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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체리 네가 한국에 오면 좋을 것 같아. 우린 사는 곳이 달라도 이야기가 꽤나 잘 통했잖아? 만약 체리 네가 한국에 온다면 우린 같은 하늘 아래에서 더욱 더 많은 걸 공유할 수 있을 거야. 지니로서는 그래. -gni_moo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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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지율혜.
일본에서는 사카타 리츠에.
십 년이 넘게 아역배우로서 지내온 커리어.
근데 요즘은 제가 속한 화려한 삶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궁금하다는 거지.
당분간 프레임 밖을 벗어나 이 성장통을 견디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로만 알았는데.
결국 또 멍하니 카메라 주위를 맴돌고 있어.
이래서 엄마 아빠 피는 못 속인다는 거겠지.
물론 어느 상황에서든 쉽게 주눅 들 리짱은 아니지만 매너리즘이란 건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는 쉽게 떠나지 않는다고들 하잖아.
그래서 리짱은 결심했다는 거야.
지금 이 순간 리짱의 마음이 내키는 쪽으로.
“정말이지 리짱 주변 환경을 바꿔봐? 리짱은 여권을 두 개나 갖고 있는걸. 이건 미성년자의 혜택이랬어. 키라키라 신호등은 흔치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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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의 장점? 적당히 다정해! 그 점이 좋아. 친구끼리 크게 바라는 것 없이도 서로 아낄 수 있다는 걸 알려줬으니까. 새 학교에서도 좋은 소식 들려줄게. 지니도 알다시피 오늘은 전학 가는 날이라 바쁠 예정이거든. -cherish_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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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내용은 여느 때와 같이 무난했지만 그 무난함으로 인해 남자는 또 한 번 들끓었다.
잠시 두 눈을 감은 채 혼자만의 사색에 빠져보자면 주변 이들의 시선을 빼앗기란 일 분 일 초를 다루는 시간문제.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의 머릿속은 사월로 잠식돼버렸으니까.
꽃이 피는 4월에 뜨는 보름달을 가리키는 말.
그렇게 4월의 어느 날로 접어들자면 한없이 예민한 사춘기 무지렁이의 감수성도 정점에 다다르는 일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거였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는 커다란 달이 걸려 있었고 부디 제가 바라보고 있는 달의 이름이 핑크문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날.
평소라면 상위 피드에서 그쳤을 스크롤은 왠지 모를 반발심에 저 아래까지 파고들었고 저를 강태공이라는 운명으로 점찍어주었다.
핑크문이라는 키워드와 한 장의 사진.
정확한 형태의 달을 담아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스라이 흩어지는 달빛의 찰나와 반짝이는 물결은 기가 막히게 담아냈다.
“이거였네. 내가 그만 둘 이유.”
아무튼 누군가는 그렇게 속삭였던 거 같다.
인생은 삶과 죽은 사이 선택의 연속이라고.
뭐 있어 보이는 말로 꾸며 보인다 한들 사실은 막연한 이유가 필요했던 게 다니까.
예고 진학을 목표로 두고 입시 미술에 하루 종일 저를 끼워 맞히자면 다른 세계는 영영 들여다보지도 못할 거라는 무적의 논리.
가령 이 환상적인 사진을 찍어낸 주인공처럼 저 역시 또 다른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사춘기 무지렁이 식의 되도 않는 논리.
“어떡하냐...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미친 짓을 다 하고. 그래서 지금 삭제하면 가당키나 해? 읽고 씹히는 쪽보다 안 읽고 씹히는 쪽을 더 걱정해야 하는 이 답변을 기다리는 게?”
물론 제가 세운 그 되도 않는 논리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결과를 가져다줬다.
밑져야 본전이라며 취소하지 않았던 DM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펜팔 친구를 사귀게 만들었고 저를 설렘 속으로 몰아넣었다니까.
더불어 흔하디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사춘기 무지렁이로서 제 뮤즈, 아니 체리의 정보 역시 꾸준히 수집할 수 있었고.
체리는 자신과 동갑인 여자 아이이고, 본명 역시 자기소개인 ‘체리’와 관련이 있다는 점.
또한 오래도록 해외에서 지내다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올해 초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점.
그렇게 약 2년 가까이 된 시간들로 저희 사이를 가늠해봤을 때, 저와 체리는 실제로 마주해도 꽤나 잘 맞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다만 아직도 모르겠는 건 계정 옆 공인 마크.
제 아무리 SNS 피드가 화려하기는 해도 저 공인 마크를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렇다고 얼굴도 모르는 이와 약 2년이라는 들여 꾸준히 답변을 주고받는 스캠 유저라.
글쎄, 그건 수지타산에 너무 안 맞지.
그래서 저는 체리를 의심하기보다는 믿는 쪽으로 올 인해버린 순애보 지니가 됐다니까.
“진짜? 율혜 콩주먹 하나로 전부 다 혼쭐내 주는 세계관이야? 나 벌써부터 두근거리는데~”“흥! 여기 콩주먹 말고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거든. 그니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두근거릴 필요는 없어. 리짱은 호락호락하지 않거든. 따라서 신뢰 가능한 여자 친구라는 거지.”글쎄, 콩주먹 말고 어떤 다른 수가 있으려나.어디 전 세계 무서운 언니 오빠들 좀 불러 모아 그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는 왜 휘안이를 괴롭게 만들었는지 압박 수사라도 가할 셈인가.그 전에 우리 율혜 서러움과 억울함이 마구 뒤섞여 대성통곡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하여튼 제 일이라면 상상만으로도 물불 가리지 않고 제일 먼저 덤벼들 거라는 율혜.덕분에 휘안은 또 한 번 다짐할 수 있었다.저만을 특별하게 여겨주는 우리 율혜를 생각해서라도 타인에게 쉽게 밉보이지 않을 것이며 어정쩡한 곁을 내어주지 말아야겠다고.***옹알옹알 말이 트이기 전 아기 리짱의 언어는 제 3국의 언어를 개척했던 편.근데 또 이상하게 그게 다 이해는 되더라.아기 리짱에게 한국어로 말을 걸면 한국어가 가미된 외계어가 들리고, 일본어로 말을 걸면 일본어가 가미된 외계어가 들리더라니까.더구나 영상 자체가 가족의 일상이라더니 얼굴을 모르지만 알음알음 들어왔던 율혜의 주변 인물들도 얕은 수로서 파악이 가능했다.“아, 진짜 너무 귀엽다. 율혜야. 우리 율혜 말도 못하게 한 입 거리인데? 진짜 딱 요만해. 우리 율혜 진짜 딱 요만한 아기 리짱이었어.”“응. 아무래도 휘안이가 보고 있는 영상 속 리짱은 아기 리짱이었기 때문이지. 지금은 진짜 딱 요만하지는 않아. 아주 쑥쑥 크고 있다고.”“그러게. 율혜 말대로 저때에 비하면 쑥쑥 크고 있기는 하지. 근데 어쩌나. 이러나저러나 내 눈에는 한 입 거리인 아기로 보인다는데~”아기 리짱은 예로부터 한 입 거리라는 전설.그건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볼 살의 존재감으로서 증명되는 과정이었다.글쎄, 율혜네 어머님께서도 먼 훗날의 니즈를 예상하셨는지 볼록 하니 튀어나온 아기
본래의 쓸모가 아닌 사물함을 향기롭게 만드는데 부수적인 쓸모를 다한 체육복도 챙겨가야 하고.교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저와 한 몸이 된 애착 담요도 바로 챙겨가야 하고.마지막으로 영광에 빛나는 백 점짜리 두 시험지들은 파일 폴더 맨 앞장에 끼어두면 하교할 준비는 다 끝났다.달리 말해 평소보다 빵빵한 가방이어도 제 가방에는 필요한 것들만 들어가 있다는 주장.아무튼 한참을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을 거 같던 시험 기간도 그새 또 끝나버렸다니 이젠 맘 편히 주말을 만끽하면 그만이라는 거다.“아이고~ 이게 아기 토끼야, 아기 거북이야. 매주 돌아온다는 행복한 등딱지치고는 이번 주는 좀 더 남다른데. 뭐가 이렇게 빵빵하지?”“음~ 이건 말이지. 리짱의 실수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이야. 이번 주에는 체육복을 갖고 오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리짱의 착각으로 사물함 방향제 역할만 하게 된 체육복이거든.”“그러게. 이번 주 월요일 체육 수업은 체육 수업이 아니었지. 모레부터 시험 기간이라는 이유로 전체 자습이었으니까. 그래서 여기 맨 아래에는 체육복, 그 위에는 애착 담요를 쌓고 평소보다 더 빵빵한 금요일로 만들었구나.”“응. 휘안이 말이 맞아. 덕분에 내 모든 시험지들은 안전하지. 빵빵한 존재들이 쭉 경호해줄 예정이거든. 물론 집에 가서 충분한 보상도 줄 거야. 주말 내내 최고로 뽀송뽀송한 세탁물로서 최고의 대우를 해줄 참이니까.”잘게 휘날리는 잔머리에는 관심도 없다는 둥 가방 끈 소중히 부여잡고 뽀송뽀송한 세탁물의 조건을 나열하는 게 뭐가 이리도 산뜻한지.누가 보면 초겨울 하굣길이 아니라 여름 휴양지 거닐고 있는 발걸음인 줄 알겠다.그만큼 우리 율혜와 함께라면 매 순간이 산뜻하기 그지없어서는 시공간을 가로지르기 최적이라는 소리였다.“알았어. 뽀송뽀송한 세탁물에 진심이라는 우리 율혜. 그나저나 가채점으로 영어랑 일본어 이백 점을 기록한 율혜인데 육성으로 자랑 안 해봐도 괜찮겠어? 메신저 전송만으로 충분해?”“응. 엄마 아빠한테 육성으로 자랑하는 건
무릇 이 세상 모든 아기 토끼들은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아야 더 큰 성장이 가능하다는 보은의 생명체.아무래도 우리네 아기 토끼란 인간들과는 여간 다른 마음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겉으로 보기에는 각 하나 없는 매끈한 진주일지라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수천 개의 각을 깎아 만든 다이아몬드 같은 마음.그런 의미에서 일주일 내내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휘안은 기특한 존재가 확실했다.리짱에게 독보적인 애정을 받아가는 아기 토끼의 위치를 반납하고 제 스스로 휘안 오빠로서만 지내기로 결심했다니까.따라서 이번 주는 리짱의 차례였다지.매 쉬는 시간 틈틈이 제 자리를 지키며 휘안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독보적인 애정을 표현하기로.아무래도 우리 휘안이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하는 걸 좋아한다기보다 리짱과 단 둘이 있는 쪽을 최우선으로 좋아한다니 말이다.“근데 휘안아. 본부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소식이 왔어. 그건 바로 최고로 귀여운 육식 토끼가 고기까지 잘 구워서 감탄했다는 거야. 다시 말해 휘안이가 이름값을 했다는 거지.”“응. 나는야 고기까지 잘 굽는 귀여운 아기 토끼. 근데 본부는 그걸 어떻게 알았대? 난 우리 율혜한테만 사진을 보냈던 거 같은데.”“어… 그건 말이야. 리짱이 본부에게도 휘안이 소식을 공유했거든. 사진과 함께 말이야. 그래도 육하원칙으로 따지고 싶은 휘안이일까? 만약 납득이 안 됐다면 말이야.”율혜가 곧 본부고 본부가 곧 율혜일 텐데 육하원칙까지 가봐야 하는 상황일 리가 있나.질문을 던지고 저만을 기다리는 두근거리는 눈빛 반 스푼에 어디 한 번 잘 대답해보지 그래 하는 새치름한 눈빛 반 스푼.휘안은 그 황홀한 조합에 못 이겨 또 한 번 피식 하니 웃고는 고개를 바로 내저었다.“아니~ 육하원칙까지는 안 바라. 주말에도 실시간 소통이 가능했다는 점에 놀랐던 거니까. 근데 의외네. 단순히 고기 하나 잘 굽는 재주에 본부가 놀랐다는 건. 율혜가 더 설명해줄래?”“좋아! 리짱이 잘 설명해줄 수 있어. 본부는 사진을 보고 감탄
“뭐래. 그 자부심이라면 나도 있거든. 하여튼 이번 학기도 두고 봐. 내가 빠른 시일 내에 너 제대로 누른다. 요망한 입 다물게 만들어야지.”“에이, 괜히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잘하는 거에 집중하라니까~ 늘 그랬듯 수학 성적으로 날 눌러줘. 난 언제나 짓눌릴 준비가 돼있어.”“수학? 너 중학생 때부터 수학 놔버렸다며. 미안하지만 난 답이 정해진 승부는 안 해.”“우와~ 그럼 더더욱 안 될 텐데. 나 내신이나 모의고사나 국어 과목에서는 전부 다 1등급 받아버릴 건데. 수능도 만점이 목표라는 건데.”뭐지, 저 말끝마다 데로 끝나는 일관성은?해외파인 이를 연인으로 두고 있어서 그런가.토종 한국인인 저도 해외파 못지않은 가치를 증명해내고 싶다는 거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그게 아니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는 시험 기간을 두고 벌이는 대화는 굳이 싶다니까.“글쎄, 성적은 방심하는 사이 떨어지는 거야. 난 그걸 지난 학기에 경험했거든. 그니까 이번 학기에는 네 차례야. 차휘안 너, 아주 위험해.”“아~ 이번에는 밑도 끝도 없는 저주를 걸어보시겠다? 그렇게 해서 날 이겨보게?”“저주라면 저주지. 잠든 율혜 깰까 소원권 뭐 이런 말은 못하겠는데 내 말을 잘 새겨들어. 차휘안 넌 가까운 시일 내에 아차 싶을 거야.”뭣 같은 저주 경고에 가소롭다는 할리우드 몸짓으로 예린을 또 한 번 도발하는 휘안.이러니 휘안과 예린이 대화를 시작하면 저는 그 대화에 끼어들기보다 지켜보는 쪽이 훨씬 더 흥미롭다는 해외파 연인들이었다.예린 옆에서 고개를 내젓는 재이도, 점점 더 커지는 수군거림에 잠에서 깬 율혜도 말이다.***복슬복슬한 아우터의 지퍼도 꼭꼭 잠그고.새하얀 자수로 마감된 목도리도 칭칭 두르고.손재주가 좋은 휘안답게 여느 틈 사이로 바람 한 점이 들어와 우리 율혜를 춥게 만드는 건 단연코 용납할 수 없는 경우의 수였다.그렇게 꽁꽁 싸맨 율혜의 손을 맞잡고는 금이야 옥이야 그 옆을 지키는 발걸음으로 매 하굣길 율혜를 바래다주었던 정성.다행히 그 정성이 통
교실 불을 다 끄고 청소년 지식 채널의 영상을 관람하자면 제 아무리 시끌벅적한 아이들이어도 이내 조용해지기 마련이다.영상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어 숙연해지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어두컴컴한 분위기 속 하나의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하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아이들도 더러 존재하더라니까.달리 말해 각자 이런저런 이유들로 나른한 기운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뜻.물론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이런 시간만큼 편한 시간이 없기도 했다.“율혜… 아니, 넌 또 언제 들어온 거야?”“종 치자마자. 율혜 코 자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코 자고 있었네... 다행이다. 지금이 딱 낮잠 자기 최적인 시간대잖아.”“어련하실까. 안 그래도 차휘안 너 올지 말지 내기하려 했어. 연극부 동아리실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거리가 가까운 건 아니잖아.”각자 다른 동아리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다른 장소에 있게 된 상황이 탐탁치만은 않은 편.그래도 책상에 엎드려 곤히 잠든 율혜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놓였다고 해야 하나.휘안은 율혜의 배 위에 제 손을 올려두고는 예린의 이야기에 물음표를 더하는 반응이었다.“그래? 둘 중 누가 안 온다는 쪽이었는데?”“아, 안타깝게도 내기 자체가 성립이 안 됐어. 재이도 나도 무조건 온다는 쪽이었거든. 근데 이렇게 종 치자마자 올 줄은 몰랐던 거지.”“음~ 뒷문 쪽에 앉아있다 죽어라 뛰면 돼. 누구나 가능하지. 뭐든 트리거만 명확하다면. 다음부터는 종 치고 몇 초 안쪽으로 올 지로 내기해. 그편이 더 할 만 한 내기일 테니까.”과연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심경.체력장도 아니고 체육 대회도 아니라는데 뭐가 그렇게 다급한 뜀박질이었을까.이 장소에 휘안으로 하여금 그를 일깨워줄 트리거는 단 한 명뿐인 게 전부였지.그저 제 시야에 율혜가 들어오고 닿아있으면 그만이라는 목적 하나로서 율혜의 옆자리를 차지하기로 마음먹었다니까.“그나저나 얼른 하교할 때나 왔으면 좋겠네. 오늘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이었잖아. 그니까 집 가서 좋
“신났네, 신났어. 어떻게 이제야 좀 진정이 됐나보지? 그러게 내가 뭐랬어. 막상 자리를 옮겨보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니까.”“응. 율혜 뒷자리,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아. 물론 예린이 자리가 탐나긴 해. 마음 같아서는 멋대로 바꾸고 싶으니까. 하지만 뭘 어쩌겠어. 우리 반 평화를 위해서 나도 좀 참아봐야지.”새로 나온 자리 배정 표를 확인하고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것.그건 마치 겨울잠에서 깨어나 어느 이름 모를 맹수에게 제 곳간을 털렸다 한들 뭐라 손 쓸 새 없이 화부터 삭히고 제 살 길 도모해야 하는 아기 토끼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다.“그래, 참아줘서 너무 고맙네~ 근데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이것도 나름 공평해. 그 왜 이상한 청소 당번 제도에서 불이익 본 애들 말이야. 걔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했어. 한 번 쭉 둘러봐. 뭔가 얄팍한 규칙이 있다니까.”“그런가? 그럼 도준이나 소연이는?”“걔네 둘이야 성이 이씨랑 성씨잖아. 가나다 순서 따져 봐도 딱 중간. 그니까 이익 볼 것도 없고 불이익 볼 것도 없지. 쟤들 자리 봐봐.”“아하~ 그럼 성이 차씨랑 지씨인 나랑 율혜는 불이익 쪽에 가깝다는 거네. 어쩐지 벌써부터 바람이 잘 들더라고. 막 썰렁해.”시베리아 한파 저리가라 추위가 직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창가 쪽 자리.율혜가 전학을 왔던 4월이야 봄이었던 만큼 낭만 가득한 자리가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다.이제 곧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시기에서는 낭만보다는 현실을 걱정해야 하는 때라니까.“그래. 차휘안 네가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해도 어떻게 늘 좋은 자리만 차지하겠지니. 때로는 위기도 겪는 법이야. 남자답게 받아들여~”“음... 근데 예린아. 사실상 예린이 너도 불이익에 가깝지 않아? 예린이 자리는 율혜 옆이잖아. 그럼 찬바람 직통인 거 아닌가.”“그래. 네가 왜 안 물어보나 했다. 너나 나나 자리는 비슷한데 왜 나만 이익이냐는 거지?”“응. 암만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 왜? 나 너무 티 났어? 나름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