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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1화

Author: 금소
민하윤이 항도시에 막 도착했을 때는 낯선 땅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었고 당장 몸을 담을 집조차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은 비교적 순조로웠다는 점이었다.

지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곧바로 전담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것이었다. 민하윤은 업무를 명확히 나누고 총행 운영 방식을 엄격하게 기준 삼아 체계를 손봤다. 그 결과 3분기 수익은 꽤 만족스러울 만큼 잘 나왔다.

민하윤은 낮에는 은행에서 일에 매달렸고 퇴근 후에는 중개인을 만나 집을 보러 다녔다.

두 달 가까이 틈틈이 집을 본 끝에 민하윤은 결국 시내 중심가의 작은 아파트 한 채를 계약했다. 방 세 개에 거실 하나, 욕실 두 개, 주방 하나 있었고 월세는 매달 월급의 30% 정도나 잡아먹었다.

하지만 아파트의 입지는 훌륭했다. 집만 나서면 도시 최대 상권과 중심지였고 지하철로 15분이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은 22층이었고 거실에는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었고 침실에는 작은 발코니도 있었다. 민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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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21화

    민하윤이 항도시에 막 도착했을 때는 낯선 땅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었고 당장 몸을 담을 집조차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그나마 다행인 건 일은 비교적 순조로웠다는 점이었다.지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곧바로 전담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것이었다. 민하윤은 업무를 명확히 나누고 총행 운영 방식을 엄격하게 기준 삼아 체계를 손봤다. 그 결과 3분기 수익은 꽤 만족스러울 만큼 잘 나왔다.민하윤은 낮에는 은행에서 일에 매달렸고 퇴근 후에는 중개인을 만나 집을 보러 다녔다.두 달 가까이 틈틈이 집을 본 끝에 민하윤은 결국 시내 중심가의 작은 아파트 한 채를 계약했다. 방 세 개에 거실 하나, 욕실 두 개, 주방 하나 있었고 월세는 매달 월급의 30% 정도나 잡아먹었다.하지만 아파트의 입지는 훌륭했다. 집만 나서면 도시 최대 상권과 중심지였고 지하철로 15분이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집은 22층이었고 거실에는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었고 침실에는 작은 발코니도 있었다. 민하윤은 그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인 항도시를 끌어안듯이 기지개를 켰다.민하윤은 딱 5분 만에 중개인과 계약서를 썼다. 집은 풀옵션에 가까운 깔끔한 인테리어였고 새 세탁기와 새 매트리스만 주문한 뒤 바로 짐을 들고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항도시는 인재 창업을 적극 장려하고 있었다.지점 대출 심사 창구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섰고 예약 업무는 한때 포화 상태였다.정부의 신속 행정 기조에 맞춰 은행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전 직원이 매일같이 업무 처리와 심사 절차에 매달렸다.지점장인 민하윤은 대부분의 시간을 외부 협력 사업을 뛰는 데 쏟았다. 국영기업, 외자 유치, 정부 프로젝트까지 석 달 내내 쉴 틈 없이 뛰고 나서야 민하윤은 비로소 항도시가 인재를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몸으로 실감했다.민하윤은 항도시에서 술을 배우게 되었다.은행 지점장인 민하윤이 중년 남성 자본가들 한가운데 끼어 술자리를 버텨야 하는 현실은 성별이 만들어 내는 보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20화

    “그래서요? 태유 은행이랑 협업하는 그 프로젝트를 중단하자는 겁니까?”하도진은 손가락 사이로 볼펜을 천천히 돌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읽히지 않는 표정이었다.하도진은 비웃듯 짧게 웃더니 이내 말했다.“저는 오히려 외부 은행과 협업하는 게 득이 더 크다고 보는데요?”“꼭 중단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종합적으로 다시 평가한 뒤 결정하자는 취지입니다.”보고하던 부대표는 그제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곧바로 말을 고쳐 잡으며 조심스럽게 하도진의 말에 맞췄다.“협업 프로젝트가 전혀 장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결국 핵심 판단 기준은 협업 은행의 업무 역량이니까요.”“맞는 말이네요. 그룹의 이익을 생각하면 태유 은행의 업무 역량은 다시 평가해 볼 필요가 있죠.”하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명인을 불렀다.“서 비서, 그 프로젝트 담당인 신용대출부 팀장한테 연락해서 나랑 따로 만날 스케쥴을 잡아.”하도진도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그래도 오늘 헛수고는 아니었고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민하윤을 다시 만날 명분이 생겼으니까 말이다.목적을 이뤘으니 하도진은 더는 이 자리에 앉아 여우 같은 인간들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하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정장 단추를 채웠다.“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하도진은 사무실로 돌아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만 가만히 바라보다가 몇 번이고 조급하게 손목시계를 확인했다.그사이 진호영에게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하도진은 거의 반사적으로 바로 받았다.귀에 대자마자 진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형, 뭘 그렇게 전화를 빨리 받아? 누구 전화라도 기다리고 있었어?”하도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거의 동시에 대화창에 물음표 하나가 떴다.[?][무슨 뜻이야? 들으니까 형이 다시 돌싱이 됐다며? 좀 아깝긴 하네. 전에 형수님은 꽤 괜찮았는데...]연달아 뜨는 진호영의 메시지를 보다 못한 하도진은 결국 인내심이 끊어졌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19화

    민하윤이 명원시를 떠나던 날은 유난히 하늘이 끝없이 맑고 높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민하윤은 혼자 두 개의 캐리어를 부치고 선글라스를 쓴 채 탑승 대기실에 앉아 안내 방송을 들었다. 민하윤은 임형섭과 백누리가 배웅하겠다는 걸 정중히 사양했다. 이별의 순간만큼은 혼자 감당하고 싶었다.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떠오르자 젊고 예쁜 승무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승객들에게 휴대폰을 비행 모드로 전환해 달라고 안내했다.민하윤은 귓불에 꽂은 귀걸이를 빼 급하게 핀처럼 썼다.그리고 휴대폰 안의 유심을 꺼내 손가락 끝으로 조용히 반으로 부러뜨렸다.거의 동시에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굉음이 귀를 울리자 민하윤의 가슴도 순간 먹먹하게 아파져 왔다.민하윤은 창가 아래를 내려다봤다.둥실둥실 뭉친 새하얀 구름 사이로 예전 명원시에서 올려다보던 화려하고 높은 빌딩들이 지금은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안녕, 명원시.”민하윤은 눈을 감자 이명과 어지럼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하도진은 통유리창 앞에 서 있다가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었다.한낮의 햇살은 눈이 부실 만큼 강했다.그때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명인은 하도진에게 10분 뒤에 열릴 주주총회에 맞춰 참석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올해는 예전과 많이 달랐다.하도진은 회의실에 마지막으로 입장했다.느긋하게 정장 재킷 단추를 풀고 긴 다리를 꼰 채 가장 편한 자세로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하도진의 태도는 느슨했지만 분위기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타고난 리더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풍겼다.“다들 앉으시죠. 지난주, 아버지께서 보유하고 계시던 지분 전부를 제게 넘기셨습니다. 이제는 쉬실 나이가 되셨으니까요. 여러 어르신과 임원진 여러분, 오늘부터 저는 정식으로 에스티 그룹 대표직을 맡게 됩니다. 임명장은 회의가 끝난 뒤 각자 사내 메일로 발송될 겁니다. 이견 있으신 분은 따로 저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시죠.”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전부 산전수전 다 겪은 여우 같은 사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18화

    민하윤은 술기운이 확 깬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그리고 백누리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했다.“내가 다시 말을 하게 됐다는 건 아무한테도 알리고 싶지 않아.”백누리는 순진하고 여린 타입이 아니었다.이런 진흙탕 같은 연예계에서 버텨 낸 건 단지 예쁜 얼굴 하나 덕분만은 아니었다.민하윤이 아무한테 말하지 말라는 대상이 누구를 뜻하는지 백누리는 바로 알아들었다.이혼한 전남편 하도진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근데 후회는 안 되냐? 진짜 솔직히 말해서 성격이랑 인성 빼면 하도진은 진짜 미쳤잖아. 몸매, 분위기, 얼굴, 집안... 하나씩 떼어 놔도 전부 끝판왕이야. 진짜 돌아버릴 정도로 좋지. 그래서 다들 누구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기술이라고 하나 봐. 연예계에 하도진의 침대로 기어들어 가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널렸어. 나도 예전에 머리에 물이 찼었나 봐. 네 앞에서 하 대표랑 첫사랑 여자 얘기나 떠들고 말이야. 너희 이혼한 데 나도 지분 좀 있는 것 같아서 괜히 찔리네.”백누리의 얼굴에는 잠깐 미안한 기색이 스쳤다.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고 곧바로 본색이 튀어나왔다.“그런데 나 진짜 궁금한 건 따로 있어. 하도진이 진짜 소문처럼 그 방면에서 별로야? 아니 그렇게 잘생기고 그렇게 끝내주는 남자인데 잠자리가 별로라면 그건 그냥 겉모습만 좋은 거잖아.”술까지 들어가자 백누리는 더 대담해졌고 두 사람이 나누는 화제도 점점 부끄러운 쪽으로 흘렀다.민하윤의 얼굴에 수상할 정도로 붉은 기운이 확 돌았다.민하윤은 시선을 내리깔고 물었다.“도진 씨가 그 방면에서 별로라는 얘기는 어디서 나온 거야?”백누리는 혀를 차며 이미 다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다들 그렇게 말해. 그런 급의 남자는 연예계에서도 거의 희귀종 취급이잖아. 감히 범접도 못 할 사람이야. 그런데 그 방면에서 약하고, 조루, 발기부전이라는 소문이 돌고 나서 여자 중에 열에 여덟은 환상이 깨졌어. 입으로는 그런 남자랑 한 번만 사귀어도 여한 없다고 하지만 정작 그쪽이 문제 있으면 다들 제일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17화

    명원시를 떠나기 하루 전, 민하윤은 훠궈 재료와 맥주가 가득 든 주머니를 들고 백누리가 촬영 중인 현장으로 찾아갔다.혼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캠핑카 안에 냄비를 올리고 재료를 가지런히 펼쳐 놓고 잔도 두 개 꺼내 씻었다. 사 온 맥주와 작은 매실주도 한쪽에 보기 좋게 늘어놓았다.민하윤은 미리 백누리의 매니저에게 연락해 야간 촬영 스케쥴을 확인했고 일부러 오늘을 골라 찾아온 거였다.그때 머리에 온갖 비녀와 장식을 꽂고 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팬들과 인사를 마친 백누리가 차에 올라탔다.백누리는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아마 밤샘 촬영이 없는 날이라서 그런 모양이었다.백누리는 심지어 입에 막대사탕까지 물고 있었다.민하윤을 보자마자 백누리의 눈이 반짝였다.“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네가 여기까지 온 거야?”민하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 뚜껑을 열자 얼얼한 마라 훠궈 향이 순식간에 차 안을 가득 메웠다.백누리는 순간 멍해졌다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들이마시더니 그대로 민하윤을 와락 끌어안았다.백누리는 손을 크게 휘둘러 매니저에게 돈을 두둑이 보내 주면서 매니저더러 가서 맛있는 걸 먹고 오라고 했다.그렇게 되어 민하윤과 백누리는 맥주를 마시며 훠궈를 먹었다.백누리는 촬영 세트장에 바비큐까지 배달시켜 놓았다.그러다 보니 어느새 두 사람은 어느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백누리는 턱을 괸 채 눈 끝까지 붉어진 얼굴로 앉아 있다가 갑자기 특유의 까칠한 성격이 튀어나온 듯 탁자를 세게 치며 벌떡 일어섰다.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민하윤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너 진짜 의리 없네. 비밀 결혼에 유산까지... 대체 나한테 얼마나 더 숨긴 거야? 네가 이렇게까지 대단한 줄 알았으면 진작 우리 대표님이랑 자라고 부추겼지. 사모님까지 됐으면 내가 고은율보다 더 으스댔을 거라고...”민하윤은 그 말에 결국 웃음을 터뜨렸고 입술을 삐죽 내밀고 눈을 깜빡이더니 이혼증명서를 탁자 위에 툭 내려놨다.“안됐네. 네 꿈은 산산조각 났어. 난 그 사람이랑 이미 끝났거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16화

    누군가 성장하는 와중에는 반드시 귀인이 필요했다.민하윤이 신용대출부에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허민영의 세심한 가르침 덕분이었다. 온갖 대출 사례와 회사의 대출 프로젝트를 빠르게 익히고 태유 은행 안에서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다 허민영의 덕이었다.“살이 너무 빠졌어요. 항도시에 가면 생활용품부터 제대로 갖춰 놓고 밥도 잘 챙겨 먹고 일찍 자야 해요.”엄마 같은 다정한 잔소리에 민하윤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임형섭은 신용대출 부서 앞에서 민하윤을 기다리고 있었다.마치 대학 시절처럼 자연스럽게 민하윤의 가방을 받아서 들었고 민하윤의 7년을 고스란히 담은 상자까지 품에 안았다.밖에 숨어 있던 이남주는 괜히 분위기를 울컥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민하윤 앞에서 울어 버려 괜히 민하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런데 막상 민하윤의 얼굴을 보자 눈가가 금세 붉어진 이남주는 입을 틀어막은 채 그대로 민하윤의 품으로 와락 안겼다.“진짜 바보스럽네요. 명원시에서 잘 다니고 있었으면서 꼭 거기까지 가야 해요?”이남주는 말하면서 코끝을 훔쳤다.좋은 상사를 만나는 건 직장인에게 정말 큰 복이었다.민하윤은 아마 이남주가 평생 본 사람 중 가장 감정 기복이 없는 사람이었다.정말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침착했다.한 번도 부하 직원 앞에서 표정을 굳힌 적이 없었고 누구한테 날카롭게 몰아붙인 적도 없었고 책임을 떠넘기거나 압박을 준 적도 없었다.민하윤은 늘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고 차분했다.이남주가 인턴이었을 때 그녀의 상사도 바로 민하윤이었다.그때 이남주는 다른 은행에서 태유 은행으로 이직해 온 상태였다.최상위 프라이빗뱅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혀 몰랐고 시장 대응 업무에서도 실수를 연발했다.민하윤은 말할 수가 없었지만 누구보다 섬세했다.이남주가 화장실에서 눈가가 붉어진 채 나오는 걸 보고도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그리고 다음 날, 민하윤은 이남주에게 핵심만 정리한 두툼한 종이 자료 한 뭉치를 건넸다.민하윤은 프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98화

    다들 고은율의 신분을 묵인했다. 오직 서명인만이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교통사고 같은 큰 일을 집안 어른들에게 얘기하지 않는 것은 어른들을 괜히 걱정시키는 일이라서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하도진과 결혼하여 그의 아내가 된 민하윤에게까지 비밀로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게다가 아내도 아닌 고은율까지 이 사실을 아는데 정작 하도진의 아내인 민하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건 이상했다.서명인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간 뒤 거듭 망설이다가 민하윤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세리 엔터에서 나오자마자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247화

    명원시 국제 공항.탑승교 출구는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민하윤은 흰 셔츠에 청바지, 그 위로 검은 트렌치코트를 걸친 채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냈다. 옅게 번진 다크서클을 어떻게든 가리려는 몸부림이었다.해외 자금 프로젝트는 고작 일주일 만에 정리됐다. 현지 회사 법무팀이 자료를 죄다 정리해 한 장의 소장을 만들어, 오염된 원료를 납품한 해외 업체를 법정에 세웠다. 협력 은행 직원인 민하윤 일행도 당연히 따라붙어 야근했다. 시차도 못 풀고 회의실에 모여 과일이니 간식이니 음료니 다 갖춰 놓은 채, 몇 날 며칠을 밤새웠다.예정보다 일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100화

    구준오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도진아, 뭐 찾는 거야?”하도진은 자신이 보고 싶던 사람을 찾지 못해 조금 실망했으나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아 감정을 추스른 뒤 덤덤히 말했다.“서 비서는?”서명인은 조금 놀랐다. 그동안 수년간 묵묵히 고생하며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하도진의 비서가 된 보람이 있었다. 하도진은 비록 평소에는 차갑고 냉정하며 무자비해 보였지만 큰 고비를 넘긴 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서명인을 찾았다.서명인은 감동을 받고 코를 훌쩍이면서 횡설수설 말했다.“저 여기 있어요. 대표님, 무슨 지시 있으신가요?”하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309화

    감독은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며 난처한 얼굴을 했다. 최대 투자자에게 이 얘길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뭐... 말씀하기 곤란한 사정이라도 있어요?”고은율이 먼저 부드럽게 분위기를 풀었다. 고은율은 하도진의 팔을 더 꼭 끼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하 대표님은 겉보기에는 무뚝뚝해 보여도,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니에요. 걱정되는 게 있으면 편하게 말씀하세요.”감독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감독은 결국 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투자자가 결국 결정을 내릴 사람이니 임시로 출연자를 추가할지 말지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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