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숙여 남자의 입술에 자기의 입술을 포개더니 과감하게 남자의 옷을 벗기려 했다. 그런데 생각처럼 벗겨지지 않자 이번에는 아예 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옷은 벗기가 쉬웠다. 끈을 당기는 순간, 옷은 어깨를 타고 스르르 흘러내렸다.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에 남자는 손을 들어 휴대폰을 낚아챘다. 순간 화면이 흔들리더니 영상도 함께 종료되었다. 영상 속 과감한 그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본인이며 그녀에게 강제로 키스를 당한 사람은 강한서였다.유현진은 눈이 휘둥그레서 손을 뻗어 강한서의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강한서는 재빠르게 그녀의 손을 피해 휴대폰을 높이 들고서는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왜? 증거 인멸이라도 하려고?"유현진은 얼굴이 푸르딩딩해서 물었다. "강한서! 분명 내가 취한 걸 알면서 이런 걸 찍어? 사람이 왜 그렇게 못 됐어?"유현진이 억지를 부리자 강한서는 화가 나서 웃음이 나왔다. "유현진, 당신 두 눈으로 대체 누가 촬영하고 있는지 똑똑히 확인해 보는 게 어때?"'이렇게 쪽 팔리는 영상에 대해 따져 물을 게 뭐 있어?'유현진은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촬영했다고 쳐! 나는 취해서 인사불성이었지만 당신은 멀쩡했잖아. 말리지도 못할지언정 영상을 그대로 두다니, 그거 정말 못 된 거야!"그녀는 강한서를 자극해 영상을 삭제시키려고 했지만 강한서는 오히려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못됐다고 그러는데 끝까지 못된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다들 볼 수 있게 SNS에 업로드 하지 뭐."말을 마친 그는 휴대폰을 들어 SNS에 로그인했다. 유현진은 참지 못하고 바로 그에게 덮쳐들어 휴대폰을 낚아채려 했다.하지만 강한서는 그녀보다 키가 한창 컸기에 휴대폰을 들고 팔을 머리 위로 올리기만 하면 아무리 유현진이 애써 뛰어봤자 기껏해야 손목밖에 닿지 않았다.당장이라도 업로드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유현진은 급해진 마음에 그의 목에 두 팔을 감고 머리를 들어 턱을 향해
신미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게 꽉 막힌 거야? 장난도 유분수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한주 강씨 가문을 노리고 있는지 몰라서 그래? 그리 행동이 가벼워서야. 오늘은 이 소문 내일은 저 소문. 사람들이 우리 한주 강씨 가문을 어떻게 생각하겠어!"강한서는 신미정의 잔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려, 머리를 돌려 유현진에게 말했다. "물이나 줘."유현진은 아까 사 온 물을 강한서에게 넘겨주었다.강한서는 병뚜껑을 따서 꿀꺽꿀꺽 들이마셨다. 신미정은 강한서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는, 그 일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었다. "아침부터 병원에는 웬일이야.""친구 보러." 강한서는 대충 얼버무리더니 반문했다. "현서는 왜 또 데려왔어요? 두 달 전에 검사받은 거 아니었어요?"신미정은 그제야 정서를 가다듬고 말했다. "별일 아니고, 그냥 해 본 거야. 한약도 오래 마셨으니 뭐 좀 효과나 있나 해서. 온 여사네 아들이 작년에 결혼했는데 며느리가 벌써 만삭이지 뭐야. 너희는 결혼한 지도 삼 년인데 내가 다 급하다."이 말은 보나 마나 유현진을 탓하는 말이다.강한서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급해한다고 되는 일이에요? 아무리 한약 오래 마셔도 소용이 없잖아요? 한약 너무 많이 마셔서 안 생기는 거일지도 몰라요."유현진......그녀는 쓰디쓴 한약을 마시기 싫었지만, 유현진의 뻔뻔한 말이 더 거슬렸다.'노력하지 않는데 어떻게 임신이 되겠어!''몇 달에 한 번도 모자라 매번 배란기는 피해 관계를 가지는데, 아무리 임신이 잘 되는 체질이라 해도 맞춰주지 않는데 어떻게 가능해?'강한서는 버럭버럭하며 화를 냈다. "한약을 많이 먹어서 임신이 안 된다고? 내가 얼마나 힘들게 구했는지 알기나 해?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 유현진이 임신이 되면 내가 이러겠어?"유현진은 두 사람이 곧 싸울 것 같아 미리 말렸다. "진정하세요, 어머니. 보약 잘 챙겨 먹을게요, 물 한 잔 마셔요."신미정은 유현진의 손을 쳐내면서 쌀쌀하게 말했다. "생각해 줘도 욕먹는 걸
강한서는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유현진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며 차갑게 말했다. "나 그렇게 못된 사람 아니야. 비록 당신이 먼저 시작했지만 나 때문에 다친 거니까 치료비는 내가 낼게. 적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 아직 이혼 안 했으니 나도 이게 최선이야."말을 끝낸 유현진은 지표에 사인을 하고 강한서에게 넘겨주었다. 강한서가 수표를 보니, 지표에는 400만 원이라고 적혀져 있었다.강한서는 어두운 표정으로 수표를 찢어 버리고는 말했다. "유현진, 그만해!"유현진은 바닥에 너저분하게 흩어져있는 종이 쪼가리들을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받은 거로 할게. 참, 이혼 얘기도 강 대표가 하루빨리 처리하길 바랄게. 내가 임신이 안 된다는 누명도, 이젠 들어줄 수 없어."병원에서 나온 유현진은, 어깨가 힘없이 축 처져버리고 말았다.하나도 뜻대로 되는 일 없이,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유현진은 자기가 억지 부린 것을 알고 있었다. 분명 자기의 잘못인데도, 강한서에게 화풀이했다.하지만, 그녀는 도저히 신미정에게서 받은 굴욕이 용서되지 않았다.유현진은 머리를 숙여 손등의 기다란 상처를 보았다. 신미정이 그녀의 손을 밀칠 때 긁힌 상처이다.신미정은 오랫동안 유현진에게 불만을 품어왔다. 비록 평소에 잘해주는 듯싶지만, 진심이 맞는지 아닌지는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유현진이라는 사람도, 그녀의 집안 배경도, 어느 하나 신미정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게다가 결혼한 지도 몇 년이나 되었건만 아이도 생기지 않고, 강한서까지 그녀의 편만 들어주니, 신미정이 유현진에 대한 불만은 극치로 도달했다.세상 모든 시어머니가 아들 부부의 행복한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지, 아니면 젊은 시절에 남편을 여인 과부라 아들 사랑이 지극한 건지? 그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어도, 매번 강한서가 유현진의 편을 들어줄 때마다 신미정은 더욱 그녀를 미워했다.마치 그녀의 손등에 난 상처와 같이, 고의가 아니라면 이렇게 까지
유상수는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안 대표님, 저는 모르고 있었어요. 우리 현진이한테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볼 테니, 분명 오해가 있을 거예요.""오해? 무슨 오해? 내 딸이 확실하게 말했어, 당신 딸이 부추겼다고. 이 팔찌 환불하던지, 당신이 사든지 알아서 해. 아니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유상수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핸드폰을 놓은 뒤, 머리를 들어 유현아에게 물었다. "안 대표님이 얘기한 일, 대체 어찌 된 일이야? 55억짜리 팔찌는 또 뭐야?"유현아는 속으로 안하윤을 한바탕 욕하고 나서, 어제 있었던 일을 유상수에게 말했다.당연히 자기가 안하윤에게 암시해주었던 말들은 쏙 빼놓고 말이다.그러고는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이번 일은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언니가 나 안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안하윤 씨한테 끌려서 한 대표님의 샵으로 갔어요. 한 대표님과 매제는 사이도 좋고, 안 대표님은 한 대표님과 한주 강씨 가문을 건드릴 수 없으니 나한테 덮어씌우는 거예요. 제가 뭐라고 안하윤 씨가 내 말을 듣겠어요?"옆에 있던 여자가 휴지를 넘겨주며 유현아를 위로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55억짜리 팔찌 따위가, 체면을 얼마나 세워줄 수 있다고?"이 여자는 바로 유상수의 비서인 백혜주이다. 유현진이 그날 지하 주차장에서 보았던, 유상수 옆에 있던 바로 그 여자였다.여자는 편한 옷차림으로, 당연하다는 듯 하현주의 자리에 앉아 여주인 행세를 하며 식사했다.유상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백혜주를 보며 말했다. "지금 그까짓 말이 중요해? 안 대표가 우리더러 돈 내놓으라는 거잖아!""돈 내놓으라 그러면 줘야 해요?" 백혜주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딸 하나 관리 못 해서 사고 쳐 놓고는 다른 사람한테 덮어씌우기는, 망할 회사 같으니라고, 동생이 시집 잘 간 덕에 버티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안 대표님, 안 대표님 불러주니 정말 뭐라도 된 줄 아네요!""여자들은 머리만 길었지 생각은 어쩜 이리도 짧은지, 상암동의 땅도 안세걸
"한서 찾는 건 아니고, 너한테 물어볼 거 있어."'아빠가 나한테?'"현진아, 너 한 대표랑 잘 알아?""아니요." 유현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거짓말이 아니었다. 유현진은 실제로 한성우와 친한 사이는 아니다. 엄격히 말하면, 강한서 주위 사람들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강한서는 아마도 이혼을 예상한 듯 유현진과 친구들의 모임에 동행한 적이 별로 없었기도 하고, 굳이 함께 어울리기도 귀찮아했다.'갑자기 왜 한성우에 관해 물어보시는 거지?'얼마 안 가 그녀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유상수가 말했다. "현아가 그러는데, 어제 주얼리 샵에 보석 보러 갔다가 널 봤대."유현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그런 일 있었죠, 근데 왜요?""현아 친구가 55억도 넘는 팔찌 산 거 너도 알고 있어?"유현진은 그저 가볍게 "네" 하고 답하고 비꼬면서 말했다. "안하윤 씨 안광이 참 좋다고 하던데, 하이라이트 디자인을 바로 골랐다 그러더라고요."유상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안하윤이 그 팔찌가 싫다네, 그런데 환불이 안 된대. 한 대표 명의로 된 샵이라던데, 한서와 친구니까 네가 좀 물어봐, 환불 안 되겠냐고."'55억도 넘어가는 물건을 체면 때문에 질러버리고는, 이제야 정신 차리고 후회하는 거야?''안하윤을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거지, 아빠를 찾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내가 짠 판을, 내가 치울 이유가 없잖아?'"아빠, 아빠도 장사하시니까 잘 아실 거예요. 제품은 질량 문제만 아니면 환불이 어려워요. 다들 안하윤 씨처럼 사고 나서 후회돼 하루 지나 환불하면 장사 어떻게 해요?""도리는 맞지만 그래도 안 된다는 법은 없잖아. 네가 한서더러 한 대표한테 얘기해 보라고 해 봐. 한서 한마디면 되는 일이잖아?"유현진은 당연히 싫었지만,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요, 한서 씨한테 물어볼게요. 그렇지만 한성우가 도와줄지는 저도 장담 못 해요."유상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서와 한 대표 사이가
"네, 여보세요?"신호음이 들리자마자, 한성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랑은 다르게 가볍지 않고 신중한 목소리였다.유현진은 의아했다. '내 번호 저장했을 텐데?''안 했나?'그녀는 더는 생각할 틈도 없이 말했다. "저예요, 유현진."한성우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형수님이 어쩐 일로?"상대가 이토록 대놓고 말하니 유현진은 조금 멋쩍었지만, 지금은 멋쩍어할 시간도 없으니 바로 목적을 말했다. "한 대표님 도움이 필요해서요."한성우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게 뭐 있겠어요? 한서가 저보다 능력 있는데."그 말인즉, 강한서를 찾으라는 뜻이었다.유현진은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 싸웠어요. 그 사람한테 말하고 싶지 않아요. 더군다나, 이 일은 한 대표님만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에요."한성우는 바로 흥취가 생겼다. "싸웠다고요? 왜요? 얘기해 봐요."유현진....'우리 둘이 싸웠다는 데, 이 사람이 왜 흥분하는 거야?'"별거 아니에요. 그이한테 사주려던 양말을 제가 주 변호사한테 드려서, 그이가 삐쳤어요."한성우는 바로 중점을 캐치했다. "주 변호사한테 양말을 드려요?""주 변호사님이 파티에서 저한테 큰 도움을 주셔서, 넥타이를 선물 드린다는 것이 양말도 같이 들어갔더라고요.""아." 한성우는 의미심장하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러면 한서가 잘못했네요. 그깟 양말 하나에 삐질 거 뭐 있다고?"유현진은 한성우와 잘잘못을 의논하기 싫었다. 한성우와 강한서는 절친이기 때문에, 아무 때고 말이 새 나가기 마련이다."한 대표님, 본론으로 돌아오죠. 저 부탁드릴 일이 있어요."​한성우는 궁금증을 풀고 나니 열정적으로 변했다. "가족 같은 사이에 부탁은요. 말씀하세요, 형수님."유현진...'태도가 이리도 쉽게 바로바로 바뀌는 건, 강한서뿐만 아니라 강한서 주위 사람들의 특징이네.'유현진은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어제 주얼리 샵에서 발생한 일들과 유상수가 부탁한 일을 말했다.한성우는 사실 이 일을 어제 알
유현진은 안하윤이 거액의 팔찌를 구매했다는 것을 상류사회에 다 알리고 싶었다.'안세걸처럼 체면을 차리는 사람이 이때 환불을 하게 되면 다들 웃겨 죽을걸?'이것은 뒷길도 다 끊어버리는 최고의 방법이다.안세걸 본인이 환불을 포기한다면, 유상수도 더는 유현진에게 이 일을 부탁할 필요가 없다.한성우는 이런 짓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한성우가 한참 동안 말이 없자 유현진은 한성우를 떠보며 물었다. "어때요?""형수님, 경영학과 나오셨어요?"유현진..."저 연기 배웠는데요."한성우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말했다. "형수님은 경영을 배웠어야 했어요. 그럼, 나는 무조건 높은 연봉으로 형수님을 스카우트 했을 거예요."유현진은 그저 농담으로 여겼다. "한 대표님은 어쩔 생각이죠?""좋아요. 우리 매니저도 홍보에 관해 얘기한 적 있기도 하고, 좋은 기회인 거 같아요. 바로 실시하도록 하죠."유현진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고마워요."한성우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제가 형수님한테 고맙죠. 형수님 아니면, 이 팔찌가 언제 팔릴지 누가 알아요?"통화를 끝낸 뒤, 한성우는 바로 강한서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성우는 두 사람의 일이 업무보다 더 재미있었다.강한서가 병원에서 나올 무렵, 한성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강한서는 아직도 병원에서 있었던 일로 화가 나 있어서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하지만 한성우가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한성우는 다시 민경하에게 연락했다.민경하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강한서에게로 넘겼다.강한서는 얼굴이 잔뜩 굳어서 전화를 받았다. "너 진짜 중요한 일이여야 할 거야!""너 와이프가 연락해 왔었어."강한서..."뭐라고?"한성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유현진이 방금 나한테 연락했다고."강한서는 유현진이라는 말을 들으니 지표가 생각나, 또다시 코가 아파지는 것 같았다. 강한서는 화가 잔뜩 나서 말했다. "너한테 연락한 걸 나한테 왜 얘기해?""나한테 왜 연락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전혀!"말을 끝낸
강한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차라리 유현진이 널 패고 위협했다면 내가 믿었을 거야.""유현진 그렇게 여리여리한데, 널 패는 거야?"강한서의 코는 또다시 지끈거렸다."말할 거야, 말 거야? 안 하면 나 끊는다!"한성우도 더는 끌지 않고, 유현진이 부탁한 일을 강한서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유현진 정말 독한 여자야. 유상수가 베이칸 프로젝트를 낙찰받기 위해 절반 재산을 걸고 안세걸이 다리 놔주길 바라는데, 만약 이 일을 유상수가 해결 못 하면 안세걸 그 비겁한 사람이 더는 유상수를 돕지 않을 거야. 그럼, 낙찰도 없던 일이 될 테고. 딸이 어떻게 아빠한테 이렇게 독할 수 있어?"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상수는 하현주가 사고 난지 얼마 안 돼 투약을 그만두고 치료를 멈췄다. 이 일은 충분히 유현진이 유상수를 평생 원망할 수 있는 일이기에 이번 일은 그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와도 같았다."어? 왜 아무 말도 없어?"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지 그랬어?"한성우..."유현진 말만 나오면 반응이 격하네? 양말 가지고 그럴 거 뭐 있다고."강한서는 멈칫하더니 물었다. "양말 얘기는 누가 했어?""유현진이." 한성우는 실눈을 뜨며 웃었다. "너 혹시 양말을 강운이한테 줬다고 화난 거야?""개 소리 집어치워!"강한서는 표정이 차가워졌다. '이 여자는 별말을 다 하고 다니네!'한성우는 즐겁다는 듯 다시 물었다. "내가 도와줘, 말아?""네가 알겠다고 한 걸, 왜 나한테 물어봐?"강한서는 더는 한성우와 말하기 싫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강한서는 혼자 코웃음을 치고는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유현진은 친구의 부탁으로 애니메이션 더빙을 위해, 녹음실로 갔다.오디션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았고 시간도 충족하니 그냥 간 것이다.이 친구는 처음 더빙을 접촉할 때 알게 된 친구이고 이름은 신엽인데 다들 그를 규선이라고 불렀다. 신엽은 업계 최고의 더빙 전문 성우지만 근 몇 년은 방송국과 일하지 않고 친구
어두운 표정으로 이번 일의 경위를 할 번 곱씹은 홍혜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해금은 항상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 번도 어긋난 적조차 없었다. 조금만 먼저 얘기를 꺼냈다면 의심을 살 수 있었고 조금만 늦으면 도와줄 기회를 놓칠 수 있었다. 서해금은 늘 홍혜림이 더는 손 쓸 방법이 없는 타이밍에 나타났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 당연히 홍혜림은 평소처럼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손길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서해금이 어떤 인간인데?’서해금은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거지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친아버지도 아버지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와줄 리가 없어.’‘애초부터 이 모든 것이 서해금이 꾸민 짓이라면 말이 되긴 하지.’‘하지만 대체 왜?’홍혜림은 순간 자신에게도 조향대회의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을 또 올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서해금 의도를 파악하게 된 홍혜림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가식적인 X. 감히 날 두고 수작을 부려?’생각에 잠긴 홍혜림이 인상을 폈다 찌푸렸다를 반복하며 가끔은 이를 악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윤이 걱정스레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홍혜림이 감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역겨운 일이 떠올라서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아직 어린 나이라 홍혜림 말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한 진윤이 말했다. “엄마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 부정행위도 하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제가 신고까지 했으니 저희가 여기저기 부탁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희에게 사정을 해야겠죠. 엄마도 이젠 회사로 나가 보세요.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 회사에는 네 아빠와 형이 있어. 내가 할 일은 널 지키는 거야.”그 말에 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떠올렸다.“너한텐 좋은 부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