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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금소
와인잔뿐만 아니라 음식들까지 전부 잔디밭에 엎질러지는 바람에 정성스럽게 꾸며졌던 테이블과 마당이 난장판이 되었고, 그 소리에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할머니에게서 빨리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듣던 하도진도 있었다. 하도진은 원래 집중을 못 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정원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은 채 어떤 눈치 없는 바보가 이런 자리에서 사고를 쳤는지 구경하려고 했다.

하도진은 재벌가 사람들의 사랑싸움을 많이 봐왔었기에 주목받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일부러 사고를 쳤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위층으로 올라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민씨 가문의 일은 비밀이 아니었다. 민씨 가문에는 친딸과 입양아가 있는데 두 자매는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민씨 가문의 장녀가 약혼식 날 약혼자가 아닌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가지는 바람에 진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 파혼하겠다고 했고, 가족의 이익을 위해 민씨 가문에서는 막내딸을 희생하였다고 한다. 결국 민씨 가문과 진씨 가문의 정략결혼은 취소되지 않았고 민하윤이 아닌 민희수가 진서우와 결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바닥에 쓰러진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민하윤의 드레스는 샴페인 때문에 더러워졌고 목덜미 쪽에는 정체불명의 얼룩이 생겼다. 주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속닥대면서 이 소동에 흥미를 보였다.

“저 여자 말을 못 하나 봐.”

진호영은 정원에서 쓰러진 여자가 다급히 수화를 하는 걸 보았다.

하도진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싸늘하던 그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순간 온몸의 피가 멈춘 것만 같았다. 하도진은 손끝이 저리면서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진호영은 하도진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저 사람 설마 옆에 있는 여자가 밀어서 넘어뜨린 건 아니겠지?”

진호영은 구경하는 와중에 빈정거리며 말했다.

“참 안타깝네. 말을 못 하니까 설명도 못 하고.”

진호영은 별 뜻 없이 한 말이겠지만 그 말을 들은 하도진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도진은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도 민하윤은 억울해하면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수화를 사용해 자신의 감정을 쏟아냈었다.

민하윤은 발목의 통증을 참으며 겨우 서 있었다. 그녀는 수화로 민희수에게 따져 물었다.

[너 일부러 그랬지?]

“이거 놔.”

민희수는 저항해도 소용없자 민하윤을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사고는 이미 쳤고 만회할 방법도 없었기에 민하윤은 체면 따위 내다 버리고 민희수의 손목을 꽉 쥔 채로 놓아주지 않았다.

하씨 가문의 어르신은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영향력은 여전했다. 하씨 가문은 명원의 정점에 서 있는 재벌가였고 그 세력도 어마어마했다. 하도진의 아버지는 명원에서 규모가 가장 큰 에스티 벤처 투자를 설립했고 그 산하의 계열사들은 부동산, IT, 교육, 의료, 호텔, 레스토랑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고 있었다.

하씨 가문은 자금도, 자원도 충분한 가문이라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가문이었다.

민희수는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 보았다. 비록 그동안 양부모님이 최선을 다해 그녀를 귀하게 키웠지만 그럼에도 민희수는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열등감과 비뚤어진 성격을 고치지 못했다. 민희수는 양부모님의 사랑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온갖 방법을 썼고 민하윤의 약혼자 진서우와 잠자리도 가졌다. 민하윤이 언젠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말이다.

민희수는 모든 방면에서 민하윤을 이기려고 했고 민하윤이 모두에게 버림받고 외롭게 혼자 살기를 바랐다.

평소 싸울 때면 민희수를 편애하는 부모님은 민희수가 민하윤을 괴롭혀도 못 본 척했다. 그러나 민희수는 민성현이 사실은 아주 냉정하고 이익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이익에 영향을 준다면 민성현은 절대 민희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씨 가문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가문이었다. 민씨 가문은 상류층에 발을 들이기 위해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하씨 가문 어르신의 생일 파티 초대장을 간신히 구했다. 그들은 하씨 가문과 연을 맺는 건 감히 바라지도 못했다. 그리고 최소한 하씨 가문의 파티를 망쳐서는 안 됐다.

이 사태가 이어진다면 민희수도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민희수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그녀는 아주 큰 사고를 쳤다. 그러나 동시에 민하윤이 말을 못 해서 다행이라고, 변명할 수도 없고 그녀가 한 짓을 폭로할 수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니, 언니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이기적으로 굴면 안 돼.”

민희수는 가식을 떨며 민하윤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려고 했으나 민하윤이 가볍게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

냉담한 표정의 민하윤은 자꾸 수작을 부리려는 민희수를 경고의 의미가 다분한 눈길로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드레스가 술과 끈적한 캐비어로 얼룩졌다. 민하윤은 속이 울렁거려 자기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게다가 해산물의 비린내가 자꾸 후각을 자극하여 민하윤은 허리를 숙이고 헛구역질했다. 그녀의 행동에 구경꾼들은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언니, 혹시 임신한 거 아니야?”

민희수는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민하윤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자꾸 속이 메슥거려서 헛구역질만 계속했다.

민하윤의 약혼자가 민하윤이 다른 남자와 잔 사실을 알게 되고 파혼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오늘 민하윤을 보니 임신한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구경꾼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민하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절망에 빠진 민하윤은 시선을 내려뜨린 채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침묵하는 것에도 익숙했다. 변명할 방법이 없으니 남들이 모함하고 멋대로 추측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늘씬한 자태의 소유자 하도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통유리 앞에 서서 손을 흔들며 집사를 불렀다.

“사람을 시켜 저 사람을 제 방으로 데려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세요.”

그러고는 어두운 눈빛으로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저 여자는 내쫓으세요.”

“형, 웬일로 착한 일을 하는 거야?”

진호영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소파에서 일어나며 호들갑을 떨었다.

“설마 저 여자 형 전 여자 친구야?”

진호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목을 쭉 내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민하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도진은 한 손을 주머니 안에 넣고 있었다. 그는 진호영의 말을 무시한 채 어두운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할머니, 저 도진이 형이 여자한테 이렇게 착하게 구는 거 처음 봐요.”

진호영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창 앞에 우뚝 서서 집사가 민하윤을 데리고 가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민희수는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하도진의 할머니는 매일 불상 앞에서 하도진을 위해 기도했다.

명원 상류층에서는 하도진이 남자구실을 못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재벌가 자제들 중에서 클럽을 다니는 사람,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을 스폰하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하씨 가문의 후계자인 하도진은 그들과 달리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고 무려 7년 동안 만난 전 여자 친구도 임신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소문은 점점 더 파다하게 퍼졌다. 명원의 정점에 서 있는 하씨 가문에서는 이를 해명하지 않았고, 대놓고 그것이 진실인지 물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 소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도진의 할머니는 염주를 굴리다가 손을 멈추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집사의 안내에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는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하도진의 평소와 다른 행동에 그녀는 민하윤을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민하윤이 정말로 임신했다면 하씨 가문에 대를 이을 후계자가 생기게 된다.

수년간 불공을 드리며 간절히 바랐던 일이 마침내 실현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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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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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homejoa
민하윤 임신 증상 같은데? 잘됐네. 그 남자랑 다시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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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9화

    민하윤은 책상 위의 마지막 서류까지 가지런히 정리한 뒤 기지개를 켰다.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는 사무실 자리는 반 이상 비어 있었고 민하윤은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원증부터 목에서 뺐다.민하윤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하도진에게 답장을 보냈다....하도진은 심심한 듯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리고 있었다.옆에서는 삼색이가 가방 안에서 앞발로 벽면을 긁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하도진이 고개를 돌려 보니 삼색이는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잔뜩 서운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사람과 고양이가 그렇게 눈싸움을 벌였다.“너도 하윤이 보러 가고 싶어?”하도진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고양이 가방을 앞쪽으로 멘 채 검은색 얇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자 늘씬하고 곧게 뻗은 몸이 드러났다.하도진이 신은 가죽 구두는 저녁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다.딱 퇴근 시간과 겹쳤기에 하도진은 사람들의 흐름을 거슬러 태유 은행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덕분에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도진에게 쏠렸다.심플한 셔츠와 바지 차림이었지만 하도진은 이상하리만큼 눈에 띄었다.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길게 뻗은 체형도 그랬고 얼굴까지 워낙 잘생겼다.그런 남자가 앞쪽으로 반려동물 가방까지 메고 있으니 묘한 반전 매력이 더해졌다.그러니 하도진을 돌아보는 사람이 없을 수가 없었다.하도진은 삼색이를 안은 채 태유 은행 로비로 들어가더니 젊은 직원에게 작업용 카드까지 빌려 출입 게이트를 통과했다.“임원실은 몇 층이죠?”“중간 관리자 이상은 거의 다 꼭대기 층의 사무 구역에서 근무해요.”“고마워요.”하도진이 입꼬리를 휘며 웃자 젊은 여직원은 홀린 듯 그를 바라봤다.“연락처 하나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여직원은 용기를 내 먼저 말을 붙였다.“저도 고양이 키우거든요. 가끔 정보 공유해도 좋을 것 같아서요.”하지만 하도진은 고개를 저었다.그러더니 손가락으로 가슴 앞의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괜찮습니다. 얘 엄마가 워낙 관리가 엄해서요.”“아...”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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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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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75화

    하도진의 차는 길가에 멈춰 섰다.희뿌연 새벽빛 아래 세상은 짙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하도진은 문득 헛웃음이 터졌다.‘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아직 철없는 애송이처럼 이렇게 무모하고 충동적이라니. 내 멘탈이 이렇게나 형편없단 말인가.’민하윤이 손가락 하나 까딱해 유혹하기만 해도 하도진은 그토록 하찮고 값싸 보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하도진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해가 뜨기 전에 담배를 한 개비 물었다.그때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려 댔다.하도진은 담배꽁초를 비벼 끄고 차창을 올린 뒤 전화를 받았다.“형 지금 어디야? 은율 누나가 주민혁한테 끌려갔어!”수화기 너머로 진호영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준오 형은 해외 나갔고 나도 그 새끼 사람들한테 맞았어. 형, 지금 어디야?”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켠 뒤 대뜸 욕부터 퍼부었다.“생각이란 게 있긴 해? 내가 아까 뭐라고 했어? 걔 마음대로 날뛰게 두지 말고 주민혁의 술집에서 바로 데리고 나오라고 했지. 사람 말이 그렇게 알아듣기 어려워? 꼭 일이 이 지경까지 터져야 정신 차리냐?”“나가던 길에 하필 그 새끼랑 마주쳤어. 형 지금 어디냐고? 은율 누나 아직 취해 있어. 진짜 큰일 날까 봐 무서워.”진호영의 목소리는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하도진은 욕설을 뱉으며 핸들을 틀고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하도진은 이런 귀찮은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결국 주민혁 그 개자식이 자기를 향한 원한 때문에 귀신처럼 달라붙어 자기 주변 사람들까지 건드리는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차는 고가도로 위를 미친 듯이 달렸고 짙던 안개도 조금씩 걷혀 갔다.하도진은 차 문도 제대로 닫지 않은 채 주민혁의 라운지 바로 안으로 들이닥쳤다.1층 댄스 플로어에서는 조금 전까지 남녀들이 디제이 음악에 취해 몸을 흔들고 있었지만 다음 순간 새하얀 스포트라이트가 번쩍 켜지자 모두 멍하니 서로 얼굴만 바라봤다.하도진은 2층 룸 문을 발로 걷어찼고 방 안의 상황을 본 순간 숨이 턱 막혔다.주민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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