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화

Author: 금소
민하윤은 황급히 집사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 긴 복도를 걸었다. 하도진의 본가는 예스러운 느낌이 강했다. 민하윤의 치맛자락이 짙은 갈색의 원목 마루 위를 스쳐 지나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것은 조용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줄곧 말이 없던 집사가 복도 끝자락에 있는 방문을 두드린 뒤 몸을 돌려 민하윤에게 말했다.

“깨끗한 옷을 준비해 드렸으니 들어가셔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집사는 복도 끝에서 모습을 감췄다. 민하윤은 이 드레스를 계속 입고 있을 수가 없었기에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떨리는 손으로 살짝 열린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 역시 복도처럼 예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였다. 텅 빈 방 안에서는 우드 향이 은은히 풍기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방 안쪽에 있는 남자의 옷방에는 흰 셔츠와 정장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유리 진열장 안에는 아주 비싸 보이는 손목시계들이 가득했다.

민하윤은 타인의 영역에 무단 침입한 기분이 들어 감히 앞으로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곳은 누가 봐도 남자의 방이었다.

“그 더러워진 옷을 언제까지 입고 있을 거야?”

순간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민하윤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때 그 남자였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앞을 가로막고 실눈을 뜬 채로 그녀를 살펴보았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민하윤은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손목을 틀어쥐고 그녀의 예쁜 얼굴부터 시작해 그녀의 평탄한 복부를 바라보았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귀신에 홀린 듯이 물었다.

“누구 거야?”

민하윤은 하도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도진을 바라보았다.

하도진은 민하윤에게 서서히 다가가며 그녀를 서랍장 쪽으로 몰아넣었다. 두 사람은 체구 차이가 꽤 컸기에 민하윤은 하도진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고집스레 고개를 돌려서 하도진의 거친 호흡과 날카로운 시선을 피했다.

하도진은 큰 손으로 민하윤의 가녀린 허리를 쥐며 힘주어 민하윤을 위로 끌어당겨 서랍장 위에 앉혔다. 하도진은 민하윤을 지긋이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 애냐고.”

뒤늦게 그의 의도를 눈치챈 민하윤은 본능적으로 배를 끌어안고 화가 난 얼굴로 하도진을 노려보았다.

민하윤은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했고, 참을성이 좋지 않은 하도진은 민하윤의 손목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대답해.”

더러워진 드레스에서 술 냄새와 캐비어의 비린내가 났다. 절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역겨운 냄새가 자꾸만 올라와 민하윤은 온 힘을 다해서 하도진을 밀어낸 뒤 도망치듯 욕실로 달려가서 세면대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계속했다.

하도진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욕실 문에 기대어 있었다.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짐작이 갔다. 그날 밤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밤새 마음껏 즐겼었기 때문이다.

하도진은 본능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민하윤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고 담배를 버렸다.

“이런 일로 같잖은 수작 부리려고 하지 마. 너 같은 여자는 그동안 많이 봐왔으니까.”

하도진은 남 일처럼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임신하면 신분 상승할 수 있을 줄 아나 본데 나는 그날 밤 조치를 취했어.”

하도진은 예전에 검진을 통해 불임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지 않아 대충 핑계를 둘러댔다.

민하윤은 수도꼭지를 잠근 뒤 거울 속 하도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금 전 누구 아이냐고 물었던 하도진의 질문을 떠올렸다.

민하윤은 몸을 돌린 뒤 처연하게 웃어 보였다.

[임신 아니에요.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인내심이 점점 닳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손짓해도 난 이해하지 못해. 어찌 됐든 아이를 이용해서 신분 상승할 생각은 하지 마.”

평정심을 되찾은 하도진은 진호영이 그날 밤 여자에게 거액의 돈을 주었다고 한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다.

민하윤은 돈을 받고 그와 잠자리를 가졌으면서 다음날 바로 정숙한 척했다.

게다가 갖은 수단을 이용해 하씨 가문 어르신 하진식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여 은근히 그의 눈에 띄려고 했다.

민하윤은 손짓을 멈춘 뒤 방 안에서 종이와 펜을 찾아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얼굴로 글을 썼다.

[걱정하지 말아요. 그쪽한테 매달릴 생각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쪽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어요.]

서예를 배운 적이 있는 사람처럼 정갈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글씨체였다. 하도진은 종이 위에 적힌 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글씨체는 눈앞의 가녀리고 야윈 민하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하도진은 민하윤이 쓴 글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그것을 대충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다.

“옷은 침대 위에 있어. 갈아입고 나와.”

민하윤은 굳이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무겁고 불편한 드레스는 캐비어와 술 때문에 이미 더러워졌기에 민하윤은 하도진이 나간 걸 확인한 뒤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하도진의 본가에는 젊은 여자들이 입을 법한 옷이 많지 않았다. 집사는 하도진 할머니의 뜻에 따라 긴 원피스를 준비했다. 그것은 실력 좋은 디자이너가 손수 만든 원피스였는데 맑은 푸른색이라 색깔도 예쁘고 옷감도 굉장히 좋았다. 그 원피스를 입은 민하윤은 몸매가 돋보였고 아름다웠다.

민하윤은 그 원피스로 갈아입은 뒤 더러워진 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벽에 기대어 서 있던 하도진은 인내심이 닳았는지 인기척을 듣고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하도진은 사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민하윤의 일 때문에 심경이 복잡했다.

나른한 자태로 벽에 기대어 선 하도진은 손에 담배를 들고 있었다. 연기 너머로 민하윤의 얼굴과 몸매가 서서히 뚜렷해졌다.

희고 매끄러운 피부, 길고 완벽한 목선, 낮게 묶은 머리, 거기에 푸른색 원피스까지. 하도진의 시선이 민하윤의 가슴을 지나 가녀린 허리, 그리고 마지막에는 얇은 발목에 닿았다.

하도진은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민하윤을 바라보았고, 민하윤은 저도 모르게 더러워진 드레스로 몸을 가렸다.

민하윤의 쑥스러워하는 모습에 하도진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와 함께했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아른아른한 조명 아래, 하도진은 민하윤의 매혹적인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민하윤의 피부, 몸 선 모든 게 또렷하게 떠올랐다.

촉촉한 눈동자와 붉은 입술, 머리에서 나던 좋은 향기, 긴장한 듯한 표정, 하도진의 등을 할퀴었던 손톱, 목에 남았던 깨문 흔적...

하도진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앞에 원피스를 입고 선 민하윤과 그날 밤 그녀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 아주 매혹적이었다.

민하윤은 오랫동안 억눌렀던 하도진의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 사건이 있은 뒤로부터 하도진은 저도 모르게 여자들과 더 거리를 두었다. 그러면서 그날 밤도 술기운 때문에 벌어진 뜻밖의 사고라고 치부했다.

그러나 민하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그의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하도진은 담배를 비벼 끈 뒤 복도에 놓여 있던 비싼 골동품 안에 버렸다. 하도진이 너무 태연하게 쓰레기를 버려 민하윤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저 작은 백자 접시가 귀한 골동품인지, 하도진의 쓰레기통인지 헷갈렸다.

민하윤은 속으로 하도진을 나무라고 있다가 고개를 드는 순간 하도진의 경멸 어린 눈빛을 마주하게 되었다.

“여기는 어떤 수단을 써서 온 거야?”

민하윤은 자신이 태유 은행 신용대출팀을 대표하여 파티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민하윤은 본능적으로 수화를 하려 했으나 하도진이 짜증을 내며 재촉했다.

“됐어. 내 앞에서 손짓하지 마. 나는 이해 못 하니까. 대신 네가 한 말은 꼭 지켜.”

민하윤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하도진은 덤덤한 눈길로 민하윤의 복부를 힐끗 본 뒤 자리를 떴다.

민하윤은 일부러 거리를 벌리며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그의 뒤를 따라갔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172화

    나지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조금 전에 아침을 먹었는데 괜찮을까요? 혈액 검사를 하는 줄 알았다면 먹지 않았을 거예요.”“일반적인 혈액 검사를 할 때는 밥을 먹어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간호사는 체온계로 민하윤의 체온을 재더니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아직 미열이 있네요. 무리하지 마시고 누워서 푹 쉬세요.”“미리 가서 등기하거나 예약해야 하나요?”나지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러자 간호사는 능숙하게 링거를 꽂으면서 말했다.“주치의 선생님께서 예약하셨으니 시간에 맞춰 내려가면 돼요.”나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간호사가 나간 뒤, 그녀는 민하윤에게 이불을 덮어주었고 메모장에 뭐라고 적었다.[4층에서 채혈하고 2층에서 폐 CT를 찍어야 한다]“제가 대표님께 연락해서 말씀드릴까요?”그러자 민하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며칠 동안 바쁠 테니 이런 일로 연락하지 마세요. 별일 아닌 걸로 유난 떠는 것 같잖아요.]“하지만 사모님은 대표님의 아내예요. 대표님은 남편으로서 사모님의 상태를 알아야 하고 보살펴야죠. 아내가 무슨 검사를 받고 몸 상태가 어떤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나지혜는 뭐라고 더 말하려 했지만 도로 삼켰다. 외부인이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다.링거를 다 맞은 후, 간호사는 빈 링거 통을 가지고 나갔다.나지혜는 카디건을 민하윤에게 건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대표님께 그래도 말씀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퇴원한 후에 연락해도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민하윤은 더 이상 이 화제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한 뒤, 두 사람은 천천히 걸어 나왔다.원래 피부가 하얀 민하윤은 앓아누운 탓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오늘따라 채혈하는 사람이 많아서 한참 동안 기다려야만 했다.나지혜는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요즘 감기가 돌고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171화

    고은율은 차갑게 웃으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먹이던 여자의 눈에 살기가 맴돌았다.“도진아, 내가 너를 배신했다고 하지 마. 네가 나한테 결혼하자고 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야. 나보다 네 이익이 더 먼저였고 나한테 상처를 주었잖아.”하도진은 고개를 들고 눈앞의 청순한 여자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두 눈은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고 독기가 서려 있었다.“늦었으니 일찍 쉬어. 내일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면 알겠지.”그는 외투를 집어 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적당히 하고 자.”고은율은 하도진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녀는 온몸을 덜덜 떨면서 굳게 닫힌 문을 쳐다보았다.“도진아,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어. 네가 그 벙어리를 이토록 사랑할 줄 몰랐거든.”다음 날 아침, 따스한 햇살이 병실에 내려앉았다. 잠에서 깬 민하윤은 창밖을 내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명원의 겨울은 늘 추웠는데 오늘따라 날씨가 유난히 좋았다.나지혜는 분주히 움직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을 만들어서 식탁에 올려놓았다.“사모님, 외투를 걸치세요.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으니 조금만 기다려줘요.”민하윤은 넋을 잃은 채 높게 늘어선 건물과 길을 가득 채운 차량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쪽으로 걸어가면서 미소를 지었다.[맛있어 보여요. 아주머니, 잘 먹을게요.]“사모님, 많이 드세요. 고양이는 며칠 사이에 살이 올라서 더 귀여워졌어요. 퇴원한 후에 고양이를 별장에 데리고 갈게요.”그 말에 민하윤은 환하게 웃더니 수어로 고마움을 전했다.[정말 감사해요.]“사모님, 대표님께서 좋은 병실을 마련해주었네요. 병실이 아니라 집인 줄 알았어요.”나지혜는 따뜻한 죽을 그릇에 담아서 가지고 왔다. 향긋한 냄새가 방 안에 퍼졌고 저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민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죽을 먹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나지혜는 미소를 지은 채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이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170화

    고은율은 감정이 솟구쳐 올랐고 코끝이 찡했다. 7년 동안 함께한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불을 거두고는 하도진의 품에 안겼다. 뱀처럼 천천히 옭아매면서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매끄러운 팔, 가는 허리와 길게 뻗은 다리...그녀가 목을 감싸안자 하도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고은율은 그가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을 보고 마음을 연 줄 알았다. 자연스럽게 벨트를 풀려고 할 때 하도진이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았다.“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도진아,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래. 너는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잖아.”고은율은 말하면서 그의 손을 가슴팍에 올려놓았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7년 동안 그녀의 곁을 지켜준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도진아, 너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네가 나를 먼저 배신했잖아.”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고은율은 울먹이면서 하도진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7년이나 만났지만 너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잖아. 네 곁에 당당하게 서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7년을 너에게 바쳤어. 그런데 어떻게 다른 여자랑 결혼할 수가 있어?”“고은율, 너에게 빚진 걸 하나씩 갚고 있잖아.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었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었어.”하도진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이불을 그녀에게 덮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갑게 물었다.“촬영하다가 우연히 다친 거야? 아니면 네 계획인 건가?”하도진은 그녀의 연기에 속을 만큼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7년 동안 사귄 정을 봐서라도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았다.그 말에 고은율은 피식 웃더니 두 눈에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다 알면서 왜 묻는 거지?”“대역 배우가 있었지만 직접 연기하겠다고 나섰다가 다쳤어.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169화

    하도진은 옷을 갈아입은 후에 긴 다리를 뻗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더럽혀진 셔츠를 바닥에 던졌다.서명인은 하도진 외의 다른 것에 눈길을 주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하윤의 상태는 좀 어때? 저녁에 밥을 먹었어?”하도진은 엄숙하게 말하면서 셔츠 단추를 두 개 풀었다. 그 말에 서명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도진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똑바로 말하지 못해?”“사모님은 제가 병실에서 나올 때까지 주무시고 있었고요.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고열에 시달려서 몸이 피곤한지 오후 내내 깨어나지 않았어요. 간호사 말에 의하면 사모님의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대요. 상태를 확인하러 온 간호사가 발견하고 지혈했어요.”하도진은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링거를 다 맞을 때까지 하윤 곁에 있었어야지. 왜 여기에 온 거야?”서명인은 어이가 없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이 이 밤중에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라고 해서 온 거잖아요. 그러게 왜 옷을 더럽힌 거죠? 사모님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다른 여자의 연락을 받아도 가지 않았을 거예요.”하도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그러자 서명인은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사모님 곁에는 아주머니가 계시니까 안심하세요. 마음 편하게 고은율 씨의 곁에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지금 나를 가르치려고 드는 건가?”눈치 빠른 서명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민하윤을 동정하는 건 맞지만 하도진의 비서로서 아무 말 없이 명령에 따라야만 했고 대표의 사생활에 간섭할 자격이 없었다.하도진은 뒤척이는 고은율을 힐끗 쳐다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고은율이 다쳤다는 걸 하윤이 알면 안 돼.”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내일 고은율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볼 생각이야. 국군병원에 갈 수 없으니 대학 병원을 예약해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168화

    민하윤은 인상을 찌푸린 채 기사 사진을 저장하고는 기사 내용을 캡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은율의 신분을 밝힌 그 댓글처럼 이 기사도 사라질 것이다.그녀는 링거를 다 맞을 때까지 버티려고 했지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민하윤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깊은 잠에 들었다. 얼마 후, 서명인이 들어와서 그녀를 깨웠다.“사모님, 일어나셨어요?”서명인은 그녀가 기절한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잠에서 깬 민하윤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누군가를 찾았지만 서명인 외에 아무도 없었다.“대표님께서는...”그는 민하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미소를 지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직접 나서야 할 일이 생겨서 급히 그쪽으로 가셨어요. 아주머니께서 지금 오고 계시니 안심하세요.”그 말에 민하윤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도진 씨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 언제 와요?]서명인은 싱긋 웃고는 예의 있게 대답했다.“대표님은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바로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사모님, 걱정하지 말고 푹 쉬세요. 일을 처리한 뒤에 사모님을 뵈러 온다고 하셨어요.”얼핏 들으면 아무런 흠집도 못 찾아낼 만큼 완벽한 대답이었지만 표정만은 숨길 수 없었다.민하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서명인을 힐끗 쳐다보더니 휴대폰을 꺼내 기사를 검색했다.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에 본 그 기사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는 이 모든 게 꿈인 줄 알고 갤러리를 눌렀다.아까 저장한 기사 사진과 캡처 화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건 꿈이 아니라 하씨 가문에서 나선 결과였다.그들은 하도진의 곁에 고은율이 있든 민하윤이 있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하도진이 연예계 기사에 오르내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민하윤은 고개를 숙인 채 심호흡하면서 감정을 추슬렀다. 그녀는 연약한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뜨거운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민하윤은 입술을 깨문 채 씁쓸하게 웃으면서 생각에 잠겼다.‘민하윤,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겠어? 네가 바라는 건 전부 욕심에 불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167화

    민하윤은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차갑게 웃더니 호출 벨을 눌렀다.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졌고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밀차를 밀고 들어오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남편분은 어디에 가셨어요? 환자분은 상태가 불안정해서 보호자 없이 혼자 있으면 안 되니까 지금 연락해서 오라고 하세요. 보호자가 오면 저쪽에 와서 사인하라고 전해주시고요.”민하윤은 멈칫하더니 저도 모르게 수어로 대답했다.[조금 전에 일이 있어서 나갔어요. 저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간호사는 그녀가 말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머쓱하게 웃었다.“자세한 상황을 몰라서 실수했네요. 링거를 하나만 더 맞고 나서 호출 벨을 누르세요. 나중에 보호자가 오면 사인해도 되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요.”민하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에 잠겼다. 조용한 병실에 누워 이남주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녀가 맡은 프로젝트를 인수인계한 후에 서정아에게 이번 주는 보러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인터넷에 기사가 여러 개 떴지만 별로 관심이 없어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 기사 제목을 확인한 민하윤은 두 눈을 의심했다.[촬영장에 나타난 신비로운 남자, 다친 여배우를 보살피다]민하윤은 심호흡하고는 떨리는 손으로 기사 제목을 눌렀다. 화면이 빠르게 바뀌더니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사극 복장을 한 여배우를 한 남자가 안아 올리는 장면이었다. 남자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매체에서 그 남자가 착용한 시계의 브랜드와 가격을 알아낸 후에 공개했다.민하윤은 전 세계에 단 세 개뿐인 이 시계를 본 적이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하도진이 착용하고 있던 시계였다.하씨 가문을 상대로 원본 사진을 공개할 수 없었던 매체는 모자이크 처리했다. 현장에 있던 누군가가 몰래 찍은 사진을 게시했지만 역시나 얼굴을 가렸다.네티즌은 복장과 소품을 통해 스카이 영화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드라마 중에 어느 것인지 알아냈다.소설을 각색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