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은 ‘칫’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구두쇠 주제에 그녀가 돈에 눈이 멀었다고 했단 말인가?이때,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차미주한테서 온 전화였다.통화 버튼을 누르자 흐느껴 우는 차미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현진아, 어디 있어? 나 좀 도와줘. 나 지금 경찰서에 있어. 이 사람들이 날 절도 혐의로 여기에 끌고 왔어...”유현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어느 경찰서야? 내가 지금 당장 갈게!”전화를 끊은 유현진은 염치 불구하고 강한서한테 부탁했다.“저기 나 좀 한암동 경찰서까지 데려다줄 수 있어? 친구가 지금 경찰서에 있대.”강한서는 아무 말도 없이 비서한테 경찰서로 향하라고 손짓했다.유현진은 차미주가 범죄에 연루되었을까 봐 가는 길 내내 조마조마했다.차가 경찰서 앞에 멈추자마자 그녀는 차에서 뛰어내렸다. 경찰서에 들어가 개인정보를 제출하고 나서야 취조실에 있는 차미주와 만나게 되었다.차미주는 방금까지도 울었는지 눈이 팅팅 부어 있었다. 평소 패기가 넘치는 아이였지만 친구가 별로 없었고 경찰서는 처음 와봐 잔뜩 겁을 먹었다.유현진도 잔뜩 겁을 먹었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고 경찰한테 물었다.“제 친구가 뭘 잘못했나요?”경찰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봤다.“이분이랑 무슨 사이죠?”“제 친구입니다.”유현진이 신분증을 내밀며 말했다.경찰은 그녀의 정보를 기록한 후 말했다.“절도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그리고 이분 집에서 신고자의 물건을 발견했고요.”유현진은 바로 반박했다.“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지금 얘랑 같이 살고 있는데 단 한 번도 남의 물건을 본 적이 없어요. 오해가 있는 거 아니에요?”“같이 사는 분이세요? 얼마나 오랫동안 같이 살았죠?”“일주일 넘었어요.”이에 경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신고자의 물건도 분실된 지 일주일이 됐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거주하고 있다면 당신도 절도 혐의가 있는 겁니다. 공범일 수도 있죠.”경찰은 물증도 없이 추측만으로 그녀를 공범으로 몰고 갔다.유현진은 화를 꾹 참고 침착하
“경찰 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신 신고자가 성은 강이고 이름은 한서죠!”경찰은 기이한 표정으로 그녀를 힐끔 보았다.“아는 사람인가 보네요?”유현진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제 남편이에요!”“증거 있어요?”이런 것도 증거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녀의 남편을 그녀의 남편이라고 증명해야 된단 말인가?유현진은 처음으로 경찰과의 소통에서 장애를 느낀다고 생각하였고 더는 쓸데없는 얘기를 하지 않고 곧바로 강한서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가 통하자마자 쓰레기 같은 남자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쓰레기 같은 것이 모른 척한다!유현진은 화를 참고 차갑게 말했다.“들어와서 경찰에게 상황 설명을 해.”강한서는 마치 그녀의 이 한마디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으며 유현진은 강한서가 일부러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확신했다.사실 유현진은 차미주에게 사고가 생긴 것을 듣고는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으며 조금만 진정하고 생각해 봤다면 곧바로 단번에 알아차렸을 수 있을 것이다. 경찰서의 직책은 제한이 있다. 몇억이나 되는 절도 사건을 어떻게 마음대로 경찰서에서 처리할 수 있단 말인가?강한서가 들어오자 유현진이 바로 그를 잡아당겼다.“경찰 선생님, 신고자는 이 사람이에요. 제 남편이에요.”강한서는 부정하지 않았고 경찰이 강한서를 힐끔 보더니 다시 유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분이 당신의 남편인데 왜 당신과 같이 안 살죠?”유현진은 말문이 막혔으며 강한서는 구경꾼 같았다.이내 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당신에게 묻잖아.”유현진은 그를 노려보더니 한참 동안 머뭇거리고서야 말문을 열었다.“최근 조금 다퉈서 집에서 나와 친구와 살고 있어요. 반지는 제가 갖고 나온 것이고 제 친구는 도적이 아니에요.”경찰이 미간을 찌푸렸다.“두 사람이 다툰 건데 엉뚱한 사람을 신고한 거예요? 장난해요?”유현진은 머리를 숙인 채 꾸중을 들었고 마음속으로 강한서를 한바탕 욕했다. 경찰은 두 사람에게 깊은
“그녀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유현진은 그보다 성격이 더 셌다.“그녀는 그냥 내가 당신에게 쫓겨났을 때 날 도왔을 뿐이잖아! 내가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우지 않아 당신의 심기를 건드린 거지?”“그렇게 생각해?”강한서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라 옆에 있던 서류봉투를 그녀에게 던졌다.“난 그 정도로 심심하지 않아!”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황당한 얼굴을 하였다.서류에 있던 내용을 살펴보자 순간 눈썹이 ‘ 팔’ 자로 되었다.몇십 장의 대화 내용과 인스타 캡처였고 매장마다 송민영에 관한 지라시였다.예를 들면 송민영이 추돌사고에서 연예인의 특권을 이용하여 구급차를 독점하였고 그 사고를 이용하여 스캔들을 조작하였으며 심지어 그녀가 유명해지기 전에 다른 사람의 정부 노릇을 하였고 그 사람의 결혼식에서 깽판을 쳤다는 내용이었다.이 일을 다루는 계정이 수십 개가 있었지만 IP는 전부 한 곳이었다.그리고 그곳은 유현진이 아주 익숙한 곳이며 차미주의 오피스텔이었다.그래서 그가 갖은 노력을 한 게 그의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손본 것이란 말인가?“이 계정들 눈에 익지?”강한서가 비아냥거렸다.“이런 유언비어를 올린 증거만으로 그녀를 몇년 동안 수감생활을 시킬 수 있어!”유현진은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이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언비어? 거짓을 유언비어라고 해. 여기에 있는 내용 중에 사실이 아닌 게 하나라도 있어? 그녀가 교통사고 때문에 고작 팔목을 조금 스쳤을 뿐인데 당신이 달려가 특급 병실에 입원시킨 게 거짓이야? 삼 년 전 당신이 나를 결혼식장에 버려두고 그녀에게 간 게 거짓이야?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얘기한 것만으로도 유언비어라고 하면 나는 감옥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게 아니야?”강한서의 얼굴이 순간 차가워졌다.“당신이 나를 미행 안 했다고? 미행 안 했으면 어떻게 내가 그녀가 사고난 날 병원에 간걸 알고 있지?”유현진은 콧방귀를 뀌었다.“왜 당신을 미행하려고 병원에 간 거라고 생각해? 왜 치료를 받으러 간 거라고 생각 안해?”강한서
강한서가 비아냥거렸다.“그럼 당신이 유상수를 불러와. 그의 앞에서 이혼 얘기를 하지.”유현진은 순간 벙어리가 되었고 그를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강한서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우리가 이혼하기 전에는 조용히 아름드리에서 사는 게 좋을 거야. 그전에 이혼에 대한 얘기가 조금이라도 할머니의 귀에 들어가면 당신은 이번 생에 이혼은 꿈도 꾸지 마.”이것은 유현진의 명줄을 잡고 있는 것과 같다. 강한서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녀는 죽을 때까지 이 혼인에 잡혀살게 된다. 강 씨 가문은 지금 상속자를 다투는 시기이다. 만약 이 시기에 강한서의 이혼이 소문나면 할머니와 대주주들의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얼마나 잔혹한 현실인가, 유현진은 순간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그녀는 입을 다물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침묵이 계속되자 분위기가 아주 삭막해졌으며 강한서가 겻눈질로 유현진을 힐끔 보았다.방금까지만 해도 당당하게 대꾸를 하던 여자는 그 시각 영혼이 나간 것처럼 조용하다.그는 그녀의 조용한 모습이 적응이 안 되었고 조금 싫었다.“알았어, 당신을 도와 연기를 하지.”함참동안 침묵을 하던 유현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고 눈빛은 아주 강인하고 쌀쌀맞았다.“하지만 조건이 있어.”강한서는 턱을 치켜올리며 그녀에게 말하라고 했다.유현진이 말했다.“당신이 한성을 독차지한 뒤에 우리는 협의이혼을 해. 부동산과 차, 그리고 지분 모두 필요 없어. 나에게 2천억을 줘.”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조건을 걸라고 했지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라고는 안 했어.”유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강 대표님, 강성의 시가가 20조가 되는데 나한테 2천억을 달라는 게 과분하지 않잖아?”강한서가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으며 마치 이 거래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 같았으며 고민을 하다 결국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알았어, 그 조건을 들어줄게.”유현진은 강한서가 이렇게 통쾌하게 대답할 줄 예상 못 했는지 흠칫 놀랐다. 하지만 그녀는 재빨리 정신을 차려 가방에서 볼
차는 빠르게 아름드리 펜션에 도착하였다.차를 세우자 유현진은 강한서에게 인사 한마디도 없이 곧바로 차에서 내려 문을 거세게 닫고 갔다.강한서는 창문으로 성격이 점점 세지는 여자를 힐끔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그것을 본 민경하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강 대표님, 분명 대표님이 송민영 씨의 고발장을 막았는데 왜 사모님에게 사실대로 얘기해 주지 않으셨어요?”강한서는 아주 화가 났다.“사실대로 얘기한다고? 그녀의 모습을 봐, 듣기나 하겠어?”민경하가 입을 다물고 마음속으로 대표님의 태도와 말투로 말하면 누가 화를 안 낼까라고 생각했다.예전에 여자는 겉과 속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순위로 따지자면 자신의 보스를 이길 사람이 없을 것이다.사모님이 자신의 아내를 불렀다는 얘기를 듣고는 겉으로는 그녀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퇴근도 하기 전에 그녀의 체면을 살려주려고 배즙까지 선물했다.길거리에서 파는 몇만 원짜리 물건인데 그럴싸한 핑곗거리도 찾을 줄 몰랐다.“그리고.”차에서 내리기 전 강한서가 갑자기 무엇인가 떠올랐다.“육교 추돌사고가 발생한 날 그녀가 병원에서 뭘 했는지 조사해 봐.”“알겠습니다.”강한서가 펜션으로 들어가자 가정부가 재빨리 옷을 받아들고 슬리퍼를 꺼냈다.“그녀는 어디 갔어요?”가정부가 말했다.“사모님은 도착하고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갔어요. 아무 말도 없었어요.”강한서는 위층을 힐끔 보고는 우아한 동작으로 넥타이를 풀며 담담하게 말했다.“먹을 것 좀 준비해줘요. 방을 정리하고 내려오라고 해요.”가정부가 흠칫했다.“오늘 사모님이 여기서 주무시는 거예요?”강한서가 그녀를 힐끔 보았다.“여긴 그녀의 집이기도 해요. 그녀가 여기서 자는 게 잘못된 일이에요?”가정부는 몸을 부르르 떨며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그 뜻이 아니라...”강한서가 손을 저었다.“빨리 방을 준비하고 음식을 여러 가지 해요.”한 시간 뒤.강한서는 한상 가득 차린 음식을 바라보며 위층
유현진은 자신이 2천억을 가진 뒤의 생활을 상상하더니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2천억만 요구한 게 어디야, 강한서의 개 같은 성질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더 있어?”그것은 차미주도 아주 동의한다.“그가 돈이라도 없으면 어느 여자가 정신이 나갔다고 그에게 시집을 가겠어? 인격에 문제가 있어!”그 말을 들은 유현진은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그녀야말로 그 정신 나간 여자다. 그 당시 그녀가 강한서와 결혼할 때 그녀는 강 씨 집안이 한주시에서 어느 정도 지위인지도 몰랐고 그냥 강한서 한 사람만 위해서 한 것이었다.“잠깐만, 일단 전화부터 받을게. 조금 있다 다시 얘기하자.”차미주는 자신의 사장이 이 늦은 시간에 연락이 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늦은 밤에 이세윤은 왜 그녀에게 전화를 건 것일까?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그녀는 안 받을 수가 없었다.“여보세요, 이 대표님?”“그래, 미주야.”“네, 저예요.”“요즘 시간 있어?”이세윤이 연락 온걸 보면 좋은 일이 아니기에 차미주는 대충 얼버무렸다.“요즘 좀 바빠요.”“그래?”이세윤이 한숨을 쉬었다.“그럼 아쉽게 됐네. 회사 하나가 네가 쓴 대본이 마음에 들어 촬영을 하고 싶대. 하지만 각본상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어 나한테 작가에게 고칠 수 없는지 물어봐달래. 네가 바쁘면 됐어. 내가 거절할게.”차미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잠시만요! 이 대표님, 이 일은 다시 상의해도 될 거 같아요!”이 대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네가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상의해?”차미주는 시간을 되돌려 자신의 뺨을 치고 싶었다. 이내 그녀가 뻔뻔하게 말했다.“이 대표님, 시간은 짜낼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대표님이 주신 미션인데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을 내야죠!”“어렵지 않겠어?”이세윤이 질문했다.“어렵지 않아요! 전혀요!”이세윤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내가 그쪽에서 요구한 사항을 메일로 보낼게. 수정하고 나에게 보내. 그쪽에서 마음에 들어 하면 금액을 상의하지.”“알겠습니
소파 옆의 플로어 스탠드가 갑자기 켜지면서 깜깜했던 거실을 환히 비추었다.강한서는 소파에 앉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은 그가 입고 있는 잠옷보다 더 어두웠고 눈빛은 마치 그녀를 꿰뚫어 볼 듯했다.유현진은 다소 난처한 듯 머쓱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강 대표님, 거실에 있으면서 왜 전등을 켜지 않았어?”강한서는 냉소를 흘렸다.“눈 보호하고 건강 관리하려고. 그래야 개자식인 내가 오래 살지 않겠어?”유현진은 말문이 막혔다.빌어먹을 강한서는 매번 그녀가 했었던 말을 다시 돌려주며 그녀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하지만 뒷담화를 하다가 본인한테 들켰으니 유현진이 나쁜 건 맞았다. 유현진은 억지로 미소를 짜내며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그럼 건강 관리를 위해서 전등을 끌까?”호시탐탐 도망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유현진이 이제 막 몸을 돌렸는데 등 뒤에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국수 끓여줘.”유현진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빌어먹을 강한서는 그녀를 시종으로 아는 걸까?유현진은 눈을 한 번 흘기고는 몸을 돌리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장 씨 아주머니 부를게.”강한서는 코웃음을 쳤다.“유현진, 집에서 누워만 있으면 2,000억이 그냥 생기는 줄 알아? 내 돈을 버는 게 그렇게 쉬운 거 같아?”유현진의 걸음이 멈췄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강한서를 마구 쥐어패면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내가 끓일게. 강 대표님이 먹고 싶다는 국수라면 뭐든 끓여줄게. 2,000억을 주는데 그 정도 값어치는 해야지!”강한서는 코웃음을 쳤다.“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야.”그에게서 등을 돌린 뒤 유현진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구두쇠, 짠돌이. 돈 좀 썼다고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아? 국수? 국수는 무슨, 똥이나 먹으라 해!’욕은 했지만 유현진은 줏대 없이 주방으로 달려갔다.요즘 돈을 같잖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무려 2,000억이다. 이혼만 하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고 심지어 하현주까지 부족함 하나
유현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식사하는 모습이 점잖지 못하다고 나무라는 건가?유현진은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밖에서 아주 잘 먹고 다니는데? 오히려 네 집에서 자주 배부르게 먹지 못하지.”강한서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솔직히 얘기해서 앞으로 이혼할 사이라 유현진은 굳이 말을 가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넌 입맛이 까다롭잖아. 아주머니가 해주는 음식은 전부 네 입맛에 맞춘 거라 식탁 위 음식들은 전부 싱겁고 담백해. 내가 스님도 아니고 그렇게 담백한 음식을 어떻게 먹겠어?”강한서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아주머니한테 네가 먹고 싶은 거 해달라면 되잖아?”“내가 얘기한 적 없을 것 같아? 넌 조금이라도 간이 센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면 미간을 팍 구기면서 역겹다는 걸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잖아. 아주머니는 너한테서 월급을 받는데 왜 굳이 네 심기를 건드리는 일을 하겠어?”말하면 말할수록 유현진은 강한서의 집에서 지냈던 지난날들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음식이든 생활 습관이든 모든 걸 강한서에게 맞춰야 했었다.유현진은 강한서의 취향이나 습관을 똑똑히 기억하는데 강한서는 그녀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를 것이라고 유현진은 장담한다.“강 대표님, 진심으로 건의할게.”강한서는 유현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어질 말이 별로 좋은 말이 아님을 직감했다.유현진이 말했다.“너 앞으로 재혼할 생각이라면 절대 우리 인간 세상에서 짝을 찾지 마. 천상계에서 찾아. 조금이라도 딸리는 사람은 너한테 안 어울리니까.”강한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죽고 싶어?”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깔끔히 해치운 유현진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천천히 먹어. 난 먼저 잘게.”말을 마친 뒤 유현진은 토끼보다 더 잽싼 몸짓으로 순식간에 위층으로 올라갔다.강한서는 시선을 거둔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유현진이 그랬던 것처럼 청양고추 한 숟가락을 떠서 그릇에 넣고 잘 섞은 뒤 면을 집어 맛을 보았다.청양고추의 알싸한 맛이 혀끝에서 시작해 입안,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