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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Author: 금소
다들 고은율의 신분을 묵인했다. 오직 서명인만이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교통사고 같은 큰 일을 집안 어른들에게 얘기하지 않는 것은 어른들을 괜히 걱정시키는 일이라서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하도진과 결혼하여 그의 아내가 된 민하윤에게까지 비밀로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아내도 아닌 고은율까지 이 사실을 아는데 정작 하도진의 아내인 민하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건 이상했다.

서명인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간 뒤 거듭 망설이다가 민하윤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세리 엔터에서 나오자마자 민하윤의 벨소리가 울렸다.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였다.

민하윤은 말을 할 수가 없었기에 업무와 관련된 일들은 늘 카톡이나 메일로 처리했다. 그리고 그녀의 개인 연락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게다가 민하윤의 연락처를 아는 사람들은 절대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간병인 서정아도 아주 긴박한 상황에서만 그녀에게 전화했다.

보이스 피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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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51화

    해가 저물 무렵, 민하윤은 서정아와 아버지께 드릴 옷과 보양식을 들고 요양원으로 갔다.서동민은 연세가 들수록 몸 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었다. 예전처럼 바나나를 먹으며 애니메이션을 보지도 않았고 얼굴빛도 잿빛으로 변한 채 조용히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민하윤은 서동민의 손을 꼭 잡고 아빠라고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돌아가기 전에 민하윤은 몰래 찬장 안에 봉투 하나를 넣어 두고 병원 건물을 나선 뒤에야 서정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민하윤은 서정아가 받지 않을까 봐 걱정했고 그렇게라도 해야만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큰길가에는 검은 마이바흐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하도진은 조수석 쪽 차체에 기대선 채 손끝에 담배를 하나 끼우고 있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차갑고 엷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민하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쪽으로 걸어갔다. 하도진과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몸이 갑자기 휘청했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손목을 붙잡아 자기 품으로 세게 끌어당겼다.하도진은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버리더니 윤기가 나는 구두로 붉은 불씨를 짓이겨 껐다. 하도진의 손은 차가웠고 품 안에서는 바람이 가득 찬 것처럼 싸늘한 기운이 밀려왔다.“언제 돌아왔어? 민하윤, 너 임형섭이랑 결혼했어?”민하윤은 입을 다문 채 얼굴을 돌렸다. 누런 가로등 불빛 아래 두 사람의 길고 가는 그림자가 얽혀 있었다.하도진은 자조하듯 웃었다.“그래. 너는 나랑 할 말이 없겠지. 그럼 내가 말할게. 그 여자애는 집에서 붙인 맞선 상대였어. 내가 새로 사귄 여자 친구도 아니고 더더욱 사모님도 아니야.”“네. 알아요.”민하윤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요염한 눈빛이 소리 없이 하도진의 얼굴 위에 내려앉았다.하도진은 어색하게 목울대를 굴리더니 무의식중에 민하윤을 자기 품으로 더 끌어당겼다. 매서운 북풍이 두 사람 사이를 휘감았다.“너 결혼했지? 임형섭이랑...”“하 대표님, 그거 말고 또 하실 말씀 있나요?”민하윤은 하도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50화

    “하 대표님의 여동생이세요? 정말 어려 보이고 예쁘시네요.”하도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시선은 민하윤의 옆얼굴에 머문 채 딱딱하게 한마디했다.“동생이 아니에요.”이남주는 속으로 당장 자기 혀를 깨물고 싶었고 괜히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스스로를 욕했다.“사모님께서는 정말 동안이네요. 거의 여대생 같아요.”이남주는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재빨리 말을 바꿨다.이남주는 까다롭고 성가신 하도진이 비밀 결혼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비록 아내를 공식 석상에 한 번도 데리고 나온 적은 없지만 상장사 대주주인 만큼 공개된 혼인 상태는 분명 기혼이었다.이 정도면 이번에는 안 틀렸겠지 싶었다.옆에 있던 어린 여자는 두 사람 대화를 들으며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었고 얇은 얼굴 위로 금세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하도진도 굳이 부정하지 않고 대신 시선을 가볍게 다시 민하윤에게 던졌다.민하윤은 입술을 다문 채 가슴 한쪽이 시큰해지는 걸 느꼈다.정확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씁쓸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곧 민하윤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애초에 먼저 도진 씨를 놓은 건 나였잖아.’그때 민하윤의 휴대폰이 진동했고 민하윤은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았다.“네. 남주 씨랑 쇼핑 중이에요. 조금 있다가 들어갈게요. 네... 알겠어요.”하도진은 시선을 거뒀고 괜히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이유 모를 짜증이 치밀었다.이 어린 여자와 가족에게 드리는 선물을 고르러 같이 나오자고 한 걸 괜히 허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남주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하 대표님, 그럼 저희는 이만 방해 안 할게요. 미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남주는 민하윤의 팔짱을 끼며 작은 목소리로 놀리듯 말했다.“와, 임 행장님께서 진짜 언니를 꽉 잡고 사시네요. 지금 몇 번째 전화로 확인한 거예요?”“헛소리하지 마요. 그런 거 아니에요.”이남주는 히히 웃더니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은 하도진의 뒤를 따라 조금 걷다가 이남주가 갑자기 민하윤을 끌고 여성복 매장 안으로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49화

    민하윤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민하윤은 허둥지둥 시선을 거뒀고 발목은 두꺼운 눈더미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거칠게 흘러나왔다.임형섭은 창백해진 민하윤의 얼굴을 보며 이유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두 사람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민하윤은 발을 헛디디며 휘청했고 본능적으로 임형섭의 손목을 붙잡았다.그러더니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다른 식당으로 갈까요?”임형섭은 민하윤의 속마음을 굳이 들추지 않았다.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없이 우산을 민하윤 쪽으로 더 기울여 주었다.두 사람은 목적지도 없이 천천히 걸었다.조금 전에 눈 내리는 거리 너머로 하도진이 어린 여자와 웃으며 이야기하던 장면은 서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새해 첫날의 거리는 축제처럼 꾸며져 있었다.명원시 백화점 거리에는 빨간 불빛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모든 매장 쇼윈도에는 화려한 장식과 새해 그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전 매장 초특가 정리 행사라는 문구도 요란하게 붙어 있었다.민하윤이 명원시에 돌아온 지 2주째 되던 날, 그녀는 신용대출 팀에서 오피스 리스크 관리부로 발령이 났다.급여는 30퍼센트 올랐고 연말 보너스는 두 배가 됐다.이남주는 여전히 신용대출 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새해 첫날 쇼핑을 하러 가기로 약속했다.이남주는 길가에 서서 발을 동동 굴렀다. 매서운 바람에 얼굴이 얼얼해지자 아예 고개를 숙여 목도리 속으로 파묻었다.이남주는 따뜻한 곳에서 2년이나 지내다가 명원시로 돌아온 터라 이런 추위를 버티기 힘들었다.이남주는 차를 몰고 와서 길가에 자리를 잡아 세운 뒤 두 팔을 벌리고 멀리서 민하윤에게 달려왔다.“어머, 차 샀네요?”민하윤은 하얀 차를 한 번 보고 이남주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언니, 놀리지 마세요. 그냥 중고차예요.”“그래도 진짜 괜찮네요.”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팔짱을 낀 채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민하윤은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잡고 속으로 계산했다.서정아한테 새 옷도 한 벌을 사 드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48화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대표님은 당분간 항도시에 가실 수 없습니다.”“안 가. 앞으로도 안 갈 거야.”하도진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콧잔등까지 먹먹하게 울렸다.서명인은 순간 멈칫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서명인은 업무는 대표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었고 그 외의 일은 묻지 말아야 했다.차가 고가도로 진입로에 오르려는 순간, 서명인은 백미러로 하도진을 한번 훔쳐봤다가 하마터면 핸들을 꺾을 뻔했다.서명인은 입술을 꾹 다물고 뛰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켰고 믿기지 않아 다시 한번 백미러로 슬쩍 확인했다.8월의 명원시는 한창 무더운 여름이었고 하도진은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고 울고 있었다.눈물은 끊임없이 뺨을 타고 흐르더니 뚝뚝 떨어져 내렸다....그해는 그렇게 소리 없이 정신없이 지나갔다.하도진은 전 세계를 한 바퀴 돌았다.하도진은 온통 일에만 매달렸고 한순간도 정신을 놓지 못했다.멈춰 서는 순간 바로 무너질 것 같아서 감히 멈출 수도 없었다.그래서 하도진은 조금 더 말랐고 예전보다 조금 더 까무잡잡하게 탔다.명원시 공항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기사가 하도진에게 쇼핑백 하나를 내밀었다.그 안에는 긴 검은색 패딩이 들어 있었다.하도진은 해외에서 막 돌아온 참이라 아직도 얇은 셔츠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그는 검은 패딩을 걸치고 공항 밖으로 나섰다가 매서운 바람 때문에 몸을 한 번 떨었다.채선화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하도진에게 집안이 맞는 몇몇 맞선 자리를 잡아 줬고 하도진도 별다른 반항 없이 틈을 내어 하나씩 다 나갔다.하도진은 그런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채선화가 온갖 말로 달래고 설득하는 걸 버틸 수가 없었다.정갈하게 손질한 채선화의 머리카락 사이로 확연히 늘어난 흰머리를 본 순간, 하도진은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나갈게요. 그런데 잘되든 말든 그 이상은 제발 강요하지 마세요.”마지막 맞선 상대는 해외 유학파였다.코넬대에서 건축학을 5년간 공부하고 돌아온 여자였다.하도진은 훨씬 성숙해져 있었고 성격도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47화

    진호영은 역시나 바로 겁을 먹었다.하도진이 다시 말하기도 전에 바로 휴대폰을 얌전히 내밀었다.앨범에는 방금 저장한 워터마크가 박힌 사진 두세 장이 들어 있었다.하도진은 사진을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진호영이 잘못 본 게 아니라 정말 민하윤이었다.게다가 진호영이 헛소리한 것도 아니었고 민하윤은 정말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심지어 민하윤은 수줍고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눈매는 곱게 휘어졌고 반짝이는 눈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입가에는 옅은 보조개까지 파여 있었다.하도진은 손이 떨려 휴대폰을 제대로 쥐고 있기도 힘들었다.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자 각도만 다른 연속 사진들이 나왔다.민하윤은 작은 흰 은방울꽃 부케를 안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말 그대로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웠다.하도진은 민하윤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처음 봤다.정말 예뻤다.상상했던 것보다도 만 배는 더 아름다웠다.진호영은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지만 용케 앞으로 나서서 물었다.“형, 휴대폰 이제 돌려주면 안 돼?”하도진은 말없이 휴대폰을 던지듯 진호영에게 돌려줬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런 고요함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근데 뭐 꼭 나쁜 것만도 아니지. 이혼했다고 재혼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잖아.”진호영은 나름 위로한답시고 말을 꺼냈다.그러면서도 슬쩍슬쩍 하도진의 얼굴을 살폈다.송지훈은 거의 모든 의욕을 다 잃은 기분이었다.오늘은 분명 집에 걸린 낡은 달력을 한 번 보고 나와야 했다.야간 근무를 꼬박 마치고도 이 인간들이랑 나와 술이나 마시고 있으니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이었다.이러다가 진호영이 한두 마디만 더 하면 송지훈은 자기도 오늘 집에 못 돌아갈 것 같았다.그 자리에서 하도진의 손에 죽을지도 몰랐다.하도진은 숨쉬기가 조금 답답했다.소파에 기대앉은 채 뒤늦게 손바닥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었다.하도진의 표정이 생각보다 크게 달라지지 않자, 진호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어색하게 굳은 분위기를 깨 보겠다며 또 아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446화

    두 달 동안 예열해 온 입점 행사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각종 온라인 매체는 맨 먼저 보도자료를 뿌렸고 현장에 몰린 시민들도 SNS에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제누오 브랜드 측은 민하윤의 현장 사진과 영상을 통째로 사들여 각 매장에서 번갈아 틀기 시작했다.순식간에 온 인터넷이 민하윤이 최고급 웨딩드레스를 입고 피날레로 등장한 사진과 영상으로 도배되었다.SNS를 즐겨 하는 진호영이 제일 먼저 그 기사를 보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러다 정면 사진 한 장을 본 순간 진호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비볐다.“미쳤네...”몇 번이고 다시 확인한 끝에 온라인에 미친 듯 퍼지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그렇게 오래 자취를 감췄던 말을 못 하던 민하윤이라는 걸 알아봤다.“와, 젠장.”진호영은 탁자를 세게 내리쳤고 술이 옷에 쏟아졌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옆에서 수술 기구를 들고 삶은 달걀 껍데기를 벗기는 연습을 하던 송지훈만 날벼락을 맞았다. 손이 덜덜 떨리는 바람에 달걀이 터졌고 탁자 위로 흰자와 노른자가 질퍽하게 흘러내렸다.“너 미쳤어?”송지훈은 화가 확 치밀어 올랐다. 그는 누가 자기가 집중할 때 요란 떨며 방해하는 걸 제일 싫어했다. 송지훈은 말하며 몇 장의 휴지를 뽑아 손을 닦았다.“그 벙어리가 결혼했어.”진호영은 사진을 확대하며 자기 추측이 맞다는 걸 완전히 확신했다.민하윤은 원래부터 남자를 홀리는 얼굴이었다. 요염하고도 묘하게 풍기는 분위기에 넋을 빼앗는 눈매,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순한 눈빛까지 합치면 세상 어디를 뒤져도 그런 미모의 여자는 둘도 없었다.송지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옆 카페 구석 어두운 자리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는 하도진을 힐끗 봤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오히려 지나치게 차분해서 더 무서웠다.송지훈은 고개를 홱 돌려 아직도 눈치 못 챈 진호영에게 미친 듯이 헛기침까지 하며 신호를 보냈다.“누구를 말하는 거야? 잘못 본 거 아니야?”“그 벙어리 말이야. 내가 그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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