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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임공
“지한아, 비켜.”

지한을 밀쳐낸 유건은 조금 전의 분노를 가라앉힌 채, 다시 평소와 같은 무덤덤하고 고고한 모습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가 담담히 말했다.

“무슨 일이야?”

“고유건 씨가 절 해고하게 시킨 거예요?”

“그래, 맞아.”

그가 시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대답이 됐니? 지한아, 가자.”

“예, 형님...”

“잠시만요!”

시연이 재빨리 두 걸음 뛰어서 유건의 앞을 가로막았다.

“제가 잘못했어요!”

시연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비굴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다 내 잘못이야.’

‘결혼으로 저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건 맞지만, 내가 고유건을 건드릴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건 간과했으니까!’

‘내가 주제넘은 짓을 한 거야!’

“제발요, 해고는 없던 일로 해주세요. 이 일은 제게 정말 중요한 거예요!”

그녀는 의과대학 마지막 학기의 실습 과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습의는 급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 아르바이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시연이 짙은 안개가 낀 눈빛으로 간청했다.

“제가 이랬다저랬다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이혼할게요, 동의할게요. 고...”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유건이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힘껏 움켜쥐었다.

“네가 이혼을 원하면 하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하는 거야?”

분노가 극에 달한 유건이 온몸에서 포악한 기운을 발산하며 말했다.

“네까짓 게 감히 몇 번이나 날 건드려?! 겁은 지나가던 개나 줘버린 거야?!”

이 말을 마친 그가 손을 뿌리쳤다.

“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하지만 시연이 다시 그를 막았다.

“고유건 씨!”

유건이 눈살을 찌푸렸다.

“꺼지라니까? 사람 말 못 알아들어?!”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괜히...”

시연은 그를 쳐다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발, 이번만 용서해 주세요. 저는 사는 것만으로도 힘든 사람이에요. 저는 정말 이 일이 필요해요...”

음침하고 냉담한 얼굴의 유건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허, 사는 게 힘들다고? 내 카드로 4000만 원이나 긁어 놓고?”

‘BLUE’에서 일하는 사람은 주로 2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하나는 높은 급여만을 바라본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직업을 발판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높은 급여를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유한 사람들의 애인 역할을 하면서 이득을 얻거나, 심지어는 성공적인 신분 상승을 노리기도 했다.

이런 것은 보기 드문 일도 아니었다.

‘지시연은 분명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일 거야.’

‘어쩌면 그때 산부인과 의무기록 사본에 적혀 있던 그 상처도 손님의 걸작일지도 모르지.’

순간, 유건의 얼굴에 차가운 조롱이 스쳤다.

“너 같은 인간이 부자와 결탁하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어?”

‘뭐라고? 이건 또 무슨 오명이야?’

시연이 몸을 떨며 반박했다.

“그런 적 없어요...”

“아니, 분명히 있을 거야! 그리고 확실히 알아 둬! 내가 기분이 나쁘면, 너도 기쁠 수 없어! 지한아, 가자.”

유건은 이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떠나버렸다.

시연의 아름다운 얼굴은 무표정으로 바뀌었고, 이내 이를 악문 채 눈물을 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벤틀리 뮬산 안.

유건의 노여움이 채 가지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의 장미리가 훌쩍이며 말했다.

[고 대표님! 드디어 전화를 받으시네요! 어떻게 저희를 이렇게 무시할 수 있으세요? 불쌍한 우리 소미가...]

유건의 표정이 굳어졌다.

“소미 씨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이혼을 성사하지 못한 그는 소미를 속이지 않고,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사실을 알려주었다.

[소미가 이상하다고요.]

장미리가 울며 하소연했다.

[고 대표님의 전화를 받더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계속 울기만 해요! 이러다가는 울다가 쓰러질 지경이에요!]

유건이 긴장하며 말했다.

“바로 가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씨 저택에 도착했을 때, 문은 막혀 있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한 장미리의 얼굴에는 여전히 눈물이 마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고 대표님! 고 대표님께서는 막강한 권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재산도 어마어마한 분이시잖아요. 저희처럼 영향력 없는 사람들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제발 돌아가 주세요, 우리 소미는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고요!”

이 말을 들은 유건은 마음속에 잔잔한 불안이 일었다. 그가 얇은 입술을 꼭 오므렸다.

고유건은 별로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는데, 장미리가 장소미의 어머니가 아니었더라면, 장미리가 고유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이건 저와 소미 씨의 일입니다. 꼭 소미 씨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아직도 할 말이 남은 거예요?”

장미리는 조금도 수긍하지 않았다.

“애초에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대표님이셨잖아요. 바보 같은 우리 소미는 대표님의 이혼만을 바라보며 기다렸을 뿐이고요! 그런데 이제 와서 이혼하지 않겠다니... 이게 사람을 괴롭히는 게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눈시울이 붉어진 장미리는 목이 메었다.

“돌아가세요! 고 대표님, 제발 더는 우리 소미를 해치지 말아주세요...”

장미리의 울음소리를 들은 유건은 머리가 아파왔다.

“소미 씨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고 하셨죠?”

“아이고!”

이 말을 들은 장미리가 얼굴을 가린 채 크게 울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도 소미의 운명인 거죠, 그러니까 그냥 운명에 맡겨야 하지 않겠어요?”

“엄마.”

언제 나왔는지 소미가 눈물을 글썽이며 유건을 바라보았다.

“유건 씨!”

소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뛰쳐나와 고유건의 품에 뛰어들었고,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멍해진 유건이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안았다.

“유건 씨...”

소미가 고개를 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저를 찾아온 걸 보니... 아직도 저를 원하시는 거죠? 그렇죠?”

“네.”

유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여자가 자기 멋대로 벌인 일이에요.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요.”

“네, 저는 유건 씨를 믿어요.”

“소미야!”

“엄마!”

소미가 장미리에게 간청하기 시작했다.

“유건 씨는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한 것만으로도 불쌍한 사람이에요. 저는 유건 씨의 여자 친구니까 이 사람을 이해하고 지지해야 하고요.”

“너...”

장미리는 숨이 막혔다.

“됐다! 난 이제 모르겠구나!”

“유건 씨.”

소미가 눈물을 머금은 채 미소를 지었다.

“저는 언제까지나 유건 씨를 기다릴 거예요.”

유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미 씨,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양호천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죠? 지한이한테 주선해 보라고 할게요.”

“유건 씨...”

소미는 대단히 기뻤다.

“정말 고마워요!”

“고맙게 여길 필요 없어요.”

고유건의 그녀가 웃는 것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만간 두 개의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에서 협찬에 관한 연락이 갈 거예요.”

“유건 씨!”

소미가 껑충껑충 뛰며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저한테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또 그 소리예요?”

유건이 가볍게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

“소미 씨는 내 여자예요. 내가 소미 씨한테 잘해주지 않으면, 누구한테 잘해주겠어요?”

“네, 앞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게요.”

소미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빨갛게 부어오른 그녀의 두 눈은 오랫동안 울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소미를 안은 고유건의 눈동자에 음침하고 포악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게 다 지시연 때문이야! 그깟 여자 때문에 소미 씨를 억울하고 슬프게 만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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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1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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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167화

    주말.시연은 조이를 잘 챙겨 두고 외출 준비를 했다.“엄마.”조이는 아쉬운 얼굴로 엄마를 붙잡았다.“오늘 언제 와요? 오늘은 조이랑 같이 자기로 한 날이잖아요.”어릴 때부터 시연은 조이가 혼자 잘 수 있도록 습관을 들여왔다.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엄마 품을 찾았다. 그래서 시연은 늘 주말엔 함께 자 주겠다고 약속하곤 했다.“엄마 잊지 않았어.”시연은 마음이 짠해 딸아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엄마 다녀오면 바로 옆에 있을 거야. 조이가 눈 뜨면 엄마가 꼭 곁에 있을 거야.”“정말요?”“그럼.”안심한 조이는 얌전히 엄마를 현관까지 배웅했다.“엄마, 기다릴 거예요.”“그래, 알았어.”문을 닫자, 시연의 가슴은 알 수 없는 시림으로 저렸다.‘조이가 요즘 더 나한테 의지하는 게 느껴져...’‘아저씨가 없으니까 이제 엄마밖에 없는 거겠지.’예전처럼 조이가 아저씨를 찾으며 떼쓰진 않았다. 어린 나이지만, 아이 나름대로 어렴풋이 느낀 것이다. 엄마가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아직 이렇게 어린데... 이런 눈치까지 봐야 한다니... 시연은 조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시연은 차를 몰고 은수에 도착했다. 초대장을 내밀자 안내 직원이 곧장 그녀를 홀 안으로 인도했다.벌써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화려한 분위기로 북적였다.시연은 난감해졌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이준과 아현뿐인데, 두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디 가서 뭘 하고 있어야 하지...?’“시연 언니!”익숙한 목소리가 등을 쳤다.돌아보니, 공주 드레스를 입은 아현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아현은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린 채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시연의 손을 꼭 잡았다.“언니, 진짜 왔네요? 사실 언니 안 올까 봐 걱정했어요.”“왜 안 와?”시연은 핸드백에서 정성스레 포장한 상자를 꺼냈다.“생일 축하해.”“고마워요.”아현은 선물을 받아 들며 코끝을 씰룩였다.“말했어야 했는데... 비싼 건 준비 안 해도 됐어요.”“안 비싸.”시연은 장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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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요?”시연은 놀라 눈을 크게 뜨더니, 이준을 노골적으로 훑어보았다.“근데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아현이가 성숙해 보이는 게 아니라... 선배가 너무 젊어 보여요.”남자는 원래 노화에서 여자보다 유리했다.게다가 이준은 워낙 자기 관리가 철저한 편이었다. 식습관과 생활 리듬을 지키고, 아무리 바빠도 운동을 거르지 않는 사람이었다.“아부는 그만.”이준이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내밀었다.“이거, 아현이가 너한테 꼭 전해 달라고 했어.”“저한테요? 뭐죠?”시연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받아 들고 열어 보았다.이준이 옆에서 설명을 덧붙였다.“아현이가 이번 주에 스무 살 되거든. 집에서 생일 파티를 열 건데, 꼭 언니를 초대하라고 당부하더라.”“그래요?”시연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이거 영광인데요? 저도 나름 아이들한테 인기가 있나 보네요.”이준은 피식 웃었다.“넌 나랑 동년배지만, 사실 아현이랑 나이 차이도 몇 살 안 나잖아. 그런데도 ‘아이’라고 부르는 게 웃기지 않냐? 내 눈엔 너희 둘 다 그냥 애들이야.”“에?”시연이 초대장을 확인하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장소가... ‘은수’?”은수... 한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었다.‘예전에... 유건이 한강우한테서 ‘은수’ 그 부지를 따냈을 때, 나도 한몫했었지.’그곳은 시연이 알기로 모두 고급 시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생일 파티를 한다고 쉽게 빌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이준은 그녀의 눈빛을 읽고 미리 말을 덧붙였다.“아현이 성이 ‘최’잖아. G시 최씨 가문의 딸이야. ‘은수’ 그곳에서 파티 여는 거, 당연한 거지.”G시의 최씨 가문.도시 상류층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집안이었다.‘아현이가... 그런 집안 딸이었다니.’시연은 새삼 놀랐다.아현은 어디까지나 이준을 따라다니는 귀여운 동생쯤으로만 보였으니까.늘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는 모습은... 마치 주인 없는 강아지 같았다.“그러니 꼭 와야 해.”이준은 더 말하지 않고, 두어 번 당부만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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