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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다음날.

9시에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차설아는 8시 30분부터 구청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일찍 도착한 건 물론 화장까지 정성껏 했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빨간색 롱드레스를 입고 그동안 풀어헤쳤던 머리카락마저 높게 묶어 백조처럼 길고 하얀 목덜미를 훤히 드러냈다.

멀리서 보면 여신이 따로 없었고, 우아하면서도 시크하고 기품이 흘러넘쳤다.

하지만 그날 밤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열이 살짝 난 탓에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9시 정각이 되자, 은색 부가티 베이런이 지상 주차장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성도윤은 싸늘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설아를 발견하자 그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몰려왔다.

“꽤 적극적이네?”

성도윤은 무심한 표정으로 차설아를 스쳐 지나가 기다란 다리로 접수창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별난 놈이야.’

차설아는 듬직하면서도 어딘가 쌀쌀맞아 보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몰래 생각했다.

‘뒤꽁무니에 불이라도 붙은 줄 알았네! 자기도 급하게 가면서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

이혼 신고는 생각보다 빨리 처리되었다. 사인하고 날인하는 데 10분도 안 걸렸다.

“새로 도입된 법에 따르면 이혼하고 나서 한 달 동안 숙려기간이 있는데, 등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이혼을 원치 않은 사람이 있다면 둘 중에서 아무나 접수증을 들고 와서 취소해도 돼요.”

구청 직원은 말을 마치고 이혼 접수증 2부를 각각 나눠줬다.

매일 매일 이혼을 접수하면서 울고불고 심지어 현장에서 싸우기는 별의별 상황을 다 접했지만, 이렇게 무덤덤하게 처리하는 부부는 처음 본다.

게다가 남자는 키도 크고 잘생기고, 여자는 날씬하고 예쁘기만 한데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어쩌다 이혼까지 하게 되었단 말인가?

차설아는 접수증을 건네받아 빼곡히 적힌 내용을 들여다보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혼할 때 숙려기간이 있으면서 결혼하기 전에는 왜 없대? 만약 혼인 신고할 때 숙려기간이 있다면...”

성도윤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냉소를 지었다.

“왜? 혼인 신고할 때 숙려기간이 있다면 나랑 결혼 안 하게?”

“그건 아니고.”

차설아는 눈썹을 추켜올렸다.

“당신한테서 800억이나 받았잖아. 무려 800억인데? 이건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일해도 못 버는 액수야. 아무리 따져봐도 내가 이득이지 않겠어?”

성도윤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그는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그동안 그녀는 양반집 규수처럼 참한 모습만 보여줬다면, 이혼을 앞두고 오히려 거리낌 없고 점점 더 앙칼졌다.

두 사람이 헤어지려던 순간 뒤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윤아, 수속 끝났어?”

고개를 돌린 차설아는 임채원을 발견했다.

커다란 흰색 원피스를 입은 임채원은 애절하면서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살아있는 선녀가 따로 없었다. 바람이 불면 쓰러질 듯한 그녀는 그날 밤의 오만방자한 여자와 전혀 딴판이었다.

게다가 지난번에는 몰랐는데, 오늘 다시 보니 배가 좀 불룩하지 않겠는가?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지? 왜 나왔어? 밖에 얼마나 추운데, 네 배 속의 아이는 우리 집안에 아주 중요한 존재라고, 혹시라도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고?”

순간 성도윤의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지켜보던 차설아는 배신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답답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성도윤, 적어도 나한테 설명은 해줘야지 않겠어?”

차설아를 바라보는 성도윤의 잘생긴 얼굴은 일말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은 몰라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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