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준은 서류 봉투를 열어 몇 장 읽어보았다.유현진의 배경은 간단했다. 출생부터 입학, 그리고 강한서와의 결혼까지 분명하고 상세하게 적혀져 있었다.어느 병원에서 출생했는지, 어느 학교에 다녔는지, 어렸을 때 어느 병원에서 병 치료를 받았는지, 심지어 6년 전의 사고까지 다 기록돼 있었다.그리고 모든 성장 과정의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송민준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며 눈살을 찌푸렸다.비서가 의아한 듯 물었다. "대표님, 근데 왜 갑자기 유현진을 조사하시는 거예요?"송민준은 서류를 넘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계약하려고 뒤 조사 좀 하는것뿐이야."'계약하는데 왜 어릴 적부터의 정보가 필요한 거지?다른 연예인들도 이렇게 상세하게 캐고 계약한 게 아닌데 말이야.혹시 강 대표님의 사모님이라 더 신중하게 하시는 건가?'송민준은 얇디얇은 서류를 몇 번이고 훑어보다가 머리를 들어 말했다. "유상수와 하현주도 조사해. 상세하면 상세할수록 좋아.""네."갑자기 송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송민준은 상대를 확인하더니 찡그러진 얼굴을 펴고 전화를 받았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송민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가고 있어. 곧 도착해. 왜, 혼자 있는 게 무서워?""누가 무섭대? 아빠가 오빠 또 술에 떡이 될까 봐 나한테 감시하라고 시키지만 않았어도 전화 안 했을 거야.""내가 술에 떡이 되면 네가 알아서 날 도와주면 되지.""싫거든! 아빠가 그리 쉽게 속히 울 사람이야? 뻥치는 거 들키다가 나도 같이 벌 받아."말을 끝낸 송가람은 기침하기 시작했다.송민준은 표정이 굳어졌다. "왜 기침해? 감기 걸렸어?""아니, 한주시는 너무 건조해서 목이 좀 불편한 것뿐이야.""가습기 켜고 물 많이 마셔. 나 금방 도착해. 먹고 싶은 거 있어?""아주머니가 해준 밥 먹어서 배 안고파. 빨리 와. 아니면 이따 아빠랑 영통할 때 오빠가 안 보이면 난리나.""그래, 곧 도착해."전화를 끊은 송민준은 비서에게 물었다. "해서야, 인공 강수 가능하겠어?"박
강한서는 술버릇이 이랬다.다른 사람들은 술에 취하면 잠을 자거나 주정을 부리거나 하지만 강한서는 술만 마시면 생각이 멈춘 듯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이미 인사불성이었다.강한서의 주량은 친한 친구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비즈니스 술자리에서 강한서는 대부분 술을 피하거나 민경하가 대신 마시기도 했다.아니면 이 주량으로 취한 틈을 타서 회사를 팔아먹어도 모를 것이다."누구야?"강한서는 태양혈을 꾹 누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술 먹고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거야?'그녀는 능청스럽게 강한서를 놀려먹기 시작했다. "너 이 자식, 엄마도 못 알아보는 거야?""엄마?""그래~"'어디서 아들놈이 떨어졌네!'유현진은 강한서를 놀려줄 생각에 휴대폰을 꺼내 증거 영상을 찍으려 했지만 시작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강한서가 그녀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 "유현진?"'아씨!벌써 깼어?'유현진은 머리를 들어 강한서를 보았다. 분명 아까와 같은 표정인 거로 보아 정신을 차린 건 아니다."머리 아파."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머리를 푹 숙이고는 유현진의 손을 들어 자기의 이마에 올려놓았다.유현진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술에 취한 강한서는 왜 이렇게 착한 거야?""취했으니 머리 아프지."유현진은 애써 손을 빼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강한서는 손에 힘을 더 주었다."아니, 너 때문에 화나서 아파."강한서는 진지했다.유현진은 입꼬리를 실룩이며 말했다. "내가 그런 힘이 있었어?"강한서는 두 눈을 감고 갈라진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날 자꾸 짜증 나게 해... 이혼도, 다툼도, 그리고 내 말을 씹을 때 제일 짜증 나."유현진은 멈칫하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 "당신 말을 씹는 게 왜 짜증 나?"강한서는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현진은 머리를 숙여 강한서를 바라보았다. 강한서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그녀는 한숨을 내 쉬었다. '왜 신경 쓰게 만들어.'________엘 하트 펜션송민영은 짜증 섞인
오늘 연예 기사 차트는 모두 유현진과 '법역'으로 장식되었다. 송민영의 실검 조작은 오히려 모두의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실검에 오른 지 얼마 안 돼 그녀는 바로 사람을 시켜 실검을 내려버렸다.한세정도 홍보 효과가 없으니 다시 연락해 온 것이다.하지만 송민영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이 많다 보니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일단 한 번만 공유해서 노출 수라도 올려보자. 맞다, 오늘 '법역'에 나온 여자, 차이현이 계약한 중전역의 배우야."송민영은 얼굴이 굳어지더니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뭐라고요? 차 감독님이 계약한 신인이 유현진이라고요?""맞아, 왜 그래? 자기 말투로 봐서는 아는 사람이야?"'그냥 아는 정도겠어? 너무 잘 알지!'송민영은 표정이 굳어졌다.'유현진이 '봄의 연인'을 계약했다고? 다른 배우가 계약했으면 내가 빼앗아 올 수도 있는 건데. 유현진이면 곤란해.'강한서가 '정상에서'의 더빙 배역을 주었을 때, 조건은 경고장을 취하하는 것이었다.당시 연쇄 추돌 사고로 송민영에게 악플이 달렸을 때 시우진은 변호사를 계약했지만,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강한서가 일을 중단시켰다.그리고는 '정상에서'의 배역도 주고 두 브랜드의 광고도 계약하게 했다.'보나 마나 유현진이 폭로했겠지. 그러니까 강한서가 고소 취하를 조건으로 나에게 많은 자원을 주었던 거야.그런데 '봄의 연인'은 유현진으로 결정됐으니 강한서가 내 말을 들어주기나 하겠어? 자기 와이프 배역을 빼앗아 나에게 줄 리가 없지.'송민영이 말이 없자 한세정도 이에 대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한번 게시물 공유를 부탁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곰곰이 생각하던 송민영은 갑자기 머릿속에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떠올랐다.그녀는 시우진을 내보내고 서랍에서 노트를 꺼내 위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상대방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 송민영인데요..."________샤워를 마친 송민준은 물 한 컵을 따르고는 소파에 앉아
남주는 여러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쓴 조태일이고 여주도 유명한 지연서이다. 보기에는 동안이지만 사람들에게 중후한 느낌을 주었다.노안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눈동자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듯했다. 세상 풍파를 겪어보았지만, 희망에 찬 눈빛이라고 해야 할까.어떻게 말로 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촬영 진도가 빨라졌다.제작진 중 누군가 말하기를 내년에는 정책으로 인해 사극 수량이 제한되어 있으니, 차이현은 한가위 전후에 첫 방을 내보내기 위해 속력을 가하고 있다고 했다. 만약 진도가 늦어지면 방영 시간이 언제로 잡힐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심지어 몇 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년 뒤에는 트렌드도 바뀌기 마련이다.유현진은 파트가 많지 않았지만, 촬영 순서가 안정적이지 않다 보니 항상 대기하다가 언제 필요하면 언제 달려와서 촬영에 들어가야 했다.그래서 머리에 달린 장신구의 무게만 빼면 별다른 불편한 점은 없었다.차이현이 픽한 배우들은 주연과 조연을 막론하고 누구나 다 성실하게 촬영에 임했다.유현진은 대사를 잘 치지만 표정 방면에서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조금 떨어졌다.하지만 다행히도 차이현은 지도를 잘했고 유현진은 그 지도를 잘 받아들였기에 그녀는 날이 갈수록 연기 실력이 늘었다.요즘 유현진은 촬영으로 인해 분주해지자 강한서는 마음이 복잡했다.매일 강한서보다 일찍 기상하고 강한서보다 늦게 집에 들어오니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가끔 한밤중에 집에 들어오는 그녀와 마주치기는 했지만, 매번 하품을 해대며 샤워실로 들어가는 바람에 강한서도 어쩔 수 없었다.이날 밤, 유현진은 9시가 훨씬 넘어서야 집에 들어와 샤워하고 머리를 말리더니 침대에 바로 누워버렸다.예전과 같으면 잠들기 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는데 이젠 휴대폰도 보지 않는다.강한서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서랍에서 이어폰과 안대를 꺼내서 청각과 시각을 아예 봉쇄해 버렸다.이 자식은 맨날 11시가 넘어서도 침대에 오르지 않더니
유현진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증조할아버지가 강한서를 보고 싶다 하시면 언제 한 번 데리고 가면 안 돼요? 여기 오시면 우리도 출근이라 같이 있어 드릴 시간이 없어요. 증조할아버지는 연세도 많으신데 혹시 사고가 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말을 끝낸 유현진은 혼자 중얼거렸다. "강한서를 봐서 뭐 한다고. 사람이 다 똑같지,뭐."강한서는 어이가 없었다.유상수는 발끈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어릴 때 증조할아버지가 얼마나 예뻐하셨는데. 좋은 건 너만 주고 네 곁에 꼭 붙어있으셨어. 증조할아버지가 살면 얼마나 더 사신다고.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야 할 거 아니야? 너희 사는 모습이 궁금하시다는데 그것도 안 돼? 더군다나 한서는 출근하지만, 넌 집에 있을 거 아니야? 이미 네 삼촌 앞에서 그러겠다 장담했는데 인제 와서 안 된다고 하면 내 체면이 서겠어? 전화 바꿔, 내가 한서한테 직접 말할 테니까."멋대로 결정하고 내 탓을 해?강한서한테 얘기할 거면 나한테 얘기하는 게 낫지. 강한서가 얼마나 독하고 민감한데 처음 보는 사람을 집에 들여 생활 패턴을 바꾸겠어?곰곰이 생각하던 유현진은 차라리 강한서가 독하게 유상수를 거절하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휴대폰을 강한서에게 넘기며 말했다. "우리 아빠가 당신한테 할 말 있으시대."강한서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전화를 받았다.유현진은 잠이 다깨어서 강한서의 독설을 기대했다.유상수의 말이 끝나자 강한서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래요, 내일 손님방 정리하라고 할게요."유현진은 뻥 져 있었다.강한서가 통화를 종료한 뒤, 유현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겠다고 했어?"강한서는 휴대폰을 넘겨주며 말했다. "당신 아빠가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내가 어떻게 거절해?"개뿔!거절 못 해? 예전에는 잘만 하더니, 벌써 잊은 거야?강한서 이 자식 약 먹었어?'유현진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당신이 오라고 했으니 기분 나쁜 일이 생겨도 내 탓 하지
마침 유현진은 며칠 동안 촬영 스케줄이 없었는데 유상수는 귀신같이 기회를 잡았다.다음 날 아침. "사모님, 안녕하세요!" 계단을 내려가던 그녀는 깜짝 놀라서 다리가 후덜덜 떨려왔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가정부들이 몇 명 보였다.거실과 유리창, 그리고 웨딩 사진까지 아주 깨끗하게 닦여져 있었다.모든 게 새것처럼 되어있었다. 마치 그들의 신혼 때처럼 말이다.강한서 왜 안 하던 짓을 하지?아빠의 요구를 들어주는가 하면 심지어 손님방을 다 정리하라고 시킨 듯하네.그래 뭐, 알아서 하겠지. 난 편히 있으면 되는 거야.'차 한 잔을 따르고 있는데 강한서가 나타났다.그는 슈트 차림에 머리에 왁스까지 바르고 옷깃을 정리하며 내려왔다.강한서는 비율이 좋았다. 187센티의 키에 다리만 115센티이니 슈트를 입고 서 있으면 모델 저리가라이다.유현진은 강한서의 후덜덜한 비율을 감상하며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이제 출근해?"강한서는 그녀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출근 안 해."출근도 안 하면서 왜 저렇게 입었대?'유현진이 묻기도 전에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 "예쁜 옷 갈아입고 나와. 차에서 기다릴게."유현진은 멈칫하며 물었다. "어디가?""당신 아빠가 증조할아버지 모시러 가래."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모시고 온다고 그랬잖아? 근데 왜 모시러 가라고 하는 거지?'유현진의 증조할아버지가 병원에 있는 사이에 유씨 가문 친척들이 많이 다녀갔었다. 그런데 하현주와는 관계가 안 좋다 보니 유현진도 몇 번 만나보지 못한 사이라 친척들은 유현진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했다.유현진도 그들과의 불필요한 만남이 달갑지 않았다.마지막으로 만났던 건 설날이었다. 유상수가 기어코 오라고 했지만 강한서는 유씨 가문을 싫어하다 보니 유현진은 혼자 다녀갔었다.유현진은 식사 자리에서 친척들이 자기를 보는 표정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유상수는 유씨 가문의 첫 대학생이다. 유상수가 성공한 후, 고향에 많은 돈을 지원해 길도 냈으니, 위신이 높았다.그래서
그러다 하현주는 사고로 눕게 되고 유현진은 강한서와 결혼했다. 누구도 명문대를 나온 유현진이 가정주부가 될 거라는걸 생각지도 못했다. 친척들은 그제야 운명을 바꿀 기회가 생긴 것이다.올해 유현진의 사촌 동생이 경민 대학교에 석사로 붙게 되었다. 경민 대학교는 한주시에서 태주 대학교 다음으로 유명한 명문대이다.설날 식사 중에 친척들은 아이들이 어릴 적 얘기를 하다가 유현진을 안주 삼아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한창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유현진이 아무리 학생 때 공부를 잘했어도 지금은 가정주부라며 비꼬았다.그날 유현진은 화가 나서 배불렀다.이 진상들을 보니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유현진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강한서는 이미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강한서는 평소에 잘 끌고 다니지 않던 링컨을 끌고 나왔다.눈치 빠른 민경하는 그녀의 생각을 읽고 다급히 해석했다. "차에 침대가 있으니, 노인이 타시기에 편해요."오~ 세심한데?'유현진은 강한서를 힐끔 보았다.이 세심함은 강한서 스타일이 아니지.'"빨리 타."강한서의 재촉에 유현진은 차에 탔다.차가 출발한 뒤에야 강한서가 물었다. "요즘 뭐 하고 있어?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던데.""촬영하고 있지. '법역' 인기 많은 거 몰라? 감독님이 좋게 봐주셔서 계속 촬영하기로 했어."법역' 얘기에 민경하가 관심을 보였다."우리 엄마도 요즘 그거 보시는데, 첫 번째 스토리를 보고 깜짝 놀랐대요. 특히 사모님 연기 부분에서. 엄마가 남자 배우 너무 잘 생겼다고 그러길래 내가 여자라고 그랬더니 안 믿는 거예요. 그러다 그다음 주 방송의 남자 배우를 보고 첫 회에 나온 배우보다 느낌이 별로라고 그러시더라고요. 요즘은 인터넷도 할 줄 알아서 맨날 '법역' 인스타그램 계정에 댓글도 남겨요. 사모님 연기를 다시 보고 싶다면서요. 타자도 잘할 줄 몰라서 얼마나 느린지 몰라요. 요즘은 방송국에 전화도 넣을 생각 하시던데요.""참 재미있는 분이네요." 유현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드라마도 아닌데 어떻
한성은 국내 과학기술 영역의 핵심 파워로서 직원에 대한 요구가 아주 높다. 올해에는 국내 명문대와의 공동 프로젝트를 만들어 인재를 배양하고 있다.본 프로젝트는 선택된 명문대에 가서 강연도 필요했는데 유현아가 마침 프로젝트 모델 중 한 사람이었다.유현아가 다닌 대학교도 이번 프로젝트에 포함되었거니와 유현아는 인기 인플루언서라 대학생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있었다. 게다가 고아로부터 입양아로, 나중에는 한성의 일원이 되기까지 이야기는 많은 대학생에게 감동을 주었다.유현아와 이 집 아들은 같은 대학교를 졸업했다. 사실 경민 대학교보다 낮은 위치인데 유현아는 인턴도 거치지 않고 바로 한성에 들어가 이렇게 좋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그녀의 둘째 작은어머니는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유씨 가문에서 그래도 현아가 제일 출세했네요. 미래가 창창하네요.""현아 어릴 때 그 장님이 현아 얼굴을 만져보고는 그랬잖아, 이 아이 관상이 참 좋다고. 그 말이 맞았던 거지.""장님이 뭘 안다고요, 아주버님이 잘 가르치신 덕분이죠.""형님이 현진이는 안 가르쳤겠어요? 그 계집애는 학교도 더 좋은 데 갔잖아. 형수님이 그렇게 자랑하더니, 결국 어떻게 됐어? 연기를 배우지 않나, 졸업하고 결혼부터 하지 않나, 죽 쒀서 개 줬지.""현진이 요즘 티브이에 나오던데요. 아이고, 말도 말아요. 남잔지, 여잔지 구별도 안 돼요. 걔 시어머니 부자라면서요? 왜 며느리를 방송에 내보내요?""결국은 자기 돈이 아니잖아. 어떻게 속 편하게 쓰겠어. 어제 형님이 그러는데 할아버지를 현진이한테 보내려고 하니 현진이가 아주 질색하더래. 그게 다 결정권이 없어서 그러는 거 아니겠어?""졸업하고 결혼부터 할 거면 왜 명문대에 다녔대요? 현아 보세요. 대기업에 들어갔으니, 앞으로 결혼해도 시댁 눈치 볼 필요 없을 거잖아요."유현아는 기분이 흐뭇했다.분명 유상수에게 아부하는 말인 것을 알면서도 유현아는 기분이 좋았다. 하현주가 사고 나기 전에는 이런 칭찬은 사실 다 유현진의 몫이었다.유현아
어두운 표정으로 이번 일의 경위를 할 번 곱씹은 홍혜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해금은 항상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 번도 어긋난 적조차 없었다. 조금만 먼저 얘기를 꺼냈다면 의심을 살 수 있었고 조금만 늦으면 도와줄 기회를 놓칠 수 있었다. 서해금은 늘 홍혜림이 더는 손 쓸 방법이 없는 타이밍에 나타났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 당연히 홍혜림은 평소처럼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손길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서해금이 어떤 인간인데?’서해금은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거지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친아버지도 아버지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와줄 리가 없어.’‘애초부터 이 모든 것이 서해금이 꾸민 짓이라면 말이 되긴 하지.’‘하지만 대체 왜?’홍혜림은 순간 자신에게도 조향대회의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을 또 올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서해금 의도를 파악하게 된 홍혜림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가식적인 X. 감히 날 두고 수작을 부려?’생각에 잠긴 홍혜림이 인상을 폈다 찌푸렸다를 반복하며 가끔은 이를 악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윤이 걱정스레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홍혜림이 감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역겨운 일이 떠올라서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아직 어린 나이라 홍혜림 말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한 진윤이 말했다. “엄마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 부정행위도 하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제가 신고까지 했으니 저희가 여기저기 부탁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희에게 사정을 해야겠죠. 엄마도 이젠 회사로 나가 보세요.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 회사에는 네 아빠와 형이 있어. 내가 할 일은 널 지키는 거야.”그 말에 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떠올렸다.“너한텐 좋은 부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