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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진 인대, 새로운 칼날
차가운 린니멘트 약품 냄새와 먼지 쌓인 체육관 바닥의 묵직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한국체육대학교 펜싱 전용 훈련장. 한때 환한 조명 아래서 펜스 피스트를 호령하며 차세대 국가대표 1순위로 불리던 강다온의 세계는 3개월 전 단 하나의 비명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아킬레스건 파열 및 외측 인대 완파. 강다온 선수, 선수 생활을 계속하는 건 무리입니다."
주치의의 냉정한 진단은 다온의 목을 죄어오는 사형선고와 다름없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고 했지만, 발을 디딜 때마다 아킬레스건 부근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과 불안정함은 그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폭발적인 순발력과 정교한 칼끝 제어가 생명인 플뢰레와 에페에서 인대가 상한 펜싱 선수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야의 텅 빈 재활실. 다온은 붕대를 촘촘히 감은 자신의 왼쪽 발목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인생에서 칼을 빼앗기면 무엇이 남는 걸까?'
가슴 속에서 거친 울컥함이 차올랐다. 칼을 잡고 피스트 위에서 상대를 향해 번개처럼 찔러 들어가던 그 감각, 상대의 칼날을 정교하게 쳐내고 빈틈을 파고들 때의 전율이 여전히 손끝에 생생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잠에 들지 못하는 밤이면 다온은 항상 손때 묻은 고전 소설을 펼쳐 들곤 했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가스코뉴 출신의 무모하지만 시원시원한 시골 청년 달타냥이 파리로 상경해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와 우정을 나누고 시련을 헤쳐 나가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 다온은 언제나 그 책을 읽으며 달타냥의 압도적인 용기와 화려한 검술에 자신을 대입하곤 했다.
'나도 저 달타냥처럼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다시 칼을 잡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표적을 찌를 수 있을까?'
다온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가슴에 걸린 작고 낡은 펜싱 칼 모양의 은빛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중학생 시절 처음으로 참가했던 국제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아버지가 선물해 준 부적 같은 물건이었다.
그때였다. 창밖에서 요란한 번개 소리와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이 뒤흔들렸다.
콰광!
동시에 다온이 움켜쥐고 있던 은빛 펜던트에서 눈이 멀 것 같은 찬란한 금빛 광채가 흘러나왔다. 재활실 내부의 모든 집기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기묘한 무중력 상태가 느껴졌다.
"어, 어라?"
다온이 당황하여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순간, 시야가 눈부신 백색으로 물들며 강렬한 현기증이 전신을 덮쳤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의식이 깊은 어둠 속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아우, 머리야..."
다온은 지독한 두통과 함께 눈을 떠야 했다.
가장 먼저 감각을 자극해 온 것은 소독약 냄새가 아니었다. 짙은 흙냄새와 싱그러운 풀 내음, 그리고 미미하게 풍겨오는 말똥과 가죽 냄새였다.
다온은 얼떨결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천장이 없었다. 대신 끝없이 푸른 하늘과 먹구름이 걷혀가는 맑은 햇살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자 울창한 활엽수림과 진흙투성이의 구불구불한 흙길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훈련장 근처에 이런 숲이 있었던가?"
다온은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닫고 동작을 멈추었다.
항상 그를 괴롭히던 왼쪽 발목의 둔탁하고 기분 나쁜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 왜 발목이 안 아프지?'
다온은 홀린 듯 왼쪽 발목을 조심스럽게 돌려보았다. 부드럽게 돌아갔다. 붕대도, 수술 자국도 없었다. 그는 단숨에 바닥을 차고 일어나 제자리에서 높이 뛰어올랐다.
쿵!
지면에 착지하는 순간에도 발목에는 아무런 부담이나 통증이 없었다. 오히려 수술을 받기 전, 아니 그의 인생에서 가장 상태가 좋았던 시절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탄력 있는 힘이 발목 인대 전체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진짜 통증이 사라졌단 말인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다온은 가볍게 발을 굴렀다. 펜싱의 기본 자세인 엔 가르드(En Garde) 자세를 취하고, 전방으로 순식간에 보폭을 넓히는 마르슈(Marche)와 후퇴하는 롬프르(Rompre)를 번갈아 수행했다.
다온은 밀레디의 손을 살며시 놓아주며, 그녀가 들고 있던 붉은 장미꽃 한 송이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는 장미 꽃잎을 살짝 매만지며 그녀를 도발하듯 바라보았다."하지만 레이디의 아름다움만큼은 진짜군요. 파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독이 없는 진짜 장미를 기대하겠습니다."밀레디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전율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위험하다. 이 남자는 지독하게 위험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완벽한 가면을 단숨에 꿰뚫어 보고 당당하게 받아치는 이 낯선 소년에게 이상할 정도의 강렬한 자극과 호기심이 불타올랐다.---그 팽팽한 정적을 깨뜨린 것은 주막 바깥에서 들려온 거친 포효 소리였다.쿠탕탕!주막의 육중한 나무문이 산산조각 나며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빗물과 진흙을 뒤집어쓴 십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레이피어와 단검을 빼 들고 들이닥쳤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문양이 어둡게 새겨져 있었다.그들의 선두에 선 것은 한쪽 눈에 붕대를 감은 기괴한 인상의 사내, 추기경의 오른팔인 로슈포르 백작이었다."찾았다! 왕실 총사대의 쥐새끼들과 가스코뉴의 놈팽이!"로슈포르의 차가운 고함에 주막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테이블 밑으로 숨거나 창문을 깨고 도망치기 시작했다.아토스가 냉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뽑아 들었다."로슈포르! 추기경의 습격대가 이제는 시골 주막까지
그곳에는 붉은 장미가 자수된 칠흑 같은 고급 비단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금실로 짠 우아한 머리채가 촛불 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고, 짙은 베일 너머로 드러난 백옥 같은 피부와 매혹적인 붉은 입술은 좌중의 숨을 멎게 만들기에 충분했다.밀레디 데 윈터.리슐리외 추기경의 그늘이자, 아름다운 장미의 가시처럼 치명적인 여 스파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밀레디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며 주막 안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칠흑 같은 속눈썹 아래 자리 잡은 푸른 눈동자가 삼총사를 지나쳐, 그들 사이에서 가장 앳되면서도 오만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다온에게 머물렀다.'저 소년인가? 숲속에서 친위 대원들을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가지고 놀았던 그 이상한 검객이?'밀레디의 입꼬리가 자극적인 호선을 그렸다. 그녀는 가녀린 손으로 붉은 장미 한 송이를 쥔 채, 마치 길을 잃은 고귀한 귀족 영애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다온이 앉은 테이블 쪽으로 걸어왔다."아아, 고귀한 국왕 전하의 총사대원 신사분들이셨군요. 소란스러운 시골 주막에 이토록 훌륭한 기사님들이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밀레디의 목소리는 마치 잘 가다듬은 바이올린 현에서 흘러나오는 음율처럼 달콤하고 매혹적이었다.포르토스와 아라미스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모자를 조아리며 경의를 표했다."아름다운 레이디, 이런 누추한 곳에서 당신처럼 눈부신 분을 뵙게 될 줄은 몰랐군요."아라미스가 신사다운 태도로 응대했지만, 다온은 밀레디의 일거수일투족을 펜싱 피스트 위에서 상대를 탐색하듯 매섭게 관찰하고 있었다.밀레디는 시선을 슬그머니 다온에게 옮겼다. 그녀는 들고 있던 장미꽃을 살랑거리며 다온의 바로 옆자리로 다가왔다. 짙은 장미 향수 냄새 뒤로 아주 미세하게 풍겨오는 금속성 냄새... 그것은 소독약이나 기름이 아닌, 암살용 독약과 은장도의 냄새였다."젊은 기사님, 외지인이신가요? 눈빛이 파리의 기사들과는 전혀 다르군요. 마치 먹이를 노리는 야생의 매처럼 날카롭고... 아름다워
아라미스가 화려한 자수가 놓인 비단 장갑을 고쳐 끼며 다온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검술도 검술이지만, 자세가 참으로 아름답군요. 특히 방금 전 숲속에서 보여준 그 변칙적인 찌르기... 마치 시인들이 가사를 읊조리듯 단절 없이 매끄러웠습니다. 파리 중앙 검술관의 그 어떤 교관도 그런 궤적을 가르치지는 않을 텐데요?""정통 교범을 그대로 따르는 건 제 성미에 맞지 않아서요. 상대의 예상보다 0.1초 빠르게 빈틈을 파고드는 것, 그것이 제 검술의 핵심입니다."다온의 대답에 가만히 앞장서서 길을 이끌던 아토스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 속에는 미세한 탐구심이 서려 있었다."0.1초라... 신선한 표현이군. 시간의 조각을 나눌 줄 아는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달타냥, 네 검술에는 찌르기 직전 전신의 힘을 모아 튕겨내는 독특한 탄력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야생의 야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아주 밀도 높은 훈련의 결과다. 네 아버지가 가스코뉴의 훌륭한 맹장이었던 모양이구나?""네, 저에게는 세상을 바꿀 칼을 쥐어 주신 분이셨죠."다온은 품속에 있는 아버지의 펜던트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대한민국에서 국가대표의 꿈을 응원해 주었던 아버지의 얼굴과, 소설 속 달타냥의 아버지가 겹쳐 보였다.네 사람은 먹구름이 짙게 깔리기 시작한 도로를 따라 부지런히 말을 달렸다. 파리로 들어서기 전, 숙박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요새 도시 믕(Meung)의 주막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는 황혼녘이었다.---붉은 노을이 진흙투성이 길목과 믕 거리의 낡은 목조 건물들을 음산하게 물들이고 있었다.마구간에 말을 맡긴 네 사람은 낡은 널빤지로 만들어진 여관 겸 주막 '황금 릴리'의 육중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섰다.기이익.문을 열자마자 찌들어 붙은 기름 냄새와 수수술, 구운 돼지고기의 진한 냄새, 그리고 땀 냄새가 섞인 매캐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실내에는 시골 상인들과 여행자들, 그리고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는 용병들이 가
"더 싸우겠습니까?"다온의 담담한 물음에 친위대장은 손을 번쩍 들며 바들바들 떨었다."항, 항복이다! 항복한다!""항복했으면 깔끔하게 사라져라. 다시 내 눈에 띄면 그땐 목에 구멍이 뚫릴 테니까."다온이 칼을 거두자, 친위대장은 부상자들을 끌어안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숲 속으로 혼비백산 달아났다.싸움이 끝난 넓은 터에는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포르토스가 다온에게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그 커다란 손바닥으로 다온의 어깨를 팍 쳤다."하하하! 어이, 꼬맹이! 너 진짜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나! 대체 어디서 그런 괴상하고 무시무시한 칼싸움을 배운 거냐?"어깨가 부서질 듯한 충격에 다온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한국체대... 아니, 가스코뉴의 시골 구석에서 독학으로 배웠습니다."아라미스가 다온에게 다가와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방금 그 뛰어들며 찌르는 기술, 마치 날아가는 화살 같더군요. 시골에서 독학한 검술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정교합니다. 전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편인데, 당신의 검술은 아주 매혹적이군요."마지막으로 아토스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다온을 유심히 살폈다."이름이 무엇인가, 젊은이?"다온은 품속에서 트레빌 경에게 전달할 추천서를 꺼내 보여주었다."강다온. 아니, 다온 데 달타냥입니다. 국왕 전하의 총사대에 입대하기 위해 파리로 가던 중이었습니다."아토스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려졌다. 그것은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호감의 표시였다."달타냥이라... 트레빌 대장님께서 아주 흥미로운 신참을 맞이하게 되겠군."포르토스가 다온의 목을 팔로 감아쥐며 호탕하게 웃었다."좋다! 오늘부터 넌 우리의 친구다, 달타냥! 파리로 가는 길은 우리가 안내해주지!"삼총사와 달타냥. 소설 속의 전설적인 인물들이 다온을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 다온은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진짜 삼총사다. 그리고 내가 바로 달타냥이다.'하지만 다온이 삼총사와 인사를 나누며 웃고 있던 그 순간.숲의
휘이이익!숲속에서 번개 같은 신영이 튀어나왔다.콰아앙!친위대장의 레이피어가 아토스의 몸에 닿기 직전, 미지의 검날이 섬뜩한 마찰음을 내며 친위대장의 칼끝을 허공으로 거칠게 쳐올렸다."뭐냐!"친위대장이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앞에 선 것은 갈색 가죽 베스트를 입은 앳된 얼굴의 청년, 강다온이었다.다온은 완벽한 엔 가르드 자세를 잡은 채, 오만할 정도로 당당하게 친위대장을 노려보고 있었다."비겁하게 뒤에서 노리는 건 체육대회에서도 감점 대상이지. 안 그래?"아토스가 놀란 눈으로 다온을 바라보았다."아이야, 넌 누구냐? 여긴 위험하니 물러서라!"다온은 아토스를 향해 가볍게 손짓을 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위험해 보이는 건 그쪽인 것 같은데요? 총사대원 신사분들, 가스코뉴의 시골내기 하나쯤 도움이 되어도 괜찮겠습니까?"포르토스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배짱 하나는 마음에 드는 녀석이군! 좋아, 꼬맹아! 뒤통수나 조심해라!"친위대장이 이빨을 드러내며 다온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 같은 놈이 감히 추기경 전하의 일에 끼어드느냐! 저놈도 함께 베어라!"친위대원 두 명이 즉시 목표를 바꾸어 다온을 향해 짓쳐 들어왔다. 왼쪽 사내가 상단을 노리고 크게 베어 왔고, 오른쪽 사내가 하단을 노리고 직진 찌르기를 날려 왔다.보통의 중세 검객이라면 칼을 크게 휘둘러 막으려 했겠지만, 다온은 현대 스포츠 펜싱의 최첨단 이론과 실전을 몸에 익힌 정점의 선수였다.'상단의 베기는 동작이 너무 크다. 하단의 찌르기는 손목의 각도가 비뚤어졌어.'다온의 눈에는 그들의 움직임이 마치 느린 화면처럼 보였다.다온은 스텝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아주 미세하게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파리(Parry, 막기) 4번 동작!챙!다온의 칼날이 정교한 각도로 상대의 칼날을 받아내어 바깥쪽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반동을 이용해 곧바로 전신을 스프링처럼 튕겨 내며 찌르기로 전환했다. 리포스트(Riposte)!푸욱!"크아악
착, 착, 착!움직임에 단 0.1초의 지체도 없었다. 완벽했다. 아니, 완벽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할 만큼 발목의 신축성과 반응 속도가 기적처럼 회복되어 있었다.다온은 그제야 자신의 차림새를 둘러보았다.체육복 바지와 샌들 대신, 튼튼한 갈색 가죽 장화와 두꺼운 리넨 셔츠, 그리고 검은색 가죽 베스트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는 묵직한 철제 스파드롱 형태의 힐트가 달린 길고 날카로운 레이피어 한 자루가 차여 있었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다온은 허리춤의 칼을 스르륵 뽑아 들었다. 스포츠 펜싱에서 쓰던 유연하고 가벼운 펜싱 칼과는 차원이 다른, 실제 사람을 베고 찌를 수 있는 날카로운 진검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칼을 잡은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과 무게 중심은 마치 수십 년 동안 이 칼을 다뤄온 것처럼 익숙했다.가죽 베스트 안쪽 주머니를 뒤지자 붉은 밀봉 왁스가 칠해진 두툼한 양피지 편지 한 장이 나왔다. 편지 봉투 표면에는 미려한 라틴어 필기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국왕 전하의 총사대장, 트레빌 경 앞.가스코뉴의 귀족 맹장 달타냥의 아들, 다온 데 달타냥을 추천하나이다.]편지를 읽은 다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트레빌 경? 가스코뉴? 달타냥?"다온은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짚었다. 호흡이 가빠졌다.'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온 건가? 그것도 주인공인 달타냥의 역할로?'그것이 환상이든 꿈이든 현실이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그를 평생 절망으로 밀어 넣었던 발목 부상이 완전히 치유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손에 다시 칼이 쥐어졌다는 사실이었다.다온의 입꼬리가 천천히 호선을 그렸다.'이유야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 다시 제대로 칼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곳이 소설 속이든 지옥이든 상관없다.'바로 그 순간, 숲속 깊은 곳에서 챙강거리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마차 바퀴가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거기 머물러라! 찰스 추기경 전하의 명이다! 그 무기를 거두지 못할까!""하! 추기경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