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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Author: 금소
백누리는 솟구쳐 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으면서 차갑게 말했다.

“은율 씨만 송년회에 초대받은 줄 알았어요?”

그 말에 고은율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두 사람은 같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고 나이가 비슷했지만 백누리의 인기가 더 많았다.

고은율은 백누리가 자신을 얕잡아 볼 거라고 예상했으나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낼 줄 몰랐다.

그녀는 현장에 기자가 없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웠다.

누군가가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어서 유포한다면 회사 선배가 후배를 괴롭힌다는 타이틀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면 고은율은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대중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환하게 웃으면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누리 언니, 그런 뜻이 아니란 걸 알잖아요.”

고은율은 말하면서 옆에 서 있는 민하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민하윤 씨, 안녕하세요.”

이때 고은율의 뒤에 있던 직원이 깜짝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뭇사람들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그 직원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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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89화

    주민혁은 화를 내기는커녕 되레 비웃었다. 손을 들어 재단부터 남다른 셔츠 소매로 입가의 피를 쓱 닦아냈다.“왜? 내가 고은율을 좋아한다고 형이 열받은 거야? 나 사람 잘못 안 봤네. 형은 고은율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아끼잖아.”백누리는 그들의 대화를 도무지 따라가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다가, 건장한 남자들에게 가로막혀 있는 임형섭을 발견하자 곧바로 민하윤을 그의 품으로 밀어 넣었다.하도진의 얼굴은 끝까지 냉담했다. 임형섭이 휘청이는 민하윤을 손 뻗어 받쳐 드는 걸 똑똑히 보면서도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았다.“다들 네가 아내를 맞았다고는 하는데 나만 알지.”주민혁이 갑자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잇새에 피가 가득 묻어 그 웃음이 섬뜩하기까지 했다.“형이 사랑하는 건 고은율이야. 내가 진작 알아야 했는데... 형은 고은율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잖아.”하도진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그래서. 어쩌라고.”하도진은 정말 부정하지 않았다.민하윤은 눈을 내리깔았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는 바람에 임형섭의 정장 자락이 구겨졌다.주민혁은 몸을 비틀며 구질구질하게 바닥에서 일어났다. 감각 없는 왼쪽 종아리를 질질 끌며 눈빛을 시퍼렇게 세운 채,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형이 고은율을 아낄수록... 난 더 부숴버리고 싶어지거든.”하도진의 동공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그 증오로 들끓는 눈을 마주한 순간, 그는 처음으로 자기에게도 약점이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그래서 더더욱 민하윤에게 단 한 치의 관심도 드러낼 수 없었다. 주민혁 같은 미친놈이 아주 작은 틈새도 놓치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아직도 거기 서 있을 거예요?”하도진이 고개를 돌려 백누리를 보며 툭 말을 던졌다. 민하윤 쪽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백누리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민하윤의 손목을 잡아끌고 밖으로 뛰기 시작했다.주민혁은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에 다른 계산이 스쳤다.하도진은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88화

    주민혁은 피를 한 번 토해냈다. 회색 실크 셔츠는 바닥에 쓸린 탓에 여기저기 구멍이 나 너덜너덜했다. 그는 비웃듯 웃으며 퉁퉁 부은 얼굴로 서로 기대어 있는 두 여자를 힐끔 올려다봤다.“하도진, 이제 숨길 수가 없나 보네? 내가 네가 아끼는 사람을 건드렸어? 대체 누군데? 어느 여자야?”주민혁의 음산한 시선이 입은 열지 못하지만 방금까지 그의 욕망을 들끓게 했던 여자에게 곧게 박혔다. 일부러 말끝을 길게 늘이며 도발적인 시선으로 매혹적인 여자에게로 옮겼다.“얘? 아니면... 쟤야?”민하윤은 저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원수 정도가 아니었다. 원한이 엉겨 붙은 사적인 복수에 가까웠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하도진은 말없이 손등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거칠게 숨을 골랐다. 검은 눈동자에 서늘한 빛이 번뜩였지만 일부러 엉뚱하게 받아쳤다.“주민혁, 여자한테 손대는 게 사내가 할 짓이야?”‘여자?’주민혁은 눈을 굴렸다. 아까부터 날을 세우던 그 말재주가 센 여자를 위아래로 훑더니, 피섞인 침을 퉤 뱉으며 비웃었다.“뭐야, 고은율로도 만족이 안 돼서 밖에 다른 애인까지 둔 거야? 난 그냥 한 번 밀었을 뿐인데, 아직 뭘 어쩌지도 않았거든. 그런데도 형이 이렇게 미친 듯이 발작하네. 설마... 저게 내가 한 번도 못 본 형수님인가? 그럼 나야 제대로 인사해야지.”하도진은 일부러 해명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민하윤 옆에 선 여자를 바라보며, 부드럽고도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어디 다친 데 없어요?”백누리는 놀람과 기쁨이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하도진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몇 배는 더 거대해졌다.‘저 사람이 늘 여자에게 관심 없다는 그 차가운 대사가 맞아? 이렇게 다정할 수도 있어?’영웅이 미인을 구하는 뻔한 장면인데 이상하게 하나도 촌스럽지 않았다.백누리는 감격해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하 대표님, 저는 괜찮아요.”그러다 백누리는 민하윤의 손을 꽉 잡고는 표정을 확 바꿨다.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87화

    주민혁이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그는 손을 들어 백누리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고, 음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봤다.“말재주가 꽤 대단한데? 입이 아주 야무지네.”눈앞의 주민혁은 완전히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이었다. 큰 병을 앓고 막 회복한 사람처럼 피부는 창백했고, 핏기 하나 없었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 독사 같은 시선이 백누리 뒤편의 민하윤을 집요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마치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듯했다.백누리는 얼굴을 홱 돌렸다. 더는 이 남자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민하윤을 등 뒤로 감추며 말했다.“대화가 안 통하네요. 그럼 신고해서 처리하죠.”그러자 주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한발 물러서며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듯 손짓했다. 두려움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오히려 기대하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좋아. 어디 네가 어떤 경찰을 불러서 날 체포하게 만들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제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에게 하나둘씩 밖으로 안내되며 흩어졌다. 백누리는 눈앞의 오만한 주민혁을 보며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주민혁은 백누리를 거칠게 밀쳐냈다. 그리고 곧바로 민하윤의 손목을 낚아챘다. 가느다란 뼈가 손바닥에 박힐 만큼 얇아 오히려 그의 손이 아플 정도였다. 주민혁은 일부러 민하윤의 목덜미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탐욕스럽게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차갑고도 달큼한 향이었다. 이름 모를 차가운 나무 향에, 은근히 따뜻한 오렌지 블로섬이 섞인 듯한 냄새였다. 주민혁은 손목을 놓지 않은 채 장난치듯 목가에 더 가까이 붙어, 다시 한번 길게 들이켰다.민하윤은 공포에 질려 눈을 크게 떴다. 필사적으로 뒤로 빠지려 했지만, 손목이 단단히 잡힌 탓에 꼼짝도 못 했다. 흰 셔츠 너머로 스치는 남자의 뜨거운 숨결에 숨이 턱 막혔다.“뭘 그렇게 무서워해? 내가 누군지 알면 날 따라온 걸 후회 못 할 텐데.”주민혁은 민하윤이 겁에 질린 모습을 즐기듯, 달래는 척 낮은 목소리로 귓가를 간질였다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86화

    백누리는 상대의 감정을 달래 보려는 듯, 최대한 낮은 자세로 화해를 청했다.“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일부러 부딪친 게 아니에요. 어디 다치셨어요? 병원 가셔야 하나요? 제가 치료비랑 검사비는 전부 부담할게요.”민하윤은 아직 계단을 오르지도 못한 채 백누리 뒤에 서 있었다. 속은 타들어 가는데,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자신은 말로 설명조차 할 수 없으니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치료비? 병원?”주민혁이 갑자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웃음과 함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백누리는 그 변화를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조건이 먹힌 줄 알고,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얼른 덧붙였다.“그것 말고도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면 다 맞춰 드릴게요. 예를 들면... 휴업 손해, 영양비, 정신적 피해 보상 같은 것도요.”사실 민하윤은 알고 있었다. 저 남자는 그렇게 크게 다친 게 아니었다. 애초에 넘어진 것도 스스로 균형을 제대로 못 잡은 탓이 컸다.하지만 백누리는 사정이 달랐다. 이런 장면이 누군가에게 찍혀 온라인에 퍼지는 순간, 영상 몇 초만으로도 ‘인기 여배우가 일반인을 일부러 들이받았다’는 식으로 여론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었다. 경쟁사가 기사 몇 개만 더 얹어도, 백누리의 커리어는 그대로 박살 날지도 몰랐다.“어떠세요? 괜찮으실까요?”백누리는 끝까지 표정을 관리했다. 말 한마디도 삐끗하면 안 됐다. 심지어 웃기까지 하며 조건을 한 번, 또 한 번 양보했다.그러자 주민혁이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좋아. 네가 내 어떤 조건이든 다 들어줄 수 있다며?”주민혁은 난간을 짚고 서더니 갑자기 백누리의 머리 위에 있던 모자를 휙 들어 올렸다.“오호... 제법 미인인데?”그러고는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그럼 나랑 하룻밤 자. 내가 만족할 때까지 말이야.”백누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당장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억지로 눌러 삼키는 순간, 누군가가 백누리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뒤돌아보니 민하윤의 맑고 깨끗한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85화

    민하윤은 끝내 그 재킷을 벗어 백누리의 어깨에 그대로 걸쳐 줬다. 얇디얇은 드레스 차림을 못마땅하다는 듯 흘겨보며 말했다.백누리는 남자의 정장 재킷을 꼭 여미자, 찬바람에 굳어 있던 몸이 조금 풀리는 게 느껴졌다. 감동한 듯 눈을 깜빡이더니, 길게 늘어뜨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하윤아, 넌 정말 착해... 너는 안 추워?”민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임형섭 씨가 나한테 화내면 어떡해? 널 주려고 챙겨 준 옷을 내가 입어 버렸으니... 임형섭 씨가 기분 상하면 어쩌지?”백누리는 민하윤의 팔에 착 달라붙어 득을 봐 놓고도 더 얄밉게 굴었다. 일부러 이상한 말을 해대며 임형섭을 긁으려는 속셈이었다.임형섭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최소한의 매너는 지켰다. 무엇보다 임형섭은 속으로부터 민하윤의 선택을 존중했다. 바람보다 차갑고 밋밋한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안 그래요.”백누리는 임형섭의 반응이 시큰둥해지자 금세 흥미를 잃었다. 재킷을 더 꼭 여미며 코끝을 스치는 향을 들이마셨다. 분위기가 차갑고 단정한 화이트티에 가까운, 은은한 나무 향이 살며시 스며들었다.‘이 남자, 되게 무심한 척하면서... 향수는 또 뿌리네.’매니저가 길가에 백누리의 페라리를 세워 뒀다. 새빨간 4인승 오픈카였다. 백누리는 차 키를 허공으로 휙 던져 임형섭에게 건네고는 발을 동동 굴리며 뒷좌석으로 뛰어 올라탔다.민하윤도 무심코 따라 타려 했지만, 백누리가 손으로 가차 없이 밀어냈다.“넌 앞에 타. 난 다른 사람하고 붙어 있는 거 싫어.”임형섭은 백누리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린 듯, 조용히 민하윤을 한 번 보고는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민하윤이 앉는 걸 확인한 뒤 문을 살짝 닫아 줬다.백누리는 백미러로 임형섭을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어때요? 이 옷을 나한테 입혀 준 거, 안 아깝죠?”임형섭은 대꾸 대신 오픈카 지붕을 닫고 히터를 올렸다.붉은 페라리가 레스토랑 현관 앞에 멈춰 섰다.“먼저 들어가요. 주차하고 갈게요.”임형섭이 조수석의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84화

    두 사람은 초봄의 밤 속으로 조용히 모습을 숨긴 채, 임형섭이 곁에 있는 허연을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하윤아, 누가 봐도 임형섭 씨는 너한테 마음 있는 거 다 보이는데. 너도 슬쩍 신호 줘서... 청혼하라고 떠밀 생각 없어?”백누리가 눈을 깜빡이며 어깨로 민하윤을 툭 건드렸다.“설마 일부러 널 자극하려고 이 프로그램까지 나온 거 아니야?”민하윤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임형섭 사이가 결코 불건전하거나 선을 넘은 관계가 아니었지만... 민하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자, 날이 어두워졌으니 오늘 야외 촬영은 여기까지입니다. 해산합시다!”감독이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손을 휘저었다.방금까지 모니터 속에서 웃고 떠들던 남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표정을 거두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스태프들은 테이블을 치우고 소품과 조명을 정리하느라 분주해졌다.캠핑장의 별빛 전구가 한순간에 꺼지고, 길가에 세워 둔 차량 헤드라이트만 어둠을 뚫고 켜져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임형섭은 외투 단추 하나를 풀며 다리를 꼬고 앉아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임형섭은 입력창에 몇 글자를 망설이며 찍다가 보내기 직전, 다시 지우기 버튼을 눌러 대화창을 깨끗하게 비워 버렸다.백누리는 얇은 롱드레스에 가벼운 겉옷만 걸친 채, 초봄 밤바람에 덜덜 떨며 발을 동동 굴렀다. 손바닥에 입김을 불어 넣으며 투덜댔다.“임형섭 씨는 머리 어디 고장 났나? 촬영 끝났는데도 저기 앉아 있네.”민하윤은 말없이 임형섭을 바라봤다. 알고 지낸 세월이 길어서인지, 임형섭이 무언가를 자신에게 숨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원래 임형섭은 유난히 조용했고, 과한 관심을 질색했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다.‘그런데 왜 이런 연애 예능에 나오게 된 걸까?’백누리가 욕을 한마디 내뱉더니 성큼성큼 임형섭 앞으로 걸어가, 길가 차량의 전조등을 몸으로 막아섰다. 그러자 임형섭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임 팀장님, 진짜 기억력이 그 정도예요? 우리 같이 저녁 먹기로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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