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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금소
아래층 거실에는 하진석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온 손님들이 가득했다. 사람들 틈 사이에서 아주 정정해 보이는, 붉은색의 정장을 입은 백발의 노인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거실 중앙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연한 핑크색의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두 노인이 나란히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민하윤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다 긴장 때문에 발을 헛디뎌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고 하자 본능적으로 자신이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을 붙잡았다.

계단에서 구를 뻔했던 민하윤의 허리를 큰 손이 받쳐주었다. 민하윤은 하도진의 품 안에 쏙 안기게 되었다.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하도진이 살짝 화가 난 얼굴로 민하윤에게 따져 물었다. 그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하도진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고 겁을 먹은 민하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민하윤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며 감히 하도진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수많은 손님들이 정원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도진의 뒤에 있는 민하윤을 알아본 것인지 쑥덕댔고 하도진의 할머니는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도진아, 얼른 내려오지 않고 거기서 뭐 하니?”

하도진은 화를 참으며 자신의 품에 안긴 민하윤을 밀어낸 뒤 건방진 모습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들은 두 사람을 몰래 훔쳐보면서 그들 사이에 수상한 점은 없는지 찾아내려고 했다. 민하윤은 집사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던 것이, 선배의 부탁대로 선물을 들고 파티에 참석한 것이 후회되었다.

민하윤은 천천히 하도진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한 지우며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곳에서 도망칠 생각이었다.

민하윤은 눈에 띄지 않는 구석 자리에 조용히 숨어서 하진석의 말을 들었다.

하도진은 민하윤이 임신했다는 사실에 여전히 짜증이 나 있었다. 놀랍기도 하고 또 새로운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하도진은 확실히 불임이었다. 어렸을 때 많이 아픈 적이 있던 하도진은 약을 잘못 먹어 불임이 되었다. 그동안 하도진의 할머니는 손주를 보고 싶어서 불공을 드린다는 핑계를 대며 몰래 의사를 제누오로 보내 하도진의 병을 치료하려고 했다.

그 방면으로 유명한 의사라면 모두 만나 봤었다. 그리고 고은율도 하도진이 약을 꾸준히 먹게끔 그를 설득하기도 했었다.

그동안 하도진은 고은율을 위해 줄곧 해외에서 머물렀었다. 상류층에서는 그것도 하나의 미담이었다.

하도진이 그동안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건 불임이라는 병의 역할이 컸다. 불임 같은 병은 타향에서 치료해야 외부로 말이 새어 나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도진은 아주 오랫동안 남녀 관계에서 자극을 느끼지 못했으나 민하윤과 보냈던 그날 밤에는 엄청난 쾌락을 느꼈다.

“형, 대체 저 여자랑 무슨 사이야? 위층으로 올라간 지 꽤 됐는데 진짜 그냥 옷만 갈아입은 건 아니지? 형 정말 1초도 아까워하는구나... 저 여자가 그렇게 좋아?”

진호영은 빠르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꺼져.”

“알겠어.”

진호영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는 민하윤을 바라보여 태연한 얼굴로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민하윤은 기민한 감각으로 누군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상대방의 현명함이 느껴지는 눈빛을 마주 보았다. 남자의 시선이 너무도 뜨거운 탓에 민하윤은 불편함을 느꼈다. 사람들 틈 사이에 숨으려고 해봐도 소용없었다.

파티는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선배가 부탁한 일도 끝냈으니 민하윤은 손님들이 하진석을 둘러싸고 웃고 떠들고 있을 때 몰래 파티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민하윤은 또 다른 싸늘한 시선이 자신에게 닿은 걸 느꼈고 고개를 드는 순간 마침 그와 시선이 마주치게 되었다. 잠깐 그와 시선을 주고받은 민하윤은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다.

택시에 타고 나서도 민하윤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심장이 쿵쾅대며 미친 듯이 뛰었다.

낯선 번호로 끊임없이 전화가 걸려 왔다. 민하윤이 몇 번이나 전화를 끊었음에도 상대방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민하윤은 전화를 받았고 전화 너머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하윤, 지금 당장 돌아와. 어떤 놈이랑 뒹굴다가 애가 생긴 거야? 게다가 하씨 가문 어르신의 생일 파티에서 그런 망신을 당해? 명원의 상류층에 나 민성현의 딸이 결혼하기도 전에 임신했다고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어. 너는 창피하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못 참아!”

민하윤은 말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 민성현은 민하윤의 아버지면서 상황을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가시 돋친 말로 자신의 딸을 공격했고 민하윤은 그런 것에 익숙했다. 이제는 그런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로 계속하여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민하윤은 차분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민하윤은 그를 무시하려고 했지만 이내 문자가 도착했다.

[네 그 반신불수인 양아버지가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면 당장 집으로 와.]

민하윤은 자기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메모장에 새로운 목적지를 입력한 뒤 마치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힘없이 좌석에 몸을 기대고 무기력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과거의 기억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민하윤은 선택권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민하윤의 양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유명을 달리했고 양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되었다. 민씨 가문에서 민하윤을 데려가긴 했지만 그건 민하윤이 바랐던 일이 아니었다.

17살 때, 민하윤은 청소년 음악 경연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민하윤의 양부모님은 민하윤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했었다.

당시 두 사람은 꼭 현장에 가서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겠다고 약속했었다.

“우리 딸은 목소리가 좋아서 꼭 좋은 성적을 따낼 거야.”

“그날 아빠 생선 팔지 않고 엄마랑 같이 우리 딸 노래하는 거 보러 갈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시장에서 생선을 팔았다. 온종일 생선을 팔다 보니 온몸에서 비린내가 났다. 그래도 그들의 작은 월세방에는 민하윤을 위해 꾸민 귀엽고, 깔끔하고, 아늑한 방이 있었다. 낡고 허름한 월세방과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대회가 끝날 때까지 그토록 기다렸던 양부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초조한 얼굴로 달려와 민하윤이 평생 잊지 못할 말을 전했다.

“하윤아, 너희 부모님께서 이곳으로 오시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대. 지금 너희 아버님 병원으로 실려 가셨대.”

당시 17살이었던 민하윤은 상을 받고 들떠 있었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한 순간 눈앞이 까매지면서 들고 있던 트로피를 그만 놓쳐버렸다. 민하윤은 선생님을 붙잡고 물었다.

“저희 엄마는요? 아빠는 병원에 실려 가셨다면서요. 그러면 엄마는요?”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너희 엄마께서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어.”

선생님이 계속하여 말을 이어갔지만 민하윤의 귀에는 단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짧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고막을 찔렀고, 온 세상이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민하윤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고 다들 초조한 얼굴로 민하윤에게 다가갔다. 이내 세계가 또 한 번 소란스러워졌다.

그날 이후로 민하윤은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양아버지의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하반신이 마비되어 절단 수술이 필요한 상태라 의사 선생님은 민하윤에게 그것은 아주 길고 힘든 여정이 될 것이며 많은 돈이 필요할 거라고 에둘러 말했다.

바로 그때 민하윤의 친부모님이 나타났다.

괴로운 기억만이 가득했던 그해, 민하윤은 민씨 가문으로 돌아왔고 민성현은 민하윤의 유일한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는 민하윤의 양아버지를 좋은 재활병원에서 치료받게 해주었고 24시간 내내 간병인을 붙여주었다.

택시가 멈춰 섰을 때 민하윤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창밖의 호화로운 별장을 바라보는 민하윤의 마음은 절망과 무력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민성현은 민하윤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존재를 볼모로 삼았고, 그 탓에 민하윤은 그에게 반항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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