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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Penulis: 금소
민하윤은 황급히 집사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 긴 복도를 걸었다. 하도진의 본가는 예스러운 느낌이 강했다. 민하윤의 치맛자락이 짙은 갈색의 원목 마루 위를 스쳐 지나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것은 조용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줄곧 말이 없던 집사가 복도 끝자락에 있는 방문을 두드린 뒤 몸을 돌려 민하윤에게 말했다.

“깨끗한 옷을 준비해 드렸으니 들어가셔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집사는 복도 끝에서 모습을 감췄다. 민하윤은 이 드레스를 계속 입고 있을 수가 없었기에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떨리는 손으로 살짝 열린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 역시 복도처럼 예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였다. 텅 빈 방 안에서는 우드 향이 은은히 풍기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방 안쪽에 있는 남자의 옷방에는 흰 셔츠와 정장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유리 진열장 안에는 아주 비싸 보이는 손목시계들이 가득했다.

민하윤은 타인의 영역에 무단 침입한 기분이 들어 감히 앞으로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곳은 누가 봐도 남자의 방이었다.

“그 더러워진 옷을 언제까지 입고 있을 거야?”

순간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민하윤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때 그 남자였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앞을 가로막고 실눈을 뜬 채로 그녀를 살펴보았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민하윤은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손목을 틀어쥐고 그녀의 예쁜 얼굴부터 시작해 그녀의 평탄한 복부를 바라보았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귀신에 홀린 듯이 물었다.

“누구 거야?”

민하윤은 하도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도진을 바라보았다.

하도진은 민하윤에게 서서히 다가가며 그녀를 서랍장 쪽으로 몰아넣었다. 두 사람은 체구 차이가 꽤 컸기에 민하윤은 하도진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고집스레 고개를 돌려서 하도진의 거친 호흡과 날카로운 시선을 피했다.

하도진은 큰 손으로 민하윤의 가녀린 허리를 쥐며 힘주어 민하윤을 위로 끌어당겨 서랍장 위에 앉혔다. 하도진은 민하윤을 지긋이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 애냐고.”

뒤늦게 그의 의도를 눈치챈 민하윤은 본능적으로 배를 끌어안고 화가 난 얼굴로 하도진을 노려보았다.

민하윤은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했고, 참을성이 좋지 않은 하도진은 민하윤의 손목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대답해.”

더러워진 드레스에서 술 냄새와 캐비어의 비린내가 났다. 절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역겨운 냄새가 자꾸만 올라와 민하윤은 온 힘을 다해서 하도진을 밀어낸 뒤 도망치듯 욕실로 달려가서 세면대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계속했다.

하도진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욕실 문에 기대어 있었다.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짐작이 갔다. 그날 밤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밤새 마음껏 즐겼었기 때문이다.

하도진은 본능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민하윤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고 담배를 버렸다.

“이런 일로 같잖은 수작 부리려고 하지 마. 너 같은 여자는 그동안 많이 봐왔으니까.”

하도진은 남 일처럼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임신하면 신분 상승할 수 있을 줄 아나 본데 나는 그날 밤 조치를 취했어.”

하도진은 예전에 검진을 통해 불임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지 않아 대충 핑계를 둘러댔다.

민하윤은 수도꼭지를 잠근 뒤 거울 속 하도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금 전 누구 아이냐고 물었던 하도진의 질문을 떠올렸다.

민하윤은 몸을 돌린 뒤 처연하게 웃어 보였다.

[임신 아니에요.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인내심이 점점 닳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손짓해도 난 이해하지 못해. 어찌 됐든 아이를 이용해서 신분 상승할 생각은 하지 마.”

평정심을 되찾은 하도진은 진호영이 그날 밤 여자에게 거액의 돈을 주었다고 한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다.

민하윤은 돈을 받고 그와 잠자리를 가졌으면서 다음날 바로 정숙한 척했다.

게다가 갖은 수단을 이용해 하씨 가문 어르신 하진식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여 은근히 그의 눈에 띄려고 했다.

민하윤은 손짓을 멈춘 뒤 방 안에서 종이와 펜을 찾아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얼굴로 글을 썼다.

[걱정하지 말아요. 그쪽한테 매달릴 생각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쪽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어요.]

서예를 배운 적이 있는 사람처럼 정갈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글씨체였다. 하도진은 종이 위에 적힌 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글씨체는 눈앞의 가녀리고 야윈 민하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하도진은 민하윤이 쓴 글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그것을 대충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다.

“옷은 침대 위에 있어. 갈아입고 나와.”

민하윤은 굳이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무겁고 불편한 드레스는 캐비어와 술 때문에 이미 더러워졌기에 민하윤은 하도진이 나간 걸 확인한 뒤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하도진의 본가에는 젊은 여자들이 입을 법한 옷이 많지 않았다. 집사는 하도진 할머니의 뜻에 따라 긴 원피스를 준비했다. 그것은 실력 좋은 디자이너가 손수 만든 원피스였는데 맑은 푸른색이라 색깔도 예쁘고 옷감도 굉장히 좋았다. 그 원피스를 입은 민하윤은 몸매가 돋보였고 아름다웠다.

민하윤은 그 원피스로 갈아입은 뒤 더러워진 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벽에 기대어 서 있던 하도진은 인내심이 닳았는지 인기척을 듣고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하도진은 사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민하윤의 일 때문에 심경이 복잡했다.

나른한 자태로 벽에 기대어 선 하도진은 손에 담배를 들고 있었다. 연기 너머로 민하윤의 얼굴과 몸매가 서서히 뚜렷해졌다.

희고 매끄러운 피부, 길고 완벽한 목선, 낮게 묶은 머리, 거기에 푸른색 원피스까지. 하도진의 시선이 민하윤의 가슴을 지나 가녀린 허리, 그리고 마지막에는 얇은 발목에 닿았다.

하도진은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민하윤을 바라보았고, 민하윤은 저도 모르게 더러워진 드레스로 몸을 가렸다.

민하윤의 쑥스러워하는 모습에 하도진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와 함께했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아른아른한 조명 아래, 하도진은 민하윤의 매혹적인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민하윤의 피부, 몸 선 모든 게 또렷하게 떠올랐다.

촉촉한 눈동자와 붉은 입술, 머리에서 나던 좋은 향기, 긴장한 듯한 표정, 하도진의 등을 할퀴었던 손톱, 목에 남았던 깨문 흔적...

하도진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앞에 원피스를 입고 선 민하윤과 그날 밤 그녀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 아주 매혹적이었다.

민하윤은 오랫동안 억눌렀던 하도진의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 사건이 있은 뒤로부터 하도진은 저도 모르게 여자들과 더 거리를 두었다. 그러면서 그날 밤도 술기운 때문에 벌어진 뜻밖의 사고라고 치부했다.

그러나 민하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그의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하도진은 담배를 비벼 끈 뒤 복도에 놓여 있던 비싼 골동품 안에 버렸다. 하도진이 너무 태연하게 쓰레기를 버려 민하윤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저 작은 백자 접시가 귀한 골동품인지, 하도진의 쓰레기통인지 헷갈렸다.

민하윤은 속으로 하도진을 나무라고 있다가 고개를 드는 순간 하도진의 경멸 어린 눈빛을 마주하게 되었다.

“여기는 어떤 수단을 써서 온 거야?”

민하윤은 자신이 태유 은행 신용대출팀을 대표하여 파티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민하윤은 본능적으로 수화를 하려 했으나 하도진이 짜증을 내며 재촉했다.

“됐어. 내 앞에서 손짓하지 마. 나는 이해 못 하니까. 대신 네가 한 말은 꼭 지켜.”

민하윤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하도진은 덤덤한 눈길로 민하윤의 복부를 힐끗 본 뒤 자리를 떴다.

민하윤은 일부러 거리를 벌리며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그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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