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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1화

Auteur: 금소
식탁 위 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했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대로 거실에 모여 앉아 티비를 보며 웃었다.

하준혁이 시간을 한번 확인하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화가 회의 끝났을 시간인데 내가 데리러 갔다 올게.”

“다녀와.”

하진석은 하도진에게 한껏 기분이 풀린 얼굴로 손을 휘휘 저어 보이더니 돋보기를 쓴 채 바둑판을 다시 들여다봤다.

반대편 소파에서는 김옥자가 똑같이 돋보기를 쓰고 민하윤의 손바닥을 아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보던 김옥자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너는 말이야. 복이 타고났어. 일도 잘 풀리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팔자야.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자식 복이 깊어. 아들도 있고 딸도 있어.”

민하윤은 민망하게 웃으며 김옥자에게 얌전히 손을 맡겼다.

김옥자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몸을 앞으로 숙였다.

“하윤아, 할머니한테 솔직히 말해 봐. 너희는 언제쯤 아이 가질 생각이니? 할머니가 아는 아주 잘하는 한의사가 한 분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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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68화

    비는 여전히 내렸다. 민하윤은 우산을 펼쳐 차를 빙 돌아 하도진 쪽 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한꺼번에 차 안으로 밀려들며 따뜻한 공기를 순식간에 흩트렸다. 하도진은 얇은 입술이 가늘게 떨릴 만큼 추위에 몸을 웅크리며 힘겹게 내렸고, 담요는 뒷좌석에 툭 떨어졌다.민하윤은 까치발을 들고 하도진의 머리 위로 우산을 바짝 붙였다. 빗방울 하나라도 더 맞을까 봐.그런데 하도진은 민하윤의 뒤에서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과 사선으로 튀어 들어오는 비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다음 순간, 하도진이 민하윤을 확 끌어안았다.민하윤은 아무 준비도 못 한 채, 하도진의 품으로 그대로 쓸려 들어갔다. 뜨겁게 달아오른 하도진의 입술이 민하윤의 차가운 이마를 스치듯 닿았다. 민하윤은 얼어붙은 채 서 있었고, 머리 위에서는 빗소리가 탁탁 쏟아졌다.하도진이 쉰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그렇게 비를 맞고 싶으면, 그냥 흠뻑 젖어. 아주 물먹은 병아리처럼 말이야.”비웃는 말투가 가득했다. 민하윤은 얼굴이 확 달아오른 채 급히 까치발을 더 세웠다. 키 차이가 너무 나서 우산을 하도진에게 제대로 씌우려면 어쩔 수 없었다.바람이 세게 몰아치며 실처럼 가는 빗방울이 우산을 비스듬히 때렸다. 민하윤은 하도진의 얇은 셔츠를 보자 더는 참지 못하고 하도진의 손목을 잡아 병원 쪽으로 끌었다.하도진은 잠깐 굳어 서 있다가, 몇 초 뒤 민하윤의 손을 도리어 꽉 잡았다. 하도진의 입꼬리가 얄밉게 올라갔다.“손잡고 싶으면 그냥 말해. 내가 못 잡게 하겠어?”민하윤은 하도진의 옆얼굴을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고는 걸음을 더 빠르게 옮겼다. 민하윤은 하도진이 열 때문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아니면 이런 뻔뻔한 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하도진이 숨을 거칠게 삼키며 낮게 말했다.“천천히 가... 나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아.”젖은 셔츠 위로 찬바람이 들이치자 하도진의 얼굴은 더 창백해졌다. 발끝은 푹푹 꺼지는 것처럼 힘이 풀렸고 하도진은 버티려고 민하윤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67화

    민하윤은 허리를 숙여 차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히터 바람이 실처럼 스며들며 피부를 덮쳤다. 민하윤은 반사적으로 손을 비볐다. 명원시 초봄 비는 얇게 내려도 한기가 깊었다. 잠깐 걷기만 했는데도 뼛속까지 시렸다.하도진이 우산을 접고 온몸에 찬 기운을 달고 민하윤의 옆자리에 앉았다. 하도진은 가죽 가방을 하나 내밀었다. 민하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잠깐 망설이다가 받아 들었다.안에는 두툼한 담요가 들어 있었다. 민하윤은 괜히 튕기지 않고 그대로 몸에 둘렀다. 그제야 체온이 서서히 올라오며 한기가 풀렸다.그때 하도진이 고개를 돌리더니, 예고도 없이 크게 재채기했다. 민하윤은 곧장 미간을 찌푸리고 하도진을 바라봤다. 민하윤은 뒤늦게 하도진은 아직 환자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도진은 어젯밤에도 열이 올랐었다.“집으로 가자.”하도진은 이마가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젖어 축축한 셔츠가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입술에는 핏기가 옅었다. 입을 여는 순간 쉬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운전기사는 앞만 보며 히터 온도를 조금 더 올리고, 속도를 조심스레 끌어올렸다.민하윤은 담요를 두르고 있다가 하도진의 옷차림을 힐끗 봤다. 얇은 검은 색 셔츠의 단추는 두 개나 풀려 있었고 소매도 걷어 올려 팔뚝이 드러나 있었다.‘아픈 주제에... 왜 저렇게 잘난 척하는 거야.’명원시의 초봄은 여전히 추웠다. 민하윤은 담요를 더 꽉 끌어안고 창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일부러 하도진과 거리를 벌린 채 눈을 감고 잠든 척했다.하도진은 거친 숨을 삼키면서 가끔 기침했다. 비록 눈은 감고 있었지만 민하윤의 마음은 뒤죽박죽이었다. 차는 고속도로 다리 위를 빠르게 달렸다. 하도진은 팔짱을 낀 채, 비에 젖은 반쪽 몸을 떨고 있었고, 심지어 이가 딱딱 맞부딪쳤다.젖은 셔츠는 차갑고 축축하게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다. 빗물이 서서히 몸속으로 파고드는 기분이었는지 하도진의 어깨가 더 깊게 움츠러들었다.그때 담요가 툭 하고 하도진 쪽으로 넘어갔다. 민하윤이 대충 덮어 준 모양새였다. 담요에는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66화

    민하윤은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 복잡한 감정이 가슴에 엉겨 붙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근심을 너무 오래 품지 말게나. 몸은 천천히 회복해야 해.”홍수철은 먹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처방전 두 장을 민하윤 앞쪽으로 밀어주고는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아가씨 몸 건강을 아가씨보다 더 신경 쓰는 사람이 있더군.”민하윤은 그 말 속뜻을 알아차렸다. 민하윤은 고개를 천천히 숙인 채, 처방전을 꼭 쥐었다.“됐어. 진료는 봤으니 그만 가게나. 처방전은 아래층 아줌마에게 주면 약은 알아서 지어 줄 거야.”홍수철이 손을 휘휘 저었다.하도진은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어르신.”“아니야. 자네가 나를 다시 명원시로 불러들이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어. 그 정은 이 늙은이도 다 기억하고 있네.”홍수철은 정말 피곤한 기색이었다.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옆의 등나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쉬었다.하도진과 민하윤이 앞뒤로 계단을 내려오자, 아래층에서 아주머니가 막 뜨거운 차 두 잔을 들고 올라오려던 참이었다.“아이고, 결국 한발 늦었네요. 얼른 앉아서 따뜻한 차라도 마셔요. 처방전은요?”민하윤은 두 손으로 처방전을 건넸고, 아주머니가 내민 찻잔도 거절 못 하고 받았다.“복령백합차예요. 복령은 은근히 달고, 백합은 향이 맑아서 부드럽고 피부에도 좋아요. 아가씨한테 딱 어울려요. 두 분은 여기 좀 앉아 계셔요. 제가 약 지어 올게요.”아주머니는 처방전을 맞춰 보며 약장을 열고, 능숙하게 약재를 집어 담기 시작했다.뜨거운 물기가 도자기 잔을 타고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따가울 만큼 뜨거운데도 민하윤은 잔을 놓지 못했다. 민하윤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자꾸만 하도진 쪽을 힐끔거렸다.사과해야 했다. 그런데 민하윤은 어떻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다.하도진 쪽도 마음이 복잡해 보였다. 찻잔 위로 둥둥 떠다니는 국화잎만 오래 바라보다가, 홍수철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심병은 심약이 있어야 한다네. 난 이 병을 고치지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65화

    하도진은 홍수철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그제야 확실히 알아챘다. 홍수철은 명원시에서 손꼽히는 명의였다. 침을 놓든, 맥을 짚든 늘 확실하게 결론을 냈다. 이렇게 난감한 기색을 길게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었다.“어르신...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홍수철이 붓을 멈췄다.“맥이 가늘고 가라앉은 것뿐이면 그나마 다행이지. 방금 심통인 맥까지 잡혔네. 큰 상 같은 충격 이후에 나타나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에서 종종 보이는 맥인데, 맥이 가늘면서도 딱딱해... 마치 칼날을 만지는 느낌이야. 게다가 오른쪽의 맥에는 슬픔이 엉겨 붙은 듯한 거친 요동이 있다네. 마음 깊은 곳에 풀어내지 못한 고통과 감당 못 할 비애가 그대로 박혀 있다는 뜻이지.”홍수철은 민하윤을 의미심장하게 한 번 바라봤다.“난 민하윤 씨의 병을... 못 고치겠네.”그 말이 떨어지자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하도진의 얼굴이 굳었다. 이런 말을 홍수철의 입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하도진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순간, 민하윤의 여윈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몇 년이 지났어도 그 사고는 끝나지 않은 채, 민하윤의 마음 안에서 계속 자라고 있었다. 오래도록 웃지 못했고, 오래도록 입맛이 없었고, 오래도록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민하윤은 홍수철의 말을 듣는 순간, 얼굴빛이 확 변했다. 오늘은 그저 몸을 추슬러 보자는 마음으로 따라온 것뿐이었다. 민하윤은 적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게 하도진 쪽 문제라고만 믿고 있었다.‘나도... 문제가 있다고?’민하윤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이대로라면 평생 엄마가 될 기회조차 없는 걸까.’민하윤은 떨리는 손으로 급히 손짓했다.[저... 많이 아픈 건가요? 왜 못 고친다고 하세요?]홍수철은 수어를 알아보지 못해 하도진을 바라봤다.하도진은 한순간 멍해졌다. 오기 전부터 최악의 경우는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 병을 못 고친다는 말을 직접 들으니 가슴 한쪽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도진은 민하윤이 말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64화

    하도진이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기운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오게나.”민하윤은 아무리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달라질 건 없었다. 민하윤은 하도진이 민하윤의 손목을 잡아 이끄는 대로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문턱을 넘자마자 두 사람의 시선을 확 빼앗았다. 서재라기보다 진료실에 가까웠다. 커다란 책장에는 한의학 고전과 약리학 서적이 빼곡했고, 벽에는 혈 자리 그림이 가득 붙어 있었다. 책상 위엔 이미 써 둔 처방전이 수북했다.큰 통유리창 하나가 방 한 면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는데 방향이 별장 대문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었다.백발의 노인은 눈빛이 또렷했고, 기세도 전혀 꺾이지 않았다. 귀도 밝고 눈도 맑아 보였다. 홍수철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도진을 노려봤다.“자네가 기어이 나를 다시 불러들이지만 않았어도, 내가 어쩌다 이렇게 바빠지겠나. 어디서 소문이 샜는지, 문 앞에 선물 들고 오는 사람들에, 맥 짚어 달라 약 달라 조르는 사람들에... 요즘은 매일 두 시진씩 침까지 놓고 있다네. 예전 연구원 다닐 때보다 더 바쁘니...”하도진이 웃으며 능청스럽게 받았다.“바쁘신 게 아니라, 홍 어르신께서 원래 마음이 약하셔서 그래요.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못 참고 결국 다 받아 주신 거잖아요. 선물은 죄다 돌려보내고, 진료비랑 약재비만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어르신은 원래 그런 분이면서 꼭 인정은 안 하시죠. 마음이 정말 돌처럼 단단하셨으면 애초에 이렇게까지 안 하셨을 텐데요.”말 몇 마디에 얼굴이 풀린 홍수철이 허허 웃었다.“자네는 참 말도 예쁘게 하는군... 그런 말재주로 이렇게 예쁜 아내를 얻었나 보지?”민하윤은 말은 못 해도 눈치만큼은 빨랐다. 방금 말 속에 깔린 뉘앙스를 바로 알아차리고 허리를 살짝 굽혀 정중히 인사했다.“그렇게까지 예의 차릴 것 없네. 앉게나.”홍수철은 한결 누그러진 얼굴로 민하윤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봤다.민하윤은 책상 옆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민하윤 씨의 상태는 대충 들었네. 한의학은 망문문절이라 하지. 손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63화

    민하윤은 그 자리에 멍하니 굳었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하도진은 자신이 감정이 격해졌다는 걸 깨닫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빗물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고, 우산은 기울어진 채로 이번에는 민하윤 쪽으로 더 많이 기울어 있었다.하도진은 민하윤을 위해 우산을 받쳐 든 채, 쏟아지는 빗속을 함께 걸었다. 별장의 안뜰엔 이름 모를 약초들이 심겨 있었고, 은근한 한약 냄새가 비에 섞여 퍼졌다.처마 아래에는 물기가 조금 묻은 마른 약초 한 광주리가 놓여 있었다. 하도진이 우산을 접어 긴 우산을 벽에 기대어 두자, 우산 끝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민하윤은 잠깐 망설이다가 젖어 드는 약초를 손으로 갈라 한쪽으로 밀고, 대나무 광주리를 벽 쪽으로 옮겨 남은 약초가 더 젖지 않게 했다.하도진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복도 아래에서 말없이 민하윤을 바라봤다. 민하윤은 피부가 유난히 뽀얗고, 손목뼈가 가늘었다.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한 올이 휘어진 눈썹을 가볍게 가렸고, 카키색 트렌치코트에 물빛 긴 바지, 흰 하이힐, 단정한 차림이 오히려 민하윤의 몸매를 더 또렷하게 살렸다. 움직임은 가볍고, 분위기는 묘하게 문학적이었다.하도진은 순간 넋을 놓고 보고 말았다.명원시 재벌 가문의 도련님들에게는 예쁜 여자가 넘쳤다. 미대의 어린 학생들, 스튜디오의 모델들, 애매하게 뜨고 애매하게 잊히는 여배우들... 심지어 그들이 드나드는 곳에는, 얇은 유니폼을 입고 룸을 오가는 여자들도 수두룩했다.하도진은 예쁜 얼굴을 가진 여자들을 너무 많이 봐 왔다. 그런데도 누구도 민하윤만큼 예쁘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얼굴선에, 수정처럼 투명한 두 눈, 그리고 무엇보다 고집과 단호한 표정이 가장 선명했다.민하윤은 바닥 틈에서 기어 올라온 난초처럼 역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명력이 있었다.하도진은 어떤 여자에게도 이렇게 오래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자꾸만 시선이 가고, 또 보게 됐다. 희고 긴 목선, 곧게 뻗은 다리... 그러다 보면 마음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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