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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손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1 16:37:13

운백천은 오래 말이 없었다.

눈이 그의 어깨에 소복이 쌓이도록, 그는 무덤만 바라보았다. 이윽고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십팔 년을 건너온 것처럼 멀었다.

"열여덟 해 전, 북막에 눈이 내렸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깊었다고 했다. 중원의 검이 북방의 한 부족을 향해 올라갔고, 그 밤 눈은 붉게 젖었다고. 운백천은 그 자리에 있었다. 무엇을 위해 올라갔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그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다만 불타는 장막들 사이에서, 울지 않는 갓난아이 하나를 안아 들었노라 했다.

"눈밭에 놓여 있었다. 강보째로. 사방이 불이고 비명인데, 그 아이만 소리가 없었어." 목소리가 잠겼다. "나는 그 애를 안고 남으로 내려왔다. 그게… 열여덟 해 전이다."

그 말을 하는 동안 운백천의 눈은 무덤을 지나 그 너머 아득한 어딘가에 가 있었다. 눈 덮인 능선, 재로 사위어 가던 장막, 아직 온기가 남은 잿더미. 운설은 아버지가 여러 밤 홀로 이 언덕을 오른 까닭을 이제야 헤아렸다. 죽은 노인을 찾아오는 걸음이자, 열여덟 해 전 그 밤으로 되돌아가는 걸음이었다.

운설은 제가 태어난 곳이 눈 내리는 북방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곳이 불탔다는 것을 그렇게 처음 알았다. 늘 비어 있던 그녀의 시작 자리에 이제 불빛과 비명과 붉은 눈이 들어찼다. 그 그림 속에서 우는 사람은 많았고, 울지 않는 것은 그녀 하나였다.

평생 사람들은 그 이야기의 그 대목에서 감탄하곤 했다. 눈밭에 놓이고도 울지 않았다니 될성부른 아이였다고. 운설도 한때는 그 대목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달리 물었다. 갓난것이 어찌하여 울지 않았을까. 울음소리가 곧 죽음을 부르는 밤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 작은 몸이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배운 말이 침묵이었다면, 사람들이 될성부름이라 부른 그 고요는, 실은 공포가 아이에게 새긴 첫 흔적이었을 것이다.

마룻장 아래 감춘 초승달 패가 떠올랐다. 이지러진 달, 삭월(朔月). 그것이 어찌하여 제게로 왔는지, 노인이 무엇 때문에 마지막 힘을 다해 그것을 쥐여 주었는지 —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러나 완성되고 나면 돌이킬 수 없을 그림이었다.

"그래서 저를 딸로." 운설이 말했다.

"속죄였다." 운백천이 말했다. 오래 준비해 온 말을 마침내 꺼내는 사람 같았다. "너를 기르는 동안은, 그 밤을 견딜 수 있었다."

운백천은 거기서 말을 멈추었다. 그 뒤에 아직 이어질 말이 있음을, 운설은 아버지의 다문 입가에서 읽었다. 말해지지 않은 말이, 방금 말해진 말보다 무거웠다.

견딜 수 있었다. 그 말이 운설의 안에서 이상하게 걸렸다. 무엇을 견딘다는 것인가. 사람을 구한 자는 그 밤을 견디지 않는다. 구한 일은 오래 품는 자랑이 되지, 열여덟 해를 짓누르는 짐이 되지 않는다.

"아버지." 그녀가 물었다.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 밤에… 누가 그 사람들을 죽였어요."

운백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이 내렸다. 그의 두 손이 소매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평생 검을 쥐어 온 손, 그러나 운설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아버지의 손이라 알아 온 그 손이었다. 달빛 아래에서 그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무언가를 오래전에 내려놓았으되, 손금에는 아직 그 무게가 남은 사람처럼.

운설은 그 손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입에 담지 않은 대답이, 눈처럼 소리 없이 제 안에 내려앉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문득 제 손을 아버지의 손 곁에 나란히 두어 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언 손을 녹이고 갈라진 상처를 여미던 손. 그 손과 저 손이 같은 핏빛 밤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이, 발밑의 눈보다 차가웠다.

이 언덕을 내려가고 나면, 그녀는 더 이상 어제의 운설로 화로에 불을 지필 수 없을 것이었다. 눈 오는 밤의 그 비어 있음도, 마른 약재가 똑 부러지던 소리도, 이제는 다른 세계의 것이 되어 있었다. 열여덟 해 동안 그녀를 감싸 온 조용한 세계가, 아버지의 떨리는 두 손 위에서 소리 없이 저물고 있었다.

그녀는 그 대답을 밀어내려 했다. 밀어낼수록 그것은 더 하얗게, 더 두껍게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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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317화 — 다섯 개의 등불

    첫 등불은 여덟째 문에 켜졌다.붉은 천을 벗긴 흰 등이었다. 산모와 아이를 받을 빈방이 있다는 뜻이었다.두 번째는 백지장 창고 지붕에서 올랐다. 종이통을 비운 방에는 마른 천과 끓인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세 번째는 남궁완 구휼창의 열린 곡식독 위였다. 죽과 장작을 보낼 수 있다는 불이었다.네 번째는 강 건너 갈대둑 산실이었다. 무너진 벽을 아직 고치지 못했지만 늙은 산파가 문을 열고 기다렸다.다섯 번째는 흑마장에서 온 푸른빛이었다. 하란주가 밤길을 달릴 말 네 필을 내놓았다는 뜻이었다.어느 한곳도 사람을 전부 데려오겠다고 하지 않았다.등불 아래에는 작은 장부가 하나씩 놓였다. 받은 사람 수보다 돌려보낸 사람과 이유를 먼저 적었다. 방이 찼으면 못 받음, 산파가 없으면 손이 없음, 약이 모자라면 약이 없음이라 썼다.부끄러운 말을 감추면 다음 수레가 같은 길을 헛달렸다. 할 수 없다는 기록도 사람을 다른 문으로 보내는 길이 되었다.정월은 열을 살피기 쉬운 여덟째 문으로 갔다. 매화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 하룻밤의 집을 골랐다. 아이 셋은 서로 떨어지지 않고 백지장 빈방으로 갔다. 소담은 그 방들을 차례로 돌기로 했다.가장 큰 아이는 백지장에 도착하자 출구부터 셌다. 앞문과 뒷문, 낮은 창 하나. 류단은 아이가 확인을 마칠 때까지 짐을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여기도 우리를 두고 어미가 안 오면요?”“기다릴 날짜를 같이 정하자.”“안 오면 쫓아내요?”“그때 다시 묻고.”아이는 열흘을 골랐다. 열흘 뒤 어미가 오지 않으면 슬퍼할지 화낼지, 어디로 갈지는 그날의 자기에게 남겼다.“나는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갈대섬 늙은 산파가 물었다.“가고 싶은 곳이 어디예요?”운설이 되물었다.산파는 잠긴 섬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떠난 뒤 어디에 필요한지 묻는 말은 처음 들었다.“갈대둑 산실을 열고 싶소.”“그럼 거기서 불을 들어 주세요.”다섯 불은 우두머리의 명을 기다리는 불이 아니었다. 무엇을 줄 수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 밝히는 불이었다.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316화 — 검 없는 나룻배 (선우현)

    부러진 노가 배 바닥을 긁었다.선우현은 허리로 손을 가져가지 않았다. 검이 없어진 뒤에도 갑작스러운 소리가 나면 빈 칼집을 찾던 버릇은 오래 남았다. 그날은 밧줄부터 보았다.아침에는 운설의 약상자를 숨겼다. 위험한 것을 눈앞에서 치우면 위험까지 없어지는 줄 알았다. 지금 강물 앞에 서자 그 짓이 얼마나 검을 휘두르던 때와 닮았는지 보였다. 베어 낼 수 없는 것을 만나면 길부터 막았다.섬에 묶인 줄 하나, 강 아래 버드나무에 감은 줄 하나. 마지막 배는 두 줄 사이에 있었다.“노를 버리시오.”뱃사공이 부러진 자루를 놓았다.“그러면 배를 어찌 돌립니까?”“돌리지 않소. 줄을 따라가오.”선우현은 뭍의 장정 둘을 위쪽으로 옮겼다. 연도하는 아래 줄을 맡았다. 배를 강과 맞서 세우지 않고 물이 미는 만큼 비스듬히 흘렸다.예전 같으면 물 위를 밟고 건넜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검신의 첫 움직임만 기다리곤 했다.지금 그의 발은 진흙에 빠졌고 오른쪽 무릎은 오래 버티면 떨렸다.그는 무릎을 숨기지 않고 장정 하나에게 뒤를 받치게 했다.“내가 미끄러지면 줄을 잡되 나를 먼저 당기지 마시오. 배가 먼저요.”장정은 검신을 붙들라는 명을 받을 줄 알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선우현은 자기가 약해졌다는 사실까지 동선 안에 넣었다. 없는 힘을 감추면 줄 끝의 사람들이 그 거짓말까지 견뎌야 했다.“위 줄, 반 자 놓으시오.”장정이 너무 많이 풀었다. 배가 소용돌이 쪽으로 기울었다.선우현은 소리치지 않고 자기가 밧줄을 감았다. 거친 삼줄이 손바닥 살을 벗겼다. 피가 났으나 놓지 않았다.“지금.”연도하가 아래에서 당겼다.배가 돌아와 섬 돌계단에 닿았다.소담이 붉은 등을 한 번 흔들었다. 매화의 진통 간격이 짧았다. 선우현은 당장 섬으로 건너고 싶은 발을 멈췄다. 손목의 흰 끈이 젖어 살에 붙었다.아침의 그는 운설 대신 길을 정했다. 이번에는 안에서 보는 사람의 판단을 빼앗지 않았다.“무엇이 필요하오?”강 건너로 물었다.소담은 흰 천 두 장을 들었다.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315화 — 가을물

    다리가 끊긴 뒤에도 갈대섬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소담은 푸른 등을 세 번 들었다. 물이 산실 마당까지 왔다는 뜻이었다.선우현은 떠내려가는 다리 판자를 쫓지 않았다. 강 아래에 세운 장정들에게 빈 배를 당기게 했다. 배는 있었지만 섬으로 건널 노가 하나뿐이었다.“한 번에 넷은 못 타오.”늙은 뱃사공이 말했다.정월과 갓난아이, 산파 하나만 타도 배가 낮아졌다. 섬에는 매화와 아이 셋, 소담과 늙은 산파가 남았다.강바람이 등불 불꽃을 눕혔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상류에서 온 물은 흙빛이었다. 뿌리째 뽑힌 풀과 부엌 바가지가 떠내려왔다. 어느 집 마당이 먼저 잠겼는지 물건들이 말해 주었다.섬의 아이들은 산실 지붕 아래에 앉아 신발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맨발로 물을 건널 수 있어도 건넌 뒤 신을 것이 필요하다고 소담이 가르친 뒤였다.연도하는 설로 수레에서 빈 종이통을 꺼냈다. 물에 젖지 않게 기름을 먹인 큰 통이었다. 여섯 개를 판자문 양옆에 묶자 물에 뜨는 넓은 발판이 되었다.“사람을 태울 물건은 아니오.”선우현이 통 매듭을 당겨 보았다.“짐보다 가벼운 아이 셋은 건넬 수 있소.”“물살이 돌아가면 뒤집히오.”“그래서 그대가 길을 보라는 것이오.”두 사람은 더 다투지 않았다.선우현은 종이통마다 작은 구멍이 없는지 물에 눌러 보았다. 하나에서 기포가 올라왔다. 연도하는 망설이지 않고 그 통을 빼냈다.“아까운 물건이오.”“물 위에서는 구멍 하나가 사람 하나요.”남은 다섯 통의 매듭을 서로 다른 사람이 확인했다. 만든 사람의 자신감보다 쓰는 사람의 손이 한 번 더 필요했다.밧줄 한쪽을 섬에 보내야 했다. 장정이 던진 돌은 물에 빠졌고 화살은 바람에 밀렸다. 연도하는 상단 방울을 밧줄 끝에 달았다.“소리로 받게 하지.”두 번째 화살이 산실 지붕을 넘었다. 방울 소리를 들은 소담이 갈대밭에서 밧줄을 찾아 들보에 묶었다.선우현은 물살을 보며 뭍의 고정점을 옮겼다. 정면으로 당기면 발판이 가운데 소용돌이에 걸렸다. 강 아래 버드나무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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