 아직 부족해?’ 시연은 무의식적으로 한발 물러섰다. ‘내가 못 알아듣게 말했나?’“그...” “입 다물어.”유건은 거칠게 시연의 턱을 움켜잡았다. 남자의 숨결이 거칠고 짙게,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22화

    “고마워요.” 웨이터가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좀 볼게.” 지동성이 메뉴를 받아 들고, 시연의 취향을 떠올리며 이것저것 많이도 골랐다.“이 정도면 될까?” “충분해요.” “그래, 부족하면 더 시키자.”딸이 먼저 식사를 제안한 건 너무 뜻밖이라, 지동성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눌렀다.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졌다.“요즘 어때? 아이는 괜찮고?” “그럭저럭이요...” 시연은 대충 답했다.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또 시작이야...’ 지동성의 끊임없는 질문에 시연은 은근히 짜증이 밀려왔다.그러다 갑자기 입을 열었다. “간 이식 문제는, 우주한테 말해볼게요.”지동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온몸이 얼어붙었다.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방금 뭐라고 했어?”시연은 다시 말하지 않았다. ‘알아들었을 거야. 그것도 충분히.’ 그리고 이어갔다. “하지만, 저한테 약속 하나를 해줬으면 좋겠어요.”“시연아...” 지동성은 다급히 불렀지만, 시연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무너질 것 같으니까.’ 그녀는 단단히 마음을 먹은 눈으로 지동성을 바라봤다.“저는 우주한테,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절대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아버지의 가족들도, 입 다물었으면 좋겠어요.”“우주는 자기 아빠도, 엄마처럼 이미 세상에 없다고 믿고 있으니까요.”말하는 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울면 안 돼, 울지 마...’ 하지만, 그녀의 긴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저는 우주한테, 아버지가 그냥 자주 찾아오는 아저씨라고만 말할 거예요.”“시연아, 난...” 지동성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시연이 단호히 끊었다.“제발... 제 말을 잘 들어주세요. 앞으로 절대, 우주를 아버지로서 대하려 하지 마세요.”“우주는 14년 동안 단 한 번도 ‘아빠’를 불러본 적 없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우리 우주... 이제 와서 무너뜨릴 수 없어. 절대.’시연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약속할 수 있어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21화

    남자는 키가 크고, 군더더기 없이 단단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유건과 체격이 비슷했던 덕분에, 시연은 그가 꾸준히 운동해 온 사람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남자는 어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이목구비는 또렷하고 깊었고, 특히 크고 선명한 유럽풍 눈매가 눈길을 끌었다. 짙은 갈색 눈동자 속에 은은하게 퍼지는 푸른빛이 인상적이었다.피부도 매끈했다. 아마 좋은 환경에서 자라온 덕분일까, 눈에 띄는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하지만 그가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남자가 중년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시연이 잠시 귀를 기울이니,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건 불어였다. ‘불어...? 여기서?’ 시연은 살짝 긴장했지만, 곧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봉주르.” 시연은 조심스럽게 불어로 인사를 건넸다.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아.” 남자는 잠깐 놀란 듯 멈칫하더니, 이내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불어 할 줄 아세요?”“조금이요.” 시연은 겸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그걸로 먹고 살았던 적도 있지만...’“정말 다행이네요.” 남자는 위쪽 메뉴판을 가리키며 서툴게 손짓했다. “저기... 저걸로...”“네.” 시연은 금세 알아차리고, 미소를 띤 채 직원에게 돌아섰다.“이분은 레모네이드, 얼음은 조금만요.”“네, 알겠습니다.” 직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어라면 간신히 알아듣겠지만, 불어는 아예 포기 상태였으니까.“고객님, 여기 카드로 결제하시면 됩니다.”‘카드...? 어쩌지?’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제가 도와드릴게요.”‘좋은 일은 끝까지 해야지.’시연은 자기 카드로 대신 결제를 진행했다.‘다행이다. 그냥 레모네이드 하나라서. 비쌌으면... 내 지갑부터 걱정했을지도 몰라.’“저는 밀크티 하나요. 같이 결제해 주세요.”“네, 알겠습니다.”“정말 고맙습니다.” 남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20화

    “고, 유, 건!” 시연의 인내심이 결국 터졌다. “알았어, 알았다고.” 유건은 두 손을 들어 항복의 제스처를 취했다. “너 샤워 다 끝내고, 잠자리에 들면 그때 갈게. 욕실 바닥 미끄럽잖아. 그 생각하니까 그냥 여기 있는 게 마음이 편해서 그래.” ‘아주 지극정성이네, 진짜.’시연이 숨을 꾹 참고 머리를 홰 젖히며 돌아서자, 긴 머리카락도 그녀를 따라 허공을 스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연이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채 방에서 나왔을 때, 유건은 이미 마른 수건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시연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유건이 선수를 쳤다. “머리만 말려주고 갈게. 팔 오래 들고 있으면 어깨 아프잖아.” ‘와... 이 사람 진짜 각 잡았네.’ “당신...” 시연은 유건을 날카롭게 흘겨봤다. “지금 완전 딱 쫀득한 엿 같은데요? 질척거리는 게, 떼도 안 떨어질 것 같아요.” “고마워, 나 그런 칭찬 좋아해.” 유건은 오히려 웃으며 수건을 펼쳤다. “칭찬...?” 시연은 어이없어 입을 다물었다. ‘이걸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정신력은 또 뭐야...’ “자, 머리 말리자. 머리 다 말리고 자야 감기 안 걸리지.” 결국 시연은 눈을 감았다. ‘됐어... 그냥 못 본 척하자. 말하면 뭐 해? 안 먹힐 텐데.’ ...그런 날들이 계속됐다. 유건은 하루에 두 번 ‘출근 도장’을 찍었다. 아침엔 아침밥 들고 등장. 점심엔 직접 못 오면 민환을 통해 도시락 배달. 저녁엔 꼭 나타났다. 빠르면 같이 저녁, 늦으면 야식. 그리고 샤워 후엔 늘 자연스럽게 등장해 머리를 말려주기까지. 시연은 정말 할 수 있는 말은 다 해봤다.차갑게도 말해봤고, 내쫓으려 해본 적도 있었고, 문 앞에 세워두기도 해봤다. 하지만 유건은 마치 그 자리가 제자리라도 되는 듯, 늘 시연 곁을 지켰다.마치 떠날 줄 모르는 그림자처럼.어느 날 오전. 시연은 오랜만에 강울대병원에 들렀다. ‘잠깐 들릴 생각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9화

    “놓아달라고?” 유건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긴 속눈썹 아래로 감춰진 눈빛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널 좋아한다고 말한 게, 널 못 놔주겠다는 뜻인 것 같아?” ‘또 그 말이지. 좋아한다, 좋아해. 그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는데...’ 시연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왜 그래?” “왜 그러냐고요?” 시연은 아주 작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한숨을 쉬었다. ‘진짜... 말이 안 통해.’ 머리는 온통 유건이 감아준 목도리로 덮여 있었다.겉으로는 따뜻해 보였지만 마음은 너무도 답답했기에, 약간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알잖아요. 나... 당신을 한 번도 좋아한 적 없다는 거...” “응, 알아.” 유건은 고개를 숙이며 낮게 웃었다. “아직 기억해.” “그럼 지금 이건 다 뭐예요?” 시연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우린, 그거 때문에 헤어진 거잖아요?”두 사람은 명확하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진 않았다.하지만 그동안의 긴 냉전은 이미 서로의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서로 말은 안 했지만, 끝난 거나 다름없었어. 할아버지 때문에 그냥 참고 있었던 거지.’ ‘이젠 할아버지조차 이혼을 허락했는데... 왜?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건데...’ “나도 알아.” 시연은 말끝을 질끈 씹듯 말했다.“당신이 그랬잖아요,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의미 없다고. 세상에 여자가 한둘도 아닌데, 그런 사람한테 매달릴 필요 없다고요...” 유건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 말, 정확히 그렇게 했었다. ‘참 잘 기억하네. 근데 내가 했던 행동들은 왜 기억 안 하지...?’ 유건은 얇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그냥 아무 말이나 뱉은 거야.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였어?” “뭐라고요...?” 시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말 바꾸는 거야?’ ‘이 인간, 진짜 뻔뻔하네.’ “우린 말 안 통해요. 난 당신처럼 무책임한 사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8화

    “고마워요.” “천만에요.” 우주는 과일 접시를 힐끗 보더니, 손가락으로 하나를 가리켰다. “누나, 이 귤, 진짜 달아.” “그래?” 시연은 가볍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물었다. “우주는 먹어봤어?” “응.” 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까 아저씨가 준 거야.” 그 말에, 시연의 웃음이 그대로 멈췄다. ‘아저씨...’ 우주의 입에서 나오는 그 ‘아저씨’는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당연히 지동성이었다. “그 사람이...” 시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저씨가 널 보러 왔었어?” “응.” 우주는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오후에 왔어.” ‘어제...’ ‘퇴원한 바로 다음 날?’ ‘그럼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우주를 보러 온 거야...?’ ‘이게 진심일까, 아니면 또 쇼일까?’ 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까지 애써야 할 이유가 대체 뭐지...?’ “누나.” “응?” 시연이 정신을 가다듬고 우주를 바라보자, 우주는 조금 머뭇거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저씨... 이제 괜찮아진 거야?” ‘뭐...?’ 시연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우주야,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 “아저씨가 그랬어.” 우주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동안 날 보러 못 온 건, 아팠기 때문이라고.” ‘왜 그런 말을 우주한테 했지...?’ 시연의 가슴이 조여왔다. “아저씨가 또 뭐라고 했는데? 무슨 병이라고 했어?” “아... 뭐라고 했냐면...” 시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진짜 말한 거야? 설마...’ “뭐라고 했는데?” 우주는 천진하게 대답했다. “감기래.” “감기...?” 그 말에 시연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그 정도로만 말했구나...’ ‘정말... 그 사람, 아직도 이중적인 사람이네.’ “누나.” 우주가 다시 입을 열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7화

    해가 채 뜨기도 전, 시연은 조용히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아는 이불 속에서 눈을 겨우 떠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몇 시야...?” “아직 이른 아침이야.” 시연은 진아의 통통한 볼을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나 우주랑 아침 먹기로 해서 좀 일찍 나가. 너는 더 자.” “응...” 진아는 듣자마자 바로 순하게 눈을 감았다. 시연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히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별산장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문을 연 건 최예민이었다. “우주 도련님은 지금 세수 중이에요. 아침에 깨우지도 않았는데, 누나 온다고 혼자 벌떡 일어나서 준비하더라고요.” 최예민은 환하게 웃으며 시연을 안으로 안내했다. “사모님, 여기 앉으세요. 아침은 다 준비됐고, 곧 가져올게요.” “고마워요.” “아이고, 뭘요. 당연한 일인데요.” 조금 뒤, 식탁 위에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이 놓이고, 화장실 문이 열렸다. “누나!” 우주가 얼굴에 물기를 머금은 채 반짝이는 눈으로 뛰어왔다. 그러고는 시연의 옆에 착 붙어 앉으며 해맑게 웃었다. “조심해!” 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작은 만둣국 한 그릇을 우주 앞에 놓아줬다. 조금 전 살짝 식혀둔 국이었다. 그래도 시연은 당부했다. “천천히 먹어. 국물 뜨거우니까.” “응! 누나 걱정하지 마. 나 조심할게!” 우주는 아주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누나도 같이 먹자!” “그럴까?” 시연도 조심히 젓가락을 들며 미소 지었다. ...그 시각, 시연의 아파트. 띠링- 초인종 소리에 진아는 부스스 일어나 문으로 갔다. 눈은 반쯤 감긴 채로 문을 열었는데, 눈이 순간 커졌다. “고, 고 대표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진아는 아직 잠옷 차림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등장에 머리도 제대로 못 가다듬은 상태였다.유건은 짧게 진아를 본 후, 바로 시선을 돌려 옆으로 몸을 틀었다. “시연이는 일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6화

    “지시연!” 유건은 눈살을 찌푸리며 시연의 손을 꽉 쥐었다. 그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지금 너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그래요, 나도 알아요.” 시연은 어이없다는 듯 눈썹을 살짝 올리며 유건을 바라봤다. “내가 당신이 한 말 몇 마디에 감동해서 울컥하고, 기분 좋아서 그 말들 다 들어줄 정도로 철없는 애인 줄 알아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유건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리고 눈동자엔 씁쓸함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나, 진심으로 너한테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어. 진심으로... 너한테...”“하지 마요.” 시연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망설임 하나 없이, 맑고 또렷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마음, 난 안 받을 거예요.”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멎은 듯 조용해졌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유건은 잠시 말이 없다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얼굴이었다. “거절할 줄 알았어. 하지만 시연아, 내가 널 좋아하는 감정은 네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내 의지로도 안 돼.” 유건은 이내 들고 있던 장미꽃을 시연 앞으로 내밀었다. “오늘 막 비행기로 도착했는데, 마음에 들어?” 시연은 말문이 막혔다. ‘이 상황에서... 꽃을 보여주면 내가 감동할 줄 아나 봐?’ 시연은 꽃은 쳐다보지도 않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안 좋아요.” 유건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아, 기분 상했나 보네. 오늘은 일단 가주는 게 딱 좋겠어.’ “장미 안 좋아해?” 유건은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알았어. 다음엔 다른 꽃으로 할게.” “뭐라고요...?” 시연은 벙찐 얼굴로 유건을 쳐다봤다. ‘지금... 난 그 말을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그런데 유건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려,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진아에게 장미꽃을 건넸다. “진아 씨, 이거 좀 꽂아줘.” “네?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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