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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등산팀
송정아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를 부른 사람이 다름 아닌 예전에 아버지 송지창과 협력하려고 줄기차게 매달리던 거래처 사람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송정아가 속으로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았던 그녀가 어떻게 이 상황을 넘겨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노현재의 뒤에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송정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아가씨라니? 지금 송정아를 아가씨라 부른 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5만 원이나 되려나? 그런데 아가씨? 웃겨서, 원.”

그 말에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프랑스어가 아니었기에 송정아도 비웃음을 똑똑히 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난 쪽은 노현재였다. 방금 그 말을 한 사람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남자가 멋쩍어하며 입을 다물었고 다른 이들 역시 노현재의 경고에 하나둘 조용해졌다.

소란이 가라앉았고 아까 송정아를 부른 사람도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송정아는 노현재와 함께 말없이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한 후 노현재가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며 불쑥 말했다.

“자기야, 앞으로는 그런 자리에 자기 안 데리고 갈게.”

더는 그의 친구 무리에 끼워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송정아의 표정과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여전히 무덤덤했다.

“내가 창피해서?”

노현재가 실소를 터뜨렸다. 송정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데 그녀가 피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렇게 변명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네가 상처받는 게 싫어서 그래.”

“하지만 우리 신분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잖아.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하는 문제인데. 집에서 정략결혼 하라고 압박한 적 없어?”

송정아가 노현재의 눈을 똑바로 보며 흔들리는 기색이 있는지 찾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정략결혼이라는 말을 듣고도 노현재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을 뿐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아야, 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오직 너 하나라는 것만 알면 돼. 다른 문제는 내가 다 알아서 해결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면 그 미세한 굳어짐을 놓쳤을 것이다.

말을 마친 노현재가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송정아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말한 해결책이라는 게 결국 집안에서 원하는 여자랑 결혼하고 날 내연녀로 두겠다는 거야?’

그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협탁 위에 놓인 노현재의 휴대폰이 울렸다.

노현재가 한 번도 그녀에게 비밀번호를 숨긴 적이 없었기에 어렵지 않게 잠금을 해제했다. 메시지창을 열어보니 안수진이 보낸 메시지였다.

[현재 씨, 내일 양가 어른들께 인사드리는 날이잖아.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지 않으면 어른들이 우리 가짜 결혼인 거 눈치채지 않으실까? 현재 씨가 여자친구를 사랑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요 며칠 동안만 내 체면 좀 생각해주면 안 돼?]

말투는 비굴했지만 송정아는 그 속내를 단번에 파악했다.

처음에는 양가 어른들을 핑계 삼아 안수진의 집에서 자게 하고 그다음엔 더한 요구로 노현재를 잡아두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송정아는 떠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송정아가 휴대폰을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현재가 씻고 나왔다.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이내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정아를 쳐다봤다.

“정아야, 회사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오늘 밤은 못 들어오니까 기다리지 말고 자.”

급히 가느라 송정아의 반응을 살피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문 앞까지 따라 나와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어 달라고 투정을 부렸을 송정아가 이번에는 멀리 가버린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노현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송정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내 말 한마디면 현재 씨가 모든 걸 제쳐두고 나한테 달려오는 거 봤지? 내일이면 양가 어른들도 만나. 우리가 진짜 결혼하고 나면 넌 뭐가 될 것 같아? 사람들 앞에 내세울 수도 없는 애인?]

안수진이 쏟아내는 말들이 모욕적이었지만 송정아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사실은 따로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녀를 찌르도록 칼을 쥐여준 사람이 한때 평생을 함께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남자친구라는 점이었다.

노현재는 아마 꿈에도 모를 것이다. 송정아가 그 청첩장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사실을 어차피 오래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송정아가 청첩장을 발견한 바로 다음 날, 안수진이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냈고 며칠 내내 온갖 도발적인 사진들을 보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현재가 안수진과 함께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사진부터 시작해 두 사람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고르는 사진, 결혼식장을 알아보러 다니는 사진까지...

끊임없이 날아드는 그 사진들이 노현재를 향한 송정아의 애정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날 밤 노현재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송정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깬 송정아는 대충 씻고 곧바로 회사로 가서 사직서를 냈다. 퇴사 절차가 그날로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식사하던 중 평소 그녀와 꽤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하나가 그녀가 퇴사 처리를 끝냈다는 소식을 듣고 농담을 던졌다.

“요즘 숏폼 영상 보니까 동료가 갑자기 퇴사하는 이유가 집으로 돌아가서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서라던데. 이렇게 쿨하게 그만두는 거 보면 혹시 정아 씨도 가업 물려받으러 가는 거 아니에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뜻밖에도 송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가업 물려받으러 가요.”

사람들이 멈칫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그저 농담으로 여길 뿐 누구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송정아도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물건을 정리하여 상자에 담은 다음 그대로 안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보니 마침 노현재가 돌아와 있었다. 상자를 품에 안고 들어오는 송정아를 보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회사 그만뒀어?”

고개를 끄덕이고 상자를 든 채 방으로 걸어가는 송정아의 모습에 노현재가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를 불렀다.

“그 일 좋아했잖아. 갑자기 왜 그만둔 건데?”

송정아가 발걸음을 멈추고 노현재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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