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눈은 새벽녘에 그쳤다.
부녀는 말없이 언덕을 내려왔다. 밤새 쌓인 눈이 두 사람의 발자국을 나란히 받아 냈다가, 뒤따르는 바람에 조금씩 지웠다. 운백천은 앞서 걸으며 한 번도 딸을 돌아보지 않았고, 운설은 아버지의 등에 얹힌 무게를 바라보며 걸었다. 저택의 문이 열렸을 때, 그 무게가 어찌하여 그리 무거웠는지 그녀는 곧 알게 되었다.
마당에 사람이 그득했다.
간밤의 횃불 몇으로 그치지 않았다. 무림맹의 깃발이 아침 바람에 무겁게 젖어 펄럭였고, 흰 무복의 맹도들이 마당을 빙 둘러섰다. 담장 밖으로는 성읍 사람들이 목을 뺐다. 소문이 밤을 새워 이 많은 눈을 불러 모은 것이었다.
운백천이 걸음을 멈추었다. 잠깐, 아주 잠깐, 그의 어깨가 펴졌다. 밤새 무덤 앞에서 굽어 있던 등이 딸을 등 뒤에 두는 순간 다시 산맥의 높이를 되찾았다. 운설은 그 등을 바라보며, 이 사람이 무엇을 하든 저를 지키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앎이 고마우면서도 어쩐지 더 시렸다.
그 한가운데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무림맹의 법을 집행하는 자리에 오래 앉아 온 사람이었다. 젊은 검객이 가만함으로 좌중을 눌렀다면, 이 노인은 서슬로 눌렀다. 눈매가 얇고 차가웠으며, 웃지 않는 입가에는 오랜 판결의 습관이 굳어 있었다. 죄를 다루어 온 세월만이 새길 수 있는, 사람을 물건처럼 저울에 올리는 눈이었다.
그 곁에 간밤의 젊은 검객이 서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의 얼굴에는 밤의 서늘함 대신 다른 것이 어려 있었다. 마지못함, 이라고 운설은 읽었다. 그의 눈이 그녀에게 닿았고, 아주 짧게 흔들렸다가 이내 돌아섰다. 그 짧은 흔들림이, 마당의 어떤 창칼보다 오래 운설의 가슴에 남았다.
집법을 맡은 노인이 운백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인사도 예도 없었다.
"청하의 가주. 간밤 이 댁에서 죄인 하나가 숨을 거두었다 들었소. 북막의 잔당, 십팔 년을 숨어 다닌 자였지." 목소리는 얇고 또렷했다. "그자가 품었던 신패를 이 댁에서 거두었다는 말도 들었소."
운백천은 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노인은 긍정으로 읽었다.
"죽은 자의 물건 하나로 산 사람을 얽으려 하시오." 운백천의 목소리가 마당을 갈랐다. 밤새 무덤 앞에서 갈라지던 그 목소리에, 청하의 가주로 삼십 년을 호령해 온 울림이 돌아와 있었다. "그 아이는 내 딸이오. 강보에 싸여 내 품에 온 이래, 검 한 번 쥔 적 없는 의녀요."
"가주께서 거두신 그 강보가." 노인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디에서 왔는지, 정녕 모르신다 하시겠소."
운백천의 말문이 막혔다. 그 막힘을 마당의 모두가 보았다. 딸을 지키려 세운 산맥이, 제 안의 오랜 균열 앞에서 소리 없이 한 번 흔들렸다.
"신패란 주인을 부르는 물건이오." 노인이 말을 이었다. "삭월(朔月)의 패는, 삭월의 피에게만 응하는 법."
마당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운설은 소매 안, 살갗에 닿은 차가운 쇠붙이의 무게를 느꼈다. 그것이 제 심장 소리에 맞추어 뛰는 듯했다.
던져 버릴 수도,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패는 죽어 가던 노인이 마지막 숨으로 그녀의 손에 밀어 넣은 것이었다. 없다고 말하는 순간, 그 밤의 온기마저 함께 부정하게 될 것만 같았다. 운설은 소매를 쥔 손에 조용히 힘을 주었다.
집법당주의 얇은 눈이 마당을 천천히 훑었다. 운백천을 지나고, 그 등 뒤에 선 운설에게 이르러 멎었다.
노인이 손을 들었다. 마른 손가락이 곧게 뻗어, 운설을 가리켰다.
"저 여인이 그것을 지녔소." 목소리가 마당 가득 퍼졌다. "삭월의 마지막 핏줄. 십팔 년 전 우리가 끝냈어야 할 재앙의 씨가 — 청하 운씨의 딸로 자라 있었소."
수백의 눈이 일제히 운설에게 쏟아졌다.
어떤 눈은 두려워했고, 어떤 눈은 경멸했으며, 또 어떤 눈은 구경거리를 보듯 번들거렸다. 어제까지 그녀에게 언 손을 맡기던 사람들이었다. 그 언 손을 데워 주던 온기가 하룻밤 사이에 재앙의 온도로 뒤바뀌어 있었다.
그 시선들 한가운데에서, 그녀는 제가 평생 사랑해 온 조용한 세계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들었다. 눈이 그친 아침은, 너무나 밝았다. 숨을 곳이 어디에도 없을 만큼.
"안에 있으시오." 그가 말했다. 돌아보지 않은 채였다. "무슨 소리가 나도."그는 달빛 마당을 가로질러 숲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서두르지 않는 걸음 그대로, 밤 마실이라도 가는 사람처럼.운설은 문설주를 붙들고 어둠에 귀를 세웠다. 낮게 주고받는 말소리가 먼저 왔다. 계집을 내놓으면 검신 나리의 이름에는 흠이 안 가게 해 주겠다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 여럿이었다. 대여섯은 되었다. 그다음에 들린 것은 답이 아니라 쇳소리 한 번, 눈 떨어지는 소리 두어 번. 나무 위에서 눈덩이가 제풀에 미끄러지는, 겨울 숲의 흔한 소리 같은 것들.그리고 아주 오랜 정적.강물 소리가 가슴 안에서 반 뼘쯤 차올랐다가, 도로 내려앉았다. 나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물도 아는 모양이었다.그가 돌아온 것은 차 한 잔 식을 참이 지나서였다. 어깨에 눈이 앉아 있었고, 검은 이미 검집 속이었고, 걸음은 나갈 때와 같았다. 다른 것은 하나, 왼팔 소매가 어둠 속에서도 표 나게 무거워 보인다는 것뿐이었다."죽였습니까.""보냈소." 그가 말했다. "혀는 성하게 두었으니, 가서 소문을 낼 것이오. 검신이 계집을 독차지하려 든다고." 그는 그 말이 우스운지 우습지 않은지 알 수 없는 낯으로 잠깐 사이를 두었다. "맹에 올라가기에는 나쁘지 않은 소문이오. 수장이 먹이를 곁에 두고 지킨다는 소문보다는.""왼팔." 운설이 말했다."스쳤소.""환자가 의원 말을 —""환자가 아니오."같은 문답이 두 번째였다. 두 번째라는 사실이 어쩐지 방 안의 공기를 반 뼘 데웠다. 그는 이번에도 결국 소매를 걷었다. 팔뚝 바깥쪽으로 두 치, 얕지만 깨끗하지 못한 상처였다. 낭인의 칼은 이가 나가 있었을 것이다. 운설은 남은 지혈초를 개어 바르고 무명을 감았다. 사람의 살을 만지는 동안만은 손끝에 아무 망설임이 없었다. 그 없음이 좋아서, 그녀는 필요한 것보다 조금 천천히 감았는지도 모른다.치료를 받는 동안 그는 시선 둘 곳을 못 찾는 사람처럼 빛바랜 산신 그림만 보고 있었다. 좌중을 누르
눈보라는 밤이 되며 이빨을 세웠다.동행 이틀째까지 두 사람이 나눈 말은 길 이름과 초소 위치가 거의 전부였다. 그는 앞서 걷지 않았다. 늘 반 장 비낀 곳에서 같은 속도로 걸었고, 갈림길에서만 먼저 방향을 잡았다. 밥은 따로 먹었다. 그녀가 언 주먹밥을 꺼내면 그는 말없이 등을 돌리고 육포를 씹었다. 베어야 할 사람과 겸상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다른 무엇인지 그녀는 묻지 않았다.무너진 산신당을 찾아낸 것은 그였다. 지붕 반쪽이 내려앉고 산신 그림은 빛이 바래 호랑이인지 고양이인지 모를 것이 되어 있었으나, 성한 반쪽 아래는 바람이 들지 않았다. 불은 피우지 못했다. 눈보라 속에서도 연기 냄새는 십 리를 간다고 그가 말했고, 그 말이 옳다는 것을 그녀도 알았다."산신께는 미안한 일이오." 자리를 잡으며 그가 말했다. 농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어조여서, 운설은 어둠 속에서 잠깐 그의 얼굴을 살폈다. 빛바랜 호랑이 아래 앉은 검신이라니, 미안할 쪽이 어느 쪽인지 모를 일이기는 했다."젖은 옷은 벗어서 짜야 합니다." 운설이 말했다. "고뿔은 약으로 잡아도 얼어 죽는 건 약이 없습니다.""나는 되었소.""환자가 의원 말을 안 들으면 —""환자가 아니오.""오늘 밤 안으로 됩니다."그가 이쪽을 보았다. 어이가 없다는 낯을 검신의 격으로 지으면 저런 얼굴이 되는구나, 싶은 얼굴이었다. 결국 그는 겉옷을 벗어 물기를 짜서 벽에 걸었다. 의녀의 말은 검보다 무르되 검만큼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배워 가는 중이었다.당(堂) 안의 어둠에 눈이 익자 서로의 윤곽만 남았다. 반 장의 간격을 두고 벽에 기대앉아, 두 사람은 눈보라가 문풍지 대신 우는 소리를 들었다."물어도 되겠습니까." 운설이 먼저 침묵을 걷었다. "검은 어쩌다 잡으셨습니까.""집안의 아이들은 다섯에 목검을 잡소. 나는 넷에 잡았다 하오." 어둠 속의 목소리는 낮고 고르았다. "기억에도 없는 나이요. 검을 잡은 기억이 없으니, 잡지 않은 나를 알지 못하오.""잡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
검이 손안에서 눕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날이 비틀리며 손아귀를 미끄러져 나갔다. 물고기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 같은,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회수였다. 강이 주춤한 그 한순간을 그는 놓치지 않았고,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손가락 하나 다치게 하지 않는 각도로만 검을 물렸다. 반 치의 사람이 반 치로 물러난 셈이었다.물러난 검이 검집에 잠기는 소리가 났다.강물은 소리를 낮추며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침이 없이도 내려갔다. 눈을 마주친 탓인지, 검이 물러난 탓인지, 두 번째라 물이 덜 불었던 탓인지 — 알 수 없었으나 내려갔다는 사실만은 분명해서, 운설은 그 자리에 선 채 조용히 숨을 몰아쉬었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눈송이가 다시 눈송이로 돌아왔다.고요가 벌판에 되돌아오자, 방금 지나간 것들의 크기가 뒤늦게 몸으로 왔다. 무릎이 가늘게 떨렸다. 검신의 검을 맨손으로 물고, 강호에서 가장 빠르다는 검객을 물가로 끌어당기고 — 소문 속의 여자가 한 일들을 이 몸이 했다. 그런데도 이 몸의 임자는 그 일들을 구경한 기억밖에 없었다. 힘을 얻는다는 것이 이렇게 저를 잃는 일이라면, 강이 다 차오르는 날 이 자리에 남는 것은 누구인가."언덕 뒤의 둘." 선우현이 벌판이 울리도록 소리를 높인 것은 그때였다. "보았느냐."한참 만에 언덕 너머에서 젊은 무사 둘이 엉거주춤 모습을 드러냈다. 얼어붙은 낯들이 멀리서도 희었다."가서 본 대로 고하라. 계집의 힘은 소문을 웃돌며, 정면으로 베려면 맹의 검 수십이 꺾인다. 하여 수장은 곁을 떠나지 않고 힘의 근원을 캐며 기회를 기다리겠다 — 한 자도 보태지 말고, 한 자도 빼지 말고."두 사람은 도망치듯 남쪽으로 사라졌다. 눈 벌판에 다시 둘만 남았다."기회를 기다린다." 운설이 그 말을 되뇌었다. "그 보고는 참입니까.""한 자도 보태지 않았소." 그는 태연했다. "기회가 무엇의 기회인지를 말하지 않았을 뿐."손바닥이 그제야 아파 왔다. 검날을 물었던 오른손을 펴자 살이 갈라진 자리로 피가 배어 나왔다.
뽑힌 검은 그러나 그녀를 겨누지 않았다. 검끝은 눈밭을 향해 낮게 늘어진 채였고, 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 그녀의 어깨 너머 언덕 쪽을 스쳤다."언덕 뒤에 둘." 입술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말이었다. "집법당의 눈이오. 사흘째 나를 밟고 있소."운설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다."수장이 계집과 마주 서서 문답만 하다 보냈다고 올라가면, 다음에 오는 것은 나 하나가 아니오." 그는 여전히 그녀만 들을 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내 검이 그대를 죽이려 들 것이오."숨 한 번의 사이를 두고, 그가 덧붙였다."죽지 마시오."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몸이 먼저 알았다. 머리가 따라잡기도 전에 목덜미의 서늘함이 등줄기까지 내리꽂혔고 — 검이 왔다.베는 검이었다. 봐주는 검이 흉내 낼 수 없는, 정확하게 목숨을 물러 오는 검. 언 땅이 갈라지는 소리 같은 것이 귓전을 스쳤고, 운설의 몸이 뒤로 물러난 것은 그녀의 뜻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저 깊은 데서 눈을 뜬 강이었다. 물소리가 삽시간에 차올랐다. 세상이 다시 환해지기 시작했다. 눈송이의 결, 검이 그리는 길, 그 길이 반 치 비켜 갈 자리.첫 합에서 그녀가 배운 것은 검신이라는 이름의 뜻이었다. 장정들의 창칼은 소리부터 왔고, 사냥꾼의 쇠뇌는 살기부터 왔다. 이 검은 아무것도 앞세우지 않고 왔다. 강이 아니었다면 첫 합에 끝났을 것이다. 강이 있어도, 검이 그리는 길들은 매번 물살보다 반 호흡 빨랐다. 다만 그 빠른 길들이 하나같이 급소의 반 치 곁을 지났다.반 치. 그 반 치가 보이는 순간 운설은 알았다. 이 사람은 지금 베면서 빌고 있다. 검은 죽이려 들되, 검을 쥔 사람은 그 반 치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감찰의 눈이 닿지 못하는, 검신(劍神)만이 다룰 수 있는 반 치였다.그러나 강은 그 반 치를 몰랐다.세 합째였는지 네 합째였는지, 그녀의 오른손이 저 혼자 올라가 검날을 잡았다. 맨손이 쇠를 무는 소리가 벌판에 울렸다. 손바닥이 타는 듯했지만 아픔은 멀리 있었다. 소문
내려가지 않는 길은 없었다.언덕 위에서 운설은 그것을 한눈에 헤아렸다. 벌판을 가로지르지 않고 북으로 가는 길은 없고, 벌판 가운데는 그 사람이 있었다. 어둠을 기다려 볼까 하는 생각은 떠오르기도 전에 부질없어졌다. 나흘 동안 간격을 지키던 기척이다. 밤이 그의 눈을 가려 줄 리 없었다.그녀는 언덕을 내려갔다.거리가 줄어드는 동안 그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스무 걸음쯤에 이르렀을 때에야 운설은 걸음을 멈추었다. 눈 그친 벌판에는 바람 소리조차 없어서, 두 사람 사이의 스무 걸음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거리처럼 고요했다.골목에서 보았던 그 얼굴이었다. 곁을 스치던 낮은 목소리, 눈발 속에 비켜서던 어깨. 다만 그때 그의 등 뒤에는 무너지는 그녀의 집이 있었고, 지금 그의 등 뒤에는 그녀가 가야 할 북쪽 하늘이 있었다.가까이서 보는 그는 골목의 기억보다 젊고, 기억보다 고요했다. 눈 벌판 한가운데 서 있는데도 그의 둘레만 바람이 비켜 가는 듯했다. 화톳불 가의 장사치들이 왜 그 이름 앞에서 숙연해졌는지,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알 것 같았다. 격이라는 것은 소문으로 듣는 것과 마주 서는 것이 이렇게 달랐다."열나흘."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멀리 왔소.""길을 일러 준 이가 있어서."그 말에 그의 눈매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음이라 부르기에는 모자라고, 아니라 하기에는 남는 것이었다."무림맹 토벌 수장 선우현이오." 그가 말했다. 화톳불 가에서 주워들은 이름이 눈 벌판 위에서 임자를 찾았다. "그대를 베라는 명을 받고 왔소.""끌어오라는 명이 아니고요.""베라 하였소."숨길 것도 에두를 것도 없다는 말투였다. 이상하게도 그 서슬이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보다 먼저, 목덜미의 그 서늘함이 왔다. 나흘 내 등에 얹혀 있던 것과 같은 서늘함이 이제 정면에서 불어오고 있었다.운설은 소매 속 신패의 모서리를 옷 위로 가만히 눌렀다. 도망칠 수 없다면 숨길 것도 없었다. 이 사람은 폐사의 눈밭에서 그녀의 사흘을 다 읽어 낸 눈이다.
눈은 거짓말을 못 한다. 검을 배우기 전에 배운 것이 그것이었다.선우현은 폐사 마당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이 하는 말을 읽었다. 산문 기둥에 박힌 쇠뇌 살은 깃까지 얼어 있었다. 사흘 전. 살이 박힌 깊이와 각도를 눈으로 재고, 그는 살이 날아왔을 자리를 돌아보았다. 외길 어귀. 거기서 법당 계단까지 스무 걸음. 그 스무 걸음 사이에 장정 셋이 쓰러졌던 자국이 눈 밑에 아직 남아 있었다.피는 없었다.그는 그 사실을 두 번 확인했다. 왕가 삼 형제라면 그도 이름을 들었다. 범을 맨 창으로 받는 자들이다. 그 셋을 스무 걸음 안에서 꺾으면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게 하는 손속이란, 맹의 장로들 중에도 몇 없다. 그런데 그 손속의 임자는 무공을 배운 적이 없는 의녀라 했다.마당 구석에는 액막이 소금이 뿌려져 있었다. 왕가 막내의 짓일 것이다. 소금 알갱이들이 눈과 섞여 반짝였다. 요녀의 자리라고 소금을 치고 간 그 손들을, 그 요녀가 며칠 전 부목으로 감아 주었다. 소문이라는 것이 어느 대목을 삼키고 어느 대목을 뱉는지, 그는 장터 벽에 붙는 방(榜)을 만드는 자리에 있어 봐서 알았다.계단 아래 눈을 걷어 내자 찢긴 무명 조각이 나왔다. 치맛단이었다. 부목을 동인 매듭 방식은 북변 의원들의 것. 부수고, 그 자리에서 감았다. 같은 손으로.선우현은 오래 그 매듭 자국을 내려다보았다.일어서려다, 그는 계단 틈에서 가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은침 한 대. 끝에 마른 피가 한 점 얼어붙어 있었다. 누구의 피인지는 물을 것도 없었다. 부러진 뼈들 곁에 피가 없었으니, 이 피는 침의 임자가 저에게 쓴 것이다. 제 몸에 침을 놓아 가면서까지 눌러야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 눈은 거기까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그는 은침을 집어 소매에 넣었다. 넣고 나서, 제가 방금 한 일이 증좌의 수습인지 다른 무엇인지 잠깐 생각했고, 생각을 거기서 끊었다.맹을 떠나던 날의 문답이 눈길 위로 되돌아왔다.수장의 인(印)을 내리며 집법당주는 웃고 있었다. 노인의 웃음은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