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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作者: 금소
와인잔뿐만 아니라 음식들까지 전부 잔디밭에 엎질러지는 바람에 정성스럽게 꾸며졌던 테이블과 마당이 난장판이 되었고, 그 소리에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할머니에게서 빨리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듣던 하도진도 있었다. 하도진은 원래 집중을 못 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정원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은 채 어떤 눈치 없는 바보가 이런 자리에서 사고를 쳤는지 구경하려고 했다.

하도진은 재벌가 사람들의 사랑싸움을 많이 봐왔었기에 주목받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일부러 사고를 쳤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위층으로 올라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민씨 가문의 일은 비밀이 아니었다. 민씨 가문에는 친딸과 입양아가 있는데 두 자매는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민씨 가문의 장녀가 약혼식 날 약혼자가 아닌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가지는 바람에 진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 파혼하겠다고 했고, 가족의 이익을 위해 민씨 가문에서는 막내딸을 희생하였다고 한다. 결국 민씨 가문과 진씨 가문의 정략결혼은 취소되지 않았고 민하윤이 아닌 민희수가 진서우와 결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바닥에 쓰러진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민하윤의 드레스는 샴페인 때문에 더러워졌고 목덜미 쪽에는 정체불명의 얼룩이 생겼다. 주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속닥대면서 이 소동에 흥미를 보였다.

“저 여자 말을 못 하나 봐.”

진호영은 정원에서 쓰러진 여자가 다급히 수화를 하는 걸 보았다.

하도진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싸늘하던 그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순간 온몸의 피가 멈춘 것만 같았다. 하도진은 손끝이 저리면서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진호영은 하도진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저 사람 설마 옆에 있는 여자가 밀어서 넘어뜨린 건 아니겠지?”

진호영은 구경하는 와중에 빈정거리며 말했다.

“참 안타깝네. 말을 못 하니까 설명도 못 하고.”

진호영은 별 뜻 없이 한 말이겠지만 그 말을 들은 하도진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도진은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도 민하윤은 억울해하면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수화를 사용해 자신의 감정을 쏟아냈었다.

민하윤은 발목의 통증을 참으며 겨우 서 있었다. 그녀는 수화로 민희수에게 따져 물었다.

[너 일부러 그랬지?]

“이거 놔.”

민희수는 저항해도 소용없자 민하윤을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사고는 이미 쳤고 만회할 방법도 없었기에 민하윤은 체면 따위 내다 버리고 민희수의 손목을 꽉 쥔 채로 놓아주지 않았다.

하씨 가문의 어르신은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영향력은 여전했다. 하씨 가문은 명원의 정점에 서 있는 재벌가였고 그 세력도 어마어마했다. 하도진의 아버지는 명원에서 규모가 가장 큰 에스티 벤처 투자를 설립했고 그 산하의 계열사들은 부동산, IT, 교육, 의료, 호텔, 레스토랑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고 있었다.

하씨 가문은 자금도, 자원도 충분한 가문이라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가문이었다.

민희수는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 보았다. 비록 그동안 양부모님이 최선을 다해 그녀를 귀하게 키웠지만 그럼에도 민희수는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열등감과 비뚤어진 성격을 고치지 못했다. 민희수는 양부모님의 사랑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온갖 방법을 썼고 민하윤의 약혼자 진서우와 잠자리도 가졌다. 민하윤이 언젠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말이다.

민희수는 모든 방면에서 민하윤을 이기려고 했고 민하윤이 모두에게 버림받고 외롭게 혼자 살기를 바랐다.

평소 싸울 때면 민희수를 편애하는 부모님은 민희수가 민하윤을 괴롭혀도 못 본 척했다. 그러나 민희수는 민성현이 사실은 아주 냉정하고 이익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이익에 영향을 준다면 민성현은 절대 민희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씨 가문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가문이었다. 민씨 가문은 상류층에 발을 들이기 위해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하씨 가문 어르신의 생일 파티 초대장을 간신히 구했다. 그들은 하씨 가문과 연을 맺는 건 감히 바라지도 못했다. 그리고 최소한 하씨 가문의 파티를 망쳐서는 안 됐다.

이 사태가 이어진다면 민희수도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민희수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그녀는 아주 큰 사고를 쳤다. 그러나 동시에 민하윤이 말을 못 해서 다행이라고, 변명할 수도 없고 그녀가 한 짓을 폭로할 수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니, 언니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이기적으로 굴면 안 돼.”

민희수는 가식을 떨며 민하윤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려고 했으나 민하윤이 가볍게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

냉담한 표정의 민하윤은 자꾸 수작을 부리려는 민희수를 경고의 의미가 다분한 눈길로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드레스가 술과 끈적한 캐비어로 얼룩졌다. 민하윤은 속이 울렁거려 자기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게다가 해산물의 비린내가 자꾸 후각을 자극하여 민하윤은 허리를 숙이고 헛구역질했다. 그녀의 행동에 구경꾼들은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언니, 혹시 임신한 거 아니야?”

민희수는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민하윤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자꾸 속이 메슥거려서 헛구역질만 계속했다.

민하윤의 약혼자가 민하윤이 다른 남자와 잔 사실을 알게 되고 파혼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오늘 민하윤을 보니 임신한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구경꾼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민하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절망에 빠진 민하윤은 시선을 내려뜨린 채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침묵하는 것에도 익숙했다. 변명할 방법이 없으니 남들이 모함하고 멋대로 추측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늘씬한 자태의 소유자 하도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통유리 앞에 서서 손을 흔들며 집사를 불렀다.

“사람을 시켜 저 사람을 제 방으로 데려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세요.”

그러고는 어두운 눈빛으로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저 여자는 내쫓으세요.”

“형, 웬일로 착한 일을 하는 거야?”

진호영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소파에서 일어나며 호들갑을 떨었다.

“설마 저 여자 형 전 여자 친구야?”

진호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목을 쭉 내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민하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도진은 한 손을 주머니 안에 넣고 있었다. 그는 진호영의 말을 무시한 채 어두운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할머니, 저 도진이 형이 여자한테 이렇게 착하게 구는 거 처음 봐요.”

진호영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창 앞에 우뚝 서서 집사가 민하윤을 데리고 가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민희수는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하도진의 할머니는 매일 불상 앞에서 하도진을 위해 기도했다.

명원 상류층에서는 하도진이 남자구실을 못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재벌가 자제들 중에서 클럽을 다니는 사람,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을 스폰하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하씨 가문의 후계자인 하도진은 그들과 달리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고 무려 7년 동안 만난 전 여자 친구도 임신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소문은 점점 더 파다하게 퍼졌다. 명원의 정점에 서 있는 하씨 가문에서는 이를 해명하지 않았고, 대놓고 그것이 진실인지 물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 소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도진의 할머니는 염주를 굴리다가 손을 멈추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집사의 안내에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는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하도진의 평소와 다른 행동에 그녀는 민하윤을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민하윤이 정말로 임신했다면 하씨 가문에 대를 이을 후계자가 생기게 된다.

수년간 불공을 드리며 간절히 바랐던 일이 마침내 실현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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コメン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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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homejoa
민하윤 임신 증상 같은데? 잘됐네. 그 남자랑 다시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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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361화

    하도진은 마이크를 가볍게 두드려 소리가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한 뒤, 그대로 입을 열었다.“진호영, 다음에 술 취하면 호수에라도 뛰어들어. 머리 좀 식히게.”“왜요?”진호영은 억울하다는 듯 입을 벌리고 더 따져 묻으려 했지만 보다 못한 송지훈이 곧바로 마이크를 뺏어 갔다.송지훈은 진호영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얌전히 가서 술 깨.”그러고는 진호영의 귀에 바짝 붙어 뭔가를 낮게 속삭였다.그 말을 들은 진호영은 술이 절반쯤 깬 얼굴로 민하윤을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진호영은 입만 벙긋거릴 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민하윤은 그 자리에 선 채 온몸이 달아오르는 듯했다. 어색함과 민망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송지훈이 방금 진호영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했는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하도진은 민하윤의 마음을 눈치챈 듯 시끄러운 반주 소리 사이로 조용히 물었다.“내 노래 듣고 싶어?”민하윤은 고개를 들어 하도진을 바라봤다.조금 전까지 가슴을 짓누르던 미묘한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민하윤은 조금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노래 듣고 싶은데?”하도진은 민하윤의 손을 잡은 채 다시 소파로 돌아가 앉더니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민하윤의 손끝을 천천히 쓸며 말했다.“네가 골라 봐.”민하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도진 씨가 부르는 거면 뭐든 다 돼요.]하도진은 굳이 더 묻지 않았다.그대로 선곡기 앞으로 걸어가 손끝으로 화면을 몇 번 넘겼다. 곧 방 안에는 피아노 선율이 부드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하도진은 한 손으로 스탠드 마이크를 쥐었다. 긴 다리는 높다란 의자에 느긋하게 걸쳤고 한쪽 발만 바닥에 댄 채 박자에 맞춰 가볍게 움직였다.순간 룸 안 조명이 확 어두워졌다.오직 한 줄기 흰빛만이 비스듬히 하도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잘생긴 이목구비, 매끈하게 떨어지는 얼굴선, 검고 깊은 눈매가 불빛 아래에서 더 또렷해졌다. 너무 잘생겨서 시선을 떼기 어려울 정도였다.하도진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홍콩 록밴드 출신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360화

    그 순간, 뒤에서 주민혁의 휘파람 소리가 건들거리듯 울렸다.“아, 맞아. 민하윤 씨는 진짜 예쁘네. 방송에 나오는 걸 못 본 건 좀 아쉬워.”그대로 걸음을 멈춘 하도진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하도진은 몸을 돌려 주민혁의 음침한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하도진은 정말 후회됐다.그때 괜한 인정 따위 베풀지 말아야 했다. 그때 주민혁의 목숨을 살려 둔 게, 결국 자기 발밑에 끝도 없이 터질 지뢰를 묻어 둔 셈이 됐다.그때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 가볍게 하도진의 손끝을 감쌌다.민하윤이었다.민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괜히 상대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주민혁의 얼굴이 순간 굳었고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도 그대로 얼어붙었다.‘도대체 언제부터 둘 사이가 저렇게 가까워진 거야? 민하윤은 하도진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하도진은 민하윤이 놀랄까 봐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겨우 화를 눌러 삼킨 채 민하윤의 손을 잡고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주민혁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복도에 멍하니 서 있었다.서로 바짝 붙어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자, 주민혁은 가슴속에서 질투와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올랐다.가늘게 찢어진 눈을 가늘게 뜬 채 주민혁은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자신이 민하윤에게 품은 감정이 예전과는 달라졌었다.그런 감정은 원래 하도진이 아끼는 걸 부숴 버리겠다는 목적과 점점 어긋나고 있었다....하도진이 방문을 열자, 진호영이 노래방 기계 옆 의자에 한쪽 발을 올린 채 마이크를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시끄러운 록 메탈 음악에 맞춰 고개를 흔들며 완전히 취한 사람처럼 놀고 있었다.하도진과 진호영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곧장 진호영의 시선은 하도진을 넘어서 뒤에 선 민하윤에게로 옮겨 갔다.순간 진호영 얼굴에 민망함이 번졌고 노래도 그대로 뚝 끊겼다.“왜 멈춰? 계속해.”하도진은 웃음을 겨우 누른 채 손을 들어 보였다.진호영더러 자기들 신경 쓰지 말고 원래 하던 대로 록의 세계에서 마음껏 날뛰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359화

    검은색 마이바흐는 콜드 블루 클럽 앞에 조용히 멈춰 섰다.왼쪽에는 선명한 노란색 페라리, 오른쪽에는 은백색 투톤의 맥라렌 세나가 세워져 있었다.차는 두 대 사이 빈자리에 정확히 멈췄다.기사는 시동을 끄고 먼저 내려 두 사람이 따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민하윤은 한 손을 문손잡이에 얹은 채, 의아한 얼굴로 옆에 앉은 하도진을 바라봤다.[왜 그래요?]민하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수어를 했다.[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하도진이 너무 빤히 쳐다보는 바람에 민하윤은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민하윤은 영문도 모른 채 손등으로 자기 뺨을 한 번 문질렀다.하도진은 저도 모르게 민하윤의 볼을 가볍게 꼬집듯 만졌다.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저 안에 있는 애들은 다들 좀 제멋대로야. 혹시 누구 때문에라도 불편해지면 바로 나한테 말해.”민하윤은 옅게 웃었다.그러자 민하윤의 볼에는 아주 작고 얕은 보조개가 스쳤다.콜드 블루 클럽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고급 회원제 휴식 공간이었다. 예약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 보안도 철저했고 휴식과 오락이 한데 섞인 상류층 전용 사교 공간에 가까웠다.두 사람은 둥근 아치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눈앞에는 몇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인공 암석이 솟아 있었고 아래쪽 샘에서는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가짜 바위산과 졸졸 흐르는 물길을 돌아서 구불구불 이어진 긴 복도를 지나던 민하윤은 문득 익숙한 실루엣 하나를 스치듯 봤다.민하윤이 다시 확인하려는 순간, 하도진의 목소리가 생각을 끊어 놓았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완전히 넋이 나갔는데?”민하윤은 입술을 다문 채 고개를 저었다.아마 잘못 본 걸 거라고 자신을 달랬다. 주민혁 그 변태 같은 남자는 한동안 민하윤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하도진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맨 위층 버튼을 눌렀다.벽에 등을 기대고 선 하도진은 그대로 눈을 감고 잠시 쉬는 듯했다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358화

    민하윤은 재빨리 차창을 내리고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듯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름 모를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반면 하도진은 입가를 한 번 핥으며 여운을 음미하듯 웃고 있었다. 얼굴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다.‘진짜 변태, 뻔뻔한 강도에 완전 양아치야.’민하윤은 속으로 하도진을 있는 대로 욕했다.하도진은 곁눈질로 민하윤의 얼굴을 훑었다.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삐진 듯 붉어진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괜히 더 기분이 좋아졌다.이런 상황에서 뽀뽀 한 번 더 안 하면 그게 바보였다.천천히 감정을 쌓자고 한 것뿐이지 진짜 하도진더러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 중처럼 살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유 기사님은 역시 베테랑 기사였다. 뒷좌석 분위기가 얼마나 요란하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묵묵히 운전만 했다. 속도도 안정적이었고 차는 거의 흔들림 없이 미끄러지듯 달렸다.하도진은 긴 다리를 포개고 앉은 채, 조금 전 입맞춤의 감촉을 아직도 곱씹고 있었다.그때 뜬금없이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하도진은 고개를 돌려 민하윤을 한 번 보고는 느긋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그런데 상대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하도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한 손으로 민하윤의 귓불을 천천히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응. 안 가.”수화기 너머로 진호영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아, 왜? 여긴 분위기 벌써 다 달아올랐는데... 송지훈 그 일벌레도 왔고, 은율 누나도 광고 촬영까지 미뤘어. 근데 형만 안 온다고?”하도진은 얼굴을 굳힌 채 옆 창문을 조금 내렸다. 그러자 바람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난 더 중요한 일이 있어. 안 간다고 했으면 안 가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를 할 시간이 없어.”“뭔 중요한 일인데? 형, 주민혁이 주해에서 돌아오자마자 집안 어르신한테 집에 갇혀서 못 나가게 된 거 알아?”“네 형수님이랑 시간 보내느라 몰랐어.”하도진은 미간을 한 번 누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357화

    하도진은 뒷좌석에 기대앉은 채, 못마땅하다는 듯 쇼핑백 몇 개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아주 정성도 지극하네. 휴대폰이 깨지자마자 바로 새 걸 사다 주다니 말이야.”하도진은 몸을 앞으로 조금 숙였다.“어디 한번 보자. 또 뭘 사 줬어?”하도진이 쇼핑백 안을 들춰보려는 순간, 민하윤이 두 손으로 하도진의 얼굴을 감쌌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좁은 차 안 공기가 순식간에 미묘하게 달아올랐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손을 붙잡더니 고개를 기울여 손바닥 위에 입을 맞췄다.눈꼬리를 살짝 올린 채, 하도진은 늘 그렇듯 건성건성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무슨 뜻이지? 날 유혹하는 거야?”민하윤은 온몸에 열이 확 오르는 걸 느꼈다.귓불은 새빨개졌고 얼굴이 달아올라 뜨거울 정도였다.하도진은 일부러 민하윤을 놀리고 있었다.관심도 쇼핑백에서 민하윤에게로 완전히 옮겨갔다.하도진의 손끝이 촉촉한 민하윤의 입술을 가볍게 스쳤다.“홍 어르신이 지어 준 한약은 아직도 먹고 있어?”민하윤은 차마 약을 끊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임신 사실을 안 뒤부터 민하윤은 아주 조심스러워졌다. 먹는 것, 쓰는 것 하나까지 전부 신경 썼다. 감히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이 아이는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민하윤은 처음부터 하도진과 평생 함께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하도진의 곁을 떠날 생각이었다.하지만 아이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이제 몇 년 뒤면 민하윤도 서른을 앞두게 될 터였고, 지금은 연봉도 제법 괜찮았으니 아이 하나쯤 충분히 책임질 수 있었다.민하윤은 아이를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이 아이가 하씨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존재라고 여긴 적도 없었다.민하윤은 알고 있었다.자신이 뱃속의 아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그 아이는 민하윤의 아이였다.민하윤의 피와 살로 품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육이었다.그런 사랑은 아주 순수했다.어떤 조건도 계산도 붙지 않는 사랑이었다.민하윤이 평생 가장 목말라했던 엄마의 사랑이었다.민하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356화

    이남주는 우유 뚜껑을 따서 민하윤에게 건넸다.“회장님이 왜 갑자기 언니를 보자고 했을까요? 그분은 거의 다 권한을 내려놓으셨잖아요. 주주총회 아니면 은행에도 잘 안 나오시는데요.”민하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기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얘기 하셨어요?”[별말은 없었어요. 평소에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으시고 그냥 몇 마디 나눴어요. 비서한테 식사도 두 사람분 시키라고 하셨는데 회장님 앞에서는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그럴 만하죠. 저라도 회장님이 앞에 떡 버티고 있으면 밥 못 먹어요.”이남주는 단번에 민하윤이 왜 이렇게 허겁지겁 먹는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과자 몇 봉지를 더 뜯어 민하윤의 앞으로 밀어줬다.민하윤은 정말 배가 고팠다. 임신한 뒤로 식욕이 부쩍 늘었다. 입덧은커녕 오히려 더 잘 먹게 됐다.태유 은행 본사 건물을 나서자 길가에 임형섭의 차가 서 있었다. 민하윤은 그 자리에 멈춰 한참을 망설이자 임형섭은 쇼핑백 몇 개를 든 채 곧장 다가왔다.“점심때 휴대폰을 회의실에 두고 갔더라. 액정이 왜 그렇게까지 깨졌어? 하도진이 돌아온 거야?”임형섭은 민하윤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도 걱정은 숨길 수 없었다.이건 거의 병에 걸린 정도였다.임형섭은 민하윤을 걱정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이런 관심이 민하윤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임형섭은 멈출 수가 없었다.민하윤을 보지 못하면 미칠 것처럼 속이 타들어 갔고 자꾸만 가까이 가고 싶었고, 또 걱정하게 됐다.민하윤은 쇼핑백들을 내려다봤다.안에는 최신형 휴대폰도 있었고 몸에 좋은 영양제며 건강보조제도 있었고 신발 상자 하나도 들어 있었다.[선배, 저는...]민하윤은 어떻게 이 호의를 거절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깨물었고 수어를 하려던 두 손도 허공에서 멈췄다.임형섭은 억지로 담담한 척 웃었다.“하윤아, 다른 뜻은 없어.”민하윤은 입술을 깨문 채 쇼핑백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오른손 엄지를 살짝 아래로 접었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79화

    민하윤은 억지로 파스타를 몇 입 먹었다. 요즘 따라 입맛이 없는 데다가 여러 가지 일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민하윤은 심란한 마음으로 아래층을 힐끗 보았다.태유 은행은 도심에 자리 잡고 있어 주위에 빌딩들이 가득했고 지리적으로 굉장히 좋은 곳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그럼에도 민하윤은 화려한 벤틀리를 한눈에 발견하고는 곧바로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안절부절못했다.“하윤아, 왜 그래?”임형섭의 목소리에 민하윤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힘껏 고개를 저은 뒤 형편없는 핑계를 댔다.[저 볼일이 있어서 오늘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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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68화

    “이 영화 투자자가 도망갔대. 지금 한창 촬영 중인데 제작사에서는 위약금을 배상할 처지가 안 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은행에 대출을 신청한 거야.”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도착했다.“이 프로젝트는 임원들이 지정한 거야. 하지만 필요한 심사 절차와 서류는 하나도 빠뜨리면 안 돼. 그래서 우리가 오후에 직접 촬영장에 나가서 확인해 봐야 해.”세심한 임형섭은 손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막고 민하윤이 먼저 나가게 했다.민하윤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눈앞의 텅 빈 자리들을 바라보며 의아한 얼굴로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62화

    하도진은 열심히 공부하라고 짧게 답장을 보냈다.하도진은 민하윤이 자신의 가족들과 많이 연락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민하윤은 인간 관계에 어려움을 느꼈고 사교는 그녀에게 꽤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하도진은 고개를 숙이며 애잔한 얼굴로 자신의 품속에서 자는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하도진은 민하윤이 하씨 가문에 녹아들기 위해 힘들어하는 걸 원치 않았다.처음에는 마음이 아리고 안타까웠었다. 하도진은 민하윤에게 육체적으로 끌렸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젠 민하윤을 향한 감정이 살짝 달라진 게 느껴졌지만 그걸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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